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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내 인생의 책 한 권 : 노르웨이의 숲] | My Story 2021-10-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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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한 권     노르웨이의 숲 -  

 

2000년대 초반, 나는 대학생이었고 그 시절의 대학생들이 모두 그러했듯, Imf 여파로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노크라도 하기위해 모두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모두 꽃다운 나이라고 우릴 불렀지만 정작 우리, 아니 나는 학점과 수강신청한 강의를 듣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와중에 하고 싶은 일도 해보겠다며 교내밴드까지 했던 정말 몸이 두개라도 항상 정신없던 시절이었다.  

그를 만난 건, 우리 밴드가 공식적으로 음반도 하나 내고 홍대에서 1년여 정도 활동을 하다 나도 대학 졸업을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막막한 걱정들을 하던 시점이었을 게다. 그는 우리 팀의 열성 팬이었다. 체구는 작았지만 예술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벚꽃이 휘날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행운을 거머쥐었고, 순진한 나는 이것이 하늘이 보내는 어떠한 신호라고 감지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금방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는 첫사랑이었다. 

 

햇살이 푸르던 어느 날, 늘 그래왔듯 공원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그는 이 책은 꼭 봐야만 한다며, 내가 한 달 간 빌려줄 테니 읽어보라고 가져왔다. 두꺼운 책이었고 솔직히 별로 읽고 싶지 않은 분량이었지만, 평소 그의 예술 취향을 존중했으므로 이렇게 적극 추천하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납하기로 한 한달이 지나서야 난 그 책을 간신히 다 읽을 수 있었고, 그는 종종 그 소설에 나오는 연인들의 사랑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지, 여자 주인공 나오코와 미도리 중 어떤 여자가 나의 성격과 그나마 비슷한 지 소설 안 세세한 것들을 꼬치꼬치 되묻곤 했다.  어쨌든 타의에 의해 선택된 책이어서 솔직히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그 책의 내용은 데이트에 빠질 수 없던 우리 둘만의 단골 소재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가끔 그와 나의 사랑이 진해졌을 때에는 소설 속 미도리가 그랬던 것처럼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는 내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 같은 수위 높은 농을 던지기도 했었다. 지리상 멀지 않았던 그와 나는 처음 불장난을 알게 된 아이들처럼 거의 매일 만났고, 임시로 게임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지만 다시 곧 대학 4학년으로 복학할 그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알바자리만 빙빙 돌던 나 사이의 열정도 그 빛이 서서히 지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느끼게 되었다.   

 

그 해 여름을 가장 뜨겁게 장식했던 2002 월드컵경기를 그와 함께 서울시내를 돌아다니며 응원과 환호를 보낸 데이트를 끝으로 우린 가을부터는 드문드문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그 시절 최고 인기였던 박지성 같은 졸린 눈을 하고 와서 정말로 귀찮다는 듯이, 그는 11월에 갑자기 인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내게 통보했다. 그는 한 달 정도 홀로 여행을 하고 귀국했다. 기념품을 줄게 있다며 불러내어 공주 풍 치마를 입을 때 빼고는 실용성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NaRaya라는 브랜드의 커다란 리본이 박힌 가방을 선물해왔다. 지금도 파는지 모르겠지만 존재감이 너무나 큰 가방이라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그와 나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만나도 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나는 그가 여행 후에 너무 많이 변했다며 화를 냈다.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지지 부지하게 안부만 묻다가 내가 다음해 2월부터 모 기업에 취직하면서 부터 그와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를 했다. 그의 마음이 이미 떠난 것을 감지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덕분에 나의 첫 출근은 퉁퉁 부은 눈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부은 눈 가린다고 푹 눌러썼던 모자 덕에 설명회인지 입사연수때 나는 오히려 담당자의 눈에 띄어 버렸다. “아무리 자유복으로 와도 된다고 했지만 이렇게 큰 모자를 쓰고 오실 분도 계실 줄은 몰랐네요. 하하.” 라고 회사를 설명하시던 분이 호탕하게 얘기했다. 일주일은 밥도 못 먹고 힘들어했지만 나는 점차 그를 잊었다. 아니, 그 뒤로 그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우연히 2006년 즈음 친구삭제를 하지 않은 네이트 온에서 그를 만났지만, 그는 호주에 있다고만 하였었고 그 뒤로 우린 영영 안녕이 되었다. 나는 2008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서 십 몇 년 간을 살다, 최근 별거로 다시 나만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최근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로 병원에 약 한달 간 입원했는데 내가 병실로 들고 간 책 중에 다시 노르웨이의 숲이 있었었다. 새벽에 병실에서 다시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의 한 숨이 나왔다. 그 때 스무 살 초반에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던 소설 속 캐릭터들의 감정선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니 하루키는 이 소설을 마흔살에 발표했다. 주인공 말고 기즈키나 늘 엉뚱한 농담을 하는 나가사와 선배, 심지어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라 그에게 늘 불평했던 남주인공이 사랑하지도 않는, 나이 많은 여자와 나눈 정사장면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설 속 레이코가 37세였으니 이젠 어려 보이기까지 한다.)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미 10년 전 영화까지도 봤던 책이지만, 40대가 되어 다시 읽은 나의 젊은 날을 떠올려 주는 책... 하나하나 장면에서 그 때의 기억들도 함께 떠오르는 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본인이 일본이라는 사회를 10년이상 경험했으니 소설 속 배경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장점도 있었다. 책에는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 여주인공 미도리와 남주인공 와타나베가 전화를 나눈 도쿄의 사람 많은 번화가는 반드시 신주쿠가 되어야 한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시 읽어도 명작이다. 외우고 싶은 문구도 많이 있고, 이 가을 뜨거운 사랑을 간접적으로도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굳이 사랑이라는 소재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우정, 유머와 위트, 인생을 달관한 여유까지 함께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의 첫사랑이 아직도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지금 어느 부분 읽고 있어? 미도리는 나왔어?" 친구와 함께 읽는다면 왜 어떠한 부분에서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는지 케릭터들의 마음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매력일 수 있겠다. 나가사와 선배같은 재미난 사람이나 쫑알거리는 상큼 발랄한 미도리같은 캐릭터를 지닌  친구하나쯤 만들고 싶은 가을이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레이코가 항상 연주하는 기타의 곡 중의 하나란 점도 하루키만의 센스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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