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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 영화 너무 좋았어요. 리뷰글을..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제이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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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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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영화(90년대이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La Double Vie De Veronique 91년)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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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원제 :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폴란드 프랑스 합작

감독 :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음악 : 즈비그뉴 프라이스너

출연 : 이렌느 야곱, 필립 볼터, 상드린느 뒤마

199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1991년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연작 '십계'와 프랑스에서 만든 세가지 색
삼부작의 중간에 끼여있는 작품입니다.  여러가지로 시기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는 폴란드 영화학교 출신으로 일찌감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에 세계에 알려진 것은 그가 영화를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난 80년대 후반입니다.  폴란드내에서만 알려졌던 그는 1988년 연작 10계 중에서의 한 편의
에피소드인 '살인하지 마라'의 극장판 버전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하여 심사위원상을 받으면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그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진 것이죠.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감독의 시야가 '폴란드'에 머물지 않고 범 유럽으로
나아가고 '과거와 현실'이 아닌 '미래와 희망'에 대하여 나아가기 위한 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한 영화입니다.  즉 '폴란드에 대한 성찰'을 담아온 십계까지의 키에슬로브스키와
이후 '프랑스 세 가지 색 3부작'을 통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키에슬로브스키의 도약을
연결시켜주는 중대한 영화입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권의 예술감독인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이 처음 국내에 개봉된
영화입니다.  나름 의미깊은 개봉이었지만 흥행에 실패하고 빠르게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후 TV를 통해서 방영을 하긴 했지만 적잖은 노출이 나오는 이 영화가 온전히
방영되지는 않았고 2007년에 DVD로 출시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제 가치를 비로소 확인
시킬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노래하면서 환희에 젖는 베로니카

 

베로니카가 노래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한날 한시에 폴란드와 프랑스에게 각각 태어난, 마치 쌍동이 처럼 닮은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초반 25분 정도는 폴란드의 베로니카에
대한 이야기,  이후의 내용은 프랑스의 베로니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이런 소재의
영화에 흔히 사용될만한 '교차편집'이 아예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마치 독립된 두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베로니카의 등장은 '노래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이 납니다.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공부한 베로니카,  뭔가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느낀것처럼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아닌것 같다고 아버지에게 고백합니다.  친구의 권유로 콩쿨대회 오디션을
보게 되어 합격한 베로니카,  우연히 시위가 벌어지는 광장에서 버스에 오르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베로니끄'를 보게 됩니다.  일종의 '도플갱어' 현상을 소재로 하는 장면
이라고 할 수 도 있는데 도플갱어 현상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자아를 보게 되면 죽음을
맞이한다는 속설처럼 베로니카 역시 콩쿨대회가 열리는 날 많은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작스레 쓰려져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베로니카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가
이모를 만났을 때 '우리 집안은 사람들은 원래 건강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죽잖니.  네
외할머니도, 네 엄마도 그랬듯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암시가 됩니다.  오디션에서 합격을
하고 오는 길에 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 하는 베로니카, 그리고 등장한 '바바리맨'
(한국인들이 더 익숙한 바바리맨이죠.  여기서도 바바리맨은 베로니카 앞에서 갑자기
바바리를 확 풀어 헤칩니다.  다만 한국 바바리맨과 달리 속에 옷은 입고 있습니다.
바바리맨은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죽음.

 

이 짧게 다루어진 폴란드의 베로니카의 모습은 '환희'에서 '환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로니카가 교정에서 합창을 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는데 비가 떨어지고 모두가 비를
피하기 위해서 흩어지지만 베로니카만이 환희에 찬 모습으로 비를 맞으며 계속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된 콩쿨 장면에서는 혼신을 다한 '독창'을 하면서 쓰러집니다.

 

자신을 꼭 닮은 또 하나의 자아 '베로니끄'를 발견한 베로니카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가슴앓이 장면.

이 장면에서 우리나라에서 '낯익은' 바바리맨이 등장함.

 

 

 

 

죽음의 여운도 없이 바로 '프랑스'의 베로니끄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렌느 야곱의
1인 2역이라는 점 외에도 여러가지 닮은 설정이 나옵니다.  음악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홀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남자관계가 헤프다는 점 등은 둘의 닮은점
입니다.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아버지에게 '난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반면 프랑스의
베로니끄는 아버지에게 '갑자기 내가 혼자가 된 느낌이다'라고 말합니다.  멀리 있고
서로 알지도 못하지만 이렇게 뭔가 존재를 은연중 느끼는 두 사람.... 베로니끄의 이야기는
인형극을 하는 한 남자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형극을 하는 알렉상드르와 베로니끄와의 만남은 마치 '접속'의 한석규, 전도연이 연상
되듯,  굉장히 신비롭고 색다른 만남입니다.  초등학교 음악교사인 베로니끄는 학교에서
알렉산드르와 우연한 첫 만남을 하게 되고,  그의 인형극을 보게 됩니다.  이후 수업중
창문을 통해서 떠날 준비를 하는 알렉상드르를 보며 뭔가 교감이 된 듯한 두 사람.
그리고 도로에서 각자 차를 몰다가 신호대기중의 잠깐의 교감.  어느날 베로니끄에게
걸려온 알렉상드르의 '말 없는 전화',  발신자가 없는 우편물속에 달랑 들어있는 '구두끈'
쓰레기통속에 버려졌다가 다시 베로니끄가 찾게 되는 그 구두끈,  이후 소포로 배달된
담배갑,  그리고 찾아갈 장소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된 녹음테이프.  녹음테이프의
소리를 듣고 찾아간 기차역앞의 커피숍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 두 사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알렉상드르는 새로운
인형극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실상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혼신을 다해서 노래하는 베로니카

 

매우 인상깊은 장면 중 하나인 인형극 장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구두끈'의 의미를 찾는 베로니끄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폭넓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짧은 영화이고 대사도 많지 않지만 장면 하나 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단 한 번 영화를 보아서 그 장면을 다 놓치지 않고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가령 녹음테이프속에 나오는 커피숍 종업원의 '실례합니다'라는 프랑스어 대사는 나중에
베로니끄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동일한 억양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이런 장면의 의미까지
한 번에 다 꿰차기는 쉽지 않죠. 

 

이 영화를 텍스트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으로 체험시켜야 할 작품입니다.  텍스트로는
그만큼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도대체 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요? 제가 삶과 죽음, 운명과
사랑을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라고 했는데 그걸 하나의 주제로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이 직접
압축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해봅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삶을 신중하게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삶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하죠.  하지만 타인에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자신의 행동이 결국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있거든요.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되므로 삶을 신중하게 책임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는 자신과 남을 따로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 죽음, 운명, 사랑, 이와 관련된
각각의 행동들은 모두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나라에서
다른 가정에서 태어나서 다른 삶을 살게 될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도플갱어'와 같은
연결됨과 공통점,  이건 결국 '나 자신'의 행동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의 삶의
철학을 보여준 하나의 표현일 것입니다.  그는 세상이 하나의 '끈'으로 묶여있다고 생각
했다고 합니다.  긴장된 오디션을 하면서 오른손으로 무슨 끈같은 것을 움켜쥐는 베로니카,
우편으로 배달된 구두끈에 대해서 담겨진 의미를 느끼려는 베로니끄(구두끈은 알렉상드르의
동화 속 이야기 중 하나라는 것이 베로니끄 친구의 말을 통해서 나오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같은 끈의 의미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첫 번째 '외도작'입니다.  폴란드 내부에서만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이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해외촬영을 하게 됩니다.  단지 영화의 배경만
프랑스라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의 영화의 범위도 희망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2차대전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공산치하가 된 폴란드,  철권통치를 하려는 공산당과
그에 저항하는 노조와의 격렬한 갈등과 시위의 역사가 이어지면서 그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통해서 폴란드 내부에 대한 현실과 비판을 시작하였고,  다큐멘타리 속에서 담아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극영화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가령 남녀가 사랑하는 경우
둘만 있고 싶어하지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런것이 다큐멘타리의
한계이고 다큐멘타리로 표현하지 못하는 내면 등을 극영화를 통해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비판적인 주제의식을 갖던 그의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폴란드의 자유 노조가
일어서게 되는 변화를 겪어가면서 탈 폴란드, 탈 비판을 하면서 '희망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바로 '세 가지 색 3부작'이고 그의 '프랑스 3부작'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탈 폴란드의 시작이 된 영화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던
베로니카가 유리구슬을 통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리구슬속에 담겨진 압축된
세상,  마치 폴란드라는 공간은 세상에 압축되어진 한 공간에 불과하다는 듯한 생각을
담은 듯한 장면입니다. 

 

키에슬로브스키는 매우 운이 좋은 감독인 것 같습니다.  풋내기 신인감독 장 뤽 고다르가
'진 세버그'라는 미국여자를 발견하고 그녀를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시켰듯이 프랑스
배우 이렌느 야곱을 발견한 것은 굉장한 행운입니다.  작품때문에 미국에 있다가 급거
귀국하여 오디션을 본 이렌느 야곱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에게는 굴러온 복덩이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철저히 한 배우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등장하는 '원톱주인공'의 영화입니다.  대사가 적은 만큼 표정과 몸짓으로 심리는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이 영화에서 이렌느 야곱은 신들린 듯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두 인물을 자아처럼 연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완성도는 상당부분 이렌느 야곱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순미와 관능미, 존재감,  이렌느 야곱이 없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삶과 죽음, 사랑과 운명, 슬픔과 기쁨
신비로움과 환희까지 모두 이렌느 야곱은 완전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프랑스 배우인 이렌느 야곱은 마침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본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오디션에 참여한 이렌느 야곱은 영화에 캐스팅되었고
마치 이 영화를 위해서 존재한 것 처럼 연기했습니다.  키에슬로브스키 영화의 음악을
전담하고 있는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음악이 영화내내 깔리고 있는데 이렌느 야곱과
너무 분위기가 잘 어울렸습니다.  그녀는 당연한 듯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2007년에 출시된 DVD에서는 영화뿐만 아니라 키에슬로브스키 감독과의 인터뷰내용
그리고 그의 영화와 그의 삶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  거기에 '39세'가 된 이렌느 야곱의
반가운 모습과 인터뷰도 실려 있습니다.  초현실적인 부분이 있는 관념적인 영화형식으로
완성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서플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십계'는 비뚤어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열가지 이야기입니다.
이런 어두운 내용에서 벗어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통해서 베로니카의 죽음과 베로니크의
삶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 평등, 박해를 다룬 세 가지 색 3연작을 통하여
희망과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스스로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한 그는 자신이 '평화와 고요'를 원한다면 그걸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일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이 마치 유언처럼 된 것일까요? 그는 1995년 갑작스레 불과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평화와 고요'를 얻은 것이죠.  그의 바램처럼.

 

ps1 : 인터뷰 내내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은 거의 담배를 한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가
         굉장한 골초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나이에 비해서 퍽
         '노안'이더군요.

 

ps2 : 2차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혼란과 격동을 겪었는데 폴란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폴란드의 2차 대전 이후의 역사는 철권통치를 하는 공산당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자유노조의 투쟁사이기도 합니다.  즉 '공산당'과 '노조'의 대립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조를 '빨갱이'라고 하지요.  촛불시위를 해도 빨갱이.  뭔가
         기득권에 저항하면 빨갱이라고 하지요. 

 

ps3 : 이렌느 야곱이 좀 더 역량있는 배우로 성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밀려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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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여걸(72년) 쇼브라더스의 대작 무협물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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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인의 여걸

원제 :  14女英豪

1972년 홍콩 쇼브라더스 작품

감독 : 정강

출연 : 능파, 하리리, 리사 루, 악화, 나열, 리칭, 진패, 정풍, 정패

 


14인의 여걸은 70년대의 전설이 된 무협영화입니다.  홍콩 쇼브라더스사 작품으로 1972년
발표된 영화입니다.  남자 형제들의 모험을 다룬 13인의 무사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여성
가족들로 구성된 여전사들의 활약을 다룬 14인의 여걸이 등장했던 것입니다.

 

1973년 국내개봉시에 엄청난 흥행성공을 하였고 제작비도 꽤 많이 들어간 대작입니다. 
보통 쇼브라더스 무협물들의 상영시간이 1시간 30여분 정도로 짧은 편인데 14인의 여걸은
보기 드물게 2시간 정도의 긴 분량의 영화입니다.  그것도 쇼브라더스 특유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진행 때문에 그렇지 일반적인 영화라면 2시간 30분은 족히 될만한 분량입니다.

 

당시 국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던 리칭(이청)이 14인중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비중이 높은
편은 아니고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데 선봉이 되는 무 궤잉역의 능파와
능파의 딸 웬광으로 등장한 하리리, 그리고 무 궤잉의 시할머니인 태마님 역의 리사 루
이렇게 3명이 높은 비중의 주인공입니다.  활쏘기의 명수인 악역을 연기한 나열을 비롯하여
선역중에서 보기 드물게 맹활약하는 남성으로 등장한 악화 등 당시 무협영화에서 인기가 높은
많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합니다.   특히 가장 어린 여걸로 등장하는 하리리는 앳된 미모를 자랑
하는데 리칭에 비해서 국내에 주요 영화가 덜 개봉된 배우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인기를 높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된 영화지만 결코 '소프트한 작품'은 아닙니다.  왕우, 적룡, 강대위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 못지않게 많은 검술장면과 피튀기는 장면,  사지절단 등 쇼브라더스
무협물 다운 볼거리와 잔혹함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오랑캐가 쳐들어오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양씨가문은 모든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마지막 남은 남자였던 양 승파오 장군까지 장렬히 전사하게 되자 양장군의 아내
무 궤잉(능파)과 할머니인 태부인(리사 루)은 여성만 남은 가족들을 이끌고 양장군의 원수를
갚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출격합니다.  14인이나 되는 여걸로 구성될 수 있었던 것은
양장군의 누이가 엄청 많기 때문입니다.  리칭은 8번째 누이로 등장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웬광(하리리)까지도 다른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군에 합세합니다.  그리고 이들
14명만 여성들이 아니라 상당수의 여성이 군사대열에 병사로 합류합니다.  적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구성된 병사들은 남녀 성별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집니다.

숫적으로 불리한 무 궤잉 일행은 적의 매복과 기습을 피해가며 천신만고끝에 원수가 있는

적진에 잠입하는데 성공하고 많은 희생과 치열한 전투를 치루면서 결국 남편의 원수를 갚고
오랑캐를 섬멸하여 조국을 지켜내는데 기여합니다.  단지 동네 양아치 무리나 악당 일행과
싸우는 내용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을 걸고 전투를 벌이는 스케일을 크게 다룬 내용입니다.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많고 규모도 꽤 큰 영화로 헐리웃 대작 못지않게 야심차게 만든
영화입니다.  쇼브라더스 무협영화가 절정에 올랐음을 과시한 영화이기도 하죠.
여러가지 볼거리가 많은 영화지만 특히 절벽의 절벽사이를 연결하는 '인간다리'장면이 가장
인상깊습니다.  이 인간다리에 대한 아이디어는 아마도 '돌리틀 선생 이야기'라는 동화책속에
나오는 '원숭이 다리'에서 착안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가 그 동화를
읽고 응용한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화살에 칡덩굴을 묶어서 발사하여 절벽을 연결하는

장면도 나름 기발한 장면입니다.

 

감독은 장철이나 초원이 아닌 정강 이라는 인물로 당시 홍콩에서 매우 공력이 높은 감독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당시로서 홍콩에서 매우 인기가 높았던 하리리와 리칭의 공연도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비중이 하리리 쪽으로 훨씬 기울어져서 두 배우의 진정한 공연영화라고
꼽을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스잔나를 보고 리칭의 팬이 된 분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웠을 영화
같습니다. 

 

 

대규모로 벌이는 실감나는 전투가 역시 '홍콩 무협영화'의 큰 장점답게 이 영화에서도 굉장한
볼거리며 몸이 반토막나고 팔 다리가 잘리는 '신체훼손'장면 역시 적나라하게 등장합니다. 
후반부의 수문 폭파장면에서의 물난리 장면은 헐리웃 영화들에 비하여 약간 기술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70년대 초반 당시 아시아에서 이런 규모와 볼거리를 제공한 영화는
쇼브라더스가 아니면 엄두를 못냈을  것입니다.

 

킬빌이나 레지던트 이블, 툼 레이더 등 여전사를 다룬 헐리웃 영화들이 요즘시대에는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런 영화들이 있을 수 있게 된 원조는 바로 14인의 여걸을
비롯한 쇼브라더스 영화에서 맹활약한 여성 무협전사들의 영향이 높았을 것입니다.

쇼브라더스 영화에서 정패패의 '금연자 캐릭터'를 비롯하여 무협영화에 등장했던 여전사의
활용도가 어느 정도 있었지만,  가장 여전사들의 활약상을 본격화시켰던 대표적인 영화가
14인의 여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 개봉되었던 많은 무협영화들이 인기를 모았지만
특히 70년대를 뒤흔든 대표적인 흥행작이자 전설이 된 영화가 바로 14인의 여걸일 것입니다.

 

ps1 :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딸 이렇게 4대가 함께 동시에 전투에 출격하는 이야기도 아마
         이 영화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ps2 : 이 영화 실제 제목도 국내 개봉제와 유사하지만 70년대에는 유난히 '몇인의 무엇'이라는
        영화가 많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재개봉된 '40인의 여도적'이라는 유사한 제목의
        영화도 있었고,  7인의 독수리, 17인의 사자들, 17인의 프로페셔널, 11인의 카우보이
        같은 영화들이 모두 70년대 개봉작들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제목을 쓰면 흥행에
        성공하기 쉬웠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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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콘의 아이(Baby of Macon 93년) 피터 그리너웨이이 괴작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6-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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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콘의 아이

원제 : Baby of Macon

1993년 영국영화

감독 : 피터 그리너웨이

출연 : 줄리아 오몬드, 랄프 파인즈, 필립 스톤

 

 
엽기적인 영화 잘 만드는 괴작전문 감독 대회를 연다면 누가 우승할까요? 아마도 영국의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은 반드시 후보에 오를 것입니다. 

 

괴작 전문 감독을 꼽아보자면 영국의 켄 러셀,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미국의 데이비드 린치
이탈리아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일본의 오시마 나기사,  유고의 두상 마카베예프 같은
인물들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고,  괴작 감독처럼 출발했다가 주류로 올라선 피터 잭슨
샘 레이미 같은 인물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괴작감독이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고 김기영 감독이 대표적이고 김기덕, 박찬욱 감독 정도가 유사한 부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메이콘의 아이'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1993년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감독의
이름이 영화매니아들에게 주목을 받던 시기는 90년대 초중반이었고,  그러한 동기를 제공한
영화가 89년 작품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정부'라는 영화였으니 그 이후 발표한
프로스페로의 서재에 이어서 등장한 작품입니다. 

 

 

 

사실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를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이 메이콘의 아이가 굉장히 기괴하고
신선한 면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그의 영화의 종합적인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웅장하고 미술감각 넘치는 무대,  주인공보다는 많은
등장인물의 배경과 움직임,  인물을 주로 풀샷으로 잡는 화면,  예사롭게 등장하는 성기노출
횡으로 폭넓게 움직이는 화면, 그외 각종 기괴한 내용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부터
'요리사....' '프로스페로의 서재' 등에서 많이 사용된 방식입니다.  음악을 담당했던 마이클
니만의 이름이 크레딧에서 사라진 것이 달라진 특징입니다.

 

메이콘의 아이에서는 어떤 것을 추가로 보여주고 있을까요? 영화 시작부터 벌거벗은 기괴한
모습의 남자가 그네위에 앉아서 알 수 없는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이어 벌어지는
장면은 흉측한(사실은 흉측할 것으로 추정되는) 노파가 힘겹게 출산을 치루는 장면입니다.
마치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불길한 분위기속에서 나온 아기는 놀랍게도 너무 건강하고
토실토실한 우량아였습니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아이에게 경배합니다.  마치 구세주의
탄생을 맞이하듯이.  이 아이가 '메이콘의 아이'입니다.

 

 

 

 

 

중세의 가상의 도시 메이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중세 메이콘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극'을 담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이 영화속 장면들이 실은 '연극'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영화시작
20분이 더 지나서야 입니다.  주인공 여배우 줄리아 오몬드가 잠시 쉬는 타임을 통해서
'뭐 대사가 이래'라고 말하고 다른 출연배우와 주고 받는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이 상황에서 좀 어리둥절한 것이 풀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지나치게 '연극적 틀'에 갇혀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화면에서 보여지는
무대와 규모는 '연극무대'에서 실현이 불가능한 구조이고 심지어 마굿간 도살장면에서
카메라는 180도 회전하여 반대편에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때 반대편에 관객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막혀진 마굿간의 벽이 있지요. 

 

이 시점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다시 '그럼 이게 연극이 아니었나'라는 어리둥절함을
갖게 되는데 다시 또 '이건 연극이다'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대사가 몇 번 더 등장합니다.

뭐 이 영화속 장면이 연극공연에서 벌어지는 일이건 아니건 그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칼리귤라'가 연상되는 기괴하고 망측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연극을 위해서 연출'된
것이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만한 의미 정도입니다. (물론 영화역시 의도된 연출
이니 큰 의미는 없지요)

 

집단 불임증상에 걸린 마을에서 태어난 메이콘의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숭배를
받습니다.  이런 마을 사람들의 숭배를 이용하여 아이의 누나는 마치 자기가 아이의
어머니인양 행세하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받아 호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대신 실제 아이의 어머니면서 자신의 어머니인 늙고 흉측한 모습의 여인은 지하실에
가두어 살게 합니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이 성모 마리아라도 된 듯이 행동합니다.
그녀의 이 성스러운 행세를 비판하는 주교와 주교의 아들.  그렇지만 그녀는 주교의
아들을 유혹하여 마치 예수가 탄생한 장소처럼 느껴지는 마굿간에서 성관계를 하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냉철하게 보면 구세주 예수의 탄생과 성녀 마리아에 대한 숭배, 교회의 번영과
타락을 싸잡아서 조롱하고 있는 부분이 드러납니다.  메이콘의 아이에 대한 집단적인
숭배현상에 의해서 금품을 바치면서 축복받기를 원하는 사람들,  '숫처녀'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하는 여인, 그 여인을 비판하는 성직자, 과학과 기적 사이의
간극에 대한 대화, 욕망과 피의 살육 등이 마치 배설하듯이 펼쳐집니다.  이 영화에서도
예외없이 성기노출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유명 '극영화
배우'인 랄프 파인즈와 줄리아 오몬드 같은 배우가 과거 이런 '흉악스런 영화'(?)'에서
적나라한 성기노출을 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물론 이완 맥그리거 역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영화에서 성기노출을 피해갈 수 없었지요.

 

죽을때까지 계속 강간을 당하는 어쩌면 사형보다 더 극악한 형벌의 모습과(총 203번의
강간이 논스톱으로 이루어집니다.) 죽은 아이의 온 몸을 토막쳐서 나누는 마지막 결말은
정말 엽기의 극을 달립니다.  다만 '연극에서의 연출장면'이라는 설정을 통하여 장면의
시각적 부분은 꽤 완화한 부분이 있습니다.  포장으로 쳐진 좁은 공간에서 강간을 당하는
줄리아 오몬드가 옆의 병사에게 '관객은 우릴 못보니까 그냥 소리만 지르면 돼'라고
말하고 병사는 '관객은 우리가 진짜로 하는 것을 모를거야'하면서 실제 상황으로 만들어
가는 장면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짖굿은 익살이 가미된 장면입니다.

 

메이콘의 아이는 피터 그리너웨이의 전작들과 비교했을때 사실상 발전이나 진화를 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너무 일찌감치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한 영상과 내용을
펼쳐보인 그에게 프로스페로의 서재, 메이콘의 아이는 더 큰 진화나 발전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가 기대만큼 호평을 받지 못한
것도 그런 원인이 많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피터 그린웨이의 고유한
특성과 스타일은 잘 살린 작품이면서 한편으로 그의 진화의 한계도 드러낸 영화입니다.

 

ps1 : 연극무대와 영화와 결합같은 형식으로 시도한 영화로는 타이론 구드리 감독의
        '오디푸스왕'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요술피리' 등의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ps2 : 이 감독은 이런 기괴한 괴작을 만들면서 어떻게 배우들을 한 명 한 명 캐스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메이콘의 아이에 출연한 '두 아이'는 어떻게 그렇게 얌전히
        견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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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즈(Sisters 73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초기 공포물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5-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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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즈

원제 : Sisters

1973년 미국영화

감독 : 브라이언 드 팔마

출연 : 마고트 키더, 제니퍼 솔트, 찰스 더닝, 윌리암 핀리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유명해진 것은 1976년에 발표한 '캐리'라는 영화 때문입니다.
캐리는 공포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영화
끝날 때 다 끝난 줄 알고 방심했다가 마지막에 한 번 더 깜짝 놀라게 하는 영화의 '원조장면'
으로 알려진 영화입니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13일의 금요일'이나 '나이트메어'같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활용되었죠.   캐리 이후에 브라이언 드 팔마는 히치콕 감독의 걸작
'사이코'의 장면을 응용한 '드레스트 투 킬'이라는 영화로 주가를 높였고,  이후 '보디 더블'
'스카페이스' '언터처블' '전쟁의 사상자들' 등으로 '쇼킹 잔혹극' 전문 감독으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그의 영화들은 '쇼킹한 살상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오히려
크게 히트한 '미션 임파서블'같은 영화가 브라이언 드 팔마 영화다운 느낌이 약했던 작품
입니다.

 

이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캐리'이전에 이미 쇼킹한 공포영화를 만들었었는데 그게 바로
'시스터즈'입니다.   1973년에 발표되었으니 캐리보다 3년이나 먼저 나온 것입니다. 
원래 몇 편의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왔던 그는 73년에 전형적인 B급 공포 스릴러물인
시스터즈를 통하여 그의 진가를 보여주었고, 향후 이런 분야에서 꽤 소질을 보인 것입니다.
시스터즈가 있었기에 결국 '캐리'나 '드레스트 투 킬'같은 영화가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모델로 활동하는 다니엘(마고트 키더)은 방송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알게 된 흑인 남자
필립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시고 다니엘의 아파트로 함께 와서
뜨거운 하룻밤을 보냅니다.  마침 다니엘의 생일이라서 필립은 나가서 케잌을 선물로 사서
다니엘을 놀라게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끔찍한 살인이었고, 살인
장면을 우연히 창문을 통해서 보게 된 이웃집 여인 그레이스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이미
다니엘의 아파트는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경찰은 그레이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결국
그레이스는 스스로 사건을 추적하게 되고 다니엘의 과거에 대한 끔찍한 비밀이 밝혀집니다.

 

 

시스터즈는 일종의 '드레스트 투 킬'의 예고편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난도질 살인이
쇼킹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두 영화에서 모두 나옵니다.  캐리나 드레스드 투 킬에 비해서 덜
알려진 영화지만 시스터즈를 보면 이미 나중의 두 편의 영화를 만들만한 감독이구나 라는
느낌이 옵니다. 유명 메이저 감독의 초기 시절의 저예산 B급 영화를 보는 묘미가 바로
'시스터즈'에서 나타납니다.

 

샴 쌍동이에 의해서 발생된 비극이 원인이 되는 이야기이며 일종의 다중인격을 다룬
영화이기도 합니다.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후에 '카인의 두 얼굴(Raising Cain)'
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드러내놓고 다중인격을 소재로 하기도 했습니다.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역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마고트 키더가 훨씬 젊은 시절에
출연한 영화입니다.  당시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심했던 70년대 초반이었음에도 흑백
남녀가 진한 러브씬을 보여주는 점이 이례적입니다.  90년대 영화인 '정글 피버'에서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의 성적 장면을 다루었다고 화제가 되었을 정도인데 훨씬 전인
73년에 꽤 수위가 있는 흑인 남자, 백인 여자간의 베드씬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과감히 다루고 있습니다.  쇼킹한 살인장면과 함께 시스터즈는 이래 저래 당시로서는
임팩트 있는 B급 공포물이었을 것입니다.

 

전혀 세련되지 못한 영화지만 투박한 70년대 B급 공포물의 묘미를 흠뻑 음미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공포영화팬이나 컬트영화팬들은 놓치지 말아야 할 오래전의 B급
호러물입니다.  캐리 이전에 '시스터즈'가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캐리나
드레스트 투 킬을 만든 감독의 '원조영화'로 기대하고 볼 만한 영화입니다.

 

ps1 : 왜 50-60년대보다 70년대가 더 촌스럽게 느껴질까요? 특히 '헤어스타일'의
        경우는 더욱 그런 느낌입니다.

 

ps2 : 화면분할을 통하여 보여주는 기법이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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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은화 1불(Un dollaro bucato 65년) 마카로니 웨스턴의 낭만 | 지난영화(90년대이전) 2012-05-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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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은화 1불

원제 : Un dollaro bucato

1965년 이탈리아 영화

감독 : 조르지오 페로니

출연 : 줄리아노 젬마, 아이다 갈리, 피에로 크레소이, 주세페 아도바티

 


'황야의 은화 1불'이라는 멋드러진 제목의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원조인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가 만들어진 뒤 1년뒤인 1965년에 발표된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 의해서 시작된 마카로니 웨스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밴 클리프
라는 걸출한 스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배우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입니다.
이에 대응하여 이탈리아 출신의 본토 배우로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해서 부각되었던 인물은
'장고'의 프랑코 네로와 이 '황야의 은화 1불'의 주인공 줄리아노 젬마입니다.

 

줄리아노 젬마는 황야의 은화 1불에 출연하면서 '몽고메리 우드'라는 미국식 이름을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몽고메리 우드라는 이름으로 처음에 알려졌습니다.  황야의 은화 1불
에서는 주인공인 몽고메리 우드뿐만 아니라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도 모두 미국식 이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미국시장을 노린 영화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가 추악한 서부극들과 마초들도 범벅된 영화라면 조르지오
페로니 감독의 황야의 은화 1불은 철저한 권선징악 구도를 가진 일종의 낭만파 웨스턴
성격입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군에서 제대하게 되는 오하라 형제

 

게리와 아내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이어서 또 하나의 마카로니 웨스턴의

스타로 부상하게 되는 줄리아노 젬마

 

 

살기가 넘치는 서부 마을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군이었다가 퇴역하게 된 게리 오하라(줄리아노 젬마)와 필 오하라
형제는 아내가 있는 고향과 새로운 정착을 할 서부로 각각 출발합니다.  고향에 와서
아내를 만단 게리는 동생이 남겨준 은화 한닢을 지니고 서부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서부는 험악한 악당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  보안관까지 이미
한통속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채 함정에 빠진 게리를 총에 맞아 죽을 뻔 하지만
가슴에 있는 은화에 총알이 박히는 바람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이래서 제목이
황야의 은화 1불 입니다.) 그 대신 동생이 악당들 손에 죽게 됩니다.  복수에 불타는
게리는 수염을 깎고 마을로 돌아와 악당들을 처단하고 부인과 극적인 해후를 하는
영화입니다.

 

악당이 등장하고 무차별한 살상을 일삼는 악당의 꼬붕들이 등장하고 용감하고 총 잘
쏘는 정의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동생을 죽이고 마을을 약탈하는 악당들에 대한 복수극
입니다.   당연히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결과입니다.  이야기의 이런
구조는 쇼 브라더스의 무협영화와도 무척 비슷하지만 비정한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쇼 브라더스영화들과는 달리 통쾌한 승리와 권선징악의 결말입니다.

 

몇 초뒤에 죽게 될 사람들

 

몇 초뒤에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서 우선 폼을 재는 주인공(왼쪽)

그리고 1:4의 대결에서 가볍게 악당을 처치하는 주인공 

 

 

 

 

 

처음엔 얻어터지고 죽을 고비를 맞는 주인공.

하지만 끝에가면 이기게 되어 있다.

 

마카로니 웨스턴 답게 내용이 너무 뻔하고 약간 유치하지만 오락적인 재미가 있고
1 : 다수의 속사대결도 몇 번 등장합니다.  좋은 편들도 많이 죽고 악당들도 많이
죽어 나갑니다.  총 한 번 쏘는데 꽤나 뜸들이기도 하는 아메리칸 웨스턴과는
분위기가 다르죠(아메리칸 웨스턴의 대표작인 셰인에서는 총쏘는 씬이 딱 세 번
등장합니다.)

 

오락액션의 강도가 훨씬 높아진 요즘 영화세대들이 볼 때는 조악한 B급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름 그 시대의 낭만과 투박한 액션과 정의의 주인공의 모습이 멋진
영화이기도 합니다.   줄리아노 젬마는 벤허에서의 엑스트라 수준의 역할을 비롯하여
무명으로 시작한 배우이지만 27세에 출연한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그링고' '필살의 무법자' '방랑의 무법자' '황야의 왼손잡이' '서부의 우량아'등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가 되면서 클린트이스트우드, 리 밴 클리프
등과 함께 마카로니 웨스턴의 단골 출연 스타로서 10여년을 보냈습니다.  7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TV나 영화에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때가 줄리아노 젬마의 전성기
였습니다.

 

 

1:3의 대결도 가볍게 이기는 주인공. 원래 이런 영화에서

악당의 총을 매우 느리고 알아서 주인공을 피해 간다. 

 

 

하이눈과 약간 비슷해보이는 후반부

 

주인공이 할거 다 해놓으면 그제서야 우르르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

이것도 하이눈과 유사.

 

 황야의 은화 1불은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담당하지 않은 영화중에서는 '장고'와
함께 가장 주제곡이 인기를 모은 마카로니 웨스턴이기도 합니다.  은은한 휘파람소리로
들려오는 주제곡은 허무한 광야의 벌판이 연상되는 명곡으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폭력물 '바스타드 거친 녀석들'에서 삽입곡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황야의 은화 1불의
오프닝에서 휘파람 소리로 들려온 이 주제곡은 엔딩타이틀에서는 노랫말로 등장합니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3부작을 제외하고는 썩 수준이 높은 영화들은
아니지만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하며 높은 인기를 모았던 독특한 장르입니다.  황야의 은화
1불도 은은한 음악과 정의로운 주인공을 내세워서 인기를 누렸던 마카로니 웨스턴의
대표적인 영화였습니다.

 

ps1 : 영화 후반부가 하이눈과 약간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총신이 짧은 총'이 마지막에 주인공을 살리는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ps2 :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대와 무협의 시대는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거의
        비슷한 시기를 공존하며 '동서양'의 멋드러지고 낭만적인 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이 시기에 뭔가 동서양의 공통적인 무엇이 통한 것 같습니다.  동양의 검과 서양의
        총이 영화관객을 단순함과 통쾌함으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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