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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보다는 증에 가까운 애증의 후루하시 가족-벚꽃, 다시 벚꽃 | 전체보기 2016-02-06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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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벚꽃, 다시 벚꽃

미야베 미유키 저/권영주 역
비채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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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이 넘는 두터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대략 반응은 두 가지다. 두께에 압도돼서 이걸 언제 다 읽어? 하는 난처함이거나 두께에는 상관하지 않고 읽게 되는 경우인데 이 작품은 후자에 속했다. 미야베 미유키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혀 부담이 없었다.

표지의 벚꽃을 보니 물오는 봄날, 은은한 벚꽃향이며, 연분홍 벚꽃잎 활짝 피어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 작품도 그런 상춘의 분위기를 담아낸 것일까. 상상해보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에도시대 한 가족의 애증을 담고 있었다.

 

소자에몬 후루하시는 도가네 번에서 물품관리를 하는 시종관이자 무사인데, 품성이 온화하고 출세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야심이 큰 그의 아내는 남편이 마냥 못마땅하기만 하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두 아들 중 어머니는 자신처럼 야망이 큰 큰아들에게 기대를 걸고 전폭적으로 지원하지만, 남편을 닮아 평화로운 성격인 둘째 아들 소노시케에게는 상대적으로 소원했다.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로 부부간의 사이가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든 듯이, 그런 경향은 두 형제에게도 이어져 둘 사이도 그렇게 돈독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본격적으로 시련이 닥친 것은 아버지 소자에몬이 뇌물을 받았다는 증서가 발견되고, 아버지에 대한 두 아들의 반응은 갈라졌다. 일단 큰아들의 야망에 일단 제동이 걸렸고, 둘째아들 소노시케는 아버지의 결백을 믿고 내심 누명을 벗겨드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부탁으로 에도로 떠나게 되는데..

 

'벚꽃, 다시 벚꽃'은 모두 네편의 이야기가 단편처럼, 연작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족이란 무엇인지, 가족의 사랑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된다. 가족이기에 그 어떤 경우에도 감싸안고 품어야 하는 것이 가족애인건지. 

가족 내에서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는 단연 어머니였다. 뼈대있는 집안의 여식이었지만, 본인 사정으로 결혼을 세 번이나 하게 되고, 한미한 집안인  후루가시가 소자에몬과 마지막 결혼을 하게 된 어머니. 기어코 아들을 출세시키고 후루하시 가문을 빛내보겠다는 어머니의 야심은 아버지를 위축시켰고, 집안에 파란을 몰고 오게 된 것이다.

반면 아버지를 닮은 소노시케는 에도에서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드려야 한다는 자식으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가족 사이에 존재했던 그 애증 그것도 애보다는 증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며 형제간에 비극을 연출한다. 골육상쟁에 가까운 파국,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존재는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 가족은 운명이자 때론 굴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매우 어두운 이야기같지만, '벚꽃, 다시 벚꽃'은 그렇게 무겁게 읽혀지진 않았다.

'벚꽃, 다시 벚꽃'에는 소노시케가 중심이 된 후루하시가의 이야기 외에도 곁들여진 이야기는  가족이 아닌 관계에 대해 혹은 가족의 연으로 맺어지는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읽혀졌다.

부부간이 아닌 부모 자식간, 형제같은 혈육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그럼에도 가족은 핏줄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만들어갈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고. 가족이 아니더라도 흉허물없이 지내다보면 가족처럼 가까와지고, 마음을 나누고, 정을 주고. 그리고 오해도 하고, 노여워도 하지만 용서하고,화해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분명 소노시케는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로 영원히 괴로울 것이다. 그럼에도 소노시케는 가족에 대한 희망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틀림없이 사랑하는 이와 다시 가족을 이룰 것이고 누구보다 가족들을 아껴줄 것이다. 그리하여 가족은 사랑이라고 증명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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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4        
사진으로 본 36년사, 울컥하고, 분노하다, 과연 그들은 살아 남았을까?-일제 강점기 | 전체보기 2016-01-3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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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일제 강점기

박도 편
눈빛 | 201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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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표지에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인쇄돼 있는 '일제강점기'란 제목부터 무겁게 눈에 박히는데..책 두께도 장난이 아니었다.무겁기도 했다. 보통 책에 쓰이는 지질이 아닌 맨들맨들한 종이 750쪽이 넘는 양에 무게는 1.5kg.

 

 '식민 통치기의 수난과 저항의 기억'이란 부제에 어울리게,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 기간동안 우리민족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연도별로 서술해 놓았다. 모두에 실려있는 장세윤의 논문 '일제 강점 35년-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는 최근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역사학의 연구흐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서술하고 있어서, 일본 식민지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논문이었다.

 

이 책은 구성을 칭찬해주고 싶다. 전체적 흐름에 대한 설명과 연도별 총체 설명, 연도별 분야에 대한 설명, 연도별 주요사건에 대한 정리. 그런 다음 관련 사진들이 게재돼 있고, 당시를 겪었던 인물들의 구술.로 짜여져 있다.

 

객관적인 정리와 엄혹한 식민 통치 사실들을 구술과 사진을 통해 뒷받침하고 있다.그 시대를 직접 헤치며 살아낸 민초 혹은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 사할린 동포들..그 혹독한 세월을 직접 겪어낸 이들이 담담하게 혹은 노여움이 묻어나는 육성으로 잔인했던 일본의 식민통치를 증언놓고  있었다. 이들은 철저하게 희생됐다. 삶은 일제 지배로 자신들이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지금까지도 그 삶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피해와 희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로 여전히 괴로운 여생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수 백장의 사진. 일반 민초들은 물론이고, 독립투사들의 투지와 의지를..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 한장 한장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실려있는 사진들 대부분 무심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 찍는 이가 대상에 대해 별 생각없이 셔터를 누른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이 촬영한 것이었다니. 그런 점을 감안하고 사진을 봐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구술 글에서도 그렇지만 울컥하게도 되고,분노하게도 된다. 평온해 보이는 일상 사진들도 적지 않지만, 특히 강제 징용된 한국인 노동자가 탄광 벽에 쓴 글을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머리 속이 휑해졌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긴 말이 필요없이 단 세 문장만으로 징용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혹독하게 지내는지 다른 말을 들을 필요없이 바로 간파할 수 있었다. 간절함과 고통이 묻어 나왔다.

굶주림과 폭행, 고된 노동 등 그나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처우에 그들의 청춘과 삶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저 글을 남긴 사람들은 살아 남아서 저 곳을 빠져나왔을까. 위안부 사진은 차마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빠르게 넘겨 버렸다.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독립투사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김구 등 임시 정부나 독립단체 임원들은 비슷비슷한 분위기의 단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장소를 바꾸어가면서, 더러 구성원들의 얼굴도 바뀌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서, 또 독립활동이 여의치 못해서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녀야 했던 상황들이 눈에 보였다.

또 결사를 앞둔 독립투사의 결연한 모습들도. 윤봉길, 이봉창 열사 등, 분명 저 순간 열사들은 죽음을 각오했을텐데. 사진속에는 웃는 듯한 얼굴이었고, 얼굴 인식이 확실하게 될 정도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거사 후 연행되는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들을 한참 들여다 봤다. 다 사실이고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영화 속 한장면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부분의 사진.일본 천황의 항복선언 방송을 불과 세시간 앞두고 찍은 윤태봉군의 입영 기념사진..그리고 원자 폭탄이 투하되는 사진, 또 천황의 항복 방송 이후 침통한 분위기의 일본과 축하행렬이 벌어진 조선,  만세하는 조선, 오열하는 일본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대조적이었다. 일본은 인과응보라고 해도 대체 조선은 무슨 죄였는지.

제국주의처럼 약육강식 시대에 자신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나약한 나라였다는 것이 죄라면 죄였다.

 

강점기 36년이 끝나고, 그 뒤로 다시 그 36년의 두배가 되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 강점의 역사를 두고 한일 두 나라는 갈등을 빚고 있다. 과거사갖고 더 이상 논쟁하는 것도 지치겠다 싶다가도, 사진 속의 위안부들, 투사들, 사할린에서 돌아오지 못했던 동포들, 징병, 징용자들..또 이름모를 민초들의 눈빛과 고통을 생각하면, 고단한 세월을 감내했고, 고난을 겪어야 했던 그들에게 느끼게되는 안스러움만으로는 안된다고. 파괴된 그들의 인생과 그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들을 결코 잊으면 안된다고 다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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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2        
문제제기에는 동의하지만, 얼마나 보편적인 시각에서 접근한 것일까?-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 전체보기 2016-01-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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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저
예옥 | 2013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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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부터였더라. 아마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로 기억한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부를 때 '한국'이라고 하던 것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세가 된 것이. 월드컵때 전 나라가 '대~한민국' 응원소리로 뒤덮이고 월드컵 4강이라는 예상밖의 선전을 거두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한국'이라고 하는 것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내 경우에는 그렇다. 후자 쪽이 우리나라를 더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이 난다고 할까. 위대한 나라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처음에는 이 책 제목이 '스무 살엔 몰랐던 내한민국'인 줄도 몰랐다. 조건반사적으로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보니 '내한민국'이었다. 사회에 대해 비판적이던 20대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최근에 발견했다는 의미를 담았다는 것인데, 제목에서 벌써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내포돼 있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이색적이었다. 필자가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곳에서 1904년 한국에 대해 쓴 책 "한국에서:'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대한 기억와 연구"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지낼 때, 즉 자신이 이방인이었던 때라 역시나 이방인의 눈에 어떻게 비춰진 조국의 모습에 관심이 끌린 것일까.

 

필자는 구한말과 일제치하 조선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굳어진 것과 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제국주의, 백인 우월주의적인 시각때문에  조선의 참모습이 가려지게 된 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텍스트의 영향을 받은 다른 텍스트들이 등장하며 조선에 나태하고 게으른 민족이라는 덧칠이 가해졌다는 것이다.

의외였던 것은 더 파고들어 보니, 조선의 이미지가 이렇게 부정 일변도가 아니었다는 것, 조선을 지성적이며, 자연스럽고 당당하다고 언급한, 즉 긍정적으로 평가한 외국인과 책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조선, 나아가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면을 증명하고 명예회복하겠다고 벼른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문제의식이나 내용은 내게 별다르게 다가오지 않았다. 몇달 전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조선이란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읽은 뒤라 그런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책에서도 일부 서구인들의 조선에 대한 인상기에 스며들어있는 오리엔탈리즘이나, 백인 우월주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비판하고 있었다.

 

필자처럼 대놓고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게, 과도한 민족주의적 시각이나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편협한 시각에서 아니라는 것, 보편적인 시각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확보하는 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긍정성을 드러내기 위해 인용된 일부 주장의 경우 조선인들 인물이 좋고, 또 물건도 안 없어진다는 등등 조선을 과하게 상찬하고 있어서 반신반의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입증된 건가. 한국인이 잘생긴 종자라는 주장 등 몇몇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하는 논리가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언급했던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선을  비판한 내용이나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의 만행, 그래서 조선이 역사에서도 약자가 됐다는 주장에는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조선이 지적이고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지. 조선말기, 구한말 조선은 이미 뿌리채 썩어 들어가고 있는 상태였음을 상기해볼 때, 필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서도 선하고 강하다는 의견도 그렇다. 민족성이라거나 민족적인 기질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도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몇 단어로 압축하거나 포괄할 수 있는 것인지. 단편적인 접근이 아닐까.

 

그리고 거슬리는 게 있었다. 뒤 쪽에 보면 부록처럼' 나는 이 책에 반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서평이 짧게 여러 개가 실려 있는데, 칭찬 일변도의 주례사같은 서평 그것도 조국, 전인권, 김장훈, 방민호 등 대부분 명사인 이들의 서평을 서른 개가 넘게 게재한 것이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서평이 아니라 광고같아서 오히려 책의 진실성을 떨어뜨렸다. 지면이 아까웠다. 사족인 수준을 넘어 없는 편이 나아보였다.

 

필자의 이력을 보면, 학부 시절엔 철학을 전공했고, 스웨덴과 포르투갈에서 공부하며 역사학 석사학위를 땄다. 그리고 등단한 소설가이고. 그 이력을 십분 활용해서 자료를 인용하는 주장하는 논리와 묘사하는 글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묘사를 통해서는 언급되는 상황과 인물을 떠올리게 했고, 논리와 감성을

모두 작동하게 해주었다.

 

필자가 주장하는 근본적인 명제, 구한말,일제 시대에 서구에 소개됐던 대한민국의 부정적인 표상에 대한 문제제기에는 동의한다. 서구인들의 왜곡된 시각이 개입된 것에 대한 비판과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표상을 확인해가는 작업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런 표상들이  조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그래서 요즘에는 '반크'같이 민간외교 사이트에서 외국에서 유포되고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류를 수정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고 이런 활동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헬조선'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최근 젊은 층 사이에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형성되고 있고, 일본에서도 '혐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두 예에서 보듯이 한나라에 대한 표상은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환경, 또 문화접촉, 국제적인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만큼 '내한민국'이 되기 위해선 결국 조국에  대해서도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아닌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적용하는 것과 정치,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통해 스스로 검증해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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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를 | 추천 5        
모던 걸, 모던 보이의 등장, 그리고 연애편지-한국 근대사산책7 | 전체보기 2016-01-2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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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 근대사 산책 7

강준만 저
인물과사상사 | 200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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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의 신여성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부 여성들에게 반감이 없지 않았다. 서구 여성의 경우 선각자들은 참정권 획득이나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온몸을 던져 활동한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그저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즐기는 수준에 그쳤다고 생각해서였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도 그렇고, 나혜석이 최린에게 위자료를 청구했던 것도 그렇고 유부남과 연애를 벌여 사회를 떠들석하게 하는 건 주로 신여성들이었으니.

 

그런데 요즘엔 그 생각을 수정하는 중에 있다. 나의 무지로 그들의 활동을 오해한 점도 있었고, 여성들의 활동보다는 개인적 연사에 초점을 맞춰진 보도에 영향받은 점도 있었다. 또 봉건적인 사고가 지배적이었다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배우자가 있는 기혼상태에서 외도한 것은 분명하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 이중적 성적 가치가 지배하던 시대에 여성에게 유독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고  외도로 하루아침에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던 시대라는 점, 그리고 기혼 아닌 이들이 자유로이 상대를 택해서 연애 하는 것 자체가 주체성을 높이는 길이 되는 시대였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혜석같은 경우 그녀의 그림 세계도 그렇지만 생각보다 훨신 높은 여권의식을 가진 점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윤심덕의 정사(情死)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또 식민지 시대와 여권 신장에 대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활약을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볼 것도 아니었다. 여성들이 전문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는 것. 윤심덕, 최승희, 나혜석, 허영숙 등등 연애사로 이름이 더욱 알려지긴 했지만 그들은 엄연히 자신의 전문적 직업을 가진 프로들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대중들의 호기심어린 관심뿐 아니라 사회에 활기를 불어 넣었고,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었다는 점은 결코 과소평가될 일이 아니었다.

 

강준만의 한국 근대사7은 '간토대학살(關東대지진으로 벌어진 학살)에서 광주학생운동'까지를 다루고 있는데, 리뷰를 이렇게 신여성과 관련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제 통치가 10여년이 넘어가고, 본격화 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망국의 사회 여러 분야에서, 또 일상에서도  식민지와 관련해서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달라진 일상과 문화, 연애와 관련한 기술이 눈에 띄었고, 특히나 신여성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고, 현모양처에 순종을 요구받았던 기존 여성상과는 다르게 신교육을 받은 활동적인 여성들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를 다룬 역사 책에서 이런 개인의 연사나, 유행,연애편지를 다룬다는 것에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게도 다가왔다.  일제의 만행이나 독립운동을 다룬 역사에 익숙해져있다보니.

일단 감정부터 추스렸다. 이 책에서는 간토대학살이나, 6.10만세,광주학생운동 등에 대해서도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또 모든 조선인들이 투사일 수는 없는 일이고, 사람들이 누리는 일상에서 즐거움과 유행을 추구하는 욕망은 일제치하라 해도 멈추어지지 않았을테니.

우선 이런 사실부터 수용하고 이 책을 읽어갔다. 부도덕한 정권이 그러하듯 또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일제도 조선인들이 소비나 유행을 추종하면서 욕망을 충족하도록 일정부분 조장했던 탓도 있었다.

 

이렇게 20년대 조선사회는 유성기,박가분의 유행, 광고, 축구, 야구 등 스포츠, 다방의 인기, 단발 머리,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등장,연애 편지의 성행 등 봉건적인 구각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띠었다. 정사(情死) 하는 인물도 많이 나타났지만, 이것 또한 조혼풍습과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 자유 연애의 물결, 또 식민지시대, 낭만적 격정이라는 여러 관점에서 주시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제국주의 지배를 받는 와중에서도 조선은 차츰 근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현대적인 모습과 조금씩 가까와지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기에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됐는데, 이 부분이 꽤 상세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필자가 과거 대한민국은 '서울대의 나라'라고 비판하면서 서울대 폐지를 주장한 이력이 있다보니 경성제국대학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읽게 됐다.

경세제국 대학의 설립동기나 역할을 생각해보면, 또 경성제국대학이  과도한 엘리트의식에 지식인의 역할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학문이 권력을 위한 이론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고, 얼마나 큰 출세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그 폐해를 보여주었다. 일본제국주의가 원하는 식민지 대학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런 반면에 이 시기에 사회주의가 한반도를 휩쓸고, 조선공산당이 창당되었다는 점, 또 원산총파업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사상적인 경향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에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여겨 봐두었다.

 

윤심덕과 관련한 내용을 읽으면서 문득 오래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그 유명한'사의 찬미'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복각판 CD에서 윤심덕이 부르는 노래였는데, 들으면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노래를 정말 못하는 것이었다. 음치가 부르는 노래처럼 들려서, 충격받을 정도였다. 당대의 성악가맞아? 그 유명한 윤심덕 가창력이 저렇게 음치수준이라니 어이가 없었는데, 이 책에서 언급돼 있는 내용 중 한 의견을 읽어보니, 그렇게만 볼게 아니라는 것이다.그 노래가 지금 들으면 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조선시대 창법을 감안하면 그렇게 서양식 발성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당시로선 엄청나게 파격적인 변화였다는 것이다.

 

역사 책 읽다보면 가끔씩 시대 감각을 잃어버리곤 한다.윤심덕 노래도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던 자유연애도 그렇고, 요즘 말로 시대보정하지 않고 지금 잣대로 바라보고 평가하다보면 그 시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의미를 지워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일단 그 시대적 상황과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곱씹는 중이다.

더불어 또 한가지.아무리 식민지 치하이고 암울한 시대였다해도, 사랑하고 헤어지고 인간사와 욕망을 충족하려는 시도는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니. 그것 역시나 역사의 범주에 포함하고 연구하는 것에 색안경 끼고 보거나 인색하게 굴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해서 역사연구의 외연도 확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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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을 추모하며...-'담론' | 전체보기 2016-01-2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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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담론

신영복 저
돌베개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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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에 발간한 '담론'.표지에 적혀있는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나를 울적하게 했다. 얼마 전에 '강의'를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느꼈던 여운이 아직 채 식지 않았는데, 필자의 부고를 들은 뒤 추모하는 심정으로 '담론'을 펼쳐 들었다.  책만큼 그 사람의 인생과 사상을 담아내는 증거물이 있을까. 파란만장했던 그의 인생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는 듯 했다.

 

'강의'도 그렇지만 '담론'도 강의를 녹취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듣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갔지만, 미리 고백하자면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중간중간  감상에 젖거나 회고에 빠져든 시간이 훨신 많았다. 선생은 자분자분 조용한 목소리로 강의를 했을까? 열띤 어조로 수업을 했을까? 칠판에 한자를 일필휘지로 쓰면서 판서를 많이 하셨으려나. 문득 수업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얼마 전에 읽었던 '강의'의 내용과 중복된 것도 있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뒷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그 벅찬 감동이 새삼 떠올랐다. 감옥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를 통해  휴머니즘과 가족애를 느끼게 해주고, 자잘한 일상이 주는 아름다움까지 돌아보게 해주었던.

그 책을 통해 신영복선생을 처음 알게 된 것이었는데, 그 뒤 투옥된 세월만큼이나 석방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변하지 않았다.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풀이나 아름다운 서예 글씨체도 물론 빼어난 작품이지만, 무엇보다 신영복 선생을 기리게 하고 돋보이게 했던 것은 책 전편을 감싸고 있는 인간애와 성찰이었다. 날카로운 비판만이 아닌 따뜻하고 온화한 성찰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와 인간애를 가진 따뜻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었다.

 

'담론' 역시나 그러했다. 단순히 동양의 고전을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양 고전 속에 드러난 세상읽기의 지향의 종점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실천하고 변화하는 것이었다. 상품과 소비에 매몰되고, 자본에 종속되는 삶, 성장 만능주의를 극복하고, 함께 사는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이상주의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과연 그런 세상이 가능할까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공허하거나 허황되게 들리지 않았다. 선생의 글은 언제나 온화하게 다가왔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숙연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세상은 달라져야 하고, 그런 세상을 위해 나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게 해준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쓸 즈음이면 선생은 본인의 병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을까.'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에서 이 세상과의 작별을 준비하는 선생의 모습을 떠올렸다면, 내가 오버하는 것일까.

이 책을 덮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젠 살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데. 신영복 선생이 남긴 글과, 그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내 남아있는 날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아름답게 마무리 할지, 나는 변화할 수 있을지.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지. 또 더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실천해야 할 것인지. 이것이 고인이 산 자들에게 남긴 고별사이자 담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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