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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수사단 | 원숭이의 서재 2020-07-1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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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콩가루 수사단

주영하 저
스윙테일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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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1. 주영하 『콩가루 수사단』 : 스윙테일


18 남짓의 작은 집이지만 현호에게 집은 꽤나 안락한 곳이다. 스펙 좋은 엘리트 형사로 서촌 경찰서 강력계에 근무 중인 현호가 누린 일상의 평화를 침범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들이다. 시작은 큰누나였다. 10 넘게 추리소설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있지만 실상은 은둔형 백수로 그나마 살던 고시원에서 마저 쫓겨난 큰누나 백진주는 미안한 낯짝을 하고선 안방에 짐을 풀었다. 안방의 주인이 백진주가 자리를 잡기도 , 작은누나 현주가 벨을 눌렀다. 어린 시절 키에 화려한 외모로 동네를 평정한 현주는 오랜 시간 여신으로 추앙받았으나 지금은 번의 이혼을 앞둔 프로 이혼녀로 전락해있다. 매형과는 이제 하루도 산다며, 너는 애가 그렇게 정이 없냐며, 지난 조카를 밖에서 얼려 죽이겠냐며, 집안에 발을 들인 작은누나 현주는 단숨에 진주를 몰아내고 안방을 차지했다. 현호의 일상에 화룡점정을 찍은 엄마였다. 전세사기를 당했다며 찾아온 엄마 오희례 여사는 연신 박복한 팔자 탓을 하며 거실에 궁둥짝을 붙이자마자 대성통곡했다. 한번 눌어붙은 궁둥짝은 떨어질 몰랐고 엄마의 궁둥짝은 작은누나와 조카가 차지하던 안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큰누나도 틈을 방구석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엔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현호지만 협상과 분노, 우울을 거쳐 수용의 단계에 접어든 현호는 모든 포기하고 창고로 쓰던 작은방에 짐을 옮긴다.


어쩐지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 가족』이 생각나는 소설이다. 추리 장르에 속하는 소설의 시작은 『고령화 가족』처럼 지지리도 못난 가족들이 18 남짓의 작은 집으로 모이며 시작된다. 소설에서의 대목을 인용하자면피는 물보다 진해서 남에게 쏟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족과 싸우는거라지만 제목의 수사단 앞에 붙은콩가루라는 단어는 그들이 결속력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가족이란 점을 명명히 보여준다. 시작부터 현호의 주위를 둘러싼 희례, 진주, 현주, 조카 지우까지 여자들의 속사포 같은 입담은 독자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 입담이 끝나기도 , 조카 지우의 유괴는 소설의 번째 사건인 <사라진 작은 >으로 이어진다. 사건은 콩가루 집안의 콩가루 가족인 그들을콩가루 수사단으로 결속한다. 동네 오지라퍼이면서 과거의 행적이 미스터리한 엄마 오희례 여사를 시작으로 10년간 추리소설을 써온 큰누나 진주, 화려한 미모와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작은누나 현주, 그리고 경찰대 출신의 엘리트 강력계 형사 현호는 물렁하게 대처하는 경찰을 대신해 사건을 풀어간다. 유괴된 조카 지우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번째 사건 <베란다와 빨간 구두> 그리고 <웨딩 브레이커>, <살인 소설> 많고 탈도 많던콩가루 수사단 어느덧 최강의 팀플레이를 자랑하며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미스터리 사건들의 트릭을 파헤친다.


소설은 시종 유쾌하다. 그러나 유쾌하다는 것이 반드시 코믹 요소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처럼 어느 가족이든 마음에 품고 있을 저마다 다른 비극을 한걸음 물러서 희극으로 표현하지만 속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동시한다. 일곱 사건을 연이어 해결하는 동안콩가루 수사단 가족사가 조금씩 드러난다. 웃지 못할 일들, 그러나 수만도 없는 우리네 삶을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이 좋은 이유는 사건들의 사이사이 그리고 마지막 엔딩에서의 잔잔한 감동이 오히려 묵직한 가족애로 다가오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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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 현대지성 | 원숭이의 서재 2020-07-0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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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저/이종인 역
현대지성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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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6.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 현대지성

철학이 실제 내 삶에 미친 선한 영향력에 대해 말할 때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나는 ‘개인의 행복 추구’를 우선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익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돈’이나 ‘사랑’, ‘신념’ 같은 것들이 아닌 ‘행복’인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내게 행복을 안겨 주어야 한다. 그것이 비로소 진짜 행복해지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를 생각하면 흔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떠올릴 것이며 나아가 민주주의나 윤리, 도덕에 영향을 미친 사상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영국의 사회사상가 제러미 벤담에 따르면 공리(utility)란 어떤 것이든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에게 혜택, 이점, 쾌락, 선, 행복을 가져다주거나 불운, 고통 악,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속성을 의미한다. 책의 저자이자 제러미 벤담에 이은 공리주의 윤리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에 따르면 공리를 통하여 행복으로 갈 수 있기에 공리를 행복으로, 공리주의를 행복주의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공리라는 말은 행복이나 쾌락과 달리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런 것을 산출하는데 유용하다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공리의 어원인 utility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명사로서 유용성, 효용, 실용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덕의 밑바탕으로 ‘공리’ 혹은 ‘최대 행복 원리’를 받아들이는 사상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어떤 행위가 행복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옳은 행동이 되며, 만약 불행을 증진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증진의 정도에 비례하여 그른 행동이 된다.” 쉽게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개인의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공리주의에 대해 생각해보면 이기주의나 쾌락만을 좇다 보니 돼지와 같이 게으름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공리주의의 정수가 쾌락과 행복에 있다면 앞선 걱정이나 상대 철학파의 비난도 무시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대한 반론 속에 나타난 인물이 존 스튜어트 밀이다. 넓은 의미에서 공리주의는 행복, 효용 등의 쾌락에 최대의 가치를 두는 철학, 사상적 경향을 통칭하는데,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은 쾌락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쾌락이 계량 가능하다는 ‘양적 공리주의’를 펼쳤다면,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여 ‘공리주의’를 현세대에까지 국가, 인종, 문화를 넘어 전파한 인물이다.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질적 공리주의’의 핵심은 육체적인 쾌락보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쾌락이야말로 질적으로 우수한 쾌락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행복과 만족을 구분하고 전자가 후자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말한 밀은 “만족한 돼지보다는 불만족한 인간이 더 낫다. 만족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행복의 질을 구별하면서도 도덕적 규범과 의무를 다하게 하고 품격을 지니는 지성체로서 행복 추구를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바로 국민의 행복 추구권이다. 사회주의 사상에서 말하는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주장과는 다르게 민주주의 사상은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공리주의는 존 스튜어트 밀 이후의 수많은 철학가와 사상가에게 영향을 미쳐 공리주의 이론을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켰으며, 특히 법학, 정치학, 경제학에 그 영향력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 역시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가 잔존한다. 이것이 잔존 문화 요소와 다른 점은 모든 문화 요소 중 그것을 낳은 사회 상황이 변화된 뒤에도 소멸함이 없이 그 본래의 의미나 기능은 상실한 채 전 시대의 유제로서 새로운 사회에 전해지고 있는 대신, 공리주의는 오히려 시대가 감에 따라 공리주의 가치 역시 체계화되며 발전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단지 하나의 철학 사상을 배우고 알아간다는 생각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인류사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사상을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과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철학서보다 더 의미 있고 마음 깊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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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 현대문학 | 원숭이의 서재 2020-07-0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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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조현 저
현대문학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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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0. 조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 : 현대문학

조현의 신간 『나, 이페머러의 수호자』를 온전히 리뷰하기 위해 나는 ‘이페머러’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생소한 단어에서 풍기는 신비함이나 호기심이 일었음은 분명하다. 해서 독서를 시작도 하기 전에 ‘이페머러’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페머러는 수명이 아주 짧은 것, 잠깐 쓰고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에 더해 하루살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제목을 해석하자면 ‘나, 잠깐 쓰고 버려지는 것의 수호자’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장르 표기가 SF소설로 되어있었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세계희귀물보호재단이라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감조차 오지 않는 재단의 계약직 연구원으로 임용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세계희귀물보호재단은 전 세계에 퍼져있는 모든 희귀한 것들을 수집하는 재단이다. 세계 각지에 널리 퍼진 이 재단은 미 대통령의 무한한 호기심을 잠재우기 위해 수많은 희귀한 것들을 조사하며 오컬트 유산들을 수집한다. 막상 취업에는 성공했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턴인 ‘나’는 언젠가 정규직이 되고 경제적 자립을 하여 여자 친구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슈퍼 인턴이 되어 하잘것없는 보조 업무에도 열심이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서 일까, 아니 어쩌면 단지 사내 비밀 규정 테스트를 엄중히 통과해서일까, ‘나’는 인턴의 마지막 과정인 미국 본사 연수를 마치고 무사히 복귀하여 본사에서 전달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한국지사의 보스는 본사로부터 중요한 업무가 하달되었다며 이번 업무에 ‘나’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드디어 정규직의 기회가 온 것이다. 새로운 업무는 고성에서 펼쳐지는 마이스터X의 경매에 참가하는 일이다. 세계 경매 업계의 큰손이며 신비로운 인물 이외에 자세히 알려진 바 없는 마이스터X의 경매에 참가하게 된 ‘나’는 부푼 꿈을 안고 여정에 오르지만 경매장인 고성에 당도하는 일조차 경쟁자들의 방해로 쉽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고성에 도착한 ‘나’와 보스는 아이작 뉴턴의 묵시록, 카탈루냐 성모상과 성모성이 피눈물을 흘리는 영상, 스타트렉에 나온 클링온어 사전 등 눈앞에 보고도 믿기 힘든 오컬트 증거를 접하며 드디어 마이스터X의 경매가 시작된다.

사건의 발단은 분명 현실적인 세계에서 시작을 하지만 ‘나’가 이페머러의 수호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상당히 신비하게 표현되며 공상과학적 요소가 적절히 배치된다. 앞서 이페머러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페머러가 다의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소설에서 이페머러는 전시가 끝나면 버려지고 마는 전단지, 엽서, 초청장 같은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어 극장표나 포스터처럼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잡동사니를 의미한다. 그러나 주인공 ‘나’가 인턴으로 시작하여, 비정규직을 거쳐 종신 정규직으로 발탁되는 과정을 보자면 한편으로 이페머러는 말 그대로 ‘하루살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제목은 ‘나’가 오컬트 요소를 내포한 극장표나 포스터의 수호자로서 의미할 수 있고 동시에 이 시대의 청년 수호자로서 의미할 수도 있겠다.

소설이 쉽게 읽힌다고 의미나 가치마저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제목부터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 소설은 꽤나 많은 양의 메타포가 존재하며 제목처럼 다의적 해석이 가능하여 쉽게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여러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소설의 해석은 우리 독자들의 몫이니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어 나가면 되겠다.

수많은 초자연 현상이나 음모론이 등장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청년들의(혹은 취준생의) 비망록으로 읽었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나’가 얻게 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은 작가 조현이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 아닐까. 작가는 경제적인 이유로 새로이 태어날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2020년에게 애도를 표하는 대신 작은 선물을 남겼다. 이 유쾌한 소설을 읽고도 편하게 웃지 못하는 것은 과연 소설의 문제가 아닌 시대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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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영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 비에이블 | 원숭이의 서재 2020-07-0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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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변지영 저
비에이블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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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지영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 비에이블

공부를 위해 살았던 10대를 지나, 일을 위해 살았던 20대를 거쳐, 창업을 하고 기업 운영에 모든 것을 바쳤던 30대가 갔다. 40대에 진입을 하니 나는 무얼 위해 사는지, 나는 왜 사는지 다시 한번 지난 삶을 돌이켜보며 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책의 제목은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지만, 정작 나는 ‘내가 싫은 날보다 좋은 날이 많았습니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내가 싫은 날보다 좋은 날이 많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는가에 대해 생각하자면 확실히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나는 나의 마음에 드는 내가 되기 위해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매일매일 반복적인 연습과 테스트 속에서 살아가는 나를 마주한 지금, 과연 나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가는지 다시금 고민해보려 한다.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된다. 나무가 없는 숲이 있을 수 없고, 물이 없는 바다가 있을 수 없으며, 흙이 없는 땅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나무만 있어 숲이 될 수 없고, 물만 있어 바다가 될 수 없으며, 흙만 있어 땅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크고 작은 장점 몇 가지와 생각도 하기 싫은 수많은 단점들이 모여 우리를 이룬다. 숲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고, 땅이 그런 것처럼.

우리는 부분은 보지 않고 언제나 전체를 보려고 하는 건 아닐까. 어쩌다 원치 않는 부분들을 충실히 삭제해가며 사회가 원하는 나를 하나의 전체로 만들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는 작은 부분조차 나인 것을, 모두가 원하는 전체에 맞추어 내가 갖은 작고 소중한 것들을 망설임 없이 삭제하는 중은 아닌가.

며칠 전 머리를 식히기 위해 짧은 시간 바다가 보이는 펜션을 잡아 하루를 꼬박 쉬고 왔다. 지금 내 일정상 하루를 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몸과 마음에 과부하가 걸리니 단 하루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비가 내리던 그날 밤, 침대 옆 유리 문을 활짝 열고 감청색의 하늘과 군청색의 바다를 보며 가까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 하며, 빗소리에 취해 있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이름 모를 곤충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듣기 좋았다. 평소에 곤충이나 벌레를 참 싫어하는 편이고 그래서 캠핑도 한 번 가보지 못한 나인데, 그날의 곤충 소리는 풍경의 일부이며 동시에 전체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것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음이 분명하다.

변지영의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는 그날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읽었던 책이다. 나를 조금 더 나로서 바라볼 수 있도록 끌어주는 책이다. 심리서이긴 한데 심리 상담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맞는 것 같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단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면 이 책은 단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적인 시선에서의 불순물들을 적절히 걸러내준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 또 얼마나 편안한 일인가.

오후 세시에 입실해 다음 날 오전 열한시에 퇴실하기까지 바다 풍경에 취해있었고 잠시간 수영을 했고 허기가 지면 간단한 음식들로 배를 채웠다. 이외의 모든 시간은 파도 소리, 빗소리,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소리를 들으며 이 책을 읽었다. 만 하루도 안 되는 짧은 휴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밀린 업무를 체크하고 여느 날과 다름없는 저녁식사와 독서를 마치고 침대에 올랐다. 모든 것이 오차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좀 더 편안한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유일하게 어제와 다른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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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이도 준 『루스벨트 게임』 : 인풀루엔셜 | 원숭이의 서재 2020-07-0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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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루스벨트 게임

이케이도 준 저/이선희 역
인플루엔셜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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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8. 이케이도 준 『루스벨트 게임』 : 인풀루엔셜

흔히 장르소설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들은 적어도 이케이도 준의 소설에선 만나볼 수 없다. 소거법을 통해 소설의 끝자락에 “범인은 바로 너!”라고 외치며 추리의 쾌감을 부여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지도 못한 기가 막힌 반전으로 독자를 혼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 흔한 폭력의 카타르시스조차 제거된 그의 소설은 대체 어떤 매력으로 수백만 독자를 사로잡았을까. 

현대의 장르소설을 쉽게 풀어가기 위해 기필코 빠져서는 안 될 요소와 소재 같은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스릴, 미스터리, 추리, 액션 같은 장르적 요소나, 범죄, 사랑, 전쟁 같은 소재를 적절한 인물과 배경, 사건들로 버무리면 그럴싸한 장르소설이 탄생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요인들 때문에 웬만한 장르소설은 잘 쓰고도 평이한 작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케이도 준의 소설은 대체로 그가 금융업계에 종사하던 당시의 경험과 기억들에서 파생된 시나리오다. 6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기존의 장르소설을 탈피하여 뻔한 요소나 소재들에서 벗어난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가 부패한 기업과 금융업계의 실태를 고발하고 덫에 빠진 한자와가 정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루었다면, 이번 『루스벨트 게임』은 세계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로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 아오시마제작소와 아오시마제작소 소속 사회인 야구팀이 회사와 야구팀을 구하기 위해 펼치는 처절한 몸부림을 그리고 있다.

전작 『한자와 나오키』에서 그랬듯 이번 소설에서도 이케이도 준의 인물 설정과 묘사는 빛을 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위치(직책 또는 직급)에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고민을 안고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숫자와 윤리 사이의 고민이 있을 것이고, 야구팀의 입장에서는 해체되지 않기 위한 방안에 고민이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루스벨트 게임』은 어느 한쪽의 고민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대신, 양측의 고민을 모두 감싸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양면성 덕분인지 어떤 인물이라도 감정을 이입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입체적인 인물 묘사는 특히 이케이도 준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인물에 애착이 갈 만큼 인물 묘사가 탁월하다. 각 인물들이 서로의 위치에서 느꼈을 절박함과 그럼에도 입장 차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은 폭력의 카타르시스가 제거되었음에도 이 소설을 읽으며 쉼 없이 긴장하게 도와주는 주요 장치로 활용된다.

한때 잘나가던 기업 아오시마제작소가 세계 경기 여파로 인해 사회의 밑바닥을 내려다보고 다시 부상하는 이 소설은 곤두박질칠 때의 속도와 그로 인한 갈등의 정도 조절, 그리고 부상할 때의 느린 속도와 무게감으로 힘든 상황에서 오는 고난과 역경을 템포의 조절을 통해 극대화한다. 묵직한 ‘기승’과는 다르게 3쾌(유쾌, 상쾌, 통쾌)를 모두 보여준 ‘전결’은 이케이도 준이 작가로서 얼마나 호흡과 완급의 조절을 잘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소재의 특별함이나 시나리오가 대단한 것도 아닌데 독자들이 이케이도 준의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를 나는 ‘당연함의 감동’에서 찾는다. 각자도생 사회가 낳은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는 법을 강화 시키는 대신 사회윤리를 잊게 한다. 우리가 원래 지키던 것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행하던 것들, 정의, 윤리, 도덕 같은 것들이 도려내어진 현 사회에서 이케이도 준은 당연한 것들을 행하며 얻어지는 감동을 독자에게 전한다.

야구의 룰도 모르는 사람이라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설에 적응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야구를 알면 더 좋겠지만, 야구를 몰라도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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