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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 제왕의 첩(2012년) 왕의 미망인과 대비의 대결 | 한국영화 2012-06-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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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 : 제왕의 첩

2012년 한국영화

감독 : 김대승

제작 : 황기성 사단

음악 : 조영욱

출연 : 조여정, 김동욱, 김민준, 박지영, 이경영

         박철민, 조은지, 정찬, 오지혜

 

 
개봉전부터 조여정이 얼마나 벗느냐를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시켜서 화제가 되었던 '후궁
제왕의 첩'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꽤 오락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진 궁중 사극입니다.

네이버 평점과 전문가(이 사람들 정말 전문가 맞아요?) 평점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저평가'된 부분이 많습니다.  약간 유치한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는
꽤 짜임새 있고 빠르고 탄탄한 시나리오를 갖춘 완성도 있는 오락물입니다.  오락적인
충실도를 철저히 지킨 영화로 꽤 심상치 않은 흥행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일찌감치
찾아온 블록버스터 시즌의 한국영화 1번타자였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뒤를 이어서
파상공세가 이어질 '외화'에 대적할 수 있는 후속작 2번타자 역할을 해낼 잠재력을 갖춘
영화입니다.

 

 

 

★ ★  더 이상 물러설 상황이 없다

이미 벌어진 운명과 싸우는 것 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겨야 한다.
쓸 카드는 별로 많지 않다.  딱 세가지에 올인해서 생존하는 것 뿐

1. 경거망동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수모를 견디면서 꾹 참고 견뎌라
   그러면서 조기 숙청당하지 않도록 처신하며 기회를 엿본다
2. 가장 믿을 수 있는 오직 한 명을 적시에 활용한다.
3. 칼을 빼 들 타이밍을 잘 맞춘다.  그 타이밍을 얻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것을 버린다.

 

병약한 왕(정찬)의 '후궁'으로 부름을 받아서 사랑하는 남자 권유(김민준)와 가슴아픈
생이별을 하고 중전의 자리에 오른 화연(조여정),  그러나 왕의 계모인 대비(박지영)의
간계로 왕은 독살당하고 왕의 이복동생이자 대비의 친아들인 성원대군(김동욱)이 왕위에
오르게 되고 허수아비 아들을 왕으로 즉위시킨 뒤 강력한 '섭정정치'로 권력을 손에 쥔
대비로 인하여 궁궐은 숙청과 피바람이 불고 화연의 아버지까지 숙청당합니다.  중전에서
졸지에 '선왕'의 미망인이 되어 별당으로 물러나게 된 화연,  언제 대비의 흉계로 목숨을
잃게 될지 모르는 상황.  모든 권력을 쥔 대비와 5살된 아들을 데리고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 궁궐에서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는 화연의 피할 수 없는 '생존게임'이 벌어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즉위한 왕은 형수인 화연에게 연정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왕을 이용하기도 어려운 상황,  권력을 쥔 대비는 왕의 어머니이고 왕은 허수아비 권력.
'엄마와 왕'을 이간질시켜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  그것도 왕이 제대로 권력을
쥐게 만들어 대비와 대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되어야 하는 상황.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는 연약한 여인 화연이 쓸 수 있는 카드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  이미 모든 권력은 내것.  언제든지 화연을 죽일 수 있다. 

       서두를 것 없다.

 이미 내가 이긴 게임.  다 가진 자와, 다 잃은 자의 게임에서 결과는 뻔할 뿐.
서서히 말려죽일지 씨앗을 조기에 제거할지 결정하는 것일 뿐.

 

왕의 계모로써 은밀한 간계를 써서 서서히 권력을 장악한 대비는 친아들인 성원대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기 위하여 왕의 음식에 장난을 쳐서 왕의 건강을 차츰 차츰 나빠지게
만들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후궁으로 들어온 화연이 달도 차기 전에 낳은
5살된 아들.  아직 왕위를 물려받기에는 '미세한 씨앗'에 불과한 상황.  아들인 성원대군을
무난히 즉위시킨 대비는 모든 권력을 움켜쥐고 '흥선대원군'을 능가하는 실세 섭정이 되어
궁안의 모든 것을 장악합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화연을 제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화연을 굳이 명분도 없이 일찍 제거할 필요가 없어 살려둡니다.
이미 화연의 아버지를 숙청한 상황.  별당에 갇힌 화연이 뭘 할 수 있을까요? 다만 허수아비
왕인 아들이 화연에게 연정을 품고 가끔 들락거리는 것이 문제지만,  그렇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적들을 모조리 숙청시키고 절대권력을 누리는 대비가 화연을 없애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후궁 : 제왕의 첩'은 사실 제목이 좀 잘못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제목만 보면 왕의 첩노릇을
하는 후궁이 왕을 유혹하여 왕의 내연의 첩으로 궁중의 권력을 장악하는 듯한 이야기로
예상할 수 있지만 조여정이 맡은 화연은 일단 왕의 첩이 아닙니다.  그리고 왕은 '제왕'이라는
호칭을 듣기가 민망한 '허수아비'왕이죠.  이 영화는 후궁이었다가 왕이 죽게 되고 밀려난
화연과 절대권력을 가진 대비, 두 여자의 불꽃튀는 대결구도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그 두 여자의 숙명적 대결에서 대비의 아들 왕과 내시가 되어 궁에 들어온 화연의 옛 애인
권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의 역할이 화연과 대비의 대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언론에서 오로지 '조여정이 엄청나게 벗었다'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영화의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후궁 : 제왕의 첩은 꽤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갖춘 영화입니다.
2시간 분량의 영화에서 다루기가 방대한 이야기를 꽤 짜임새있게 압축하였고 빠르고 시원한
진행으로 꽉 채우고 있습니다. 

 

보통 여배우가 어느날 영화에서 파격적으로 노출을 감행했을 경우 하는 일관된 이야기가
'작품이 좋아서 벗었다.  벗는 것에 관점을 두지 말고 작품을 봐달라'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그 이야기가 맞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해피엔드'의 전도연 등 소수작품을 제외하고
여배우가 벗었다고 홍보된 영화는 대부분 노골적인 말초신경 자극을 위해서 불필요하게
벗는 영화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후궁 : 제왕의 첩은 우리나라 영화뿐만 아니라 해외의
성인영화들까지 포함하여 정말 보기 드물게 '꼭 벗어야 될 상황에서 벗은' 몇 개 안되는
영화입니다.

 

하도 언론에서 여주인공이 많이 벗은 야한영화로만 홍보하다보니 관객들은 기대했던(?)
초반부에서 조여정이 벗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영화가 끝나고 '정말 벗을 상황에서 벗은 영화'라고 복기할 때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초반에 조여정이 권유와 도망쳐서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과 궁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
장면은 여주인공 관점에서 꽤 '슬픈장면'입니다.  원치 않는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게 되면서 이별전의 하루밤을 보내는 장면이고,  궁에 들어와서
목욕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궁의 관습과 법도에 의해야 하는
장면이니까요.  목욕을 시작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벗은 몸'을 관객에게
자극시킨다면 장면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죠.  이런 점만 보아도 이 영화가 벗어야 할
부분과 아닌 부분을 나름 철저히 구분하였고,  진짜 벗어야 할 상황에서는 꽤 화끈하게
노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벗는 장면을 불필요하게 길게 끌지도 않습니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은데 벗고 뒹구는 장면을 지루하게 보여줄 이유도 없지요.  꼭 필요한
상황에서 확 벗고 또 다음 이야기 이어가고 그런 편집입니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이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었는가요?

 

미장센과 의상, 영화음악도 꽤 만족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음악의 수준이 꽤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가 최근에 종종 있는데 이 영화도 음악이 이끌어주는
영화의 흥미상승 부분이 꽤 괜찮습니다.  연출, 편집, 음악, 의상, 미장센이 제법 착착
맞아 들어갑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사실 기대한 것 만큼은 되는 것입니다.  줄거리가 뻔하고 식상하다고요?
오락적 극영화에서 만약 불필요하게 스토리가 '이탈'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죠.
이 영화는 애초부터 '큰틀'이 뻔하게 정해진 영화입니다.  대비와 후궁의 대결,  과연 누가
이길지는 뻔하죠.  이런 경우 영화의 묘미가 '누가 이길 것인가'가 핵심이 아니라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그런 면에서 꽤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조여정은 주인공이며 '약자'입니다.  계속 당하기만 하죠.  간간이 반격이라도 하면서
업치락 뒤치락 할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못합니다.  반면 대비는 철저한 강자이죠.  이런
구도가 꽤 오래 계속됩니다.  '여성성'을 이용해서 왕을 유혹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이런 영화에서 만약 처음부터 몸을 던져 왕을 유혹한다면 그게 바로 식상한
것이죠.  오히려 관객들이 먼저 '언제 왕을 유혹할거야? 유혹 하기나 하는 것인가'라고
기다려지는 상황입니다.  오죽하면 언론에서 지면이 닳도록 떠든 '조여정이 벗었다'라는
장면도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겨우 '왕의 환상' 장면에서 가슴노출 좀 조금
한 것 뿐이겠습니까?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을 치는 묘미를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입니다.  소리없이 주자를 모으고 철통같은 투수의 힘을 은밀히 빼내고
한 방에 역전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엄마와 아들'을 이간질해야 하는 운명.  하지만
그걸 어떻게? 써야할 조커를 꼭꼭 아끼다가 결정적일 때 쓰는, 잘못쓰면 죽도 밥도
안될 수 있는 상황에서 필살기로 던진 승부수.  생사의 여부는 이렇게 종이 한장 차이
입니다. 

 

왕으로 나온 김동욱과 대비로 나온 박지영의 캐릭터가 만족스러웠던 영화입니다.
과거 윤정희 주연, 신상옥 감독의 '내시'라는 한국 걸작고전에서 모티브와 설정을 일부
따오고 거기에 원초적 본능같은 오락에로틱 스릴러의 요소를 가미하고 필름 느와르
영화의 '팜므 파탈'의 묘미를 더해서 조리한 영화입니다.  오락영화라는 것이 어설프게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불필요한 반전'보다 관객의 기대를 따라가주는 '뻔한 전개'가
더 중요한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관객의 기대를 맞추더라도 '뜸'은 들일 필요가
있고,  그 역할을 잘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종반부는 분명 신상옥 감독의 '내시'를 의도적으로 참고한 것이 보입니다.
권유로 등장한 김민준의 설정도 '내시'에서 부분 가져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시의
스토리까지 가져오진 않았습니다.  새로운 궁증 암투 사극 이야기에 내시의 여러가지
설정을 적절히 입힌 영화입니다.  즉 내시라는 한국영화 고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한 활용을 하였습니다.

 

김동욱, 김민준과 박지영 외에 내시감의 이경영, 약방내시 박철민, 금옥역의 조은지 모두

적절한 캐스팅입니다.  김민준의 경우는 비중이 큰 역할이지만 아마 배우입장에서는 왕위에

오르는 '성원대군'이 더 탐났을 듯 합니다.  즉 김동욱이 가장 혜택을 본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여정은 어땠을까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조여정이 이 역할을 꿰찼다'
보통 노출이 많은 영화는 여배우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캐스팅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 역할을 오히려 노출을 감행하고라도 탐내는 여배우를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비에 비해서 화연은 '팜므파탈'같은 설정보다는 당하는 역할이므로 조여정
같은 순한 외모도 소화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단점은 조여정은 '비련의 여인'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개인적으로는 '송지효'나 수애'가 훨씬 더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수애는 화연의 슬프고 암담한 상황을 묘사하는데 크게 어울리는
배우 같고,  송지효는 이미 '쌍화점'에서 검증된 배우입니다.  조여정의 경우는 기존
방자전의 출연이 캐스팅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방자전이 아니었다면 어디
조여정에게 '관능적인 역할'이 필요한 이 역할을 제의했을까요? 그런 면에서 조여정이
'꿰찬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궁 제왕의 첩은 적절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일단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흥행세를
이어갈 후속 방화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관객이 많이 몰리는 블록버스터 시즌에 일찌감치
선방을 날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여름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 영화이죠. 그런 의미에서
19금인 이 영화가 방학시즌보다 6월에 개봉하는 것이 바람직했습니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100만에 육박하는 관객을 개봉 첫주에 끌어모았습니다.  2-3주는 더 안정적인 흥행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평점이 안좋아서 의심도 했었지만 '번지점프를 하다'나 '혈의 누'의
김대승 감독의 저력을 기대했는데 기대만큼 나온 영화입니다. 

 

ps1 : 김대승 감독이 이런 에로틱 사극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춘향뎐'과 '창'의
         조감독 역할을 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혈의 누'에서 이미
         시대극의 직접 연출도 맛봤고. 

 

ps2 : 대비역을 잘 연기한 박지영이 '여우조연상'하나 쯤은 어느 영화제든 수상하지
        않을까요? '하녀'에서 이정재의 장모로 등장했을 때 보여준 연기도 인상적이었는데.

 

ps3 : TV에서 볼 수 없게 된 이경영은 조연배우지만 '흥행작'에 꽤 자주 등장하네요.
        흥행작 고르는 안목이 있는 것일까요? '써니'에서는 많이 깨는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비중이 꽤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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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La Double Vie De Veronique 91년)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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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원제 :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폴란드 프랑스 합작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음악 : 즈비그뉴 프라이스너

출연 : 이렌느 야곱, 필립 볼터, 상드린느 뒤마

199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1991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연작 '십계'와 프랑스에서 만든 세가지 색
삼부작의 중간에 끼여있는 작품입니다.  여러가지로 시기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는 폴란드 영화학교 출신으로 일찌감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에 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가 영화를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난 80년대 후반입니다.  폴란드내에서만 알려졌던 그는 1988년 연작 10계 중에서의 한 편의
에피소드인 '살인하지 마라'의 극장판 버전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하여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이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감독의 시야가 '폴란드'에 머물지 않고 범 유럽으로
나아가고 '과거와 현실'이 아닌 '미래와 희망'에 대하여 나아가기 위한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 영화입니다.  즉 '폴란드에 대한 성찰'을 담아온 십계까지의 키에슬로브스키와
이후 '프랑스 세 가지 색 3부작'을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키에슬로브스키의 도약을
연결시켜주는 중대한 영화입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권의 예술감독인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이 처음 국내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나름 의미깊은 개봉이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빠르게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TV를 통해서 방영을 하긴 했지만 적잖은 노출이 나오는 이 영화가 온전히
방영되지는 않았고 2007년에 DVD로 출시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제 가치를 비로소 확인
시킬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노래하면서 환희에 젖는 베로니카

 

베로니카가 노래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한날 한시에 폴란드와 프랑스에게 각각 태어난, 마치 쌍동이 처럼 닮은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초반 25분 정도는 폴란드의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  이후의 내용은 프랑스의 베로니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이런 소재의
영화에 흔히 사용될만한 '교차편집'이 아예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마치 독립된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베로니카의 등장은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베로니카,  뭔가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느낀것처럼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아닌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고백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콩쿨대회 오디션을
보게 되어 합격한 베로니카,  우연히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에서 버스에 오르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베로니끄'를 보게 됩니다.  일종의 '도플갱어' 현상을 소재로 하는 장면
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 도플갱어 현상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자아를 보게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설처럼 베로니카 역시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작스레 쓰려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베로니카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가
이모를 만났을 때 '우리 집안은 사람들은 원래 건강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죽잖니.  네
외할머니도, 네 엄마도 그랬듯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암시가 됩니다.  오디션에서 합격을
하고 오는 길에 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베로니카, 그리고 등장한 '바바리맨'
(한국인들이 더 익숙한 바바리맨이죠.  여기서도 바바리맨은 베로니카 앞에서 갑자기
바바리를 확 풀어 헤칩니다.  다만 한국 바바리맨과 달리 속에 옷은 입고 있습니다.
바바리맨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이 짧게 다루어진 폴란드의 베로니카의 모습은 '환희'에서 '환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로니카가 교정에서 합창을 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는데 비가 떨어지고 모두가 비를
피하기 위해서 흩어지지만 베로니카만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비를 맞으며 계속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된 콩쿨 장면에서는 혼신을 다한 '독창'을 하면서 쓰러집니다.

 

자신을 꼭 닮은 또 하나의 자아 '베로니끄'를 발견한 베로니카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가슴앓이 장면.

이 장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낯익은' 바바리맨이 등장함.

 

 

 

 

죽음의 여운도 없이 바로 '프랑스'의 베로니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렌느 야곱의
1인 2역이라는 점 외에도 여러가지 닮은 설정이 나옵니다.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홀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관계가 헤프다는 점 등은 둘의 닮은점
입니다.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아버지에게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반면 프랑스의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갑자기 내가 혼자가 된 느낌이다'라고 말합니다.  멀리 있고
서로 알지도 못하지만 이렇게 뭔가 존재를 은연중 느끼는 두 사람.... 베로니끄의 이야기는
인형극을 하는 한 남자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형극을 하는 알렉상드르와 베로니끄와의 만남은 마치 '접속'의 한석규, 전도연이 연상
되듯,  굉장히 신비롭고 색다른 만남입니다.  초등학교 음악교사인 베로니끄는 학교에서
알렉산드르와 우연한 첫 만남을 하게 되고,  그의 인형극을 보게 됩니다.  이후 수업중
창문을 통해서 떠날 준비를 하는 알렉상드르를 보며 뭔가 교감이 된 듯한 두 사람.
그리고 도로에서 각자 차를 몰다가 신호대기중의 잠깐의 교감.  어느날 베로니끄에게
걸려온 알렉상드르의 '말 없는 전화',  발신자가 없는 우편물속에 달랑 들어있는 '구두끈'
쓰레기통속에 버려졌다가 다시 베로니끄가 찾게 되는 그 구두끈,  이후 소포로 배달된
담배갑,  그리고 찾아갈 장소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 녹음테이프.  녹음테이프의
소리를 듣고 찾아간 기차역앞의 커피숍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두 사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알렉상드르는 새로운
인형극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상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혼신을 다해서 노래하는 베로니카

 

매우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인 인형극 장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구두끈'의 의미를 찾는 베로니끄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폭넓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화이고 대사도 많지 않지만 장면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단 한 번 영화를 보아서 그 장면을 다 놓치지 않고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가령 녹음테이프속에 나오는 커피숍 종업원의 '실례합니다'라는 프랑스어 대사는 나중에
베로니끄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동일한 억양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의 의미까지
한 번에 다 꿰차기는 쉽지 않죠. 

 

이 영화를 텍스트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체험시켜야 할 작품입니다.  텍스트로는
그만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요? 제가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걸 하나의 주제로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이 직접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삶을 신중하게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삶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하죠.  하지만 타인에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결국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므로 삶을 신중하게 책임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자신과 남을 따로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 죽음, 운명, 사랑, 이와 관련된
각각의 행동들은 모두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서 다른 삶을 살게 될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도플갱어'와 같은
연결됨과 공통점,  이건 결국 '나 자신'의 행동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의 삶의
철학을 보여준 하나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긴장된 오디션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무슨 끈같은 것을 움켜쥐는 베로니카,
우편으로 배달된 구두끈에 대해서 담겨진 의미를 느끼려는 베로니끄(구두끈은 알렉상드르의
동화 속 이야기 중 하나라는 것이 베로니끄 친구의 말을 통해서 나오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같은 끈의 의미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첫 번째 '외도작'입니다.  폴란드 내부에서만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외촬영을 하게 됩니다.  단지 영화의 배경만
프랑스라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의 범위도 희망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차대전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공산치하가 된 폴란드,  철권통치를 하려는 공산당과
그에 저항하는 노조와의 격렬한 갈등과 시위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그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통해서 폴란드 내부에 대한 현실과 비판을 시작하였고,  다큐멘타리 속에서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극영화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가령 남녀가 사랑하는 경우
둘만 있고 싶어하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런것이 다큐멘타리의
한계이고 다큐멘타리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 등을 극영화를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주제의식을 갖던 그의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폴란드의 자유 노조가
일어서게 되는 변화를 겪어가면서 탈 폴란드, 탈 비판을 하면서 '희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바로 '세 가지 색 3부작'이고 그의 '프랑스 3부작'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탈 폴란드의 시작이 된 영화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베로니카가 유리구슬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리구슬속에 담겨진 압축된
세상,  마치 폴란드라는 공간은 세상에 압축되어진 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듯한 생각을
담은 듯한 장면입니다. 

 

키에슬로브스키는 매우 운이 좋은 감독인 것 같습니다.  풋내기 신인감독 장 뤽 고다르가
'진 세버그'라는 미국여자를 발견하고 그녀를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시켰듯이 프랑스
배우 이렌느 야곱을 발견한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작품때문에 미국에 있다가 급거
귀국하여 오디션을 본 이렌느 야곱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에게는 굴러온 복덩이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철저히 한 배우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 '원톱주인공'의 영화입니다.  대사가 적은 만큼 표정과 몸짓으로 심리는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이 영화에서 이렌느 야곱은 신들린 듯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인물을 자아처럼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부분 이렌느 야곱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순미와 관능미, 존재감,  이렌느 야곱이 없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 사랑과 운명, 슬픔과 기쁨
신비로움과 환희까지 모두 이렌느 야곱은 완전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배우인 이렌느 야곱은 마침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본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디션에 참여한 이렌느 야곱은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마치 이 영화를 위해서 존재한 것 처럼 연기했습니다.  키에슬로브스키 영화의 음악을
전담하고 있는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음악이 영화내내 깔리고 있는데 이렌느 야곱과
너무 분위기가 잘 어울렸습니다.  그녀는 당연한 듯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에 출시된 DVD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키에슬로브스키 감독과의 인터뷰내용
그리고 그의 영화와 그의 삶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  거기에 '39세'가 된 이렌느 야곱의
반가운 모습과 인터뷰도 실려 있습니다.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관념적인 영화형식으로
완성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서플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십계'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열가지 이야기입니다.
이런 어두운 내용에서 벗어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통해서 베로니카의 죽음과 베로니크의
삶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평등, 박해를 다룬 세 가지 색 3연작을 통하여
희망과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한 그는 자신이 '평화와 고요'를 원한다면 그걸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일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이 마치 유언처럼 된 것일까요? 그는 1995년 갑작스레 불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고요'를 얻은 것이죠.  그의 바램처럼.

 

ps1 : 인터뷰 내내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은 거의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가
         굉장한 골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나이에 비해서 퍽
         '노안'이더군요.

 

ps2 : 2차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혼란과 격동을 겪었는데 폴란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폴란드의 2차 대전 이후의 역사는 철권통치를 하는 공산당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자유노조의 투쟁사이기도 합니다.  즉 '공산당'과 '노조'의 대립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조를 '빨갱이'라고 하지요.  촛불시위를 해도 빨갱이.  뭔가
         기득권에 저항하면 빨갱이라고 하지요. 

 

ps3 : 이렌느 야곱이 좀 더 역량있는 배우로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밀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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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2008년) 사랑과 충성의 갈림길에서... | 한국영화 2012-06-06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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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2008년 한국영화

감독 : 유하 

출연 :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심지호, 임주환, 송중기, 여욱환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시대물'들은 대부분 '한서린 영화들'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비극적
이야기가 많지요.  특히 '왕'이 등장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원래 침략을 많이 받고
살아온 한서린 민족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60년대의 수작 '내시'부터 해서 '왕의 남자'
'물레야 물레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원한 제국' '무사''최종병기 활'등 도대체 해피엔딩
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유하 감독의 2008년작 '쌍화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칼바람이 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영화입니다.  비극적으로 치닫는 결말을 가진 영화이지요.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등 스타급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동성애'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도입시킨 덕분인지 37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성공을 하였습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나 '말죽거리 잔혹사' 등으로
착실히 인지도를 쌓아온 유하 감독의 깔끔한 영상미도 한 몫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고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동성애 코드'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것도 꽤 유명한 스타급 배우인 조인성과 주진모가 마치 '외국영화'에서나 구경할 수 있을
법한 농도짙은 성애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배우 모두 열심히는 했지만 역시나 아직
우리나라 정서상 '편안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닙니다.


 

 

 

배경은 고려말입니다.  젊은 왕(주진모)은 어린 소년들을 뽑아서 자신의 친위대인 건룡위를
만들고 이들을 일찌감치 일급 호위무사들로 훈련시킵니다.  이들의 수장인 홍림(조인성)은
왕의 총애를 받는 인물입니다.  이만저만 총애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잠자리까지 같이
하는 동성애 관계입니다.  왕은 결혼한 몸이었고 왕비(송지효)와 나름 사이도 좋은 편이지만
왕비는 왕에게 여성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이유인즉 왕은 완전한 동성애자로 여성과
관계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아이가 태어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고려를
속국으로 지배하는 원나라에서의 압력이 거세집니다.  거기다 원을 숭배하는 반역의 기운도
감지됩니다.  왕은 건룡위를 시켜서 반역자로 여겨지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고 후계자를
만들기 위한 묘안으로 자기 대신 홍림을 왕비와 동침시켜서 왕비를 임신시키려 합니다.

 

여기까지는 왕과 왕이 총애하는 충신 홍림간의 큰 문제거리 없는 이야기전개입니다.
그런데 왕과 홍림사이에 '왕비'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때까지
여자를 알지도 겪어본적도 없는 홍림과 남자역할을 할 수 없는 왕의 아내로서 사실상
독수공방신세였던 왕비,  두 젊은 남녀는 비로소 '이성'을 알게 되고 둘은 격정적인
감정에 휘말립니다.  홍림은 사실 동성애자가 아니었는데 어린시절부터 왕과 함께
지내면서 왕의 뜻에 의해서 동성애를 했던 것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겠습니까? 결말은 뻔합니다.  언제 어떻게 홍림과
왕비와의 관계가 들통나느냐가 문제이고 그 이후 비극적 파국은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쌍화점을 보면서 연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아더왕과 란슬로트, 그리고 기네비아 공주의 관계입니다.  물론
몰래 란슬로트와 바람피던 왕비와는 달리 쌍화점의 왕비는 왕의 권유에 의해서 대놓고
홍림과 동침한 관계지만 왕은 아이를 위해서 동침하라고 한 것이지 둘이 사랑에 빠지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둘의 관계를 감지하고 왕은 질투를 하게 되는데 감히 왕비를 탐한
홍림에 화가 났다기 보다는 홍림이 자기가 아닌 왕비에게 관심을 더 갖는것에 마음아파 하는
것입니다.

 

아더왕 이야기 외에도 60년대 영화 '내시'나 1천만 관객동원작 '왕의 남자' 같은 영화도
당연히 연상됩니다.  심지어는 주진모가 보스의 여자를 탐했던 '사랑'이라는 영화도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주군'의 여자와 눈이 맞아서 일 벌이는 이야기가 어디 한 둘입니까?
이미 40년대 고전영화 '길다'부터 해서 무지 많죠.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동성애 영화였고 더구나 농도짙은 남성간의 러브씬이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쉽지 않은 연기를 한 조인성과 주진모를 일단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이 정도 네임밸류의 배우들이 이런 연기를 한다는 것은 90년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송지효 역시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언제부터인지 슬며시
우리나라 유명 20대 배우들은 전도연을 제외하고는 벗는데 굉장히 인색했습니다.  무슨
몸에 금테라도 두른 듯.  송지효는 가슴노출까지 불사하며 과감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TV드라마 '궁'이나 '주몽'등 시대극의 경험이 있는 배우라서 무난한 캐스팅이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20대 인기배우에게 노출연기는 부담이 될 수 있었을텐데 송지효는 극의 흐름상
필요한 장면에서 노출을 꺼리지 않았습니다.  조인성 역시 전라의 연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는데 동성애장면까지 포함해서 가장 고생한 배우 같습니다.  다만 송지효의 첫 노출
장면은 극의 흐름상 자연스럽고 필요한 장면이었는데 몸을 사리지 않는 두 배우에 감독이
재미가 들렸는지 이후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노출장면은 약간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 명의 배우중에서 주진모가 가장 어울리는 역할로 보입니다. 주진모는 캐릭터에 따라서
혹평과 호평을 받을 수 있는 특징을 가진 배우인데 쌍화점에서의 역할은 잘 어울렸습니다.
'울보킬러'역할이 너무 짜증났던 '무적자'라는 영화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어울리는 역할이
중요한지를 느껴지게 합니다.  송지효도 무난합니다.  굉장한 '저음'을 쓰는 연기방식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몸을 사리지 않은 것에 걸맞는 역할의 충실도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조인성은 조금 어색해 보이긴 하는데 역할 자체가 왕 앞에서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캐릭터인 만큼 그런 어색함이 영화속에서 나름 녹아나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뻣뻣한 연기때문인지 비극적인 결말이 절절하거나 처절해 보이는 느낌이 많이 약한것은
사실입니다.

 

쌍화점은 인기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파격적인 소재와 과감한 노출씬을 곁들여서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끌어낸 영화로 이런 전략이 나름 성공하여 300만을 훨씬 웃도는
흥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대박흥행'이라 할 수 있는 700만, 800만이 되기에는
약간 아쉬움이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꽤 많은 제작비를 들였고, 세 배우 외에 홍림을
질투하는 건룡위의 2인자 심지호의 역할도 괜찮았습니다.  주진모는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남자연기상을 수상하는 수확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왕을 가까이서 모시며 몸바쳐 충성하던 신하가 왕비와 몰래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은 결국 '충성과 사랑'사이에서 사랑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결론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 젊은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막을 수 있는 '대체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일까요?
왕의 총애받는 신하도, 왕비라는 자리도 '사랑'보다 아래에 있었습니다.  물론 사랑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은 너무 당연하면서도.  엇갈린 사랑이 몰고온 파국을 다룬 '한'서린
또 한 편의 시대극이 '쌍화점'입니다.

 

ps1 : 여기의 왕은 보호받기만 하는 나약한 인물이 아니라 직접 칼을 들고 싸우고
        사냥과 그림, 음악에도 능한 재주꾼입니다.  이 정도 왕이라면 왕답다고 할 수 있죠.

 

ps2 : 송지효과 주진모가 고려가요를 부르는 장면이 나름 인상적입니다. 이거 본인들의
         목소리인가요?

 

ps3 : 쌍화점의 조인성 역시 대표적인 민폐캐릭터 입니다.  그로 인하여 죽어나가는 무고한
         인물이 꽤 많습니다.

 

ps4 : 유하 감독의 영화중에서는 단연 '말죽거리 잔혹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2번째는
        '결혼은 미친짓이다'이죠.  쌍화점보다 그 두 편의 깊이가 더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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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여걸(72년) 쇼브라더스의 대작 무협물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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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여걸

원제 :  14女英豪

1972년 홍콩 쇼브라더스 작품

감독 : 정강

출연 : 능파, 하리리, 리사 루, 악화, 나열, 리칭, 진패, 정풍, 정패

 


14인의 여걸은 70년대의 전설이 된 무협영화입니다.  홍콩 쇼브라더스사 작품으로 1972년
발표된 영화입니다.  남자 형제들의 모험을 다룬 13인의 무사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여성
가족들로 구성된 여전사들의 활약을 다룬 14인의 여걸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1973년 국내개봉시에 엄청난 흥행성공을 하였고 제작비도 꽤 많이 들어간 대작입니다. 
보통 쇼브라더스 무협물들의 상영시간이 1시간 30여분 정도로 짧은 편인데 14인의 여걸은
보기 드물게 2시간 정도의 긴 분량의 영화입니다.  그것도 쇼브라더스 특유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진행 때문에 그렇지 일반적인 영화라면 2시간 30분은 족히 될만한 분량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던 리칭(이청)이 14인중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고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데 선봉이 되는 무 궤잉역의 능파와
능파의 딸 웬광으로 등장한 하리리, 그리고 무 궤잉의 시할머니인 태마님 역의 리사 루
이렇게 3명이 높은 비중의 주인공입니다.  활쏘기의 명수인 악역을 연기한 나열을 비롯하여
선역중에서 보기 드물게 맹활약하는 남성으로 등장한 악화 등 당시 무협영화에서 인기가 높은
많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특히 가장 어린 여걸로 등장하는 하리리는 앳된 미모를 자랑
하는데 리칭에 비해서 국내에 주요 영화가 덜 개봉된 배우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인기를 높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영화지만 결코 '소프트한 작품'은 아닙니다.  왕우, 적룡, 강대위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못지않게 많은 검술장면과 피튀기는 장면,  사지절단 등 쇼브라더스
무협물 다운 볼거리와 잔혹함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양씨가문은 모든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마지막 남은 남자였던 양 승파오 장군까지 장렬히 전사하게 되자 양장군의 아내
무 궤잉(능파)과 할머니인 태부인(리사 루)은 여성만 남은 가족들을 이끌고 양장군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출격합니다.  14인이나 되는 여걸로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양장군의 누이가 엄청 많기 때문입니다.  리칭은 8번째 누이로 등장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웬광(하리리)까지도 다른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군에 합세합니다.  그리고 이들
14명만 여성들이 아니라 상당수의 여성이 군사대열에 병사로 합류합니다.  적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구성된 병사들은 남녀 성별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집니다.

숫적으로 불리한 무 궤잉 일행은 적의 매복과 기습을 피해가며 천신만고끝에 원수가 있는

적진에 잠입하는데 성공하고 많은 희생과 치열한 전투를 치루면서 결국 남편의 원수를 갚고
오랑캐를 섬멸하여 조국을 지켜내는데 기여합니다.  단지 동네 양아치 무리나 악당 일행과
싸우는 내용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스케일을 크게 다룬 내용입니다.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많고 규모도 꽤 큰 영화로 헐리웃 대작 못지않게 야심차게 만든
영화입니다.  쇼브라더스 무협영화가 절정에 올랐음을 과시한 영화이기도 하죠.
여러가지 볼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특히 절벽의 절벽사이를 연결하는 '인간다리'장면이 가장
인상깊습니다.  이 인간다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마도 '돌리틀 선생 이야기'라는 동화책속에
나오는 '원숭이 다리'에서 착안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그 동화를
읽고 응용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화살에 칡덩굴을 묶어서 발사하여 절벽을 연결하는

장면도 나름 기발한 장면입니다.

 

감독은 장철이나 초원이 아닌 정강 이라는 인물로 당시 홍콩에서 매우 공력이 높은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당시로서 홍콩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던 하리리와 리칭의 공연도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비중이 하리리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서 두 배우의 진정한 공연영화라고
꼽을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스잔나를 보고 리칭의 팬이 된 분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영화
같습니다. 

 

 

대규모로 벌이는 실감나는 전투가 역시 '홍콩 무협영화'의 큰 장점답게 이 영화에서도 굉장한
볼거리며 몸이 반토막나고 팔 다리가 잘리는 '신체훼손'장면 역시 적나라하게 등장합니다. 
후반부의 수문 폭파장면에서의 물난리 장면은 헐리웃 영화들에 비하여 약간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70년대 초반 당시 아시아에서 이런 규모와 볼거리를 제공한 영화는
쇼브라더스가 아니면 엄두를 못냈을  것입니다.

 

킬빌이나 레지던트 이블, 툼 레이더 등 여전사를 다룬 헐리웃 영화들이 요즘시대에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런 영화들이 있을 수 있게 된 원조는 바로 14인의 여걸을
비롯한 쇼브라더스 영화에서 맹활약한 여성 무협전사들의 영향이 높았을 것입니다.

쇼브라더스 영화에서 정패패의 '금연자 캐릭터'를 비롯하여 무협영화에 등장했던 여전사의
활용도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가장 여전사들의 활약상을 본격화시켰던 대표적인 영화가
14인의 여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개봉되었던 많은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모았지만
특히 70년대를 뒤흔든 대표적인 흥행작이자 전설이 된 영화가 바로 14인의 여걸일 것입니다.

 

ps1 :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딸 이렇게 4대가 함께 동시에 전투에 출격하는 이야기도 아마
         이 영화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ps2 : 이 영화 실제 제목도 국내 개봉제와 유사하지만 70년대에는 유난히 '몇인의 무엇'이라는
        영화가 많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재개봉된 '40인의 여도적'이라는 유사한 제목의
        영화도 있었고,  7인의 독수리, 17인의 사자들, 17인의 프로페셔널, 11인의 카우보이
        같은 영화들이 모두 70년대 개봉작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제목을 쓰면 흥행에
        성공하기 쉬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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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콘의 아이(Baby of Macon 93년) 피터 그리너웨이이 괴작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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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콘의 아이

원제 : Baby of Macon

1993년 영국영화

감독 : 피터 그리너웨이

출연 : 줄리아 오몬드, 랄프 파인즈, 필립 스톤

 

 
엽기적인 영화 잘 만드는 괴작전문 감독 대회를 연다면 누가 우승할까요? 아마도 영국의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반드시 후보에 오를 것입니다. 

 

괴작 전문 감독을 꼽아보자면 영국의 켄 러셀,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미국의 데이비드 린치
이탈리아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유고의 두상 마카베예프 같은
인물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고,  괴작 감독처럼 출발했다가 주류로 올라선 피터 잭슨
샘 레이미 같은 인물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괴작감독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고 김기영 감독이 대표적이고 김기덕, 박찬욱 감독 정도가 유사한 부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콘의 아이'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1993년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감독의
이름이 영화매니아들에게 주목을 받던 시기는 90년대 초중반이었고,  그러한 동기를 제공한
영화가 89년 작품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정부'라는 영화였으니 그 이후 발표한
프로스페로의 서재에 이어서 등장한 작품입니다. 

 

 

 

사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이 메이콘의 아이가 굉장히 기괴하고
신선한 면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그의 영화의 종합적인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웅장하고 미술감각 넘치는 무대,  주인공보다는 많은
등장인물의 배경과 움직임,  인물을 주로 풀샷으로 잡는 화면,  예사롭게 등장하는 성기노출
횡으로 폭넓게 움직이는 화면, 그외 각종 기괴한 내용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부터
'요리사....' '프로스페로의 서재' 등에서 많이 사용된 방식입니다.  음악을 담당했던 마이클
니만의 이름이 크레딧에서 사라진 것이 달라진 특징입니다.

 

메이콘의 아이에서는 어떤 것을 추가로 보여주고 있을까요? 영화 시작부터 벌거벗은 기괴한
모습의 남자가 그네위에 앉아서 알 수 없는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이어 벌어지는
장면은 흉측한(사실은 흉측할 것으로 추정되는) 노파가 힘겹게 출산을 치루는 장면입니다.
마치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속에서 나온 아기는 놀랍게도 너무 건강하고
토실토실한 우량아였습니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아이에게 경배합니다.  마치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하듯이.  이 아이가 '메이콘의 아이'입니다.

 

 

 

 

 

중세의 가상의 도시 메이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세 메이콘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극'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 영화속 장면들이 실은 '연극'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영화시작
20분이 더 지나서야 입니다.  주인공 여배우 줄리아 오몬드가 잠시 쉬는 타임을 통해서
'뭐 대사가 이래'라고 말하고 다른 출연배우와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이 상황에서 좀 어리둥절한 것이 풀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나치게 '연극적 틀'에 갇혀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화면에서 보여지는
무대와 규모는 '연극무대'에서 실현이 불가능한 구조이고 심지어 마굿간 도살장면에서
카메라는 180도 회전하여 반대편에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때 반대편에 관객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막혀진 마굿간의 벽이 있지요. 

 

이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다시 '그럼 이게 연극이 아니었나'라는 어리둥절함을
갖게 되는데 다시 또 '이건 연극이다'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대사가 몇 번 더 등장합니다.

뭐 이 영화속 장면이 연극공연에서 벌어지는 일이건 아니건 그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칼리귤라'가 연상되는 기괴하고 망측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연극을 위해서 연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만한 의미 정도입니다. (물론 영화역시 의도된 연출
이니 큰 의미는 없지요)

 

집단 불임증상에 걸린 마을에서 태어난 메이콘의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숭배를
받습니다.  이런 마을 사람들의 숭배를 이용하여 아이의 누나는 마치 자기가 아이의
어머니인양 행세하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받아 호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대신 실제 아이의 어머니면서 자신의 어머니인 늙고 흉측한 모습의 여인은 지하실에
가두어 살게 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성모 마리아라도 된 듯이 행동합니다.
그녀의 이 성스러운 행세를 비판하는 주교와 주교의 아들.  그렇지만 그녀는 주교의
아들을 유혹하여 마치 예수가 탄생한 장소처럼 느껴지는 마굿간에서 성관계를 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냉철하게 보면 구세주 예수의 탄생과 성녀 마리아에 대한 숭배, 교회의 번영과
타락을 싸잡아서 조롱하고 있는 부분이 드러납니다.  메이콘의 아이에 대한 집단적인
숭배현상에 의해서 금품을 바치면서 축복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숫처녀'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하는 여인, 그 여인을 비판하는 성직자, 과학과 기적 사이의
간극에 대한 대화, 욕망과 피의 살육 등이 마치 배설하듯이 펼쳐집니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없이 성기노출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유명 '극영화
배우'인 랄프 파인즈와 줄리아 오몬드 같은 배우가 과거 이런 '흉악스런 영화'(?)'에서
적나라한 성기노출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물론 이완 맥그리거 역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영화에서 성기노출을 피해갈 수 없었지요.

 

죽을때까지 계속 강간을 당하는 어쩌면 사형보다 더 극악한 형벌의 모습과(총 203번의
강간이 논스톱으로 이루어집니다.) 죽은 아이의 온 몸을 토막쳐서 나누는 마지막 결말은
정말 엽기의 극을 달립니다.  다만 '연극에서의 연출장면'이라는 설정을 통하여 장면의
시각적 부분은 꽤 완화한 부분이 있습니다.  포장으로 쳐진 좁은 공간에서 강간을 당하는
줄리아 오몬드가 옆의 병사에게 '관객은 우릴 못보니까 그냥 소리만 지르면 돼'라고
말하고 병사는 '관객은 우리가 진짜로 하는 것을 모를거야'하면서 실제 상황으로 만들어
가는 장면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짖굿은 익살이 가미된 장면입니다.

 

메이콘의 아이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전작들과 비교했을때 사실상 발전이나 진화를 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일찌감치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영상과 내용을
펼쳐보인 그에게 프로스페로의 서재, 메이콘의 아이는 더 큰 진화나 발전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기대만큼 호평을 받지 못한
것도 그런 원인이 많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피터 그린웨이의 고유한
특성과 스타일은 잘 살린 작품이면서 한편으로 그의 진화의 한계도 드러낸 영화입니다.

 

ps1 : 연극무대와 영화와 결합같은 형식으로 시도한 영화로는 타이론 구드리 감독의
        '오디푸스왕'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요술피리' 등의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ps2 : 이 감독은 이런 기괴한 괴작을 만들면서 어떻게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캐스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메이콘의 아이에 출연한 '두 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얌전히
        견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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