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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 희망을 위한 파괴를 꿈꾸는가 - 2011 제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 | 국내문학 2011-06-2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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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1 제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김애란 저
문학동네 | 2011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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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어떤 기사에서 우리 세대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 라고 지칭한 것을 본 적이 있다. 20~30대 전체를 통칭하는 듯 한 그 묘사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역사상 평균 가방끈이 가장 긴 세대. 어마어마한 등록금으로 인해 수천만원의 빚을 지며 대학으로 대학으로 몰려들 수 밖에 없는 세대. 졸업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신음하며, 세대 구성원 대부분이 고시원으로 몰려들고, 종국에는 구직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세대. 역사상 가장 똑똑한 세대이지만, 역사상 가장 무기력하며, 먹고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인 세대. 486 세대는 우리 세대를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며 무기력함을 질타하고, 우리 세대는 이런 세상을 만들어온 그 세대를 욕한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나락으로 가라앉는 현실은, 끊임없는 비에 잠겨가는 김애란 작가의 [물속 골리앗] 의 세계처럼 거대한 자연재해와도 같다.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풍경. 20대의 지상목표는 구직이고, 30대의 지상목표는 그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거나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출렁이는 흙탕물 뿐. 내 몸은 작고 약한 뗏목 위에서 잔뜩 긴장한 채 '버틸' 뿐이다. 언제 가라앉을지, 언제 부서질 지 모르는 한없이 나약한 판자떼기 위에 얹혀있는 나의 육체. 이 무시무시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이미 죽어버린 부모의 몸을 붙든다. '캥거루 세대' . 그것은 88만원 세대의 또다른 이름이다. 신체적으로는 장성했지만, 부모의 주머니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세대의 다른 단상. 살기 위해서는 붙들 수밖에 없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말초적인 유혹을 탐닉한다. 이성에 매달리고 하루이틀밤의 유희에 집착한다. 온라인 게임속으로 빠져 자신을 잊고, 현실을 잊는다.  그것은, 그래. 현실의 고통으로 인한 갈증을 풀어주는 미지근한 사이다와도 같다. 오늘 하루를 이겨내게 해주고, 내일에 대한 의욕을 잠시 불러 일으켜주는 유희. 그것들은 우리 세대에게 있어 밥보다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것은 동 세대 안에서의 치열한 경쟁이다. 우리는 애초에 우리 윗세대와는 경제적으로 대결을 펼칠 수 없는 구조 안에서 태어났다. 우리 윗 세대가 영화 '매트릭스' 의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머신이라면, 우리 세대는 그 머신이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체 에너지를 공급하는 캡슐 속에 잠들어있는 인간들이다. 한 세대에서 2%안에 들어있는 사람들만이 윗세대가 만들어놓은 단상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세대 안에서 그 2%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경쟁, 경쟁, 경쟁. 도태된 자들은 무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와 구조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도태된 내가 무능하기 때문인 것이라고 주입받는다. 수많은 고학력자들은 자신들이 사회가 원하는대로 최선을 다해 최상의 코스를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직장도 얻지 못하고, 연인에게 버림받고, 부모의 집을 벗어나지 못했음에 큰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못나서" 라는 자괴로 잉태된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대출을 받아서 대학, 대학원, 유학까지 모두 밟았지만, 남는건 아르바이트 자리와 10년동안 갚아도 모자랄 어마어마한 대출금 뿐인 것이다. 당연히 우리 세대는 '내가 못났으니',  '당연히 도태되지', '나는 졌다' 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윗세대들의 "네가 못났으니" , "도태되는건 당연하다" ,"넌 졌다." 라는 차가운 대거리로 말미암는다. 결국 이 세대의 모든 꿈은 결국 '돈' 으로 모아질 수 밖에 없다. 그 돈은 당연히 '먹고 살기' 위함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한 세대.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부와 권력은 자기네들의 틀 안에서 고스란히 세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하면 할수록 꼬여가고 가면 갈수록 절망스러워진다. 김사과 작가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처럼, 온통 절망속에서 분노만이 재생산된다. 사회에 대한 분노라기 보다는 자신에 대한 분노이다. 도태되고 나약하고 무기력한 나. 자신에 대한 분노는 폭력성으로 드러나고 무기력한 세대는 가상 세계속에 자신의 화신을 만들어 분노를 폭력으로 발산한다. 각종 비디오 게임과 온라인 게임, 그리고 연예인들. 타인의 아바타를 깨부수고, 살을 뭉개고 쥐어 뜯는 날카로운 톱날같은 악플을 끊임없이 달아댄다. 문득 이 세상이 지옥처럼 느껴진다. 순간순간 스쳐가는 말초적인 유희는, 잠깐동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을 부시게 하는 점멸하는 빛과 같다. 세상에 자욱한 어둠을 확실히 인지하게 만들고, 더 어둡게 만들듯 절망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만들어 준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다시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유희에 목메고, 다시 절망한다. 세상이 파괴되어 가는 느낌이다.

 

 수많은 가치관과 개념들이 변해간다. 김이환 작가의 [너의 변신] 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관과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절망적인 삶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결국 '자본주의' 란 욕망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욕망이 제 1순위이다.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욕망에 따라 바꿀 수 있다. '돈' 만 있으면. 삶의 모든 가치는 '돈' 이다. 황석영 작가는 '낯익은 세상' 의 후기를 통해 "호랑이 꼬리를 잡고 달리는 소금장수 신세" 에 비유했다. '생명' 조차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아니, 사람 그 자체를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 돈이란 욕망이고, 인간이란 욕망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개념속에서 사람은 욕망을 제어함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욕망의 제어, 욕구의 제어는 인간성의 제 1 원칙이나 다름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욕망과 욕구는 추구해야 할 제1의 원칙이다. 돈만 있으면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 세대는 욕망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욕망은 제어하는 것이라는 것조차 배우지 못했다. 그저 '돈' 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것. 그래. 그것이라고 배웠다. 결국 인간은 욕망의 노예,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되었다. 우린 이미 그런 세계 속에서 태어났고, 배워왔으며, 자라왔다. 

 

 우리가 지켜왔던 전통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세계는 김성중 작가의 [허공의 아이들] 에 등장하는 세계처럼 허공으로 분해되어 가고 있다. 속수무책이다. 지킬 수도 없고, 지킬 생각도 없다.  그렇다. [물속 골리앗] 의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끊임없이 물속으로 침잠하는 세상과 끊임없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세상. 이 두 작품은 이 작품집 안에서 가장 닮아있다. 마치 쌍둥이처럼 말이다. 그리고 가장 또렷한 이미지로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나가는 과정 또한 닮아있다. [물속 골리앗] 의 화자는 어머니와 함께 외딴 방에 고립되었다가 흙탕물이 넘실대는 위태로운 '바깥세상' 으로 나아간다. 어머니의 시체를 뗏목에 단단히 묶고,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절망적인 순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계속 살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허공의 아이들] 역시 비슷하다. 소년과 소녀 역시 종국에는 망망한 허공을 떠다니는 집 안에 고립된다. 그리고, 아마 소년 또한 소녀와의 기억을 삶에 원동력으로 삼아내리라.

 

 작품집은 비교적 어둡고 파괴적이다. 혹자는 '아니 뭐야 요즘 젊은이들은 이렇게 본단 말이야?'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같은 세대로서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대단히 크게 공감된다. 이 작품집에 실린 작가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나이대이다. 지난해까지 작품들의 메시지가 주로 '소통' 이었던 것에 비해 확실히 최근에는 보다 농밀하고 직접적으로 현실의 암담함을 그리기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흐름에 맞물려, 보다 대중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많이 포함된다. 작가들의 문장은 지나치게 꾸며지지도, 절제되지도 않은 담백하고 담담한 경우가 많으며, 확실하게 공간과 사물, 관념과 이미지가 혼재된 속에서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느낌이다. 작가들이 그려내는 세상은 관념적이긴 하지만 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집에 실려있는 작품들 모두가 애매하거나 모호한 느낌이 전혀 없다. 위에 언급한 두 작품인 [물 속 골리앗] 이나 [허공의 아이들] 의 경우엔 상당히 SF적인 설정과 세계관이 보여지지만 대단히 현실적이다. 김사과 작가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의 흐름을 표현한 작품이지만, 그것들이 눈에 보이듯 또렷한 색채와 경계를 가지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작품들이 현실을 암담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화자들은 꾸준하게 시도하고 있다. 파괴되고 있는 현실과 자아를 그리고 있긴 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파괴하려는 시도는 아니다. 이런 파괴적인 '현실' 이 우리의 '자아' 를 파괴하고 있으며,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이런 현실에 맞서 자아를 지켜낼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절망을 희망을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인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기 시작한 서구 유럽 사회들에 비해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긍정적인 요소는 바로 '역동성' 에 있다. 실제로 하루아침에 뒤바뀔 수 있는 역동성이 우리 사회엔 아직 존재하고 있다. 작가들은 현실을 파괴적으로 그려내지만 끊임없이 제시한다. 바로 그런 '현실' 에 적응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말이다. 여전히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소통에 목말라 하며, 대화하기를 멈추려 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알아가면서' 시작된다. 현재 20~30대를 구성하는 세대들은 주로 70년대 중반~80년대 후반에 태어났다. 급격한 과도기의 시대에 태어났고, 미성숙된 사회 속에 던져졌다. 우리는 미완성된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애매한 개인주의로 살아오고 있다.  세상이 더 나아질지, 아니면 더 암담해 질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온 지구가 물에 덮일때 까지 계속되는 비와 같고, 가루 하나 남지 않고 분해되는 세상과도 같다. 확실한 건, 절망도, 희망도 모두 삶이 계속 될 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낙오도 우리의 탓이 아니고, 가난도 우리의 탓이 아니며, 고립과 외로움도 우리의 탓이 아니다. 암담하고 어두움 속에서 캄캄하다고, 앞이 안보인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굶어 죽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 우리가 포기하고 주저앉는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의 유일한 실수이자 잘못이 될 것이다. 우리는 빛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니면 어둠에 눈이라도 익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대화해야 한다. 뗏목을 만들어 흙탕물 속으로 뛰어들듯, 무너져 내린 아스팔트 사이를 펄쩍펄쩍 뛰어넘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던 그 집으로 가듯.  
 또 하나, 가장 쉽고도 확실한 것 한가지는 [떠, 떠, 떠 ....떠]듬 거리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든다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있을때, 삶에 작은 방향키가 생길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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