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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의 예수경배의 기원 | 신학과 신앙 2020-04-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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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들을 경배함

래리 허타도 저/마이클 버드 편/송동민 역
이레서원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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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고기독론에 관한 짧지만 중요하고 유익한 책이다. 신학과 신앙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잘 보여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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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경배함_초창기 기독교 예배의식 속의 예수
Honoring the Son_ Jesusin Earliest Christian Devotional Practice

우리의 신앙의 주제와 예배와 사역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이시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한다. 오랜 신앙의 여정을 통해서 내게 선명하게 다가오는 고백도 바로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높이들리신 만유의 주이시며 구원자이시라는 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을 진지한 학문적 탐구로 저술한 것이 바로 이 책 <아들을 경배함>이다. 이 책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신앙고백의 적합성이 정교한 분석을 통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 래리 허타도는 35년동안 초기 기독교의 고기독론(high Christology)분야를 연구한 아주 탁월한 학자이다. 두껍지 않은 이 책안에 중요한 고기독론에 관한 중요한 논의가 담겨있다. 고기독론에 관한 중요한 학자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들이 제시되어 있고 각주도 아주 충실하다. 볼륨은 크지 않지만 내용의 밀도는 높은 책이다.

먼저 저자는 빌헬름 부세(Wilhelm Bousset)의 기독론의 고전인 Kyrios Christos를 논의의 기초로 삼고 있다. 부세의 책은 예수가 처형된 이후 가장 이른 시기부터 2세기 말엽에 이르기까지 존재했던 기독론적 신념과 예배의식을 광범위하게 분석한 것인데 그의 책에서 예수를 하나님과 함께 높이는 숭앙의 예배의식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난 뒤 몇개월, 길어도 몇 년 사이에 생겨난 것이고 저자는 이러한 부세의 주장을 마르틴 헹엘의 주장과 더불어 그의 중요한 결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곧 하나님에 의해 부활하시고 높이들리신 분으로 하나님과 함께 예배되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교의 배타적인 종교적 분위기에서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높임의 예배의식이 유대지역에서가 아니라 이교의 영향력아래 있어서 다수의 신들을 받아들이기 쉬웠던 디아스포라적인 배경에서 발생했을 것이라는 부세의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롤린스(Rawlinson)의 견해를 빌어 예수를 ‘주’로 부르며 그의 오심을 기원하는 아람어 어구인 ‘마라나타’라는 용어를 통해서 아람어를 사용한 유대지역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며 예배하였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그리고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예수높임의 현상이 그 당시 종교문화적 배경으로 매우 배타적인 ‘변이’일수 밖에 없는 이유를 로마시대의 신들에 대한 종교관행과 유대인들의 하나님만 높이는 배타적인 신관을 배경으로 설명한다. 로마시대는 다신교 사회로 각 지역신이 존재하였고 그것을 숭배하는 일은 대단히 일상적이 일이였으며 그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숭배하지 않는 것은 사회의 안녕을 해치는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오직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배타적인 신관을 가진 유대교는 이러한 로마의 신들에게 절하지 않으므로 로마인들에게는 오히려 무신론자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러한 배타적인 신관을 가진 유대교에서 예수를 하나님과 동등한 신으로 높였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변이’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특별한 이례적이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어떤 신들에게도 예배하지 않는 배타적인 유대교내에서 발생한 유대 기독교의 예수 숭배의식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를 지극히 높은곳으로 올리셨고 자신과 함께 경배받을 만한 지위를 부여하셨으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초대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높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높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허타도는 이러한 예수높임현상을 다른 학자들처럼 신조나 고백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찬송과 기도 기원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초기 바울서신을 통해서 그 당시 예배의식에 사용되었던 기도찬송기원을 통해서 예수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예배되어졌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였다. 허타도가 다른 신학자들과 구별되는 지점은 신학자들이 주로 기록된 문서를 통해서 자신을 견해를 펼쳐나가지만 허타도의 특징은 기록된 문서자료 뿐 아니라 그당시 예배의 관습 그리고 사용되어졌던 시, 찬송, 기도 그리고 심지어 종교적 경험까지도 모두 자신의 신학을 형성시키는데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기록된 문서자료는 모든 현상이 지나고 난 이후에 가장 늦게 개념적으로 정리되지만 실천적 내용들, 관습이나 예배의식, 그리고 종교적 경험은 가장 먼저 현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표현한다. 따라서 허타도는 이 모든 것을 재료를 삼아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 갔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였다.

이 책 [아들을 경배함]의 모든 내용은 단 두개의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그 두 용어는 henotheism과 dyadic이다. 전자는 고기독론이 나온 종교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용어이고, 후자는 고기독론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발생했던 고대 유대교는 유일신론(monotheis)이 아니다. 유일신론은 단지 하나의 신만이 존재한다는 개념인데 초기 기독교가 발생한 유대교적 배경은 다신교적 배경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종교적 배경을 설명하는 용어로서 유일신론(monotheism)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일신론이 아니라 단일신론(henotheism)이 적절하다고 말한다. 단일신론(henotheism)은 여러신중에 오직 하나의 신만 선택해서 섬긴다는 개념이고 이것이 고대 유대교적 배경에서의 유일신론에 더 적절한 용어라고 한다. 또 저자는 하나님과 함께 예배를 받이시는 예수-높임현상을 ‘이중적(dyadic)’예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위일체적(binitarian) 이라는 용어 사용은 삼위일체 논쟁에 대한 부담으로 이중적이라는 용어로 대체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위일체적’이라는 용어가 동등하게 예배받으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특별한 관계를 더 잘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이중적’이라는 말은 왠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별개의 두 신들에 대한 예배라는 느낌이 든다.

분석적인 신학책이라 쉽게 읽히지 않고 한문장 한문장 꼽씹고 생각해야 하는 고통(?) 있지만 정말 마음과 입에서는 찬양이 나오게 하는 머리는 차갑다 못해 아프게, 가슴은 뜨겁게 만드는 이위일체적인 책이다. 그래서 '교회를 위한 신학 시리즈'인가보다. 유익하다.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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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이공간.. | 이야기 속으로 2016-09-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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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그리운 공간..

열심히 써내려갔던 독서의 편린들이 지금 돌아보면

참 많이 나를 성장시켰던 것 같다..

 

지금은 먼 타국에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웬지 다시 돌아와야될

고향같은 느낌..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블로그 친구들이 존경스럽고 그립기도 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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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개월만의 포스팅.. | 매일의 발걸음 2016-01-0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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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5개월만의 포스팅이다..

그래도 늘 나만의 놀이공간이였던 이곳이 그립고 좋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일이 가득하시길..


in Is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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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삶을 위한 나침반.. | 철학과 역사 2014-07-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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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크라테스 예수 붓다

프레데릭 르누아르 저/장성훈 역
판미동 | 2014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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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책을 좋아한다. 그의 책을 몇권 읽어보았는데 그는 기본적으로 종교학자이지만 교의적으로 종교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그의 태도와 종교를 기술하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았다. 종교는 주로 교리적으로 그 종교적 범주안에서 통용되는 방식의 언어를 사용하여 세속적인(?) 사람들에게는 주로 친절하지 않거나 아예 배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상당히 친절하며 인문학적이다. 이 말은 종교를 인문학으로 희석해 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당히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비종교권에 있는 사람들도 종교적 교의를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준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진술방식은 신선했고 상호이해적이였다.

 

저자의 책중에 가장 먼저 접하고 가장 인상적인 책은 <그리스도 철학자>였다. 나는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 교의를 진리로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교의를 어떻게 무리없이 인문적으로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이러한 것은 변증이라고도 한다-고민하였다. 그러던 와중 저자의 <그리스도 철학자>를 읽고 상당히 만족하였다. 철저히 검증된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에 접근하면서도 기독교 교의를 더욱더 잘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은 복음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보통 종교학자들이 기독교 교의에 접근할 때는 예수의 생애에 가장 근접한 1차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각색하기도 한다. 그러한 책중의 한권이 최근에 나온 레자 아슬란의 <젤롯>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합리적이며 지식적이지만 결론은 결국 1차 자료가 아닌 본인의 추론에서 나온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종류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고 바트 어만 같은 저자는 아예 복음서의 내용을 부정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저자 프레데릭 르느와르의 종교적 저술에 상당히 신뢰감을 얻는다. 그의 진술방식와 자료를 선별하는 방식은 철저히 검증된 것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왜곡될수 있는 자료들은 과감하게 버린다. 이러한 태도에 신뢰가 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른 모든 책들도 상당히 신뢰감을 주는 책들이였다. 이 책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가 출간된 것을 보고 읽어보고 싶은 매력을 느꼈다. 이 책 또한 이전 저술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인류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고 종교적 거두로 인정받는 이 세사람을 그들의 실존부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 나아갔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 세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 세사람이 전하는 메시지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나 것인지 1부, 2부를 통해서 천천히 그리고 설득력있게 조근조근 들려준다.

 

먼저 그는 서문을 통해서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지를 설파한다. 현대사회는 소비의 사회로 졍제적인 가치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면 좋은 것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라고 말한다. 천박해진 사회, 참된 인간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성찰이 없는 위기의 사회에 이 세사람을 소환해내어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메시지를 들으며 다시한번 참된 인간과 삶과 행복에 대해서 묻고 그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1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의 실존에서부터 생애, 그리고 죽음까지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이용해서 학자들에게 상당히 합의가 이루어진 내용들을 기초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1부를 통해서 종교적 인물로 승화된 이 세사람에 대한 믿을만한 지식을 얻게된다. 이 세사람에게는 몇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기록을 남기지 않앗다는 것과 권력에 초연했다는 것, 그리고 물질에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 세사람 중에서 예수에 대해서는 기존학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예수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전작 <그리스도 철학자>에서 읽고 느꼈던 뉘앙스를 인지할 수 있었다. 2부는 그들의 가르침으로 나아간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을을 불멸, 진리, 자유, 정의, 사랑 등의 키워드로 각자에게 어떠한 의미인지 설명하면서 그 차이점을 드러내지만 통합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상당히 포괄적인 저자의 저술 방식처럼 이 책에서도 저자는 상당히 합리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 세사람의 포괄적인 메시지를 포착해 내어서 현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인간의 삶인지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 책은 그야말고 경제적 가치가 최고이고 소비의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 이 시대에 다시한번 정신적인 삶, 그리고 의미있는 삶, 그리고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적어도 한번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진정한 삶은 무엇인가? 인류 역사에서 모든 성인들이 고민한 것들은 나도 고민하면서 이러한 것이 참된 인간적 삶의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뛰어난 저자가 말한 모든 진술들을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다시한번 인간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 고민하게 해주었다.

 

이 책은 읽으면서 저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학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가 예수와 성경에 대해서 보는 시각은 교의적 느낌을 배제했지만 합리적 언어로 교의의 큰 그림을 그려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저술 방식에서 내가 믿는 진실에 대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며 변증하며 세속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에게 어떻게 징검다리를 놓아주어야 할지에 대해서 배웠다. 정말 저자의 책들은 나에게 모두 읽어볼만한 책이고 유익한 책들이였다.

 

지구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리저리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하나는 상업적이며 물질적인 가치관, 다른 하나는 종교적 광신과 교조주의다. 서로 다른 듯 보이는 두 흐름은 세계를 혼돈으로 만들어, 인간을 ‘소유’의 논리에 묶어 놓고 어린애 다루듯 자신의 지배를 따르게 한다. 나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책임 의식을 갖춰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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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마케팅 기법 | 경제와 경영 2014-07-2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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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두에게 주고 슈퍼팬에게 팔아라

니콜라스 로벨 저/권오열 역
와이즈베리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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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든 사회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적 삶의 환경은 소비환경이라는 것이다. 소비는 현대를 정의해주고 현대인들을 정의해주는 중요하 키워드이다. 소비사회가 가치가 전도된 부정적인 면도 많이 있지만 소비자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도록 해준다는 측면에서는 자유인의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상당히 제한된 자유이지만 말이다. 이 책 <모두에게 주고 슈퍼맨에게 팔아라>는 21세기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curve'이다.

 

이 제목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주고 슈퍼맨에게 팔아라>라는 제목을 바뀌었을까. 원제 ’curve'는 고객들이 찾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으로 소중히 여겨 사고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연하게 알아내어 결국 돈을 쓰게하는 유연한 마케팅 기법이 바로 ’curve'이다. 하지만 한국어 제목 <모두에게 주고 슈퍼맨에게 팔아라>가 더 책 내요을 잘 설명해주는 제목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객의 지갑을 열게하는 방법은 고품질의 정보와 상품을 공짜로 제공하고 디지털 음원같은 것들을 공짜로 다운로드 하게 하므로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포지셔닝 시키고 인지도를 높인 다음에 그것을 고가로 특별한 슈퍼고객에게 판매하라는 전략이다.

 

현대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학적 인간론이 많이 바뀌면서 새로운 인간형들의 지갑을 열기위해 행동경제학이 발달하였고 그러한 이론에 힘입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개발되었다. 이 책은 새로운 마케팅 기법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불특정한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슈퍼 소비자들을 잡으라고 한다. 그러한 슈퍼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매우 높기 때문에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인지도를 높인다음에 슈퍼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방법이 현대 사회에서 매우 유익한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그 방법론들이 매우 다양하게 소개되어 있고 실제로 마케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는 많은 소스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박리다매 방법이 아니라 거리소매의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적게 팔면서도 엄청난 이윤을 남기는 방법말이다. 그것이 바로 <모두에게 주고 슈퍼맨에게 팔아라>이다.

 

커브를 단순하게 수익화 전략으로 분류하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커브는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한 마음속 이미지를 ‘뭔가 팔 것을 만드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먼저 팬들과 관계를 구축하고 그들이 지갑을 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후, 그들이 푼돈에서 거액에 이르는 다양한 양의 돈을 쓰게 하는 것이다. 이때 기술을 도구로 이용해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수요 곡선을 따라 고객들을 이동시킬 수 있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점점 더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고 있고, 그 사업에서 당신이 맡은 역할이 무엇이든 당신 역시 소비자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이제 영업, 재무, 고객 서비스, 제품 디자인, 행정 등의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 모두가 자신이 마케팅 조직의 일원임을 인식해야 한다. 당신의 비즈니스를 제품 판매업에서 서비스 판매업으로 전환하는 일은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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