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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서적 리뷰
시나브로 깨닫는 나의 유년시절 | 심리서적 리뷰 2023-03-2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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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년기를 극복하는 법

알랭 드 보통 기획/인생학교 저/신소희 역
오렌지디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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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년기 경험이 성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유년기 트라우마를 끊어낼 방법을 안내한다. 애써 프로이트식 무의식에 대한 접근이라던가, 트라우마에 집착하지 않고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들을 천천히 따라가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p. 39.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은 서글픈 이유로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는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불쾌할까 봐 두려워서 거짓말을 한다. 
 
 
어린 날의 나는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보다 중시하던 날이 많았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데 지극히 서툴렀다. 돌이켜보건대 엄마는 나의 좋은 점은 당연히 좋아야하는 점인 동시에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가진 좋지 않은 점은 마치 들키면 안 되는, 지워야하는 오점으로 평가했다. 나는 사회에 나서기 전부터 엄마의 마음에 잠식당한 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퍽 서글픈 그늘이다. 나는 그저 나 일 뿐인데, 무엇이 좋고 나쁠 것이람. 어디까지나 그 모든 건 엄마의 주관적 평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 역시 그 주관적 평가는 오롯이 본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평가이기도 했다. 
 
 
p. 46. 우리는 세상의 공격을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그 공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꿀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변했다.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과거가 내 삶이 미치는 영향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다.” 내가 유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 나를 옭아매는 과거의 늪에서 발을 빼내기 위해 먼저 다잡았던 마음의 눈.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 스스로를 대견하다, 고생했다 되뇌이듯 쓰다듬었다. 동시에 나는 엄마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의 유년시절을, 엄마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 엄마의 지난 과거를 내가 돌아보기 시작했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은 내게 여러모로 잘 한 결정이었다. 
 
 
2월 경, 부모교육에 참여했었다. 내가 어떤 양육환경에서 자랐는지 이해하는 것만큼 나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결국 내 아이는 우리 둘의 교집합에서 성장할 것이므로 나만큼이나 배우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해도 충분히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어린 시절의 나를 키우는 동시에 어린 시절의 남편도 함께 키우는 셈. 책에서 소개하는 [유쾌함] 파트를 읽는 내내 남편이 떠올랐다. 원한다면 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는 이 남자의 긍정적인 면모가 몹시 매력적이어서 결혼했더랬다. 그런데 육아를 하다보니 그 유쾌함이 간혹 걸림돌이 될 때가 있었다. 우리는 항상 긍정적 감정만을 느껴야만 건강한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이가 유쾌하기를 바랐다. 더 나아가 아이가 힘들고, 지치고, 아파하고, 슬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다 그런 고난이 없는 시간을 보장해주고 싶어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는 성장 과정에서 사소하게 몸이 아픈것도 남편은 견디기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책에서 "양육자 본인부터 오랫동안 외면해 온 압도적인 절망과 슬픔을 내면에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을 보며 유년시절의 남편이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남편이 가진 긍정성은 그 누구보다 값진 에너지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양육과정에서 내가 시나브로 깨닫는 순간들을 마주하는 것처럼 남편 역시, 삶에서 슬픔을 느기는 것은 당연하고 꼭 필요한 일임을, 종종 서글픈 순간도 필요함을 인정할 필요가 있음을 시나브로 느끼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아이를 키우며 끊임없이 어린 날의 나를 만나곤 했다. 전우주적인 사랑으로, 온정으로, 친절과 희망으로, 웃음으로 나를 말갛게 비추는 아이는 매 순간 내 어린 날을 깊이 껴안는다. 그런 이유로 내게 유년기를 마주하는 과정들은 주로 '치유'에 가깝다. 돌이켜보니 육아란, 내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잊고 지냈던 어느 시점에 멈추어 있는 어린 날의 나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아이는, 육아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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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잃어버렸던 시절의 나에게 위로로 건네는 책 | 심리서적 리뷰 2023-03-12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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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아닐 아난타스와미 저/변지영 역
더퀘스트 | 2023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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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시작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한다는 산후우울감이었는데, 스스로에게 몹시도 냉정하고 둔감했던 탓에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나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를 알아채지 못한 채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긴 우울의 터널에 내가 갇혔음을 알아차린 계기는 사소한 일상 속, 아이의 질문 하나였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뭐야?"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색 조차 쉽게 답할 수 없는 내가 낯설고 어색했다. 그리고 이내 안쓰럽고 애틋해졌다. 우울 기간 동안 나는 나를 잃은 듯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유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코타르 망상), 알츠하이머 병을 앓으며 나라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 자신의 신체 중 일부가 내 것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신체통합정체성 장애),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사람들(조현병), 자신이 낯설고 때로는 자신으로부터 분리 및 소외된 느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인증), 타인과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자폐스펙트럼장애), 실제로 자신의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져나가는 경험을 한 사람들(자기환영현상), 모든 것을 벗어난 무아지경의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황홀경간질)까지.


이들의 사례에는 하나의 주제가 관통한다. 바로 '자아'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자아에 관한 철학적 물음에 뇌과학으로 답한다. 현대 과학의 발전은 나를 잃었다고 말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증상들에서 뇌를 함께 논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신경학적 접근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용어들 때문에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마치 내가 곧 뇌인 것만 같은, 나는 뇌와 호르몬의 노예인 것 같은 좌절감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뇌과학이 말해주는 이야기들 저편을 바라보면 좀 더 시야가 선명해진다. 때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을 덮은 지금 내게 남은 깨달음은 옮긴 이, 변지영님의 깨달음과 같다. 자아의 본질 따위는 없다. 인간이라면 응당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문제라는 것, 생각하니 고로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유행 한참 지난 믿음이라는 것,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 자아가 어쩌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것. 아무 데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나'. 병은 바로 자아라는 말이 깊이 남았다. 나를 잃었다는 그 느낌에 매몰되어 우울증에 시달렸던 몇 년 전의 나에게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선물한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으나,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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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링의 시작과 실무에 접근할 수 있는 책 | 심리서적 리뷰 2023-03-1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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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살인자와 프로파일러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공저/김승진 역
북하우스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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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은 대중에게 더 이상 낯설고 생소한 학문이 아니다. 물론 대중이 정확하게 범죄심리학이 무엇인지까지는 모르지만, 그럼에도 심리학의 여러 분야 중 범죄심리학의 자리가 있음을, 그런 학문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함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반면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해당 직업을 꿈꾸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 책은 1970년대 ~ 1980년대, 미국 FBI에 행동과학부의 시작에 함께했던 여성 앤 버지스가 집필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인드 헌터]로 대중에게 가까워진 존 더글러스나 로버트 레슬러에 비해 그녀는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이 아니었다. 당시 그녀는 요원 출신도 아니었고, 유일한 여성이라는 장벽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만의 분석 방식과 학문적 접근으로 조직의 일원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프로파일링 기법이나 프로파일러가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하는 책들은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몹시도 반갑고 즐거웠던 것은, 첫 째, 프로파일러의 역사적인 출발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둘 째, 프로파일러들이 범인을 쫓는 과정들을 마치 눈 앞에 펼쳐놓듯 상세히 묘사하고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쓸모 없다고 생각했던 행동분석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은 범죄심리학이 대중에게 인식된 것 만큼이나 흥분에 가까운 기쁨을 맛보게 했다. 더불어 녹취록을 풀듯 사건을 배치받은 프로파일러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용의자를 추려나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보다 그들의 실무와 삶에 대해 생생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왜 여러 저명한 교수, 프로파일러들이(권일용, 박지선, 표창원) 이 책을 두고 극찬을 표하며 추천했는지 단 번에 이해가 됐다. 다만 그들이 해결한 여러 실제 사건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있으므로, 잔인한 묘사와 사건 전개를 읽을 때는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마음이 쓰라릴 때가 많으므로 이런 장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끔찍함을 버텨야만 하는 것이 고문일 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에 익숙한 내 입장에서는 사건은 그저 사건이고, 다양한 데이터로 다가왔으므로 사례들을 접하는 것이 오히려 실무에 접근하는 듯한 흥미로움으로 더 크게 다가왔다.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다. 이는 연쇄살인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연쇄살인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이들이 단 한 번의 사건만으로 빠른 시간 내에 입건되기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범죄심리학과 프로파일러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그럼에도 현대 범죄는 점점 진화하고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연쇄살인 대신 온라인 범죄가 성행하고, 그것이 현 시대의 가장 끔찍한 연쇄살인의 다른 형태라는 경고들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짧지만 긴, 단단한 역사를 가진 범죄심리학과 프로파일러들이 앞으로도 범인에 대한 끈질긴 추격과 범죄예방에 힘쓸 것이므로 그들을 먼 발치서 응원하기로 한다. 프로파일러의 실무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주저없이 자신있게 추천할 책이 한 권 생겼다.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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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나는 짐바르도의 삶 | 심리서적 리뷰 2023-02-2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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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필립 짐바르도 저/정지현 역
앤페이지 | 2023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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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독기' 독서회에서 내 차례 선정도서로 필립 짐바르도의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를 선정하여 책을 읽고 6가지 시간관에 관해 풍부한 이야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내게는 스탠포드 감옥실험보다 시간관 연구로 보다 익숙한 짐바르도지만, 보통 심리학 강의를 할 때면 짐바르도를 감옥실험 연구로 소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개인적으로 아쉽던 마음을 그렇게 달랬던 터였다. 짐바르도의 자서전이 나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심리학자로서 그가 들려줄 이야기들이 궁금했다.


심리학이 한창 꽃피던 시기의 그 현장을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기분이란, 몹시도 근사하고 인상적이었다. 그 역사적 순간에 이 사람도 함께였다는 사실이 못내 부럽기도 했고, 큰 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심리학 전공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거장들의 이름이 영희, 철수처럼 아무렇지 않게 등장할 때마다 오히려 더 낯선 기분까지 들었다. 대학원생이 되고, 오랜 시간 대학원에 몸을 담으면서 지도 교수님을 비롯 여러 유명한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귀한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 때 겪었던 비현실적인 느낌을 비슷하게나마 이 책에서도 느꼈던 것 같다.


시간관 이야기는 「나는 왜 시간에 쫓기는가」에 리뷰했으니 여기서는 태도와 행동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대상과 사람 그리고 사건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만드는 신념에 영향을 받는 감정을 일컬어 태도(attitude)라고 한다. 이 태도는 우리가 직접 내보이는 행동과 서로 상호작용한다. 때로는 태도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행동이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볍게 생각하면 우리가 가진 태도가 곧 우리이고, 때문에 우리는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일 것이라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강력한 사회적 압력은 태도-행동 고리를 약화하곤 한다. 공개투표 현장에서 개인적으로는 특정 안건에 동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쪽에 표를 던지기도 하는 정치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그들의 태도대로 행동했는가?


행동이 태도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은, 상황의 힘에 굴복하게 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는 바꾸기 힘들 것만 같은 태도를 역으로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회 심리학 챕터, 태도와 행동 파트 마무리를 할 때마다 늘 학생들에게 이 말을 전한다. 오늘은 인친들에게도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할까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면 곧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른다(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미워 죽겠는 마음 정도는 식을지도 모르겠다). 행동을 변화시키면, 상대에 대한 생각과 자신에 대한 느낌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오늘, 마음 속 미운 씨앗을 심은 사람이 있다면 그 씨앗 대신 사랑의 씨앗을 심어보자.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은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조금 더 쉽다. 그리고 억지로 변화시킨 행동 뒤로 나의 태도도 천천히 못 이긴 척 따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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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도서관 | 심리서적 리뷰 2023-02-15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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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저
아몬드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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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종호 교수는 자신의 환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책 표지에서부터 거듭 강조한다. 낙인과 혐오를 넘어 이해와 공존으로 나아가자고. 머리말에서 그가 소개한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는 처음 듣는 프로젝트로 몹시도 인상깊은 프로젝트였다. 도서관에서 우리는 책을 빌린다. 덴마크에서 시작한 이 사람 도서관에서는 사람을 대여한다. 우리는 대여한 사람과 약 30분 가량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안다. 직접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면 그간 우리의 생각만으로 만든 어떤 가상의 허물과 오해 덩어리가 얼마나 컸는지 말이다. 타인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해소하고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전세계 80여 개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2010년, 국회도서관 주최로 우리나라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실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만난 환자들은 그에게 새로운 ‘책’과 같았다고 한다. 따뜻한 진료실을 넘어 따뜻한 환자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말에 그의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글을 통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간극이 조금이나마 좁혀지면 좋겠다는 그 간절한 바람이 전해졌다.

 

 

 

 

동정심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체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타자화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연민하지만 그 아픔에 개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동정심은 나와 고통을 느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반면,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느낌으로써 비로소 그 고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덜어낼 수 있다. 진심 어린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준다. 심리 치료에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요 인이 바로 치료자의 공감 능력이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나종호, 아몬드), p. 119

 

 

동정심과 공감에 대한 설명이 깊게 남는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고 할 때에도 실은 동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같은 것을 경험했어도 공감하지 못하고 동정만이 남을 때도 있다. 오히려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이 가능하기도 하다. 꼭 상담을 전문으로 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이 공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다는 것은 마음 깊이 새김직하다.

 

 

 

숨을 참았다가 산소를 다시 얻었을 때 누구도 산소에 '취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하게 힘들던 시간을 벗어나 겨우 '정상에 가깝게 돌아갔다'고 느낄 것이다. 물질에 중독된 환자도 '뽕에 취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약물에 중독된 뇌와 몸은 약물이 없으면 지독한 고통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중독환자는 흔한 편견과는 달리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 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나종호, 아몬드), p. 163

 

 

우울이나 자살에 대해 의지박약이라고, 이겨내라고 윽박지르는 것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폭력이 존재하는 데, 바로 중독 문제다. 중독 문제를 두고 의지의 문제나 도덕성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중독만큼 뇌 기전이 잘 밝혀진 정신질환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자살 유가족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죽음들과 달리, 자살만은 '죽음'이 망자의 '삶'을 압도해버린다고. 가령 누군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뿐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떠올리며 삶 전반을 기린다. 아마 대부분의 죽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유독 자살로 사망할 경우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는 죽음에 초점을 맞 춘다.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슬픔만으로도 벅찬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나종호, 아몬드), p. 173

 

 

저자는 자살이라는 표현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한다. 자살을 자살이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것이 유일한 탈출구였을 그들에게, 자살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순전히 관찰자적 입장에서 붙이는 표현이다.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수없이 많고, 삶과 죽음 중에 죽음을 택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살을 시도한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저자는 단순히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겪었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독자들에게 자신의 겪었던 경험과 감정, 이야기들도 공유한다. 의사로써의 사명감이나 전문성이라는 가운으로 자신의 내면을 감주치 않는다. 의사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부족했던 순간이나 상처받았던 순간들, 예기치 않게 위로를 받거나 치유가 되었던 순간들, 부끄러웠던 순간들도 편안하게 드러내놓을 줄 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사람 도서관에서 나종호라는 사람을 대여해 마주앉아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든다. 모처럼 따뜻한 심리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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