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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영화일기 2019-05-0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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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기예르모 델 토로
미국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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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의 미로>는 멕시코 출신의 유명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2006년 영화로, 올해 5월 2일에 우리나라에 재개봉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이 영화의 제목만 들어본 적 있을 뿐 내용은 몰랐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도 이 영화가 처음입니다. 이 영화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명작으로 회자되며 재개봉까지 했지만 첫 개봉 당시에는 국내 평이 안좋았다고 하는데요, 당시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등 다양한 판타지 영화가 큰 인기를 끌던 때라 <판의 미로> 역시 그런 식으로 홍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라는 부제도 그러한 홍보의 일부이죠.)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가 아이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요. 저는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를 정말 못보는 편이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볼만은 했지만 이 영화를 어린이들이 보는 것은 정말 아닌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듯 이 영화는 어른을 위한 판타지 영화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44년 스페인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내전을 겪고 5년이 지난 후였지만 시민군은 산과 숲에 숨어 정권에 계속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곳곳에 정부군이 배치되었죠. 어린 소녀인 오필리아는 임신한 엄마 카르멘, 그리고 새아버지가 된 대위와 함께 산속 기지로 이사를 갑니다. 새아버지인 비달 대위는 아주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임신한 몸에다 건강도 좋지 않은 카르멘을 굳이 "아들은 아버지 곁에서 태어나야 한다"며 위험한 곳으로 함께 옮기게 합니다. 오필리아는 이런 새아버지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고, 비달의 하녀들 중 한 명인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를 잘 돌봐 줍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필리아의 앞에 곤충의 모습을 한 요정이 나타나고 오필리아는 이 요정을 따라 숲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정령 '판'을 만나죠. 판은 오필리아에게 그녀가 지하세계의 모안나 공주의 환생이라며 지하세계의 왕인 아버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필리아가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임무를 끝내야 한다며 미래를 볼 수 있는 '선택의 책'을 건네죠. 그리고 오필리아는 이 임무들을 수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비인간성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비달 대위가 민간인을 죽이거나 시민군을 고문하는 장면은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게 묘사되는데요, 전 손으로 눈을 반쯤 가려 가며 영화를 보았습니다. (별점을 하나 깎은 것도 잔인함 때문입니다 ㅠㅠ) 한편으로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그리고 영화를 다 본 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저런 일이 일어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과 대비되는 오필리아의 판타지 세계를 보면, 우리가 흔히 판타지 하면 생각하는 화려하고 밝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다소 멀고 오히려 기괴한 아름다움(?)이라 불릴 만합니다. 처음에 오필리아를 판의 미로로 안내하는 요정도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판의 모습도 우리의 보편적 기준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오필리아가 임무를 수행하며 만나는 두꺼비나 벌레들, 만드레이크의 뿌리, 지하괴물 등은 모두 징그러운 모습을 하고 있죠. 그래서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힘들고, 끝까지 관객들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들이 이 영화의 어두운 현실과 어우러지며 <판의 미로>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냅니다.


 IMDB의 트리비아에 따르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헐리우드 제작사로부터 영화를 영어로 제작하면 예산을 두 배로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market needs"에 맞추기 위해 영화의 줄거리를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고요. 그리고 영어 자막도 감독 본인이 직접 번역하고 제작했다고 해요. 다행히 <판의 미로>는 북미를 포함해 전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은 후 최근 본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가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스탈린의 죽음 이후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라서 당연히 러시아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극장에서 영어가 나와서 깜짝 놀랐죠. 알고보니 이 영화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캐나다, 미국의 5개국 합작 영화였고 러시아에서는 상영금지(...)를 받았습니다. 상영조차 금지할 정도이니, 실제로 러시아 내에서 이런 영화를 러시아어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이처럼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도 이 세상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 줍니다.


 <판의 미로>에서 오필리아의 엄마인 카르멘은 오필리아에게, 현실은 동화 속 세계와는 너무 다르며 냉혹하고 잔인하다고 말합니다. 그 말대로 이 영화에는 실제 역사가 반영된 고통스러운 사람들과 상황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린 소녀에 불과한 오필리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엄마는 아프고, 새아버지는 무서우며 바깥은 위험하죠. 하지만 오필리아의 판타지 세계에서는 오필리아만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열쇠를 찾고, 분필로 문을 그려내어 동생을 구하고, 결국엔 자신을 희생하여 동생을 살립니다. 처음에는 이 현실과 판타지가 명확히 구분되지만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이 구분이 희미해지며 관객들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판타지인지 질문하게 됩니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역사적 사실을 알 수도 있고, 이야기의 결말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상상력 가득한 효과들에 감탄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절대 잊지 못할 영화입니다.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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