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한발짝
http://blog.yes24.com/fairyofair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Elly
세계문학 읽기 도전 중 + 원서도 열심히 읽고 있어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추리문학입니다.ㅎ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jykim_sg)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12·13·14·15·16·17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9월 스타지수 : 별3,089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Quote-
Reference-
My pick-
책달력
하루하루 책일기
책읽는 일상
소식
나의 리뷰
세계문학전집
스릴러/추리/범죄
기타 소설
논픽션
유아동
나의 메모
메모
태그
5월결산 2월결산 라스트차일드 존하트 읽기어려웠던책들 추천혹은비추천 나를울린책들 A가X에게 냉면독서 마스터스오브로마시리즈
2020 / 09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월별보기
나의 친구
A
B
C
최근 댓글
오래전 저도 정말 재.. 
재미있는 책이었습니.. 
목로주점만 읽은 것 .. 
배수아 작가는 번역도.. 
이 책 구입할까 많이 .. 
새로운 글
오늘 1583 | 전체 157943
2007-01-19 개설

전체보기
심판 | 기타 소설 2020-09-13 16:07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3016066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전미연 역
열린책들 | 2020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심판 - 베르나르 베르베르


1922년에서 1957년까지……. 삶이란 건 나란히 놓인 숫자 두 개로 요약되는 게 아닐까요. 입구와 출구. 그 사이를 우리가 채우는 거죠. 태어나서, 울고, 웃고, 먹고, 싸고, 움직이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얘기하고, 듣고, 걷고, 앉고, 눕고, 그러다…… 죽는 거예요. 각자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무이하다고 믿지만 실은 누구나 정확히 똑같죠.


신, 혹은 내세의 존재 유무에 따라 지금 살고 있는 삶의 의미의 무게가 달라진다. 인간의 도덕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신이 없다면, 혹은 내세가 없다고 한다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죽고 난 다음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적인 존재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판> 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피숑 씨, 당신은 배우자를 잘못 택했고, 직업을 잘못 택했고, 삶을 잘못 택했어요! 존재의 완벽한 시나리오를 포기했어요…… 순응주의에 빠져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려고만 했죠. 당신에게 특별한 운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폐암으로 수술대 위에 올라가 사후 세계로 넘어간 피숑은 깨어나 수술이 잘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하지만 그의 심판의 순간이 다가온다. 판사 앞에서, 전생에 부부였던 변호사와 검사가 피숑을 가운데 두고 그를 고발하고, 그를 변호한다. 그가 잘못된 배우자를 만났다는 고발은 황당했지만, 그가 주어진 재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고발은 신선했다. 시력을 한쪽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도 꼭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재산정리를 하고 싶다는 피숑은 황당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다음 생을 선택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했다. 피숑을 고발하고 변호하는 자리였지만, 재판장인 가브리엘 혹은 변호사 검사 그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던 점에서 흥미로웠다. 


당신은 당신의 재능을 어떻게 썼죠? 전혀 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형…… 아니, 다시 말해 삶의 형을 구형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주어진 재능을 제대로 쓰지 못했기에 지금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의 형을 받지 않으려면 지금 순응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볼 일이다. 


희곡의 형태인 줄 몰랐던지라, 책을 처음 펼치고 놀랐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 중에 이렇게 짧은 책이 있었던가 하며 두 번 놀랐다. 심플했지만 배경과 대화들이 머릿속에 잘 그려졌다. 재미있게 읽었다. 


[이리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쓴 후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모베상 | 스릴러/추리/범죄 2020-08-23 15:50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906240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모베상

최종태 저
시그널북스 | 2014년 04월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왜 연쇄살인범들은 자신의 쾌락과 이득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처참하게 앗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왜?'

모베상이 무슨 뜻일까 했는데 불어로 '나쁜 피'라는 뜻이었다. 연쇄살인범들, 사이코패스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쓰였다는 소설인데, 결과적으로는 '유전자'에 있는 형질이 원이란다. 환경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큰 부분이 유전적 발현이라는 결론.

이 책을 읽기 전에 <오직 예수>라는 책을 읽으며 리차드 도킨스가 주장하는 악에 대한 정의에 피식 웃었는데, 이 책은 그 이론을 기본으로 한 소설이었다. 현대를 살아가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는 이론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냐 되묻고 싶었다. 유전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살인을 '악'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유전자에 있어도 발현이 건너 뛸 수도 있고, 먼 친척의 친척의 피가 이제 와서 발현될 수도 있다고 하면, 전체 인구의 4%는 너무 적은 숫자가 아닐까? 사돈의 팔촌, 몇 다리 건너서 사이코패스 하나씩은 다 있을 것 같은데.... 사이코패스를 쫓다, 그리고 막으려다 본인이 '그놈'을 만나게 된 주인공은 또 너무나 아이러니했다.

페이지터너. 재미있게 읽었지만, 발간이 2013년, 딱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밑줄

'왜 연쇄살안범들은 자신의 쾌락과 이득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처참하게 앗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왜?'

중요한 건 내가 반성하고 날 처벌받도록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내 몸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놈'을 찾는 거예요. '그놈'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랑 함께 있었어요. 아시겠어요? '그놈'을 찾기 전에는 나 같은 괴물은 계속 태어날 거예요.

준석의 외동딸 민정은 지난달 아홉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민정은 준석과 혈액형도 같고 별자리도 같다. 그래서 그런지 민정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따랐다.

오 형사는 오랜 형사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있을 뿐이다. 범죄가 드러날 때까지 그들은 그저 평범한 이웃이며, 아버지며, 남편일 뿐이다.

살인자의 가족과의 화해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은 또 다른 죄의식을 가져왔다.

이처럼 양심이 없는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몇 가지 있습니다.

사회학자들은 그들을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시(sociopathy)라고 하며,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사이코패스(psychopathy)'라고 부릅니다. 통계에 의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 즉 소시오패시에 해당되는 사람은 오늘날 전체 인구의 약 4%, 즉 스물다섯 명당 한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이코패시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약 1% 정도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연쇄살인범은 살인을 한 번 저지른 뒤에 아쉬웠던 점을 곰곰이 생각하며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음 살인행위에서 실행합니다.

동준이 알고 있는 악마는 이처럼 교활하다. 그래서 천진한 사람들은 그들의 본성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동준은 다르다. 지수의 친절함과 아름다움이 마치 독버섯의 화려함과 같다고 확신하고 있다.

"왜 안 되냐고? 몰라서 물어? 악마의 피가 흐르는 내 자식은 절대로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돼. 그러니까 좋게 말할 때 칼 이리 줘."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전자와 환경, 이 두 가지 요소가 사람들의 반사회적 행동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심각한 사이코패스인 쌍둥이들의 반사회적 행동은 매우 강력하게 유전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연구 대상자의 81%가 유전적 형질에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나머지 19%는 서로 달랐던 비공유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쁜 유전자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첫 번째 전쟁은 버젓이 세상에 활개치는 1%의 사이코패스와 치러야 할 전쟁이며, 두 번째 전쟁은 자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쁜 유전자와의 전쟁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디 아더 피플 | 스릴러/추리/범죄 2020-08-06 00:2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82882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5천원 페이백][대여] 디 아더 피플

C. J. 튜더 저/이은선 역 저
다산책방 | 2020년 07월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 작가의 다른 작품

초크맨

애니가 돌아왔다

# 읽고 나서.

작가의 이 전 작들이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카피 보고 또 끌렸다. 페이백 도서이기도 했고. 호러 느낌 풍기는 신비적인 요소를 더한 미스터리이다. 미스터리가 메인이고, 호러 요소의 대부분이 나중에 설명되지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도 조금 남겨둔다.

게이브는 집으로 가고 있는 꽉 막힌 퇴근길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차 뒤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차의 뒷좌석에서 자신의 딸 이지가 '아빠' 하고 부르는 듯한 입모양을 본다. 미친 듯이 차를 따라가지만 놓치고, 그의 아내와 딸이 침입자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시체를 확인하는 자리에서 그는 속이 좋지 않아 아내의 부모님이 대신 아내와 딸이 맞는다고 확인해 준다. 하지만 길에서 본 차와 그 안에 있던 아이가 딸이었음을 믿는 게이브는 딸이 죽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잠시 살인자로 그가 몰리기도 하고, 과거 그의 사건이 재조명되기도 하지만, 그는 무죄로 풀려나고, 그 이후 그는 캠핑카로 이곳저곳을 돌며 딸 찾는데 올인한다. 그리고 그가 봤던 것이 환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스티커가 붙어있던 차가 발견되고, 그 트렁크에서 시체도 한 구 발견된다.

'디 아더 피플'. 다크 웹에서 고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누군가 대신 복수를 해주고,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하는 다단계 같은 웹사이트.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희생자가 가족이 된다면 이 유혹을 물리치기 쉬울 리 없다. 심지어 가해자가 반성조차 하지 않는 악마 같은 사람이라면. 하지만 그런 마음은 또 다른 죽음을 부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이것이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것도 안다. 누군가의 정의는 다른 사람의 정의가 아닐 가능성은 항상 있다. 하지만 악마는 이런 그럴듯한 것을 가지고 딜을 하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화자 이야기가 계속되려나 했지만, 금방 차는 발견되고, 그도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반전과, 반전들 그리고 정의에 대한 메시지까지. 신비적인 부분을 그냥 그렇게 둔 건 왜 그랬을까,, 경계가 조금은 모호한 면이 있었지만, 큰 덩어리들은 설명이 되었기에,, 덕분에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살았다. 이전 작들보다 재밌었다.

*밑줄

실종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림보다. 당신은 오도 가도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지평선 위로 희망이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절망이 콘도르처럼 맴을 도는 낯설고 암울한 세상 안에서.

물론 전부 헛소리였다. 새로운 시작 같은 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그랬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굴레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그것이 인생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했다. 세상에 자기 본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상이 그 본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디 아더 피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고통이 뭔지 압니다. 상실이 뭔지 압니다. 부당함이 뭔지 압니다.

우리는 고통을 공유합니다....공유해 마땅한 사람들과 함께.

아이가 느끼는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부 그냥 두면 왜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으니까. 인생은 불공평하니까. 골라서 선택해야 하는데 가끔은 선택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가끔은 아예 선택권이 없을 때도 있다. 끈으로 묶고 풀로 발라서 고칠 수 없는 물건과 사람도 있고 누구나 앞 베란다에서 햇살을 맞으며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문제점은 뭔가 하면 결국에는 증오도 스스로 소진되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게이브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비극의 포인트는 말이 안 된다는 데 있는데, 사람들은 비극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그냥 벌어진 일인데. 하지만 그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는 느낌은 있었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기회.

노인은 미소를 지었다. "가끔은...다른 사람들(디 아더 피플)에게 얘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지."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기타 소설 2020-07-25 16:54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77641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당신의 떡볶이로부터

김동식 등저
수오서재 | 2020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열 명의 작가들이 모여 다양한 떡볶이 이야기를 풀어냈다. 요즘 떡볶이 관련 책들이 많이 나오지만 대부분이 에세이. 그 가운데서 소설집이라니.!! 모든 작가님들의 전작들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다 읽고 어느 작품이 누가 쓴 건지 선으로 그어 보라고 하면 맞출 수 있었을 것 같다. ㅎㅎ 10개의 이야기들 다 개성 있었고, 재미있게 읽었다.

***

나는 계속 이렇게 하나 모자란 떡볶이를 받아들이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인생이란 이런 것일까? 때론 손해 보는 걸 알면서도 굴복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용기를 내어 아줌마에게 항의해볼까? 그런다고 통할까? - <컵 떡볶이의 비밀>, 김동식

귀엽다. 인생이란 그런 거지만, 저는 치사한 떡볶이 아줌마가 되진 않겠어요. ㅋㅋ

그런데요, 참 이상해요.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이하는 거 아녜요? 혼자 하는 거.. 그런 것도 사랑이라 쳐주나요? 내가 철규 씨를 사랑한 적 없는데 내가 죽은 일을 두고 사람들은 왜 자꾸 사랑 타령을 하는 걸까요? -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 김서령

세상에 맙소사. 피해자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세상. 니맴만 중요한 세상. 싫다는 걸 싫다고 해도 못 알아먹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 떡볶이집의 수치다.

K는 이번만큼은 "저는 순한 맛 떡볶이를, 그리고 김말이 5개를 먹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학생들에게라도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저는 김말이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하고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 -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 김민섭

이렇게 극적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쓰게 읽었다.

아니 근데, 떡볶이가 김말이에게 질 줄이야.. ㅠ

이제 나는 어디로 갈까. 더 작아지게 되면 나는 내가 나였다는 것을 기억이나 하게 될까. 그저 한 줌의 흙처럼, 한 줄기의 비처럼 땅과 물속에 흩어져 세계 속에 녹아버릴지도. -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 김설아

정말 떡볶이의 모험...ㅋㅋ 이런 순환으로 떡볶이가 우주 정복할 날도 머지않았다.

빨갛고 달콤한, 겉보기엔 해로울 것이 없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그래서 자꾸만 구역질이 났다. 눈과 코에서 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먹지 말라고, 먹으면 안 된다고 화면 밖에서 아무리 외쳐도 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 <유라TV>, 김의경

요즘 '좋은 게 좋은 거다'가 늘 좋은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나를 버리면서 나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할 때.

"그게 아니면 우릴 이렇게 핍박할 이유가 없잖아. 무서워하는 거지."

"떡볶이를?"

"아니."

고개를 저은 성욱이가 덧붙였다.

"우리가 그걸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 <좀비와 떡볶이>, 정명섭

아,,, 밤에 이 단편 읽다가 떡볶이 만들러 나갈 뻔... ㅠ

너희들의 세상은 다를 거라고 기대했지. 그 지긋지긋한, 단 하나의 파장의 세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수많은 파장과 파장이,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주장하는 세상이 더 끔찍하리라는 예상은 미처 해보지 못했지. - <떡볶이 초끈이론>, 노희준

모 드라마의 '마음'은 현재와 미래까지 이미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떡볶이한테 물어보면 되는 걸까.

아직 이 녀석 맛을 못 봐서 그런 겁니다. 이 떡볶이는 마약 떡볶이거든요. 한번 먹으면 계속 찾을 수밖에 없어요 - <서모라의 밤> , 차무진

그 마약이 진짜 마약일 줄 몰랐는데.. 떡볶이에 마약성분 포함설 지지함.

"사랑. 이 떡볶이는 내가 이 사람 먹으라고 만든 겁니다. 그래서 맛있는 거죠." -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 조영주

죽을 만큼, 아니고 죽일 만큼 사랑해야 하는 미션. '끼니' , 꼭 가보고 싶다.

그래도 선생님인데, 뭔가 아이의 심금을 울리는 말을 해줘야 할 텐데, 아무리 재고 연습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은서가 보인 의외의 첫 반응이 나를 구했다. - <송 구리 당당>, 이리나

일상에 어울리는 떡볶이 이야기. 떡볶이가 일상이라면, 그만큼 내 일상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1        
오직 예수 2 | 논픽션 2020-06-23 12:39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264837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eBook]오직 예수 2

라비 재커라이어스 저/이상준 역 저
두란노서원 | 2017년 08월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 작가의 다른 작품

오직 예수

하나님 앞에서 고통을 묻다

경이로움

# 읽고 나서.

기독교 교리와 대치되는 사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약하자면 마지막 장에 나온 이 부분.

- 과학주의 : 과학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과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많은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한다.

- 상대주의 : 상대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다른 이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이들도 가치 있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객관적인 관점에 이 사상이 기초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 범신론 : 범신론의 부분적 진리는 신성이 모든 곳에 있고 신성과의 연합이 운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연합은 동일함의 연합이 아니라 관계의 연합이다.

- 다원주의 : 다원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어떤 세계관도 진리를 독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세계관을 동등하게 진리로 보는 것은 분명 오류다.

- 인본주의 : 인간의 개개인은 참으로 위대함을 위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인간의 자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과 능력에 기인한다.

- 쾌락주의 : 쾌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쾌락이 모든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사상들보다 낫기 때문에, 혹은 더 좋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진리다. 그래서 다른 사상과 비교를 한다거나, 반박을 한다거나 할 필요는 사실 없다. 하지만 기독교를 오해하거나, 비웃거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책 초반에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 이야기가 나온다.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그들과의 모임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그들을 조롱하라, 비웃어라'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갑자기 그에 대한 존경심이 싹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으면서 내 주장이 옳으니 그들을 비웃어도 좋다는 뜻인가..?

그리고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다원주의. 너도 옳고 나도 옳고.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너무 멀리 갔다. 그른 사실에 그르다고 말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갔다. 인터뷰 예가 나온다. 학생을 대상으로, 만약 내가 지금 7살이라고 주장한다면 옳다고 하겠는가..에 학생은, 당신이 7살이라고 주장한다면 마음이 7살이라는 뜻 인가라며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나치즘에 대해서도, 그들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관대하게 아무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것과 옳은 것은 다르다. 살인자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웃, 적도 사랑하고 왼쪽 뺨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어주라고 하셨는데,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 모든 가르침 위에,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도 형제자매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이 하나 지키는 게 어렵다. 익명 혹은 비대면 뒤에서 너무 날카로운 말들이 오고 간다. 너무도 가볍게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인종 종교 국가 등등을 평가한다. 그 안에서 차분하게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밑줄

불교는 무신론이고 힌두교는 범신론이다. 전혀 다른 장르다. 그나마 유일하게 비슷한 이슬람교는 비인격적 유일신론이고 기독교는 인격적 유일신론이다.

노골적인 무신론자와 대화하며 분노나 적대감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무신론자가 자신의 축적된 반감을 언어로 발사하기 전에 응축시킨 감정을 터뜨리는 방아쇠와 같다.

워싱턴 DC에서 모임을 하던 중 한 사람이 리처드 도킨스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그들을 조롱하라." 실제로 이렇게 답했다. "그들을 비웃어라."

인간이 마음의 통치를 자치적으로 하게 되는 순간, 문화와 정치는 무법해진다. 그리고 이 전투들에서 지고 나면, 그 이후에 다가올 전쟁은 더 거대한 것이 된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이것에 바로 무신론이 의도치 않은 결과다.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가 언급한 내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선호하는 취향'일 뿐이다.

직관적으로 사람들은 도킨스가 대적하고 있는 행위들에 반대하는 반응들을 보인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 혹은 이런 행위를 하는 자들을 비방하기 위해서 그는 이런 일들이 악하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주다. 신이 없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런 신의 특징들은 악하다고 말하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며, 스스로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거실에 자기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아침 절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도둑질하여 거룩을 세속으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영원이야말로 거룩이 무엇인지 정의해 준다. 반면 시간은 존재들을 세속적으로 만든다.

어떻게(HOW)라는 질문(방법에 대한 질문)은 누가(who)라는 질문(주체에 대한 질문)에 답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왜(WHY)라는 질문(목적에 대한 질문)에도 답해 주지 못한다.

"과학의 어떤 발견도(지금까지 어찌되었든 간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최소한의 경향조차도 갖지 못했다."

주요 세계관들에 대해 공부할수록 당신은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충돌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상이한 방식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싸울 것인가, 아니면 값없이 사랑을 누릴 것인가?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값없이 나눌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한가, 아니면 안전한가? 그리고 미래는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가?

신의 계시라는 개념은 세속 문화에서는 종종 비웃음을 당한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난은 공허할 뿐이다. 성경의 윤리는 쉽게 일축된다. 무엇을 지지하기 위해서 성경의 윤리를 거부하는 것인가? 오늘날의 윤리인가? 내일의 윤리인가? 내 문화권의 윤리인가? 당신 문화권의 윤리인가?

우리가 기독교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시할 때, 겉포장에 집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운데 있는 선물을 얻고자 한다면 겉포장들은 중요하지 않다. 일부 크리스천들이나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박스를 들고서 부끄러운 행동을 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에 놓여 있는 선물은 크리스천들이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진짜 핵심적인 선물은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은자들 가운데 일어나 승리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10세기나 12세기의 기독교인들의 행동이 1세기에 보이신 그리스도의 행동에 의혹을 일으킬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반대 이유 때문에, 즉 회의를 막는 방파제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확신들을 녹이는 용해제로서 세속적 인본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이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의식도 못한 채 깊이 있게 규정하고 있는 신앙심들에 도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세속적 인본주의의 부흥은 우리가 다시금 의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필수적이다.

의심스런 대상은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교회 권력의 기초였다. 이것이 열쇠다. 교회 내의 권위는 인간 운명에 대한 권위주의 양상을 띠었는데 이것이 교회를 전복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기독교는 자유에 기초한 믿음이다. 또한 이 점에서 절대성을 믿는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가장 분명하게 대조가 된다.

쾌락과 행복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좋은 것은 아니다.

- 과학주의 : 과학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과학이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점과 인생의 가장 중요한 많은 요소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망각한다.

- 상대주의 : 상대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다른 이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기를 거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사랑이 결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이들도 가치 있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객관적인 관점에 이 사상이 기초한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 범신론 : 범신론의 부분적 진리는 신성이 모든 곳에 있고 신성과의 연합이 운명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연합은 동일함의 연합이 아니라 관계의 연합이다.

- 다원주의 : 다원주의의 부분적 진리는 어떤 세계관도 진리를 독점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든 세계관을 동등하게 진리로 보는 것은 분명 오류다.

- 인본주의 : 인간의 개개인은 참으로 위대함을 위해 조성되었다. 그러나 그 위대함은 인간의 자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은총과 능력에 기인한다.

- 쾌락주의 : 쾌락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쾌락이 모든 것은 아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