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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님 만나러 대구 .. 
....역시 그래서 제 .. 
지금까지 우리는 친일..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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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단체로 독립군조직에 타격을 가한 일제의 以韓制韓 전략-만주지역 친일단체 | 전체보기 2016-05-30 0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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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주지역 친일단체

김주용 저
역사공간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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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통치 방식은 간교하기 이를데 없었다. 3.1운동 뒤 일본은 조선을 이간책을 통한 분리지배방식으로 그 통치 방법을 변화시키는데, 한인 단체들을 이용해 그 역할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특히 해외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많았던 만주지역에서는 경학사나 부민단같은 교육과 독립운동을 응원하는 단체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친일행각을 벌였던 이주 한인단체들이 적지 않았고, 그들의 노골적인 친일행각에는 그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일본은 지원금과 의결 등을 통해 만주 친일단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일본입장에서는  조선인 체들을 이용하는 것이 저비용 고효율이었다. 조선인들이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저항감을 감안할 때, 이런 저항을 피하고 이한제한(以韓制韓)의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으로선 조선인들이 만주지역에서 안전하게 자리잡게 하는 것은 훗날 일본인들의 이주공간을 확보하는데 중요했다. 그 뿐이 아니라 만주 지역에서 항일독립운동이 확산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들 단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만주 조선인들로선 치안이나 안전을 위해서 조선인단체가 필요했고 또한 재정이나 친목, 교육, 상조 등 생존과 생활을 위해 조선인 단체의 지원을 원했던 것이다.

 

'만주지역 친일단체'에서는  서간도와 북간도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그곳의 친일단체를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북간도 쪽의 간도 특설대였다. 일찍이 독립군 잡는 단체로 그 악명을 익히 듣고 있었던 바라, 유심히 읽었는데, 일단 명칭에서부터 다른 단체와 구별이 됐다. 회나 조합, 단이 아닌 특설대.

그도 그럴 것이  간도특설대는 설립에서부터 군인등이 관여했던 전문무장조직이었던 것이다. 해방되기까지 존속했던 이 단체는 애국지사들을 살해하거나 체포한 것이 100여건에 이를 정도였다. 심지어 가혹한 고문과 민간인 살상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가히 독립지사 탄압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간도 지역에선 만주보민회가 눈에 띄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라는 배정자가 활약했던 만주보민회는 일본인이 되기를 지향하는 단체였다는 점에서 친일을 넘어섰다.

 

만주지역 친일단체는 지역의 특성에 감안해서 활동을 했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조선이주민들과 독립운동가들을 차단하고,항일근거지를 무력화 시키는 것에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조했다. 때론 독립운동가를 색출했고, 독립운동단체와 대립각을 세우는가 하면 선전을 통해 독립군의 귀순활동에 앞장섰다.

심지어 귀순해온 독립운동가들을 재교육시켜서 독립군 토벌에 참여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거기에 밀정까지 투입했다. 만주지역 친일단체들이 이렇게 일제에게 적극 협력하게 되면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은 막대한 지장을 입었던 것이다. 일제로선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랄까. 

 

친일 단체와 관련해서는 경악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임원 중에 항일운동가 출신이 상당수였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독립군체포에 놀라운 실적을 올렸던 간도특설대의 경우에는 그 대원 상당수가 국군 창립과정에 참여하고, 한국군의 중추역할을 했다고 하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독립군을 살해해서 피를 묻힌 손인데 떻게 국군창설에 관여하게 된건지, 정말 친일파들이 제대로 심판 받은 분야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모양이다.

 

이주 조선인들이 단체를  설립하게 된 배경에는 이주한인의 경제적 지위 향상과 교육과 치안 등 이주한인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 단체의 취지는 빛을 잃었다. 이주 조선인의 보호보다는 일제가  이주 한인들을 통치하는데  첨병이 되면서 급격히 친일, 어용화 돼버린 것이었다. 아니..정확하게 말하자면 취지는 어디까지나 눈속임이었고 출범할 때부터 명백하게 어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는 이들 단체를 독립군들과 조선인들을 차단하는데 활용했고, 조선인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덜 수 있었다. 그 방법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일제 입장에선 친일단체들은 어디까지나 저비용 고효율의 조선인 통치 도구였기에 단체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게 되거나 지역의 상황이 변하게 되면 그 단체들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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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친일, 분방한 애정행각의 여인 배정자 - 흑치마 사다코 | 전체보기 2016-05-28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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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흑치마 사다코

은미희 저
네오픽션 | 201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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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치마 사다코라고하면 이 여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다코는 우리 발음으로 정자(貞子) 그러니까 사다코는 그 이름도 유명한 배정자이다.

배정자라는 이 이름을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요화 배정자' 란 영화제목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스파이활동을 한 친일파였다는 것과 성적으로 분방하고 스캔들이 많았던 여인으로 대충 알고 있었지, 어떤 여인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못했는데, 헐!

그녀의 친일적 행동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일본에 견마지로 충성을 아끼지 않았던  여인이었다.

 

'흑치마 사다코'는 배정자의 일생을 사실에 근거해서 전개하고 있는 소설인데, 실로 그녀의 친일적 행태는 가관이었다. 아버지 배지홍이 역모에 관련돼 처형되면서 관기가 된 분남. 그녀는 아버지 지인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면서 이름을 사다코로 바꾼 그녀는 히로부미에 의해 조선의 정보를 캐는 스파이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녀는 궁궐에 출입하면서 고급정보를 일본에 전해주는가 하면, 밀정노릇을 하면서 독립군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런가하면 위안부를 모집하고 동원하는데에도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으니 ..

해방됐을 때 그녀는 미처 조선을 빠져나가지 못했고, 당연히 반민특위에 회부됐다. 그러나 그녀의 재판 역시나 흐지부지 끝이나, 천수를 누리며 81세에 눈을 감았다.

 

이런 여인이었다니. 분방한 애정행각에 생각보다 훨씬 더 자발적이고 적나라한 친일 행태라,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조선을 배반한 것일까. 자신을 관기로 만든 조선에, 그동안 받았던 천대에 복수를 감행한 것일까.  서구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배정자는 단순한 요부형 여인이 아니었다. 조선의 마타하리나는 수식어가 붙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흑치마 사다코'는 배정자의 죽음까지 다루고 있는데, 이런 여인이 천수를 누렸다는 것에서 또 한번 청산하지 못한 친일에 대해 한숨이 터져나왔다. 

더러 나오는 애정묘사가 불편하기도 했고, 깊이있게 사다코의 속내를 다루지는 못해서 아쉬운 소설이었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문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역사적 실존 인물 배정자를 살피는 시각으로 읽었다. 그렇기에 인간 배정자, 아니 배분남의 내면에 대한 관심보다는 철저하게 일본의 주구가 된 사다코, 배정자의 노골적인 친일행각에 대해, 그리고 그럼에도 처벌받지 않았던 그녀의 말년에 분노가 일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사다코, 배정자를 친일파라는 오명으로 기억하고 요부라고 부르는  것, 그것 뿐이라는 것이 마냥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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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지사의 글씨는 작고, 반듯하고 각지고 힘차고..-필적은 말한다 | 전체보기 2016-05-26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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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필적은 말한다

구본진 저
중앙북스(books)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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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서판(身言書判). 신은 풍채와 용모, 언은 말솜씨, 서는 필체, 그리고 판은 판단력, 과거 중국과 조선에서는 이 신언서판은 인물의 능력과 됨됨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필적의 조형, 크기, 형태, 곡직, 각도, 행간, 속도, 규칙성, 정돈성을 분석하면 성격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필적학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필적은 말한다'는 이 필적학을 바탕으로 항일, 친일인사들의 글씨를 분석하고 있어서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로웠다. 더욱이 저자가 10여년이상 항일,친일인사 전문 서예 수집가에 강력범죄 검사인만큼 그가 분석한 결과에 더욱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범죄자의 필적을 많이 봤을테고, 서예수집가로서 유명인사들의 글씨나 명필에 조예가 깊을테니.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항일지사들의 글씨체는 대체적으로  글씨가 반듯하며, 유연하지 않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고 한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가로가 좁고, 세로는 긴형태가 많고, 가늘고 날카로운데다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다. 거기에 행간격도 규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항일지사들의 글씨체에는 올곧고 강직한 품성을 드러나 있고, 친일파의 글씨에는 원칙보다는 시류에 영합하고 처세에 능란한 성정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책에 실려있는 작품들을 보면 저자의 판단에 대체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김구 선생같은 항일지사들의 글씨는 반듯하고  규칙적이다.

그렇지만  글씨를 보는 전문적인 눈이 없다보니 저자의 판단에 무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슬그머니 들었다. 어떤 인물인지 알고 글씨를 평가하다보니, 그렇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가  묻고도 싶어졌다.

 

가령 이완용의 글씨는 명필로 알아준다고 들었는데, 필자의 평가는 박하기 이를데 없었다. 기교가 심하다거나, 배려심이 적고 판단이 빠르며, 행동을 예측하기 힘든 사람의 글씨라는 것이다.  너무 주관적인 분석이 아닌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다보니 인상 비평의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필적을 분석하면 성격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할까?  거기에 미적인 감상과 필적학에 바탕한 분석은 어떻게 차이가 있을지, 그점도 궁금해졌다.

 

 

 

 

 

글씨에는 글쓴이의 성격이나 심리가 반영된다는, 그래서 글씨는 뇌의 지문이라는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말처럼 항일 지사의 글씨는 대체적으로 단정했는데, 그런 평가와 상관없이  항일지사들의 글씨들을 한점 한점 눈여겨 보게 됐다.

 

친일파 관련한 책들은 읽고 나면 대체적으로 마음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는지라 부담없이 읽을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을 책을 고른 건데, 이름을 몰랐던 항일, 친일 인사들 글씨가 다수 있었다.  이름보고 글씨보고, 그 크기며 모양새를 비교해가며 한참을 살피다,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특히 간찰에서는 글씨보다는 그 사연에 마음이 쓰였다. 어떤 상황에서 그런 편지를 보내게 된 것인지 그때 심정은 어땠을지 헤아려 보게됐다. 아무래도 글씨에 문외한이라 그런가보다. 글씨보다는 글쓴이의 이름을 보고 명성과 오명을 가려내고,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을 떠올리게 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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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지 않은 현실주의자 이완용, 만고의 매국노-이완용 평전 | 전체보기 2016-05-2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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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완용 평전

김윤희 저
한겨레출판 |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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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매국노란 말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남자. 그만큼 전국민의 공분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도 드문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을사 5적이란 것 외에 이완용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대놓고 미워해도 되는 인물이니 알 필요도 없었지만 굳이 알려고 들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완용 평전' 표지를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완용 얼굴을 몰랐다가 보니 매국노답지 않게 평범하고 온순한 인상이라 의외였다. 이렇게 비판과 미움의 대상이 되는 인물일수록 그 실체에 대해 신중하게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한데, 알게 모르게 나 역시나 그에게 기승전 매국노의 법칙을 적용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필자 역시나 비록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지만 이완용에게 실용주의자, 합리주의자라는 평을 하기에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매국노라는 의미가 희석되기 때문에.

 

을사오적이 되기까지, 이완용, 그의 행보는 변화무쌍했다. 과거시험에 급제해 관직에 오른 전통적인 조선사대부였지만, 관직에 오른 뒤 육영교육의 신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주미대사관 참찬관으로 파견돼 서구 문물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하면서, 갑오개혁이전에는 조정에 있는 몇 안되는 개화적인 인물로 변신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서재필의 독립신문을 후원하고 독립협회에도 적극 관여한 인물이었다는 것에서 놀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체 왜 매국노소리를 듣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다른 책에서 이완용을 '한 때의 애국자, 만고의 매국노'라고 표현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필자가 이완용을 합리성에 포획된 인물이라고 평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받는,  실용성을 추구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시대가 정상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고,  조선이 자주적으로 국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봉건적인 조선에 실용주의, 합리성은 도움이 됐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기가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병합하려는 하수상한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용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가 의도하든 하지 않든 간에 일본 제국주의와 그들의 힘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빚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시기 오히려 일본을 통해 문물을 받아들이고, 부국강병해져서 자체적으로 독립하자는 견해가 이완용을 비롯해서 당시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었다니 정말 안일한 판단이었다.

이완용은 고종이 차마 을사 보호조약을 체결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예상하고, 그가 나섰다. 그는  고종의 권한과 황실의 안녕을 지켜내는 데 주력했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의 실용은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다. 나라는 잃었는데 왕실의 안녕은 보존하게 하는 것.

 

사실 이완용보다 송병준이 훨씬 적극적으로 한일 병합을 주장했고, 그의 매국적 행위가 더 심각했음에도 송병준은 몰라도 이완용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큼 그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일단 한일 병합당시 총리대신으로 병합조약을 체결한 것, 즉 총대를 맨 것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3.1운동을 반대했고, 거기에 그의 아들까지 후작작위를 받음으로써 조선에서 유일하게 부자 모두 작위를 받게 될 정도로 죽기 직전까지 그의 영향력이 컸던 탓도 있었다. 일본 또한 조선과 조선 양반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 그 영향력을 이용했던 것이다. 그러니 조선인들 눈에 이완용이 일제의 주구처럼 비춰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완용은 사이토 총독에게 삼일운동 단순 가담자에게 관용을 베풀고, 농업 재해를 구제하고, 교육 등에서 일본인과 차별을  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교육의 보급에 관심을 기울였다니 이 또한 그의 합리주의와 실용주의적인 면모일 것이다.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이나, 그 결과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점에서나, 일제로 인한 불평등과 억압, 차별에 대한 저항이란 없었다는 점에서 그는 철저하게 현실 순응주의자였고, 힘의 논리를 좇아간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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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 돼버린 과거청산 문제-기억을 둘러싼 투쟁 | 전체보기 2016-05-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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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억을 둘러싼 투쟁

김민철 저
아세아문화사 | 200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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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둘러싼 투쟁'. 흔히 한 사회의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르는데, 투쟁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치열함이 물씬 풍겨왔다. 남달리 굴곡진 근현대사를 겪은 우리로선 역사를 둘러싸고

 친일 문제와 과거청산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저자 입장에서는 투쟁이란 제목을 붙일 만도 했을 것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이 2006년, 정부 차원에서 친일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국회에서는 친일청산법 제정을 두고 진통을 겪고 난 뒤였다. 저자는 이 과정을 지켜본 뒤 친일반민족 행위 진상규명위원회 기획총괄과장으로 재직중 이 책을 낸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지 닷새가 지났지만, 그동안 리뷰를 차일피일 미루며 쓰지 못했다. 대체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도 이렇게 청산이 안돼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에 새삼 가슴이 무거워지기도 했고, 머리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기억을 둘러싼 투쟁'을 읽은 과거 청산에 대한 원칙이나 그간의 과정에 대한 비판을 말하고 있는데, 읽으면서 친일 문제에 관해서 넓은 시각으로 친일문제나 과거 청산문제를 대하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 누구는 친일파다 아니다 논란이 초미의 관심이 되다보니, 거기에 매몰돼 버린 감이 없지 않았다. 친일파 규정은 후손들이나 정치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민감한 문제이고, 아직도 개개인의 친일행태에 대해 이견이 많아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친일 문제와 과거청산의 전부가 될수는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해결하고 청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있다.

 

근본적으로 친일 문제와 과거 청산은 잘못을 드러내고, 부끄러움을 자각하는 책임의 문제이고 나아가 반성과 성찰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모색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일제 식민치하의 문제에서는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일본의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는 성격도 포함돼 있다.

 

친일 문제와 과거청산은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인적, 물적, 법적, 교육적 그 어느 분야에서도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친일진상 규명법은 누더기가 되었고, 친일파 재산 환수는 최근에야 재판을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라니. 해방 직후 이루어져야 했을 친일문제와 청산작업이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댓가는 이렇게 혹독했다. 

그래서 그런지 친일문제, 과거청산 얘기가 나오면, 분노부터 치솟지만 한편으로는 차분해지기도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의지가 아닐까. 이쯤되면 책 제목이 왜..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된 것인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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