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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위 신_김규항 | 칼럼/논평등_펀글 2011-03-18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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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때 누군가와 종교에 대해 이 비스끄무리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가만...근데...
맨 마지막 단락 밑줄친 것을 바꾸어 이야기하면 어찌되는 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러면...
역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인가?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대개의 사람들에게 신은 우리 삶의 외부에서 우리 삶을 관장하는 절대적 존재다. 그런 신관은 종교를 사람을 해방시키는 게 아니라 구속하는 도구로 만든다. 그러나 부처도 예수도 그 따위 신은 없다고 했다. 부처는 "(그런) 신은 없다'고 했고 예수는 '신은 그런 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신관이 문제다. 아래는 예수전에서 신관神觀을 언급한 부분.)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게 뭔가를 말하기 전에 하느님이 누군가,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말해야 한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하늘은 땅과 분리된 범접할 수 없는 초월의 세계였고, 하느님은 그 세계를 상징했다. 하느님은 하늘에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늘이란 일정한 방향을 가지거나 어떤 분할된 공간이 아닌, 단지 지구의 대기권이거나 외기일 뿐이라는 걸 안다. 하느님은 하늘에 있다고도 땅에 있다고도 할 수 없으며, 오히려 모든 물리적 제한을 초월해 모든 곳에 동시에 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롯해 기독교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어 온 서양 세계에서 하느님은 우리 삶과 우리가 사는 세계의 외곽에서 절대적인 힘으로 우리 삶과 세계를 마음대로 관장하는 존재다. 그러나 하느님이 그런 존재라면,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은 그가 자행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의 묵인 아래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하느님을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세속적인 탐욕에 초탈하여 진지하고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누구보다 종교적일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 무신론을 선택한다. 오히려 세속적인 욕망과 이기심에 가득한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강퍅하게 주장하며 ‘주님, 주님’ 부르짖곤 한다. 과연 하느님은 이런 정신적 참극을 벌이게 하는 그런 존재일까?

하느님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성서는 첫머리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창 1:27) 물론 여기에서 ‘모습’은 눈, 코, 입 같은 외적인 생김새를 말하는 게 아니라 본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람은 하느님의 본성을 담아 지어졌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선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해진 서양식 신관神觀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양 정신에서 특히 한국의 민간 사상과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신관은 우리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귀한 실마리를 준다. 하느님은 우리 삶과 세계의 외곽에서 우리를 절대적 힘으로 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본디의 나’로 살아있는 하느님인 것이다. 우리 눈앞에 일어나는 수많은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을 자행하거나 외면하는 분이 아니라 불의와 학살과 기아와 참상 속에서 함께 고통받는 분이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이런저런 종교적 형식에 기대어 나를 초월적인 상태로 끌어올리는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지금 내 삶을 지배하는 온갖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들을 씻어 내고 내 본디 모습으로, 하느님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돈이나 권력, 명예나 세속적인 성공 따위에 대한 사랑을 나에 대한 사랑으로 착각하는 삶을 끝내고 나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이다. 하느님은 내 안에 존재하며 또한 모든 다른 내 안에 존재한다. 내 아내에게도 내 자식에게도 내 부하나 노예에게도, ‘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 모든 낯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존재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동시에 모든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출처 : 규항.넷
http://gyuhang.net/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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