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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0~2013.01.07 메가쇼킹의 따꼼한 제주 정착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쫄깃> 연재 블로그_매주 화.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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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김작가, 쫄패와 수다를 떨다 | [연재]더도말고 덜도말고 쫄깃 2013-01-1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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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패라는 이름의 밴드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쫄패와 수다를 떨다-

 

 

2010년까지, 제주는 나에게 전혀 가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

용케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 단체로 갈 일이 없었다. 관광지는 원채 질색이었다.

그 돈이면 동남아가 더 싸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적잖이 외국을 나갔음에도, 그래서 제주를 가본 적이 없었다.

그저 관광의 섬일 뿐, 여행의 섬은 아니었다.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적어도 메가쑈킹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리는 2010년 여름 어느 날 처음 만났다.

그의 만화는 알고 있었으되 딱히 즐겨보지는 않았으니 팬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역시 나의 활동 분야는 잘 몰랐다. 그러니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 셈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매일 술을 마셨다. 석 달을 내리 새벽까지 마셨다.

지금은 없어진, 홍대앞 커피 중심에서 그는 ‘쫄깃 티셔츠’ 를 팔았다.

 밤이 되면 친구들을 하나 둘씩 불러 모아 새벽까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다니며 술을 마셨다. 적어도 열 명, 많으면 스무 명 이상의 친구들이 그의 부름을 받고 술자리에 합류했다.

그 자리가 뜸해진 건, 메가쑈킹과 브루스가 제주도로 내려간 이후였다. 날이 쌀쌀해질 무렵이다. 2011년 초, 술친구들이 보고 훌쩍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30여 년간 쌓여온 제주에 대한 선입견이 깨진 것은 며칠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제주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인 추운 겨울임에도 제주는 삶을 스쳐 갔던 어떤 곳과도 달랐다.

가장 좋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저,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생각나는 곳이었다고 해두겠다.
그때 나는 한겨레 목요일 섹션인 ESC의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 지면에 제주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고, 제주가 좋아 육지를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이템을 냈다. 아직 제주 이민이 세상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객원기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출장 허가가 났고, 다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박준석, 이윤석, 오민기, 이효준, 윤영현을 만난 건 거기서였다.

 생판 처음 보는 남자들이 생판 관련 없는 사람이 만드는 집을 돈 한 푼 받지 않고 짓는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 그들과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 이윤석이 했던 말이 아직도 또렷하다.

“돈 받고 하는 거였으면 안 했죠.” 그 뒤로도 계속 제주를 찾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일주일 꼴로. 쫄깃쎈타가 지어지는 과정을 띄엄띄엄 지켜봤다.

쫄패들이 머물던 모슬포 숙소에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놀러도 다녔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이 달랐다. 자연과 함께 살았던 옛 조상들이 만들어냈던 자연에 관한

 표현들은 제주에서 비로소 그 참된 의미를 내게 던져주곤 했다. 그리고 쫄쎈이 완공됐다.
벌이가 아닌, 삶을 위한 집을 짓는 수컷의 웅대함 같은 것을 느꼈다.

친구들이 지은 집,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집. 쫄쎈은 지난 1년 나에게 그런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혹은 그 주변에서 무리를 이루고 제주의 삶을 시작한 쫄패는 또한 의사議事가족이었다. 그러니까, 나고 자랐기에 가족이 아닌 영화 <가족의 탄생> 같은 그런 가족 말이다.

음악평론가로서 나는 그런 형태의 집단을 밴드라 부른다.

가족도, 친구도, 회사 동료도 아닌 그 무엇. 그렇다. 나에게 쫄패는 밴드였다.

혈연과 이익으로만 재단할 수 없는 패거리.

쫄쎈 완공 후 1년,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쫄패를 만났을 때 함께 했던 이효준은 다시 서울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메가쑈킹의 동생인 고원헌은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대담을 빙자한 수다를 떨던 날, 그들이 없었음을 양해 바란다.

 

               김작가            

김작가(이하 김)│쫄깃쎈타가 1주년을 맞았잖아. 소감들이 어때?

메가쑈킹(이하 메)│쫄깃쎈타를 만들며 구상했던모습은 이런 거였어. 다양한 사람들과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얘기도 많이 하고. 게다가 협재바다가에 있으니 여름이면 수많은 매혹녀들과

수영도 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내가 머릿 속에 생각했던 환상적 모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신기한 게 엔진을 걸어놓으니 잘 굴러왔잖아. 그게 신기해.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가 재밌었지.

 

브루스

브루스(이하 브)│쫄패, 손님들과 1년 동안 지내면서 안정이 됐다고 할까요. 서울 생활을 접고
오면서 기대와 우려가 같이 있었는데, 안정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제주도를 잘 내려왔어요.
김│장가도 가게 됐고.(웃음)
메│두고 봐야지.(웃음)

 박준석

박준석(이하 준)│원래 계획대로였으면 완공 후에는 민기나 하마처럼 내 일을 하고 있었을텐데

중간에 마음을 바꿔 쫄쎈을 같이 운영하게 됐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혼자 직장생활을 했다면 이렇게 여행하는 기분으로 1년 동안 살 수 있었을까? 아닐 것 같아요.
생활인이 되어 서울에서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살았을 거예요.

 

오민기

김│민기는 왜 다시 내려온 거야?

오민기(이하 민)│완공한 후 서울로 올라가서는 제주에서 뭘 해봐야겠다,라는 생각보다

서울 생활을 충실히 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서울에서 일을 해보니 재미있지도
않고 제주에서 지낸 생활이 생각났어요. 형들하고 같이 지냈던 일들, 이야기들.

그래서 제주에 다시 내려오고 싶었어요. 하마형이랑 집이나 건축처럼,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내려오게 됐죠. 쫄쎈이 1주년이 됐다고 해서 마음에 변화가 있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형들하고 같이 계속 재미있게 잘 지내고 싶어요.

 

윤영현(하마)

│하마는 원래 정착할 생각은 아니지 않았어?
윤영현(이하 하)│내 심경은 항상 같았어요. 서울에 있을 때는 캐나다 다시 가고 싶은 마음뿐
이었거든. 그런데 원헌이 통해 이곳에 내려와서 보니까 이런 곳이 다 있구나 싶더라고.

 서울이랑은 너무 다르니까. 쫄쎈 공사 끝나고 다시 육지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고민
하다가 큰 결정을 한 거지. 그 결정의 배경이 된 게 여기 식구나 다름없는 쫄패들이에요.

 뭘 해도 걱정이 안 돼요. 사회에서 다 능력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의견들을 모아 나아가
고 싶어요. 난 했던 일이 건축이고, 다른 친구들도 각자 잘할 수 있는 게 있으니 그런 걸 토
대로 우리 모두가 여기서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한테는 그게 편안하고 릴렉스한

삶이에요. 문화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메가형이 하고 싶은 걸 구현할 수 있는 공간도 그렇고.
메│나도 솔직히 문화가 뭔지 몰라. 우리가 하루하루 생활하고 부딪히는 게 문화지.
민│집을 짓는다는 게 혼자 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든 일인데 쫄쎈 지을 때 다같이 뭔가를 하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형들과 함께라면 같이 할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주에서 더 많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놀이터 같은 공간. 음악이나 자전거,

 커피, 사진 등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다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공간. 생활할 수 있는 수익이 있었으면 하는 공간. 그런 공간이요. 반면 자꾸 제주 생활에 익숙해져 게으른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해요.

김│남자들이 모여 살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잖아. 군대가 계급사회인 게 그런 문제를 막기 위한 것도 어느 정도 있을 테고. 솔직히 쫄패들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지 않아?

메│모슬포에 숙소가 있었을 때 4달 정도 살았었지. 신기했던 게 한 번도 안 싸웠다는 거야.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는 배에 올라타서 노를 젓고 있었다면, 지금은

크루즈를 타고 있는 것 같아. 향후 발전 해나가는 데 있어서 좋은 현상일 수도 있지만 배에 노를

 젓는 기분 좋은 뻐근함은 희석된 게 사실이지.
윤│모슬포에서는 이야기가 안 통할 수가 없었죠. 지금은 생활 영역이 확장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예전과 같지는 않아요. 그러다 보니 오해도 있고 상처도 받았던 것 같아요.
메│모슬포에 있을 때보다 여기서가 오히려 더……(웃음)
준│그때는 자기 생활이나 생각은 접고 있었고 완공이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생겨도 서로 양보하고 극복할 수 있었죠. 지금은 8명 중 반은 운영에 관여하고 반은 쫄패로서 쫄쎈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죠. 물리적인 거리도 떨어져 있고. 전에는 본인의 것을 죽였다면 지금은 본인의 것이 커지고 있다보니 문제가 몇 번 있지 않았을까 해요. 쫄쎈 완공이 아니라 제주 생활로 목표가 바뀌어서 그렇겠죠.

 

메가쑈킹

김│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누구야?
메│(주저 없이) 생머리에 빨간 비키니 입고 게스트하우스 안을 활보하고 다닌 게스트가 있었어. 꿈이 잠시 이뤄지는 기분이었지. 동네 어르신들이 뭐라고 하긴 했지만…….
브│한 명을 꼽긴 그렇고 단골손님들이 있어서 그들이 아무래도 기억에 남아요. 한 번 오면

계절마다 오시는 손님들이 있는데 따로 연락도 하고 그래요.
메│단골손님 고맙지. 그리고 우리 방명록 있잖아. 그거 게스트 분이 만들어주시는 거야.
핸드메이드 북을 취미로 만드는 분인데 뭔가 쫄쎈에 해주고 싶어서 자신이 잘하는 걸 해주시는

분이지. 이런 분들이 고마워. 답답한 사람이라면 아직도 게스트하우스를 펜션으로 여기는 경우?
준│은진이가 제일 기억에 남아. 이제 열한 살이 된 꼬만데 엄마랑 같이 왔었거든. 은진이
한 명으로 쫄쎈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 발레 배운다고 발레도 추고 원더걸스 춤춰봐, 하면
바로 추고……. 은진이가 쫄깃쎈타에 가족이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어.

 

브│안 좋은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게스트도 있죠. 겨울에 난방이 잘 안 된다고 불평을 늘어놓고 환불을 바라더라고요. 계속 스태프 귀찮게 하다가 체크인 시간에 들어가자마자 춥다고 하는 거예요. 청소 시간에는 추우니까 좀 기다리라고 했는데, 나가겠다고 하면서 환불을 요구했죠.

준│작정하고 온 사람들이었어. 자기들이 원하는 숙소가 아니니 꼬투리를 계속 잡은 것 같아.
메│그럴 때 내가 거기 없던 게 다행이야. 나는 분명히 욱! 했을 거야.
브│또 있어요. 저녁 늦게 체크인해놓고 자기 침대 앞에 콘센트가 없다고 꼬투리를 잡는 거예요. 그걸 시작으로 샤워 끝낸 후에야 차를 빼고, 방안에 먹을 것 가지고 들어가고…….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마음에 안 든 거겠죠. 그런 경우는 누가 상대건 어쩔 수 없는 거죠.

준│게스트하우스가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한다는 걸 인식하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보통 그래요. 우리 손님 중에 40%가 게스트하우스가 처음인 사람이거든요.
메│쫄쎈이 게스트하우스 체험장이라는 얘기도 들었어. 원래 생각한 궁극의 콘셉트는

무인 게스트하우스였거든. 쫄패들이 쫄쎈을 운영하면서 최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았으면

했던지라……. 그만큼 지금보다 더 자유스럽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우리가 원래 11시 소등이잖아. 지금은 어느 정도 쫄쎈 문화가 잡혔으니 이게 좀 더 견고하게

잡히면 11시 이후에 자유롭게 놀면서도 자제할 수 있는 분위기가생겼으면 해.

 

김│재미없는 얘기하지 말고! 여기서 커플도 생기지 않았어?
메│처음 온 사람들끼리 키스하는 것도 봤다니까.

2층 계단 올라가는 데서. 엄마랑 같이 온 딸이랑 남자 손님이랑. 하악.
윤│게스트들과 여기서 탄생한 커플 얘기를한 적이 있는데 어떤 여자 게스트가 그 친구를 아는

거예요. 알고 보니 둘이 소개팅한 사이였어요.
준│어떤 장기투숙 남자랑 여자 게스트랑 동
갑이었는데 육지 가서 모임을 갖다가 눈 맞은 경우도 있죠.
브│내가 잘 어울리니까 사귀라고 한 게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윤석

 김│제주에 내려와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쫄패가 그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준│우리는 이민자 중에서도 특이 케이스죠. 다른 이민자들처럼 마을에 흡수되려 하지도
않고 독불장군처럼 살려 하지도 않고. 하지만 우리를 롤모델로 삼기에는 여러 제약이 있을
거예요. 8명이 집짓는 4개월 동안 분쟁 한 번 없이 잘 지냈고, 그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거잖아요. 우리 같은 케이스가 또 나오면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죠. 서로 모르던 사람끼리

사는 건데 못된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못된 사람이 착해지는 건 아니니까 쉽게 우리처럼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면 안 되겠죠.

메│쫄패들 말고도 제주도에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패밀리를 이루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어. 홍대에서 친구들과 놀 때부터 제주도에서 이 친구들과 함께
한뜻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물론 친환경 공동체, 이런 것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농사를 짓거나 쓰레기를 줍거나 재생 에너지를 이용하거나…….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조화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아. 못된 사람, 착한 사람, 게임 좋아하는 사람, 텃밭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모여서 조화를 이루며 살면 좋겠어. 한뜻만 향해 달려가는 공동체라면 종교단체가 될 수도 있잖아. 예를 들어 윤석이가 결혼해서 부인이 임신하면 우리가 애 받아주고,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아. 도시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잖아.

 김│그런 거시적인 목표가 있다면, 조금은 미시적인 생각도 있어야겠네.

지금으로부터 또 1년이 지났을 때 쫄쎈은 어떤 모습일까.
윤│제일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거예요. 뭘 하든 첫째 기준이죠.

준│쫄쎈이 여길 찾는 손님들에게 ‘제주도의우리집’ 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공감대가 퍼져서

손님들한테 일일이 얘기 안 해도 11시 되면 알아서 불 끄고 술 마시고…….

쫄쎈을 다시 찾는 분들 중에서는 쫄패와의 관계가 형성되어 오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안타까운 게 여자 스태프 중 다시 오는 경우가 별로없어요. 여자 패밀리가 안 되고 스태프로만 끝나는 거죠. 오래 살면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끝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죠.
윤│내 생각은 다른 게, 다 좋은 기억을 갖고 있어요. 일했을 당시에 불만은 어떻게든 생기죠.

 사람이 하는 일이고 맺는 관곈데. 비록 내가 스태프들과 준석이형만큼 유대 관계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태프들도 지나고 나면 좋은 기억을 갖고 갈 거예요.

메│사람도 물 흐르는 거랑 똑같다는 생각이야. 나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많이 없애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쫄패들도 만약 다른 걸 도모하고 싶어서 떠나면 아쉽지 않을거야. 자기 행복을 좇아가는 거니까. 물욕, 여러 가지 욕심이 있지만 사람 욕심이 제일 위험해.

사람 욕심의 극한에 이른 게 종교단체잖아. 그리고 차차 시스템이 보완되고 있잖아.
난 그것도 재미있어. 나의 모토가 뭐냐 하면 꿈이나 계획을 가지고 사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재밌게 사는 거야. 이혼을 겪고 방황하던 때, 매일 홍팸끼리 모여서 술 먹고 그랬잖아.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알아가면서도 거창한 계획 같은 걸 하고 싶지는 않았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쫄쎈을 지으면서도 이게 못 지어지든, 망하든 상관없었어. 내 돈을
투자하고, 모르는 친구들이 모여서 쫄패를 이루고, 그렇게 하루하루 재밌게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했거든. 물론 이런 말을 하면 브루스랑 원헌이는 뭔 소리냐고 하지만 그 말은 곧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어느 날 포구에서 술 먹다가 문득 재즈 음악회나 하면 좋겠다 싶으면

또 그거에 맞게 가는 거고. 하나 말해두고 싶은 건, 누구에게 원대한 꿈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야. 천천히 함께 놀면서 사는 것, 그 과정을 즐기고 싶어.

 

 

 -The End-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콘텐츠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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