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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비 정순왕후 살아남은 자의 독백- 삶이란 그래도 살아내는 것 | 전체보기 2016-09-27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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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영영이별 영이별

김별아 저
해냄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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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인물 중에서는 어떤 사건 뒤 그후 삶이 알려지지 않아서,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해지는 인물이 여럿 있다. 비극적인 사건 혹은 그 사건 뒤에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인물에게는 특히 더욱 관심이 가는데 그중에 한명이 바로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죽음을 당한 단종, 그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이다. 그녀는 단종 사후 과연 어떻게 살고 삶을 마감했을까.

'영영 이별 영이별'은 단종의 비극적인 삶에 가려져있던 정순왕후에게 눈길을 두고, 죽음의 순간을 더듬어가고 있는 작품이다.

 

김별아 작가는 유난히 권력이나 사회제도에 희생된 여인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작품을 쓰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권력다툼에 희생된 정순왕후의 마지막 49일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임종을 지켜보는 듯 했다.

정순왕후는 남편 단종이 숨진 뒤 무려 65년을 홀로 살아냈다. 그 기나긴 그 세월, 그녀는 한에 사무쳐 살았던 것일까. 정순왕후의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렸다. 왕비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된 남편의 지위에 따라 군의 부인으로, 다시 단종 사후에는 사가로 내쳐져 평민이 됐다 마지막에는 정업원의 비구니의 신분으로 살다 눈을 감았다.

 

한마디로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혜경궁 홍씨가 떠오르르기도 했다. 남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고, 친정 아버지를 비롯한 친정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던 그녀. 혜경궁 홍씨는 오래 살아 있었기에 아들 정조의 죽음마저 지켜보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듯 정순왕후에게도 목숨이란 질기고 모질기 이를데 없었지만, 그녀는 결코 죽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정순왕후는 단종 사후 무려 다섯왕을 지켜봤다.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그리고 그 사이에 벌어졌던 권력다툼과 그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  또 권력 가까이 있다 희생되는 여인을  목도하면서 생에 대한 환멸과 인생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새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는 운명에 휩싸여 죽지 못해 사는 여인이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비록 불행과 아픔으로 점털된 인생이었지만 고통과 설움과  절망을  끌어안고 하루하루 견뎌냈고,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줬던 존재들의 권세와 불행과 죽음까지 지켜보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살아 남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궁궐 여인들의 비감어린 삶을 들려줄 때에는 가슴이 아려왔다. 대체 왜? 무엇때문에 여인들의 희생돼야 했는지, 무엇이 여인들의 삶을 그렇게 짓밟은 것인지. 이번 작품에서도 김별아작가 특유의 희생되는 역사 속 여인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는데, 지금까지 읽었던 김작가 작품 중 가장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 여인들처럼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비명 한번 마음래도 지르지 못했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단종과 지낸 불과 몇년 간을 평생 가슴깊이 간직했던 정순왕후. 단종과 함께했던 동안 그 고통을 생생하게 환기하면서도 결국은 그 고난조차도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라 고통에 몸부림치면 결국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게 됐다.

비구니가 됐던 영향이었던 것일까. 원망과 증오과 고통조차도 삶 안으로 포용하고, 수용한 것이다.  그녀가 보여준 삶의 이유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고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는, 푸쉬킨 식의 낙관도 아니었고,그렇다고 체념한 것도, 달관한 것도 아니었다. 오롯이 살아남은 자로서 생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경지였다.

 

정순왕후의 독백체로 진행된 '영영이별 영이별'은 한편의 모노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죽음을 예감하며,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못다한 말들과 소회들을 살풀이 하듯 풀어놓는 것이 마치 자신의 혼백에게 들려주는 진혼가같았다. 동시에 그 파란과 곡절많은 세월을 무려 65년간이나 견디어낸 스스로를 위로하고,이제 하직해야 하는 세상에 대한 고별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마지막 길, 단종과 만나러 가는 그 길만큼은 어떤 아픔도 없이 서러움도 모두 버리고 편안히 가시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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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가운데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뚝심은 돋보였다 -왜란종결자(1+2+3) | 전체보기 2016-09-2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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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왜란 종결자 세트

이우혁 저
엘릭시르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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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오래 전부터 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PC통신시절 '퇴마록'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 덕분에 침체돼있던 한국의 판타지 쟝르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것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에 판타지 쟝르를 선호하지 않았던지라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베스트셀러가 됐던 그의 작품을 접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판타지 쟝르에 도전하기로 작심하고 그의 작품을 펼쳐들었다. 

'왜란종결자'-시대적 배경이 임진왜란이라는 점과 '왜란종결자'라는 제목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서 이 작품을 고른 것이다. 20세기말 작품인데'-종결자'라는 표현이 이 제목에서 유래된 것이었나?  그만큼 제목 짓는 감각이 탁월했다.

 

'왜란 종결자'는 상당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었다. 임진왜란이 펼쳐지고 있는 인간세상에서  왜군에게 어머니를 잃은 은동이 천기의 수호자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인간이 아닌 저승사자 태을, 800년간 도를 닦은 호랑이 흑호, 극강의 도력을 지닌 환계의 호유화 등이 생계, 사계, 환계, 마계 등을 넘나들며  은동을 돕고, 왜란 종결자를 찾아 천기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지만, '왜란 종결자'는 내용 전체가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짜여진 것이 아니었다. 임진왜란이나 이순신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지라, 실재했던 인물과 실재했던 사건과 유불선(儒佛仙)이 종합된 판타지가 어우러져 세 권이나 되는 긴 이야기로 탄생했다.

이러다보니 스케일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 그 스케일에 비해  구성이나 인물 캐릭터등은  엉성하기 이를데 없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갈등에서도 정돈되지 못했고, 작가라고 하기엔 미흡한 문장력도 눈에 걸렸다. 한마디로 상당히 산만했다.

PC 통신시절  습작기도 거치지 않고 '퇴마록'을 연재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아무래도 작가로 단련되는 과정에서 다져야 할 기본기를 제대로 연마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뚝심이 있었다.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이끌고 갔고, 그런 추진력이 있었기에 이 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밀어붙이는 힘, 그것이  바로 이우혁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었다.

본격 문학이 아니고 쟝르 문학인 판타지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요체가 바로 상상력과 이야기이기에, 기본기가 부족한데도 이우혁의 판타지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폭발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판타지를 통한 인간성과 삶의 가치, 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한편 역사에 대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임진왜란때 위정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는 한편 전쟁으로 고통받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인물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메세지 또한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작가의 기본기와 역량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구성이나 캐릭터, 개연성, 문장력 등에서 미흡한 점이 작품의 완성도를 저해했고, 중언부언되는 감도 없지 않았다. 불필요하게 이야기가 길어져서,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였다면 이야기가 조금은 정돈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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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탐정물의 대명사 홈즈, 실존 연쇄살인범 잭 더 리퍼를 등장시켜야 했나?-운종가의 색목인들 | 전체보기 2016-09-1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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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운종가의 색목인들

표창원,손선영 공저
엔트리 | 2016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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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작가와 프로파일러라고 하면 손발이 잘맞고,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상상력과 프로 파일러의 분석력이 결합된다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되는데, '운종가의 색목인'은 바로 그런 시너지 효과를 노린 두 직종의 작가가 공동작업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 의도대로 추리작가 손선영과 프로 파일러 표창원의 협업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었나? 하고 누가 묻는다면 선뜻 긍정적으로 답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19세기 말 막 문호를 개방한 조선말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외국 여성의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소재는 분명 이색적이고 흥미를 유발하고 있지만,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잭 더 리퍼를 범인으로 등장시킨 발상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탐정물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무려 홈즈와 실제 연쇄살인범, 체포되지 않았던 잭 더 리퍼라니.

거기에 홈즈 상대 인물은 이제마의 딸인 와선으로 다분히 왓슨이 연상되는 이름이었으니. 셜록 홈즈 애호가라면 이런 차용을 환영하지 않을텐데. 비딱하게 보였다. 그리고 비딱하게 보기 시작하니 작가의 말에서 표창원씨가 '천재적인 추리작가 손선영씨를 만난 건~'하고 언급한 것도 눈에 거슬렸다. 천재적이라고? 요즘 넷상에서 갓이라는 말을 쉽게 붙이듯 천재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작품을 읽는데 집중하고 몰입이 되지 않았다. 홈즈의 존재가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작가가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 인물을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지만 그 창작의 고통이야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인데, 이렇게 남이 창작한 인물,또 실존인물을 범인으로 즉 탐정과 범인 모두를 차용한 캐릭터로 활용해도 괜찮은 것일까 의문이 계속 따라다니며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니 차용해도 된다는 포스트 모던한 발상인걸까. 아니면 홈즈가 조선에서 살면서 탐정으로 활약했다고 설정하고 차용하는 것도 창의적인 발상이고 작가적인 안목에서 한 것이라 문제가 없는 것일까.

1894년에 조선에 서양인이 얼마나 된다고, 또 어딜 가나  한눈에 띄일텐데. 서양 여성 기생에 홈즈에 연쇄살인범이라니.

 

그런데, 표지를 자세하게 보니,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1'이라고 돼 있는 걸 보면 셜록을 등장시킨 작품이 더 나올 계획이었나본데, 표창원씨가 20대 국회의원으로 금뱃지를 달았으니, '셜록, 조선을 추리하다2'가 나올 것인지는 불투명한 상황이 된 모양이다.

 

'운종가의 색목인들'은  내게 소재는 흥미로웠던 작품이었지만 굳이 이 작품 속에서 더 이상 홈즈를, 잭 더 리퍼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굳이 홈즈여야 했나? 하는 물음에서 꼭 홈즈여야할 어떤 필연성도, 홈즈의 활약도 인상적이지 않았기에. 추리 작가와 프로 파일러의 만남이 치밀하고 예리한 수사와 기발한 상상력을 발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이렇게 기존의 탐정과 실존 범죄자를 등장시키는 노선을 택했다는 점에서 실망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차용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해 근원적인 물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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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왜 강빈과 관련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까?- 별궁의 노래(상+하) | 전체보기 2016-09-0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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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별궁의 노래 (상)

김용상 저
생각의나무 | 200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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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현세자의 빈인 강빈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왜? 그만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구중궁궐이 아닌 8년간의 청나라 볼모생활을 겪어낸 것만 해도 강빈은 그 어느 세자빈이나 왕비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밖에서 살아보고 넓은 세상을 보고 겪은 유일한 왕실여인이었다. 거기에 피도 눈물도 없었던 시아버지 인조에게 본인과 자식 죽고,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그 비극적인 삶은 그녀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아우라가 돋보인 것은 청나라 시절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고, 자립심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점일 것이다.

매번 궁궐 안에서 왕이나 세자 뒤에서 권력다툼하고 친정가문을 끌어들이는 세자빈이나 중전, 후궁들 이야기만 보다가, 참신했다. 청나라에서 직접 사업을 벌일 정도로 이재에 밝고 수완도 좋고, 청나라와와 신경전에도 대처하며 정치력을 발휘한 것은 가문을 등에 업은 여인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여인. 일찍이 왕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자립적인 여인상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강빈은 백성과 멀 수 밖에 없었던 주자학, 공리공론을 일삼는 성리학의 모순을 지적하며,백성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용적인 정신에 능력을 갖췄기에 세자빈의 존재는 조선에 돌아와서 화근이 됐다.  청에 굴욕적으로 패배했음에도 여전히 소중화를 고집하고 있는 조선에서는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왕과 대신들은 강빈이 조선에 몰고올 변화의 바람을 두려워했고,청나라를 등에 업고 인조의 권좌를 노리지 않을까 경계하게 되는 존재로 낙인찍히고 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극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귀국한지 불과 석달만에 소현세자는 학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그 이후 강빈과 그 자식들, 그리고 강빈의 친가는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힘겹게 됐다. 인조는 강빈과 그 혈육들에게 비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조에게는 며느리와 손자가 아니라 정적으로 비춰진 것이었다. 인조는 며느리의 수완을 눈엣 가시처럼 여겼고, 효자였던 아들을 오랑캐 청나라를 높이 보게 꼬드긴 꼬리 아홉달린 여우쯤으로 취급했다. 인조의 눈에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며느리였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강빈이 주인공이 돼 서술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분위기가 격앙 혹은 고조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 예상을 뒤엎고 아주 차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끝을 알고 있어서 내려놓은 것인지.

청나라에서 8년간의 볼모 생활 중 청나라에 시달려야 했고, 그곳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이 겪는 고초에 눈물을 삼키며 마음고생했던 소현세자와 강빈, 그런데 청나라에서의 고생은 어디까지나 새발의 피였다. 청나라 오랑캐보다도 강빈을 더욱 잔인하게 대했던 것은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조선, 그리고 군주이자 사적으로는 시아버지인 인조였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것인지. 오히려 조선이 그녀에게 지옥이 돼버리다니.

인조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조소용을 저주한 배후라고 몰아가는가 하면, 수랏상에 오르는 전복에 독이 들어갔다고 며느리를 의심했다. 강빈은 하루하루 피를 말리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듯 하루하루 견뎌야 했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자식과 어머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별궁의 노래' 후반부에 이르면 강빈은 인조를 능양군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백성을 버리고 세번이나 피난을 갔던 임금, 백성을 구하기는 커녕 늘 자신의 안위와 보좌에 애면글면 집착했던 정말 형편없은 임금이었으니. 그런 시아버지를 군주로 인정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백성의 처참한 삶을 직접 보고 들었던 강빈에게는 백성따윈 안중에도 없는 임금은 임금이라고 부를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이때쯤에는 더 이상 시아버지라 할 수 없을만큼 적대적인 관계로 돼버린 뒤였고, 더이상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왕실에서 비나 빈이 죽는 비극이 여러 차례 일어났지만, 시아버지의 명에 죽음을 당하게 된 강빈은 그 존재 자체가 왕에게, 수구적인 조정에게는 제거해야 할 정적으로 인식됐다. 훗날 대원군과 민비처럼 치열하게 벌어졌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혈투가 벌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왕이 세자빈을 증오하고 권좌를 지키는 데 급급해서 며느리 세자빈과 어린 세손까지 사사하고 유배를 보낸 일은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내가 인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데에는 그의 무능력, 무책임, 그리고 권력에 대한 집착에도 이유가 있지만 이렇게 자신의 혈육까지 추호의 망설임없이 제거하는 그 냉혈함과 비인간성에 질려서였다. 시아버지, 할아버지로서 어찌 그럴 수 있는건지. 사후 세계가 있다면 인조는 저 세상에서 아들내외와 손주들에게 고개나 들 수 있었을까. 입이 열 개라도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반정으로 왕이 된 이후 권력에 대한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고,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여겨졌다. 아무리 봐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왕자리란 게 종신집권이니, 저렇게 돼먹지 않은 임금 만나면 백성만 죽어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가까운 혈육조차도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으니..그는 자신의 권좌를 위협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청나라 시절 소현세자와 강빈의 생활, 또 당시 청나라 상황을 자세하게 담고 있어서, 청에서의 생활을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포로로 잡혀온 조선 백성들을 돈을 지불하고 구출하는 것에서 백성에 대한 애정이나 경제적 능력을 읽을 수 있었다.

소현세자 부부가 청의 인물과  교류하고, 선교사들을 만나 실용적인 면을 배우려들면서 형제 간에는 갈등이 빚어졌다. 여전히 반청(反淸)에 사로잡혀 있던 봉림대군과  실용성과 반청, 중화주의로 노선이 갈리면ㄴ서  형제의 우애가 균열된 것은 물론이고, 소현세자 부부의 비극, 나아가 조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 암울한 조짐이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던 셈이다.

 

 강빈의 비극은 그녀 가족사의 비극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은 변화를 거부하며 우물안 개구리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것은 곧 조선이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즉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궁의 노래'는 앞서 언급한 대로 비교적 차분하게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 고사에 대한 인용이 과해서 굳이 이렇게 넣어야 했나?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중국 고사나 군더더기 내용을 정리하면 굳이 상,하 두권으로 할 필요가 없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도 그점을 인식했나 보다. 지금보니 상하 두권이 아닌 한 권으로 된 개정판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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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간과 기술의 합작품, 명량을 만든 건 8할이 CG-명량 | 전체보기 2016-08-2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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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명량

김한민
한국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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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이상한 청개구리 습성이 한 가지 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화제에 올리거나 관객몰이하는 영화는 보러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더라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열기가 식고난 후에 보는 편이다.

그런 심리 기저에는 저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데 나까지 보태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본 사람들이 쓴 리뷰나 감상기를 많이 보니 이미 다 본 기분이 들기도 해서다.  책도 베스트 셀러라고 하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을 걸 보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보는 문화상품에 그다지 매력을 못느끼는 모양이다. 

 

'명량'도 그랬다. 역대 흥행 1위..당분간 깨어질 것 같지 않은 기록, 무려 1760만이 감상했다니..통계상으로는 우리나라 국민 세사람 중 한사람은 봤다는 말인데, 여기에 내가 포함돼 있지 않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니 예의 그 기질이 발동한 거였다. 

날도 선선해지고, 가을스러워지니, 코믹 영화 아닌 조금은 진지한 영화를 찾다가 이제사 '명량'을 보게됐는데,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제작비 많이 들었겠구나. 하는 거였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는 게 눈에 보였다. 배도 그렇고, 세트장도 그렇고, 해상 전투신도 그렇고 CG도 그렇고, 검색해보니  무려 200억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됐다니, 가히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량'을 요리로 치면 메인 디쉬에 해당하는 것은 해상 전투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만큼 이 영화를 만든 건 과장 좀 보태서 8할이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해상 전투신이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요소였기 때문에 그럴만 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우리 영화의 기술력이었다.  영화는 탄생자체도 그렇지만, 대중문화 중 어느 그 매체보다 기술의 영향을 많이 받는 매체이다. 그리고 기술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기술의 발전은 곧 영화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명량'도 컴퓨터 그래픽이 없었다면 그런 대규모 전투신은 우리 제작 여건상 불가능했거나 조악하기 이를데 없었을 것이다.

 

수백척의 배가 바다를 메우다시피 출동한 장면이나, 소용돌이치는 바다의 물살, 포탄이 떨어지는 장면 등, 배가 초근접으로 전투를 벌이는 것 등..상상 속에서나 그려보던 명량 전투를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CG의 힘인 것이다. 기술을 수단삼아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점에서 영화는 인간과 기술의 합작품이고, 이순신으로 호연한 최민식과  CG야 말로 쌍끌이로 '명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간 주역인 셈이었다.

 

'명량'은 전투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전투신이 전체 내용을 압도했지만, 스토리가 그다지 정교하지 않았다는 점은 상당히 아쉬웠다.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나  인물들도 전체적인 내용 속에서 녹아들지 않고, 단발적인 인상으로 남았다는 점은 '명량'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마이너스가 된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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