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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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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정아은 단편 연재 『아주 사소한 이야기』. 매주 월/수/금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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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네요~~ 끝까지 잘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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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이야기 마지막회 | [연재] 아주 사소한 이야기 2016-01-2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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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 몇 통과 책 세 권을 아슬아슬하게 들고 한쪽 손으로 백을 더듬어 사무실 열쇠를 찾았다. 어디다 뒀더라. 짐이 많을 때일수록 열쇠는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아직 봄인데도 낮에는 벌써 여름처럼 후덥지근했다. 이마에서 땀이 뚝 떨어져 핸드백 속으로 들어갔다. 유리문 사이로 에어컨이 보였다.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천국처럼 시원해질 것이었다. 가까스로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실내가 후끈했다. 아줌마가 에어컨을 안 틀어놨나. 이 아줌마 요즘 왜 이래. 투덜거리며 방문을 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안녕하세요?”

 낯선 아줌마가 군청색 유니폼을 입고 서 있었다. 칼라가 하얗게 다림질된 새 유니폼이었다.


 “아, 네…….”

 “새로 왔어요. 잘 부탁드릴게요.”


 “아……네…….”

 “여기 청소가 되게 복잡하다면서요? 이런 일 처음 해봐서 잘 몰라요. 가르쳐주면 열심히 할게요. 부탁해요, 아가씨.”


 “저희 아줌마는……이제 안 오시나요?”

 “전에 오시던 분……말씀하시는 거죠? 그분 일주일 전에 그만 뒀다던데요? 이제 여기 청소는 제가 해요.”


 어쩐지, 요즘에 자꾸 다른 층 아줌마들이 청소하러 오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그런데 아줌마가 왜 그만두셨을까, 갑자기? 나는 의아해하며 음료수를 넣으러 냉장고 문을 열었다. 순간 김치 익는 냄새가 확 풍겨왔다. 반사적으로 코를 움켜쥐고 냉장고 문을 닫는데, 그제야 아줌마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맞다! 그때 잘린다 그랬었지! 나는 냉장고 문에 기대선 채 손톱을 물어뜯었다. 다른 곳에 취직이 되셨을까? 나를……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잠깐 동안 아줌마를 생각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재형이네 아파트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책상서랍을 열어 택배 송장철을 뒤적였다. 지난달 재형이 엄마 생신 때 선물을 보내고 받은 송장이 있을 것이었다. 송장은 금세 나오지 않았다. 나는 송장철을 통째로 끄집어냈다. 책상에 탁, 내려놓는 순간 철에서 얇은 송장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찾았다! 나는 송장을 펼쳐 아파트 명을 확인한 뒤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실거래가. 검색어를 쳐 넣자 금세 국토해양부 주소가 떴다. 곧바로 클릭했지만 화면은 금방 넘어가지 않았다. 뭐야. 단말마를 내지르며 다시 마우스를 클릭했다. 화면은 여전히 정지 상태였다. 나는 발로 아래쪽 본체를 차면서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클릭했다. 본체에서 윙, 소리가 났지만 화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뭐야! 나는 소리 지르며 손으로 키보드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 오늘(22일) 자정까지 댓글로 궁금한 점이나 소감평을 남겨 주시면 작가님이 직접 답변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 동안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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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마지막회네요! | 다른 이야기 2016-01-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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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회를 남겨두고 있네요. 처음 연재 시작하던 게 엇그제 같은 데 벌써 해가 넘어가고 마지막회가 다가왔군요. 저는 요즘 도서관에 가서 작업하고 있는데, 아침마다 너무 추워서 갈수록 집에서 나가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얼마나 추운지 난방이 되는 도서관에서도 타자 치는 손끝이 떨리더라고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맹추위...이렇게 추울 때는 전국민이 함께 기합을 받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단체기합을 받을 때 힘들면서도 모두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는 묘한 쾌감(선생님한테 이쁨 받는 애나 안 받는 애나 똑같이!)과 '누가누가 오래 버티나 보자'하는 오기 같은 게 발동했던 기억. 우리 사회가 모든 면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지니까 그나마 곳곳으로 공평하게 스미는 추위가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랄까요...아,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겠군요. 선택받은 소수는 어디 가나 숑숑 히터가 나오니까...겨울을 느끼지 못할 수도...그렇담 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봄은 누구에게나 오니까요. 빈자에게도. 부자에게도.

 

엇그제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정치는, 분배요!"라는 말을 하며 고려의 모든 토지문서를 불사르는 장면을 봤는데요. 그걸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드라마 작가가 이 헐벗은 나라에,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가난해져버린 이 나라에 직격탄을 날리는 듯. 드라마가 끝난 뒤, 정도전이 눈을 부릅뜨고 외쳤던 그 말을 혼자서 중얼거려보았습니다. 정치는 분배요. 정치는 분배요. 그렇게 말만 해봐도 속이 좀 시원해지더라고요. 그렇죠. 그냥 너무 배부른 자의 것을 조금 덜어서 아사 직전인 자에게 분배해주는 거. 그게 정치인데 말이죠.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고려 말과 비교했을 때 더 낫다고 할 수 있을지, 그때의 정도전이나 이성계처럼 분배를 외치며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발언권을 얻고 힘을 얻을 수 있는지,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결국엔 마음이 무거워지고 우울해졌습니다.

 

아, 서설이 길었군요. 내일 마지막회 기념으로, 마지막회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께 답글을 달아드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아주 사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들을 써주셔도 좋고, 저한테 궁금한 점을 써주셔도 좋고, 애인이나 배우자에 대해 푸념을 달아주셔도 좋고^^,  하시는 일이나 생활에 대한 소회를 써주셔도 좋고, 요즘 읽고 계신 책 이야기를 써주셔도 좋고, 뭐든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얘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게시판이 아니고 마지막회 게시판에, 밤 12시 이전 댓글로 하겠습니다^^ 제가 대왕소심인간이라 모든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돌직구로 답변드린다고 장담할 순 없사오나 ㅎㅎ, 최선을 다해 진솔하게 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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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이야기 11회 | [연재] 아주 사소한 이야기 2016-01-20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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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후 에이알에스로 확인해보니 비자발급 확인서가 나와 있었다. 나는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가서 비자발급 확인서를 받은 뒤 고객 불편 신고엽서를 썼다. 엽서를 넣고 돌아서다가, 지난번에 내 휴대전화 번호를 물었던 남자직원과 마주쳤다. 나는 상냥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는 싸늘하게 나를 바라본 뒤 성큼성큼 자리로 돌아가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일 잘 끝났어?”


 건물 밖으로 나오니 재형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따뜻한 봄날,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재형의 걷어올린 와이셔츠 소매가 하얗게 빛났다. 나는 눈부신 듯 손차양을 만들며 나를 쳐다보는 재형에게 활짝 웃어주었다. 재형은 하얗고 둥근 얼굴에 아래로 처진 순한 눈매를 갖고 있다. 내가 ‘끝없이 처진 눈’이라고 놀리곤 하는 그 눈매는 웃을 때 생기는 엄청난 주름들과 함께 재형의 탈바가지 같은 인상을 완성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내 기분 에 따라 선량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하는 다채로운 얼굴이다. 


 “고객 불편 신고 엽서 먹이고 나왔어. 나쁜 자식,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며 앞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찼다. 재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여경아, 진짜……엽서 썼어?”

  “그런 새끼는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돼. 지 월급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그런 수작을 부려?”


 나는 입술을 깨무는 시늉을 하며 재형의 표정을 살폈다. 재형의 표정이 굳어지고 입술이 일그러졌다. 무난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을 타고난 재형은 모나거나 단호한 것에 생래적인 거부반응을 보인다. 


 “우리 밥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어?”


 모난 내 행동에 대해 언급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빤히 아는 재형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의 ‘무조건 회피’ 전법이다. 나는 조금 더 위악을 떨어볼까 하다가 자신을 억눌렀다. 오늘은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빙빙 돌지 말고 얼른 해치우자.


  “밥 말고, 우리 저기 공원에 갈까? 나 할 말 있는데.”


 나는 출입국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공원을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제법 큰 공원이었다. 재형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겁먹은 표정으로 부지런히 나를 따라왔다. 


 “뭔데? 할 말 있다니까 되게 무섭다. 헤어지자거나 뭐 그런 건 아니지? 뭔 일 있는 거면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 여경아, 나 버리지 마라.”


 분수대 앞 벤치에 앉자마자 재형이 두 손을 모으고 싹싹 비는 시늉을 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실은 며칠 전부터 말하려고 했는데 말 못 했어. 꽤 오래 고민하다 얘기하는 거니까 진지하게 들어주면 좋겠다.”

 재형이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재형의 시선을 피해 분수대를 쳐다보았다. 한여름에만 작동되는 한산한 분수대 안에 우유곽과 음료수 병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있잖아…….”

 운을 뗐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데 그렇게 말을 못 해? 그냥 마음 편하게…….”


 “우리 집, 사실은 우리 집 아니야. 전세야.”

 내가 불쑥,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분수대 건너편에서 통화를 하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내밀고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동안 말 안 해서 미안해. 속이려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말할 기회를 놓쳤어. 어쨌든 속인 거나 마찬가지란 거 인정해. 미안하다.”


 국어책을 읽듯 속사포처럼 말했다. 말하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이 문제로 엄청나게 고심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고, 시원해라.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공은 재형에게 넘어갔다. 이 얘길 듣고도 날 계속 사랑하든, 거짓말쟁이라고 차버리든, 난 알 바 아니다. 


 재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발로 벤치 밑의 잔디를 짓이겼다. 이 자식이 왜 대답을 안 하지? 너무 충격을 먹었나? 한동안 기다리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재형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내 얘기 못 들었어?”

 방귀 뀐 놈이 성 낸다고, 내 입에서 과장되게 단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사람이 어렵게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재형은 넋 나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경아, 실은 나도 할 말이 있어.”

 “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너도……할 말이 있다고?


 “실은…….”

 재형은 발을 떨면서 울리지도 않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얼른 말 해. 발 좀 떨지 말고!”

 네가 얘기하는 건 뭐든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겠다는 포근한 반응을 보였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갔다. 재형은 입을 꾹 다물고 더 심하게 발을 떨었다.


 “빨리 말 해. 안 그럼 나 간다!”

 마음과 다르게 자꾸 짜증을 내게 됐다. 대체 뭔데? 뭔데 이렇게 시간을 끄는 거야?


 “실은……나…… A사 정직원 아니야. 계약직이야. 너랑 처음 만났을 땐 정규직으로 발령내주기로 회사랑 약속이 된 상태였어. 그래서 그냥 정직원 아니라고 말 안 한 거야. 어차피 육개월 뒤면 정직원 될 거였으니까. 근데 회사에서 약속을 어기고 소속 회사를 바꿔서 2년 연장 계약을 했어. 진즉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다. 속이려 했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말할 기회를 놓쳤어.”

 국어책을 읽는 것 같은, 속사포가 날아왔다. 하. 나는 입을 벌린 상태로 코웃음을 쳤다. 이건……완전 반전인데? 뭐라고 해야 하지? 그때 재형이 이차로 속사포를 날렸다.


 “또 있어. 우리 엄마, 실은 대학교 교직원이 아니고……학교에서 청소하셔.”

 “뭐?”

 나는 일어서서 재형의 앞에 섰다. 이건 반전이 아니라……코메디 아닌가? 지금 얘가 뭐라고 한 거지?


 “J대학 총무과 직원이……아니셨어?”

 재형은 B대학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A사를 다니고 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 평생 동안 J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해온 성실한 50대 여인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게……아니라고? 그럼 아사히는? 스타벅스 더블샷은? 그 취향도 가짜였나?


 “J대학 다니시는 건 맞는데, 용역업체에서 파견된 미화원이야. 나처럼.”


 재형은 정직원과 파견직 간의 차이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하는 일은 비슷하다, 다만 소속이 다를 뿐이다, 사년 이상 근무하면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고용해주기로 했으니 사실상 정직원이나 다름없다. 엄마도 원래 무역회사 경리였는데 아이엠에프가 터지면서 명예퇴직을 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재형의 입모양을 바라보았다. 아이엠에프, 명예퇴직, 파견직, 정직원, 마찬가지, 잘만 하면……구질구질한 말들이 반복해서 튀어나왔다. 


 “너네 집, 그건 너네 거 맞니?”


 난폭하게 그의 말을 끊고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림의 정중앙에 서 있던 인물 둘이 가상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그 인물들이 서 있던 공간, 즉 마포의 삼십 평짜리 낡은 아파트는 실존할까?


 “그럼. 그건 당연히 우리 집이지.”

 대답하는 속도나 어조로 보아, 그 집은 재형이네 소유가 맞는 것 같았다. 


 “정말?”


 믿을 수가 없다. 그 동안 이 자식이 날 깡그리 속여온 것 아닌가. 저 축 쳐진 눈매를 하고. 죽으면 죽었지 거짓말 같은 건 절대로 못 할 것 같은 저 착한 눈매를 하고.


 “야. 너 나 그렇게 못 믿어?”


 나는 얼굴을 들이밀고 재형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 사람, 누구지? 갑자기 재형의 얼굴이 낯설어보였다. 나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축 쳐진 눈매 속에 들어 있는 재형의 검은 눈동자에서 간교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착한 사슴의 눈 같다고 생각했던 그 검은 눈동자에서.


* 1월 22일 마지막 회를 기대해 주세요. (블로그 운영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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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이야기 10회 | [연재] 아주 사소한 이야기 2016-01-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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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로 돌아오니 아줌마가 탕비실 전화기에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누군가에게 전화로 하소연 하는 듯 울먹이며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아, 아줌마가 있었지. 내가 걸어야 할 전화가 떠올라 갑자기 가슴이 묵직해졌다. 큰소리를 치긴 했는데 정말 그런 전화를 걸 수 있을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꼴에 남의 인사문제에까지 간섭해야 하다니. 건물 관리실에서 나를 얼마나 웃기는 여자라고 생각할까. 


 아줌마는 내 눈치를 살피며 몇 번 왔다 갔다 하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퇴근해버렸다. 아줌마가 사라진 뒤, 나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관리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이든 여자였는데, 뜸을 들여가며 천천히 자신이 관리소장임을 밝혔다. 많은 인원을 통솔하는 사람이라 자신은 여느 관리실 직원과는 격이 다르다는 과시가 은근히 배어 있는 말투였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탁할 게 있다고, 지금 있는 아줌마가 우리 일을 아주 잘 해줘서 그러는데 그 아줌마를 그냥 계속 쓰면 안되겠느냐고 말했다. 관리소장은 품격 있는 목소리로,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므로 아가씨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새로 오는 아줌마 교육은 알아서 잘 시키겠노라고 답했다. 부탁하던 아줌마의 간절한 눈빛을 떠올린 나는 한 번 더 얘기해볼까 하다가, 이건 정말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동안 숨소리를 내다가,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느냐,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하다고 정중히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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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이야기 9회 | [연재] 아주 사소한 이야기 2016-01-1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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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다녀오면 담당 직원 때문에 언제나 속이 뒤집어진다. 기껏해야 나랑 다를 바 없는 사무직인 주제에 공무원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그 터무니없는 고자세에 화가 나서 고객 불편 신고엽서를 쓸 뻔한 적도 있다. 우리 회사에 출입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비자 신청을 내가 매번 대행해주는데, 필요한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 가도 담당 직원이 어찌나 뻣뻣하게 말도 안 되는 서류를 요구하는지 그 심술에 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다. 오늘 내 서류를 접수한 사람은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자직원이었는데, 이 사람 또한 고자세로 앉아 똑같은 질문을 서너 번쯤 되풀이하더니 느닷없이 내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보는 게 아닌가.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이 남자가 미쳤나.


 “제 재직증명서에 사무실 전화번호 적어놓았거든요? 그쪽으로 거시면 항상 제가 받습니다.”

 “아니 사무실 말고 핸드폰 번호.”


 “사무실로 하시면 제가 바로 받는다니까요?”

 “이 아가씨가 피곤하게 같은 말 여러 번 시키네. 누가 사무실 전화하면 받는 거 몰라서 이래? 퇴근 후에 7시 8시쯤 전화 걸어서 물어볼 말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러는 거지.”


 순간 나는 살의를 느꼈다.


 “근무 시간 내에 전화해주세요.”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아가씨 답답하네. 내가 바빠서 근무시간보다 밤중에 전화할 일이 더 자주 있단 말이야. 그럼 아가씨가 밤 9시에 전화해도 사무실에서 전화 받을 거냐고.”


 떨려 나오는 내 목소리도 커졌다.


 “근무 시간 내에 전화하시면 되잖아요.”


 다른 직원들이 하나 둘씩 우리 쪽을 쳐다보자 그는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수령증을 집어던지다시피 내주었다.


 “됐어, 됐어. 가르쳐주기 싫으면 관둬요. 참 별 꼴 다 보겠네. 기가 막혀서…….”

 나는 부들부들 떨다가 간신히 수령증을 집어들었다.


 “확인서 찾으러 언제 다시 와요?”

 “에이알에스로 확인해보고 알아서 와요.”


 그는 도망치듯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점심시간인 듯 직원들 모두가 우르르 나가면서 나와 그 직원을 흘끔거렸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고객 불편 신고엽서를 5분 동안 만지작거리다 출입국관리소를 빠져나왔다.


 “그래봤자 결국 공무원 아니야? 안 갖고 온 거 없나 검사하고, 결재 올리고, 그게 다잖아.”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나는 재형에게 출입국관리소에서 있었던 일을 거품 물고 쏟아냈다. 재형의 회사가 출입국 관리소에서 가깝기 때문에 출입국관리소 일을 마치면 꼭 재형을 만나 점심을 먹는다. 


 “그게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고 그렇게 거만하게 굴어?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놈이. 이재형, 너도 나중에 그 아저씨처럼 되는 거 아니야?”


 작년 12월, 재형은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면서 주경야독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름만 대면 다 아는 A사에 다니는 사람이 웬 공무원 시험? 그냥 해보는 소리겠지 싶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재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퇴근 후 인강을 들으며 공부한다. 


 “시험 붙어서 제발 그 아저씨처럼 됐으면 좋겠다.”


 재형이 스파게티 맨 위에 얹혀 있던 새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뜯었다.


 “너 정말 공무원 시험 볼 거야?”


 내가 포크를 내려놓고 정색을 하자 재형이 씹던 새우를 급하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보려고.”


 “왜?”

 나는 재형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라니?”

 “너 지금 다니는 회사, 다들 못 들어가서 안달하는 데잖아. 그런 델 그만두고 왜 공무원을 해?”


 재형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우리 회사……길게 다녀봐야 한 십 오년 다니나? 빠르면 마흔 초반에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어.”


 “그게 무서워서 벌써부터 그만두고 공무원을 해? 공무원이라고 안전할 거 같아? 너, 요즘엔 공무원도 안정적인 직업 아니다.”

 나는 빠르게 쏘아붙였다. 재형의 태도나 설명이 왠지 미심쩍었다. 무엇보다, 재형은 그렇게 까마득한 미래를 내다보고 인생을 설계할 정도로 치밀하고 계산적인 성격이 아니다.


 “야, 누가 들으면 시험에 붙기라도 한 줄 알겠다. 일단 시험에 붙고 얘기하자. 얼른 먹어. 스파게티 불어.”


 재형이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스파게티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스파게티를 말아올리다 말고 쩝쩝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재형의 입을 쳐다보았다. 음식 먹을 때 소리 내지 말라고 내가 몇 천 번 얘기했는데 재형은 좀처럼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 평소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결혼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까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린다. 착하고 성실하게 느껴졌던 미덕들도 다 둔하고 눈치 없는 행동으로 보인다. 이 멍청한 자식, 공무원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식습관이나 바로잡았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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