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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점선과 장영희가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생일』 | 기본 카테고리 2010-01-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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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처음 신문에 영시를 연재한다고 했을 때 ‘우리말로 된 시도 안 읽는데 영어로 된 시를 과연 읽을까?’ 하고 갸우뚱했다. 그러나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004년 9월 초 척추암이 발병해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장영희 교수는 칼럼을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그렇게 1년 동안 신문에 연재한 칼럼은 화가 김점선의 그림이 더해져, 자타가 공인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생일』로 태어났다.

영시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은 책, 『생일』

“‘영시’라고 하면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너무 멀게 느껴지죠.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시는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리를 놓고 싶었어요. 영문학사에서 유명한 시인이 쓴, 퀄리티있는 시를 골라서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시에 대해 가지는 부담을 없애주려고, 시인에 대한 설명이나 시에 대한 문학사적 해설을 최대한 배제했다. 백지에 색연필로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고. “감동을 주면서도 어렵지 않은,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시를 고르는 것도 도전이었고, 영한 대역의 형식이었기 때문에 직역과 의역 사이의 교묘한 선을 맞추는 것도 도전이었어요.”

신문에 연재하는 형식이라 제약이 있었다. “화창한 봄날에 겨울에 대한 시를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고, 시국이 어수선한데 사랑 타령만 할 수는 없는 것이잖아요.” 연재된 영시들은 중학교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단어로 쓰인 것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원문의 맛을 느껴주었으면 하는 장영희 교수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시를 읽고 그날 하루를 의미있고 재미있게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칼럼을 쓰기 위해 시를 찾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느꼈고, ‘아, 내가 이런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장영희 교수의 전공은 영시가 아니다. 19세기 미국 소설을 전공한 그녀는 철저히 독자의 입장에서 시를 읽고 글을 썼다고 했다. “문학을 전공하면 작품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에 길들여집니다. 그렇지만 책에 실린 시는 그냥 독자의 입장에서 감성적으로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면서 예전에 알고 있던 시가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투병이라는 힘든 시간 속에 쓰인 글들도 삶에 대한 희망과 사랑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장영희 교수는, 시인은 ‘바람에 색깔을 칠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장영희 교수는 시를 더욱 아름다운 빛깔로 증폭시켜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조용히 앉아있던 화가 김점선 선생이 툭 하고 말을 던졌다. “장영희가 글을 참 잘 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87페이지에 있는 오든의 시(‘슬픈 장례식’)야. 그런데 내가 오든을 알아서 좋아한 것이 아니야. 장영희가 쓴 해설이 좋아서 오든을 좋아하게 됐지.”

우정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생일』

『생일』이 더욱 아름다운 책이 된 것은 장영희 교수와 화가 김점선 선생 사이의 특별한 우정 덕택이다. 그림을 먼저 그리겠다고 나선 것은 김점선 선생이었다. “아무리 친해도 나는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안 그리거든. 그런데 이번 작업은 내가 먼저 그리겠다고 했어. 정말 시를 잘 고르고, 해설을 아주 잘 썼잖아.”

질세라 장영희 교수도 말을 보탠다. “선생님은 화가시지만 시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뛰어나세요. 따로 설명을 드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요. 글은 내가 알아서 하고, 그림은 선생님이 알아서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보고 정말 100%, 아니 그 이상을 표현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원고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처음에는 시에 맞춰 표제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했어. 내가 화가라는 것도 잊고 시에 파묻혀 완전히 마비가 되더라고. 여섯 달에 그림 네 점 그렸으니 말 다했지. 몸부림을 치면서 시에서 그림을 꺼내려고 발버둥을 쳤어. 나중에는 마감 한 달을 남겨놓고, ‘내가 이러다가 죽겠구나’ 그랬다니까. 엉덩이를 놓아야 하는 소파에 머리를 처박으면서 끙끙거려도 그림이 안 나와.”

마감 한 달 전, 극적으로 그림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600 파일을 그려 그 중 300개를 출판사에 보냈고, 책에는 40여 개가 사용되었다. “한 달을 남겨놓고, 화가로 돌아가자, 아무거나 그리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그전에는 원고가 인쇄된 A4 파일을 밥 먹으러 갈 때도 들고 다녔는데 그런 마음을 버리고 다양하게, 생각나는 대로 그리기 시작했어. 하도 파일을 많이 올리니까 출판사에서 깜짝 놀라. 그려서 올리고 그려서 올리고, 그땐 내 인생이 웹하드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렸어.”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르네상스를 경험하다

그렇게 봇물이 터지고, 그 뒤에는 미친 듯이 하루에 10점도 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 3시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그렸던 형식을 깨고 새로운 그림이, 나뿐만 아니라 세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그런 그림이 그려지는 거야.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와. 그래서 방안을 막 서성거렸지.”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듯, 화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장영희 교수가 질문했다. “그래서 그때 그린 그림이 어떤 그림이에요? 어떻게 그리신 거예요?” “누가 물어도 절대로 안 가르쳐 줘.”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이미지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렇지만 머리에 있는 이미지를 어떻게 그려야 할지 정말 막막했었다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했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주변에 있는 모든 기기와 문방구.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동원했어. 개중에는 ‘지구상에서 처음 나온 기법’도 있어. 책에 실린 그림 중에 한 번으로 끝난 그림이 없어. 초벌구이하고 재벌구이하듯 그렸어.”

시는 화가의 마음을 계속 자극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많았어. 정서적인, 감정적인 르네상스를 경험했다고 할까.” 이번 작업을 통해 김점선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했다.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 진화했다는 것을 느껴. 내 그림을 많이 봐온 사람들이 다 그래.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이번 작업이 나를 끌고나갔지. 고통이 환희로 다 바뀌었어.”


책에는 처음 소파에 엉덩이 대신 머리를 파묻으며 그렸던 그림과 작업 후반기에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온 그림들이 적절히 섞여서 실려 있다. “정말 저는 선생님하고 작업을 하면서 그림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안 했어요. 시에 대한 안목, 인생에 대한 안목이 정말 대단하셔서 시가 표현하려는 감정이 가시적으로 완벽하게 표현됐어요. 시가 우리에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눔이고,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부추기는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의 그림은 정말 명쾌하고 유쾌하게 그런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정말 제 책에 선생님의 그림이 더해진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시대를 뛰어넘은 비범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

『생일』에 실린 시인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시인이 있다.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19세기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매일을 살면서 2,000여 편이 넘는 시를 남겼어요. 이 사람의 일상은 정말 범상하기 짝이 없었어요.”

김점선 선생님으로부터 대번 태클이 들어온다. “그게 어떻게 범상하니? 매일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범상하지 않지. 나는 에밀리 디킨슨을 보면 오대산 한암 스님이 떠오르더라. 그분은 문지방을 안 넘으시면서 수행하셨잖아.” 장영희 선생님이 보충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제가 범상하다고 한 것은 일상의 내용이고, 그 삶 전체를 보면 비범하기 그지없었죠. 서른 살이 넘어서는 흰색 옷만 입고, 바로 옆에 있는 오빠 집에도 왕래를 안 하고 집에만 틀어박혀서 시를 썼다고 해요.”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짧고 암호처럼 난해하다고 알려졌지만 개중에는 단순하고 감성적인 시도 있다. 책에는 그런 시들이 실려 있다.

“에밀리 디킨슨이 쉬운 시인은 아니죠.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을 두 사람 꼽을 수 있는데, 한 사람이 휘트먼이고 다른 한 사람이 에밀리 디킨슨입니다. 그만큼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요. 취향의 차이겠지만, 저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무척 애틋하고 섬세하고, 아주 내적이어서 마음에 들어요.”
“휘트먼은 너무 정치적이지.”
“맞아요. 굉장히 프로파간다한 시를 많이 썼죠. 미국 대통령 취임식 때 휘트먼이 많이 인용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잖아요.”
“거기에 비해 에밀리 디킨슨은 예술가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람이지. 인간 내면으로 그토록 깊이 파고드는 사람이 또 있을까? 지금 읽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잖아,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21세기에 예술가들이 죽도록 하고 있는 실험을 19세기에 혼자서 다 했잖아.”
“에밀리 디킨슨은 참 치열한 사람이었어요. 분명 누군가를 사랑했음에도 시대적 정서 때문에 끝내 밝히지 못했죠. 여섯 살 연하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결혼한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은 남편과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시로 유명하지만 역시 저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더 끌리네요.”
“브라우닝의 시는 확실히 먼저 다가오고, 그 감성이 쉽게 느껴지지. 그렇지만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시인은 에밀리 디킨슨이 아닐까? 예술가라면 누구나 지나치게 깊어지는, 위험한 쏠림이 있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의식을 확장해나가는 사람이 예술가야.”

장영희 교수는 에밀리 디킨슨 외에도 새러 티즈데일의 시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새러 티즈데일은 강렬하고 극적인 감정을 시에 쏟아 부은 사람이죠. 감정의 롤러코스터라고 할까요? 시뿐만 아니라 생활도 극적이어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람의 ‘연시’가 아주 유명해요. 정말 아름답죠.”

장영희가 본 김점선, 김점선이 본 장영희

“장 교수님이 보시기에 김점선 선생님은 어떤 분 같으세요?”
“밖에서 보면 선생님은 강하고, 선이 굵고, 괴짜처럼 보이지만, 내가 아는 선생님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낄 줄 아는 분이세요. 마음에 착함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죠. 그리고 어찌나 명쾌, 유쾌, 통쾌하신지 같이 있으면 정말 즐겁고 신나요. 선생님은 무척 기발하시고, 선생님이 하면 모든 것이 재미있는 놀이가 되죠. 평범한 것도 선생님의 눈으로 보면 기가 막힌 광채가 뿜어져 나와요. 정말 훌륭한 예술가시고, 정말 훌륭한 인간이세요.”

어느 글에서 김점선 선생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장영희 교수는 그 말에 100% 동의했다. 그런 장영희 교수의 말이 김점선 선생은 이렇게 대꾸했다.

“근데, 그건 나 개인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단 예술가가 원래 그래. 그리고 그런 것은 원래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성이야. 남들은 그것을 잃어버린 것뿐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있을 뿐이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죠. 저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속의 착함이랄까, 인간이 가진 본성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가져야 하지. 나는 정말 인간의 진수는 ‘착함’에 있다고 봐.”

이번에는 김점선 선생에게 장영희 교수에 대해 물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나는 말이야, 교수나 학자는 인류가 가진 유산을 자기 몸속에 저장해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봐. 나는 예술가니까 어떤 작품을 읽어도 내 맘대로 곡해하고 왜곡시켜도 상관없어. 오히려 그러는 쪽이 창작에는 도움이 될 때도 있지. 그런데 교수나 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정석을 따라야 해. 그렇게 해서 인류에게 가장 좋은 유산을 배설하는 것이야. 이 세상에서 발붙이고 살기 위한 나침판, 파일럿, 등대 같은 사람이지. 나는 퇴폐할 자유가 있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학문과 학교에서 자기 자리를 확실히 지켜주는 사람이지.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개인 속에 있는 음습하고 퇴폐적인 구석이 사회적으로 걸러지고, 인류가 나아가는 방향이 올바른 쪽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해.”

“사실 저는 제도가 저의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해 제도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한 인간이에요. 제가 가진 장애 때문에 젊었을 때부터 몇 번이나 제도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 강하게 반항했죠. 기가 막히게 제도에 나를 맞춰서, 정형화해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쳤던 것 같아요.”

“이 사람이 가진 재능 중에 가장 대단한 것이 ‘현실감각’이야. 흔히 예술가에게는 현실 감각, Sense of Reality가 필요 없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지.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는 현실 감각이 필요해. 감각만 발달하면, 자신이 가진 미감에만 빠지면 결국 좌절하고 말지. 모든 아름다움이 인류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야. 현실 감각이 없는 미는 일부에게는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인류 보편의 아름다움으로는 편입되지 못해.”

김점선과 장영희가 만나면 무서울 것이 없다

이렇듯 상반된 두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비결이 궁금했다. “나와 장영희 교수는 서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지. 마치 철길처럼 서로 평행을 유지하며 죽 뻗어나가는 우정이야. 어느 한 쪽에게 기대거나 구부러지는 그런 우정이 아니야. 서로에게 자극이 되어주는 우정이지. 나는 이 사람하고 20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해도 하나도 지치지 않고 지루하지도 않아.”

이렇게 ‘무적의 우정’을 자랑하는 두 사람은 사랑에 대한 49편의 시가 담긴 『생일』에 이어, 희망에 대한 시들을 담은 『축복』(가제)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저는 시의 치유력을 믿게 되었습니다. 시에 담긴 사랑과 희망을 독자에게 전할 수 있다면 정말 제게는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라고 장영희 교수는 말했다.

시는 당신을 위한 최고의 선물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너무 일상적이라서 무감각하게 맛도 향기도 촉감도 소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버리는 무심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를 통해 우리는 바람의 색깔을 보고, 꽃잎에 담긴 우주를 깨닫고, 흘러간 시간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되살린다. 우리는 시를 통해 인생을, 우리 자신을, 우주를 선물 받는 것이다.

『생일』에서 특별히 와 닿는 시들이 각각 다를 것입니다.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이별의 상처를 안고 다시 사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픈 사람도 있고,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 이들에게 『생일』은 예기치 못한 순간 눈앞에 디밀어진 꽃다발 같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인생에 대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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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이걸 다 만들었다. | 기본 카테고리 2009-07-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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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형수술 하고 싶은 날 읽는 책 | 기본 카테고리 2007-06-2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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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부제 - 얼굴과 입, 몸 그리고 발에 빅뱅이 일어난다면?

사랑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는 발이 가렵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신발을 벗는다. 나의 발은 타인의 몸을 지향한다. 하지만 첫날은 참는다. ‘듣고 있나요, 당신? 천국에 홀로 있는 당신을 애도할 겁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참는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나의 맨발은 참느라 바닥에 문지른 나머지 무좀 환자의 발처럼 거칠게 갈라진다. 하지만 언제든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언제든지 신발을 벗을 수 있도록 나는 사계절 내내 가지각색의 여름 샌들을 신고 다닌다.

사람의 몸이 가장 적절하게 아름다운 순간의 묘사를 해본다면 이렇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은 과거를 달래주고 미래도 달래줄 수 있다! 사랑하는 몸은 과거에 영향을 미치는 미래의 경험이 될 수 있다. 그걸 알려주는 책이 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다. 『연인』의 소녀의 얼굴과 몸은 이렇다.

“열다섯 살 때의 내 얼굴은 관능적이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나는 관능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눈에 띄는 얼굴, 초조한 표정, 눈자위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조숙한 눈 때문에 경험은 시작되었다. 내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부드럽고 찰랑거렸으며 구릿빛 머리채가 엉덩이까지 닿았다. 사람들은 곧잘 내 몸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머리카락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찬사가 결국 내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뜻임을 이해했다. 열다섯 반, 날씬한, 오히려 연약하다고 할 수 있는 육체, 어린 젖가슴, 연한 분홍빛 분과 루주를 바른 얼굴.”


이렇게 생긴 소녀가 메콩강 물의 레몬 빛을 온몸으로 받은 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갑판 위에 홀로 서 있다. 그녀는 강물을 보면서 모든 것은 태평양을 향해 가고 어떤 것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강물에 실려 갈 뿐이고 모든 것은 강이 지닌 힘의 표면에 매달려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안개와 열기의 희미한 빛 속에서 그녀는 검은색 리무진을 탄 부유한 중국인 청년을 만난다. 첫 순간부터 그가 그녀의 마음대로 움직이리라는 것을 소녀는 안다. 그날은 빨리 와서 그녀는 어느 목요일 그를 따라 그의 독신자 아파트로 간다. 경험을 한다. 그녀에겐 경험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있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욕과 직결된 즉각적인 지성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살갗은 놀랄 만큼 부드럽다. 그의 몸은 마르고 힘이 없고 근육도 없다. 그의 몸에는 털도 없고 남성적인 데가 없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났을 때 그는 소녀가 뜨거운 여자라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사랑의 행위를 즐기게 될 것이고, 그를 배신하게 될 것이고 그런 식으로 모든 남자를 배신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항아리의 찬물로 씻어주고 다시 안아준다. 소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온몸에 퍼붓는 입맞춤이 나를 울게 만든다. 그 입맞춤이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날 그 방에서 눈물은 과거를 달래주었고 미래 역시 달래주었다. 우리는 연인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또다시 나를 껴안는다. 나는 그의 인생의 애첩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 1914-1996)
어느 해 여름휴가를 앞두고 우리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 귀족 성형 수술과 몽고주름 트기 눈 성형 수술이 화제가 되었을 때 나는 아직도 뒤라스의 『연인』을 천천히 읽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들처럼,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다고 착각할 뻔했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다른 것, 그렇다.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난 내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믿었다.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여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은 화장술도, 보석도 장신구도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들 스스로가 초래한 결핍감은 내가 보기엔 항상 일종의 실수라고 생각되었다.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형수술을 포기하는 대신, 나는 뒤라스의 소녀처럼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든 것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타원형 테이블에 앉아 알코올 냄새 풀풀 나는, 언제나 늙은, 황폐한, 도도한, 노골적인, 외설을 참는 뒤라스를 읽는다. 책을 읽는 틈틈이, 읽기엔 벅차도 운동은 될 것 같은 두툼한 책을 들고 아령 들듯이 팔 운동을 한다. 1891년 엔젤 클레어가 테스에게 키스한 곳은, 테스의 팔에 흐르는 정맥이었단 걸 생각하면 운동을 멈출 수 없다. 사무실의 타원형 테이블을 빙글빙글 돌면서 뒤라스를 읽는다. 그 순간 행복하다. 행복감이란 내가 말하고 있는 그곳에 얼마쯤은 내가 없는 듯한 느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너처럼 될 수 없다는 것, 그게 내가 아쉬워하는 그 무엇이지.” 이 말은 사랑에 관한 한 최고다. 이 말을 들어본 일이 있다. 회사 앞 전철역 코너에 새로 생긴 맥줏집에서 흑맥주잔을 앞에 두고. 그때 믿어지지 않아서, 정말 좋아서 깔깔깔 웃었다. 이 말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버티며 빵빵한 프라이드에 넘쳐 살아온 시절이 있는 나는, 언제나 뒤라스의 사랑 고백에 귀를 기울인다. 여든이 넘은 그녀는 마흔 살 차이의 젊은 연인 얀에게 늘 말한다. ‘이게 다예요.’ 그녀의 책 『이게 다예요』란 말 앞에는 육체적 그리움이 넘실댄다. 나는 모든 문장에 ‘이게 다예요’를 넣어서 복창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감정이 최대치로 절절해진다. 몸의 구석구석에 ‘이게 다예요’란 말을 붙여본다. 그렇게 하면 내 몸은 그 자체 고유한 아름다움을 부여받는다. 『이게 다예요』에 나오는 뒤라스의 문장은 몸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두 손의 아름다움, 그래 바로 그거예요. 당신에게 입맞춤을 보냅니다. 이 흐트러진, 부드럽지만 뜨거운 맵시를 파괴할 사람을 기다리듯 나는 당신을 기다려요.
(나는 대담하게도 어디에든 손을 갖다 댔고 나한테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말했던 건 앙드레 지드였을 거다. 여인의 맵시는 세월이 아니라 이런 손에 의해서 파괴된다.)

*함께 있는다는 것, 그것은 사랑이고 죽음이고 말이고 잠자는 것이다.(이게 다예요.)

*그는 아주 아름답다, 그에 대해 얘길 시작하노라면 더 이상 멈출 수가 없다.(이게 다예요.)

*내가 죽을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너무 일찍 죽지 않도록 힘써 볼게요.
내가 해야 할 건 그것뿐이에요.(이게 다예요.)

*날 어루만져줘요. 날 따라 내 얼굴 속으로 오세요, 빨리 오세요.
(침묵. 이게 다예요.)
(샤갈이 생각난다. 샤갈과 벨라는 공중에 떠올라 키스를 나눈다. 입술이 입술을, 몸이 몸을, 얼굴이 얼굴을 따라간다. 사랑은 운동하게 만든다.)

*난 널 지독히 사랑해. 우리들 사이의 너무도 큰 사랑, 공포에 이를 만큼(이게 다예요.)

*마지막 입맞춤이란 없어.(이게 다예요.)
(최대한 벌어진 입술. 그 입에 키스했어. 기쁨, 나는 그것을 먹었어. 기쁨, 싱싱한 생기, 삐죽 튀어나온 그녀의 입술, 부드럽고 따뜻한 고무 젤리 같은 입술. 이렇게 말한 건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다. 내게 다시 입맞춤을 해주시오, 그러나 눈은 보지 마세요, 라고 말한 건 캐서린인가? 히드클리프인가? 어쨌든 『폭풍의 언덕』에서 일어난 일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눈먼 사랑은 어느 경우 아주 우아하다고 생각한다.)

*빨리 오세요, 빨리 내게 당신의 힘을 조금 주세요.
내 얼굴 속으로 오세요.(이게 다예요.)

*네게 또 다른 갈망들이 있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네가 슬프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지. 그렇지만 내겐 상관없어, 네가 날 사랑한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 나머지는 내게 상관없어, 내가 알게 뭐람.
(사랑하는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 있었을까? 나에겐 없었다.)

*너는 모든 것의 저자야.
모든 걸 네가 쓴 거야, 네가 지닌 육체가.(이게 다예요.)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다른 식으로 돌려 말하길 좋아한다. 너는 모든 것의 저자야. 내 몸을 지은이는 너야.)

*와서 날 사랑해줘요, 오세요… 난 네게 내 살갗을 주지.
오렴 빨리.
(여인의 살갗에 대한 묘사 중에서 나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나오는 그린란드 사냥꾼인 스밀라 엄마의 살갗에 대한 묘사를 좋아한다. 그녀의 피부는 겹겹이 니스 칠을 한 것 같다!는 문장이 눈앞에 출렁거린다. 인간은 자신의 피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피부는 10만 개의 털과 솜털 이상이다. 프루스트의 마르셀은 목덜미와 배의 피부를 애무당하자 안감이 보이도록 뒤집힌 천 조각처럼 살 속이 바깥으로 드러난 것처럼 느꼈다.)

*난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난 이제 입도 없고 얼굴도 없어.
(사랑하지 않는 입, 사랑하지 않는 얼굴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게 맞다. 아름답지도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욕망해야만 그것은 가치가 있다. 테스가 떠오른다. 정열이 조금이라도 있는 젊은 남자라면 그녀의 붉은 윗입술 중간이 살짝 들려있는 걸 보고 마음이 산란해지고 얼이 빠졌었지만 그 입술은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말들을 할 줄 아는 뒤라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본보기가 있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복종하면서 불복종했다.” 복종하면서 불복종한다는 말은 에로틱한 힘이 있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됨이요. 이 두 문장만이 세계를 연다.”
(이 문장은 뒤라스가 「로마」란 단편에서 쓴 다른 문장을 연상시킨다. 사라질 육체를 가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 문장은 이렇다. “당신의 미소와 같은 것이지만 짓고 나면 사라져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육체와 같은 것이지만 사라질 것이고 사랑과 같은 것이지만 당신도 없고 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연인』의 그는 독신자 아파트인 그의 방 침대에 누워있는 소녀를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그녀가 보인다. 이 육체는 다른 몸들과 달리 무한하다. 침실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점점 확대된다. 육체는 매 순간 생성되어 그가 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이 육체는 유연하여 마치 성숙한 여자의 육체처럼 완벽한 쾌락에 빠진다. 그녀의 육체에는 속임수가 없다. 놀라운 감각을 지닌 육체이다.” 소녀는 그가 소녀의 몸을 즐기는 것을 바라본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 누리는지를 바라본다. 그런 식으로 육체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얼굴과 손과 입과 몸은 사랑을 만나기 전에는 꿈과 같은, 혹은 단순한 잠재적 가능성의 상태일 뿐이다. 사랑을 한 후에만 깨어나 매 순간 생성되고 유희와 죽음을 향해 간다. 우주와도 같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주는 잠재적으로 멈춰 있던 가능성의 운무였다. 하지만 빅뱅이 일어났다. 모든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혼란을 겪으며 아름다워졌다. 대폭발이란 말 좋지 아니한가?

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의 예술로 가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람은 사랑을 통해 자연이나 과학, 정치 형식과 마찬가지로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고유한 법칙으로 작동되는 예술의 영역을 자신의 몸에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몸과 얼굴이 불만족스러운 날, 성형수술 하고 싶은 날, 섹시해지고 싶은 날은 『연인』의 소녀처럼 하면 된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을 찾아서. 자신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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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 기본 카테고리 2007-03-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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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
나는 가끔 침대 속에서 라라를 생각한다. 바로 이 문장이다.

“지금 라라는 자기의 키를 침대 속에서 두 점 -왼쪽 어깨 죽지와 오른발의 엄지발가락- 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한쪽 어깨와 한쪽 발이었고, 나머지 모든 것은 그녀 자신, 한 외형 속에 맵시 있게 짜 넣어져 있는 미래로 민감하게 돌진하고 있는 그녀의 영혼 혹은 본질이었다.”

이건 내가 소설 속 여주인공 중 가장 사랑하는 『닥터 지바고』의 라라가 7월의 어느 휴일 아침에 침대 속에서 기지개를 켜며 ‘조금만 더 자야지’라고 생각하는 장면이다. 이런 표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를 긍정하는 사람에게만 어울리는 표현이다.

침대 속에서 어깨를 당기는 시간이 동시에 나의 본질이 미래로 힘차게 돌진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침대 속에서 내가 뒹구는 동안에도 나와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니,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일으킨다는 것만큼이나 경이롭기도 하다. 사랑의 본질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몸을 쭉 펴고 나를 고양할 준비만 되어있다면 나는 미래로 돌진할 것이다.

어깨에 대해서라면 떠오르는 남자가 하나 있다. 그는 늘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는 남자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날씬하고 어깨가 좁은 여자에게 전해 들었는데, 처음 만난 날 그는 부서질 것 같은 그녀의 어깨를 바라보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단다. “당신은 참으로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군요.” 그래서 그녀는 딱 한마디만 했단다. “만져봐요” 그 말에 그는 웃었고, 팔을 뻗어 어깨를 만지는 그 동작과 동시에 그의 영혼은 미래로, 사랑으로 돌진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북미를 여행하면서 보낸다’라는 한 구절의 프로필로 나의 여신이 되어버린 애니 프루의 단편 『브로크백 마운틴』. 브로크백 마운틴의 배경은 물론 브로크백 마운틴이다.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산이다. 그 산에서 두 청년 잭과 애니스가 1963년 여름을 난다. 잭은 뻐드렁니가 인상적인 로데오광이며 그 어디라도 다른 곳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난 열아홉 살 청년이다. 애니스는 좁은 얼굴에 매부리코이고 추레한 용모지만 길고 가는 다리에 유연한 몸을 가진 열아홉 살 청년이다.

둘은 1963년 팜 앤드 랜치 직업소개소에서 처음 만났고, 여름 방목지인 브로크백 마운틴 수목 한계선에 있는 양치기와 야영지 감시인 고용계약을 맺는다. 둘은 함께 산에 올라가지만 한 사람은 야영지에서, 한 사람은 양 옆의 좁고 냄새 나는 텐트에서 코요테를 쫓으며 자야 한다. 둘은 불가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 담배를 피우고 술병을 나누고 가끔 모닥불에 오줌을 눈다.

그 둘은 말과 로데오 사고와 상처, 승무원 전원이 사라져 버린 잠수함 트레셔호의 마지막 불운의 순간, 두 사람이 키웠던 개와 알고 있던 개들, 징집, 잭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운영하는 고향 목장, 몇 년 전 부모가 죽은 후 접은 애니스 가족 목장, 결혼한 누나 등등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곳에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애니스는 이렇게 좋은 시간은 평생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때를 이렇게 표현한다. “발을 뻗으면 달까지도 닿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가졌다.” 잭이 애니스를 인식하는 방법은 이랬다. “어두운 텐트에서 잭은 거대한 검은 산 덩어리에 밝게 빛나는 단 하나의 불빛으로 애니스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잭의 이 문장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첫 순간을 묘사하는 수만 가지 표현 중에서도 절창이다. 사람에 빠지는 순간의 사람은 자기 사랑을 인식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눈을 갖게 된다. 브로크백 마운틴 야영지에서는 그게 한 점 불빛이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도 대단한 절망에 빠졌다가 미칠 듯한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절망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공부, 일, 우정, 사랑,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이 다 끝났다. 한마디로 의미 있는 인생 전체가 끝났다. 나에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이제 나는 결국 아무 가망 없이 내가 지금 놓여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라고 토로한다. 그러다가 그가 일하게 된 탄광 도시에서 한 여자를 본다.

“그때 나는 루치에를 처음 보았다. … 그녀의 모습은 평범했다. 나중에는 이 평범함 자체가 나를 감동시키고 마음을 끌게 되었지만 처음에 그녀가 나를 멈추어 세운 것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오스트라바의 거리에서 그런 평범한 아가씨들을 자주 마주치지 않았던가? 아무튼 나는 그 아가씨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원래 걷던 그대로 진열창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나서 여전히 서두르지 않으면서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루치에의 그 특이한 느림 때문이었다. 서둘러 돌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란 없다고, 무언가를 향해 초조하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체념한 마음을 발산하는 그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그랬다. 그 아가씨가 매표소로 가서 동전을 꺼내고 표를 사고 관람실을 한번 보고는 다시 마당으로 나오는 동안 계속 나로 하여금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마도 정말로 그 우수에 가득 찬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 내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것이 그렇게 돌연히 불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예시 같은 것이 있었다. 루치에의 본질, 나는 그것을 한순간에 깨달았다고 느꼈고 보았던 것이다. 마치 누가 밝혀진 진리를 가져와 보여주듯이, 루치에가 가져와 드러내 보인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이 또한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나를 흥분케 한다. 사람은 누구를 왜 사랑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그 대답은 추리소설 한 권 분량이 될 것 같다. 그 추리소설의 첫 문장은 사랑을 선택했던 순간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하는 데서 출발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금 내 옆의 사랑이 정말로 시시하다면,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랑을 선택한 순간의 내가 그 정도만을 허용하고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끝낼까 말까 머리가 복잡할 땐, 역설적으로 사랑을 선택했던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나는 견딜 수 있는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 시절로부터 도망치고 싶은가? 지금의 이 빛바랜 사랑은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었으므로, 그 시절에서 출발해 어느 해안으로 밀려왔는가를 따져 봐야 할 뿐.

『브로크백 마운틴』의 끝 장면은 이렇다. 애니스와 또 다른 한 남자와의 동성애 때문에, 잭은 얼굴이 짓이겨진 채 살해당한다. 잭이 애니스의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니스는 때때로 비탄에 잠겨, 때로는 환희의 사정의 감각에 휩싸여, 때로는 베개가, 때로는 시트가 젖어 깨어났다. 아는 것과 믿으려 했던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칠 수 없다면 견뎌야 한다.” 눈물뿐이 아니고 정액뿐이 아니고, 눈물과 정액이 함께 나오는 이 장면이 내겐 너무나 따뜻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눈물과 정액 둘 중에 한 가지만 골라 바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사랑을 시작하거나 끝내려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아름다운 명제는 오직 하나!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분신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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