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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안에서 벌어지는 복수극, 그리고 슬픈 운명- 미궁 | 전체보기 2016-07-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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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궁

최정미 저
끌레마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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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뿐 아니라 역사책을 보다보면 궁금할 때가 있다.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인물들의 삶이. 대표적으로 장영실이나 광해군같은 인물은 토크쇼 라디오 스타에 불러서 근황토크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해군은 한 때 군주였는데도, 폐위된 뒤에도 자그마치 19년이나 더 살았다는데, 제주도로 이배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살다 죽은걸까. 나같이 이런 궁금증을 지닌 사람이 제법 되지 않을까.

 

'미궁'은 나처럼 폐위 이후 광해군을 궁금해하던 작가가 광해군에 대한 사연을 상상한 결과 탄생된 작품이다.

 

대궐 별감 진현은 궁녀와 정을 통하다 발각돼, 죽음 일보직전까지 가지만, 조소용 덕에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조소용이 보름의 말미를 주며 아들 숭선군을 독살하려고 한 범인을 찾아내라고, 만약  보름 내에 잡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범인 색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진현, 그러나 일개 별감으로선 구중심처 궁궐의 내명부 여인들을  만나기가 힘겹기만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멀리 제주에 유배돼 있던 광해의 소식이 들려온다. 광해가 그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인조는 폐주의 장례식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궁궐에는 연속적으로 파란이 벌어진다. 왕족 이외에는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야 할 궁궐에서 연이어 사체가 발견된다. 수라간 숙수,제조상궁, 내시 박상선.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자 궁궐안은 살풍경해진다. 특히나 독살된 숙수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인조는 간발의 차로 독살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니 궁궐 안은 분위기가 흉흉해질 수 밖에 없었다.

 

진현은 청나라에서 돌아온 인조의 삼남 인평대군을 도움을 얻어, 궁인들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중 민상궁은 인조의 승은을 완곡하게 거절하면서, 허울 좋은 후궁보다 상궁으로 머물러 있는데,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궁안에서 거두어 키운 이나인, 편지 심부름하는 벙어리 이나인에게 남다른 애정을 베푼다. 이 나인은 묘한 매력으로 진현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심지어 인조도 그녀에게 승은을 내리기로 하는데..

 

괜히 궁궐을 구중심처(九重深處)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밀 아닌 비밀들이 가려지고, 그 비밀 뒤로 슬픈 운명이 감춰지고 있었다. 단 한번의 승은  그리고 운명의 그날, 이 궁인은 그 뒤로 속내를 꼭꼭 감추고 비밀을 품고 살아야 했으니. 만약 그 하루밤이 없었더라면, 아니 반정이 없었더라면 그 궁인은 후궁의 첩지를 받고 대군과 옹주를 생산하고, 왕의 총애 속에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졌고, 광해가 폐주가 된 이후에 그런 일이 생겼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만큼 이야기가 정교하게 구성됐다. 이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진 장점이었다.

특히 결말 부분의 반전은 그 궁인의 행동이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히려  복수를 참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기다린 인내심이 대단한 것이었다.

 

인조는 소설 속에서도 찌질해 보였다. 끝까지 졸렬하게 굴었고, 색 밝히는 군주였다. 아마도 광해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이 있다면 거기에는 광해의 정치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비겁함과 이기심 여성편력 등등 인조에게 비호감의 요소가 너무 많은 탓이 크다.

제주도 유배 이후 광해군의 삶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하며 읽기 시작한 작품이었는데, 인조의 옹졸함만 확인하며 마무리 한 셈이 됐다.

 

겹겹이 둘러쌓여진 궁궐안에서 괴담처럼 떠도는 이야기라도 될 수 있었으면 다행일까. 더 큰 힘을 가지려고,  더 많은 재물을 움켜쥐려고, 더 높은 벼슬을 얻으려는 탐욕과 권력의 세상에는 감춰졌던 이야기가 드러나는 순간, 궁궐에는 피를 부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만다.그리고는 궁궐은 다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평화로움을 찾아갈 것이다. 겉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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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을 소재로 한 최근 역사물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다-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 전체보기 2016-07-2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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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정명섭 저
은행나무 | 2016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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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도 변호사가 있었다고? 전문적으로 소송을 대리해주는 직업이 존재했으니, 외지부(外知部)가 바로 조선시대의 변호사인 셈이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은 이 외지부를 통해서 땅을 두고 벌이는 소송전을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요즘 역사물의 트렌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청하고 있지는 않지만,MBC에서 주말에 방송되는 사극 '옥중화'에서도 외지부가 등장한다고 들은데다, 또 얼마 전에 본  영화 '상의원'에선 옷 만드는, 요즘 말로 하면 패션 디자이너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생각난 것이다.

 

정치나 역사적인 인물을 소재로 하는 역사물은 흔한만큼 진부한 감이 없지 않은데, 이렇게 실무를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건은 배경이 조선시대임에도 현대적인 감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도 그랬다.용어나 사건 내용은 조선시대였지만, 사건에 접근하는 외지부의 활약은 요즘 법정물을 보는 느낌이었다.

 

송사의 내용은 땅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가려 달라는 것이었다. 목포  앞바다에 있는 섬, 하의도 그곳 주민들은 피땀 흘려 갯벌을 메꿔 농토를 만들어내고나니, 세도가 홍씨 집안에서는 그 땅이 자신들 소유라고 우기며 도조를 강제로 걷어가면서 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홍씨집안과 이곳 섬과의 인연은 인조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홍씨집안과  광해군의 딸 정명공주와 혼사를 맺게 되면서 하의도와 부근 섬, 그곳의 땅을 하사받게 된 것이다. 그러고나니 그곳 주민들은 농사지을 의욕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봐야 홍씨 집안에 거의다 빼앗기고 마니, 그래서 찾은 해법이 주민들은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무려 이십년에 걸쳐, 모든 섬주민들이 해가 뜨면서부터 해가 질때까지 흙과 돌을 날라서 바다를 메꾸는 결국 역사를 이뤄냈고,  주민들은 그렇게 간척한 땅에서 농사를 지을 꿈에 부풀어있었는데..

 

그런데 20년동안 주민들의 노동을 지켜만 보고 전혀 거들지 않았던 홍씨집안에서 난데없이 도조를 걷어간 것이었다. 섬 전체 땅을 하사받은 것이니, 그 땅 역시나 자신의 소유라면서. 거기에 관아에는 관아대로 전세와 대동미를 바쳐야했으니, 피땀 흘려 만든 땅을 일군 보람이 없어지자 주민들이 정소를 하게 된 것이었다.문제는 왕이 하사한 땅이라 정소 대상이 못된다는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노비와 땅, 산송 문제로 소송이 다반사로 벌어져서 생각보다 외지부의 수요가 꽤 있었던 모양이다. 재산과 관련된 일이니만큼 그만큼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이었다는 것인데,

법 조항을 따져 가면서 논리적으로 공방을 벌이는 과정이 자못 흥미로웠다.  헐리우드 법정물을 좋아하는데, 딱 그런 분위기였다. 섬에서 농사 짓고사는 주제에 감히 왕실에 맞서다니. 약자와 강자의 구도로 펼쳐지는 송사,약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외지부가 될 것인지, 굴복하는 외지부가 될 것인지.

 

홍씨가문은 정소하려는 사람을 해치려하고, 재판에 영향력을 끼치려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땅을 탈취하려 들었다. 그리고 이 재판을 주시하는 또다른 세도가. 그들은 혹여 이 재판에서 주민의 권리를 인정하게 되면 다른 백성들도 땅 소유권을 들고 정소하려 들까봐, 섬 주민의 요구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이제는 홍씨가문의 문제가 아니라 땅을 부치는 상민과 지주 세도가의 이해가 걸린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대놓고 섬주민을 누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이 법의 힘이었고, 법의 논리였으니.

 

실제 조선시대 였다면 상복을 몇년 입느냐를 두고 공허하기 이를데 없는 예법이나 따지고, 상민이 양반도 아닌 왕실을 상대로 소송은 어림도 없지 않았을까. 법은 그저 허울 뿐이고, 재판까지 가지 않고 권세가의 말 한마디로 상황종료가 되지 않았을까,하고 의심이 강하게 머리를 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 땅과 관련한 법 조항을 전례를 따져가며 논리를 펼쳐가는 외지부 주찬학은 치밀해보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려는 인권 변호사라고 할까.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 될지라도, 하의도 주민들의 염원을 재판에서 펼쳐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섬 주민들은 송사로 권리를 보호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조선시대에 재판으로 세도가를 이긴다는 것이 무리수라는 것을 작가가 감안한 것일까. 아니면 극적 재미를 위한 것이었을까. 막연하게나마 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법이 약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강자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법은 강자의 편이라는 인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하다.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영조시대가 배경인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은  여전한 세도가들의 탐욕을 드러내는 한편, 하의도 주민들의 권리의식 또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소송을 통해서라도 찾으려는 적극적인  문제자세에서 근대의식이 싹트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지부의 활약 또한 공자 왈 맹자 왈 경서보다도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무기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아..이제서야 알았다. 이 작품 송사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는 것을. 물론 소설적 윤색과정을 거쳤겠지만 어쩐지 사건이 생생하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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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 + 수사관의 위엄을 보이다 -조선과학수사관 장선비 | 전체보기 2016-07-2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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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조선 과학수사관 장선비

손주현 글/이영림 그림
파란자전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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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을 읽는 재미, 아는 분은 아실거다. 요즘 소재도 다양하고,편집도 괜찮고, 필자도 좋은 어린이 책이 많은지라, 시시하게 볼게 아니다. '조선과학수사관 장선비'는 날도 덥고해서 가볍게 볼 마음으로 고른 것인데, 오래 전에 방송됐던 드라마 '암행어사'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기분이었다.

사헌부관리 장선비는 암행어사로 파견되는데, 이번이 벌써 세번째 임무이다. 만복, 칠복 형제를 데리고 출행하는 그는 사헌부 개코, 진돗개 장지평이라는 별호를 얻을 만큼 추상같은 위엄으로 관리들의 비리를 캐낸 인물이었고, 그래서 임금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보통 암행어사는 그 활동의 백미가 암행어사 출두요~하면서 등장하면서 탐관오리들을 기절초풍하게 만드는 대목인데, '조선과학 수사관 장선비'에서는 암행어사에 수사관모드까지 장착한 터라, 살인사건을 과학적으로 해결하고, 범인에게 자백을 받는 대목이 백미였다.

 

사극에서 보면 신체적인 고통을 가해서 자백을 받는 야만적인 심문장면이 자주 나와서, 그 잔인한 방식에 눈을 감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책 속 장선비는 조선시대 과학 수사의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무원록'에 근거한 수사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인의 범인을 밝혀낸 것인데, CSI 조선 버젼이라고 할까.장선비는 조선시대 과학 수사의 교범이라고 할 수 있는 '무원록'에 근거한 수사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인의 범인을 밝혀낸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과학적 기법을 동원한 수사 방법이 있었음을, 그것은 백성의 억울함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애민정신에서 비롯됐음을 담아내고 있다. 괜히 원통할 원자를 쓰는 무원록(無寃錄)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과학수사관 장선비'는 복잡하지도 않고,길지도 않고,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컸다. 어린이 책 득유의 담백함이 느껴졌다. 나이가 먹을 수록 죄를 지어도 벌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더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가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고, 모든 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되네일 수 있었다.

주인공이 권력의 압력이나 금전적인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임무를수행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데, 장선비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사필 귀정의 뜻을 곱씹어 보았다.

착한 사람은 결국 복받으니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 권선징악의 세상, 속내를 말하자면 어른들은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어린이 책을 읽으면서 선한 이들이 보답받는 세상에 대한 희망사항을 상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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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명무 칼과 붓 중 어느 것을 택할까?- 왕의 초상 | 전체보기 2016-07-2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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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왕의 초상

서철원 엮음
다산책방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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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칼을 품고 왕을 해하려는 소녀, 명무. 그녀는 도화서 화원이었던 아버지 명현서가 왕,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자,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했다. 명현서는 고려 유신과 내통했다는 의심을 받아서 도화서에서 능지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원수는 왕, 모처럼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것은 바로 방원의 초상화를 그릴 어진화가를 선정하는 경연이 펼쳐지게 됐기 때문이다. 명무는 칼과 붓을 들고 경연에 참가하는데, 어진화가로 뽑힌 뒤 왕을 시해할 계획이었다.

 

전개가 정말 느렸지만, 그럼에도 불만을 품지 않은 것은 작가가 상당히 공들이고 섬세하게 작품을 채워가고 있어서였다. 문장도 그렇고 고증도 그렇게 상당히 성실하게 한땀 한땀 수를 놓은 듯 했다.

그래서 '태종어진 경연장에서 펼쳐지는 고려 유민의 숨막히는 복수극'이라는 책 겉장의 카피가 그리 실감나지 않았다. 전혀 숨이 막히지 않았고, 복수극이나 스릴러 쟝르에서 느껴지는 긴박감이나 팽팽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건의 전모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기심이 일지 않은 것을 보면 출판사가 홍보하려는 방향과 작품의 내용이 엇갈린 느낌이 들었다.

 

명무는 복수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진심으로 왕을 시해하려는 결심을 한 것인지 그 속내가 의문스러웠다. 왕의 몸을 알아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명분으로 왕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대목에선,왜 복수를 하지 않는거지 싶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그 자리에서 암살할 수도 있었을텐데. 두 사람은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그러다보니 뒤로 갈수록 명무의 복수전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관심은 식어갔고, 그보다는 왕조 교체기에 전 왕조 유민들의 삶이나, 유민들의 저항을 포용하지 못했던 방원의 실수, 왕의 초상을 그리는 과정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됐다고 할까. 오히려 그쪽으로 더 관심이 갔다.

고려 유민들을 처단하기 급급했던 과거를 방원이 후회하는 모습이나, 어진을 그리기 뒤해 진지하게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붓질하는 화가들의 모습이 머리 속으로 그려졌다. '왕의 초상'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결말 부분에 와서 선비 화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복수극에 대한 관심의 불씨가 되살아나진 않았다. 명무는 스스로 왕을 시해하려 했다고 밝히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결기를 보였다.

복수를 포기한 것인지..내려놓은 것인지. 대놓고 왕을 죽이겠다고 밝혔으니, 그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아버지처럼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과연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결말이 여운이 남았다. 명무로서는 제 3의 길을 택한 셈이 됐다. 방원 또한  재능을 아꼈고, 총애했지만 그가 죽였던 명현서가 남긴 말을 상기하게 된다.

"고려의 유민들을 척살하오면 그 높음과 아름다움이 전하의 시류에서 모두 사라질 것이옵니다"라고 했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붓의 세계, 목숨을 베는 칼의 세계, 붓이 남긴 것과 칼로 이룬 성과. 방원은 어진을 보면서, 이제는 칼보다는 붓을 들어 세상을 다스려야  할 때라는 것을 깨우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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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스토리와 캐릭터 덕에 의상이 주인공같다-상의원 | 전체보기 2016-07-1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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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상의원

이원석
한국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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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원(尙衣院)은 조선시대에 실재했던 관청이다. 하는 일은 임금과 왕비의 의복을 지어 바치고 궁내의 금과 보화를 맡아 관리하고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 상의원이 주배경으로 등장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소재가 신선했고, 또 화려한 옷들이 볼만함을 넘어,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작품이었다.감독 보다 의상담당을 찾아봤더니, 조상경씨였다. 영화 의상으로 워낙  유명한 분이라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명불허전이었다.

 

그런데 의상이 돋보였다는 점은 작품의 특성상 칭찬이기도 하지만, 꼭 칭찬의 의미로 한말은 아니다. 스토리라인이나 캐릭터들이 모두  전형적이고 단순해서, 이야기와 갈등이 모두 빈약해졌고, 그러다보니 현대적인 감각이 넘치는 한복들이 시각적으로 더 부각된 감도 없지 않다.

 

이야기는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방식으로 제작된 아름다운 대례복이 발견됐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대례복을 만든 사람은 상의원 어침장 조돌석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하지만, 실제 그 옷을 만든 이는 조돌석 어침장이 아닌, 이공진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기방에서 지내면서 기생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인물이었는데,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기생이나 젊은 처자, 대가집에서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입고 싶어하는 옷이었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임금의 면복을 수선하게 되는데 공진이 수선한 옷이 임금 눈에 들게되자 어침장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이공진은 자유스러운 생활과 감각을 바탕으로 신분을 드러내고, 궁궐의 법도에 맞게 규범화 된 옷을 만드는 어침장과 달리, 다른 옷과 확연하게 차별화되는 그만의 아름다운 옷을 만든다. 공진이 만든 옷, 유교적 신분질서를 의식하지 않고 아름답게 만든 옷을 보고 어침장은 천박하다고 공격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공진의 재능과 감각을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공진이 모짜르트라면 어침장은  살리에르인 설정, 뻔하다 싶은 구도가 됐다. 그런데 어침장과 이공진의 갈등은 뻔히 예상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침장은 계속 자리에 머물기 위해, 중전을 폐위하고자하는 세력을 위해 옷을 만들게 되고, 공진은 중전을 아름답게 빛내주는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선다. 그러려면 손수 왕비의 칫수를 재야한다고 한다면서 결국 치수를 재는데, 중전의 몸에 남성인 그가 손을 댄다는 것, 그것이 당시 법도에서는 금하는 일이었던 것은 자명했다.

청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 중전은 공진이 만들어준 대례복을 입고 나타나, 그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의 감탄어린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지만, 그 일이 곧 공진의 비극을 초래하고야 만다.

그때 중전이 입은 그 아름다운 대례복이 이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발견된 그 대례복이고, 이 작품의 끝장면은 박물관에 전시된 대례복과 그 앞에 제작한 이로 명패에 어침장 조돌석 이름 석자가 새겨져있고..

대례복이 공진이 아닌 돌석의 작품으로 남게 된 사연, 그것이 '상의원'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리 라인의 빈약함은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연기 또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어침장 조돌석 역을 맡은 한석규, 한 때 시나리오 보는 눈이 발군이라는 평을 들었던 한석규였지만, 이번 캐릭터는 그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박신혜는 첫 사극영화라 그런지 저음으로 깔리는 대사처리로 일관하다 말미에 가서야 작품에 적응한 듯했고. 배성우, 마동석은 코믹한 캐릭터로 재미에 기여하는 역할이었을텐데, 안타깝게도 재미있다기 보다는 어설퍼 보였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은 연기자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스토리와 캐릭터의 전형성과 단순함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닐지. 화면을 채울 이야기나 등장 인물들의 생동감이 떨어지다보니 화면을 채워주는 화려한 의상에 눈길이 쏠릴 수 밖에.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의 질투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예술가의 재능에 대한 질투, 애정과 관련한 질투 이렇게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질투심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권력을 동원하면서 규범과 자유, 권력과 사랑. 그 사이에서 야합하는 사람도, 희생자도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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