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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8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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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바람처럼 나의 인생에도, 당신의 인생에도 춤이 깃들기를. | 2018년 서평 2018-11-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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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뇌는 춤추고 싶다

장동선,줄리아 F. 크리스텐슨 공저/염정용 역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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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바람처럼 나의 인생에도, 당신의 인생에도 춤이 깃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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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땐뽀걸즈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는 팻(브래들리 쿠퍼)에게 헤어진 아내와의 재결합을 도와주는 대신, 자신과 함께 댄스 경연 대회에 참가해달라는 제안을 건넨다. 처음엔 그저 댄스 경연을 위한 춤을 준비하던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춤을 추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점차 즐거워진다. 그러는 사이에 각자가 가진 상처는 조금씩 옅어진다. silver lining, 구름의 흰 가장자리 아래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전, ‘댄스스포츠대회를 앞두고 있는 거제여상 열여덟 땐뽀반학생들의 유쾌발랄 성장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 땐뽀반의 수장 이규호 선생님의 지도 하에 아이들은 차차차와 자이브를 배우며, 둘도 없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보낸다. KBS 스폐셜판 나레이션처럼, 세상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나를 오롯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땐뽀걸즈 곁을 지나간다. 자이브의 흥겨운 리듬에 맞춰서.

 

문득 이 두 편의 영화가 떠올랐던 것은,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속 구절 때문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했다. 그때 택시기사가 독일어를 할 줄 알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8일간의 학술대회를 마치고 나자(우리가 서로 토론을 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또 춤도 추었던 그 8일간), 60세쯤 되는 그리스인 택시기사가 그것을 이렇게 요약해서 말했다. “춤추기는 멋진 일이죠! 사람들은 늘 웃음이 최고의 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춤추기가 그렇죠. 웃음은 춤을 출 때 그냥 덤으로 받는 겁니다!”

(p.351-352)

 

택시기사의 말마따나 춤추기는 멋진 일이고, 웃음은 그냥 덤으로 받기도 하는 춤에 관해 8일간 열렬히 떠든 두 사람이 있다. 시즌2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뇌과학자 장동선과 뇌와 춤의 심리학적, 신경과학적 관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신경과학자 줄리아 F. 크리스텐슨이다. 두 사람은 그리스의 에기나섬에 있는 아폴로 호텔에서 열린 신경과학과 관련된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났고, 대화는 바로 춤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호텔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춤을 추면 대체 왜 저렇게 행복해질까? 춤을 추면 더 건강해질까? 혹은 더 똑똑해질까? 둘은 한참 동안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먼동이 틀 때까지 춤을 추었고, 아침에 잠깐 눈을 붙인 다음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여드레 밤낮으로 학술 토론과 춤 사이를 번갈아 오갔고,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이게 되었는데 당시 여드레 밤낮 동안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와 춤에서 이 책 뇌는 춤추고 싶다의 중심이 되는 여덟 개의 장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를 사로잡는 리듬인 1솔로 댄스로 시작해서 내게는 어떤 춤이 어울리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9춤 고르기가 담겨있는 이 책은 범주가 뇌과학이지만, 워낙 유쾌하고 춤에 관련된 여러 이론들(뇌과학, 신경학 등)이 적재적소에 나와서 읽기에 부담 없는 책이다.

 

우리가 자료 조사를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당김음의 마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명의 이탈리아인이 자동차에 앉아 있었다. 카메라는 앞쪽에서 그들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과도한 몸짓을 해 가며 최근에 나온 여름철 히트곡인 <데스파시토Despacito>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들은 어디서나 그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끔찍해했다. 또한 사람들이 그 노래가 나오기 무섭게 춤을 추는 것 역시 싫어했다. 그들은 그 노래가 실패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때 라디오에서 다음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곡은 바로……, 바로 <데스파시토>였다. 그 이탈리아인들은 그 노래에 대해 불평을 하는 동안에도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따라 부르며 머리를 흔들고 즐기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실제로는 한심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히트곡이 나오고 우리들 모두는 언제부턴가 더는 듣고 싶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문득 노래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40-41)

 

구절 속에 영상 주소가 쓰여 있어서 찾아봤는데, 상황 설명을 듣고 봐서 그런지 재밌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이탈리아 특유의 손짓을 해가며 난 이 노래 불호야 하는데 데스, , 시토- 하는 후렴구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부르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영상의 끝부분에는 이 상황이 연출임을 보여주는데, 어쩐지 엄마미소 짓게 된다. 그래, 이런 마성의 노래가 있지 있어. 이를테면 수능금지곡이라 부르는 U R Man (요즘으로 말하면 픽미나 나야나가 있겠지만 내겐 이 노래가 최고다) 같은. 당김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고, 너무 들어서 지겨울 정도인데도 막상 또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듣게 되는 노래들. 최근에는 야놀자 CM송이 그랬다. 하도 들어서 지겨운데 어느 순간 입에 붙어서 야야야야야놀자 하고 있는 그 노래. 애기가 이거 들으면 울다가도 뚝 그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찾아보니, 가만히 있던 돌잡이 아기 얼굴에 웃음꽂이 피고 흥겹게 춤을 추는 영상이 있었다. , 그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었구나 했다.

데스파시토에 이어 바로 다음 챕터로 '모든 아기는 춤꾼'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야놀자송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딱 이러해서 재밌었다. 어떤 리듬을 듣고 춤으로 따라 하려는 충동은 이미 신생아의 뇌에 완전히 준비되어 있는 상태고, 아기들은 춤을 출 때 미소를 지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는 글을 읽고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뇌과학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오스트레일리아의 웨스턴시드니 대학의 캐서린 스티븐스와 그 팀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춤을 지켜보는 사람도 매우 강한 정서적 자극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댄서가 무대에서 날 듯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몸도 함께 흥분을 느낀다. 프랭크 폴릭은 동료인 커린 졸라와 장선희와 함께 특히 이 문제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2011년과 2012년에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댄스를 즐겨 구경하는 사람들의 뇌에서는 근육운동과 관련된 기억 과정이 그들이 그 춤동작을 직접할 때와 똑같이 단련된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p.322)

 

위 구절을 읽고서 다짐하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내년엔 춤에 관련된 공연을 챙겨보자는 것이었다. 당장 행동에 옮겨서,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뮤지컬을 예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발레단이나 무용단의 공연을 살펴보았다. 흥미로운 공연이 많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시도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땐뽀걸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땐뽀반의 단장 혜영이는 이렇게 말했다.

 

 

 

춤추기 전은 진짜 (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공부에도 그렇게 흥미가 없었고

뭔가 완성되는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

 

내가 점점 진짜 박혜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혜영이의 말은 아래 구절과 맥락을 같이한다.

 

대부분의 춤들은 <더티 댄싱>에서처럼 무더운 여름 한 철에 익혀지지는 않으며, 모든 춤이 더티 댄싱일 필요는 없다. 당신 자신의 템포, 자신의 리듬에 귀 기울이라. 미하엘 엔데는 이것을 자신의 동화책 모모에서 특별히 아름답게 표현했다. “음악은 아주 멀리서부터 왔지만 나의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렸지.” 당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완전히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하라. 그리고 거기에 맞춰 춤을 추라.

(p.352-353)

 

어쩌면 혜영이는 땐뽀를 하면서 자기만의 음악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음악을. 그렇게 발견한 음악은 이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춤을 통해 몸에 남았고, 추억에 남았으며, 사는 의미를 깨닫게 해준 힘이 되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이자 춤의 힘을 오래전부터 아내에게 전파하고 싶었던 남편, 장동선 박사는 책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나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아내 유진에게 함께 춤추러 가자고 설득하려는 시도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을 느끼며, 춤을 추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들을 잊는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나는 이 느낌을 아내와 함께 나누고 싶다. 부부로서 춤을 추며 늙어 가면 좋겠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유진, 당신에게 바친다.

(p.390-391)

 

아아, 이쯤 되니 내가 읽은 책의 장르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뇌과학 책을 읽은 것인가, 춤에 관한 유쾌한 에세이를 읽은 것인가, 아니면 두 장르의 탈을 쓴 사랑 고백 편지를 읽은 것인가. 하하. 내게도 이런 춤이, 이런 사랑이 오기를 바라며 기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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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교류한 두 소년의 회색 노트 | 2018년 서평 2018-09-0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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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회색 노트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저/정지영 역
민음사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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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관해 어떠한 배경 지식 없이 읽었는데, 1권의 마무리가 어쩐지 속편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뒤늦게 검색을 해보았다.

 

<티보 가의 사람들>

 

1881년 출생해 1937년 노벨상을 수상하고 1958년 사망한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장편소설. 14살 소년 자크가 학교 당국의 비열한 처벌에 격분해 가출을 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1904년부터 1913년까지 대략 10년에 걸쳐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요한 사건만을 압축, 요약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최초의 앙가주망 소설로, 인간의 투쟁과 현대 생활의 여러 단면을 날카롭게 묘사한 사실주의 작품이다.

 

19년에 걸쳐 완성된 대하소설로 총 여덟 부로 나눠진 작품이었고, 지난 2000년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의 정지영 교수가 필생의 역작으로 선보였던 <티보가의 사람들>을 가볍고 읽기 쉬운 쏜살문고로 다시 정리해 선보인 것이었다. 내가 읽은 <회색 노트>,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문의 차남 자크와 자유분방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의 다니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하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추신 - 이 편지를 간직해 줘. 네 마음이 처량해질 때, 그리고 보람 없이 어둠 속에서 부르짖는 일이 있을 때 이 글을 다시 읽어 줘. (p.78)

 

내 마음은 너무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아! 나는 이 끌어 넘치는 파도를 이 종이 위에다 쏟을 수 있는 한 쏟아 볼 생각이야.

나는 고민하고 사랑하고 희망하기 위해 태어났고, 또한 희망하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있어! 내 일생의 이야기는 단 두 줄로 요약될 수 있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것은 사랑. 그리고 나에게는 단 하나의 사랑이 있을 뿐인데, 그건 너야! (p.82)

 

14세 소년의 편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해서, 낯설고 새로운 마음으로 두 소년의 편지를 눈에 담았다. 나는 이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6장이 참 마음에 들었다, 편지를 통해 서로를 향한 각자의 마음을 문장으로 표현함으로써, 두 사람이 단순히 우정만을 교류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교류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크와 다니엘의 이야기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건 다니엘의 어머니, 퐁타냉 부인의 철학이었다.

 

 

 

게다가 여기 증거물이 있습니다.” 그는 모자를 떨어뜨리며 허리띠에서 빨간 테를 두른 회색 노트 한 권을 꺼내며 소리쳤다. “잠깐만 이걸 읽어 보십시오, 부인. 부인의 모든 환상을 벗겨 버린다는 것은 여간 잔인한 일이 아니겠습니다만,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어쩔 수가 없군요. 이걸 보시면 부인께서도 잘 알게 되실 겁니다!”

그는 억지로 부인이 그 노트를 받게 하려고 두어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부인은 일어섰다.

여러분, 저는 단 한 줄도 읽지 않겠어요. 그 애의 비밀이 여러 사람 앞에서, 그 애 모르게 폭로되고, 그 애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남겨 주지 않다니요! 전 그 애에게 이런 대우를 받도록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p.38-39)

 

아들의 사생활이 담긴 회색 노트를 많은 사람 앞에서 읽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는 부인의 말을 읽는데 이렇게 훌륭한 어른이자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쏜살 문고에서 이 작품을 선보이지 않았으면, 나는 티보 가의 사람들도 로제 마르탱 뒤 가르도 영영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판형이 다소 작고 1부의 분량이라 많지 않았음에도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처럼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었다. 작가에게 노벨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은 <티보 가의 사람들> 연작 가운데 제7<1914년 여름>이라던데, 쏜살 문고 버전으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검색했던 검색어들인데, 서평에 이 단어들을 담았기에 덧붙여본다.


앙가주망 문학(engagement literature) : 참여문학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에 의해 주창된 문학사상이다. 그는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정치 세력들과의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며 임무라고 역설한다. 사르트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반파시스트 투쟁과 레지스탕스 활동에 직접 참가하면서 인간 존재의 공동체적 규정에 새롭게 눈뜨고, 문학의 정치적 · 사회적 기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앙가주망 문학 [engagement literature]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 11. 5., ()신원문화사)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 16세기의 종교개혁이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파(分派)한 각종 기독교회에 귀속한 사람들을 프로테스탄트(개신교도)라고 한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15294월 독일의 제국의회(帝國議會)에서 루터계 종교개혁파의 제후(諸侯)와 여러 도시가 로마 가톨릭의 다수파 측의 황제 카를 5세 등 로마 가톨릭 세력에 대해서 당당히 자신의 신앙을 표명하고 항거([라틴어]protestatio ; 프로테스타티오)’한 데에서 유래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테스탄트 [Protestant] (21세기 정치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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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서 탄생하고, 글은 마감이 쓴다. | 2018년 서평 2018-08-20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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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김정운 저
21세기북스 | 201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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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기억되는 칼럼이 있다. 내게는 김정운 교수님의 한 칼럼이 그렇다. ‘내년에 오십인데라는 제목으로, 2010년의 글이다.

 

나는 수첩을 아주 자주 바꾼다. 조금 쓰다가도 지겨우면 바로 바꿔 버린다. 한달에 서너개 이상은 바꾸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책상에는 처음 몇 쪽만 쓰다 만 수첩이 수십 종류다. 시내 큰 서점에 붙어 있는 문구점에 정기적으로 들러 새로운 디자인의 수첩을 찾아보는 게 내 취미다. 어쩌다 외국여행을 나가면 문방구를 파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의 강박증 수준이다. 좀 한가한 어느 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 한겨레 칼럼 [김정운의 남자에게] “내년에 오십인데” (2010.06.23.) 중에서

 

아주 자주 바꾸지는 않지만, 당시 내 책상에도 처음 몇 쪽만 쓰다 만 수첩이 적어도 열 손가락은 넘었으므로 나는 이어지는 글에 구미가 당겼다. 이 교수님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러나. 수첩을 자주 바꾸는 이유로, 교수님은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썼다. 다다음 문단에 칼럼의 주제가 등장한다. ‘선택의 자유’.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했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 이야기를, 나는 수첩을 볼 때마다 떠올리곤 한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몇 쪽만 쓰다 만 수첩을 끼고 사는 동안, 교수님은 4년만에 에디톨로지개정판을 출간하셨다. 창조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데서 탄생한다는 에디톨로지’. 그 핵심을 오롯이 소화할 수 있게 쓰인 구판에 이어, 개정판에는 새로운 콘텐츠 생산과 관련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편집 공간과 방법을 자세히 소개한 글이 함께 담겼다. 이 스폐셜 부록에 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뒤로 미루고 일단 에디톨로지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에디톨로지는 크게 3장으로 나누어 설명된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를 소개하는 1,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를 소개하는 2,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를 소개하는 3.

 

1부에서는 ‘6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는 꼭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한국 학생들은 노트를 독일 학생들은 카드를 쓴다는 글에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지식인의 결정적 차이를 설명하는 글로 이어지는 이 글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독일 학생들의 카드 편집과 같은 주체적 지식을 편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꼭 엄청난 이론이 아니어도 아무 상관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포스팅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이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블로거들의 세상이 열린 것이다. ‘재미 공동체(다음)’에서 지식 공동체(네이버)’로의 이동이다. (p.85)

 

내가 다음과 싸이월드보다 네이버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포스팅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이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블로거.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편집해서 포스팅 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나는 블로그를 좋아한다. 10년간 블로거로 살아온데는 편집의 힘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2부에서는 ‘16 공간편집에 따라 인간의 심리는 달라진다는 꼭지가 가장 재밌었다. 내가 천장이 높은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천장의 높이만 조금 더 높여도 창조적이 된다. 미네소타대학의 조안 마이어스-레비Joan Meyers-Lavy 교수는 천장 높이를 30센티미터 높일 때마다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천장이 높고, 넓은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관점이 거시적이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반면 천장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는 사물을 꼼꼼하게 바라보게 되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p.186-187)

 

머리를 쓰며 읽어야 하는 책을 읽거나, 서평을 쓸 일이 있을 때면 천장이 높은 카페가 생각나곤 하고 곧잘 찾아가는데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가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많은 부분은 공간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공간의 구조가 바뀌면 태도가 바뀐다. 출입문의 위치만 바뀌어도 사람들의 동선이 바뀌고, 공간 내의 상호작용 양상이 변화한다. 문화는 이렇게 아주 구체적으로 작동한다는 것. 관점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마지막 3부에서는 ‘24 천재는 태어나지 않는다 편집될 뿐이다꼭지를 소개하고 싶다. 모차르트를 두고 계몽주의 시대의 편집된 천재라고 설명하는데, 어쩐지 구미가 당겼다.

 

반면 모차르트의 사정은 많이 달랐다. 한편으로는 궁정 사회에서 인정받고, 재정적 후원을 받기 위해 귀족들의 주문에 맞춰 작곡해야 하는 수공업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주체적 예술가로서의 삶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이런 이중적 삶이 모차르트를 천재로 만들었다. (p.269)

 

이 구절을 읽기 전까지는 타고난 음악성만을 두고 천재라 부르는 줄 알았는데, 수공업자의 예술에서 그치지 않고 주체적 예술가로서의 삶을 끊임없이 시도했다는 데에서 그를 천재라 부른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천재는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의 이행기에 집중해서 나타나는데, 표상으로서의 미술이 사진이라는 기계적 수단에 의해 위협받던 시대의 산물로 피카소라는 천재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들이 나왔다는 것 역시 재밌었다.

 

 

 

에디톨로지에 대한 지식도 지식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

 

빈곤한 보캐블러리거친 논리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이유는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글은 이 서평을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아날로그 책이 좋은 이유는 내 맘껏 쓸 수 있어서인데,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는 글도 나를 움직였다. ‘내 책은 내 맘대로 쓰기 위해 산 것인데, 중고책으로 되팔려고 책을 사는 게 아닌데 왜 책을 그렇게 깨끗이 보느냐고 혼나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서, 모처럼 책을 깨끗하게 보지 않았다. 형광펜으로 죽죽 줄도 긋고 연필로 밑줄도 긋고 볼펜으로 내 생각을 써 가며 읽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하는 자기성찰과 밑줄 긋고 빈곳에 자기 생각을 적는 독서는 동일한 심리적 프로세스입니다. 저자의 생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활자화하는 작업을 통해 정말 많이 성장합니다. (p.350)

 

이와 더불어 에버노트앱을 애용한다는 이야기와 널찍한 모니터 두 개를 나란히 붙여 사용한다는 이야기, 유튜브 같은 영상자료를 수시로 본다는 이야기 등등 스폐셜 부록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조리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글은 마감이 쓴다는 359쪽은 부끄럽게도 이 서평을 쓰면서 실현중이다. 14일에 책을 받아서, 20일까지 서평을 쓰기란 꽤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마감은 글을 완성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이제 정말로 이 서평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 10년간 블로그를 운영해오면서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나로서는 콘텐츠 생산, 그 자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는 꼭지가 사무치게 와 닿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콘텐츠 생산 그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을 많이 벌려고 혹은 권력이나 명성을 얻으려고 글쓰기를 한다면 절대 잘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자체에 기쁨을 느끼고, 자신이 생산한 콘텐츠 자체에 희열을 느껴야 합니다. 돈이나 명성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돈이나 명성, 성공은 100퍼센트 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따라오면 좋은 거고, 안 따라오면 할 수 없는 겁니다. 내가 글쓰기를 하면서 재미있고 즐거웠다면 그 자체로 만족할 수 있는 겁니다. 스스로 재미있는 글을 쓴다면 내 콘텐츠에 공감해주는 독자들은 꼭 나타납니다.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교감할 수 있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습니다. (p.363-364)

 

 

 

글을 읽는 사람이 함께 호흡하려면 내 호흡이 경쾌해야 하고, 그래야 즐겁게 따라 읽을 수 있으니 짧게 쓰는 게 좋은 글이라고 하셨지만 편집의 실패로 글이 길어지고 말았다. 서평을 세 장 가까이 써버린 바람에, 아주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책이 있다. 내게는 김정운 교수님의 책 한 권이 그렇다. 20188월에 출간된 개정판으로, 책의 제목은 에디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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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더 눈물이 나는, 달달한 오늘의 고백 | 2018년 서평 2018-07-27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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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달다 저
21세기북스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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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이 참 청량하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오늘은 달다.’를 뒤집어서 오늘은 달고, 어제는 지랄맞았다고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린 내게 좋은 대학에 가면 행복이 온다고 했다. 대학생이 된 내게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행복이 온다고 했고, 직장인이 된 내게는 결혼을 하면 행복이 온다고 했다. 나는 알려준 대로 행복을 위한 모든 패를 완벽하게 사용했다. 목적지처럼 보이는 막다른 길에 이르러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행복은 어디에 있죠?”

메아리조차 없다. 어른이 되어버린 내게 대답해줄 어른은 더 이상 없다. 나는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서 길을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물었다.

나는 어디로 가면 행복하니?”

미련하게도 이제서야.

저기 숲길이 예쁘니까 구경하면서 갈까?”

나 숲 좋아해.”

알아.”

남의 말만 듣느라 소홀했던 내게 처음으로 행복을 물었다.

 

프롤로그의 일부다. 나 역시 자주했던 생각인지라 공감하며 읽고 있는데, “나 숲 좋아해.” 하고 알아.”라고 받아치는 나와 나의 대화가 마음을 울렸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행복을 묻다’. 행복은 그 누구도 아닌 내게 묻는 것이고, 그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데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표지의 일러스트도 귀엽고 책의 색감도 사랑스러워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작가 달다는 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직장동료를 비롯해 일면식 없는 다른 사람들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때로는 통통 튀는 웹툰으로 때로는 사뭇 진지한 글로 풀어내는데, 그 완급조절이 마음에 들었다. 지난 영화제 때 본 오늘도 평화로운처럼 B급 감성 가득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가도, 가족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쩐지 더 눈물이 나는 덤덤함.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하나만 더 풀자면 이 구절이다.

 

나는 줄곧 휑한 무대에 덩그러니 나를 세웠다.

관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다.

영악한 머리로는 적절한 타이밍을 살펴

멋들어지게 폭죽을 터뜨려 박수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나의 무대는 위기를 맞았다.

환호 없는 무대는 초조했고 흩어지는 연기처럼 무의미했다.

그리고, 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전부였던 회사부터 어설픈 자기계발까지

끊임없이 휘두르던 채찍을 내려놓았다.

 

돌아서 본다.

무정하게 멀리도 왔다.

질주해온 길 끝에 아스라이 점처럼 작은 내가 보인다.

지금의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섰다.

저만치 따라오는 내 영혼을 힘껏 안아주려고.

 

끌어안은 그의 귀에다 속삭이듯 부탁도 해볼 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나의 곁을 지켜달라고.

나의 진짜 관객이 되어달라고.

 

(p.230-231 파트 5, 08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

 

글의 아래에는 인디언의 그림과 이런 글이 실려있다.

인디언들은 광야를 달리다 멈추어 서서 달려온 길을 바라본다고 한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내게도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면, 이처럼 좋은 책과 좋은 영화를 보는 시간일 것이다. 시간을 내어 책을 읽으면서, 바쁜 일상에 미처 따라오지 못한 내 영혼을 기다린다. 역시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 가서, 좋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그 여운을 곱씹으며 영혼을 기다린다.

 

오늘도 이어지는 무더운 여름밤, 미처 따라오지 못한 영혼이 내게 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방금,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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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치를 왜 알아야 하는데? 묻는 너에게 | 2018년 서평 2018-06-22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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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치는 잘 모르는데요

임진희,김연수,명형준,여혜원,장다예,정윤주 공저
21세기북스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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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소확행, 썰전을 챙겨본지도 어언 5년이 넘었다. 그간 내게는 단골 멘트 2개가 생겼는데, “어제 썰전에서 봤는데~”썰전에서 설명해주겠지~?”. 전자는 썰전을 챙겨 본 다음 날의 멘트고, 후자는 정치와 관련해서 궁금한 게 생겼을 때의 멘트다. 뉴스를 보고 2%... 아니 22% 모르는 게 생기면 절로 썰전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물음표를 해결해주는 느낌표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기 이전의 나는 정치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썰전을 통해서 나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을 뿐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매주 다루는 이야기도 그렇고, 각종 자료화면과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표와 자막을 통해 정치에 대한 지식을 많이 깨우쳤다. 이쯤 되면 믿고 보는 썰전이랄까.

 

내가 썰전으로 정치를 배울 때, 브라운관이 아닌 현장에서 정치를 배운 친구들이 있다. 배운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학생으로서 중학생, 고등학생 혹은 후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만들어서 책을 펴냈다. 당시 정치학특강 수업을 담당했던 교수님의 권유로 2년간 학과 수업을 병행하면서 만든 정치는 잘 모르는데요가 그 책이다.

 

정치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1정치의 시작부터 어떻게 주인이 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4정치의 미래까지 어렵지 않고 재밌게 쓰여서 가독성이 높다. 4정치의 미래부분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다루는데 소제목이 누구 카드를 긁을 것인가?’. 중앙이 하는 일에 지방 보고 돈을 내라고 하거나 지방이 자체 사업을 하는 데 중앙 돈을 마치 엄마 카드 쓰듯 낭비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설명하는데, 무릎을 쳤다. 정치 책에서 엄마 카드가 등판할 줄이야. (정치 책이라면 마냥 딱딱할 거라고 생각한 내 편견도 한 몫 했다) 이어서 중앙이 시킨 짜장면 값은 짜장면 배달하는 지방이 내라는 소제목으로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선거 공약을 낼 때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무상 복지 정책 누리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비유가 어쩜 이리 찰떡인지. 엄마 카드는 일단 긁고 보는 지방자치단체도 문제, 라는 표현은 그런 지방자치단체의 시정을 지켜보게 되었을 때 내가 빌려서 말하고 싶은 표현이 되었을 정도다.

 

세금, 정당, 선거, , 예산, 지방자치단체 등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심화과정을 통해 챕터를 마무리 짓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세금의 심화과정에서는 창조주 위에 건물주 vs 민달팽이 신세 월세 난민에 대해 다뤘고, 지방자치단체의 심화과정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줄다리기, 청년수당 논란에 대해 다뤘다. 정치를 알고 싶어 하는, 뜻이 맞는 친구가 있다면 이 부분에 관해 기사를 찾아 읽고 토론하기 좋은 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썰전에서 바로 지난주에 한 얘기가 일주일만에 상황이 뒤집혀서 (최근에는 북미정상회담이 그랬다) 그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책은 오죽할까. 이 한국 정당 당명 표를 만들 때만해도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하루아침에 휙휙 변하는 것이 정치고,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점차 변화하는 것 또한 정치다. 후자는 이번 6.13 지방선거를 통해 배웠다. 그간 정치란 물 없이 고구마 백 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변하고 있다. 계속해서 지켜보지 못했으면 이 결과가 결코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저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해 5월을 눈물로 보내다가 추모 영상 속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이 말을 통해, 비로소 정치에 눈을 떴다. 매일 뉴스를 챙겨 보고, 썰전을 목요일의 소확행으로 삼고,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투표는 빠짐없이 하는 유권자로 살고, 정치에 대해 보다 능동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겨우 그 뿐이지만, 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중 · 고등학생들은 이런 나보다는 좀 더 밝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읽고 다소 부족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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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밑줄 친 구절들. | 밑줄 긋는 해밀 2018-04-2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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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확을 거두려면 종자를 뿌려라.

포대를 쏟지 마라.

 

옛날 유럽의 어느 곳에선가 농민들이 부르던 노래 한 구절이다. 무슨 뜻인가. 곡식을 거둬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씨앗을 손으로 일일이 뿌려야지 포대를 쏟듯이 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밭에 파종을 한다고 해보자. 대략적인 씨앗의 양이 있다. 씨앗을 밭에 고루고루 뿌려야 씨앗들 간의 사이가 밀집되지 않아 잘 자란다. 그 밭에 뿌릴 양이라고 해서 자루째 쏟아놓는다면 어찌 씨앗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느리고 지루하더라도 일의 순서는 순서대로 맞춰서 살아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자신이 기울인 노력 이상의 것을 쉽게 얻으려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p.36)

 

*​

 

자신이 약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분노를 집어 든다. 그 이유는 분노로 무장하면 자신이 강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티베트 속담이다. 티베트에는 감정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마음 상태 같은 것은 갖고 있지만 이것을 감정이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정말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경우, 엄밀하게는 현재 마음이 분노와 상태에 있는 것이지 마음 자체는 분노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p.55)

 

*

 

고양이를 보면서 떠올린 단어는 '침묵'이다. 정말이지 이 동물은 말이 없다. 고양이의 눈은 자신이 먼저 말하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하라는 투다. 선종에서는 참선 중에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스승에게 묻는다. 질문이 없다면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다. 궁금한 사람이 먼저 묻게 되어 있다. 선종의 선사들은 법문도 길게 하지 않는다. "질문 속에 답이 있고 답 속에 질문이 있다"라고 한다. 잘 묻고 잘 회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면 꼭 선승의 눈 같다. 결코 먼저 말하지 않고 오히려 묻는 듯하다. 내가 뭔가 물어보려 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너는?, 하고 되묻는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내가 나를 보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자기관조 내지는 마음의 빛을 돌이키는 회광반조의(廻光返照) 법문이다. 우리는 사물이 이해되고 좋아지면 수다쟁이가 된다. 사랑도 수다스럽고 좋은 것도 수다스럽다. 우리는 거침없이 열뜬 기분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도 청안(靑眼)과 백안(白眼)으로 달라진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국 위나라 말기 부패한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대나무숲에 모여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일곱명의 선비)의 한 사람인 완적이 사람을 청안으로 대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물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는 시선이 자주 가고 또 오래 머물게 된다. 한 존재를 사랑하게 되면 수다스러워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을 잊기도 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보고 있어도 행복으로 충만하다. 청안과 달리 백안은 힐끗 보는 부정적인 시선이다. 고양이의 눈이 어느 쪽에 속할지는 몰라도 자신을 대하는 눈이 청안이라면 기꺼이 다가선다.

(p.65-67)

 

*

 

고양이는 잘 먹고 잘 자서 그런지 처음 왔을 때와 비할 수 없이 털에 윤기가 흐르고 몸도 제법 불었다. 모든 종교의 황금률은 '네가 원치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의 입장을 헤아릴 수만 있다면 우린 좀 더 지혜롭고 온화하고 평화롭게, 스스로의 삶도 가꾸면서 타인의 행복에도 기여하는 삶이 가능하다. 그게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랑을 베풀자는 말씀!

(p.127)

 

*

 

세상에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해야지'하는 사람과 '누군가 해야 하니까 누군가 하겠지' 하는 두 부류가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악인의 경우는 상대를 곤란하게 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습성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과 같다. 그 음모의 깊이를 알 수가 없다.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모략의 우물에서 삶의 진실을 길어낸다. 상대에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바른 의지를 펼쳐 보여야 한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것보다 친구를 믿지 않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바른 판단과 고운 심성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만물을 대하는 것이다. 바로 내 곁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p.132)

 

*

 

기적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에서 일어난다. 다만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쳐버릴 뿐이다. 거위를 살리기 위해 모욕을 당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은 한 스님의 행동은 자신이 당한 매질보다 거위가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 더욱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슨 일이든 더 크게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동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p.134)

 

*

 

포도주가 상하지 않도록 바람을 쏘여줄 필요가 있다. 사람도 특정한 기간에 자신에게 어리석음과 우스꽝스러움을 허락하여 심리적인 통로를 열어줌으로써 다시 생업으로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한다는 장치다. 15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웃음과 놀이는 본성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인간사회에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인간은 즐거우면 웃고 행복을 희구한다. 이는 저급한 심리적 충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가 당연히 누려야 할 본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왜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꿈꾸는 것일까? 웃음은 행복감이 들면 자연스럽게 표정으로 드러난다. 웃음은 폭약처럼 터진다. 이 즐거움이 다른 생명체에겐 없을까? 강아지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다른 동물들도 서로 어울려 장난치면서 성장해간다. 당연히 그들의 기쁨도 있을 것이다. 노르웨이에는 웃는 사람은 산다라는 속담이 있다. 웃는 사람은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느끼며 남에게 사랑받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고 한다.

성격 좋은 고양이가 드물게 있다고 하듯이, 본능적이든 습성에 의한 것이든 각자 살아가는 법이 있지 않을까. (p.149-150)

 

*

 

고대 로마의 인사법에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것이 있다. 내가 잘 살아가는 것이 우주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여기서 당신은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다. 고향의 산천도 당신이고,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당신이다. 하물며 사람이랴! 마음이 현자처럼 확장될 수만 있다면 우주만물이 나와 무관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가는 첫 덕목이 일체감을 깨닫는 것이다. 가족의 경우라면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일이겠지만, 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잘 살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좀 오버하면 당신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기쁨입니다라는 로맨틱한 말이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다. 이 사실이 나는 매우 경이롭다.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의 탑전 냥이는 현자처럼 말한다.

 

세상사 살펴가며 살아요!” (p.262)

 

 

 

책을 펼치니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있었다.

토익 시간 분배규칙을 적어둔 메모. 이전의 독자가 붙여둔 메모일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니 북마크도 하나 끼워있다. 북마크가 끼워진 페이지를 한 번 더 읽어본다.

여기까지 읽었다고 표시해둔 걸까,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요샌 주로 신간코너에서 책을 빌려봐서 이런 일이 드물었는데,

흔적이 남아있는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2018.04.25 해밀.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보경 저/권윤주 그림
불광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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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를 지우고 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 2018년 서평 2018-04-1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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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저/서유리 역
레드박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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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가장 가깝게 지난 화요일에 있었던 일인데,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내게 상처 되는 말을 하는 자리에서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허허실실하며 앉아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받은 상처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에 내내 우울해했다.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고, 가능하다면 지우고 싶은 기억. 이 기억을 지우고 나면 나는 우울하지 않은 한 주를 보낼 수 있었을까?

 

2.

여기, 그런 과거를 지우게 된 여자가 있습니다. 거침없는 성격에 제멋대로 사는 쾌락주의자 찰리. 부모님 몰래 대학을 때려치운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는 첫사랑의 트라우마로 인해 서른 살 가까이 되도록 제대로 된 남자 친구를 사귄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과거의 저지른 창피하고 민망한 실수들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미스터리한 헤드헌팅 회사로부터 과거를 지워주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데……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다시 돌아옵니다!

 

이 책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출발 비디오 여행(feat.김경식) 영화 대 영화처럼 줄거리를 풀어보았다. 대체 어떤 흑역사를 만들었기에 찰리는 과거를 그다지도 지우고 싶었을까.

 

찰리에게 있어 지워버리고 싶은 사건 Worst 5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 번째로, 옆집에 사는 절친 줄리의 남자 친구와 잔 일.

두 번째로, 유부남과 사귄 일. 그 남자에게는 심지어 애도 있었다. 그것도 쌍둥이.

세 번째로, 운전면허 시험 도중 속도 측정 장치를 들이받고 도망간 일.

네 번째로, 완전 취해서 자전거 타고 가다 넘어졌을 때 출동한 경찰한테 반항한 일 (“뭘 봐! 이 멍청한 짭새 새끼야!”했다)

다섯 번째로, 어떤 남자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내려친 일(그 남자가 몸을 더듬어서 그랬는데, 그 술집은 그날 이후 나를 출입 금지시켰다)

 

찰리는 여기에 마음의 소리를 저버리지 못하고 6개를 더 쓰는데, 음 확실히 지울만한 사건들이다. 찰리가 기억을 지워준다는 헤드헌팅 회사의 제안을 받기 전까지, 현재의 이야기가 꽤 나와서 새로운 인생은 어떨까 궁금했다.

 

3.

여기부터는 스...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찰리는 헤드헌팅 회사의 도움으로 흑역사를 지우는데 성공한다. 과거를 지운 찰리의 현재는 완벽해 보였다. ‘보였다라는 과거형으로 쓴 건, 흑역사를 쌓아온 찰리의 기억만큼은 찰리에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흑역사이긴 했어도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고, 들어온 음악이 있었으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었는데 그 기억들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이라니.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찰리는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보이지만, 속으로는 헛헛한 삶을 살게 된다. 영혼 없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찰리는 있는 그대로의 찰리를 바라봐주고, 찰리의 행복을 온전히 응원해주었던 드링크스&모어 사람들을 찾아 헤맨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개업한 드링크스&모어의 주인이자 찰리를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은 팀과, 충격을 덜 받기 위해 늘 오래된 신문을 읽는 게오르크 아저씨. 인연은 인연인지 찰리는 새로운 인생에서도 둘을 만나는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둘을 대하는 찰리의 태도가 인상 깊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소설로 읽기를 권하고 싶은 마음에 생략한다.

 

4.

이쯤에서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 역시 지난 화요일의 과거를 지우게 되면 우울해하지 않게 될까? 이 소설대로 과거를 지운다면, 상처 받았던 기억은 남고 과거만 지우게 되는 것이니 나의 우울은 여전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상처 주는 말에 한 마디 받아치지 못하고, 속으로만 담아두다 우울해 하는 이 성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마다 과거를 지우고 싶다, 하기 보다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책을 통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만나서 훌훌 털어버리고, 이렇게 재밌는 책도 읽으면서 버티기로 했다. 흑역사로 가득했던 찰리의 지난날도 그저 어둡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까. 찰리의 곁에는 좋은 사람이 있었고, 즐겨 들었던 음악이 있었고, 찰리 나름대로의 행복한 하루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5.

여기서 끝내기 아쉬우니까 여담을 조금 풀어보자.

만약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주인공 찰리는 마고 로비였으면 좋겠다. 다른 배우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 책의 저자 비프케 로렌츠는 샤를로테 루카스라는 필명으로 당신의 완벽한 1해피엔딩으로 만나요를 펴낸 작가였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제목을 들어본 책이었는데, 같은 사람이었다니. 두 권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이번 리커버 버전의 표지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들고 다니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리커버, 리커버 하는구나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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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영 할머니의 삶을 통해 제주 4·3을 기억하다 | 2018년 서평 2018-04-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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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명천 할머니

정란희 글/양상용 그림
스콜라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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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의 만행이 극에 달했던 1944,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시체들을 처리하기 위한 비밀 작업단 존더코만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있다. X자 표시가 된 작업복을 입고,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직 시키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존더코만도 사울의 앞에 어린 아들의 주검이 도착한다. 처리해야 할 시체더미들 사이에서 아들을 빼낸 사울은 랍비를 찾아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기로 결심한다.

 

그런 사울의 뒤를 따라 홀로코스트를 체험하게 하는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영화가 사울이라는 한 사람에게 집중한 것처럼, 기억이란 어쩌면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을 기억하게 만들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잊지 못할 역사와 그곳하게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게 한다.’

 

사울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로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될 때면 나는 으레 사울부터 떠올리곤 했다.

 

 

2.

폭도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 버려!”

어두운 밤,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는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영의 가족은 그날 밤 토벌대를 피해 몸을 숨겨야만 했다. 누군가는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입김을 감추려 검은 흙에 얼굴을 묻었고, 누군가는 들키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집이 불타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불을 끄러 달려 나가지 못했다. 오늘 밤 마을이 불타 사라진다 해도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그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무사히 날이 새기만을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영은 집이 걱정 되었다. 엌에 있는 곡식 항아리가 아른거린 나머지 아영은 몸을 일으켜 집으로 뛰어 들었고,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아영을 향해 아버지는 안 돼! 위험해!”하고 소리쳤다. 무사히 부엌에 들어가 곡식 항아리를 품에 안은 아영은, 담장을 빗기는 달빛이 마을 텃밭들을 밝게 비춘 그 순간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때 !’하고 총성이 울렸고, 아영의 얼굴은 거대한 쇠몽둥이에 휘둘려 맞은 듯 뒤로 확 꺾였다. 곡식 항아리가 저만치 날리며 퍽퍽 부서졌다. 와두두두, 곡식이 쏟아졌다. 아영이 턱을 잃은 밤이었다.

 

아영은 제주 4·3 중에 북제주군 한경면 판포리 집 앞에서 경찰이 무장대로 오인하여 쏜 총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총탄에 너덜너덜해진 턱을 가위로 잘라 내고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 약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살았다. 흉측해진 얼굴을 하얀 무명천으로 가리고 외로움과 슬픔을 견뎌내야 했다. 턱을 잃어버려 말을 할 수도,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간혹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게 될 때면 자신의 흉한 얼굴이 보일까 봐 몸을 돌리고 구석에서 혼자 먹어야 했던 나날들. 언니가 사는 월령리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밖에 잠깐이라도 나갈 때면 집 안의 모든 문을 자물쇠로 꼭꼭 잠가 두어야 마음을 놓았고, 끔찍한 고통과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외롭게 살다 하늘로 떠났다.

 

 

 

3.

이 책 무명천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없어 모로기(‘언어 장애인의 제주 방언)할망이라 불렸던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어린이를 위한 창작 그림책 시리즈 <그림책 마을>에서 제주 4·3 사건 70주년을 맞이하여, 18번째 테마로 아이들에게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수 있는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림책답게 마지막에 제주 4·3은 무엇이고, 왜 일어났고,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한 고학년을 비롯하여 제주 4·3을 처음 접하는 이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되기도 하니 말이다. 턱이 없어 고생했던 일보다, 그날의 참상을 평생 말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아픔이 더 컸을 진아영 할머니의 삶은 내게 제주 4·3을 더욱 깊이 알고 싶게 했다.

 

때마침 KBS에서 지난 3일에 제주 4·3 사건 70주년 역사특강을 방송해줘서 챙겨보았다. 4·3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배경지식으로 시작해서, ‘제주 평화 기념관에 있는 백비(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빈 비석)의 설명으로 마무리한 강의였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 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아직도 정명(正名)되지 못한 아픈 역사. 설쌤의 마지막 말처럼 이제는 말할 수 있고, 추모할 수 있고, 이 비극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노랗고 빨갛고 푸르른, 찬란한 제주. 아름다운 섬으로만 기억하기보다는 슬프고 무섭더라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아픈 역사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많은 사람을 기억하기 어렵다면, 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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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라 쓰고 자기 관리라고 읽는, 똑똑한 부자들의 철학. | 2018년 서평 2018-04-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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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자들이 절대 하지 않는 40가지 습관

다구치 도모타카 저/안혜은 역
21세기북스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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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라 쓰고 자기 관리라고 읽는, 똑똑한 부자들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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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 부자들이 절대 하지 않는 40가지 습관을 접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하지 않는데 있었다.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책의 제목이 그냥 부자들의 40가지 습관이었다면 내가 이 책을 궁금해 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전의 책들과 비슷한 책이겠거니 넘겼을 것이 분명하다.

 

2.

저자 다구치 도모타카는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낭비를 일삼다가 28세 때 파산 직전에 이를 정도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지만, 철저한 절약과 자산 운용으로 불과 몇 년 만에 모든 빛을 청산한다. 이후 수입의 복선화’, ‘코어 앤 세틀라이트 투자방식으로 자산을 불려... 뭐라뭐라 설명하지만 어려우니까 요약해서 말하자면 수많은 부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발견한, 그들만의 공통적인 철학을 알리고자 이 책을 집필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적인 철학은 책의 제목에 실린 것처럼 습관을 뜻하고, 습관은 곧 자기관리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에 실린 것보다 더 많은 습관들이 있겠지만, 그중 40가지 습관을 식사-투자--관계-교제라는 다섯 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이 습관들 중에 내가 인상 깊게 읽은 두 가지 습관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먼저 식사에 관한 습관. 똑똑한 부자는 메뉴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다. 메뉴 결정이 빠르다는 것은 명확한 선택 기준이 있다는 증거. 예를 들어, 칼로리를 생각해서 고기보다는 생선을 고르고, 덮밥보다는 음식 가짓수가 많은 정식을 고르는 등의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기 때문에 고민 없이 고를 수 있는 것이다.

 

고작 메뉴 선택인데 너무 확대 해석 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메뉴 선택 시 기준이 없는 사람은 대부분 업무와 생활에서도 기준이 없다. 돈이 안 모이는 것도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p.55)

 

단순히 메뉴 선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저축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할 때 등등 전반적으로 명확한 기준을 가지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두 번째로, 투자에 관한 습관. 똑똑한 부자는 돈을 모으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돈을 써야 할 때 제대로 쓴다는 것은 단순히 저축액을 늘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돈을 불린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 이상적인 인생을 손에 넣은 사람은 예외 없이 인생의 한 지점에서 투자의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라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저축은 중요하지만, 저축만 해서는 이상적인 인생을 얻을 수 없다.

 

3.

하지 않는 습관을 통해서 부자가 되는 자기 관리를 하게 되는 것. 하나하나 따지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습관으로 들이면 자기 관리의 과정을 즐기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제일 큰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나는 부자를 원한다기 보다는 낭비 없이 알뜰하게 돈을 관리하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읽었다. 습관으로 들이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습관들을 통해 전보다 자기 관리를 즐기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어쩌면 부자가 되는 것만큼 중요한 수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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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꼭 듣고 싶었던 말, 냥이의 글이 되다 | 2018년 서평 2018-02-2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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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냥이로소이다

고양이 만세,반려인 신소윤 역
21세기북스 | 2018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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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꼭 듣고 싶었던 말, 냥이의 글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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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마리의 필냥이가 있다. 중성화한 수컷 고양이로, 20112월 서울의 한 가정집에서 태어났다. 코리안숏헤어터키시앙고라의 피를 반반씩 물려받아 얼굴과 체형은 코리안숏헤어, 털색은 터키시앙고라의 흰색이다. 팔다리를 뻗어 만세하듯 보이는 동작이 특기라 이름도 만세가 된 고양이. 반려인 1이 기사 쓰는 걸 돕던 중 덜컥 기자가 되었고, 사냥에 나갔다 죽은 줄 알았던 반려인 1이 작고 낑낑거리는 생명체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던 날부터 육아냥을 겸업하게 되었다. 이 책은 그런 만세가 바라 본 요즘 세상, 요즘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부산스러운 반려인 둘과 시끄럽지만 사랑스럽고, 귀엽지만 얄미운 사람 아기와 치와와 제리 형님과 함께 살지만 걱정 없이 늘상 여유로운 만세는 모두가 깊이 잠든 칠흑같이 까만 밤에 원고를 쓰며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양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정서다. 하지만 나날이 이어지는 수많은 걱정과 고민 끝에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인간들이 내일 걱정을 위해 오늘밤 잠자리를 뒤척이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으면. 어떤 날에는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별일 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에도 맘 졸이지 않는 하루를 지내봤으면. (p.146)

 

별 하나에 걱정과 별 하나에 또 다른 걱정을 하는 인간들을 생각한다. 또 만세는 비가 내릴 것 같은 밤이면 길고양이 가족이 오늘도 무사했는지 생각한다.

 

집고양이의 평균수명은 길고양이보다 네댓 배나 길어. 나는 길에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도통 모르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고된 일상을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나날일 거라고 겨우 짐작만 할 뿐이야. (p.222)

 

겨우 짐작만 하지만, 부디 오래오래 힘세고 건강하게 그곳에 있어달라고 누구보다 바라는 냥이는 내일도 보내지 못할 편지를 쓸 것이다.

 

고양이의 시점에서 쓰여서 그런지, 고양이에 대한 마음이 한결 와 닿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세의 시선으로 쓰여서 더욱 와 닿았던 구절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다.

 

어느 날 아침 반려인 1은 출근과 아이 등원 준비를 동시에 하며 정신이 없던 중이었다. 평소 집 안에 낙서하지 않던 지우는 바닥에 크레파스로 주욱 선을 그었다. 반려인 1은 처음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물티슈로 바닥을 훔쳤다.

그날따라 엄마를 기다리는 게 지루했던 걸까. 지우는 방금 갈아입은 옷에도 그림을 그렸다. 반려인 1이 한숨을 쉬며 옷을 갈아입혔다. 그런데 점점 더 처음 해본 놀이가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새 옷에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분노 열매를 먹은 반려인 1이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지우야! 엄마가 낙서 그만하라고 몇 번 말했니? 어린이집 안 갈 거야? 엄마 회사 안 가도 돼? 바쁜데 도와주지도 못할망정 이럴 일이니?”

 

캣 타워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그녀가 소리 지른 것을 금세 후회할 것이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려인 1은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바쁜데 자꾸 낙서해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마음이 급해서 그랬어.”

괜찮아, 엄마. 그런데 소리는 지르지 마. 그러면 엄마 목이 아프잖아.”

 

늘 그렇지만 어른은 아이보다 못하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의 말을 오래오래 곁에서 듣고 싶다. 내 몸에 얼굴을 폭 기대며 만세가 좋아, 너무 좋아라고 쏟아내는 고백도. (p.85)

 

아마도 이런 날은 하루 이틀이 아닐 것이다. 출근 하나로도 충분히 바쁜데, 등원을 챙겨야 하는 엄마는 늘 정신이 없고 아이는 엄마 속도 모르고 세상 느긋하다. 그렇지만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열이면 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만세의 말마따나 가능하면 오래오래 곁에서 듣고 싶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의 말. 만세의 시선이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하나의 풍경이었다.

 

옮긴이의 말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저자는, 자신과 함께 사는 동물들의 마음이 늘 궁금했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을 앓으면서도 찍소리 내지 않고 참는 반려견 제리에게 꼭 한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고, 아픈 제리를 살피느라 어떤 날은 한 번도 쓰다듬어주지 못했던 만세에게도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고 싶었다고. 특히 가장 늦게 가족으로 합류한 사람 아기의 등장에 보살핌을 받는 순서가 훌쩍 뒤로 밀려버렸음에도, 아이에게 다정하게 구는 것을 볼 때도 자꾸만 말을 걸고 싶었다고 한다. 최대한 그들의 시선 가까이에서 글을 쓰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이다.

 

한 번쯤 꼭 듣고 싶었던 말들을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들은, 만세의 글을 옮긴 저자에게도 이 책을 읽게 된 나에게도 따뜻한 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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