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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요셉들 | 생각 나누기 2021-06-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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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요셉과 또 다른 요셉

 

  뚝딱뚝딱 망치질하는 소리. 요즘은 망치질보다는 태커(타카 혹은 에어건)심을 총알처럼 사용하는 태커라는 공구를 많이 써서 총싸움 같은 느낌을 받는 작업의 현장입니다. , 공방을 좋아하는 분들은 등록해서 목공을 배우기도 하시겠네요. 나만의 의자와 책상을 직접 만드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말이지요.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만 나오는 결실이 목공 작품이라 느낍니다.

 

  이렇게 열심히 목수 일을 하는 사람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지금 이 대한민국에도 많은 요셉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 요셉, 삶의 마지막 숨을 내뱉는 요셉도 있을 것입니다.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하는 존재 그건 바로 이름. 바로 이 지점에서 요셉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를 좀 다녀본 분들은 성서에도 많은 요셉이 등장하는 걸 아실 겁니다. 주요 요셉으로는 목수였던 요셉과 부자로 추정되는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익히 아는 바로 애굽(이집트를 우리말 성서에서는 애굽으로 표현합니다) 총리 요셉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추앙받는 이가 총리 요셉이라면 이와 반대로 언급이 적은 목수 요셉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목수 요셉을 들여다보고 싶어집니다. 목수였던 그리고 정혼한 마리아와 가만히 끊으려 했던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히 알기 어려운 그의 모습은 어떠한 삶을 살아갔을지 궁금합니다.

 

  흔히 몸을 쓰는 직업, 블루칼라로 표현되는 목수는 현대에 와서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입니다. 충분한 근육이 있어서 망치질 할 때에 돋보이는 남성미를 표현하고 싶다면 매력적인(?) 직업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선호 받는 직업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선망하는 유튜버도 아니고, 부모님들께서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일명 직업명의 뒷자리에 ()’가 들어가는 직업도 아닙니다. 오히려 기술만 배우면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 옛날 유대인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는 어떠했을까요. 가장 좋은 계급이었던 왕족과 제사장 그룹이 아니었고, 레위인도 아니었습니다. 존경받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리라 유추됩니다. 이런 목수의 삶이 기록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이런 을의 삶, 흙수저의 삶을 살아갔던 서민이 영광스러운 기록에 남게 된 것은 역설입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21:26)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기 또 다른 요셉이 있습니다. 목수 요셉처럼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살아갑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으며, 수도와는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요셉입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움직이며 사람들과 함께 혹은 홀로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때로는 목수처럼 여러 공구를 다루며 작업을 합니다. 구슬땀이 맺혀서 떨어지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즐거움으로 일을 합니다. 가정을 위해서라면 묵묵히 일을 해야 먹고사니즘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아버지(혹은 열심히 일하는 워킹 맘을 포함하여)는 자신보다는 가정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세대가 바뀌어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간다고 하지만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모습은 아니 가치는 유지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다시금 자라고 이어져 갑니다. 신앙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기(1:28)까지는 아니어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인 가정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까요?

 

시대상이 반영되는 아버지 요셉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대사를 외치던 CF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시대가 흐르면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우리의 삶을 재단하려고 합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가는 라는 존재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계속 더하여져서 존재하고 있고, 존재하다가 갈 것입니다. 또한, 나의 생활 반경을 변경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자리가 바뀐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 아래에서 천천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한도 안에서 나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그래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에도 쉽지 않습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자신이 아는 바를 행(목수의 일)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도(지혜)로 인하여 정혼한 그녀와 조용히 끊으려 하던 사람이었습니다(1:19). 그러나 꿈을 존중하고 나아갔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성경대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배우기 시작한 것부터 배운 것까지를 나타내는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니 과거 대학시절 시험범위가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배우기 시작한 것부터 배운 것까지 서술이었거든요.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입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것과 다른 것을 마주칠 때에 보일 수 있는 반응은 무조건적 절대적인 수용이 아니라 무조건적 절대적인 거부일 확률이 큽니다. 조금 더 열려 있는 자세라면 유예하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겠지요. 이에 따라서 위의 상황을 대입해보면 요셉은 굉장히 신앙적인 사람이었으며, 존중을 아는 사람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조금 더 성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까지 동침하지 않았음도 볼 수 있습니다(1:25).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를 닮아서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지혜가 더하셨던 것(2:52)은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또 다른 요셉은 어떨까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실로 자녀가 태어납니다.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훈육도 하고 모르는 것은 책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배워갑니다. 자신의 앎보다는 전문가의 도움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 신앙 안에서 키우기 위해 식사기도를 하는 모범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아멘 하러 가는 길에는 빈손이 아닌 예물을 드려야함을 가르치기 위해서 꼬박꼬박 헌금을 쥐어줍니다. 어려서부터 배우는 기도생활은 나이가 들어서 혹여 신앙을 잠시 떠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부모를 통해서 봐왔던 기도가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요셉도 자기의 지식 안에서 지혜롭게 양육하려고 노력합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아버지 요셉

 

  과거에는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방법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도 목수 요셉에게 일을 배우셨을 것입니다. 날마다 살아가면서 가정을 위해 일을 하던 모습을 보고 배우고 따라하며 배우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만 남는다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삶으로 가르칠 때에 전인적인 교육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신기하게도 이 책의 저자도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사님이십니다. 역시, 요셉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삶으로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어서 다가올까요. 단지 기술을 배우는 혹은 지식을 채우는 순간이 아닐 것입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지혜를 체득하도록 날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지 우리의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며, 이곳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은 시나브로 성서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대신에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13:55)이라는 칭호를 들으셨습니다.

 

  삶에서 목수의 향기가 나던 아버지 요셉,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이어진 목수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목수 생활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러 본격적으로 나가시기 전까지는 배우셨던 대로 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왜냐하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20:12)고 당시의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러나 상상하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들이 성서의 장과 절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당시 성전은 실제로 어떤 느낌이었을까.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는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또한,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이셨을지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과 후, 어린 시절의 일화가 목수 요셉을 만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접촉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가 아름다운 것은 은혜가 아닐지

 

  저도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가까이는 가나다라마사같은 한글노래 부르기, 좀 더 나아가서는 아멘(교회)에서는 전도사님께서 무슨 말씀하셨니?”와 같은 질문을 하는 노력들을 합니다. 물론, 삶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도 보여주며, 집에서는 TV보다는 책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며 배우는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 있음을 떠올리며 주일성수가 아니라 주()성수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 땅 위에 요셉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 저도 포함되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우리는 목수 요셉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본이 되는 삶,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요셉들이 되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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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인건가? | 생각 나누기 2021-06-0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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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여름x4 아아, 여름이다라는 가사로 시원하게 알려주던 노래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련한 여름을 생각나게 하는 다시 여기 바닷가라는 노래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 “언제쯤이면, 언제쯤이면다시 신나는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백신 접종률이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뜨거운 노력이 있다.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에 가능한가보다.

 

  물론, 나는 이렇게 뜨거움 넘치는 여름 사람들 안에서 파이팅을 느끼기보다는 아이스크림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먹는 시원함, 에어컨 천국이 너무 좋다. 겨울, 아니 봄이라도 이 시원함을 느끼고 싶지만 원하지 않는 분들이 나의 반경에 계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느끼려고 사각형 좁은 공간인 차 안에서, 그래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에 여름님 오시길 기다린다. 그래서 혼저옵서예제주도를 향해서 가고 싶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지역보다 여름을 가장 빨리 품게 되는 제주도. 그 곳에 사는 분들은 얼마나 여름이 오기를 기다릴까. 물론, 너무 더워서 관광객 분들이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긴 한다. 너무 뜨거워도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요즘엔 대프리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한민국이 뜨끈해져서 걱정이다. 즐거울 만큼 뜨거워야 하는데 말이다. 인구 적정선처럼, 온도 적정선이 있다면 몇 도가 어울릴지 상상한다. 이 정도까지만 올라가주라.

 

  겨울의 온도 적정선이라 말하고 싶은 제주도. 여기 출신을 직장 동료로 두게 되었지만 내 기준으로 보기에는 놀랍도록 더위를 잘 탄다. 역시 사람은 저마다의 온도가 다른가보다. 난 추운 경기 북부지역의 태생이지만 더위에 약한 것처럼 지역과는 무관하듯이 말이다. 얼른 보약을 먹어서 원기를 회복하라고 해야겠다. 물론, 동료나 나나 보약 안 먹어도 괜찮게 생겼다는 것 빼고

 

  누가 뭐래도 여름은 온다. 아니 그가 이미 왔다. 벌써,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온도를 자랑한다. 내 방도 덩달아서 불탄다. 우리 집 에어컨 소외지역이기 때문에, 심지어 사무실 내 자리도 그렇다. 그래서 더 에어컨을 사랑하게 되나보다. 차에 타면 무조건 풀가동하게 된다. 보상심리가 발동하는 것일까. 한동안 냉동 창고에서 일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갖은 적이 있었다. 나를 위한 나만의 풀코스 여름을 즐겨보려고. 전 지구적 온난화라는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나를 위해 조금만 시원하면 좋겠다.

 

  본격적인 여름인건가. 여름이 왔나보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는 어느덧 아이스크림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이 녀석들을 한 번에 다 뱃속으로 쓸어담고 싶다. 그런데 아이들 표현처럼 여러 개를 먹으면 배가 아플 테니 눈으로 먹어야겠다. 마치, 예전의 카XX광고처럼 샤샤샥!

 

  여름이구나 하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또 다시 오겠지만 그래도 이 따스함을 느껴야만 시원함의 고마움을 알게 되니 고마운 계절이라 생각이 든다. 뜨거운 태양이 없다면 곡식이 익을 수 없는 것처럼, 뜨거운 계절을 겪어야만 사람도 성숙해지니까 여름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닐까. 요즘은 무풍에어컨이 인기를 끈다. 직접 느껴지지 않는 시원함을 추구하면서 그런가보다. 그런데 난 나에게 부딪히는 바람이 좋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바람이 나의 두 뺨을 딱 때려줘야 시원할 텐데.

 

  아, 여름인건가. 밖으로 나가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온다. 두 뺨을 스쳐지나가는 뜨거움. 이걸 이겨내는 건 역시 에어컨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노력, 모두가 가던 그 곳. 우리가 하나 되던 은행의 창구. 코로나 얼른 가고, 마스크 졸업 어서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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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서 전달되는 정 | 생각 나누기 2021-05-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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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달 전에 활동하였던 서평단 관련하여

책을 읽다가 보게 된 아쉬운 부분들을 모아서 피드백 메일을 발송하였습니다

편집자 분과 메일을 나누며 참 진실된 사람이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치 생일선물처럼 책보따리가 왔습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면 선물처럼 다가오는 일들도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겪으며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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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과 메멘토모리 사이에서 | 생각 나누기 2021-05-1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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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한동안 카르페디엠이 유행했었다. 어느 유명한 노래 가사처럼, “지금 이 순간을 느끼고 즐겁게 살아가라는 문장으로 인용되던 주문으로 불렸다. 해리포터가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기에 저 문장이 참 맘에 들어보였다.

 

  그러다가 청년을 위로한다는 책이 출간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여기저기서 말하던 기억이 난다. 청춘은 원래 힘들다는 그 말이 가시처럼 다가오며 오히려 헛구역질을 유발했다. 저자는 진짜 고생을 해봤을까. 알바를 두 탕 세 탕을 뛰어도 채울 수 없는 등록금과 삼각 김밥과 쿨피스로 한 끼를 챙겨야만 하는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라는 분노와 함께

 

  누구나 다 힘들다고 한다. 그리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느끼는 힘듦은 스스로의 삶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힘을 북돋아줄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노오력좀 해주셨음 참 좋겠다.

 

  카르페디엠이 있다면 메멘토모리가 짝처럼 나와야 한다. 이건 또 뭐냐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난 여기에 더 끌렸었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격언인데 요즘에는 말하기를 꺼려하는 오히려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이 중요 포인트다. ‘웰빙말고 웰다잉이 더 중요하지 않나.

 

  살다보면, 살다보면 (마치 어느 보험회사 광고 CF 멘트 같지만) 우리는 여러 곳에서 죽음을 목격한다. 반려 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거나 나의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뜻하지 않게 떠나는 시간, 그리고 떠남을 준비하며 기다리다 가는 분들까지 여러 종류의 죽음을 본다.

 

  사실, 난 임종의 순간을 지켜본 적이 없다. 외할머니께서 운명하시던 순간에 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집에 오니 알게 된 기억이 난다. 아버지께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난 내가 일하던 교회에서 예배를 돕고 있었다. 언제나 죽음은 근처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지만 난 그 옆을 살짝 비스듬히 그리고 평행선으로 걸어갔던 것이 아닐까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어쩌면 평생에 단 한번 겪을 순간(임사체험을 겪는 특별한 일은 매우 드물 것이니까)이며, 그 후를 알 수 없기에 더 두려워지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의학과 생활의 급격한 발전이 있기 전까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전까지 살아 있었지만 떠나가는 상황을 볼 수 있었고, 묘지가 멀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 곁에는 어딘가를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이 떠나간 이들의 안식처다.

 

  살아가며 만나게 되었던 소중한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지 못했던 경험은 미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현재의 삶을 유예하던 나에게 변화를 주었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며 함께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삶으로 변한 것이다. 달콤한 인생이면 좋겠지만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그렇지 않음을 너무 빨리 깨달았던 것일까. 생존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산다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답기에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지만 끝이 있음을 기억하는 삶은 어렵다. 그래도 해내야하고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24시간이 모자라다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열심히 살기에도 행복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슬퍼하기보단 웃어야겠다.

 

  그리고 끝나는 그날 잘 살았다고 말했으면 좋겠다. “Follow me”라는 말을 마지막에 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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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평화를 위한 여행 | 생각 나누기 2021-03-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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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을 키우다보니 혼자이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옳지 않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각 잡고서 정리해놓으면 내가 만지지 않는 이상 먼지는 쌓일지언정 유지되던 그 모습들을 볼 수 없다. 자기들이 가지고 놀거나 신기해 보이면 만져보시는 분들이 존재하시기에 말이다.

  이따금 내 방(이지만 김치 냉장고와 함께)을 들어와서 부러운 눈빛으로 책장에 전시된 레고를 보며 언제 만들었는지, 아빠 것이냐고 그리고 크면 갖고 놀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에 대한 대답은 좀 더 언니가 되면이라고 말해주지만, 속으론 다른 것은 되어도 이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이런 곳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새로운 것을 만나게 해줘야 하나 싶다. 그 중에서 여행이라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본다. 혼자였을 때에는 당일치기로 그냥 목적지에 도착해서 바라만보고 돌아왔었지만, 자녀들의 새로움과 만족할만한 활동량을 채워주기 위해서 열심히 놀다 와야만 한다.

  주말이 지나고 어린이집 다녀오신 어리신 분들이 선생님께 보고를 한다. 상상의 나래 속에서 다녀온 혹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을 다녀왔다고 마구 자랑하는 그들의 행동은 키즈노트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아내에게 그리고 나에게 전달되어 온다.

  여행가고 싶다. 떠나고 싶지만 어쩌다보니 직장인이고 코로나 덕분에 회사와 집이라는 단순하지만 무한반복 패턴을 시전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통해서 안정감을 얻는 부분이 있겠지만 창의적인 활동을 좋아하던 나에게 이건 뭐랄까, 고문 아닌 고문의 느낌이다.

  물론, 외근을 많이 다니는 입장이라서 오피스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그리고 집에서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아내보다는 나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언제나 보다 더 나은 것을 욕망하는 존재 아니던가. 그래서 난 여행이 가고 싶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인 일본에서 아이들과 라멘 한 사발 먹고 온천욕하면 좋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 없는 시기와 더불어 냉랭해진 국가 간의 관계와 이웃의 눈총도 받을 수 있겠다. 아니 적군이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이런 마음은 넣어둬야겠다.

  그럼 대체 어디로 떠나는 것이 좋을까. 탐라국이라고 불리던 곳을 가기엔 우리 가족은 4인이셔서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빡빡한 일정을 자랑하는 패키지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해보는데, 가이드님의 인도 따라 무브먼트를 보여줘야 한다.

  맛난 음식이 많으면서 우리랑 비슷한 느낌의 행동과 피부색을 갖고 있는 대만으로 다녀오면 좋겠다. 따스한 봄이면 더욱 좋을 텐데 이 녀석의 코로나는 언제쯤이면~ 언제쯤이면~잊힌 추억이 될는지 궁금해진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놀러가려면 일본이나 홍콩에 있는 디즈니랜드도 참 좋다고 생각이 들지만,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많이 들기에 그런 마음은 시나브로 없애야 한다. 아니 아이들 앞에서는 언급도 하면 아니 된다.

  음, 말 많고 탈 많은 레고랜드가 국내에 생기게 되면, 그 즈음에는 한 번 좋은 곳이라고 데려가 보기는 해야겠지만, 아내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게 될 것 같다. “혹시, 아이들 말고 아빠가 가고 싶은 건 아니냐고(물론,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고 싶은 레고를 사랑하는 사람은 조용히 그렇다고 속으로 말해본다)?”

  어느덧 봄이 우리 옆에 와 있다. 그리고 어느 샌가 다시금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핫 썸머가 올 것이다. 이 따스한 날들이 다가오기 전에 대만 여행 준비하고 싶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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