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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지금도 아이들은 죽어간다 | 정치/사회 2009-12-0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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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렇게 믿고 싶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고 있다는 책의 제목이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은 것은 나 또한 기아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80법칙이라는 것도 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야 새삼스러울 것 없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게 각광받던 시절에 태어나 세계화를 부르짖던 김영삼 정부 아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내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이상할 게 없었다. 우물 안에서 태어나 줄곧 우물 속에서만 자란 개구리가 그것이 마치 세상의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자본주의란 공산주의의 반대말이었고, 신자유주의는 단점을 보완해 보다 더 완전하고 완벽한 형태의 자본주의쯤으로 생각했다. 지금이야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 그 실체를 똑똑히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랬다. 내가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감옥이라는 걸 몰랐다. 그래서 바다 건너 지구의 다른 쪽에서는 나 같은 아이들이 늘 배고픔에 허덕인다는 사실을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 나라는 가난하기 때문이고, 그 가난은 나라의 지도자가 통치를 잘 하지 못하거나 국민들이 게으른 탓이라고. 그리 생각했었다. 까만 피부를 가진 조그만 아이들이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다리를 해가지고 TV화면에 나오더라도, 가엾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안타깝긴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화면 속 전화번호 한 번 누르는 것 말고는 없을 거라고. 그리 생각했었다.


  그랬기 때문일 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무지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부끄러웠고, 돌이켜 보니 나 또한 그들의 고통에 일조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뜨거운 눈물이 자꾸만 솟구쳤다. 반성과 참회, 사죄의 눈물이 뜨겁게 자꾸만 흘러나왔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 책을 쓴 장 지글러 역시 그 점을 알았나 보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감옥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배고픈 아이들을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구나.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 갖지 않는구나. 그래서 지글러는 아들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자신의 아들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어린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기아 난민들의 부당하고 억울한 고통을 함께 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지글러의 이런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나는 책 곳곳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는데 하루에 10만 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3분에 한 명의 어린이가 비타민 A의 부족으로 실명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에 1을 선진국 소들이 먹고 있다.


  어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제3세계 국가들의 기아를 그 나라들의 부패한 정치와 내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틀린 말은 아니다. 유엔의 특별 기구들, 개발프로그램, 기금, 위원회, 금융기관들이 그 나라들의 전염병, 식량, 경제적 ․ 사회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구호기금과 물자들의 대부분은 부패한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그 나라의 빈부 격차를 더욱 넓혀놓는 데 일조한다. 구호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개혁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혁명가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나서야 하며, 때로는 그것으로도 부족하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나 부르키나파소의 토마스 상카라처럼.


  15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배급 하려던 아옌데의 개혁도, 토마스 상카라의 토지분배계획도, 모두 그들의 피살로 끝이 났다. 아옌데의 개혁이 칠레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의 이해관계와 어긋났으며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도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렸다.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쿠테타를 도왔고 결국 아옌데는 오전 11시 라디오를 통해 한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대통령궁에서 살해되었다.

  서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나라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장교 토마스 상카라 역시 개혁을 꿈꿨다. 국민총생산이 170개국 가운데 124위, 일인당 국민소득은 164위인 부르키나파소는 남부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국토의 대부분이 경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라있었다. 무역수지도 매년 적자를 보이고 있었으며 3만 8,000명의 관료가 국가 예산의 70퍼센트 이상을 자신들의 급여로 챙기는 등 부패가 심했다. 가난에 허덕이고 굶어죽는 아이들은 관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정부는 공무원 급여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의 원조를 구걸했다.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개혁 밖에 없었고, 그것은 혁명을 의미했다. 상카라는 탈중앙집권화로 주민들 자신이 지역을 다스리게 했고, 도로건설이나 수도사업, 보건의료사업 등 자신들의 실제생활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실시해 나가도록 했다. 인두세를 폐지하고 개간 가능한 토지를 국유화하여 각 가정의 수요에 따라 재분배했다. 농민들은 어떠한 강제적 징수도 없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4년도 지나지 않아 농업생산량이 크게 늘었으며 국가지출이 줄었다.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프랑스 정부 등 외국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배신한 동료 블레이즈 콤파오레에게 살해당했고, 부르키나파소의 어린이들에게 다시 굶주림이 찾아왔다. 2009년 현재, 블레이즈 콤파오레는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다.


  아옌데와 상카라의 죽음에 가슴이 저미는 고통을 느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어린 시절 갖지 못했던 물음표를 이제야 달아보았다. 도대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도대체 왜? 지글러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난 수없이 물음표를 되뇌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


  내가 눈을 깜박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지금도 한 아이가 굶주림 속에 죽어갔을 것이다. 소량의 비타민 A만 섭취해도 괜찮았을 아이가 두 눈이 멀어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아이가 굶어죽는 나라에 부패하고 타락한 공무원들. 개혁을 꿈꾸고 혁명을 꿈꾸는 자들의 운명. 신자유주의라는 논리를 무기 삼아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선진국과 다국적기업의 두 얼굴.


  하지만 믿고 싶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믿고 싶다. 희망은 아직 있다, 말한 저자의 말을 믿고 싶다. 새롭게 탄생할 전지구적인 민간단체. 사회운동, 비정부조직, (다국적 자본과 그 과두제에 저항하는) 노조들의 세계적인 연대. 저자는 그것에 기아와의 투쟁을 종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고 했다.


  TV화면에 나온 검은 아이들의 앙상한 몸이 불쌍해 거는 전화 한 통화. 성금.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우리의 의식 개혁이 아닐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의 전부인양 착각하고 있었던 곳이 사실은 신자유주의의 무시무시한 감옥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고 깨닫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고 물음표를 던지며 이 책을 쓴, 지글러의 간절한 바람이 아닐까?


  어젯밤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던 아프리카 단비내리기(우물 만들어주기)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언제가 가장 슬프냐는 질문에 매일 매일이 슬퍼요 대답하던 까만 피부의 17살 아기엄마가 생각난다.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도대체 얼마나 슬프기에 매일 매일이 슬프다고 대답했을까?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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