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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La Double Vie De Veronique 91년)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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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원제 :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폴란드 프랑스 합작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음악 : 즈비그뉴 프라이스너

출연 : 이렌느 야곱, 필립 볼터, 상드린느 뒤마

199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1991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연작 '십계'와 프랑스에서 만든 세가지 색
삼부작의 중간에 끼여있는 작품입니다.  여러가지로 시기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는 폴란드 영화학교 출신으로 일찌감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에 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가 영화를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난 80년대 후반입니다.  폴란드내에서만 알려졌던 그는 1988년 연작 10계 중에서의 한 편의
에피소드인 '살인하지 마라'의 극장판 버전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하여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이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감독의 시야가 '폴란드'에 머물지 않고 범 유럽으로
나아가고 '과거와 현실'이 아닌 '미래와 희망'에 대하여 나아가기 위한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 영화입니다.  즉 '폴란드에 대한 성찰'을 담아온 십계까지의 키에슬로브스키와
이후 '프랑스 세 가지 색 3부작'을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키에슬로브스키의 도약을
연결시켜주는 중대한 영화입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권의 예술감독인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이 처음 국내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나름 의미깊은 개봉이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빠르게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TV를 통해서 방영을 하긴 했지만 적잖은 노출이 나오는 이 영화가 온전히
방영되지는 않았고 2007년에 DVD로 출시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제 가치를 비로소 확인
시킬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노래하면서 환희에 젖는 베로니카

 

베로니카가 노래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한날 한시에 폴란드와 프랑스에게 각각 태어난, 마치 쌍동이 처럼 닮은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초반 25분 정도는 폴란드의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  이후의 내용은 프랑스의 베로니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이런 소재의
영화에 흔히 사용될만한 '교차편집'이 아예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마치 독립된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베로니카의 등장은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베로니카,  뭔가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느낀것처럼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아닌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고백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콩쿨대회 오디션을
보게 되어 합격한 베로니카,  우연히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에서 버스에 오르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베로니끄'를 보게 됩니다.  일종의 '도플갱어' 현상을 소재로 하는 장면
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 도플갱어 현상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자아를 보게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설처럼 베로니카 역시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작스레 쓰려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베로니카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가
이모를 만났을 때 '우리 집안은 사람들은 원래 건강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죽잖니.  네
외할머니도, 네 엄마도 그랬듯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암시가 됩니다.  오디션에서 합격을
하고 오는 길에 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베로니카, 그리고 등장한 '바바리맨'
(한국인들이 더 익숙한 바바리맨이죠.  여기서도 바바리맨은 베로니카 앞에서 갑자기
바바리를 확 풀어 헤칩니다.  다만 한국 바바리맨과 달리 속에 옷은 입고 있습니다.
바바리맨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이 짧게 다루어진 폴란드의 베로니카의 모습은 '환희'에서 '환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로니카가 교정에서 합창을 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는데 비가 떨어지고 모두가 비를
피하기 위해서 흩어지지만 베로니카만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비를 맞으며 계속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된 콩쿨 장면에서는 혼신을 다한 '독창'을 하면서 쓰러집니다.

 

자신을 꼭 닮은 또 하나의 자아 '베로니끄'를 발견한 베로니카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가슴앓이 장면.

이 장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낯익은' 바바리맨이 등장함.

 

 

 

 

죽음의 여운도 없이 바로 '프랑스'의 베로니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렌느 야곱의
1인 2역이라는 점 외에도 여러가지 닮은 설정이 나옵니다.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홀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관계가 헤프다는 점 등은 둘의 닮은점
입니다.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아버지에게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반면 프랑스의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갑자기 내가 혼자가 된 느낌이다'라고 말합니다.  멀리 있고
서로 알지도 못하지만 이렇게 뭔가 존재를 은연중 느끼는 두 사람.... 베로니끄의 이야기는
인형극을 하는 한 남자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형극을 하는 알렉상드르와 베로니끄와의 만남은 마치 '접속'의 한석규, 전도연이 연상
되듯,  굉장히 신비롭고 색다른 만남입니다.  초등학교 음악교사인 베로니끄는 학교에서
알렉산드르와 우연한 첫 만남을 하게 되고,  그의 인형극을 보게 됩니다.  이후 수업중
창문을 통해서 떠날 준비를 하는 알렉상드르를 보며 뭔가 교감이 된 듯한 두 사람.
그리고 도로에서 각자 차를 몰다가 신호대기중의 잠깐의 교감.  어느날 베로니끄에게
걸려온 알렉상드르의 '말 없는 전화',  발신자가 없는 우편물속에 달랑 들어있는 '구두끈'
쓰레기통속에 버려졌다가 다시 베로니끄가 찾게 되는 그 구두끈,  이후 소포로 배달된
담배갑,  그리고 찾아갈 장소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 녹음테이프.  녹음테이프의
소리를 듣고 찾아간 기차역앞의 커피숍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두 사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알렉상드르는 새로운
인형극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상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혼신을 다해서 노래하는 베로니카

 

매우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인 인형극 장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구두끈'의 의미를 찾는 베로니끄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폭넓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화이고 대사도 많지 않지만 장면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단 한 번 영화를 보아서 그 장면을 다 놓치지 않고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가령 녹음테이프속에 나오는 커피숍 종업원의 '실례합니다'라는 프랑스어 대사는 나중에
베로니끄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동일한 억양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의 의미까지
한 번에 다 꿰차기는 쉽지 않죠. 

 

이 영화를 텍스트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체험시켜야 할 작품입니다.  텍스트로는
그만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요? 제가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걸 하나의 주제로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이 직접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삶을 신중하게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삶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하죠.  하지만 타인에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결국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므로 삶을 신중하게 책임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자신과 남을 따로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 죽음, 운명, 사랑, 이와 관련된
각각의 행동들은 모두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서 다른 삶을 살게 될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도플갱어'와 같은
연결됨과 공통점,  이건 결국 '나 자신'의 행동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의 삶의
철학을 보여준 하나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긴장된 오디션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무슨 끈같은 것을 움켜쥐는 베로니카,
우편으로 배달된 구두끈에 대해서 담겨진 의미를 느끼려는 베로니끄(구두끈은 알렉상드르의
동화 속 이야기 중 하나라는 것이 베로니끄 친구의 말을 통해서 나오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같은 끈의 의미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첫 번째 '외도작'입니다.  폴란드 내부에서만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외촬영을 하게 됩니다.  단지 영화의 배경만
프랑스라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의 범위도 희망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차대전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공산치하가 된 폴란드,  철권통치를 하려는 공산당과
그에 저항하는 노조와의 격렬한 갈등과 시위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그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통해서 폴란드 내부에 대한 현실과 비판을 시작하였고,  다큐멘타리 속에서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극영화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가령 남녀가 사랑하는 경우
둘만 있고 싶어하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런것이 다큐멘타리의
한계이고 다큐멘타리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 등을 극영화를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주제의식을 갖던 그의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폴란드의 자유 노조가
일어서게 되는 변화를 겪어가면서 탈 폴란드, 탈 비판을 하면서 '희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바로 '세 가지 색 3부작'이고 그의 '프랑스 3부작'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탈 폴란드의 시작이 된 영화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베로니카가 유리구슬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리구슬속에 담겨진 압축된
세상,  마치 폴란드라는 공간은 세상에 압축되어진 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듯한 생각을
담은 듯한 장면입니다. 

 

키에슬로브스키는 매우 운이 좋은 감독인 것 같습니다.  풋내기 신인감독 장 뤽 고다르가
'진 세버그'라는 미국여자를 발견하고 그녀를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시켰듯이 프랑스
배우 이렌느 야곱을 발견한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작품때문에 미국에 있다가 급거
귀국하여 오디션을 본 이렌느 야곱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에게는 굴러온 복덩이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철저히 한 배우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 '원톱주인공'의 영화입니다.  대사가 적은 만큼 표정과 몸짓으로 심리는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이 영화에서 이렌느 야곱은 신들린 듯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인물을 자아처럼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부분 이렌느 야곱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순미와 관능미, 존재감,  이렌느 야곱이 없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 사랑과 운명, 슬픔과 기쁨
신비로움과 환희까지 모두 이렌느 야곱은 완전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배우인 이렌느 야곱은 마침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본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디션에 참여한 이렌느 야곱은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마치 이 영화를 위해서 존재한 것 처럼 연기했습니다.  키에슬로브스키 영화의 음악을
전담하고 있는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음악이 영화내내 깔리고 있는데 이렌느 야곱과
너무 분위기가 잘 어울렸습니다.  그녀는 당연한 듯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에 출시된 DVD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키에슬로브스키 감독과의 인터뷰내용
그리고 그의 영화와 그의 삶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  거기에 '39세'가 된 이렌느 야곱의
반가운 모습과 인터뷰도 실려 있습니다.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관념적인 영화형식으로
완성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서플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십계'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열가지 이야기입니다.
이런 어두운 내용에서 벗어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통해서 베로니카의 죽음과 베로니크의
삶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평등, 박해를 다룬 세 가지 색 3연작을 통하여
희망과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한 그는 자신이 '평화와 고요'를 원한다면 그걸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일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이 마치 유언처럼 된 것일까요? 그는 1995년 갑작스레 불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고요'를 얻은 것이죠.  그의 바램처럼.

 

ps1 : 인터뷰 내내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은 거의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가
         굉장한 골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나이에 비해서 퍽
         '노안'이더군요.

 

ps2 : 2차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혼란과 격동을 겪었는데 폴란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폴란드의 2차 대전 이후의 역사는 철권통치를 하는 공산당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자유노조의 투쟁사이기도 합니다.  즉 '공산당'과 '노조'의 대립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조를 '빨갱이'라고 하지요.  촛불시위를 해도 빨갱이.  뭔가
         기득권에 저항하면 빨갱이라고 하지요. 

 

ps3 : 이렌느 야곱이 좀 더 역량있는 배우로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밀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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