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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게만 느껴지던 달을 '재미'라는 끈 하나로 조각조각 묶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8-12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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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곽재식 저
동아시아 | 202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달을 '재미'라는 끈 하나로 조각조각 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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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한정된 정부 예산을 어느 정도 편성 받아야 하는지 어필하는 토론 수업이 있었다. 분야는 신재생에너지, 미래 먹거리 등 다양했다. 뭐가 되든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조가 우주 산업을 배정받기 전까진. 어렴풋이 망했다고 읊조렸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우리는 왜 우주에 투자해야 하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봐도 당위성이 설명되지 않았다. 급하게 논문과 기사를 뒤졌다. 우리나라가 타국에 비해 얼마나 우주에 투자하지 않는지, 우주 기술에 투자하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온갖 자료를 들어 설명하면서도 영 자신이 없었다. 결국 우리 조는 많은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다. 설득에 실패한 셈이다. 당연했다. 중요한 건 사안의 시급성과 타국과의 비교가 아니었다. 나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우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때의 나는 이 질문을 제시하는 데에도,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똑같은 질문을 이 책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왜 우주를 알아야 하는가? 하필 달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22년 8월 5일,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인 '다누리'가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 누리호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여기저기서 축하 반응이 쏟아졌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 분명 기쁘고 멋진 일이지만 아무래도 나와는 동떨어진 일이군.'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물음의 답을 얻었냐고? 물론이다. 내가 얻은 답을 얕게나마 공유해 본다.

 

우리는 왜 달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곽재식 작가는 실용적인 이유와 문학적인 이유를 섞어 가며 달을 향한 관심을 유도한다. 요약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모든 챕터마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하면,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친절한 설명을 달아주기도 한다. 14개라는 챕터 수를 자랑하며 달에 가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풀어주지만, 결국 곽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로 보인다. '무엇보다, 너무 재밌잖아요!'

달은 언제 어디서든 내 머리 위를 돌아다닌다. 연인에게 차여 온갖 청승을 부리며 거리를 쏘다닐 때도, 아기 삼색 고양이를 찾기 위해 입으로 오쪼쪼 소리를 낼 때도, 인생이 힘들어 비상계단으로 대피해 긴 한숨을 내뱉을 때도. 신기한 일이다. 서울 어디서든 보이는 거대한 롯데타워도 (내 본가가 있는) 청주에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마찬가지로 이 사실을 납득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의 곽 작가는 아버지를 붙잡고 묻는다. "왜 달은 어딜 가든 나를 따라와요?" 아버지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달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고 아주 커다랗기 때문이라고.

아무렴 그렇지, 어렸을 땐 별게 다 궁금했다. 꼬치꼬치 캐물어도 제대로 답변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게 문제지. 인터넷의 발달은 지식의 접근성을 높였지만 지식의 대화는 단절시켰다. 궁금한 걸 물으면 같이 고민해 보는 대신 인터넷에 쳐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답변할 수 없는 분야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과학은 언제부터인가 감히 말을 얹을 수도 없고 물음표를 붙일 수도 없는 학문이 돼버렸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반가웠다. 어쩌면 바보 같다고 평가될, 순수했던 그때의 질문으로 포문을 열어줘서. 동화책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득 실어줘서. 과학 교과서나 만화책에서 설명하면 '거참. 흥미도 없는 내용에 흥미 유도하려고 고생들 많으시네요' 싶을 법한 내용인데도, 곽재식 작가의 입을 빌리는 순간 솔깃해진다. 나는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그랬을 거다. 곽 작가는 단순히 사실만을 읊지 않는다. "그 학설이 바로 이름부터 멋진, 거대 충돌 가설이다"라는 문장으로 흥미를 끌어낸다. 이름부터 멋지다고 하니까 어디 한 번 들어보고 싶어지지 않나. 요약해 보면 이렇다.

지구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돌덩이 '테이아'가 지구에 부딪혔고, 충돌의 결과로 생긴 파편들이 그대로 달이 됐다. 그렇다면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하나. 달의 성분은 테이아의 것인가? 지구의 것인가? 처음에는 테이아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와 충돌한 테이아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에서 가져온 돌을 분석해 보니 달은 지구를 이루는 성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이아는 어디로 사라져버렸나? 요즘 우세한 설명은, 지구와 테이아의 충돌이 워낙 막강해 심하게 망가지면서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곽 작가는 흥미를 잃을세라 즐거운 비유를 하나 끼워 넣어 설명한다.

요즘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지구가 아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이때 정작 아프거나 죽어가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사람이나 사람에게 친숙한 동식물들이다. 그러나 테이아와 지구의 충돌은 정말 말 그대로 "지구가 아프다"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p. 24)

달의 성분과 생성 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지구와 테이아의 충돌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결국 달에 대한 연구는 지구에 대한 연구인 셈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달 탐사가 과거만을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구의 기원 같은 걸 알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달 탐사는 결코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소행성과 혜성의 충돌 대비가 그 예시다. 달은 소행성과 혜성이 충돌한 자국을 연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공기가 없기 때문에 우주에서 떨어지던 돌덩이가 공기와 마찰해 타버리는 일이 없다. 풍화 작용도 없어서 한 번 생긴 충돌 자국은 잘 사라지지 않는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달의 충돌 구덩이들은 지난 긴 세월 동안, 지구 근처에 어떤 소행성들이 어떻게 돌아다니다가 떨어졌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둔 일기장과 같다. (중략)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가야 한다. 달에 있는 수많은 구덩이들은 우리에게 지구를 위협할지도 모를 소행성과 혜성에 얽힌 사연을 더 많이 알려줄 것이다. (p.48)

논문과 기사만 뒤져볼 때는 상상도 못 해본 관점이다. 지적 쾌감으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봤다. 분량의 한계로 담지 못했지만 달과 관련된 문화, 역사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었다. 애초에 이 책은 "달에 관한 과학과 기술 이야기를 중심으로 문화와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보는 내용"이자 "우리 사회가 왜 우주 탐사와 달 탐사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기 위한 글"이기 때문이다. 늑대 인간이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신한다는 문학 속 설정이 등장한 것은 환한 달빛이 사람을 흥분시키고, 보름달이 뜬 밤에는 이상한 현상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신라는 달의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달을 중요시 여겼다. 임금이 머물던 장소의 이름부터가 월성이고 멀지 않은 곳에 월지라는 연못이 있었다. 월지? 어딘가 익숙하지 않나. 경주에서 유명한 야경 명소인 동궁과 월지가 바로 이 예시에 속한다.

그렇게 과학의 힘으로 달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알아나가는 것이 신라의 달을 지금 시대에 걸맞게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p. 132

이 책을 덮으면서 '아무렴, 달에 가야지!'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달을 연구한다는 건, 다신 돌아갈 수도 추측할 수도 없는 과거를 추정해 내는 숭고한 일이란 거지'라고 제 나름의 이유도 덧붙이며.

나는 하나의 흐름을 분명히 갖고 가는 비문학을 좋아한다. 한 권을 읽기만 해도 마치 그 분야를 섭렵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책. 이런 변태 같으면서도 학구적인 욕망을 가졌다면, 이왕 태어난 김에 세상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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