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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책 대여점 세책점풍경-책 빌리어 왔어요 | 전체보기 2017-03-27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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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 빌리러 왔어요

오진원 글/정승희 그림
웅진주니어 | 201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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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리러 왔어요'. 도서관 이야기가 아니라, 세책점이야기이다. 조선시대 책 대여점이었던 세책점.
영화 '음란서생'에서 오달수가 유기가게에서 세책점을 겸업하는 주인이었는데, 실제로 조선시대에 유기가게 안에 세책점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빌려간 사람이 책을 돌려주지 않을까봐 담보 비슷하게 놋그릇같은 그릇을 받았고, 그 외에 대여비를 따로 받았다. 유사시 대여자가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맡긴 그릇을 팔면 될터이니.

 

세책점 한쪽에서 부지런히 책을 필사한 뒤에 그 필사한 것을 책으로 묶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쉽게 찢어지지 않게 종이위에 들기름을 바르고, 들기름이 다 마르면 종이를 반으로 접어 순서대로 올려놓는다. 책 표지는 삼베로 잘 싸서 튼튼하게 만들고, 포개어 놓은 종이 위에 표지를 덮고 구멍 다섯개를 나란히 뚫는다. 그리고 가운데 구멍부터 끈으로 단단히 묶고 마지막으로 틀로 꽉 눌러 고정하는 것으로 책이 완성된다니.

 

어린이용 책이라 내용이 무척이나 간단했는데, 그림이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켜주었다. 요즘 아이들 책은 하나같이 그림이나 시각적인 배치만 봐도 보는 재미를 느낄 정도이다.

30여쪽이나 될까.세책점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내용밖에 담겨있지 않지만, 양반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책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세책점을 통해 책을 보는 백성들이 늘어났다는 변화를 눈여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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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홍길동전'의 작가가 아니다. 김정호는 지도를 상업출판했다 -조선시대 상업출판 | 전체보기 2017-03-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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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시대 상업출판

이윤석 저
민속원 | 201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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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을 읽다가 가장 당혹한 순간이라고 하면, 교과서에 나와서 철석같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을 부정하는 내용을 만나는 순간이다. 송강 정철의 경우가 그랬는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린 가사문학의 최고수라고, 그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가, 그가 정적을 가차없이 처벌한 옥사를 일으킨, 손에 피를 묻힌 정치인이라는, 전혀 몰랐던 면을 처음 접하게 됐을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던지.

 

그런데 '조선시대 상업출판' 이 책에서도 그런 당혹스러운 주장을 만나게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로 꼽히는 '홍길동전'의 작가가 허균이 아니라는 주장인데, 그 설이야 전에도 접한 적이 있었으니 그렇게까지 당혹스럽진 않았는데, 이 책에서 당혹스러움 그 이상의 주장을 접해야했다. 학계에서 허균이 작가가 아니라는 설을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우리 문학사에서 한글소설의 역사가  16세기 혹은 17세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학자들이 굳이 나서지 않는 것이라니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학자들 사이의 일종의 직무태만이고 담합행위 아닌가.

 

그렇다면 필자는 어떤 근거로 '홍길동전'이 허균이 쓴 작품이 아니라는 것일까. 일단 '홍길동전'안에 허균이 죽은 뒤에 벌어진 사건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나 한글로 장편 이야기 한편을 완성할 정도로, 한글글쓰기가 확립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전의 소설은 대부분 한문이 원작이거나 한문을 번역한 것이었기에.'홍길동전'은 이름없는 작가가 쓴 이야기고, 그것을 세책점에서 빌려주게 됐고, 그러다 방각본이 나오게 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읽다보니 영화 '음란서생'이 떠올랐다. 한석규가 이름을 감추고 음란 소설을 쓰고, 필사된 그 작품이 세책점에서 인기책이 된 것처럼, '홍길동전'도 그런 과정을 거쳐 방각본 고소설로 탄생한 것이라는 설(說)인 것이다.


방각본이란 무엇보다도 출판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상업적인 목적의 책을 말하는 것인데, 또 그것은 책을 빌려보는 독자층이 형성돼 있어야 방각본 출판이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에서 이렇게 상업적인 출판물은 18세기 중엽에 등장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활발하게 간행됐다. 

상업출판과 방각본, 또 세책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인데, 이 책을 읽다보면 고소설 연구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눈에 띄게 들어온다. 고소설 자체 뿐 아니라, 방각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고소설이 어떻게 유통됐는지와 방각본 독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학문적 연구대상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방각본 소설을 19세기 통속소설로서 또 대중문화로 인식한 것이다.

 

필사를 넘어 인쇄까지. 방각본 중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소설이었는데, 소수의 지식층 남성을 제외하고는 전 계층에서 소설책을 빌려갔다. 한글 고소설은 세책점과 방각본의 등장과 함께 쟝르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글 방각본이 오락용이었다면 한문 방각본은 교양서적이 주였다. 천자문, 동몽선습같은 초보자 학습서를 비롯해서 사략, 통감같은 역사서, 외에도 의학서,길흉점, 중국소설이 출판됐다.

 

의외였던 것은 김정호의 지도도 방각본으로 출판됐다는 것이다. 그가 지도를 판매해 이익을 얻었다는 것인데, 따라서 그의 지도 역시나 19세기 상업 출판물들처럼 새로운 독서계층의 요구에 부응해서 나타난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제서야 비로소 의문이 들었다. 김정호는 왜 그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던 것일까. 그저 지도가 좋아서? 그렇다 치고. 그러면 그 전국을 누비는 비용은 어디에서 조달한 것일까? 지도를 출판해서 팔았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으려나.

 

상업적인 목적으로 출판물이 나왔다는 것은 출판시스템이 더 이상 국가가 독점하는 체제로만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신의 기호와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 적극적인 독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기도 하고. 국가가 펴내는 출판물이 이 새로운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줄리는 만무했으니, 이것은 단순히 책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조선사회 역시나 분화하고 변화의 움직임이 밑바닥에서 움트고 있었고, 성리학적 이념 안에 가둬두고 통제하기에는 욕망의 물고가  터졌다. 변화의 조짐이 이미 표면으로 분출되고 있었고 방각본 출판물은 그 단적인 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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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몸소 교정까지 봤다고? -조선출판주식회사 | 전체보기 2017-03-2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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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출판주식회사

이재정 저
안티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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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는 것을 국가에서 주도하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체제, 조선이 그랬다. 제목의 조선출판주식회사란 말이 과장만은 아니었다. 그것도 경쟁회사 하나 없는 독점회사였다.

'조선출판주식회사'를 5년만에 재독했다. 과거에 읽었던 내용을 까맣게 잊었고, 다시 펼쳐들고는 처음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예스에 있는 리뷰가 이것까지하면 두 개, 내가 쓴 것 밖에 없어서 조금 쑥쓰러웠다고 할까.

 

책을 발간하는데 왕까지 나서고, 심지어 조정이 편집회의자리가 되기도 했던 것이 조선이었다. 책 좋아하는 세종은 밤잠까지 줄여가며 교정을 볼 정도였다니, 꼼꼼하게 책을 살피는 세종이 상상돼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왓다.

출판 뿐 아니라 나아가 조정에서는 보급까지, 책 만드는 전 과정이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관민의 인적 물적자원을 동원하는 체제가 갖춰졌다. 활자는 관청에서 만들었고, 관리들은 편찬 과정에 참여하거나 관리감독을 했다. 백성들은 종이원료가 되는 닥나무를 재배해서 바치거나 노역을 제공해야 했고, 인쇄기술을 갖추고 있었던 절에서도 노동력을 바치는 등..관민 모두 동원됐다.

 

책은 수요자를 고려해서가 아닌 공급자가 어떤 책을 펴낼지 결정했으니, 왕이 꺼리거나 유학적 가치에서 벗어난 책은 책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 책은 심지어 회수되거나 불태워지기도 했으니, 이런 일은 조선같이 경직된 사회에서 관이 주도하는 출판체제에서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서점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거론되기는 했지만, 우선 국가에서 나서서 장사한다는 것에서 꺼렸고, 소수가 책과 정보를 독점하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사대부로서는 굳이 아쉬울 게 없으니, 서점 설립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지식이 확산되고 정보가 퍼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19세기에 들어서서야 상업적인 용도의 방각본이 다양하게 나왔고, 새책점을 통해 책을 빌려보는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시 다양한 문화활동이 펼쳐지는 분위기 속에서 특히나 소설이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읽다보니 호학의 왕일수록 출판 과정에 깊숙하게 개입했던 모양이다. 세종이 교정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정조는 편찬에 무척이나 엄격한 왕이었다. 천하의 정약용과 유득공마저 책 편찬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파직당할 정도였고, 심지어 패관류나 열하일기같이 전통적인 문장이 아니라 소품문장의 책은 금기시하며 유통을 막았다. 천주교 관련 책도 금서가 됐으니, 개혁의 군주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정조 역시나 책을 통해 유교 이외의 사상이 보급되는 것을 철저하게 경계했던 것이다. 이것이 조선출판주식회가 출범할 수 있었던 궁극의 이유였을 것이다.

 

조선 출판주식회사 CEO는 왕이었고, 사대부 관료들은 임원이라고 할까. 이들이 출판과정 전체를 관리하고 통제했기에, 인쇄나 내용의 수준은 높았지만 굳이 독자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를 위한 책, 유교적 가치를 교육하기 위한 책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다른 사상이나 흥미로운 책들은 오히려 보급되는 걸 막았다. 그러니 경영실적이나 판매실적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CEO와 임직원들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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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로 한글책이 인쇄됐다면? 상업적 출판사와 서점이 있었다면?-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전체보기 2017-03-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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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강명관 저
천년의상상 | 201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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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의 자랑 거리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를 했다는 사실이다. 구텐베르크의 그것보다 2백년이나 앞섰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와 조선의 그것은 영향력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대량 인쇄를 통해 지식을 확산시킨 반면에 조선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있다. 세계최초에다 서구보다 얼마나 앞섰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서양의 근대에 대한 컴플렉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일리가 있었다. 강명관이 주목하는 것은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책의 제작과 탄생, 유통,집적 (도서관) 이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얼마나  인쇄됐고, 많은 독자와 만났는지였다. 즉, 지식의 보급과 독서 인구의 증가, 그로 인해 촉발되는 사회변화와 영향력이었다.

조선이 관주도로 출판을 했고, 수공업식으로 책을 냈기에 지식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고 유통체계가 구축되지 못했다. 활자나 책을 펴내는 비용이 워낙 막대하다보니, 국가차원의 출판 체제로는 국가가 필요로하는 책 위주로 펴낼 수 밖에 없었고, 개인 출판사나 서점이 등장하지 못했다.

이렇게 책 시장이 형성되지 않다보니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그 값은 가격을 정하기도 어려웠고, 고가로 거래되었다.

또한 조선후기 방각본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족(士族)위주로 책이 나왔고, 그것은 사족을 위한, 즉 조선 체제를 유지하는 지식이 주로 생산되고 보급됐다는 말이기도 하다. 조선이 5백년이나 유지됐던데에는 이런 출판체제를 통해 지식을 통제할 수 있었던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읽다보면 안타까운 대목이 여러군데 있었다. 만약에 금속활자가 한자가 아닌 한글과 결합했다면, 그래서 한글 책이 대량으로 인쇄돼, 민초들도 책을 접할 수 있었다면, 개인 출판사와 서점이 생겼더라면. 즉 책 시장이, 지식시장이 형성됐다면 조선사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가 서구의 근대를 견인하는 바탕이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의 금속활자는 지식의 전파에 큰 역할을 담당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임진왜란으로 일본은 서적 문화가 기반을 다진 반면에 조선은  붕괴일보직전까지 내몰렸다.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홍문관의 장서들이 전량 소실된 것을 비롯해서 고려시대 서적을 비롯한 귀중한 책들이 불타거나 일본으로 반출됐으니, 이후 출판 기반을 회복하기까지에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조선왕조실록도 목숨 걸고 지킨 사람이 있어서 겨우 보존할 수 있었지만 그외 잿더미가 돼버린 많은 책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 귀한 책들이 대부분 다 사라졌으니.. 책이 부족해서 과거에 지장을 받을 정도였다. 그 책들만 있어도 지금보다 역사연구가 훨씬 진척이 있을텐데, 또 정신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훨씬 풍성해졌을텐데. 그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실로 상상할 수 없을만큼 천문학적인 규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제목대로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책과 지식을 역사를 담고 있는데, 책과 관련한 기술적 분야를 비롯해서 수입, 수출까지  망라해서 담고 있다. 원래 강명관 필자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호감도가 배가됐다.

시각적 자료를 적극 활용해서 보기 좋았고, 내용에 대한 출처를 아주 정확하게 밝히는 것에서도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인용출처를 빼먹어 논문 표절 시비에 시달리는 교수도 허다한 우리 지식계 풍토에서 출처를  깔끔하게 명시하는 이런 기본적인 사항에도 감동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은 책을 여러 권 내다보면 내용이 뻔해지거나 지칠 법도 한데 여전히 의욕적으로 집필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성실함과 문제의식을 겸비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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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기대를 채워주진 못하더라도 상처를 함께 겪어가는 것, 그것이 가족 -걸어도 걸어도 | 전체보기 2017-03-1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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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일본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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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 앞에 감독의 이름이 언급된다면 그것은 그만큼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고레다 히로카즈감독도 그렇게 이름이 거론되는 감독 중 한명인데, 최근 일련작들을 보면 그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또한  맏아들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부대끼는 하루를  담아내고 있는데,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선 어머니 역의 키키 기린 연기가 독보적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강부자를 연상케하는 이 배우는 맏아들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다른 가족에 대한 어머니다운 애정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었다. 힘을 뺀 연기가 일품이었다.

아들,딸 내외 손주먹일 음식도 만들고, 궁시렁 거리기도 하고, 잔소리도 하고 그런데 날아들어온 노란 나비를 보고 아들이라고 반기는 대목에서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은지 10년이나 지났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한들 죽을 때까지 결코 지울 수 없을,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성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걸어도 걸어도'에 나오는 가족들은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아들이 있는 여자와 결혼한 둘째 아들 료타는 실직상태이고, 1년에 한번 정도만 본가에 들르는 된다는 주의이다. 사람은 좋아보이지만 야무지지 못한 사위는 처가 집 손봐주겠다고 말만 앞세우고.

이렇듯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빈틈이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어머니는 맏아들이 구하고 죽은 청년에게 겨우 10년정도인데 잊으면 곤란하다고, 내년 기일에도 찾아오라고 압박을 가한다. 말리는 료타에게 그 청년은 1년에 한번쯤은 그런 고통을 겪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자신에게는 증오할 상대가  필요하다는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그렇게 고약하게 굴어서라도 아들 죽은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악담하는 어머니 본인 스스로도 결코 그 한이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낮의 여름 햇살과 자식의 묘에 들렀다 가는 길임에도 료타와 노모가 걸어 내려고는 풍경은 평온하고, 단란해 보였다. 료타에게 자식을 가지면 헤어질 수 없으니, 신중하게 아이를 가지라고 말하는 노모, 자식을 데리고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마땅치 않은 그냥 보통 할머니였다.

아들은 예정에도 없이 하루를 묵었으니 다음 기일에나 오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반면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추석에 올것이라고 기대하며 아들가족을 보낸다.

아들의 차에 타보고 싶다는 어머니, 아들과 축구관람을 하고 싶다는 아버지, 하지만 두 바람 모두 이루어지지 않은 채 몇년 뒤 두 내외는 세상을 떠난다.

 

이들 가족은 완벽하지도 않고, 서로의 기대치를 채워주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외면하지는 않았다. 비록 조금씩 어긋나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몇년 뒤 다시 형의 기일에 료타 내외와 아들, 그리고 두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와 함께 형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에서 여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얼굴 한번 본적 없는 큰아버지 묘소를 성묘하고..그렇게 큰아버지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풍성한 에피소드가 있지 않고,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으니, 고레다 히로카즈 작품다왔다.

다 보고 나서,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동영상을 검색해서 노래를 들어봤다. ' 걸어도 걸어도'라는 제목이 바로 이 노래에서 나온 거라고 해서. 처음에는 죽은 맏아들 묘지를 다녀와서 걷는 장면을 떠올리고, 그 장면을 제목으로 삼은건가?하고 짐작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전형적인 일본 엔카풍이라 그만큼 일본인의 정서에는 와닿았는 노래겠지만,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을 때 '걸어도 걸어도'하는 부분을 노래하는 것을 어머니가 들었던 것이라니..가족의 화목함이 아닌..어머니의 또 다른 상처를 담은 노래라 실로 반전이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외도를 애써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에 겪어야 했던 상실감과 상처를 오히려 그 노래를 들으면 삭혔던 모양이다. 

그래서 '걸어도 걸어도'는 행복이 아니라 아프고 잃어서 구멍뚫린 마음, 그 마음을 죽는 날까지 안고 가면서도 함께 하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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