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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메모를 며칠 후 봤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메모 리딩으로 리드하라 2018-01-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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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선생님이 조언하신것처럼 엑셀에 매일 읽는 성경읽기와 관련해서 기록을 조금씩 하고 있는데요. 과연 독서의 질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 경기도의 한 독자님




저도 이 분처럼 논어나 경서, 인문고전을 또박또박 메모하고 틈틈이 코멘트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문장이나 생각에 대한 내 최초의 해석인 셈인데요. 놀라운 점은 해석도 하나의 생명이기에 성장한다는 점입니다. 메모를 다음에 보면 이전의 메모가 생각의 출발이 되고, 다음에 보면 또 그 지점이 생각의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양화> 편의  한 구절을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면 덕 있는 사람의 말을 버리는 것이다."(논어 양화편)

♡ 나의 해석 : 무비판적인 수용은 범죄다.


유명한 도청도설입니다. 이렇게 써두고 몇 번 읽으면 나의 무의식은 그 다음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물이 흘러가다가 파인 홈을 만나면 일사불란하게 흘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말을 들으면 퍼뜨리는 게 맞는데 왜 이 좋은 걸 하지 말라고 한 걸까요? 말한 사람이 고민 끝에 얻어낸 좋은 말은 당장 듣는 사람의 좋은 말이 될 수 없고, 듣는 사람 역시 자신의 좋은 말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이것이 바로 좋은 말이 전해지는 방식이죠. 좋은 말이 나쁜 사람에게 가면 당장 나쁜 말로 둔갑합니다.


저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접했던 말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반복하는 앵무새 같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분들이 자신에 차서 신나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있는 분들은 옳은 말로 착각합니다. 저도 모르게 좀비PC가 되어 여론조작의 디도스 공격에 이용되는 줄도 모르고. 주변에 있는 분들은 대개 순진한 분들이니까 퍼뜨리진 못하지만  동조합니다. 이렇게 여론이 가랑비이 옷 젖듯 조작됩니다.


방송사들에서 조잡한 내용을 가지고 동네 시장 양말장수 아저씨처럼 쉴틈없이 떠들면 지나가다 얼핏 들은 사람에게 쏙 박힙니다. 가끔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진짜 믿는 사람이 있을까 어이 없을 때가 있지만 그건 안일한 생각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에게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해서 들은 뒤에야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메모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도청도설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메모를 한 것 중에서 제가 글에 쓸 내용과 관련된 것은 빨간 볼펜으로 ○표시를 해둡니다. 그러고 한참 기다리죠. 성급히 쓰려고 하면 글을 망친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이 열심히 작업해서 숙성이 되면 그걸 가지고 요리를 하듯 글을 이어갑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글쓰기는 의식과 무의식의 협업이다


메모는 의식이 시작하지만, 마무리는 무의식이 관여합니다. 그러니까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메모가 있는 셈입니다. 메모를 생각의 계단으로 삼아서 자주 들여다보세요. 계단이 무르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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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고 나면 남는 게 없을까? | #메모 리딩으로 리드하라 2018-01-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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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가 토론 등 사회의 작동 방식을 파괴하고 있다

20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데 도움을 준 것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행동은 프로그램화되고 있다

(차마스 파리하피티야 전 페이스북 부사장의 스탠퍼드 강연)


페이스북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페이스북 초대 회장을 지낸 션 파커)



신속하면 부정확해진다


당신은 책 한 권을 빨리 읽기를 원하나요? 아니면 책 한 권을 맛있게 읽기를 원하나요? 보통의 사람들은 책을 맛있게 읽기 어렵습니다. 많은 책들이 이미 머리속에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할 책이 읽고 있는 책을 밀어내는 압력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책을 읽고 나서 남는 게 왜 하나도 없을까? 하지만 그건 사소한 고민일 뿐입니다. 새로운 책장을 펼치면 흥분할 만한 내용이 펼쳐지니까요.


가끔 시장을 지나면서 양말 파는 아저씨를 봅니다. 아저씨는 마치 양치기 또는 목동 같고 행인들은 소나 말, 양 같아 보여요.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말하고 빠른 속도로 콩을 튀기듯 소리를 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멈춰서서 양말을 한두 켤레 사갑니다. 꽤 장사가 잘 되는 편입니다. 그 분들 중에서 집에서 양말을 사야겠다고 계획한 이가 얼마나 될까요? 사람의 중추신경이라는 것은 아주 약하기에 조그만 자극에도 흔들리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양말 장수는 인간의 그 특성을 잘 알고 있지요. 양말 장수뿐만 아니라 대중을 상대하는 미디어 기업이나 출판업자에게 양말 장수의 지식은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빠른 속도에 의존하는 이 시장은 꽤 넓은 편입니다. 이런 시장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머리속이 하얘지거나 남는 게 없는 이유는 당연합니다. 신속한 것은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산책을 하다가 나무 아래 또는 풀꽃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땅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5초 정도 정지해서 집중하면 그때야 개미의 세계가 보입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절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나는 독서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서하는 시간 안에 그저 빨리 읽으려고만 한다면 책의 5%도 읽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명확히 단절되는 것입니다.





정신적인 좀비 인간의 탄생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는 등 정보를 이런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게 무서운 까닭은 또 있습니다. 책이 책을 밀어내는 압력보다 더 강한 압력은 신문이 신문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세월호, 故 이민호 군 사건이 우리의 관심사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생각해 보세요. 신문이 우리의 중추신경에 있는 중요한 가치들을 다 밀어내었기 때문입니다.


포털 뉴스를 클릭하면서 빠르게 받아들이면 비판정신을 가지고 신문을 보는 기회를 얻을 수 없습니다. 마치 뇌에 들이붓는 것처럼 편협한 정보와 편협한 견해를 가진 인간이 되죠. 이런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편견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이 쌓이면 인간은 '좀비PC' 그 자체와 같아집니다. 해커가 좀비PC를 통해서 디도스 공격을 하는 것처럼, 주류 미디어와 주류 출판업자가 좀비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의도에 따라서 여론을 조작합니다.


빠르게 읽으면 미디어 리터러시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건강한 언론이라는 것은 정보를 심삭숙고하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독자층이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요.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을까요? 저는 책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책을 맛있게 읽는 독자층이 존재한다면 광고비를 쓸 수 없는 출판사가 좋은 책을 냈을 때 금방 발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출판사가 왜 베스트셀러에 목매달고,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인기 작가에게 선인세를 30억원 지불할까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보여준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에 지속적으로 필요한 존재는 선경지명을 갖춘 리더가 아니라, 의견을 갖춘 평범한 시민이라고 말했죠.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나요? 지금 대한민국은 좀비인간을 대거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이 좀비인간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기괴한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리게 읽기의 한 가지 방법으로 제안하는 저의 메모 독서는 '자유'를 위한 도전입니다. 신문과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남의 의도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 자신을 위해서 받아들이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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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여섯 개의 문학 영화평 | 아빠의 아이 공부 2018-01-13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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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을 보았습니다. 

마음속에서 시심이 폭발해서 견딜 수가 없군요. 

그래서 다섯 개의 영화를 더 묶어서 시 형식으로 짧게 감상을 써봤어요.

아마추어 시인이니까 이런 것도 괜찮겠죠?





네가 나폴리 바다의 숨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글자들은 모두 달아나버려도 좋았다 

- 영화 <일 포스티노>




나는 소리만 들어도 네가 뜨는지 내리는지 알았다. 

오랫동안 활주로에 서서 네가 날기만을 기다렸으니까. 

-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내 심장은 백번도 더 불붙었지만

끝내 타버리지 않았다. 

재가 되어버린 네가 그립다. 

- 영화 <지니어스>









사랑은 권리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는 사랑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사랑이 이상하게 꼬여버렸어. 

- 영화 <시인의 사랑>











시집만 보지 말고 나를 봐주세요. 

나만 보지 말고 내 친구를 봐주세요. 

메아리 소리가 아직 남아 있을 거예요.

귀를 기울이면 - 영화 <동주>








아하! 몰랐나요?

내가 여태 시를 들려줬잖아요?

하지만 받아적지 않았어도 괜찮아요. 

방금 당신 심장이 적었잖아요. 물방울에.

- 영화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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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할까? 책 한 권 더 읽을까? | #메모 리딩으로 리드하라 2018-01-1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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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독서 메모


아직도 생각난다. 1998년 7월과 8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가난을 알고 싶어서 막노동을 했다. 겨울에는 선과장과 감귤 과수원에서 단순 막노동을, 여름에는 도로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난을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가난했던 것 같다. 특히 영혼까지 가난한 동료들에게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아픈 상처마냥 쓰라리다. 막노동을 끝내면 해질녘이 된다. 다음날 새벽같이 나가야 하니 밤늦게까지는 읽지 못하고 중간에 끊어야 한다. 일분 일분이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에 나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썼다’. 당시 필사하기는 꽤 유행했는데 누구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 베껴 썼다고 했고, 누구는 박경리의 <토지>를 다 베껴썼다고 했으니 믿거나 말거나다. 내가 <에티카>를 ‘메모’하기로 한 까닭은 책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베껴쓰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고, 기껏해야 마음에 드는 구절을 베끼는 것이니 내 독서 방법은 엄밀히 말하면 ‘초록(抄錄)’ 또는 ‘초서(抄書)’ 라고 해야 옳다. 



▲ 이런 노트를 5~6장 정성스레 초록한다고 생각해 보라. 가뜩이나 글씨도 괴발쇠발인데. 인내심이 금방 동난다. 



좋은 말이 자라는 마음 밭에서 딴 열매


누군가 말했다. 필사는 극단적으로 느린 독서법이라고. 초서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애를 태울 만큼은 느린 독서다. 읽고 싶었던 책이 많았던 스물한 살의 나는 메모를 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노트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다른 책을 잡았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노트를 던졌던 분노의 손맛만큼은 생생히 기억한다. 하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다음 구절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스스로에게 욕을 하면서 메모를 했지만 7~8월 여름 내내 책 한 권 읽고 나서 이 방법을 그만뒀을까? 그렇지 않다. 그 시기의 독서방법을 20년째 하고 있다. 나는 노트에 독서를 새긴 것이 아니라 내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겼으며,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서 나에게 향기를 내뿜고 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완독한 사람들이 간혹 경험하는 느낌이 있다. 마치 공중을 나는 듯한 느낌에 소리를 지르게 되는 현상을 누군가는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고 한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서 인간 감정과 마땅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윤리를 축조한 <에티카>의 마지막 대목에는 ‘신을 향한 지적 사랑’이 있다. 감정과 이성이 합수(合水)하며 완성되는 대목이다. 도서관에서 소리를 지를 뻔한 걸 겨우 억제하고 집으로 버스를 타고 왔는지 마녀 지팡이를 타고 왔는지 몰랐던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정말 좋은 구절은 눈으로만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메모를 하게 했는데, 메모가 심장에 새겨질 줄은 몰랐다. 나의 심장은 좋은 꽃과 열매가 자라는 밭처럼 좋은 말들이 자란다. 거기서 수확한 말들은 나의 말이라고 불러도 문제가 없지만, 뿌리가 있는 말이다. 작가의 말은 수많은 말들과 함께 자라는 향기로운 꽃이다. 



나의 저작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리의 저작이라고 불러야 한다. -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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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 읽지 말고 ‘몇 분, 몇 번‘ 읽기 | #메모 리딩으로 리드하라 2018-01-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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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권 수' 따지면서 읽지 말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ㅡ 발터 벤야민







해마다 연말만 되면 '독서결산'이라는 제목의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2017년에는 100권 중 몇 권 읽었고, 2018년에는 인문교양 50권 도전, 100권 도전 따위의 제목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몇 권 읽었다는 말 자체가 무상하게 느껴진다. 만약 2017년에 55권의 책을 읽었다면 55라는 숫자가 나의 독서를 설명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특히 '메모 독서'를 할 때 '권 수'를 생각하면 그만두고 싶어질 것이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독서 생활을 위해서 새로운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 ‘접속 시간’ 또는 ‘회수’ 단위로 접근해보자. 책을 즐겨 찾는 웹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쉽다. '권 수'로 독서를 생각하면 한 권 읽기도 전에 다음 책을 의식하지만 접속 시간이나 접속 회수로 생각하면 한결 여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에서 페이스를 빼고 "북"에 접속한다면?


이 새로운 개념은 독서를 하는 목적에도 부합한다.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많이 읽기 위해서인가? 자기 키만큼 많은 책들을 읽으면 내면이 풍요로워질 것인가? 그보다 현실적인 목표는 '내 마음의 한 줄'을 찾는 것 아닐까? 책을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한 줄의 문장을 만나면 책을 잠시 덮고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본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독서의 모습 아닐까?


예전에 책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 100권 읽기 도전 비슷한 걸 해봤다. 책을 읽는 내내 100이라는 숫자가 따라다녀서 독서에 집중할 수 없었던 조바심. 이렇게 읽다가 잃을 수도 있겠구나. 독서를. 마음이 조급해지고 권 수에 집착하게 되고, 정해진 기한이 다가오면 책을 읽는 건지 숫자를 읽는 건지 모르겠다. 만화책이나 얇은 책을 슬쩍 집어넣어서 억지로 권수를 맞추면 왠지 쓰라린 패배감이 들고 스스로 우습다는 생각에 슬펐다. 다시는 책의 권 수로 나의 독서를 재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권 수를 가지고 독서를 하는 폐해는 이처럼 크다.



몇 권 대신 '몇 분, 몇 번'을 쓰면 달라지는 점



예전에 독서 취미를 갖고 싶어 하는 지인을 도와준 적이 있다. 독서를 하고 싶은데 바빠서 읽을 시간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였다. 나는 이른바 '전투 독서' 또는 '틈새 독서'를 권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 안,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각종 짜투리 시간을 대비해서 뻗으면 닿을 거리에 책을 두고 틈틈히 읽으라고 했다. 만약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0분의 책을 읽었다면 10분이라는 독서시간이 내 생활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신기한 것은 독서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10분으로 출발하지만, 20분이 되고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된다. 어느새 독서가 생활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몇 분 동안 책에 접속했는지를 헤아리는 것은 독서 습관을 강화시키는 데 유용한 방법이다.


'몇 번'은 '몇 분'을 보완해준다. 오늘 나는 몇 번 책을 잡았는지 물어볼 때는 '혹시 한 번도 책을 안 잡은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유도한다. 이 척도는 독서가 0으로 빠지지 않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책을 붙잡아 한 줄이라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루에 책을 10번 정도 보아야 한다는 기준은 물론 없다. 0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위 척도에 따라서 독서가의 기본 독서량을 정리해 보았다.


독서가는 매일 0분, 0번에 빠지지 않는다.


메모를 하며 독서를 하다 보면 한 권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접속 시간으로 따지면 오히려 마음이 여유롭다. 메모를 하는 동안은 독서에 접속해 있기 때문이다.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메모를 할 수 있어서 독서 척도를 바꾼 셈이다. 굳이 메모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몇 권 읽은 것이 자랑이 되지 않는 독서 생활을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내가 쓰는 독서 척도를 제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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