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이스라엘에 몇 번 다녀왔다. 벤구리온 공항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한마디로 단조롭다. 붉은색을 띤 회색계통의 황량한 돌산에 가끔씩 아랍권의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구축된 높은 벽돌벽과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들이 기다리는 체크 포인트... 얼핏 2차 세계대전 후 2,000년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눈에 띤 광경이 바로 이런 것이었으리라... 황량한 들판의 잡초와 적대적 주변여건 속에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이러한 절박함과 간절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역설적 생각을 해 본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키부츠와 모샤브라는 인위적 집단농장을 만들어 황량한 사막을 농업수출의 전진기지로 탈바꿈시켰다. 또한 IT산업과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벤처기업이 왕성하게 창업되고 전세계의 R&D를 선도하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기업가정신이 왕성한 곳으로 성장하여 세계 여러국가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의 몇 가지 경제지표부터 살펴보자. GDP대비 연구개발투자(R&D)비율 4.86%로 세계 1위, 인구 1만명당 과학자수 140명으로 세계 1위, 벤처 창업 및 혁신수용성 세계 최고. 세계 최고기업들의 R&D 센터가 자리잡고 있는 곳. 책 제목처럼 벤처기업이 창업되는 것뿐 아니라 나라전체가 혁신기업들로 창업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 경기도 규모의 국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차대전 후 독립한 이스라엘이 60여년만에 세계 최고수준의 경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스라엘 경제의 강점을 분석한다. 개별기업의 성공사례, 독특한 군대문화, 과거 유대인의 역사 등을 통해 드러나는 특성들을 종합해서 다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안전보다 도전을 지향하는 문화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를 '후츠파' 정신이라고 한다. '주제넘은, 뻔뻔한, 철면피, 놀라운 용기, 일종의 오만함...' 이런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이것은 과거 2천년간 조국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꾸어온 생존 DNA가 아닌가 생각된다. 독립후 이스라엘에 돌아온 그들에게도 주어진 상황은 비슷했다고 본다. 권위에 대한 도전, 격식의 파괴, 실패에 대한 용인 등 이런 분위기와 문화는 가장 권위적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스라엘 군대를 표현하는 특징이기도 하였다. 상명하복의 계급위주의 조직이 아니라 무엇을 잘 할 수 있느냐에 따라 역할이 주어지는 의사결정 구조, 서열과 상하관계가 최소화되는 문화, 전쟁 결과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되짚어보는 문화 등은 벤처기업과 지식경제가 요구하는 바로 그 생존 DNA이기도 하였다.
둘째는 학문과 기술의 통합, 융합에 있어서의 유연성이다. '유대인 2명이 모이면 3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스라엘 국민의 대부분은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실 과거 2,000년 동안 세계 70여개국에 흩어져 살아온 디아스포라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특성과 배경을 갖게 된 이질적인 존재들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학문과 기술에 있어서의 통합과 융합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런 특성은 지식기반 사회에 있어서 필수적 요인이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셋째는 유대인을 대표적 트레이드마크인 탈무드식 가정교육이다. 우리와 달리 학교교육에 있어서 토론과 구술평가가 중요시된다고 한다. 대화식 교육과 엉뚱한 질문이 장려되는 그러한 분위기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하는 벤처기업에게 요구되는 특성임에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전기자동차 기업인 <better place>의 창업자 샤이 아가시(Shai Agassi)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창의성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천연자원 부족, 인적교육의 강조, 불안한 안보상황,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투자 등 우리와 공통점을 많은 이스라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그들이 존중하고 실천하는 창의성과 엉뚱함의 존중 정신이라고 생각된다. 인구가 부족하고 주변여건으로 대규모 생산공장을 가지는 것이 어려운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바로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과 소프트웨어 같은 작은 분야에 특화해 질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또한 추구해 나가야 할 길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의 이스라엘 경험이 우리에게 타산지석으로 삼아아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이스라엘 군대와 한국 군대의 차이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가 대학준비에 온힘을 쏟는 기간에 이스라엘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군대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군대 경험이 사회생활과 단절된 우리와 달리 이스라엘 청년들에게 군대는 새로운 도전과 창의력,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고 결국 하이테크 벤처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한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를 몸에 배게 하기 보다는 자기 주장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곳, 소총을 잃은 병사보다는 작전에 실패한 장군이 더 큰 책임을 지는 곳, 군대가 인생의 성장 사다리의 한 몫을 담당하는 것, 이런 것들을 어떻게 구현해 나가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