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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없는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 수필 2008-10-0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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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저
황금나침반 | 200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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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없는 빛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을이 다가 오는 탓인가. 뜻 모를 쓸쓸함 바람이 흉곽을 드나드는 요즘이다. 외로움과 고독의 경계는 모르겠으나, 제법 고독을 즐기는 나로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데, 작은 바람에도 흐트러진다. 몇 번의 옷깃을 바로 잡아보아도 또 흐트러지는 나를 보면서,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는 문장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 한 문장이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들게 한 이유다. 그리고 처음보다 더 깊이, 더 오래 곱씹으며 읽는다.


“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 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p.74)


작년 말 소설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그녀의 삶과 상처에 대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일까? 문장 하나하나가 촉촉하다. 그녀의 아프고 외로웠던 지난날의 상흔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는 상처의 고통을 부여잡고 주저앉지만은 않는다. 정직하게 써내려가는 고백적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치유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글을 읽는 ‘상처받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그게 바로 작가의 힘이요, 감동의 효과이다.


“ 이제 아이들의 엄마로서, 사회의 중년으로서 내 아이들뻘되는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어떻게든 살아 있으면 감정은 마치 절망처럼 우리를 속이던 시간들을 다시 걷어가고, 기어이 그러고야 만다고. 그러면 다시 눈부신 햇살이 비치기도 한다고, 그 후 다시 먹구름이 끼고, 소낙비 난데없이 쏟아지고 그러고는 결국 또 해 비친다고. 그러니 부디 소중한 생을, 이 우주를 다 준대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지금 이 시간을, 그 시간의 주인인 그대를 제발 죽이지는 말아달라고.” (p.204)


어느 시인은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라고 했고, 또 누구는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홀로움과 고독에 마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밑바닥 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은 안다. ‘언젠가 탁-’치고 오를 때가 있다는 것을. 바닥을 발돋움하여 차고 오를 때,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을 알기 때문’에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어둠 없이는 빛이 없는 것처럼, 고통과 상처를 겪었기에 행복이 더 값질지 모르겠다.


감히 말하고 싶다. 이 한권의 책이 우리에게 의미가 되는 까닭은 그녀의 애잔한 삶의 스토리 때문도,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과 문학성 때문도 아니다. 그녀의 지난 삶의 아픔과 상처에 대한 솔직한 고백에 대한 용기 때문도 아니다. 직접적인 깨달음이나 교훈을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내면의 자아와 만나고, 고독과 마주하게 한다. 때론 인식하지 못했던 아픔과 혹은 인식했지만 억눌러야했던 아픔들을 수면위로 끄집어낸다. 많이 아프고 외롭고 쓸쓸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겪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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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과 함께 읽는 시 | 2008-08-19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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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편
창비 | 200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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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과 함께 읽는 시

 


손에 알맞게 감기는 하드커버에 예쁜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예쁘게 박혀있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정말이지 참 좋다. 지루하게 내리는 때 아닌 장맛비에 온종일 흐렸던 하루. 예쁜 시집 한권을 손에 들고 습기 가득한 날씨 따라 물먹은 마음을 달랜다. 내 마음에 햇살이 반짝한다.


내게도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을 부르기에는 어색했고, ‘자기’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웠다. 오빠라고 하기에는 어정쩡했고,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그렇게 호칭을 놓고 망설이던 때에, 나도 모르게 불쑥 나온 말이 ‘당신’이었다. ‘당신은, 당신도, 당신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당신’은 단순한 2인칭 대명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 말이 되었다. ‘당신’이라는 단어를 예쁘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입에 붙은 ‘당신’이란 말은 때에 따라 새로운 의미의 옷을 갈아입기는 하나, 요즘도 내가 즐겨 쓰는 단어다. 친구, 선후배 등의 내 주변지인들은 가끔 듣는다. “당신도 안녕해요?”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려 진설 음식도 없이 맨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

 

사실 엮은 시집을 그리 즐겨하지는 않는다. 시인이나 평론가의 안목으로 뽑아서 엮어 놓았으니 버릴 것 없이 가득 찬 값진 시집은 되었지만, 가끔은 고추장 빠진 비빔밥을 먹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각각 하나의 시가 독립된 예술성과 의미로 존재하기는 하나, 보이지 않는 시인의 감정 고리들이 낱낱의 시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완성된 시집을 내어 놓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외따로 떨어진 시들에서 허기를 느끼는 모양이다. 어찌됐건, 시는 눈부시지만...;


안도현 시인이 차려준 밥상을 맛있게 받아먹은 후, 친절한 작품 출전 덕분에 한 시간쯤 서재 책장 앞에 서서 벌을 섰다. 처음에는 눈에 띄는 몇몇 시인들의 시집만 살펴볼 요량이었는데,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책장 앞에서 서서 보냈다. 마음에 드는 시가 있는 시집 하단을 접어놓는 것은 시집을 보는 내 오랜 습관이다. 안도현 시인과 내 마음의 일치도를 테스트(?)해보고자, 작품 출전에 수록된 시집을 꺼내 내가 접어놓은 시 중에 안도현 시인이 엮은 시집에 수록된 시가 있는지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아쉽게도(?) 별로 일치 하지 않았다는 것. 사람마다 시를 대하는 마음이 다르고, 생각과 경험이 다르므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오늘의 결과는 내가 엮은 시집을 즐겨하지 않는 것에 또 다른 힘을 실어 주었지만, 타인의 시선과 안목을 곁눈질 하며 ‘함께 시를 읽었다’는 생각에 그리 허망한 시간은 아니었던 듯싶다. 아니,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2월의 덕소 근처에게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어름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감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 홍신선, 사람이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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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풍경을 포착하고, 특유의 존재를 부여하기까지... 놀라운 인식의 과정. | 2008-07-2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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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이윤학 저
문학과지성사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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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풍경을 포착하고, 특유의 존재를 부여하기까지... 놀라운 인식의 과정.

 


인식의 대상과 그 본질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한 물음은 새삼스럽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본질과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은 철학의 역사와 함께해왔으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를 주류하는 사상은 있어도,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는 것처럼’


주체는 인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일까?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주체는 자율성을 지닌 실체로써 존재해왔으나, 오늘날 주체는 사유의 발생으로 인하여 존재하는 인식의 대상으로 생각되어 진다. 즉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사유 행위로 말미암아 존재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 혹은 시의 주체 또한 행위하는 작가에 의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너무 돌아서 온 감이 없지 않으나,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라는 시집 제목의 의도를 이야기하기 위해 뜬구름 좀 잡아 보았다.


이윤학의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에는 객관적 상관물이 많이 등장한다. 시인은 주로 감정을 직접 이야기 하지 않고, 특정 사물을 묘사하거나 하나의 풍경으로 포착하여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즉 인식의 주체인 시인에 의해 특정 풍경이 포착되고, 시인 특유의 방법으로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낮아지는 수면,

연못 근방 벤치에서 바삭거리는 잠자리 날개를 집어 들었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자세로

한참 동안 절하던 잠자리였지. 그동안

나는 나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

그걸 잊고 살았지. 잠자리 날개가 움찔할 때마다

내 몸으로 떨림이 증폭되어 퍼졌지.

이제는 오지 않아도 될 애인을 기다렸지.

오래전에 요절한 추억을 기다렸지. 먼지들이

더러운 물에 끌려가는 여름 한낮, 그늘이었지.

                                       - 먼지는 왜 물에 끌리는가 (p.29)-


이 시의 사유는 바삭거리는 잠자리 날개를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파닥거리는 잠자리의 행위가 손끝의 떨림을 가져오고, 그 떨림은 주체의 떨림으로 증폭되어 생의 감각을 깨운다. 그리고 ‘오지 않아도 될’ ‘오래전에 요절한 추억’에 대한 성찰은 ‘나는 나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깨달음으로 발전하면서, 진정한 주체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날개를 파닥거리는 잠자리의 작은 몸짓에서 비롯된 작은 떨림의 파장이 이리도 클 줄이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시인의 예민한 시선과 그것에 존재를 부여하는 시인의 인식 방법이 놀랍기만 하다.


오른손 검지 손톱 밑 살점이 조금 뜯겼다.


손톱깍이가 살점을 물어뜯은 자리

분홍 피가 스며들었다.


처음엔 찔끔하고

조금 있으니 뜨끔거렸다.


한참 동안,

욱신거렸다.


누군가 뒤늦게 떠난 모양이었다.


벌써 떠난 줄 알았던 누군가

뜯긴 살점을 통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아주 작은 위성 안테나가 생긴 모양이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p.30) -


손톱을 깎다가 살점을 뜯겨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경험이다. 그냥 눈 한번 찔끔 감게하는 작은 사건으로 지나갈 법하다. 그러나 이런 일상의 소소한 사건 또한 시인에게는 생의 감각을 깨우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또 한번 시인의 예민한 시선과 인식의 방법에 감탄하게 된다.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한참이나 욱신거리는 것처럼, 금방 끝이 날줄 알았던 삶의 오래된 시린 기억들이 있다. 정말이지 위성 안테나라도 달린 것처럼,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연결되어서 그 기억의 순간에 다시금 나를 놓이게 한다. 특히 시가 그렇다. 내 추억의 위성 안테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곤 한다. 구체적 실체로써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나, 유한한 인식의 대상으로써 언제나 있음으로서 때론 찔끔하게, 뜨끔하게, 나를 깨운다.


대상을 인식하는 이윤학 시인의 예민하고 독특한 시선에 덕분에, 오랜만에 생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나는 나일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라는 한 구절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즐거움’을 끄집어내었다. 바쁘다는 핑계와 삶에 치여서 방치되었던 것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오랜만에 독서일기를 끄적거리게 하는 것이다. 고요한 새벽 빗소리가 적막을 깨우고, 굳어있었던 감정들이 녹아 찰랑거린다. 지금 내 위성 안테나에서 나온 전파가 새벽거리를 헤집고 다니고 있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나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는 너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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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열매보다 아름다운 고목의 향기 | 2008-05-0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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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낙타

신경림 저
창비 | 200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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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열매보다 아름다운 고목의 향기.

 

‘산다는 것은 그렇게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 했던 <갈대>는 사춘기 시절의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누군가에게 <가난한 사랑 노래>를 들려주며, 어설프게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가 쥐어 준 사나운 <뿔>을 가지고, 열정만으로 못할게 없었던 20대 초반을 보낸 기억도 있다. 모두 새롭게 추억이라는 옷을 만들어 입은 옛날이야기다. 어설프게나마 시를 알고, 그렇게 시와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시의 자리 한켠에는 늘 “신경림”시인이 있었다. 그리고 많은 감정과 싸우며 가슴앓이를 하는 청춘의 가운데서『낙타』를 만났다.     


낙타를 나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채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는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낙타 (p.10) -


신경림의 「낙타」는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한 시인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다. 고희를 넘긴 시인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세상에서는 더 이상 욕망과 갈등, 절망과 분노 등의 감정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모든 감정과 화해되고, 통찰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성숙된 모습이 숙연하기까지 하다.


시집 전체에서 느껴지는 달관과 깨달음이 인생의 황혼녘에 접어든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마치 죽음을 예견하듯 생의 끝에서 지난날을 반추하고, 삶을 하나씩 정리하려는 듯하다. 그렇게 시와 함께 걸어온 고단한 그의 삶이 타박타박 사막을 걷는 낙타의 모습으로 연상된다.



그 많던 꿈이 다 상처가 되었을 게다

여름 겨울 없이 가지를 흔들던 세찬 바람도

밤이면 찾아와 온몸을 간질이던 자디잔 별들도

세월이 가면서 다 상처로 남았을 게다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통이

꽃보다도 또 열매보다도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 인데


내 몸의 상처들은

왜 이렇게 흉하고 추하기만 할까

잠시도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게 하던

감미로운 눈밭이며

밤새 함께 새소리에 젖어 강가를 돌던

애달픈 달빛도 있었고 찬란한 꿈 또한 있었건만

내게도


                                  - 고목을 보며 (p.13) -



몇 번의 계절을 돌고 돌아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를 상상해 본다. 어떤 것은 잃어버리고, 또 어떤 것은 얻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상처들이 겹겹이 쌓여 나를 이룰 때, ‘늙음’이란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 그때를 생각한다. 떠오르는 해보다, 찬란하게 빛난 후 지는 해의 아름다움. 그 인생의 황혼녘에서 ‘꽃보다 열매보다 아름다운 고목’의 향기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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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멀리 떠나가도 변한게 없을까. 인생이란.” | 소설 2008-04-2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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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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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멀리 떠나가도 변한게 없을까. 인생이란.”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죽음과 탄생에 대한 심오한 작용에 대해 나는 잘 모르지만, 표면적으로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의지에서 벗어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전생에 따라 현세의 탄생이 결정된다고도 하고, 자살이란 것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탄생과 죽음의 자연스런 흐름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죽음이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다는데 반기를 든다. 액자형 구성의 겉 이야기는 작중화자인 자살안내원의 이야기이며, 속 이야기는 그의 고객인 미미와 유디트라는 두 여자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소설로 기록한 글이다. 소설은 주체의 의지에 의한 죽음인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말하듯,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죽음을 선택하는 자살은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가 되는 것이다.


자살안내원이자 작중화자의 두 고객 ‘미미’와 ‘유디트’는 너저분한 삶 대신에 의지에 의한 숭고한 죽음을 택한다. 방향성 없는 삶, 그래서 꿈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 혹은 꿈을 가졌지만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고 인생의 좌표를 잃어버린 존재들. ‘미미’와 ‘유디트’는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이자, 그녀들의 아픔은 살수도 죽을 수도 없이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또한 그녀들을 자발적인 죽음으로 내모는 C와 K는 또 다른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고유명사가 부여되지 않은 익명의 C와 K는 우리의 단절된 인간관계를 느끼게 한다. 문득, 두 인물의 자기중심적이고 냉정한 소시민적 모습에서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을 떠오르기도 했다.


얼마 전 자리에서 내몰리고, 돌아갈 곳도 받아줄 곳도 없어 방황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야말로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는 문득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삶의 방향성을 잃고, 주체성마저 상실한 인간이 극한에 몰리면, 삶의 너머에 있는 ‘죽음’을 떠올리게 되는가 보다.


나른한 주말 오후, 창 너머로 하늘은 눈부시고, 서재를 촉촉이 적시는 햇살을 받으며 소설을 읽다가 문득, 내면의 자아에게 말을 건네 본다. 너는 잘 있느냐고, 혹시 무언가 잃지는 않았냐고. 그렇게 나는 나를 살아가게 할 권리를 찾는다. 그리고 이 땅에 생명체로써 존재를 부여받은 의무를 지켜야겠다. 누군가의 말처럼, “명랑하게 죽기 위해 나는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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