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글과 사람, 신앙과 고백
http://blog.yes24.com/dyerso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dyerso
독서를 사랑하는 기독교인, 아이들을 키우는 아버지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6월 스타지수 : 별4,70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서평단 신청
서평단 당첨
생각 나누기
책 이야기
밑줄 긋기
나의 리뷰
그림/동화/유아
교양/에세이/인문
철학적인
신학적인
신앙적인
성서관련
그 외
한줄평
태그
한밤을걷는기도 함께살아가는요셉들 기독교수필 두발의고독 토르비에른에켈룬 카레자와카오루 또라이질량보존의법칙에서살아남기 여름인건가 내가여름을좋아하는이유 에밀쉬러
2021 / 0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
최근 댓글
축하드립니다. 내용이 기대됩니다. ^.. 
저도 겨울왕국 시리즈 좋아해요. ^^ 
코로나가 빨리 끝나서 아이들과 수영장.. 
dyerso님~ 좋은 리뷰 감사 드립.. 
저도 라면을 참 좋아해서 공감이 갑니.. 
새로운 글
오늘 18 | 전체 11358
2019-01-26 개설

전체보기
한밤을 걷는 기도 | 밑줄 긋기 2021-06-15 23:5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57714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한밤을 걷는 기도

필립 얀시 저/홍종락 역
두란노 | 2021년 05월

 

 

 

주님은 우리의 영적 상태를 알리는 맥박을 우리 영혼 안에 두셨지만 우리는 그것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42쪽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두 발의 고독 | 교양/에세이/인문 2021-06-14 23:18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4568423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예스24X문화일보 국민서평프로젝트 참여

[도서]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저/김병순 역
싱긋 | 2021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길과 사람, 자연과 나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대한민국에서 대략 절반은 수도권에서 살아간다. 나머지 인구도 도시에 많이 산다. 도심의 공기와 바쁨은 보다 더 빠르고 편한 이동을 원하고 사용한다. 걷기 보단 뛰고, 뛰는 것보다는 타고 다니길 선호한다. 느림의 미학이 아닌 초격차를 원한다고 해야 할까.

 

  경쟁에 치이고 힘든 삶이다. 그래도 누구나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것, 바로 지금 이곳에 서 있다는 것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걸음을 전진시키며 목표를 향해 가기에 자신의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고 한다.

 

  책의 저자도 성실하게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다.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건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패스트푸드 같은 삶에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슬로푸드 같은 삶으로 달라져야만 했다.

 

  언제부터 길이 생겨났을지 알 수 없다. 가이드의 인도를 따라서 트래킹을 시작해보면 아득히 먼 지점까지 나아간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길은 듣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야 하므로 더 그런 것은 아닐까.

 

길은 인간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30

 

  나만이 걸어온 혹은 네안데르탈인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길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두 발로 일어서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과 직립보행이 가능해지고 나서도 생존을 위해 나아가야만 했던 이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일까. 아마도 농사를 짓기 시작한 후부터 안주하는 삶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그 즈음부터 어딘가로 나아가기보다는 정주하는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가만히 멈출 수 없었을 것이다. 노마드적인 모습을 이제는 사이버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워진다. 아니, 저자의 말을 잠시 빌려와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스마트폰은 우리가 길을 잃을 수 있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황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걸을 때, GPS는 지도나 당신의 방향감각, 지형을 읽고 길을 추적할 줄 아는 능력보다 신뢰할 만하지 않다. 148

 

  기억 속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우리의 감(어쩌면 DNA 안에 내재된)은 기계보다 정확할지 모른다. 다만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혹은 사용할 일이 없어져서 녹슬어버렸다고 생각될 뿐이다. 감사하게도 이 숨겨진 능력을 붐업 가능케 하는 오리엔티어링(지도와 나침반만을 통해서 길을 찾는 레포츠)이 있다.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싶다.

 

  모질게 만난 현실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은 인간 본연의 휴머니즘이라 생각한다. 추억의 오두막을 그려보며 트래킹을 하고 여행을 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소설 오두막처럼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걷는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향을 찾아가는 연어처럼.

 

누군가가 죽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202

 

  녹색을 머금고 있는 지구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놓인 길은 누군가가 지나갔던 흔적이다. 거기에 나의 발을 올려놓아본다. 그 길을 따라 걷게 되면 목적지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아니, 천천히 걷다보면 고독 속에서 삶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노르웨이의 숲, 코로나로 인해서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나라. 역시 저자의 말을 귀담아 듣게 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다. 206

 

  여행을 떠나게끔 권하는 저자의 글을 읽었다. 역시, 주변부터 두 발로 걷고 싶어진다. 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며 오늘은 어떤 햇빛이 내려쬘지, 구름은 어떤 모양일지 상상하고 싶어진다. 서두르다가 놓치지 말아야겠다. 지금 여기에서의 시간들을 또한 코로나로 보다 더 밀착해서 보낸 공간의 기억들도 말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함께 살아가는 요셉들 | 생각 나누기 2021-06-14 21:14
http://blog.yes24.com/document/14566531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목수 요셉과 또 다른 요셉

 

  뚝딱뚝딱 망치질하는 소리. 요즘은 망치질보다는 태커(타카 혹은 에어건)심을 총알처럼 사용하는 태커라는 공구를 많이 써서 총싸움 같은 느낌을 받는 작업의 현장입니다. , 공방을 좋아하는 분들은 등록해서 목공을 배우기도 하시겠네요. 나만의 의자와 책상을 직접 만드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말이지요.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만 나오는 결실이 목공 작품이라 느낍니다.

 

  이렇게 열심히 목수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 이 대한민국에도 많은 요셉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 요셉, 삶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요셉도 있을 것입니다.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하는 존재 그건 바로 이름. 바로 이 지점에서 요셉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를 좀 다녀본 분들은 성서에도 많은 요셉이 등장하는 걸 아실 겁니다. 주요 요셉으로는 목수였던 요셉과 부자로 추정되는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익히 아는 바로 애굽(이집트를 우리말 성서에서는 애굽으로 표현합니다) 총리 요셉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추앙받는 이가 총리 요셉이라면 이와 반대로 언급이 적은 목수 요셉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목수 요셉을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목수였던 그리고 정혼한 마리아와 가만히 끊으려 했던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알기 어려운 그의 모습은 어떠한 삶을 살아갔을지 궁금합니다.

 

  흔히 몸을 쓰는 직업, 블루칼라로 표현되는 목수는 현대에 와서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충분한 근육이 있어서 망치질 할 때에 돋보이는 남성미를 표현하고 싶다면 매력적인(?) 직업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선호 받는 직업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선망하는 유튜버도 아니고, 부모님들께서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일명 직업명의 뒷자리에 ()’가 들어가는 직업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만 배우면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 옛날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어떠했을까요. 가장 좋은 계급이었던 왕족과 제사장 그룹이 아니었고,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존경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리라 유추됩니다. 이런 목수의 삶이 기록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이런 을의 삶, 흙수저의 삶을 살아갔던 서민이 영광스러운 기록에 남게 된 것은 역설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21:26)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요셉이 있습니다. 목수 요셉처럼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살아갑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으며, 수도와는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요셉입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움직이며 사람들과 함께 혹은 홀로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목수처럼 여러 공구를 다루며 작업을 합니다. 구슬땀이 맺혀서 떨어지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즐거움으로 일을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라면 묵묵히 일을 해야 먹고사니즘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혹은 열심히 일하는 워킹 맘을 포함하여)는 자신보다는 가정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세대가 바뀌어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간다고 하지만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은 아니 가치는 유지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다시금 자라고 이어져 갑니다. 신앙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1:28)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인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까요?

 

시대상이 반영되는 아버지 요셉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사를 외치던 CF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대가 흐르면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재단하려고 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가는 라는 존재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계속 더하여져서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다가 갈 것입니다. 또한, 나의 생활 반경을 변경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 아래에서 천천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나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그래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에도 쉽지 않습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자신이 아는 바를 행(목수의 일)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도(지혜)로 인하여 정혼한 그녀와 조용히 끊으려 하던 사람이었습니다(1:19). 그러나 꿈을 존중하고 나아갔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성경대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배우기 시작한 것부터 배운 것까지를 나타내는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니 과거 대학시절 시험범위가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배우기 시작한 것부터 배운 것까지 서술이었거든요.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을 마주칠 때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무조건적 절대적인 수용이 아니라 무조건적 절대적인 거부일 확률이 큽니다. 조금 더 열려 있는 자세라면 유예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겠지요. 이에 따라서 위의 상황을 대입해보면 요셉은 굉장히 신앙적인 사람이었으며, 존중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조금 더 성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까지 동침하지 않았음도 볼 수 있습니다(1:25).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닮아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지혜가 더하셨던 것(2:52)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또 다른 요셉은 어떨까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실로 자녀가 태어납니다.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훈육도 하고 모르는 것은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워갑니다. 자신의 앎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 신앙 안에서 키우기 위해 식사기도를 하는 모범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아멘 하러 가는 길에는 빈손이 아닌 예물을 드려야함을 가르치기 위해서 꼬박꼬박 헌금을 쥐어줍니다. 어려서부터 배우는 기도생활은 나이가 들어서 혹여 신앙을 잠시 떠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부모를 통해서 봐왔던 기도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요셉도 자기의 지식 안에서 지혜롭게 양육하려고 노력합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아버지 요셉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방법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도 목수 요셉에게 일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가면서 가정을 위해 일을 하던 모습을 보고 배우고 따라하며 배우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삶으로 가르칠 때에 전인적인 교육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의 저자도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십니다. 역시, 요셉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어서 다가올까요. 단지 기술을 배우는 혹은 지식을 채우는 순간이 아닐 것입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지혜를 체득하도록 날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지 우리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며, 이곳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은 시나브로 성서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대신에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13:55)이라는 칭호를 들으셨습니다.

 

  삶에서 목수의 향기가 나던 아버지 요셉,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이어진 목수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목수 생활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러 본격적으로 나가시기 전까지는 배우셨던 대로 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왜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20:12)고 당시의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러나 상상하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들이 성서의 장과 절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당시 성전은 실제로 어떤 느낌이었을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또한,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이셨을지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과 후, 어린 시절의 일화가 목수 요셉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접촉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아름다운 것은 은혜가 아닐지

 

  저도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가까이는 가나다라마사같은 한글노래 부르기, 좀 더 나아가서는 아멘(교회)에서는 전도사님께서 무슨 말씀하셨니?”와 같은 질문을 하는 노력들을 합니다. 물론, 삶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보여주며, 집에서는 TV보다는 책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며 배우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 있음을 떠올리며 주일성수가 아니라 주()성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땅 위에 요셉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저도 포함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목수 요셉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본이 되는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요셉들이 되어 보실래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다락방 (격월간) : 5-6월 [2021] | 그 외 2021-06-14 00:02
http://blog.yes24.com/document/14559955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잡지]다락방 (격월간) : 5-6월 [2021]

다락방 본부 저/민한식 역
대한기독교서회 | 2021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기회가 되면 묵상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락방입니다.

  제가 다니는 (혹은 섬기는) 교회에서는 묵상집으로 [매일성경]을 사용합니다. 대학교 때에 선교단체에도 [매일성경]을 사용했었지요. 그럼에도 종종 [다락방]을 통해서 묵상하는 이유는 간략한 성서구절, 그리고 삶을 풍성히 나누는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더욱 도움될 수 있도록 한영대조 버전이기에 좋습니다.

  말씀을 읽는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나타내려 노력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분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쪼록 좋은 묵상집임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며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한줄평]다락방 (격월간) : 5-6월 [2021] | 한줄평 2021-06-13 23:57
http://blog.yes24.com/document/1455986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평점

작지만 충분한 묵상집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2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