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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작가 강연회]자기만의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바친다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 기본 카테고리 2010-11-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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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현장 취재
살다보면 한번쯤은 찾아온다는 고비의 순간,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어 좌절감이 생길 때면 떠오르는 곳.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찾아, 혹은 그 좌절감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다녀왔다는 바로 그곳, 산티아고의 길(camino de santiago)을 가슴에 노란 화살이 박히던 그날, 유언장을 쓰고 말없이 떠나 끝없이 걷고 온 작가가 있다. 바로 서영은 선생이다. 2008년, 선생의 나이 66세였을 때의 일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건졌다는 생애 가장 뜨겁고 성스러운 이야기를 실어 책을 펴냈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산티아고의 길을 걸으면서 처음부터 마음에 담아둔 제목이었다. 산티아고 길 곳곳에 보일 듯 안 보일 듯 숨어있는 그 ‘노란 화살표’가 어떻게 선생의 마음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점점 더워지는 날씨로 지쳐가던 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독도서관에서 있었던 서영은 선생의 강연은 그 어느 때보다 꽉 들어찬 독자들로 붐볐다. 문득 다들 나름대로 힘든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선생의 책을 읽으면 누구나 위로를 받아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조금 늦게 도착한 서영은 선생은 숨을 돌릴 시간도 없이 단상에 올라 숨찬 목소리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 시간에 해주고자 했던 강연의 내용은 선생이 그동안 지나온 인생의 갈림길, 혹은 고비에 나타난 ‘산티아고’들에 관한 것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나 글을 읽는 독자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인생의 ‘산티아고’들이다. 솔직담백한 선생의 경험담이 소설 속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졌고, 선생은 자신의 경험담이 각자의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를 출간하고 산티아고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가지 않던 길을 어떻게든 더듬어 찾다가 어느 날 문득 ‘정말 떠나는구나!’ 느낄 때가 있다. 여러분도 이 자리에 강연을 들으러 오기까지 아마 마음에 참고 있던 ‘산티아고’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분에겐 며칠 후에 떠날 길이고, 어떤 분에겐 내년 혹은 몇 달 후에 떠날 길일 수도 있다. 또 누구나 한번쯤은 인생길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며 설마 ‘내’ 삶이 이렇게 끝날 것인가, 하는 심정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산티아고’는 스페인 서쪽의 어느 도시가 아니라 여러분들에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싶다는 욕망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산티아고 길을 걷기까지 그 이전에 가지 않았던 수많은 길을 걸어왔지만 방황하고 허무해하거나 부질없음을 모두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과 인생의 마지막 어떤 희망을 기어이 찾겠다는 욕망 하나로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각자의 ‘산티아고’ 길을 찾아가는 데 내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나의 ‘산티아고’에 대해 말해주려 한다.”


내 인생 첫 번째 ‘산티아고’의 길

19살 때 사범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형편이 어려웠기에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길을 생각할 수도 없는 당연한 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와 동생, 선생까지 셋을 거느리고 살아가기에 혼자된 엄마로선 현실적으로 너무나 힘든 삶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될 수 있는 일은 가족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가르치는 일이 싫었단다. 개인적인 상황도 싫었고 사범학교라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들이 선생을 옥죄어왔다. 하지만 가지 않았다. 누구나 붙는 임용고시에 일부러 떨어진 것이다. 그때 나타났던 거부의 마음이 선생 앞에 나타난 최초의 ‘산티아고’라고 했다.

“누구나 받는 교사 발령을 유일하게 받지 못한 사람이 되고 가족을 곤경에 빠뜨렸다. 속으론 시험에 떨어지고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상황이 시원했지만 다른 동창들이 임용되고 월급을 받아 부모님에게 빨간 내의를 사다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만 이상한 아이가 되었고 그건 내가 마땅히 부러워해야 할 일로 치부했었다.”

교사가 되지 못한 선생은 가족들과 서울로 이사를 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일협정 데모가 일어나 학교 수업은 연일 휴강이었다. 직장에라도 나가야 했다. 그때 간신히 얻은 일이 수도국의 타이피스트였다. 선생은 타이피스트가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전에 임용고시 실기 시험에서 파트너였던 선배가 교사가 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춤을 췄듯이, 처음 보는 수도국의 과장 앞에서 열심히 타이핑을 했다. 생각해보면 온통 오타투성이었지만 그 자세가 진지했는지 합격을 했고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월급을 받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독립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게 가족을 두고 세상 속으로 혼자 걸어 간 것이다.

마침내 어머니는 체념하셨고, 그것이 미안해진 나는 스스로 꿍꿍이속을 열어 보였다. “엄마, 나는 작가가 될 거예요.” 사실 나는 그때까지 책 읽고 뭔가를 끼적거리는 것이 좋았을 뿐이지, 꼭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말함으로써, 불확실하던 나의 미래엔 하나의 이정표가 꽂히게 되었다.(『일곱 빛깔의 위안』 중에서)

혼자 살게 되면서 선생은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직접 연탄불을 갈고 밥을 해 먹으며 출퇴근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만원 버스에 시달리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집에 오면 자신을 찾았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선생에게 ‘산티아고’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던 거다.

선생은 그 후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계>에 작품 응모를 하였고 단편 「교橋」가 당선되어 작가로 등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두고 카프카의 작품을 닮았다고 했단다. 세계적인 대작가들의 책을 읽는 것이 작가수업의 모두였던 선생으로선 당연한 결과였다.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의 단절을 보여주는 카프카의 『변신』에 빠져들면서 그 문제를 파고 들어가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나온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찾아온 ‘산티아고’

스무 살, ‘산티아고’에 가까이 갔지만 여전히 선생의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 등단은 했지만 원고를 실어줄 만한 잡지가 그 당시엔 많지 않았다.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 타이피스트를 그만두고 ‘한국문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국문학’에서의 일은 선생이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는 일터로 들어온 것이며 다른 작가들을 만나게 되는 ‘문학적인 환경’으로 들어오게 된 일이다. 그렇지만 그 또한 2년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재정적인 압박이 심한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몇 달 후 이번엔 ‘문학사상사’에 취직을 했다. 그곳은 선생에게 현실적 입지를 강화해준 직장이었는데 그곳에서 3년여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럴싸한 성공의 자리에 와 있다고 착각하며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50~60명의 필자들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리였고 그런 만큼 우쭐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작가에겐 ‘독’이 잵는 자리였다. 그걸 느끼게 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잡지가 나오기로 한 날이었다. 발행일에 책이 나오지 않자 주간에게 불려가 혼이 난 것이다.

일을 마쳤다는 홀가분함도 없이 사무실을 나와, 땅거미 지는 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바쁘게 오가는 행인들을 바라보노라니, 잡지 <Q>와 25일이란 날짜에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이 몹시 우스꽝스러워졌다. 그들은 내 어깨를 스쳐 가면 반문하는 것 같았다. “잡지 <Q>라구요? 그게 뭐죠?” 또는 “잡지 <Q>가 25일에 나오든 30일에 ?오든, 또는 아주 안 나오든,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다구요.” 그러고 보니, 일을 그만두면 잡지 <Q>의 일은 나의 삶에서도 그 의미가 반감되거나 잊혀질 그 무엇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와 동시에 내 마음은 내 존재와 더불어 시작된 어떤 본연의 두려움 없고 흔들림 없는 중심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일곱 빛깔의 위안』 중에서)

이 과정 역시 선생의 머릿속에서는 어떤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그 길의 윤곽이 좀 더 뚜렷해진 또 다른 ‘산티아고’였다. 그때 직장을 그만둔 선생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히스테릭하고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건강을 찾아야했다. 또 자신을 찾기 위해 걸어야 했다.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집을 나섰다 한 걸음 걷고 나서, 쉬고, 하는 식으로 우면산까지 갔다. 그날 이후 매일 산행과 명상을 지속했다. 그러는 사이 건강이 서서히 회복되었고, 피폐해진 몸에 다시 맑은 기운이 되돌아왔다. 정신도 ‘가장 세련된 수준으로 조율된 의식’(수전 손택) 상태가 되었다. 나는 글쓰기에 몰두했다. <황금깃털> <산행> <먼 그대> 등의 작품이 이 무렵에 쓰였다.(『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중에서)

그리고 그해 10월, 선생은 단편 「먼 그대」로 ‘1983년 이상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청탁과 인터뷰들이 물 밀듯 들어왔다가 나갔다. 마음은 지치고 힘들었다. 그동안 글 쓰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들어오는 청탁의 원고들은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작가로 인정받는 것은 좋았지만 7~8군데에서 원고 청탁을 받고도 2~3개의 글을 고작 써낼 뿐이었다. 어느 날, ‘이게 무슨 작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선생의 마음에 가지 않을 수 없는 그 길이 또 한 번 찾아오게 되었다. 선생은 그 이후 청탁을 받기보다는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문예잡지 특성상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하게 그 많던 원고 청탁이 줄어들었고 내부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성공의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걸 버린 셈이다. 선생의 마음에는 소신대로 하겠다는 신념이 강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이라크 대사의 초청으로 바빌론 축제에 초대받아 바그다드로 떠나게 되었다.

작품 중에 「사막을 건너는 법」이 있다. 실제로 사막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마치 다녀온 사람처럼 작품을 썼다. 한데 그 이미지를 형상화한 곳에 직접 가게 된 것이다. 아득하기만 한 지평선이 수평선처럼 휘어져 있는 사막에서 선생은 이대로 실종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단다. 덥고 무시무시한 황무지였지만 어떤 극한적 상황 속에서 오히려 생명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바그다드가 이름만 바그다드이지 사실은 또 다른 ‘산티아고’였던 것 같다고 했다.

“그 여행을 시작으로 한 달이 멀다하고 해외로 나갔다. 세상을 발로 겪고 보니 그동안 대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았던 인생의 허무와 한계, 부질없음과 같은 삶의 깊이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작가라는 이름은 얻었으나 국경을 하나 넘으면 그 유명세는 사라지고 무력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골목을 걸으면서 자기 존재의 자리가 이전의 명성과 실제의 삶하고 전혀 닿지 않으며 도움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연약한 존재로서 먼지 같을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또 간판에 쓰인 글자를 읽지 못해 유명한 곳을 모르고 지나쳐도 그저 산이구나, 이건 강이네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다니다 보니 세상에 대해 겁이 없어지고 평소에 닫혀 있던 고정관념들이 무너졌단다. 그런 경험을 작품으로 썼으면 좋았을 텐데, 선생에겐 또 한 차례의 현실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생기고 만다. 바로 결혼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산티아고의 길(camino de santiago)

결혼 생활은 선생이 피해갈 수 없는 길이었지만 김동리 선생이 떠나고 시간이 많이 흐른 후 현실적으로 안정을 찾았다.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고 결국 선생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에도 나오듯이 ‘산티아고’로 떠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떠난 여행,

산티아고는 길이고 숲이고, 낙엽이며 바람이다. 걷기는 자연과 대지의 신비를 탐색하는 모노드라마이다. 그 드라마는 수고와 기쁨의 양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리가 수고하면 가슴에는 기쁨이란 이슬이 맺힌다. (…) 길을 걷다보면 한 걸음 이전과 한 걸음 이후가 변화 그 자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중에서)

산티아고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관련한 책을 읽지도 않았고 방송을 본 적이 없었다. 죽을 만큼 고독하다는 것 외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혼자 알아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떠나는 날이 가까워져 짐을 꾸리면서 그동안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에 얽매어 살아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최대한 가벼운 배낭을 들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매번 무거웠다. 선생은 문득 세상을 살면서 버리지 못하는 짐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게 되었단다. 이 정도의 짐조차도 버리지 못해 정리조차 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수많은 관계들 자체가 짐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짐은 나 자신을 위해 가볍게 하되, 다른 사람의 짐까지 질 자리를 비워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똑같은 사물이지만 양면성을 가지게 되면 그 양면성 자체를 보듬어야 한다. 이것이 옳다거나 저것이 옳다고 정의 내리며 한쪽을 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명징하게 깨달았다고 했다.

우리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짐을 싸서 방안에서 걸으니 너무 무거웠다. 무거울 때마다 하나씩 짐을 뺐다. 그러다 보니 짐이 무거워진 것이 짐 자체가 무거워서가 아니라 어딜 떠나면서도 남을 의식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 길을 갈 때 정말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 인간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하게 되면서 짐을 꾸리니 너무나 간단해졌다. 그 짐 한 덩어리는 밖에 나두고 거지가 뒤져도 가져갈 게 없을 정도로 꾸려졌다. 그런 상태에서 유언을 쓰게 되었다.(『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중에서)


그렇게 떠난 산티아고의 길에서 가장 힘든 일은 동행과의 생각의 차이였다. 선생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에서 꽤나 리얼하게 동행과의 생각 차이에 대해 적었다.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나도 귀국 후 그분과의 사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질문을 하기도 했었다) 대부분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적은 이유는 동행을 통해 선생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란다. 유언장까지 쓰면서 길을 떠난 이유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이며 만나지 못할 때는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까지 가지고 떠난 길이었다. 그런 절박한 이유를 가지고 떠난 여행인데 동행이 가진 속세에서 버리지 못한 현실들이 발목을 잡았다. 수박처럼 자신을 깨부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의 차이가 선생은 동행에게, 동행은 선생에게 폭력이 될 수밖에 없었단다.

참는 것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몇 번 겪다보니 편안해졌다. 육체의 힘든 상황조차도 의지할 것은 자신의 몸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격이 다른 동행과의 문제는 해답을 찾으면서 길을 걸었다. 스스로 격려하고 그 짐을 지고 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들, 처음엔 힘들었지만 그걸 통해 대지가 말을 걸어오고 숲과 바람, 나무들이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아, 이런 것만으로 행복한데 왜 자꾸만 나를 덮고 삶의 뼈저림을 보이면서 살았나’ 생각했다. 섭리 속에 안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단다.

산티아고는 그렇게 선생의 삶을 바꿔 놓았다. 자신을 옭아매고 고통을 주었던 온갖 인연?을 떠올리며 마음의 짐을 벗어버렸다. 믿음과 사랑, 섭리 안에 들어 있는 우주의 절대 질서를 알게 된 것이다.

한 시간이 넘는 강연이었기에 지칠 법도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의 목소리는 커졌다. 열정적인 강연이었다. 선생의 인생에서 어떤 변화들이 선생을 산티아고로 점점 다가가게 하고 결국 다녀오게 했는지, 그 이후의 삶이 또 얼마나 변했는지 알고도 남음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강연 마무리에 이날 이 자리에 모인 독자들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혹은 머뭇거리다가 일 년 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꼭 산티아고를 찾아 떠나길 고대한다며 선생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는 말로 강연을 끝냈다. 선생 덕분에 나도 점점 다가오는 산티아고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은 나도 떠나게 될 것이라 자신감과 함께.

인생의 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것이 태반이다. 짐을 지는 것으로 사랑이 가늠되기도 한다. 아무 짐도 지지 않는다는 것은 타인에 대해 의무도 책임도 안 지려는 태도이다. 때문에, 짐을 무조건 가볍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것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일 뿐, 무거운 짐을 질 수 있는 영육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짐을 벗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다.(『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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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몽환적이 그리고 사람냄새 나는 볼리비아 여행 | My Favorites 2009-10-0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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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온다.

우리의 상상속에 튜브, 바다, 계곡, 비키니 입은 아름다운 여자, 멋진 근육을 가진 멋있는 남자
이렇게 스치고 지나가는 경쾌한 단어는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설레임이다.

최근 불경기로 해외여행을 가기 힘든 사람들은 그냥 여행 다큐멘터리나 책으로 마음을 달래야 한다.
언젠가는 한번 가보리라 생각한 나의 로망을 잠재울 수 없다면 우리는 예측한대로 짐을 싸고 훌쩍 떠나야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 중국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나라이다. 과거 2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보자. 일본이라는 나라를 중국이라는 나라를 혼자 가방메고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대항해시대를 거쳐 인류가 세계 곳곳으로 식민지 만들기 경쟁을 하면서 피비릿내 나는 원주민의 살상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원래 주인 잉카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현재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곳으로 떠난 테오의 여행은 꿈속같은 길을 지나 2년동안의 속풀이를 했다.



책을 읽으며 그들을 가까이 만나 그들의 살냄새와 마을 냄새를 맡았다.

남미의 작은 나라 볼리비아
일본이나 중국, 미국 등을 방문한 사람은 많겠지만 이곳 남미의 볼리비아를 다녀온 여행자가는 많지 않다. 원시적인 자연과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남미의 볼리비아를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저자는 에세이스트 테오.
그는 무엇을 찾기 위해 볼리비아로 떠났을까? 아마 이질적인 동양의 문명을 벗어나 색다른, 그리고 아직 신비스런 잉카문명의 후예들을 만나고 인간사는 냄새를 맡고 싶어서 떠난 건 아닌지.
인간들의 살냄새와 현실과 다른 세상에서 처음 느끼는 공기냄새를 맡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소금바다에 도착했을 때 덩어리진 회한들을 볼리비아의 땅과 바람에 흩어 버렸다.




남미의 아름다운 나라 볼리비아를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감상할 수 있다.
<당신의 소금사막에 비가 내리면> 이 책은 고즈넉한 잉카문명의 후예들의 마음도 함께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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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느 날 도시의 공기가 무거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보바리 부인』 | My Favorites 2009-06-24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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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정혜윤 PD의 어느 날 …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발터 벤야민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고 무척 반가웠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내 아이는 자기가 얼마나 믿음직한지를 알게 된다. 그는 믿음직한 지배자로서 그에게 속한 세계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 아이가 타고 있는 동물은 주인에게 헌신적이다. (…) 만물의 영겁회귀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이의 지혜가 되었다. 그리고 삶이란 지배에 대한 태곳적으로부터의 도취로, 중심에는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리온이 왕실 보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의 속도가 느려지면 공간들이 떠듬 떠듬거리며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무들은 감각을 되찾기 시작한다. 회전목마는 불안정한 땅이 된다.
- 발터 벤야민, 『베를린의 어린 시절』 중 「회전목마」

어느 해 우리 마을 장터에 간이 회전목마가 세워졌다. 한쪽 팔이 빠진, 심청이란 이름을 가진 바비 인형을 안고 있던 나는 참새와 메추라기 구이, 번데기 냄비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설탕, 생강, 오징어 냄새와 함께 하늘로 치솟아 오르던 그 밤에, 앙증맞은 꼬마전구들 불빛 너머로 회전목마의 유혹적인 음악 소리를 처음 들었다. 그것은 금속성의 찌그러진 음악이었지만 명백히 축제로 초대하는 음악이었다. 멋진 갈기를 가진 흰색 말들과 이국의 공주와 왕자들이나 타봄직한 황금마차, 보라색과 초록색 줄무늬로 휘감긴 기둥, 풍성한 술이 달린 안장들, 그것은 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도회적이고 사치스럽고 화려한 바로크와 로코코의 풍경이었다. 나는 그 밤에 회전목마를 타고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게 운명인 (즉 영겁 회귀가 지혜인) 모험을 즐기고 또 즐겼다. 최초의 흥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팔을 올리는 동작이나 몸을 뒤로 젖히는 동작을 바꾸는 등 몇 가지 사소한 변화를 줘야했다.

몇 년 전 고향에 가서 다시 그 장터에 가봤더니 이젠 간이 회전목마 대신 간이 바이킹 한 척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녹음된 바람 소리와 비명 소리를 쏟아내고 있었다. 환각과 과장에 있어서는 나에게는 늘 회전목마가 최고였다. 그 밤 장터의 회전목마에서 상기된 얼굴로 내려서는 내 코를 동동주와 해물파전, 도토리묵과 들기름의 냄새, 어떤 취객의 트림 냄새가 건드렸고,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어색해진 나는 멍하니 잠시 서 있었다. 어쩌면 그 냄새들은 과장과 거짓이 없으면 현실은 이토록 빈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려고 트럭 엔진 냄새와 함께 밤바람에 실려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끝나가는 장터 바닥에 아이스크림 막대기와 쓰레기와 신문지가 날리고 회전목마의 주인은 딸랑딸랑 동전을 세고 있었다. 도취와 공허 사이의 거리는 어린 마음에도 그토록 가까웠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가, 아서왕와 렌슬롯과 귀네비어 왕비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가, 닥터 지바고와 라라가, 차타레 부인과 산지기 맬더즈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가, 슈렉과 피오나 공주가 스타일리쉬하게 자기 삶을 개척하고 강해져 전설이 되는 숱한 시간들 속에, 프랑스 루앙 근처 시골 마을 용빌의 의사 부인인 엠마 보바리는 회전목마 위의 소녀처럼 오로지 자기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그녀는 어느 마을에나 하나 있기 마련인, 그저 그런 스캔들의 예쁘장한 여주인공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다 잊혀질 수도 있는 운명이었는데 묘하게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 환각 속 전설의 여주인공이 되었다.

그녀는 거짓말쟁이였지만 사랑의 환상에 관한 한 그녀만큼 가식 없이 투명한 사람이 없었으며, 그녀는 성에 탐닉했지만 영혼에 관한 한 그녀만큼 어린아이 같은 여자도 없었다. 그녀는 육체적 황홀경과 쾌감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의 형이상학에 대해선 손톱만큼도 몰랐다. 그녀는 은세공업자처럼 자기 몸을 다듬고 멋을 부릴 줄 알았지뢸 정신에 있어서는 어떤 기교도 부릴지 몰랐다. 그녀는 여러모로 ‘참한 정부’의 대표 주자였다. 백치미가 제일 좋다는 능글맞은 남자들이나 이기적인 남자들이 성적 판타지로 삼을 만한 순진무구한 관능의 여자였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다른 면도 있다. 이를테면 우리 성숙한 여인들에게 이 지상에는 더 이상 사랑할 변변한 남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고, 활활 타오르는 마음을 바칠 마땅한 대상이 없이 희망 없이 늙어갈 거란 예감만큼 불길한 것도 없다. 이런 여인들의 대표 주자도 바로 엠마다. 그녀에게는 한 남자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사랑은 사랑 이상이었다.

그녀는 회개 후 종교에 진심으로 귀의한 적이 없고, 회개 후 남편이나 자녀 교육에 헌신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거의 모든 종류의 시시한 유혹이나 충동에도 손쉽게 무너졌지만 그녀의 남자들이 지리멸렬한 회개와 얕고 상투적인 타협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동안, 엠마 혼자 고집스럽게 끝까지 정신 차리지 않았고, 어리석게 몰락해 갔다. 오늘날의 머리 회전 빠른 나르시시스트 여성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자멸적인 행동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매력은 또렷하다. 나에게는 언제나 비타협에 대한 애호가 있지만 내가 엠마를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다. 그녀의 일상은 너무나 지루했지만 그녀의 인생은 거대한 열정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는 도발적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의사의 아내인 그녀는 차갑게 식어빠진 여자가 아니었다. 예법과 의무와 사람들의 시선에 질식해 ‘여자의 일생이란 그런 거예요.’ ‘세상에 별 남자 있나요?’라고 말하며 심술궂게 나이 들어가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생생했던 것은 현실이 아니라 언제나 ‘욕망’이었다. 욕망 때문에 그녀의 육체는 시간이 흐를수록 에로틱하게 착색되었다. 욕망 때문에 그녀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불안정한 신비를 갖게 되었다. 환각과 과장으로 범벅된 욕망 때문에 그녀는 어리석었지만 동시에 빛났다.

엠마는 어느 날 무엇엔가 눈을 뜬 여자다. 농장을 운영하는 루오 영감의 딸인 엠마는 열세 살에 수녀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시골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전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파란만장한 이야기에 마음이 쏠렸다. 그녀의 기질은 예술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인 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녀는 사소한 풍경을 보더라도 뭉클한 감동을 받고 싶어 했다. 그녀가 공부하던 수녀원에는 속옷이나 시트를 빨아 주러 오는 노처녀가 있었는데, 몰락한 대귀족의 후예인 그녀는 지난 세기의 사랑 노래 몇 가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치마의 호주머니에 소설책을 숨겨 가지고 와 학생들에게 빌려 주곤 했다. 소설의 내용은 ‘한결같이 사랑, 사랑하는 남녀, 쓸쓸한 정자에서 박해받는 귀부인, 역참마다 살해당하는 마부들, 페이지마다 지쳐 쓰러지는 말들, 어두운 숲, 마음의 혼란, 맹세, 흐느낌, 눈물과 키스, 달빛 속에 떠 있는 조각배, 숲 속의 밤꾀꼬리, 사자처럼 용맹하고 어린 양처럼 부드럽고 더할 수 없는 미덕의 소유자로서 언제나 말쑥하게 차려입고 물동이처럼 눈물을 펑펑 쏟는 신사들뿐’이었다.

엠마는 열다섯에 처음 그런 소설에 입문한 뒤로 줄곧 해묵은 장원에서 긴 드레스를 입은 성주 마님처럼 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홍예문의 클로버 무늬 장식 밑에서 돌 위에 팔을 기대고 턱을 두 손으로 괸 채 들판 저 끝에서 흰 깃털로 장식한 기사가 검정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세월을 보내고 싶어 했다. 그녀는 밤마다 수도원의 침실에서 아름다운 비단 표지로 장식된 책을 읽었다. 삽화를 보호하는 얇은 종이를 입김으로 호호 불면 그 안에는 고지식한 귀부인들이 뺨에 눈물을 한 방울 매달고 새장 속의 산비둘기에 키스하는 그림, 무희의 팔에 안긴 술탄이 누워 있는 그림들이 신성하게 드러났고 그런 밤에 한길을 달리는 늦은 마차의 바퀴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곤 했다.

수도원의 계율이 짜증스러워질 무렵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농장에서 인생에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것도, 느낄 것도 없다는 환멸감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때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치료하러 의사 샤를르 보바리가 찾아온다. 그녀는 그를 보면서 ‘위대한 연인들의 멋들어진 정열을 드디어 자신도 갖게 되었나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둘은 결혼하게 되는데 남편 샤를르는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했지만 그가 하는 말은 밋밋했고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엠마는 어떠한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낼 수 없었다. 그는 수영도, 검술도, 승마도 할 줄 몰랐고 권총도 쏠 줄 몰랐다. 그는 파리에서 온 배우들을 보러 극장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모름지기 모르는 게 없고 정열과 세련됨, 온갖 새로운 경험과 자극의 세계로 그녀를 인도해 줘야 한다고 믿고 있던 그녀의 눈에 선량하고 성실한 샤를르는 한심할 정도로 둔감한 남자에 불과했다. 이제 그녀의 생활은 무척 단조로워졌다. 권태가 그녀의 마음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수도원의 친구들은 거리의 소음, 극장의 술렁거림, 무도회의 광채를 도시에서 만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그녀가 결혼했을 수도 있는 미남이고 재기발랄했을 수도 있는 미지의 남편 생각에 그녀는 괴로웠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1991)의 한 장면

어느 날 그들 부부는 유명한 후작의 파티에 초청을 받았고 다이아몬드 눈물 같은 샹들리에 아래서 빙글빙글 왈츠를 추던 그 화려한 하룻밤은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그녀는 파리의 지도를 사고 부인용 신문을 정기 구독했다. 여자 가수의 데뷔나 상점의 오픈 소식. 새로운 유행, 솜씨 좋은 의상실의 주소까지 엠마가 모르는 것은 없었다. 파리의 생활만이 인류 전체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길게 끌리는 드레스와 미소 속의 고뇌, 오후 네 시에야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귀부인들의 세계를 동경할수록 그녀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들은 그녀의 마음에서 멀어졌다. 권태로운 풍경, 평범한 이웃, 우매한 대화들.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삶에 재수 없이 걸려든 우연들이었다. 그녀는 죽어버리고 싶기도 했고 파리에서 살고 싶기도 했다. 남편이 유명해져서 신문에 나고 프랑스 전역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남편의 넥타이와 장갑에도 신경을 썼는데 그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길 매일 매일 기다렸고, 아침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놀라곤 했다. 그녀는 후작의 파티에서 봤던 공작부인들을 떠올리며 그녀들이 엠마 자신보다 몸매도 못하고 태도도 천했던 것을 떠올리며 하느님의 불공평함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떠들썩한 생활, 방자한 쾌락은 마땅히 자기 몫이어야 했으니, 이제 그녀는 병을 앓게 되었고 남편 샤를르는 아내의 신경성 질환은 공기를 바꿀 필요가 있단 선배 의사의 말을 듣고 용빌로 이사를 간다. 용빌은 아무것도 볼 것이 없는 도시지만 금발의 애송이 청년 레옹 뒤퓌가 있었다. 그는 용빌에서의 생활이 무척 따분하다고 생각해 엠마를 처음 보던 날 엠마에게 ‘도대체 용빌에는 즐길 만한 일이라곤 없으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들의 대화는 파리의 연극, 소설의 제목, 새로운 춤, 알지 못하는 사교계까지 모든 것에 대해 다 골고루 이어졌고 마침내 그들은 둘이 똑같은 번민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리고 용빌에 올 때 이미 임신 중이었던 엠마는 딸을 낳는다. 레옹과 엠마는 점차 서로 사랑하게 되고, 엠마는 레옹을 사랑하게 되면서 남편에 대해 더 큰 증오심을 품게 된다. 모든 불만을 남편 탓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대체 누구를 위하여 정조를 지키고 있단 말이야? 남편이야말로 온갖 비참의 원인, 사방에서 자신을 옥죄는 가죽 벨트의 가시 바늘 같은 존재 아닌가?’ 언제나 무사태평한 남편이 그녀에게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마다 그녀는 레옹과 함께 어디 먼 곳으로 달아나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엠마는 자기 내부는 이렇게 출렁거리는데 주위의 사물이 한결같이 질서 정연한 게 놀랍기만 했다.

바로 그 무렵 보답 없는 사랑에 지친 레옹은 파리로 떠나고 레옹이 떠난 얼마 뒤 떠들썩한 행사장인 농사 공진회에서 엠마는 놀아볼 만큼 놀아본 남자인 로돌프의 유혹을 받는다. 로돌프는 커다란 우단 저고리, 부드러운 가죽 장화,승마용 말 같은 것을 엠마에게 보여주며 ‘저 여자는 이런 것을 본 적이 없을 거야.’라고 우쭐대는 형의 남자였다. 그런데도 엠마는 눈물에 젖은 채 전율에 몸을 떨며 얼굴을 가리고 그에게 처음으로 몸을 맡기고 난 이후, ‘내게 애인이 생긴 거야, 내게 애인이.’ 이렇게 희열에 가득 차 속으로 외친다. 그리고 그날 밤 엠마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야말로 내가 읽을 때마다 『마담 보바리』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장면 중 하나고 놀라운 관찰자 플로베르에게 경탄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그녀의 눈이 이토록 까맣고 이토록 깊어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마침내 체념해 버렸던 행복을 갖게 된 것이었다. 일상은 저기 아래 처박혀 버린 것이다.

이 문장은 단지 간통의 육체적 짜릿함만을 말해주는 문장이 아니다. 나는 다른 각도로 이 문장을 보고 싶다. 이 문장을 단서로 우리는 욕망의 정체를 추적해 볼 수 있다. 지루한 일상을 가진 사람, 해결될 수 없는 욕구를 가진 사람의 눈동자에 빛을 다시 지펴 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비참하다고 생각해온 사람에게 깊이와 활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똑같은 일상을 사는데 왜 어떤 사람은 특별히 활기 있고 왜 어떤 사람은 늘 맥 빠진 모습일까? 이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중요한 관찰 대상이었다. 나는 발레리가 『춤과 영혼』에서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실수, 겉모습, 마음의 굴절이 비참한 인간들에게 깊이와 활력을 줍니다. 그 관념은 존재하는 것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기운을 불어 넣습니다.” 존재하는 것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 이것이야말로 욕망의 신비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계속계속 욕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인간의 모든 변화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있던 세상이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 그것보다 자극적인 것은 없다. 우리 개인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면 평생 가졌던 욕망과 절망감의 형상화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예감도 든다. 그래서 우리 가여운 인간들의 절망감은 거의 숭고할 지경이다. 불가능했던 모든 것들도 숭고하다.

그런데 지난 시대의 위대하고 고귀한 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있던 엠마가 선택한 남자, 로돌프의 천박함과 시시함은 돈키호테가 못생긴 농사꾼 아낙 둘시네아를 만나기도 전부터 그녀를 아름다움의 화신이자 정말로 사랑하는 연인, 목숨 바쳐 지켜야 할 삶의 목표로 여기고 있는 것만큼이나 사랑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어떤 특정 대상을 원한다는 것은 얼마만큼 진실일까? 사랑하는 한 쌍은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는가? 사랑에 있어서 타인은 얼마만큼 중요한 존재일까? 사랑은 아예 특정 대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일까? 사랑은 단지 자기 욕망의 우연한 투영에 불과한가? 역시 사랑은 운명과 우연이 살살 짓궂은 날개를 펄럭거린 어느 날의 해프닝에 불과한가?

로돌프는 밀애의 약속이 있는 밤마다 커다란 망토를 들고 찾아와 엠마의 전신을 푹 감싸 안고 정원의 어둠 쪽으로 사라져 갔다. 한밤의 정사가 습관이 되어 버렸던 그 무렵만큼 보바리 부인이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는데 쾌락과 환상이 그녀를 바야흐로 탐스러운 한 송이 꽃으로 활짝 만개시켜 놓은 것이다. 그녀는 이제 옷의 주름살 펴는 동작 하나, 다리를 굽혀 앉는 동작 하나에도 야릇한 매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같이 달아나기로 약속한 날 로돌프는 가짜 눈물방울을 찍어 바른 이별의 편지를 보내며 엠마를 배신해 버렸다. 그리고 잠깐 엠마는 종교에 빠지고 자선 활동에도 매달린다.

그녀는 성녀가 되고 싶었다. 그 옛날 그녀가 닮고 싶어 했던 귀부인들도 화려한 긴 옷자락을 끌면서 고독 속으로 물러앉아 상처받은 가슴 속의 눈물들을 그리스도의 발밑에 쏟아놓지 않았던가? 그녀는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스러워했고 또 하나의 공덕을 늘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엠마가 얼마나 초지일관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는지는 이 책 전편에 수시로 나오지만 신앙심에 대한 그녀의 태도, 그리고 얼마 뒤 남편과 함께 오페라를 보러 가서 자신은 일등석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문으로 들어가는 보통 사람들을 보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도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우리의 엠마는 좀처럼 성찰이란 걸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페라를 보러 간 그날 엠마는, 다시 고향에 내려온 레옹을 만나게 된다. 오페라를 본 다음날 엠마와 레옹이 만나는 장면이 바로 세계 문학사상 가장 에로틱한 루앙 노트르담 성당 마차 장면이다. 성당지기가 두 사람을 지겹게 쫓아다니며 성당의 유물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자 사랑의 열병에 들뜬 레옹은 성당에서 도망쳐 나오며 급히 마차를 부른다. 그리고는 성난 목소리로 마부에게 마차를 절대로 멈추지 말고 그저 달리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미 비탄에 젖어 지난날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고통을 과장스럽게 거짓말을 섞어가며 토로했던 그 애달픈,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커플을 실은 마차는 루앙의 거리를 달리고 달린다.

대체 무슨 미치광이 같은 격정에 사로잡혔기에 이 손님들은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채 내처 달리고만 싶어 하는 것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몇 번 멈춰보려고도 했지만 그때마다 등 뒤에서는 어서 가라고 호령하는 성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는 흠뻑 젖은 두 마리의 야윈 말을 한층 거칠게 채찍질하면서 마차가 흔들리든 말든 여기저기 무엇에 걸리든 말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은 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다. 그리하여 선창가의 짐마차나 술통들 사이에서 한길의 수레막이 돌 모퉁이에서 거리의 사람들은 이런 시골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 광경에, 셔터를 내린 마차 한 대가 무덤보다도 문을 단단하게 걸어 닫은 채 흔들거리면서 나타났다간 사라지고 또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는 이 광경에 어리둥절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이 장면ㅡ달리는 마차, 닫힌 문, 욕망에 타오르는 두 남녀, 단조로운 거리, 지켜보는 사람들의 동그랗게 뜬 눈ㅡ이 당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어찌나 충격적으로 자극했던지 그 뒤로 파리에선 보바리 마차란 것이 대유행했다고 한다.

이제 매주 한 번씩 레옹을 만나러 가는 동안 그녀는 용빌에서 루앙으로 가는 길을 끝에서 끝까지 외우게 되었고, 십이만 루앙 시민들의 정념의 열풍이 모조리 다 그녀에게 쏟아져 오는 것 같다고 느꼈고, 그때 노르망디의 해묵은 도시는 마치 바빌론의 도시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큼이나 그녀에게는 뜨겁고 생생했다. 엠마가 새벽 마차를 타고 용빌에서 루앙까지 달리는 장면은 나에게 텅 빈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미감을 제공했다. 도망자의 시선으로 본 거리와 추적자의 시선으로 본 거리가 다르듯이, 미친 듯이 빠져 있는 애인을 만나러 새벽길을 달려가는 여인의 시선으로 본 거리의 미감은 또 다르다. 그 거리는 아주 우아한 날도 있고 아주 거짓인 날도 있을 것이다. 마치 엠마가 매주 찾아들던 여관방의 가구들을 보면서 내 의자, 내 침대, 내 화장대라고 했듯이.

그러나 별 볼일 없는 남자인 레옹과의 연애 역시 환멸을 가져왔다. 도취와 공허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가까워졌다. 그녀는 엷어진 정열을 되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엠마는 더욱 탐욕적이 되어 옷을 거칠게 벗어던졌고 코르셋을 잡아 뜯었고 어느 날에는 옷을 한꺼번에 홀라당 벗어버리기도 했다. 그녀는 레옹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밖에 나다니지 말고 우리 일만 생각하세요. 나만 사랑해줘요!’라고 매달리기도 했다. 그녀가 간통 속에서도 결혼 생활의 진부함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할 무렵 그녀는 파국을 맞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과 자기 사랑에만 집중하느라 주변 세계를 이해하지도, 판단하지도 못했던, 아니 주변 세상에 아예 최소한의 관심도 없었던 그녀는 결국 물질적 쾌락과 정신의 행복을 구분하지 못했고 애인에게 선물을 주고 집안을 치장하고 몸을 가꾸느라 써 버린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리대금업자의 손에 놀아나다가 파국을 맞게 된다. 그 경제적 파국을 안 뒤에 그녀가 전 재산인 오 프랑짜리 금화를 거지에게 던져주면서 그걸 그렇게 던져주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면, 집이 경매당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공증인의 집으로 쫓아가서는, 크리스털로 된 유리문 손잡이나 은으로 된 접시 데우는 기구를 보면서 ‘이런 부엌이 우리 집에도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보면, 지독한 (그래서 진정한)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내면을 절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엠마는 최고의 아름다움과 절정의 어리석음을 함께 보여주는데 그 둘은 같은 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욕망의 열정으로 흥분한 사람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하다.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다. 계산이라곤 없다. 미래도 없다. 결정처럼 순수하다. 구체성도 없다. 그때의 욕망은 차라리 무에 가깝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엠마의 욕망은 늘 환각과 과장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비극은 아주 컸다. 더 이상의 욕망의 추구의 불가능함, 그 자체가 그녀에겐 이미 사형 선고였다. 욕망에 눈멀고 귀 멀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아! 너무나 갖고 싶다.’ 이 문장을 몸으로 아는 사람은 엠마가 자기 욕망에 얼마나 한결같이 윤리적이었는지 알 것이다. 모든 범죄가 자기 윤리를 갖듯이 자신의 손으로 초래한 모든 파멸도 자기 윤리를 갖는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1991)의 한 장면

『마담 보바리』를 읽는 사람들은 그 손으로 만져지는 듯한 심리 묘사에 압도될 텐데, 특히 일상의 지리멸렬함에 관한 플로베르의 묘사는 너무나 예리하다. 그는 세계의 집요한 관찰자였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일상의 진부함을 효과적으로 잘 보여주기 위해서만 그레이하운드 개와 벽지의 무늬와 저녁 식사와 저녁 식사 후의 규칙적인 키스에 대해 나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일상의 진부함의 바닥에까지 내려가 보자고 우리 손을 잡아끈 이유는, 어쩌면 차라리 일상을 단 한 순간도 그 자체로 무한히 참고 눈감고 견뎌 나가야 할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엠마가 죽어버린 후 불쌍한 남편이 보인 애틋하다 못해 처량할 정도의 행동들을 통해 플로베르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엠마 편에도, 샤를르의 편에도 서지 않고 철저하게 가치중립적이었기 때문에 선악을 말하기 위해, 바람피우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이 글을 쓰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샤를르에게 아내가 죽은 후 밝혀진 진실, 즉 아내의 ‘간통’은 잔인했다. 자신은 행복하다고 끝없이 믿었던 남자의 추락은 차라리 행복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쉬운 문제가 아니란 것, 선량함만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세상에서 타인과 무언가를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면 세상은 그토록 황량하다.

『마담 보바리』를 떠올릴 때 약제사 오메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재빠른 타협과 기회 포착과 자기선전으로 결국 레종 드뇌로 훈장을 탄, 그야말로 그 시대의 ‘성공적’인 시민이었다. 그의 성공은 엠마 보바리 사망 이후 특히 두드러진다. 그런데 묘한 것은 ‘철없는 간통녀’ 엠마를 멸시하기는 어려웠어도 ‘성공적이고 명예로운 시민’인 그를 멸시하기는 너무나 쉽다는 점이다. 그 맛은 씁쓸하다. 엠마가 너무나 다채로운 현실과 관계 맺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이었다면 오메는 너무나 다채로운 현실과 부조리하게 만나는 인간이었다.

한때 우리나라를 그 순애보적 사랑으로 강타한 <너는 내 운명>의 모델이 되었던 실제 두 주인공을 한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리포터가 추적해 인터뷰를 했다. 그 둘은 이제 헤어졌다. 남자는 병들고 홀로 고향에 남아있다. 그의 사랑은 아직도 식지 않았고 여자가 돌아오길 원하고 있었다. 도시로 떠난 여자는 그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 답답한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요?” 그 순간 공기가 수상했다. 엠마의 냄새가 났다.

나는 지금도 엠마의 자매들, 엠마의 변종들, 엠마의 모방범, 가짜 엠마들이 우리의 도시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밤마다 본다. 그녀들은 불투명한 저마다의 욕망에 몸부림치며 바싹 긴장한 채 혼란스럽게 대기 중이다. 도시의 공기가 너무나 무겁다. 즐거움, 슬픔, 무서움, 두려움, 떨림, 회한, 불안, 막연한 기대가 그 안에 다 들어가 있다. 그 공기 속으로 우리의 엠마들이 떠올랐다 추락했다를 반복할 것이다. 부디 욕망이 우리들을 굽어 살피사 우리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구원해 주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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