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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백성들이 겪는 애처로운 인생의 굴레 | 고전/문학 2022-05-22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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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파친코 1

이민진 저/이미정 역
문학사상 | 2018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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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인데 대단한 힘이 있다. 작가는 첫 문장의 힘으로 구한말 망국인으로서 차별과 학대를 무릅쓰고 이방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처절한 생애를 담담하면서도 열정적 필치로 풀어나가고 있다.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일본의 오사카로 삶의 터전을 바꿔가면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하소설처럼 이어진다. 탄탄한 소설 구성과 몰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 이면에는 일본계 미국인과 결혼한 재미교포인 작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오랜 고민과 노력이 밑바탕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마다의 한계와 굴레를 지닌 주인공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삶을 이어간다. 가난한 집의 막내딸로 태어나 입을 덜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돈을 받고 언청이며 절름발이인 훈이에게 시집간 양진,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그의 아이를 임신한 양진의 딸 선자, 불임으로 아이는 없지만 남편에게 충실하고 가족을 돌보는 선자의 형님인 경희. 이들에게 삶의 여유나 워라밸은 사치스러운 말에 불과하다. 망국이라는 역사적 상황이 개인의 행복을 망쳐놓았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굴레에서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살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남자 주인공들도 인생의 굴레에 묶여 허우적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선자의 남편인 목사 이삭은 자신의 삶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굴레에 묶여 살고, 경희의 남편 요셉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남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선자의 두 아들인 노아와 모자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조선인으로서 경시당하고 차별받는 굴레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전미도서상 최종후보작에 올랐다는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흡입력이다.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다. 과거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생생하게 전개되는 듯하다. 사랑과 배신, 돈과 생존, 절망과 구원의 이야기가 다른 소설의 주제와 동일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삶을 망친 외생적 요인인 역사적 상황이 오히려 독자들을 쉽게 끌어들이고 공감을 주는 매개가 되고 있다. 

 

왜 이 소설의 제목이 <파친코>일까 생각해 본다. 파친코는 많은 재일동포들이 하는 대표적 사업의 하나이다. 차별과 배척속에서 이민자들이 할 수 있는일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랫일을 하든지, 아니면 유대인이 금융업에 종사했듯이 그 사회의 빈틈을 메워주는 일을 찾아야 한다. 삶의 특성이 고단함이자,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살아가며 자리잡아 가는 것이 이민자의 생활이다. 이 소설에는 망국민이 겪는 어려움과 이민자들이 겪는 고초가 잘 어울려져 있다. 2권에는 노아와 그의 자식들이 미국으로 가서 겪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다.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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