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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벗어난 다방면의 지식으로 실학의 싹을 담다-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전체보기 2017-05-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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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이철 저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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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품은 없을지 몰라도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  상점이 만물상이라면 책의 만물상은 백과사전이 아닐까. 일정한 기준으로 총망라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백과사전은 생각보다 그 역사가 오래됐다고 한다. 물론 지금과 같은 체계는 아니지만 서양최초의 백과사전은 기원전 4세기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은 17세기 등장하는데 보통 이수광의 '지봉유설'을 꼽는다. 이외에도  이익의 '성호사설'이나 이덕무의 '양엽기',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등도 백과사전적 성격을 띈 서적들이 나온 것은 실사구시의 실학적인 성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백과사전의 편찬이 의미있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하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서구의 경우 현재와 같은  체제와 내용을 갖춘 백과사전이 등장한 것이 18세기였는데, 프랑스의 경우 계몽사상가들이 백과사전  편찬에 참여함으로써 프랑스 사회가 진보하고 개혁되는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지봉유설'이나 '성호사설'등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다방면의 지식을  담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광이 실학의 원조로 평가받는 데에는 엄격하고 관념적인 경전에서 벗어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가 '지봉유설'이나 '성호사설'의 원전이 아니라 그 책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지라, 전체적인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성리학적 기준으로 보자면 시시콜콜한 소재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에서 거대담론이나 관념이 아닌 우리생활과 관련있는 내용 즉 실용성을 반영하고 있다.거기에 마테오 리치가 등장하고 외국 소식까지 게재돼 있는 것은 지식의 지평을 확대하고 확대된 시야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식에 대한 접근방식과 시야를 달리함으로써 일련의 백과사전류 책들이 등장했고, 그것은 실학사상과 변화를 추구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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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의 편리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한 몫 거들다-실용서로 읽는 조선 | 전체보기 2017-05-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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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용서로 읽는 조선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편/정호훈 기획
글항아리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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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 해에만 무려 삼십만 부 이상 인쇄한 책이 있다니. 당시 인구나 인쇄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최고의 베스트 셀러인 건 분명해 보인다. 어떤 책이었을까? 그것은 역서(曆書) 즉 오늘날의 달력으로 그야말로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라 할 수 있다.

역서는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다. 천문학적인 정교함이 요구됐기에 관상감에서 만들었고 판매까지 담당했던 것이다.

 

'실용서로 읽는 조선'은  역서를 비롯한 실용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담은 열두 종류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성리학적 철학이나 도덕이 아닌 일상 속 조선인의 삶이 느껴졌다. 

책 제목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책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동의보감', '토정비결'정도나 익숙하고 다른 책들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정도거나  대부분 생소한 것들이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책이 나왔다는 것에서 그 분야 전문가들의 노고가 돋보이는데, 특히나 관료에게 도움이 된 '고사촬요(攷事撮要)'의 저자 어숙권은 서얼출신으로 중국어 전문관료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성리학의 나라, 군자의 나라를 추구하는 조선에서 소송이 아주 빈발했다는 것은 뜻밖이었지만, 송사를 담당해야했던 수령들은 고역이었다. 법에 취약한 수령들은'사송유취(詞訟類聚)'로  민사송사에 관련한 실무적 지식에 도움받았고, 17세기에는 형사 법규까지 보완된 법서 '결사유취보(決訟類聚補)'가 편찬돼 재판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실용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 보완되거나 추가되거나 세분화됐다. 특히 의서의 경우 방대한 동의보감을 바탕으로 특정 분야의 질병만을 다루는 전문적인 분과의서가 등장했다.

 '간식유편(簡式類編)'은 편지 쓰는 실용서인데, 보면 조선시대에 편지의 격식이나 자주 사용하는 어휘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러니 이런 매뉴얼 실용서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형식 따지는 유자에게는 필수적으로 익혀야 할 서식이었다니.

강희안이 편찬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은 원예서의 본보기가 됐고,'졸장만록(拙庄漫綠)','합자보(合字譜)'같은 사대부 음악 매니아가 남긴 악보집은  풍류나 취미를 위한 실용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책 외에도 요리, 육아,한글 학습 관련 실용서가 소개돼 있는데, 이렇게 여러 분야의 실용서는 전문적이되 어렵지 않은 방향으로, 또 보완수정이 이루어져 새로운 정보나 편리에 맞춰갔던 것이다. 

 

역사연구에서 이런 실용서를 통해 근대성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두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에 일리가 있어 보였다. 효율성이나 합리성, 혹은 과학성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역서나 의서에 대부분이 쌓인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역서에서도 미신이나 주술적 내용도 함께 실렸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전적으로 근대성에 초점을 맞추기에는 미흡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한자 위주로 씌여졌다는 점에서 이들 실용서를 백성들 또한 직접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실용서의 지식이 민간에게도 퍼져 도움이 됐을 것이다. 실용서가 효율적으로 일상을 꾸려가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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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삼국지-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이야기 | 전체보기 2017-05-0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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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이은봉 저
천년의상상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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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8권으로 된 '삼국지'를 읽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서도 주군에게 충성심과 의리를 바치고 용감무쌍했던 관우와 조자룡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같은 종교서도 아니고 공자 맹자의 사상서도 아닌데도 '삼국지'만큼  한중일 이 세 나라에서 인기가 있고  큰 영향을 미친 책이 있을까 싶어서. 

단순히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나라 사람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정서와 문화속에 스며들어있고 지금까지도 그 독자가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을 만든 책 '삼국지'. 원래 '삼국지'는 진수가 쓴 역사서였지만 '삼국지'가 민초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이 역사서 때문은 아니었다. '삼국지'가 역사서로는 부실해서 그 내용에다 유비나 제갈량에 대한  동정적인 일화가 많이 첨가되고 거기에 주희이후  성리학적 정통론이 결합되고, 민족의식까지 포함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언급하는 '삼국지'는 진수의 '삼국지'도 아니고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수 많은 책들, 예인들의 입에 오르 내리던 이야기 대본과 거리의 이야기들을 모아 만들어진 집단 창작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라고도 하는 모양인데, 삼국지의 작가를 나관중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작가 이름이 붙어있다고 해도 개인이 창작했다고 보기에는 스토리나 인물들이 너무나 방대했다.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역사에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인 이른바 '연의演義)'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이하 언급하는 '삼국지'는 모두 '삼국지 연의'를 지칭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과 한국, 일본의 저마다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에 맞게, 이 영웅주의적인 이야기는 수용되고 변화되고, 또 다양한 갈래로 파생돼갔다. 그런데 이 변화 과정이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유교적 충의를 강조하는 등  삼국지는 충사상을 바탕으로 군주와 신하간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무사도가 자리잡게 되는데 한 몫 단단히 했고, 이 과정에서 관우나 조자룡같은 인물이 무예나 충성심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향은 군국주의에서도 활용되었다.

사실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삼국지'는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이나 비인간적인 면, 또 과도한 영웅주의적 시각이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불편한 점이 분명 있다. 다만 시대를 감안하고 애써 흥미를 위한 설정이라고 관대하게 넘어가고 있지만.

 

어쨌거나 '삼국지'는  한중일 삼국 모두의 봉건적 질서를 세우는데 공헌하는데, 그 이후에는 오락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조선의 경우 필사돼 세책점에서 가장 인기있는 책으로, 여성들까지도 애독하는 책이 됐는데, 심지어 책 안에 없거나 미미하게 나와있는 내용에 살을 보태 따로 창작한 작품까지 나왔고, 시어머니가 소일삼아 읽을 책으로 며느리가 필사해 혼수감으로 가져올 정도였다.그만큼 '삼국지'는 인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 모두 이야기를 넘어서 그림자 극이나 판소리, 인형극, 가부키 등 다른 쟝르로 창작의 소재를 제공해주었다. 요즘 말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원조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지금도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마당 중 한 작품인 '적벽가'였다. 연희문화가 성황을 이루던 조선후기에 민초들은 관우가 조조를 풀어주는 '적벽가'에 심취했고, 여흥을 즐겼던 것이다. 그리고 관우를 모시는 사당과 무당까지 등장할 정도로 삼국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더욱이 일제 식민지에서 '삼국지'는 조선인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물론 일본인이 연재한 삼국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한용운이 번역해 연재한 삼국지는 영웅이 탄생해 일제를 물리쳐주기를 기대하는 조선인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을 만들고, 일본을 사로잡고, 조선을 뒤흔든 책 이야기'. 삼국지는 과장 조금 보태면 제목에서 언급한대로의 책이었다. 하나하나 떠올려보면 중국, 조선, 일본 이 세나라에 미친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은 그야말로 메가톤급이었던 것이다.

20세기 이후에도 그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은 게임이나 만화 등 현대적인 컨텐츠로 계속 제작돼,새로운 팬들이 꾸준히 생기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가 서구문화에 마르지 않은 샘물처럼 창작의 원천이 되듯, 삼국지 역시나 동양 삼국에서는 그러했다.

 

필자는 '삼국지'속에 내재돼 있는 그 욕망들이 불편해서 삼국지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삼국의 상황과 정서에 따라 재배치되는 그 욕망들이 흥미로웠다고 밝히고 있는데, 시대와 상황에 따라 '삼국지'의 쓰임새는 실로 다양했다. 책 한권이 그 어떤 지도자나 왕도 해내지 못했던 정치와 문화적인 일들을 해냈다. 실로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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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기발하고 엉뚱한 용도추리 그리고 연쇄살인 범인 추적까지-신문물검역소 | 전체보기 2017-05-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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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문물검역소

강지영 저
네오픽션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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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을 쓴 꽃미남 선비. '신문물검역소'를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엉뚱하게도 순정만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표지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영화였다. '90년대 초반에 상영됐던 에로성 작품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작품.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궁금증을 유발해서인지 워낙 유명한 제목이었는데, '신문물검역소'의 상황하고 영화제목하고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생전 접하지 못했고 관련 정보가 전혀 없는 물건의 용도를 밝혀야 한다면? 상상력을 발휘하여  추정하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신문물검역소의 젊은 소장, 함복배 소장의 진지함과는 달리 원용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엉뚱하기 이를데 없는 추정은 독자를 유쾌하게 만든다.

 

책 속에 등장하는 신문물에 대한 명명은  감탄사가 나올만큼 하나같이 기가 막혔다.

불아자(不莪者),치설(痔碩),만앙경(曼坱景),곤도미(困導敉),선풍기(扇風機),로손(露巽). 

그렇다면 이 신문물들은 어떤 용도라고 추정됐을까 상상해보시길.

덧붙여 말하자면 신문물의 최고봉은 물건이 아닌 제주도에 표류한 화란인 밸투부레였다.

 

그런데 유쾌하게 진행되던 작품이 전반부를 지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앞부분의 유머스러움은 사라져 버렸고 대신 연지를 향한 함복배의 연정과 암행어사 송일영, 밸투부레 아니 조선 이름 박연의 활동이 추가되면서 추리로 급전환하게 된 것이다.

 

아쉬웠다. 전반부 분위기가 즐거워서, 쭉 그렇게 유쾌하게 전개되기를 바랐는데. 또한 주인공 함복배의 독특한 캐릭터 또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약화됐다. 총명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가족까지 배냇 벙어리로 알고 있을만큼 태어난 이후로 입을 꼭 다물고 살았던 함복배, 실상 그는 벙어리가 아니었다. 그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떼지 않고 살다가 연지를 보고 한눈에 반한 뒤 말문을 연, 엉뚱하고 로맨스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살인사건 발생 후에는 총기와 엉뚱함은 어디로 갔는지, 평범한 하급관리가 되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돼 버렸다.

 

살인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적서차별이 적나라하게 표출됐고, 고루하기 이를데 없는 조선의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조선 밖 세상에서는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신문물이 이렇게 왕성하게 만들어지고 있는데 조선은 요지부동이었다. 앞부분에서 등장했던 신문물과 조선사회가 부조화를 이루고 낡은 조선이 느껴졌다면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일까.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제작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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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아쉬운 환수까지 그 피말리는 협상-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 전체보기 2017-04-3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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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

유복렬 저
눌와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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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년  그야말로 마라톤 협상이었다. 프랑스에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을 공식적으로 처음 요청한 것이 1991년 11월이고 한국에 의궤 1차분이 온 때가 2011년 4월이니.

 

그동안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네 번, 프랑스에서는  세 번 바뀌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미테랑-시라크- 사르코지. 당시 우리측 협상단 중 1인이었던 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의궤가 도착하기까지 그간의 우여곡절이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프랑스가 좋게 말하면 자존심, 나쁘게 말하면 콧대 높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협상과정 담당 관료들은 사생결단하고 의궤 반환을 거부하는 입장을 드러내놓고 표현했다. 만약 내가 담당자였다면 피가 마르고 스트레스에 치여 살았을 것 같았다.

 

그들이 의궤 반환을 거부한 표면적인 이유는 문화재법에 명시된 '문화재 불가양 원칙'이었지만 실제로는 한국에 의궤를 반환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다른 나라에서도 반환요구를 할 것을 우려해, 반환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래서 반환 대신 '교류와 대여'원칙에 합의하면서 협상타결에 한걸음 다가선 듯 보였다. 하지만 1993년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 당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이 의궤 한권을 한국에 전달하자, 프랑스 프랑스 문화계에서는 집단 반발했다. 그리고 교류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프랑스에 가치있는 고서를 제공해야한다고 집요하게 요구하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테랑 대통령은 TGV 수주에 성공해서 우리에게 의궤를 반환하려 했지만, 워낙 문화계에서 거세게 반발하자,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에는 양국이 민간 전문가를 협상팀으로 전환해  교섭에 나서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 협상과정에서 프랑스 문화계는 물론 실무자의 반발은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총파업에 돌입하는가하면 실무자들은 자리를 걸고 반대에 나섰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프랑스에서 의궤를 넣어 한국으로 가져온 금고를 두 직원이 걸터 앉아 의궤를 넘기지 않겠다고 버텼고, 심지어 금고 열쇠까지 던지는 등 극단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귀국한 뒤 이 두 직원은 미테랑이 의궤 한권을 한국에 남긴것에 대해 극렬 반발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실무자들이 이 정도로 강력하게 나서니 제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미테랑이 반환을 강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20년에 걸친 길고 지루한 협상은 헛되지 않았다. 2010년 11월  이명박 대통령-사르코지 대통령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게 된다. 걸림돌이었던 영구반환 명목 대신 5년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형식으로 외규장각 의궤 전부를 한국에 일괄 양도하는 것으로 양측이 의견일치를 본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측은 타결 된 뒤에도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지난 번 미테랑 때 합의 뒤 결렬됐던 악몽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구체적 조건을 검토해 나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 측에서는 이 합의에 대해서 신문을 비롯해서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었고, 지성인들이 앞장서서 반대 여론을 주도해갔던 것이다.

 

2011년 5월 외규장각 의궤 모두 국내로 이송되었고 지금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 협상을 두고 미완성의 협상이라는 말도 많다.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입장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 쪽에서는 소유권은 여전히 프랑스에 있다보니, 완벽한 환수가 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환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환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이 존재하다보니 한-프 모두가 만족할만한 환수협상은 신이라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모두 국가의 외교적인, 문화적 논리를 다 동원하며 지난한 협상을 해왔을 것이도, 그에 따라 실무자 모두들 마음고생 몸고생이 극심했을 것이다. 실제 물밑으로 이루어지는 협상이나 외교라는 것이 겉으로는 우아하게 포장되지만,에지간한 인내심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협상시작할 때부터 양국 사이에는 신경전이 벌어졌는데, 그 배경이 의궤를 프랑스에서 가져가게 된 상황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강화도에서 약탈한 것이란 주장을 펼쳤고, 프랑스측에선 조선에서 프랑스 신부 7명을 처형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응수를 해오니, 이런 역사적 배경을 둔 설전으로는 결론이 날 수 없으니, 이후로 양측 모두 배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빼앗은 입장은 그 입장나름으로 또 빼앗긴 쪽은 그 입장에서 할말이 많지만, 결국 한번 빼앗긴 것을 되돌려 받는 것은 지키는 것보다 백배는 더 힘을 쏟아야 하고 그나마 다시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이 협상과정을 읽는 것만으로 이렇게 진이 빠지지만 그럼에도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다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총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의궤는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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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