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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저/예상한 등역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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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심적인 진보주의자 폴 크루그먼과 미래를 이야기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엄청난 물질주의와 부정부패가 일어났던 도금시대(Gilded Age)가 지나고 1929년 검은 목요일이 찾아왔다. 오를 줄만 알았던 주가의 대폭락은 1930년 초에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1930년 말부터 1932년까지 다시 꾸준히 폭락하면서 결국 대공황을 몰고 왔다.

  실업자와 빈민이 넘쳐나던 이때에 프랭클린 댈러노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뉴딜정책은 용감한 영웅처럼 미국을 구했다. 실업자들은 다시 일자리를 구했으며 침체된 경기는 살아났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무기력할 때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보이는 손’이 긴급하게 작용해 경제를 회복시킨 것이었다. 대공황이 지난 미국의 사회는 평화롭고 풍요로웠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강력한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조합 지원책이 빈부격차를 축소시켰고, 마침내 미국은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 이 책의 시작에서 먼저 추억을 더듬는다. 자신이 태어난 1953년은 돌이켜보니 미국 정치와 경제사상 찾아보기 힘든 잃어버린 낙원이었다고.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물질적으로 상당히 비슷한 수준의 풍요를 누렸으며, 경제적으로 균등했던 미국은 정치적으로도 중도 노선을 지켰다고 회고한다.

  크루그먼이 ‘잃어버린 낙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제 그 모든 것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크루그먼의 말대로 ‘추억’이 돼버렸다. 1980년대 이후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거의 또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집단들이 엄청난 부를 쌓아 계층 간 수입의 불평등이 1920년대만큼이나 커졌으며, 정치인들은 좌나 우의 극단으로 치달았다. 경제도 정치도, 모두 양극화가 돼버렸다.

  크루그먼은 그 원인으로 ‘보수주의 운동’을 지적한다.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히 부유층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자금력으로 무장한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이 내세운 자유경쟁의 논리가 미국사회 전체를 거대한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의 공화당 정부들은 모두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민영화, 자유경쟁, 부자감세…… 가진 자는 더욱 부를 움켜지고 빈자는 더욱 가난해졌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2006년 (1929년에 이어) 사상 최고가 되었다.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오래된 꿈을 꺼내 어루만지듯 아련한 향수로 1950년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더듬는 크루그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해결책 또한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진보주의와 진보주의 운동이다. 두 단어의 차이는 전자는 철학을, 후자는 행동을 뜻한다는 데에 있겠다. 불평등과 불공정을 막는 제도를 믿는 사람들을 진보주의자라고 한다면 진보주의 운동가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그러한 제도를 보호하거나 확대하려는 정치적 집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으로, 중산층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주된 목표다. 의료보험이 아예 없거나 적절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고통을 받는 미국 인구의 40%도 필요한 때에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그러했듯 노조를 지원해 노동자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자들의 세율을 높이고 재분배하여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이다.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서는 극심한 빈부격차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폴 크루그먼. 민주주의와 시민의 자유, 그리고 법치를 믿으며 그래서 자신은 진보주의자이고 그것이 자랑스럽다는 폴 크루그먼. ‘진보주의자의 양심’을 당당히 선언하고 고백한 그가 나 또한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이 책은 미국의 현대사, 구체적으로 미국의 정치와 경제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읽는 독자들에게 그것이 비단 미국사회의 일처럼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빈부격차와 정치적 양극화는 나라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적이고 케인즈적인 폴 크루그먼의 처방약은 우리나라에서도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미국과 똑같지는 않다. 미국사회에 아직까지 큰 갈등을 야기하는 인종차별 같은 문제가 한국에서는 크게 자리하지 않았고, 또 우리는 지역이기주의와 갈등이라는 특수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종차별이든, 지역갈등이든 결국 동일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유경쟁이냐 평등이냐.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사회냐, 다 같이 고루 잘살 수 있는 사회냐. 인간은 지역, 성별, 나이,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평등할 수 있다는 권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대립하는 것은 결국 평등할 권리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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