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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에서 쳐지면 소비자가 외면한다-2015 한국을 뒤흔들 12가지 트렌드 | 전체보기 2014-11-25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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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5 한국을 뒤흔들 12가지 트렌드

KOTRA 저
알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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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인간의 욕망과 필요, 편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상품이다. 무엇을 누구를 위해 상품으로 만들 것인지 그 아이템을 결정하기 위해선 소비자의 니즈를 읽고, 트렌드를 읽는 눈은 사업자에게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사업자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이 바로 무엇을 아이템화하고 비지니스화할지 선택하고 판단하는 눈이 아닐까.

 

'2015 한국을 뒤흔들 12가지 트렌드'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개별 개별로 파악할 때는 간과됐던 상품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새로운 흐름과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에서는 1부 일상,2부 위기와 변화 3부 상처와 치유라는 범주 속에서 트렌드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상품 아이디어와 아이템들이 또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주고 니즈를 채워주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필자들이 전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현지 주재원이라 그런지, 소개하는 아이템들에서 현장감이 느껴졌다. 통계자료나  현지 상황을 제시하면서 수요예측이나, 전망, 투자시 염두에 둬야할 점 등에 대해서 간단하지만 중요한 핵심도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 있어서 트렌드를 파악하는데 쓸모있는 정보가  됐다. 소개된 국가도 미국, 독일같은 선진국부터 모로코,요르단같은 중동국가,과테말라, 케냐 같이 경제적으로 후진국가까지..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는 점도, 다양한 시장과 비지니스 상황, 트렌드를 살피는데 도움이 됐다.

 

흥미로웠던 것은 의식주 분야야 당연하고, 그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 자연, 기술적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서비스와 사업들이상당히 많이 눈에 띄였다는 점이다.  재난과 전쟁같은 위기 또한 새로운 마케팅과 비지니스를 통해 예방과 안전을 강조하는 아이템으로 개발되고 있는가하면,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인한 정보관리와 빈자를 위한 공익성을 가미한 비지니스까지, 다양한 아이템과 비지니스가 제시돼 있다.

 

허공에 매달려 있는 벨기에 레스토랑에서 먹는 요리의 맛은 어떨지. 프랑스에서 나오는 색칠 앨범에 몰두하며 색을 칠하면 정말 스트레스가 날아갈지,네델란드에서 미래 식량으로 개발하는 배양한 고기는 진짜 고기 맛에 손색이 없으려나. 장보는 남성들을 겨냥한 미국 제품은 우리 시장에서도 먹힐까? 이집트 병아리 콩은 진짜 다이어트 효과가 탁월할까? 소비자로서 호기심이 발동하게 만드는 상품들이 여럿이었다.

 

빈곤층에 태양광 발전기를 보급한 과테말라의 회사,거리의 개와 고양이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터키의 자판기..이탈리아의 감옥내 회사같은 경우는 공익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서 호감이 갔다.

새롭고 다양한 세계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를 보면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구나 싶기도 했고, 필요가 아이디어를 낳고, 사업의 어머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로봇이나 인터넷, 모바일의 보급으로 빚어지는 정보보호문제나 유통, 금융 관련한 서비스와 비지니스는 나라와 지역을 떠나 유망한 비지니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의문도 들었다. 이들 상품과 서비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과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떤 아이템이 경쟁력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상품과 서비스 하나하나보다는 세계의 소비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서 무엇을 원하는지, 일단 그 트렌드에 주목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소비자들이 '일상' 속에서 즐기고, '위기''소외','상처'를 '치유'해주는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트렌드에 소비자보다 더욱 민감하게 주목해야 하는 쪽이 사업자,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나 기업쪽일 것이다. 트렌드에 뒤떨어져서는 소비자의 호응을 얻기 힘들테니. 

트렌드와 무관하거나, 트렌드를 뛰어넘은 상품과 서비스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과  소비자의 선택이 뒷받침돼왔던 것고.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앞서가고 살아 남으려면 트렌드를 쫓는데 급급하거나 뒤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롭게 창업하거나 사업 아이템을 선보이려고 한다면 미리 흐름을 파악하고 시장을 선도하는 아이템과 서비스가 시장과 소비자의 환영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계 곳곳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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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 편력과 환국, 그 변심의 정치력-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숙종편 | 전체보기 2014-11-23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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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4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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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 헨리 8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애정편력이다. 왕비를 몇번이나 갈아치웠고, 그 중 두번째 왕비인 앤 블린은 사형을 당하는 비운의 왕비가 되면서 '천일의 앤'이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헨리 8세하면 애정편력과 아들을 집요하게 원한 군주, 호색한이라는 이미지 강하게 박혀있는 왕이었다. 그런 이미지로 인해 헨리 8세가 강력한 군주, 로마 가톨릭에 맞서서 강력한 왕권을 발휘한 군주라는 그의 정치적인 면이 많이 가려져 있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는 조선 숙종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단 숙종하면 '장희빈'이 가장 먼저 떠오르니. 어렸을 때 본 사극 '장희빈'의  잔상이 하도 강렬해서 장희빈 치마폭에 쌓인 왕, 사대부로 치자면 첩에게 빠져 조강지처를 쫓아낸 지아비 이미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숙종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군주가 아니었다. 열 네살 그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오른 소년군주임에도 섭정이 아니라 바로 친정을 한 임금이었다. 그뒤 무려 46년이나 되는 재위기간 동안 그는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 중 정치적 파트너를 상황에 따라 바꾸면서 정치판을 주도하는 능력에서만큼은 단연 발군의 실력을 보였던 군주였다. 그 과정에서 신권은 위축됐고, 숙종은 왕권을 행사하는데 우위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동안 보위에 있었으면서도 숙종하면 뚜렷하게 떠오르는 치적이 없는 것은 왜 일까?

 

그의 재위기간 동안에 악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경제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여러가지 변화의 조짐이 읽혔다.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 보자면 양란으로 줄어들었던 인구수도 회복됐고, 생산력이 발달했다. 상업작물의 재배와 대동법이 정착되면서  전국적으로 시장이 열렸고, 거래에 편리한 화폐가 자리잡게 된 것이었다.이렇게 상업과 유통의 발달하게 되면 자연히 새로운 부자들이 탄생하기 마련이고, 그럼으로써 사회에 활기가 띠고, 신분이동이 촉진될 수도 있었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신분의 벽은 더욱 공고해졌고, 같은 사대부 내에서도 고위관료 층은 일부로 한정돼갔다.사족들은 서원 등을 통해 지방까지 자신들의 지배권을 확립하면서, 지배층 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지는 즉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치워지게 된 셈이다. 결국 한정된 벼슬자리를 두고 당쟁이 격화될 수 밖에 없었고, 지방사족들의 거점이 된 서원의 병폐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배층의 기득권은 철옹성처럼 견고해졌지만 가물에 콩나듯 부를 일군 양인들은 족보를 사 양반이 됐지만 대부분의 양인들 처지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 것이었다.

 

박시백은 숙종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개혁에 대해서는 의지를 가진 임금이었지만, 그 의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과 관련해서는 단호한 면모를 보였지만, 그 외에 결단력을 발휘해서 풀어가야 하는 현안에 대해서는 그 정치력을 마음 먹고 발휘하지 않았다. 환국과정에서 많은 신하들을 죽이거나, 상하게 할 정도로 가혹한 군주였지만, 그만큼 다른 문제에서까지는 굳이 사대부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돌파할 정도로 개혁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46년, 반세기에 가까운 긴 재위 기간이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있는 시기, 모처럼 왕권이 강세를 보였던 시기, 생산력이 발전이 이루어지고, 상업과 유통이 활기를 띄던 시절 등 숙종 때야말로 조선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후 복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왕권이 강화되자, 숙종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둔감해졌던 모양이다.  

 

장희빈과 인현왕후 사이의 남자, 마치 삼각관계 멜러사극의 주인공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숙종은 분명 명민했다. 그 어느 임금보다 조정을 장악하는 능력은 출중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정국 돌파 능력에 비해 조선 사회가 변화의 적기였다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는 왕이 되지는 못했다.전환기를 이룬 군주가 될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또 한가지, 그는 사자의 신분을 회복해주는 신원(伸寃)에는 관심을 가졌다. 태종에게 죽은 방석과 방번에게 대군의 지위를 돌려주었고, 노산군을 단종으로 사육신, 소현세자빈도 신원해 주었다. 송시열을 비롯해서 신하를 많이 죽이거나 상하게 한 임금이었던 그가, 죽은 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은 어떤 의미였는지 의아했다. 자신이 죽인 신하들이 훗날 신원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긴 했을까.

 

숙종을 보면 노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얻은 권력으로 후궁을 중전으로 책봉하고, 다시 폐위하는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운 것 어쩔 수 없었다. 그 변심의 정치력을 조선을 변화시키는 데 활용했다면..... 숙종은 자신의 힘을 지키는 파워 게임에는 능숙했지만 그 권력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판세를 읽고 풀어가는 해법과 의지를 갖준 경지까지는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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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지만 풋풋하고 에너지 넘치는 세 소년소녀, 응원한다~ -이름을 말해줘 | 전체보기 2014-11-2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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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저/박산호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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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험 상 배우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홍보하는 영화 열에 아홉은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배우 이름을 대대적으로 파는 작품에 대해서는 볼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버리게 되던데, 그렇다면 작가 이름을 앞세우는 소설은 어느 쪽일까?

표지에는 한글로 존 그린, 알파벳으로 JOHN GREEN이라고, 작가 이름을 크게 적어놓은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말해줘'라는 제목하고 거의 비슷한 크기로 큼직하게 박혀 있어서,  대중들에게 엄청 인기있는 작가라는 걸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는데, 그럼 그렇지. '이름을 알려줘' 작가는 얼마 전 상영됐던 '안녕 헤이즐'의 원작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바로 그 작가였다.

 

'이름을 말해줘'는 풋풋하면서 경쾌하다고 할까. 아직 스물이 채 안된 소년, 소녀의 사랑과 우정을 담고 있는데, 콜린과 하산, 린지 이 개성 강하고, 좌충우돌 발랄한 등장인물 덕에 즐겁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전작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에서도 10대들의 사랑을 감동적으로 다뤘던 것을 보면 작가 존 그린은 10대 소년소녀들의 사랑과 성장기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린과 하산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콜린이 여자친구에게 차이고는  차고 차이는 관계를 수학 공식으로 완성해 보겠다고 나서자 하산이 콜린을 끌고 간 것이었다.  콜린의 여자 친구 취향은 상당히 독특했다. 캐서린 오타쿠라도 되는 양 오로지 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진 소녀로만 무려 열 아홉 명을 사귀었지만 전부 차인  특이한 연애 경력의 소유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와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였지만 연애엔 쑥맥이었던 것일까. 하산은 즉흥적이긴 했지만 에너지 넘치는 자칭 무슬림 소년이었다.

 

거기에 여행지에서 만난 린지까지.공교롭게도 린지 남자친구 이름이 콜린이었다. 콜린과 하산, 린지이 소년 소녀들이 펼쳐가는 사랑이야기는 솔직해보였다. 그리고 혼란스럽게도 보였다.그렇다고 난삽해보이지는 않았다. 10대 특유의 생동감과 미숙함이 혼재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긴 완성된 사랑이 어디있을까.

자신들도 자신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이것이 사랑인건지 헷갈리도 흔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콜린은 자신이 자라면서 점점 더 천재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그래서 천재와 범재의 사이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선 그로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동안 캐서린이라는 여자친구들과의 사랑을 돌아보는 이유도 거기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미래에 대한 꿈도 샘 솟았던 것이리라.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행복해지기를 소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콜린과 하산 린지 이 세사람은 불과 며칠 사이에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하산은 대학에 등록하기로 결정 했고, 린지는 남자친구와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다. 콜린은 새로운 사랑, 스무번째 사랑에 빠진 걸 인정했다. 또 차일 수도 있고,이루어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캐서린이 아닌 여자를 사랑하게 된 것만 해도 콜린에게는 새로운 미래가 아닌가.

'이름을 말해줘'를 읽으면서 여러 번 웃음을 머금었다. 이 세 친구들의 행동이 마냥 귀엽게 보였다.가끔씩 보던 이웃집 소년소녀들이 어느 새 저렇게 훌쩍 자랐지? 하고 새삼 그 성장을 발견하기라도 한 냥 뿌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콜린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님을, 매일매일 벌어지는 그 돌발적인 변수를 통제하는 것도 예측하는 것도 모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이 결코  공식을 통해 점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신동 콜린이 아닌 삶을 받아 들이며, 새로운 미래와 꿈에 희망을 품기도 한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마냥 소년, 소녀라고 어리게만 볼 수 없게, 성장한 것인데. 인생은 잠시도 멈추는 법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그렇기에 눈앞에 펼쳐진 날들을 달려야 하는 것임을, 그렇게 미래와 인생에 조금은 눈을 뜬 것일까.

콜린과 하산, 린지 아직은 여전히 어설프지만, 이들이 발산하는 풋풋함과 에너지가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들에게 펼쳐질 뜨거운 사랑과 청춘과 미래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GOGOGO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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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과 예송 논쟁으로 남은 두 임금 효종, 현종-효종, 현종 | 전체보기 2014-11-1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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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3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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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군주제였지만, 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전제군주제는 아니었다. 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었고, 후기로 갈수록 사림들이 본격적으로 관료로 진출하고, 삼사의 권한이 강해지면서, 신권은 점점 더 강화되는 추세가 됐던 것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 13권에서는 효종과 현종 두 임금을 다루고 있는데, 이 두 임금 대에는 양란이 끝난 뒤였고,산당을 본격적으로 등용하면서 더욱 신권이 강해지던 시기였다.

더욱이 효종의 경우 정통성 문제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처지였다. 세자였던 형 소현세자가 급환으로 서거하고, 조카 셋이 모두 유배 또는 죽은 뒤에 보위에 오른 인물인만큼 시비에 오르지 않도록 처신을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초기에는 자연히 왕권이 위축될 수 밖에 없었는데, 효종 대에는 야인이라 할 수 있는 산당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당시 산당의 중심인물은 송시열이었고, 효종은 송시열을 배려하면서 그를 조정에 들이려 했지만, 송시열은 예의상 잠깐 벼슬을 했다가 이내  미련없이 조정을 떠나 야인의 길을 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럼으로써, 그의 영향력은 더욱 지대해져갔다는 점이고, 조선시대에서는 권위를  지닌 거유(巨儒)는 사대부들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재야의 권력자였다. 

그렇기에 효종은 송시열과 독대를 하기까지 했고, 그의 북벌계획에 대해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 둘의 독대는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기에 서로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하고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권이 강해진 것도 그렇지만, 효종과 효종 비 승하 뒤 불붙게 되는 두차례의 예송 논쟁은 전쟁을 겪고 난  조선 사회 여러가지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효종이 세상을 떠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가 3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 1년동안 상복을 입어야 할지의 문제와  효종 비 인선왕후가 죽고 난 뒤 이번에는 인선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양란을 겪은 뒤 예학이 중심 학문으로 떠오른 것은 흐트러져가는 사회기강을 '예'로써 다잡겠다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예학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측면을 따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두 차례에 걸친 왕실의 예학논쟁 또한 상복 착용기간이 문제가 된 것이었다.

 

이 논쟁이 당시 사회를 뒤 흔드는 논쟁으로 불붙게 된 것은 효종을 장자로 볼 것인지 차자로 볼것인지 하는 즉 정통성 문제가 직결돼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 논쟁 동안 현종은 송시열 등 당시의 예론의 대가들에게 자문을 구하게 된 것인데, 허목이 송시열의 의견에 반박을 하면서, 논쟁이 번졌고, 당쟁적 성격까지 가미되면서 더욱 혼란을 거듭하게 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윤선도 등이 귀양을 가는 예송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송논쟁을 지켜보면서 계속 헛웃음이 나왔다. 자의대비가 몇년동안 상복을 입는지 하는 문제가 그렇게 대수로운 것인지. 조선사회가 들썩거려야 했는지. 

선조시절까지만 해도 당시 거유 소리를 들었던 유성룡, 이이 등은 현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효종, 현종 대의 송시열,허목, 윤선도 등은 논쟁이 중심에는 있었지만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내놓은 인물들이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단연 돋보인 신하가 김육이었다.그는 대동법의 확대시실을  밀어붙이고 화폐 사용을 주장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시행했다. 민생과 관련한 김육의 현실 감각은 그만큼 뛰어났고, 대동법과 화폐사용은 낙후된 조선의 상업을 발달시키는 촉진제가 됐다.

하멜이 제주도에 표류해서 조선에 머물게 된 것이 효종 4년인 것을 감안하면서 이미 세계는 바다를 통한 교류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조선은 여전히 상복을 몇년 입어야 하는 것이 정국을 뒤흔드는 쟁점이 되고 있었으니, 헛웃음이 나올 수 밖에.

 

송시열은 여전히 건재했고,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의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존재감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소모적인 논쟁을 확산시키고 당쟁을 더욱 격발시키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당쟁과 거유들의 존재감등은 상대적으로 왕권이 움츠러 들게 만들어, 현종 뒤를 이은 숙종은 왕권을 강화화기 위해 당쟁을 적극 이용한 환국을 주도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다시 수많은 사대부들이 희생이 따르게 된 것이다.

효종과 현종 두 왕대에서는 왕의 정치력과 민생을 염두에 둔 신하들의 현실인식이 아쉽기 그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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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외침 때 권좌에 대한 욕심만 앞세우는 인조가 왕이라니-조선왕조실록 12 | 전체보기 2014-11-16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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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2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0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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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종전된 지 30여년만에 다시 외침을 당한 조선왕조는 왕이 친히 나가 적장에게 머리를 땅에 박는, 치욕을 맛보며 항복하고 만다. 이 때의 임금이 인조였다.

가만히 보면 조선 중기 왜란과 호란을 겪을 때 당시 왕들이 하필 찌질하고 권력에 집착하던 왕이었다. 그런 한심한 왕이 보위에 있었다는 사실은 조선왕조의 비극이자, 백성의 입장에서는 저주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두 왕 다 적통도 아니었고, 애초에 보위를 이을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인물이라 그랬는지 권좌에 대한 집착은 유독 심했다. 그로 인해  세자로 이어지는 승통과정에서 불필요한 마찰과 잡음을 낳았으며 그 여파는 후대 왕들에게까지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군주였다.


반정으로 군주가 된 인조는 아무래도 집권을 도와준 서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고, 재위 초반에는 전 왕대의 유산을 처리하면서 진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다시 사대부들이 희생됐고,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후금이 힘을 키우고 조선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는데도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

국제 정세를 읽은 안목이 결여됐을 뿐더러,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는 데 여념이 없었을 뿐이었다.


선조와 인조에 대해서는 정말 욕이 화수분처럼 멈추지 않게 된다. 어쩜 이렇게 찌질하기 이를데 없는건지. 권좌에 대한 욕심만 많고 자신의 보위를 지키는 이외에는  능력이라고는 약에 쓰려도 해도 찾아볼 수 없는 임금이었다. 선조야 인재를 보는 눈이라도 있었다 쳐도, 백성이야 청의 말발굽에 짓밟히든 말든, 명을 추종하는 인조의 중화적인 세계관은 조선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대부 사이에도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리고, 청에 볼모로 끌려가야 했던 소현세자가 청에 기울어진다는 소식은 조선의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쳤다.

 

박시백은 인조는 친청(親淸)파 신하들도 기용했고, 세자로 친청의 색깔을 띠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청이 세자에게 보위를 양위하게 할까봐 소현세자를 경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결국 소현세자의 사후, 소현세자의 일가는 하루 아침에 권력의 중심에서 목숨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조는 소현세자의 유족에게 시아버지, 할아버지가 아닌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핏줄조차 내치는 냉혹한 군주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인조의 행보를 보면 반정 후 조선을 운영할 이렇다할 구상을 갖지 못했다는 박시백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통치자, 그것도 임기가 종신인 군주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현실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군주를 둔 백성들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다.

그런 형편없는 임금에게 인조(仁祖)라는 묘호라니, 이쯤되면 최고 수준의 반어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더욱 암담한 것은 최악의 군주에게 최상의 묘호를 붙여준 것에서, 두 차례에 걸친 전후 그  어려운 현실을 타개할 인재나 인식이 눈에 띄지 않는 조선의 상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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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