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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레몬] | 원숭이의 서재 2019-06-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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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레몬

권여선 저
창비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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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 고난이란 지위여하,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삶의 진통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 다언의 그것에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진통은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 . . . 이라는 구호 외침과 다섯 번의 박수소리가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던 2002 도심 공원의 둔치에서 싸늘히 식어버린 발견된 언니 해언의 시신으로부터 시작된다. ‘둔기로 인한 두부 손상열아홉 해언의 삶에 종지부를 찍은 마지막 문장은 국과수에서 보고한 사인이었다. 문예창작반 활동을 하며 유난히 시를 좋아했던 다언에겐 어쩐지 낯선 문장이었다.


빼어난 미모로 학교 안팎에서 관심받던 해언의 죽음은 주변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해언과 마지막으로 동행했다고 추정되는 학우 신정준은 세력가의 자제로 학교 내에서도 꽤나 인기 있는 인물이다. 그와 반대로 구겨 신은 운동화를 질질 끌며, 한쪽 다리는 저는 것도 같고, 어눌한 말투보다 어눌한 얼굴 때문일지 학교 왕따 자리를 맡아논 한만우는 해언이 죽기 직전 신정준의 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용의선상에 올랐던 신정준과 한만우는 그럭저럭한 알리바이로 풀려나고 해언의 사건은 미해결로 종결된다.


년이 지난 어느 상희는 우연히 다언을 마주친다. 물론 다언이상희 언니!’라고 알은 채를 하기 전까지 상희는 이름을 잊고 살았고, 오랜만에 마주친 다언을 어색해 했던 이유가 단지 해언의 사건 이후 다언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거나 혹은 이후로도 세월이란 단어를 붙일 만큼 시간 동안 소식 듣지 못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변한 그녀는 옛날 문예창작반에서 시를 좋아하던 단짝 다언이 아니었다. 눈빛이, 말투가, 몸짓이, 하물며 성형으로 가능할까 싶을 만큼 죽은 해언과 닮아있는 외모마저도 상희를 당황케 했다.


권여선 작가의 신작 『레몬』은 죽은 자나 죽인 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죄와 징벌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 권여선은 삶의 진통도 죄에 대한 징벌도 각자의 몫으로 남겼다.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고난이 없고, 진통도 없었다. 때문에 남은 자들의 진통은 배가 된지도 모른다.


상희와 만난 다언은 학창시절 상희가 <레몬과자를 파는 베티 > 떠올린다. 언니 해언이 죽던 입었던, 마치 레몬 같았던 노란색 원피스, 다언이 끝끝내 복수를 다짐하며 발을 들였던 한만수의 집에서 먹던 반숙 달걀의 노란빛, 그리고 상희의 시에서 떠올렸던 레몬의 노란빛. 그러니까 복수에도 색이 있다면, 다언에게 그것은 레몬 노랑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목적 없는 삶을 살았던 언니 해언을 잃은 다언만이 아니었다. 이상 시를 없었던 상희가 그랬고, 뼈에도 암이 생긴다며 다리를 잘라야 했던 한만우가 그랬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득달같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신정준은 물론이고 목격 당시 한만우의 배달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해언을 목격한 이제는 신정준의 아내가 윤태림이 그랬다. 그들 모두가 잃은 양이었고 작가가 만든 덫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신, 그들은 스스로의 몫만큼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소설의 중간쯤 다언이 범인도 모른 복수를 결심하고 한만우의 집에 발을 들이는 장면이 있다. 그곳에서 다언은 한만우 그리고 그의 여동생과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대화를 나눈다. 짓눌린 분위기, 습한 공기, 무겁지만 나름 뭉클했던 당시의 상황 묘사는 권여선의 신작 『레몬』에서뿐만 아니라 최근 읽었던 많은 소설들을 포함해서도 최고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사람이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파괴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스로의 삶이 아주 조금씩, 알게 모르게 파괴되어 가는 이야기는 결국 피해자와 피의자를 나누는 대신 먼저 떠나버린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프레임을 확장한다. 또한 개개인의 이야기로 프레임을 축소하기를 반복하는 한편, 작가 권여선은 최악의 상황이 자아낸 현실의 실체를 끄집어내며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아프기를, 조금 견딜 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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