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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정체성을 생각해본다. | 책 리뷰 2020-12-05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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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 남자

히라노 게이치로 저/양윤옥 역
현대문학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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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를 처음 만난 것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일식>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정말 이해도 못했고, 재미도 없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문학상에 더 약했던 시절이라 그 다음 책도 샀다. 몰론 재미는 없었다. 이후 몇 권의 책을 더 샀지만 그냥 묵혀만 두었다. 그러다 읽은 <결괴>는 이전까지 알던 히라노 게이치로가 아니었다. 아주 재밌게 읽었고, 그 묵직함에 놀랐다. 아마 이 책이 분기점이 되어 작가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머릿속은 언젠가 첫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먼 훗날의 가능성이 아주 낮은 생각일지라도 이 생각은 그의 신작에 늘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그 연장선에 있는 책 중 한 권이 이 <한 남자>다.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재일조선인 3세 기도 아키라다. 조선인 이름을 사용하다 해외 여행할 때 여권의 국가가 문제될 것 같다는 이유로 국적을 바꿨다. 그의 의지보다 부모님의 의지다. 어릴 때 조선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살지 않아 특별히 국적에 대한 인식을 크게 하지 못한 그이지만 일본인 아내와의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다. 장모님이 한류 팬이라 그에게 한국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한글조차 모르는 재일조선인이었다는 설명은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혐한, 혐중이 강해지는 시대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그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리에의 인생에 대한 설명으로 작은 문을 연다. 물론 서에서 기도를 말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은 책을 다 읽을 때 즈음이다. 리에는 두 번 결혼을 했다. 한 번은 이혼을, 한 번은 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이혼 전에 아들을 병으로 먼저 보냈는데 이 일이 이혼 원인이다. 그 사유에 대한 간결한 설명은 함축적이지만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정도다. 두 번째 남편 다니구치 다이스케를 어떻게 만났고, 어떤 가정을 꾸몄는지 알려주는데 불행은 이 집을 비켜가지 않았다. 임업에 종사하는 남편이 쓰러지는 나무에 깔려 죽은 것이다. 본가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그이지만 죽음까지 숨길 수 없어 부음을 전했다. 그런데 그의 형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영정 사진을 보고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그는 누구?


기도는 이런 과정 속에서 등장한다. 그의 이력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어떻게 리에와 알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그는 이혼 당시 담당 변호사였다. 리에 이야기에서도 동일본 대지진을 말하는데 기도는 관동대지진을 떠올리며 한 시대의 비극과 불안감을 조금씩 연결시킨다. 관동대지진 당시 어떻게 조선인 등을 학살했는지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현실을 살짝 보여준다. 이런 현실과 혐한 분위기가 엮이고, 기도는 이전까지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리에의 남편이었던 다니구치 다이스케의 정체에 대한 의문과 이어진다. 리에의 요청에 따라 그는 다니구치 다이스케라고 말한 존재 X를 조사한다. 이 조사만 놓고 보면 탐정물이지만 그에겐 이 일은 부업일 뿐이다.


부업이라고 하지만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관련된 인물을 만나고, 실제 다니구치 다이스케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게 된다. 그러다 신분을 바꿔주는 사기꾼 오미우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다. 오미무라는 진실을 알지만 그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이 조사 과정에서 그는 서로 신분을 교환하는 일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된다. 오미무라가 던져준 단서를 따라가다 발견한 내용은 아주 불편한 현실이다. 자신의 호적을 서로 교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어떤 사연 때문에 교환까지 하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한국처럼 주민등록증 발급 당시 지문을 날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사실로 이어진다. 한국이라면 지문만으로 그의 정체를 쉽게 알았을 것이다. 왠지 씁쓸한 느낌이다.


결국 기도는 X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호적을 바꾸려고 했는지, 리에와의 결혼 생활 3년 반이 그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 신분을 바꾼 남자와 그를 조사하는 기도의 삶이 교차하면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섹스리스 부부의 불안한 삶과 자신의 정체성 문제 등이 엮이고, 꼬인다. 그리고 리에의 이혼과 결혼으로 성을 세 번이나 바꾼 아들 유토의 문제까지. 정적인 사회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동적이고 변화가 심한 사회 속에서는 다른 문제들을 만들어낸다. 쉽고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제목인 ‘한 남자’는 이 소설 속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X, 다니구치 다이스케, 기도 아키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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