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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ore 대리모 같은 소리 | 기본 카테고리 2022-09-2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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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저/이민경 역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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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모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면, 나는 자동적으로 프렌즈의 피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피비는 남동생 부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대리모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 ‘선택’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어설라와도 연이 끊기고, 엄마는 자살하고, 새아빠는 감방에 있고, 할머닌 돌아가시고, 생부는 어디 있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던 피비가 정말로 ‘선택’한 게 맞는 걸까? 유일한(물론 막 생모를 만난 시점이었으니 완전히 유일한 가족은 아닐지라도) 가족인 남동생 부부의 요청을 거절하면, 가족을 잃고 고립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선택에 영향을 준 건 아닐까?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어쨌건 프렌즈에서는 피비의 ‘자유로운 선택’이니 아무도 입댈 수 없다, 아름다운 일이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뭐 시트콤이니 더 얘기할 수도 없었겠지만. 여성 본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외피를 쓰고 여성 착취를 방어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선택 페미니즘의 폐해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다.

피비의 남동생 부부는 피비를 대리모로 사용하면서 정말 끔찍한 모습(수정 확률이 낮다고 하니 배아를 200개쯤 써서 확률을 높이자는 둥-피비는 니 누나는 사람이야! 로 응수한다)을 계속 보여준다. 피비는 낳자마자 세쌍둥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아이에 대한 권리는 한마디도 주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아름다운 일’로 피비의 대리모 경험은 마무리 된다.

피비와 같은 이타적 대리모보다, 상업적 대리모산업에서 이 대리모라는 개념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상업적 대리모는 부유한 계층의 가난한 계층에 대한 착취의 끝이다. 그 중에서도 가난한 계층의 여성에 대한 착취의 정수다. 그래서 상업적 대리모는 불법인 지역이 많지만(이타적 대리모는 허용하는 지역이 많다) 대개 처벌은 전무하다. 이 부분에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타적 대리모만 허용했다가, 대가라고는 받지 못하고 그저 좋은 일을 했다는 식으로 허울좋은 입발린 소리만 듣고 착취당하는 여성들이 생기는 것 아닐까…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 이타적 대리모가 아니라 비상업적 대리모(혹은 좀 더 세게 표현하자면 무료 대리모) 같은 식으로. 용어 자체도 대리모 산업을 옹호하는 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말로 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간에 상업적 대리모든 이타적 대리모든, 대리모는 중단되어야만 한다. 아기의 인권, 여성 착취 모든 측면에서 그렇다. 대리모 산업 자체가 거대한 인신매매 산업이고, 이러한 대리모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부터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망친다. 사람의 신체를 구매할 수 있다는 생각, 갖고 싶은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독이다.

내 아이를 ‘열망’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몸을 이용해서 내 아이를 구매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대리모를 이용해 자식을 갖는 사람들은, 내가 아기를 갖고 싶으니까, 주위의 무엇이든 이용해서 아기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믿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을 보여준다. 내가 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그걸 꼭 가져야 하는 당위가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충격적이었다.

특히 크게 분노하게 된 사례 2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본인이 거부했는데도 출산 장면이 찍혀서 방송으로 생중계당한 엘리자베스 케인의 사례, 두번째는 대리모로서 임신 중에 임신으로 인해 심장 문제가 생겼는데도 치료지원을 거부당한 데니즈의 사례(결국 임신 중 사망)다.

어쨌든 저질러 버리고 나면 빈곤층 여성인 케인이 뭘 할 수 있겠냐는 태도 아닌가? 소송이 걸린다해도 부유한 구매자들은 화려한 변호인단으로 무장하고 있는데 발끝이나마 건드릴 수 있겠는가? 임신으로 사람이 아픈데 아기만 빼면 임산부야 어떻게 되든 내 알바 아니라는 태도가 어떻게 “아름다운 산업”인가? 한 사람을 철저히 도구로 이용하는 대리모 산업은 즉시 중단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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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현실. 뒤틀린 모정. | 기본 카테고리 2022-08-2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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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저/최인자 역
문학동네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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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는 인종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더 나아가, 흑인이면서 여성이라는 약자성이 교차하는 흑인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교차성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언급되던 소설이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책 소개같은 책 내용을 추측할 수 있는 어떤 힌트도 없이 읽기 시작해서 심령소설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정말 강렬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었다.

흑인 노예이면서 엄마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본능적인 애정마저도 억눌러야 한다는 뜻이다. <빌러비드>에는 자식을 너무 좋아하지 마라, 라고 충고하는 흑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을 하겠는가? 마음이 차가운 냉혈동물, 모성애라고는 없는 괴물들이어서 그런 선택을 하겠는가?
자식을 너무 사랑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다른 흑인 여성들과 자식을 죽여야겠다고 결론을 내린 세서는 결국 다르지 않다. 뒤틀린 현실에서는 뒤틀린 모정이 합리적으로 도출된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뒤틀린 현실에서는 본능적인 애정마저도 뒤틀려버릴 수밖에. 끔찍하지만, 나는 세서를 이해한다. 자식에게는 도저히 그런 삶을 물려줄 수 없었던 세서를 이해한다. 그게 바로 세서의 모정이다. 이 이야기는 마가릿 가너라는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마가릿 가너는 미국 경찰이 가너의 가족을 도망노예라는 이유로 체포하러 왔을 때, 그의 딸을 죽였다. 노예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이 소설이 실화이기에… 더 먹먹하고, 할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인상깊었던 부분이 2가지가 있다. 먼저, 평생 동안 노예로 살아온 베이비 석스가 늙고 병든 자신에게 ‘자유’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을 느끼다가, 자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자 그 자유의 가치와 의미를 본능적으로 깨닫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인간이라면 자유롭길 바라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세서, 덴버, 빌러비드의 관계가 인상깊었다. 딸을 사랑해서 죽인 세서, 살아남은 딸인 덴버가 갖는 엄마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존재하는 애정, 자신을 죽인 엄마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분노를 가진 빌러비드까지. 읽은 지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이 두가지 만큼은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빌러비드의 목에서 치솟는 붉은 피, 묘비의 분홍색 점을 마지막으로 모든 색이 죽어버린 세서의 삶이 너무 선명한 대비로 감각적으로 다가와서 고통스러웠다. 원한, 죄책감, 증오, 애정어린 소유욕이 버무려진 애증의 모녀관계, 식소의 원한어린 마지막 순간…이 책의 모든 부분이 원한과 슬픔으로 너무 강렬하고 생생하고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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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7-28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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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재난 불평등

존 머터 저/장상미 역
동녘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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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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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코로나 19를 통해 재난은 모두에게 같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코로나 19는 처음에 모두에게 동일하게 찾아온 재난이었다. 갑자기 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일제히 멈췄고, 모두가 코로나를 두려워했다. 여기까진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약자들에게 훨씬 가혹했다. 

 

모든 것이 일시정지하자,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빈곤층은 갑자기 생계 유지가 어려워졌다. 또한 이들은 집에서 머물러야 했기에 좁고, 답답하고, 푹푹찌는 단칸방에서 버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이들이 숨이라도 돌리려 밖으로 나가면 왜 나갔느냐고 손가락질 당할 수밖에 없었다. 
불평등한 사회 진출 현실로 남편에 비해 경제력과 경쟁력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커리어는 쉽게 단절됐다. 게다가 가정폭력은 증가했다. 가정폭력의 희생자는 대개 가정의 약자다. 여성, 아이들 말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진행되던 프로그램은 코로나 19 위험을 이유로 중단됐다. 학교가 일시정지하면서, 사교육을 받을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의 학력은 추락했다. 발달장애인들은 복지관에 다닐 수 없었고 오랜 기간 애써서 쌓아온 이들의 교육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코로나 19로 병원의 역량이 한계치에 도달하자, 투석이나 항암이 필요해 늘 병원을 다녀야 하는 아픈 사람들은 의료 사각지대에서 죽어가기도 했다. 
지난 삼년 간 처절히 경험한 바, 코로나 19라는 재난은 불평등했다. 당장 떠오르는 일들만 해도 이렇게 많다.

 

재난은 그 사회가 품고 있는 불평등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재난은 결코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는다. 지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계층에 따라서, 재난은 완전히 다른 강도로 찾아온다. 부당한 현실이지만 그렇다. 재난은 약자에게 더 가혹하게 찾아오며, 이를 회복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이토록 성공적인 종으로서 한때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협동과 공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난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시야가 좁아지고 당장 내 것만 눈에 보이는 것은 어쩌면 생명체로서 가장 본능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난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가 무엇이었는지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약자에게 공감하며 함께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성공적으로 생존해 온 검증된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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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 기본 카테고리 2022-06-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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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생쥐와 인간

존 스타인벡 저/정영목 역
비룡소 | 200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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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황기 미국 빈곤층의 꿈도 희망도 없는 소외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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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와 인간>

 

 책소개에 있는 것까지만 말하려고 책소개 읽으면서 썼는데... 책소개가 거의 줄거리 다 말해버리는 느낌이네요...? 스포많은 후기입니다.

 스타인벡의 소설은 이 <생쥐와 인간>이 처음이다. 읽기 전의 이미지로는 상당히 난해하고 어려운 작가이자 작품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읽혔고 재미도 있었다.

 

 스타인벡은 떠돌이 농장 일꾼 레니와 조지의 희망과 삶을 통해, 경제 공황기 미국인의 삶이 어떤 식으로 파괴되고 망가졌는지를 보여준다. 레니와 조지와 같은 떠돌이 농장 일꾼들에게는 머물 곳, 머물 사람이 없다. 장소에도, 사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홀로 이곳저곳 떠돌며 평생을 보내다 보면 속이 꼬이기 마련이다. 먼지 같은 존재감으로, 왔다 가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노바디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들은 소박한 꿈을 꾼다. 어딘가의, 어떤 마을에 정착해서 마을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레니와 조지의 이 소박하고도 소박한 꿈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떠돌이 농장 일꾼들의 꿈처럼 산산조각나고 만다. 그리고 조지는 자신이 유일하게 머물 수 있는 사람마저도 잃고 만다. 이들 주인공들이 누구와도, 어떤 곳과도 의미 있게 연결되지 못한다는 점에서(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처절하게 외롭고 고독해지는 소설이었다. 희망을 줬다가 산산히 부숴버려서 더 처절했달까... 스타인벡 희망고문 잘하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빈곤층은 머물 곳을 포기하고, 다시금 떠돌기 시작했다. 미국의 노마드노동자들은 평생동안 쉴 새 없이 노동하고, 그러고도 집 한 채를 가지는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차가 집이 되어서, 홀로 떠돌며 차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또 노동을 한다.

 레니와 조지, 그리고 현재의 노마드 노동자들과 같은 소외 현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장소건, 다른 인간이건 간에, 다른 존재와의 의미 있는 연결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이런 당연한 것이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는 것도 참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이제 싫은 부분.

(기대도 안 했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괜찮은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시대보정 들어가도 거슬릴 정도였다. 어톤먼트처럼 설정 자체에 은은하게 여혐이 깔려 있는 느낌? 어톤먼트도 그렇고 그놈의 강간 무고... 어휴...순진하고!!! 착한!!! 남자인데 이상한 여자랑 얽혀서 인생 좆되는 이야기 왤케 좋아하는 거? 위드 농장에서 있었던 일도 똑같다. 순진하고!!! 착한!!!! 우리 레니가 성추행 좀 했을 뿐인데^^ 강간으로 신고를 해버려서!! 마을을 뜨게 되었다!!

컬리 아내의 캐릭터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어땠을까? 배우가 될 거라는 허영이나 헛꿈에 빠져 있다가 결혼해서는 남자들에게 추파나 던지고 다니는 이상한 여자, 결국 레니와 조지의 꿈을 박살내버리는 주 계기가 되어버리는 여자로 설명이 끝나버린 게 참... 타자화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컬리 아내가 레니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말하는 장면부터, 오 드디어 컬리 아내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컬리 아내도 외로운 사람이었구나 더 이야기해 봐 싶었는데 응 그게 유언 ^^

 

+개 좀 그만 죽여라 이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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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불 뿔을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1-03-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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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불 뿔

이장근 저
창비교육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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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과 공명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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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시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읽어주기에도 무리가 없다. 수업 중간에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하기에 좋고 참신한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확실히 교사가 쓴 시집이라 그런지 학교와 아이들의 마음을 잘 담아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에는 소설과 같은 산문이 훨씬 재미있는데, 아이들은 산문은 지루해하는 경우가 많다. 길어도 그림동화 정도까지가 학생들이 지루함을 참아주는 최대한인 듯하다.

  청소년기가 되어 독서습관이 어느 정도 확립이 된 뒤라면(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확실히 자신의 취향을 알기 때문에 긴글을 지루해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가 수업에서의 활용도는 좋다. 짧은 시이기 때문에 주의 집중력이 낮은 학생이나, 어린 아이들도 몰입감 있게 시를 감상할 수 있다.

 

  교과서의 시는 귀엽고 교육적이기는 하지만, 톡톡 튀는 학생들의 마음을 많이 대변해주기는 어렵다. 때로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교사가 싫어질 때가 있고, 친구가 미워질 때가 있다. 교과서의 시는 교육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들이 드러난 시는 적다. 하지만 <불불 뿔>의 시는 톡톡 튀는 재미로 학생들의 마음에 더 많이 가닿는 듯하다.

 

  나의 경우에는 <불불뿔>을 학기 초 아이스브레이킹으로 활용했는데, 활용도가 좋았다. 내년에도 저/중학년을 맡는다면 이러한 방법으로 지도할 계획이다. 특히 <불불 뿔>의 '카멜레온'이라는 시가 활용하기 좋았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카멜레온은 상황마다 모습을 바꾸지만 이것은 비겁하기 때문이 아니라 항상 주위에 공감해 줄 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기 초 처음 만난 학생들의 충돌 예방을 위해, '공감'이라는 인성 덕목을 강조하고자 이 시를 들려주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래서 너희들이 동물이라면, 너희는 어떤 동물일 것 같은지, 그리고 그 이유를 함께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동물이라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동물들을 대강 하나씩 뽑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동물이라면 저는 ㅇㅇ입니다. 이유는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름 아이들이 자기소개에 부담을 조금 덜 느끼면서 재미있게 아이스브레이킹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활동 이후에는 서로 ㅇㅇ동물이라고 했던 ㅇㅇㅇ(이름)이야~ 라는 식으로 기억하게 되어 적응활동에 매우 유용한 시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종종 재미있는 양념이자 조미료처럼 <불불 뿔>의 시를 들려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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