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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존재론 강의록 | 강의 후기 2011-10-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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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선언

알랭 바디우 저
길 | 2010년 08월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질 들뢰즈 저/박정태 역
이학사 | 2007년 09월



르네21 수요인문강의 중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바디우의 존재론 편. 강사 박정태.  


  (선생님께서는) 알랭 바디우의 책은 많이 번역이 되었는데, 그의 책을 번역한다는 건 무지 어려운 작업이라 하셨다. 제목을 잊었는데 오래 전에 어떤 출판사가 판권을 사갔는데 아직도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번역된 책들 제목을 보니 그 중 내가 인터넷 공간에서 알게 된 분께 선물을 드린 책도 보인다. 사랑 예찬. 제목만 보면 연애 지침서 같지만 아니다.  

  어떤 철학자에 입문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사용하는 용어를 알고, 내용을 접하는 것이다. 분명 우리가 평소에 알고 쓰던 용어들인데 이상하게 읽으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도통 알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을 자주 접한다. 번역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 철학자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를 자기식으로 재정의해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만의 독창적인 용어였는데 우리식으로 말을 바꾸다보니 우리에겐 익숙한 단어로 번역된 경우 중 하나에 속할 것. 바디우의 책 중 하나에 바디우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해설한 부분이 있다고 하여 선생님께서는 이것을 번역하여 강의 자료로 주셨다.

(배경이 들어간 것은 박정태 선생님이 직역한 바디우 용어 부분)

1. 유적 다수로서의 존재와 사건의 발생  
    이건 유적 다수란 존재를 수적으로 보겠다는 말이다. 수량으로 말이다.   

* 존재론  
-존재로서의 존재에 관한 학이자 현시에 대한 현시를 말함. 존재론은 순수 다수에 관한 사유이기 때문에 칸토어적 의미의 수학 또는 집합 이론으로 실현됨. 그리고 이러한 존재론은 비록 그것이 겉으로 논제화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미 수학의 전체 역사 안에서 실현되고 있었음.  
-결코 일자에 의지함이 없이 순수한 다수를 사유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론은 필연적으로 공리적임.


해설:
-현존은 존재가 존재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이 만물 속에 현존한다는 식. 현시는 그 모습 그대로 다 펼쳐진 상태를 의미한다.
-위 문장에서 칸토어라는 수학자가 등장하는데, 그의 수학 이론은 이렇다. 가오스는 무한을 한 상자 안에 다 담을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칸토어는 자연수는 무한이라고 보았다. 무한으로서의 자연수를 상자 안에 담을 수 있다고 본다. 실수 또한 마찬가지. 무한수의 상자보다 실수의 상자가 더 크더라.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0, 2, 4, 6, 8, 10으로 이어지는 짝수의 집합보다 1, 2, 3, 4, 5, 6, 7, 8, 9, 10 으로 이어지는 자연수의 집합이 더 큰 것 같이 보인다. 농도, 밀도의 차이가 있어 보이는데, 둘 다 무한한 수의 나열일 뿐이다. 또한, 각각이 1:1로 대응이 가능하다. 짝수 집합의 0은 자연수의 집합의 1에, 2는 1에, 4는 2에, 6은 3에 이후 계속. 우주와 지구에 사는 존재들도 마찬가지. 우주의 존재가 더 큰 것 같지만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

  루트 2와 같이 개수를 셀 수 없는 쓸모 없는 수를 피타고라스 학파가 발견하였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1센티미터인 정사각형을 두고 사람들은 그 정사각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루트 2의 발견으로 정사각형을 다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기존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칸토어는 비가산 무한집합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1, 2, 3, 4, 5, 6으로 이어지는 자연수는 힘의 크기가 가장 작은 가산 무한집합이다. 이것은 0.12345, 0.12346 으로 이어지는 실수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하더라도 해당 실수 집합에 속하지 않은 새로운 실수들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그들은 자연수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무한한 자연수의 집합은 무한한 실수의 집합보다 작다. 결론은 무한에도 크기가 있다는 것. 바디우가 볼 때 칸토어로 인해 순수 다수에 관한 사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위 문장에서 '일자에 의지함'이라는 의미는 이렇다. 무언가에 속한다는 소속감이나 나를 가두는 테두리, 묶음, 정의함 등을 지칭한다. 1학년 1반, 르네21, 서울대학교, 백과사전에서 볼 수 있는 카테고리 동물, 식물, 포유류 등을 지칭한다.  

* 현시
-메타 존재론의 기초가 되는 어휘로서 실제적으로 펼쳐져 있는 다수-존재를 말함. 현시는 "불안정한 다수성"과 상통함. 현시와 비교하여 일자를 보자면, 일자는 결코 현시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불안정한] 다수를 안정되게 함으로써 그로부터 얻게 되는 결과일 뿐임.  

해설 :
-존재론은 '현시에 대한 현시'에 대한 사유.
-"철학은 현시에 대한 현시를 사유함으로써 현실을 인식한다."(바디우)
-집합으로 묶인 다수를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데, 이는 일자에 의지하는 것. 이런 식으로 묶여 있으면 새로운 것은 발생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안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어떤 이들은 파리 시민임녀서 프랑스 국민이기도 하다. 파리 시민은 프랑스 국민 안에 있는 카테고리이다. 프랑스 국민이 루이 16세의 목을 쳤다. 파리 시민이라는 카테고리의 언어 코드, 지식 등으로는 프랑스 국민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는 것. 묶인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언어 체계로는 묶을 수 없는 사건인 것.  
_발생한 정치적 사건은 무한하게 불안정하게 펼쳐져 있는 유적 다수를 보여준 것이다. 현시에 대한 현시를 철학이 보고 존재의 모습을 읽어낸다. 존재의 모습이 이러이러하다는 것은 무한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 이것이 진리라는 것. 철학은 진리를 인식한다. 철학은 진리를 생산하지는 못한다. 철학은 오직 인식할 뿐이다. 사건이 건수(현시에 대한 현시)를 주면 철학은 이를 인식한다.
-사랑은 도저히 접근 불가능한 둘의 체험이다. 사랑하기 이전에는 홀로 존재했거나 이 세상이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존재했거나 둘 중 하나. 사랑하는 순간은 오직 둘만 존재하게 된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진다. 둘의 체험인 것. 좋아하는 이유들이 각기 있겠지만 그런 조건들을 제외한 둘만의 체험이다. (작성자 주: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삶의 영역에서 정치(이것은 기존의 무엇을 깨고 발생하는 사건), 사랑, 예술(무한하게 펼쳐진 시적 언어), 학문(과학)은, 철학의 건수를 제공한다. 철학은 불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철학의 종말을 논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하지만 시작은 없다. 철학은 건수를 통해서만 그때그때 존재하고 활동한다.
-'불안정한 다수'는 묶는 것이 없는 것. 현시이다.

* 상황
-현시되어진 모든 안정된 다수성. 따라서 그것은 다수성이되, 하나-로-셈하기의 체제 또는 구조와 더불어서 이루어진 다수성임.

해설 :
-안정되었다는 것. 하나로 셈하기를 통해 묶고 해석한 것. 묶는다는 것은 불안정함을 피하는 것이고 곧 안정이다.
_귀속 관계

* 공백의 공리
-전혀 원소를 갖고 있지 않은 유일한 하나의 집합이 존재하며, 이 집합은 공집합 표시를 그 고유의 이름으로 지님.

해설 :
-상황을 묶고 싶어 집합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불안정한 것이 있다. 그래서 그 나머지들을 묶은 기호가 공집합이다. 묶고 묶어서 안정화를 추구했는데, 아무리 묶어도 남는 것이 있다보니 이것도 기호로 묶은 것.

* 공백
-한 상황의 공백은 그 자체가 곧 자기 존재와의 봉합을 가리킴. (존재론적 상황 안에서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하나-로-셈하기의 비-하나로서의 공백은 일종의 지정할 수 없는 점이라 할 수 있음. 현시되고 있는 것이 셈을 벗어난 형태 아래에서 현시 안을 배회함이 확인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통해서임.
-공백의 공리를 참조할 것. 

해설 :
-상황의 참 존재는 묶인 것들을 벗어난 것. '공백=공집합=비하나'는 봉합. 자기 존재와의 접근을 가리킴.

* 귀속
-집합론의 근본적이면서 유일한 특징으로서 하나의 다수 베타(b)가 또 하나의 다수 알파(a)의 다수-구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함. "베타는 알파에 귀속한다" 또는 "베타는 알파의 원소이다"라고 말함.  
-위의 말을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의 항(또는 하나의 원소)이 어떤 상황에 의거하여서 현시되고 또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질 때 그 항은 바로 이 상황에 귀속하는 것이 됨. 포함은 재현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귀속은 현시를 가리킴.

해설 :
-'하나의 다수 베타'는 하나의 항이자 그 자체가 집합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국민, 파리 시민
-어떤 상황은 집합을 의미한다.
-"포함은 재현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귀속은 현시를 가리킴"은 포함된다는 것은 곧 재현이라는 의미이다.

* 상황의 상태
-[어떤 상황에 귀속하는 하나의 항이 그 상황에 의거하여서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지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한 상황의 구조 또한 그 상황의 상태에 의거하여서 하나의 고려 아래 세어짐. 따라서 상황의 상태는 셈에-대한-셈 또는 메타구조임.
-상태의 필요성은 [상황 안에서의] 공백의 모든 현시를 몰아내고자 하는 요구로부터 비롯됨. 상태는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상황을 가득 묶어 채움.
-상황의 상태는 상황의 부분들(부분-다수들 또는 부분집합들)을 대상으로 하나-로-셈하기를 가능케 함.

해설 : 
-공집합이 안정성을 해치니까 원래의 집합 {a, b} 집합의 부분 집합들 {a}, {b}, {a,b}, 공집합을 생각해본다. 이들을 원소로 하는 집합을 생각한다. 공집합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위 네 부분 집합을 묶는 새로운 집합의 탄생 p(a)=[ {a}, {b}, {a,b}, 공집합]. 이렇게 되면 [ ] 라는 언어로 공집합까지 다시 묶을 수 있다.
-항과 집합간의 관계
-'셈에 대한 셈' : 앞의 '셈'은 상황, 뒤의 셈은 이에 대한 셈. 예를 들어, 해병대 지부회라는 틀 안에 경기 해병대 지부회, 충주 해병대 지부회 등이 묶인다. 귀속된 지역 해병대 지부회가 해병대 지부회라는 틀 안에 다 들어가 있는지 다시 셈하는 것이다. 하위 집합에 포함되는 원소는 하위 집합을 포괄하는 집합에도 포함되는 원소이다. 셈에 대한 셈을 하는 이유는, 묶어지지 않은 불안정한 것을 드러내고 세고 몰아내기 위함이다. 보다 안정적인 다수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인 것.
-집합과 집합 간의 관계
 
* 사건적 장소
-상황 안에 놓인 하나의 다수가 있되 만약 그 다수가 전체적으로 특이하다면, 즉 다수 자체는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만 다수 자신의 원소들 중 그 어느 원소도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 않다면, 이 다수는 하나의 사건적 장소임. 따라서 사건적 장소는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근본적으로 포함은 되지 않으며, 또 그는 [상황의] 원소이지만 결코 상황의 부분 [부분집합]은 아님. 이리하여 그는 전체적으로 비정규적임.
-한편 이러한 다수는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있다고 말해지거나 또는 세우는 자로 불림.

해설 :
-국가라는 집합 안에 불법 체류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국가의 행정적인 부분으로 보면 잡히지 않는다. 교사들은 진선여고 촛불 고딩들이 시청에 있는지 없는지 살피러 갔는데 시청 광장에서 본 그들은 진선여고라는 지식 체계, 언어 체계로는 그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 읽히지 않는다. 박정태 샘과 가족들은 주민등록이 말소되었지만 한국에 있을 수 있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개념적으로 읽히지 않는 것들, 특이한 것들인 셈.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라고 말함.


* 특이한, 특이성
-하나의 항이 특이하다는 것은 그 항이 (상황 안에서) 현시되고 있지만 (상황의 상태에 의거하여서는 [상황 안에서]) 재현되지 않는 것을 말함. 따라서 특이한 항은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상황에 포함되지는 않으며, 하나의 원소이지만 부분은 아님.
-특이성은 돌출과 정규성에 대립함.
-특이성은 역사적 존재, 특히 사건적 장소의 본질적인 속성임.


해설 :
-박지성, 이영표, 펠레, 마라도나, 지단 등 축구 선수들의 집합이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둘이 뭉쳐 다녔다. 두 사람이 원소인 부분 집합이 형성된다. 이 상황에서 읽히고, 또 묶였다. 묶인 집합을 베타라고 하면 이는 전체 집합 알파에 포함된다. 베타를 집합으로 보지 말고 하나의 항으로 보면,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항으로 바꿀 수 있다. '한국인'이라는 항은 '축구 선수'라는 집합 알파, 항 알파에 속하지 않는다. 집합으로 보면 묶이는데 항으로 보면 묶이지 않는, 읽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를 '돌출' 이라고 한다.
-애써 묶었는데 그 안에서 일부를 묶었더니 이상하게 묶인 집합을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즉, 일자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묶고 묶으려 해도 묶이지 않는 것이 나타난다. 일자는 인위적인 것이다.
-특이성은 역사적 존재, 정규성은 자연적 존재이다.

=> 정규적이다, 특이하다, 돌출적이다 라는 세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정규성으로 잡혀 있는 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 초과점의 정리
-모든 집합 알파에게 있어서는 집합-p(a) 즉, 집합 a의 부분[부분집합]들로 이루어진 집합-의 원소이지만 집합 a의 원소는 아닌 집합이 최소한 하나는 꼭 존재한다. 따라서 외연성의 공리에 비추어 볼 때, 집합 a와 집합 p(a)는 서로 다른 집합임.
-집합 a 위에 가해지는 집합 p(a)의 이러한 초과는 일종의 국지적인 차이인 바, 코헨-이스턴으 ㅣ정리는 이러한 [국지적인] 초과에 그 어떤 전반적인 위상을 제공함.
-초과점의 정리는 언제나 최소한 하나 이상의 돌출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음. 따라서 상황의 상태는 상황과 결코 일치할 수가 없음.

해설 :
-마라도나, 펠레, 박지성, 이영표 등을 원소로 하는 본래의 집합 알파의 원소들을 가지고 부분 집합을 만들어 이것을 p(a)라고 부르자. 박지성과 이영표의 묶음은 베타에 속하는데 이 베타는 알파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 박지성과 이영표의 묶음은 p(a)에는 속한다. 알파(a)<p(a)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 둘은 각각 다른 집합이다.
-상태 p(a)가 상황 a를 초과한다는 것. 언제나 하나 이상의 최소한의 돌출이 있다는 것을 가리키고, 상황의 상태가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공백의 가장자리
-상황 안에 있는 사건적 장소의 위치상의 특징. [사건적 장소 자체는 상황 안에 현시되어 있지만] 사건적 장소와 그 어떤 원소들도 [상황 안에] 현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ㅏㅅㅇ황 안에서 보자면 사건적 장소 "아래에는" 오로지 공백만이 있게 될 뿐임. 달리 말하자면, 이러한 다수의 분산 배치는 이다수가 상황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결코 상황 안에 있지 않음. 이러한 다수 중의 하나가 상황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임.
-기술적으로 표현하자면, '베타가 알파에 귀속됨'의 경우, 만약 모든 '감마가 베타에 귀속됨'(말하자면, 감사는 베타의 모든 원소를 말함)에 대하여 ''감마가 알파에 귀속됨'이 아닌' 경우라면, 즉 감마가 알파의 원소가 아니라면,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해짐. 아울러 이 경우 베타는 알파를 세운다고 말할 수 있음. (이 점에 대해서는 세움의 공리를 참조할 것)

해설 :
-진선여고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있긴 있는데 진선여고라는 코드로는 읽히지 않는다. 이를 두고 '공백의 가장자리에 있다' 라고 말한다.  


* 세움의 공리
-비어 있지 않은 모든 집합은, 그 집합 자신과의 교차[교집합]가 공백이 되는 원소를, 따라서 본래의 집합의 원소들이 아닌 원소들을 자기의 원소들로 지니는 그런 [집합으로서의] 원소를 최소한 하나는 소유하고 있음. 기호로 표현하자면, '베타가 알파에 귀속됨'이지만 '베타와 알파의 교집합이 공집합인 베타', 따라서 '감마가 베타에 귀속됨'일 때 ''감마가 알파에 귀속됨'이 아님'이 분명한 베타가 [알파 안에 최소한 하나 이상] 존재함. [상황의 개념을 빌려서 표현하자면, 상황에 귀속은 하지만 상황에 포함되지는 않는, 또는 상황의 원소이지만 부분은 아닌 특이한 항이 최소한 하나 이상 상황 안에 존재함]. 이 경우 베타는 알파를 [알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우고 있다고, 또는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하여짐.
-[모든 집합 알파는 '베타와 알파의 교집합이 공집합인 베타'를 최소한 하나 이상 자기의 원소로 지니며 이때 베타는 알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도저히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파를 세워 나간다는 점에서] 이 공리는 [모든 집합의] 자기-귀속의 금지를 함축함. 그리고 [베타가 지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알파를 세워 나감은 곧 사건의 지정할 수 없는 발생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이 공리는 결국 존재론은 사건에 대하여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줌.

해설 :  
-모든 집합에는 사건적 장소가 있다. 파리 시민은 베타 정규적 항. 그런데 이 정규적 항이 읽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기존 집합 프랑스 국민 알파에서는 읽히지 않는다. 알파와 베타의 교집합이 없다. 즉 공집합인 것. 이러한 베타가 사건적 장소에 하나 이상이 있다. 이를 두고 베타는 알파를 세우고 있다고 말한다. 또는 베타는 알파 안에서 공백의 가장자리에 접해 있다고 말한다. 
-"세움의 공리는 모든 집합의 자기 귀속의 금지를 함축함." : 알파는 알파 자신에게 속할 수 없다. 칸토어의 자기 귀속의 금지 원칙. (러셀이 이를 위배하는 경우를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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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인문 강의를 권함 : 르네21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 강의 후기 2011-10-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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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위한 선언

알랭 바디우 저
길 | 2010년 08월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질 들뢰즈 저/박정태 역
이학사 | 2007년 09월


수요일마다 르네21(http://www.renai21.net)에서 듣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철학' 강의. 다섯 번째쯤 되는 것 같다. 바쁜 일로 두 번을 빠졌고, 세 번 중 두 번은 들뢰즈, 그리고 최근에 들은 강의가 바디우다. 들뢰즈 강의를 두 번 빠지긴 했지만 들뢰즈의 핵심 개념은 알았고, 들뢰즈보다 더 수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어렵게 언어를 구사한다는 바디우에 입문한다.  

  들뢰즈나 바디우나 이름만 들어본 건 마찬가지. 들뢰즈와 바디우 강의를 들으면서, 오히려 기존에 알던 철학자보다 모르던 철학자를 백지 상태에서 접수하는 것이 공부하는 데는 더 낫지 않나 생각해본다. 오랫만에 생소한 형이상학과 존재론에도 빠져들고, 나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르네21에서 수요일마다 하는 다른 강좌들은 강사가 중간에 달라지기도 하는데, 내가 듣는 이 강의는 한 분이 들뢰즈와 바디우를 모두 가르치신다.  

  선생님은 키가 작으시고 수염을 깔끔하게 기르셨다. 그냥 봐도 철학자 또는 예술인 같은 모습인데, 말을 하시기 전에는 좀 진지하고 무겁게 느껴지고, 말을 하시면 활달하고 열정적으로 변하신다. 좁은 강의실에서 십여 명의 나이대가 다양한 학생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면, 내가 이렇게 따라가기 버거워 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들뢰즈 강의 때는 한 번 꾸벅꾸벅 졸아 죄송하기도 하다. 근데 강의 땐 다 알겠던데 들뢰즈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생소해지더라는.

  바디우가 들뢰즈보다 더 어렵다고 하셔서 겁먹었는데, 첫 강의를 들어보니 바디우의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은 무난히 통과한 것 같다. 내가 이해한 바를 잊지 않기 위해 강의록도 작성하고, 선생님이 쉽게 예를 들어 말한 바를 그대로 받아 적어놓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은 들뢰즈와 바디우가 처음인데, 이런 게 프랑스 철학의 특징인가 하고 일반화시켜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철학 어지간히 수학을 좋아한다. 덕분에 고등학교 때 이후 접할 일이 없던 미분과 적분, 함수 그래프에, 자연수, 무한수, 루트 별별 것들이 다 뇌의 폐기 처분 코너에서 보류 코너로 자리를 바꾼다.  

  내일이 또 강의 날이다. 바디우를 몇 차례 더 입문한 뒤 선생님은 들뢰즈와 바디우를 미학, 정치철학 영역 등에서 비교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이 강의는 존재론과 형이상학에서 시작해 미학과 정치철학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들뢰즈와 바디우의 모든 면을 한번 제대로 훑는 강의가 될 것. 정치철학쯤 가면 내 눈이 더 반짝거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길 기대한다.  

  찾아보면 요새 좋은 강좌들이 많다. 바쁜 직장인들도 일주일에 하루쯤 틈을 내어 이렇게 생소한 공부에 공을 들이는 건 어떨까. 아트앤스터디와 같은 동영상 강좌도 있고, 철학아카데미와 같은 입문/전공 철학 오프라인 강좌, 또 수유너머와 같은 공동체 세미나, 르네21과 같은 서양, 동양, 교양 각 영역별 하나씩 개설되는 오프라인 강좌도 있다. 교육 기간에 따라서 싸면 10만 원 좀 넘고, 비싸면 40만 원 정도 한다. 이 강의들이 내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결코 비싼 돈이 아니다. 한 번 빠져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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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철학, 입문기 2편 - 디페랑씨아씨옹 | 강의 후기 2011-09-1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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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질 들뢰즈 저/박정태 역
이학사 | 2007년 09월


 르네21(http://www.renai21.net)의 <들뢰즈의 철학과 바디우의 철학 강의>. 두 번 들었다. 세 번째 강의였지만 두 번째 강의를 빼먹은 탓이다. 첫 강의에서 들뢰즈 철학의 세계관과 다섯 가지 특징을 배웠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사건 발생 논리, 그리고 수학의 미분과 적분을 끌어들여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폈다. 아직까지는 들뢰즈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 공부라고 봐야 한다. 칸트 철학을 공부할 때 선천과 선험의 개념을 구별하는 것처럼.  

<사건의 발생 논리> 

  우선 들뢰즈의 '사건의 발생 논리'를 이해할 때 차등화와 차이화의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 프랑스어에서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들었다) '디페랑씨아씨옹'이라고 똑같이 소리나는 두 단어에서 '씨'라는 소리가 나는 부분의 스펠링이 't'와 'c'로 각기 다른데, t가 들어간 디페랑씨아씨옹을 박정태 선생님은 '차등화'라고 번역을 하고, 'c'가 들어간 디페랑씨아씨옹을 '차이화'라고 번역을 하신다. 프랑스어로 표현했을 때의 언어상의 미묘한 차이를 한글로 번역했을 때도 살리고 싶었던 것. 디페랑씨(t)아씨옹은 차등화, 미분화로, 디페랑씨(c)아씨옹은 차이화, 분화, 육화, 적분화로 번역한다.   

  위의 개념 구별로부터 다음과 같이 나아간 내용을 정리해볼 수 있다. 배운 내용을 쉽게 정리해보고 싶지만 배운 내용보다 더 쉽게 전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첫째, 잠재의 차원에서 다수가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는 무엇, 이것은 잠재의 차원에서 다수가 차등화되어 있는 무엇이다. 둘째, 현실의 차원에서 다수가 '온전하게' 결정되어 있는 무엇, 이것은 현실의 차원에서 다수가 차이화되어 있는 무엇이다.  

<개별 미분화/개별 적분화>

  다음으로, 들뢰즈에게 있어서 개별 미분화와 개별 적분화 개념을 이야기해 보자. 고등학교 때 누구나(?) 배운 수학의 미분과 적분 개념을 그대로 가져다가 해석한다.

  일단 기억을 더듬어서 미분 f(x)란 곡선을 곡선의 구간으로 나누고, 곡선과 관련된 각 구간을 이루는 점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미분은 곡선을 쪼개 점으로 만들고, 각 점의 수학적  성격을 순간변화율로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적분 s(x)는 원래 함수의 면적을 나타내는 함수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수학적 미분과 적분에서, 미분을 잠재적 영역으로, 적분을 현실적 영역으로 해석한다. 'y는 x제곱'의 현실적 영역 속의 곡선을 미분화하여 '무한하게' 잘게 쪼개고 또 쪼개고 하면-이때 무한하게 쪼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감각적으로 쪼개는 것에서 나아가 사유의 영역에서도 무한하게 세세하게 쪼개는 것을 의미한다- 잠재적 차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때 잠재적 영역 속 점들의 수학적 성격은 순간 변화율의 함수이다. 시간에 적용하여 살피면, '현실적 영역 속의 곡선'은 시간의 분열에서 '과거의 보존'을 의미하며, '잠재적 영역 속 점들의 수학적 성격'은 시간의 분열에서 '현재의 흐름'을 의미한다.  

  잠재적인 것은 애매한 것이고, 이성적 개념의 틀을 벗어나는, 개념 바깥의 구체적인 것, 그리고 특이한 것이다. '개념 바깥의 구체적인 것'이란 말은, 예를 들어 짜장면(국립국어원님께서 표준어로 격상(?)시켜주셨다)을 먹고 '맛있다'라고 표현하는 것, 이것을 제외한 짜장면을 먹고 느끼는 나머지 감정들, 느낌들, 감각들이 바로 '구체적인 것'이다. 특이한 것은 흔히 느끼듯 뭔가 벗어나 있는 것.

  다시, 이러한 일련의 개념 정립 과정과 시간에 적용하는 논리를 통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억은 단지 지나간 회상의 의미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현재의 지각과 부딪히면서 지각의 의미를 보다 명확히 해주고 있다."  

<정리 발언>

  기존의 개념을 활용하여 자기 이론을 세우는 철학자들과 달리 칸트나 들뢰즈처럼 기존의 언어로 풀어낼 수 없는, 기존의 언어를 활용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거나 아니면 단어를 새로 창조해내는 이들의 철학을 공부할 땐 이렇게 개념을 먼저 알고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쓴 글을 한 줄도 읽어낼 수가 없다. 박정태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무척 쉽게 전달하려고 애쓰셨고, 들뢰즈가 언급한 어떤 영화의 장면을 보여주시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노트북을 두 손으로 들고 계시기까지 했다. 수강생은 여전히 열 명안팎으로 적지만 그 수와 관계 없이 의욕이 넘치신다. 대학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많은 교수들의 마인드와는 무척 다르다.

  르네21은 기획 단계에서 저서든 번역서든 좋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을 기준으로 강사를 섭외한다고 한다. 이번에 개설된 단 한 개의 서양 철학 강좌도 역시 마찬가지. 동양 철학 강좌의 김교빈 선생님, 수요 교양 강좌, 금요 강좌 또한 마찬가지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획하고 강의를 운영하는 분들과 열정적인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말고 계속 들어야 하는데. 한 번 빼먹는 바람에 세 번째 강의를 못따라갈까봐 지레 겁먹기도 했다. 다음 강좌는 아마도 알랭 바디우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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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 입문기 | 강의 후기 2011-09-0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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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질 들뢰즈 저/박정태 역
이학사 | 2007년 09월


철학을 전공했으나 들뢰즈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 시절엔 프랑스 철학을 다루는 강의가 아예 없었고, 들뢰즈는 당시 한국 강단에 막 수입된 최신(?) 학문이었기에 학부생들이 다룰 만한 철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학부 때부터 들었고, 졸업한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을 듣고만 있다. 대학원에 가서도 윤리학을 공부했기에 존재론, 형이상학을 다루는 들뢰즈는 역시 전공 외 영역에 있었다.  

  르네21에서 들뢰즈 강의를 한다. 지난 수요일 첫 강의를 들었고, 들뢰즈의 철학에 입문했다. 정확히 그 강의는 들뢰즈와 바디우를 다룬다. 바디우는 들뢰즈보다 늦게 이름을 접했고, 모르기는 역시 마찬가지다. 첫 강의는 들뢰즈 존재론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배웠다. 수강생들은 대학생 또래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했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한 10여명 정도. 그 분들은 모두 왜 이 강의를 들을까. 단지 들뢰즈를 알고 싶어서, 아니면 강유원 선생님의 말마따나 노후를 즐기기 위해서. ^^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적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들뢰즈를 함께 듣는다.  

  강사 박정태 선생님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를 엮으셨다. 들뢰즈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들뢰즈의 초기부터 이전 철학자들에 대해 쓴 논문을 모아 번역/엮은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를 따라가기에는 적절한 교재다.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들뢰즈의 철학을 소개했고,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가 아닌 만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셨다. 입문해보자. 들뢰즈의 철학은 다음 다섯 가지 바탕을 깔고 있다.  

  첫째, 들뢰즈의 존재론은 내재주의의 특징을 보인다. 반대되는 말은 초월주의. 존재는 존재자들에 내재하고, 존재자들은 존재에 내재한다. 신은 양태들 속에, 양태들은 신 속에 들어있다(스피노자를 받아들임).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에 내재하고,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은 생명에 내재한다(베르그송을 받아들임).  

  둘째, 분간불가능성. 식별불가능성이라고도 한다. 반대되는 말은 식별가능성, 분간가능성. 존재와 존재자, 신과 양태, 생명과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들이 서로 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분간, 식별 불가능하게 된다. 고로 존재의 일의성이 유지된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와 이데아가 깃든 것은 엄밀히 구분되지만 들뢰즈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은 잠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인 것. 이때 '동시에'라는 말이 분간불가능성을 일컫는다.  

  셋째, 등가성 또는 동등성. 반대말은 비등가성 또는 비동등성. 들뢰즈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의 가치가 다 똑같다. 가치의 우위와 서열을 들뢰즈의 일의성이 참아내지 못한다. 존재와 존재자들의 가치를 동일하게 본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데아 세계와 현실 세계의 가치는 엄밀히 구분되고, 가치 또한 다르다. 플라톤에게 있어 현실의 사물은 이데아를 모방하고 분유한 것이기에 가치 측면에서 이데아 아래 줄을 서게 된다. 이데아를 기준으로 참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줄 세운다. 국가의 지도자 또한 이데아에 가장 근접한 철인을 설정한 것이다.  

  들뢰즈는 이데아와 현실 사물의 가치 체계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복이다. 현실 사물을 이데아의 위에 놓는 방식으로 뒤집는다면 그건 여전히 비등가적이고, 비동등한 것. 들뢰즈는 이를 동등하게 함으로써 플라톤을 전복한다.  

  넷째, 생기주의. 유기체로 나타나기 이전 생기주의에 따른 머리의 생산이 있어야 한다. 생기주의는 유기체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다. 존재는 존재자들의 역능이고, 생명은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의 역능,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의 역능, 신은 양태들의 역능, 존재는 존재자들을 생산함으로써 실재하는 파워. 잠재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고 동력이며 구조가 된다. 역능이란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역능은 또한 자기 원인적인 힘이다.  

  플라톤의 경우 영혼이 세 가지로 나뉘어진 것과 같이 국가도 세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영혼들이, 각 계급들이 제 역할을 잘 할 때 온전한 몸, 온전한 국가가 된다. 들뢰즈는 잠재적인 것을 선험(경험보다 논리적으로 앞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적인 장으로 이야기한다. 현실적인 것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따라서 선험적.  

  다섯째, 매개가 배제된 종합. 존재, 신, 생명, 잠재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 존재자들, 양태들, 생명의 다양한 형식들, 현실적인 것들의 구조가 하나가 각각 있지 않고, 매개를 배제한 종합으로 이를 바라본다. 플라톤의 삼각형에서는 이데아 안에 현실의 여러 삼각형들이 포함되고 포섭된다. 하나가 다수를 엮고 종합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의 현실 삼각형은 이데아의 삼각형과 유사한 것일뿐이다. 플라톤도 종합을 보여주지만 여기엔 매개가 개입되어 있다. 존재가 집합과 비집합으로 나누어진다. 유사한 이데아의 범주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분화된다. 우리 현실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한 나와 너와 그에게 어떤 의무,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 매개이다. 들뢰즈에게 있어서 그 둘이 서로를 해하지 않고 종합이 되려면 매개가 없어야 한다. 다수인데 종합, 두 개인데 종합되는 것. 잠재적 차원과 현실적 차원에 매개가 개입되어 있지 않고 둘을 묶어 종합한다.

  어렵다. 하지만 플라톤과 대비하여 쉽게 풀어주셨다. 대략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고, 다음 강의를 듣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하다. 존재론은 현실의 문제와는 많이 다르다. 철학에서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은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존재론은 다소 구름에 붕 뜬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존재론은 지금까지 내가 인식하던 세계의 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존재론, 형이상학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두 번째 강의를 기대한다. 르네21에는 서양, 동양철학 강좌가 지난주부터 진행 중이고, 금요일마다 매번 다른 책의 저자와 함께 하는 교양 강의가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여기로. http://www.renai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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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변호사의 법률 에세이 | 인문/사회/과학 2011-08-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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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확신의 함정

금태섭 저
한겨레출판 | 201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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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서, 작가의 주된 메세지는,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사법 시험에 합격했으며, 검사로 임용된 그는, 검사에서 변호사로 신분을 바꾸기 전까지 수많은 사건을 접했고,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을 만났다.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었는데 아닌 경우도 있고,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대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은 경우도 있었다. 결론이 확실하다면 그나마 나은데 뭐가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는 건들도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다. 진실은 그 어느 지점엔가 존재하고, 우리는 양쪽에서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  

*  책에는 많은 사건들이 글의 재료로 쓰였고, 중간중간 읽으면서 평소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었다. 가령, 아동 성폭행 범죄 사건이 터지면 일부 네티즌들이 '화학적 거세'를 해결 방안으로 내놓는데, 사실 이렇게 실시한다고 해도 그의 성기를 이용해서 성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뿐이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손이나 눈, 입으로도 충분히 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다. 범죄는 '성기의 꼴림'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범행 대상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시작된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화학적 거세가 아니라 인위적 시각 장애를 주장해야 하는 걸까? 성기를 제거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학생 인권에 관한 부분도 나오는데 1974년 4월 3일 시행 대통령 긴급조치 4호 5항에 따르면, "학생의 부당한 이유 없는 출석,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관계자 지도, 감독하의 정당한 수업, 연구 활동을 제외한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기타 일체의 개별적, 집단적 행위를 금한다. (...) 위반한 자 및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해야 한다. 그 시절의 대통령과 정부가 얼마나 악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정희 시대에는 고려대학교 교내에서 시위하면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다는 법조문도 있었다고.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알까? 이 책이 아니면 계속 모르고 지나갔을 것.  

  이슈거리를 두고 다른 근거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 몰랐던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것은 이 책에서 내가 얻은 부분이다. 그러나 딜레마적 상황을 던져주고, 금태섭 변호사가 자신의 대답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두루두루 누구나 답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고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했지만, (나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그 문제의 근거가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 약해 고민을 해소하지 못하기도 했다. 관련된 주제로 글을 썼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가 되었던 것이다. 

*  몇 년 전부터 계속 생각해오던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생각했지만, 이 근거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고 일단 놀랐고, 또 나와 입장이 다른 그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내내 마음속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성매매'와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인데, 진보적 여성 운동가들-그들은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중 일부는 성기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과 손이나 팔, 다리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성매매를 옹호하기도 한다. 듣고보면 신체의 일부를 이용해 노동하는 것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 이건 뭔가 아닌데 하고 생각하면서, 그 두 행위의 차이로 생각해 본 것이 일종의 '인격권'이라는 것.

  말하자면 이는, 성기는 신체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노동한다는 것은 애초 어불성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다지 강력하지는 않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건데, 금태섭 변호사 또한 이 책 중간에 성매매 여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도구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 "정말 돈을 내고 자신을 고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는 행위에 '자발적인' 경우와 '비자발적인' 경우가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며 "우리에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성매매는 범죄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 글에서 금태섭 변호사가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내가 생각한 일종의 인격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를 통해서는 그와 나의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깔끔하게 내리기는 어렵다.

* 이 책에 대해 어느 독자는 고등학생이 논술 답안으로 작성한 수준의 글이라고 평했지만, 글을 쉽게 썼다고, 글이 쉽게 읽힌다고, 내용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금태섭 변호사의 검사 시절부터 변호사인 지금까지 경험한 직간접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법률 에세이라고 봐야 하고, 이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그의 경험을 빌려 생각을 넓힐 수 있다는 것. 독자는 그의 책을 재료로 삼아 '만일 나라면'이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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