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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커티스(Tony Curtis) 헐리웃의 귀공자 | 배우와 감독 2010-10-0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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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커티스(Tony Curtis)

1925년 ~ 2010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 태생, 영화배우

1949년 영화데뷔

주요 출연작 : 뜨거운 것이 좋아, 바이킹, 스팔타카스, 대장 부리바 등

 

 

얼마전 영화계의 빛나는 별이 한 명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토니 커티스 입니다.

 

1925년 생인 그는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헐리웃에서 맹활약하며 '바이킹' '뜨거운 것이 좋아' '스팔타카스' 등 유명한 영화에 많이 출연하여 세계적인 배우로 명성을 쌓았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면서 여러편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1940년 이전에 태어난 고전배우들 중에서 토니 커티스보다 더 많은 영화가 국내에 개봉된 배우는 아마도 존 웨인, 알랑 들롱, 숀 코네리, 커크 더글러스, 진 해크먼 등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뉴욕 브롱크스 출신의 토니 커티스는 곱상하고 귀공자같은 외모로 일찌감치 스타의 길을 걸었던 배우입니다.   1949년에 데뷔한 그는 1950년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서부극 '윈체스터 총 73'에서 젊은 병사로 출연하여 '많이 알려진 영화'의 어느 정도 비중있는 역할로 선을 보였습니다.  이 영화에는 동갑내기 배우인 록 허드슨이 인디언 추장으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토니 커티스와 록 허드슨은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나란히 50년대 초반부터 차근차근 스타의 길을 걸었습니다.   록 허드슨이 키가 크고 남성적인 건장한 분위기의 미남배우인
반면 토니 커티스는 보통 체격의 곱상하고 플레이보이 같은 느낌의 귀공자형 배우로 스타일이 서로 달랐습니다. 

 

1년뒤인 1951년 '도적왕자(The Prince Who Was a Thief)'라는 영화에서 26세의 나이로 대뜸 주인공으로 출연한 그는 복싱영화인 '도전자(Flesh and Fury)'  범죄영화 '목숨을 걸고(Forbidden)' 등의 영화에서 계속해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데뷔 2년만인 20대 중반에 헐리웃의 주연배우로 급성장할 만큼 탄탄대로를 걸어간 셈입니다.  

 

 

그는 1951년 '세기의 로맨스'라는 화제를 뿌리며 미모의 여배우 '자네트 리'와 결혼을 합니다. 자네트 리는 당시 24세의 신예 여배우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필름 느와르 영화 '폭력행위(Act of Violence)'나 '푸른 화원(Little Women, 작은아씨들)' 같은 영화를 통해서 촉망받는 여배우 였습니다.  이렇게 미완의 촉망받는 스타커플의 탄생은 이후에 '로버트 와그너'와 '나탈리 우드'의 결혼이 비슷한 사례였습니다.

 

1950년대에 그가 출연한 주요 작품들은 '바이킹' '뜨거운 것이 좋아'외에도 '잊을 수 없는 모정(Kings Go Forth)' '흑과 백(The Defiant Ones)'  '공중 트라피즈(Trapeze)'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 등 여러 작품이 있었고 자네트 리와 부부공연을 한 영화로도 '풀워즈가의 흑순(The Blacke Shield of Falworth)'   '휴가전선 이상있다(The Ferfect Furlough)' '선풍을 일으킨 질투(Who was That Lady?)' 등 여러 편이 있었습니다.

 

1960년대가 되어서도 토니 커티스는 여전히 스타배우로 맹활약했습니다.  로버트 멀리간 감독의 로맨스 코미디 '인생의 조건(The Rat Race)'  초호화 캐스팅의 스펙타클 '스팔타카스'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 코미디 '그레이트 레이스'등이 주요 출연작인데 특히 '율 브리너'와 공연한 대작 시대물 '대장 부리바(Taras Bulba)'에서 함께 공연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눈부신 미모의 여배우 '크리스티네 카우프만'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네트 리와의 12년에 걸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토니 커티스와 크리스티네 카우프만은 1963년에 결혼식을 올리는데 당시 크리스티네 카우프만은 18세밖에 안된 미성년 배우였습니다.  2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을 한 그들의 부부생활은 4년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토니 커티스는 4번의 결혼을 더하여 총 6번의 결혼을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첫 번째 부인인 자네트 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바로'트루 라이즈'나 '공포의 수학열차'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블루 스틸'같은 영화를 통해서 잘 알려진   제이미 리 커티스 입니다. 늘씬하고 관능적인 몸매의 여배우인 제이미 리 커티스는 신기하게도 부모를 전혀 닮지 않은 여배우입니다.   제이미 리 커티스는 늘씬한 몸매를 지녔지만 외모를 예쁜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인 토니 커티스와 자네트 리는 모두 곱상하고 잘생긴 외모를 지닌 커플입니다. 이 부부는 모두 키가 별로 크지 않은 아담한 배우들인데 이런 선남선녀 커플에서 태어난 딸이 전혀 부모를 닮지 않은 '미모'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외모면서 몸매는 늘씬하게 태어난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1970년대는 토니 커티스에게 쇠퇴기 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대 중반이 넘어서서 그는 뚜렷한 인기의 하락을 보였는데 헐리웃 고전배우들이 50대까지도 많은 활약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비교하면 빠르게 스타덤에 오른 만큼 내리막길도 빨리 찾아왔습니다. 찰스 브론슨과 출연한 '이방인(You Can't Win 'Em All)'과 '보스 레프키(Lepke)'  그리고 악역 조연으로 출연한 '몬테크리스토 백작' 정도가 70년대에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는 TV로도 슬슬 고개를 돌리게 되는데 007영화로 알려지게 되는 로저 무어와 함께 출연한 외화 '전격대작전(The Persuaders)'이 우리나라 공중파에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90년대가 되어 완전히 잊혀졌고 추억의 명화 방송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원로배우 '토니 커티스는 94년 KBS에서 제작한 24부작 대하드라마 '인간의 땅'에서 농장주인으로 출연하여 김혜자와 함께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헐리웃 스타가 한국의 드라마에 출연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드라마가 쫄딱 망하는 바람에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IMDB의 토니 커티스 필모그래피에도 이 드라마 출연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탤런트 김혜자와 토니 커티스가 드라마에서 공연하였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토니 커티스는 50-60년대에 폭발적 인기를 누린 배우이긴 하지만 '연기력'에서 크게 인정을 받은 배우는 아니었습니다.  평생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도 '흑과 백'에서 딱 1번이지만 그것도 함께 공연한 시드니 포이티어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빛이 바랬고,  그외 어떤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은 경력이 전무합니다.


 

 

 

토니 커티스는 대표적인 유명한 작품들에서도 번번이 함께 공연한 배우의 '카리스마'에 눌려서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흑과 백에서 공연배우인 시드니 포이티어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더 주가가 올랐고,  '공중 트라피즈'에서도 함께 공연한 버트 랭커스타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토니 커티스는 흑과 백에 이어서 나란히 '들러리'역할만 된 셈입니다.  그외에도 그가 출연한 영화중에서 최고의 걸작인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는 여장까지 하면서 열연했지만 잭 레몬의 코믹한 연기가 더 돋보였고,  '바이킹'에서도 선역 주인공이었지만 악역을 연기한 커크 더글러스의 존재감이 훨씬 높았습니다.   스팔타카스에서는 젊은 시인을 연기했지만 쟁쟁한 배우들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했고,  대장 부리바에서도 카리스마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배우인 율 브리너가 더 돋보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출연한 80년 작품 '깨어진 거울'에서는 젊었을
당시의 매력은 완전히 사라지고 중년의 키가 작은 평범한 외모가 되었는데 함께 공연한 동갑내기 록 허드슨은 여전히 근사한 풍모를 보여주어서 대조가 되었습니다.

 

토니 커티스는 이렇듯 한 편으로는 2% 부족한 배우라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20대 중반에 일찌감치 주인공으로 승승장구하였고, 많은 영화에서 이름을 알렸지만 명배우들과의 공연에서는 카리스마에서 밀렸고,  연기로 뚜렸한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헐리웃 배우치고는 비교적 일찍 퇴조를 보여준 셈이고.

그렇지만 50-60년대를 풍미한 헐리웃의 중요한 배우라는 위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뜨거운 것이 좋아'를 비롯하여 고급스런 언론소재 영화 '성공의 달콤한 향기' 대작 시대물 '바이킹' '스팔타카스' '대장 부리바' 등 그가 남긴 주옥같은 영화들은 여전히 사랑받는 고전으로 오래 오래 기억될 것이니까요.

 

 
*** 토티 커티스가 출연한 국내 개봉작들 ***
윈체스터 총 73 (Winchester 73  50년)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나이(Kansas Raiders 50년)
도적왕자(The Prince Who was a Thief 51년)
도전자(Flesh and Fury 52년)
알리바바의 복수(Son of Ali Baba 52년)
목숨을 걸고(Forbidden 53년)
풀워즈가의 흑순(The Black Shield of Falworth 54년)
4각의 정글(Squard Jungle 55년)
복면의 기사(The Purple Mask 55년)
폭력시대(Rawhide Years 55년)
공중 트라피즈(Trapeze 56년)
야망에 불타는 사나이(Mister Cory 57년)
그는 알고 있다(The Midnight Story 57년)
잊을 수 없는 모정(Kings Go Forth 58년)
흑과 백(The Defiant Ones 58년)
바이킹(The Vikings 58년)
휴가전선 이상있다(The Perfect Furlough 58년)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59년)
페티코트 작전(Operation Petticoat 59년)
인생의 조건(The Rat Race 60년)
스팔타카스(Spartacus 60년)
선풍을 일으킨 질투(Who was That Lady? 60년)
이오지마의 영웅(The Outsider 61년)
대장 부리바(Taras Bulba 62년)
혼자는 못살아(Sex and the Single Girl 64년)
그레이트 레이스(The Great Race 65년)
이방인(You Can't Wind 'Em All 70년)
몬테크리스토 백작(The Count of Monte-Cristo 75년)
보스 레프키(Lepke 75년)

그외 DVD 출시작
크리스 크로스(Criss Cross 49년, 단역)
성공의 달콤한 향기(Sweet Smell of Success 5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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