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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 읽고 쓰기 2017-03-10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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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저/김남주 역
민음사 | 2008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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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이 물음표로 물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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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멜로드라마와 고전 그 사이의 어디쯤이라는 평가가 받고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 장르이든 수작들은 특정 장르에 가두지 말고 고전으로 분류하여 읽어야 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역시 그 형태와 내용이 연애소설에 가깝더라도 인간의 심리와 삶을 파고드는 틀림없는 수작이며 오랫동안 읽혀져야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프랑수아즈 사강 스물 네 살때 지어졌다고 한다. 작가가 스물 네 살이라는 나이에 이 작품을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의 연애와 사랑에 대한 감정은 매우 리얼하다. 작중 주인공인 폴이 서른 아홉으로 나오는데 스물 네 살인 작가가 어떻게 서른 아홉살 인물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하는지 읽는 내내 감탄했다. 주인공인 폴 뿐만이 아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인물들, 로제와 시몽의 심리묘사도 기가막히게 잘한다. 연인에게 버림받아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쉽게 그 연인을 놓지 못하는 폴, 사랑에 막 빠져서 열정에 사로잡힌 시몽, 연인에게 권태를 느끼면서도 소유욕과 안정감을 느끼는 로제 등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또한 모순적인 연애감정을 생생하고 설득력있게 묘사한다.

 1950년대의 프랑스 소설인데도 2017년 대한민국에서 느끼는 감수성보다 진보적이다. 프랑스가 그만큼 진보적인 사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묘사한 1950년대 프랑스는 이혼한 서른 아홉살의 여성이 결혼에 압박을 느끼지 않으며 연애를 하고 연하의 남자와 정신적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사회다. 이를 두고 주변사람들이 약간 수군거릴 뿐 그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탄압이 없다. 우리나라의 1950년대를 생각해보면 너무 큰 갭이다. 이 소설의 내용과 정서가 당시 프랑스사회에서 정말로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궁금하다.

 내가 이 책을 스무살 전에 읽었다면 어떻게 읽었을까. 지금은 폴의 우유부단함이 이해가 가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녀를 답답하게 여겼을 것이다. 시몽의 열정이 아름답게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시몽의 열정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추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 로제의 안정감과 소유욕을 탐욕이라는 단어로 단순하게 정리해버렸을 수도 있다. 이제는 마음이라는 것은, 특히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작품을 제목만 보고 골라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프랑수아즈 사강으로부터 나온 말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을 보면서 도대체 왜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묻는 것일까 궁금했다. 

 브람스는 슈만의 제자였다. 그리고 브람스는 스승의 부인인 클라라 슈만을 오랫동안 짝사랑했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나이 차이는 14살인데, 이 소설 속 폴과 시몽의 나이 차도 14살이다. 따라서 소설 속 시몽의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질문은 단순히 취향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폴은 시몽의 질문에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폴의 대답을 들은 시몽은 '사실 그 문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한다. 소설 속 시몽은 자신의 본래적 질문은 잊고 단지 폴이 브람스의 연주회에 올 것인가 오지 않을것인가를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사람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폴이 만약 '브람스를 좋아한다 혹은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면 이 소설의 전체 기조와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혹은 폴의 애매모호한 답에 시몽이 '좋아했으면 한다'고 밀어부쳤다면 그 대답 역시 소설의 전체를 바꿨을 것이다. 폴과 시몽의 브람스에 대한 애매한 평가는 곧 그들 사랑에 대한 평가나 다름없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제목에서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으면서 물음표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말 줄임표를 사용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 역자가 말하기를, 프랑수아즈 사강이 제목에 말 줄임표를 고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내 나름대로 며칠동안 틈나는대로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이렇다할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고작 문장부호 하나의 차이인데 느껴지는 어감은 전혀 다르다. 물음표가 확신이라면 말줄임표는 떨림과 불확실성, 주저하는 마음이다. 소설이 독자에게 물음표로 물었다면 이 소설의 결말은 바뀌었을까.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저 제목의 말줄임표는 작중인물들의 삶과 소설의 결말을 상징하는 것이 되버렸다. 
 
 "그녀는 전축을 열고 음반을 찾아보았다. 이미 외우고 있는 바그너의 서곡이 있는 음반의 이면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브람스의 콘체르토가 있었다. 로제는 바그너를 좋아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건 훌륭해. 좀 시끄럽지만 이런 게 음악이지.' 그녀는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부분이 낭만적이라고 여겼지만 음악 중간에는 듣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쉽게 생각했다." (p. 57)

 이 대목보다 이 소설을 더 잘 압축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브람스와 바그너는 라이벌 관계였다. 보통의 라이벌 수준이 아니었다. 브람스는 고전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는 입장이었고 바그너는 혁신적인 종합예술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였다. 두 사람의 인간성도 매우 달랐다고 전해진다. 브람스가 수줍음이 많고 진중한 성격이었다면 바그너는 활달하고 거침없었다고 한다.

 은근하고 순애보적인 시몽은 브람스로, 바람둥이에 거침없는 로제는 바그너로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로제와의 6년여간의 연애를 '이미 외우고 있는 바그너'라고 표현했고 시몽과의 연애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브람스의 콘체르토'로 표현했다. 결정적으로 폴은 브람스를 들으며 '첫 부분이 낭만적이라고 여겼지만' 결국 음악을 끝까지 듣지 못한다. 소설의 마무리까지 상징하는 장면이다. 처음 읽을 때는 결말까지 고려하지 못하였으나 브람스와 바그너 비유 그 자체만으로도 읽을 때 '아!'하고 탄성을 뱉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를 거쳐간 남자들이 떠올랐다. 내 삶에도 로제와 시몽이 있었다. 소설 속의 상황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 인물됨이, 그 마음들이, 그 행동들이 참으로 비슷했다. 대입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대입하게 되었다. 좋은 기억들과 나쁜 기억들이 떠올라 읽기를 멈춰야 할 때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괴로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웠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나에게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비록 말줄임표로 묻고 있지만, 나는 마침표로 답해야한다. 경쾌한 느낌표도 아니다. 단호하고 말끔한 마침표가 필요하다. 폴은 결국 로제에게 돌아갔다. 혹자는 폴이 시몽을 택했어야 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몽을 택하는 것도 반드시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몽의 열정이 언제까지고 계속될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타는 열정은 쉬이 식을 수도 있는 법이다. 나는 적어도 어떠한 형태든 폴이 결단을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마침표. 마침표로 삶과 사랑에 답하자.

 여담이지만 누가 나에게 브람스가 좋냐, 바그너가 좋냐 물으면 나는 브람스를 좋아한다고 답한다. 사실 브람스파와 바그너파가 치열하게 싸우면서 남긴 역작들만 고려하면 둘 다 좋다는게 내 답이다. 브람스와 바그너가 파를 나눠 싸우는 동안 음악 역사상 가장 다양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브람스의 인간됨됨이다. 전통을 고수하고 늘 진지하고 심각했던 그 자세가 좋다. 독신으로 지내며 클라라만을 바라본 미련퉁이 바보의 삶도 애잔하게 느껴진다. 정확하게는 그런 브람스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내가 브람스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다. 세파에 휘둘리지 않는 진지하고 반듯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불가능한 꿈을 꾸는구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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