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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지만 | 기본 카테고리 2021-03-08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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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고정순 글그림
만만한책방 | 2020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늙은 산양은 죽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태어나 일상을 영위하던 집에서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깊은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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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가까워지면서 언제 죽어도 자연사라고 노래했다. 그러면서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말을 인용하셨다. 아니, 일흔도 안 된 분이 왜 고희를 들먹이시나, 그러면서 언제 죽어도 자연사라니, 사고사면 사고사이고 타살이면 타살이지 왜 자연사인가. 당신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당신의 뜻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선뜻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른 선생님은 당신의 꿈은 자연사라고 하신다. 그것은 어렸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한참 꿈 많은 시절 화려한 인생 설계를 하는 동무들 속에서 소녀는 자연사가 꿈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어른들 표정은 어땠을까. 그러나 우리의 현재를 보면 얼마나 자연사하기 어려운 사회인지 자연사를 꿈꾸는 게 현명해 보인다.

 

죽음은 늘 낯설다. 친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죽음은 도처에 있고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 언제 어디서든 곧바로 죽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니 늙은 산양은 행운이 따른 존재다. 적어도 늙는 과정을 겪은 존재이고 지금 늙음의 최고조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신세이다. 물론 산양에게도 젊고 멋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옛날 이야기이다. 산양은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자리에서 일어나던 늙은 산양은 힘없이 지팡이를 떨어뜨린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지팡이를 떨어뜨린다. 산양은 혹시 죽을 날이 가까워진 것이 아닐까 여기며 가만히 앉아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죽기 딱 좋은 곳을 찾아 떠난다.

  

늙은 산양은 무작정 길을 떠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젊은 시절 멋지게 달리며 피끓는 혈기를 발산하던 들판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그곳은 자신이 누빌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혈기방창한 젊음들이 마구 달리기에 자기처럼 늙은 산양은 죽기에 너무 시끄럽다고 여긴다. 늙은 산양은 젊은 시절 단숨에 오르고 내리던 높은 절벽을 상상한다. 절벽을 오르니 절벽은 오르고 올라도 절벽이다. 높아도 너무 높은 절벽. 늙은 산양은 숨이 턱 하고 막힌다. 절벽을 오를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산양은 강을 찾아 떠난다. 젊은 날 시원하게 지내던 강에 도착한 산양은 잠시도 그곳에 머물고 싶지 않게 된다. 강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늙은 산양은 죽기 딱 좋은 곳이 생각나지 않았어.

 

“집으로 가자.”

 

멋지게 죽고 싶은 늙은 산양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일상이, 일생이 있는 장소. 집은 우리가 살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가장 좋은 장소에 지은 거처가 집이다. 삶이 가장 좋은 곳이 곧 죽기에도 가장 좋은 곳이 아닐런지. 실제로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리 외삼촌 같은 경우는 죽을 날이 다가오자 죽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식구들에게 인사를 한 뒤 곡기를 끊어버렸다. 위엄 있는 죽음. 우리 외삼촌 같은 사람이 예전 우리 마을에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죽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늙은 산양의 선택이 이와 다르지 않다. 늙은  산양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고 일상을 영위하던 바로 그 공간, 집에서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깊은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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