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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 신동욱 | 철학과 역사 2021-04-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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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신동욱 저
포르체 | 202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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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교훈을 얻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고 말하지만 그 교훈은 나에게 위로가 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무리 많이 들어봐야 잔소리나 소음으로 들릴 뿐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역사 속 이야기가 내 삶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옛날 누군가에게 지나갔던 일들이, 지금 내가 살아가면서 지나가고 있는 일들과 닮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배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로를 얻게 된다.

 - p. 7 中에서 -


 어렸을 적 책장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책의 대부분은 위인전이었다. 부모님께서 아예 전집으로 구매를 해주셨으니 그 시절 나의 책장에는 동화보다 오히려 위인전이었던 셈이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역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위인전을 읽는 근본적인 목표, 즉 역사 속의 인물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게 되었다. 비록 그 꿈이 달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지를 생각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저 온갖 역경과 고난을 노력을 통하여 극복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라는 위인전의 클리셰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의 서문에 등장하는 저자의 역사를 배우는 중요한 이유에 대하여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교훈을 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정작 그것을 읽는 사람과는 별개의 것이라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자칫하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위인들의 삶은 훌륭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본받아야 한다고 맹신하게 된다면 오히려 유연하게 대응해야 할 상황에서조차 고지식하게 원리와 원칙만을 주장하며 일체의 타협이나 변화를 부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은 분명 그 대상은 기존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 인물들을 다루고 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들의 행적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삶의 지혜와 교훈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책이다. 더구나 저자가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비슷한 시선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심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역사 속 인물들을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1. 불확실의 시대에 [역사 속 인물]을 배우는 이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개인의 삶은 크게 달라지니 선택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져 간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선택은 곧 역사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누구나 공감하고 또 고민하는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뜻밖에도 성삼문과 신숙주를 통하여 설명한다. 성삼문은 사육신 중 하나로 단종복위를 추진하다가 결국 절개를 굽히지 않고 죽음을 당한 인물이며 신숙주는 세종에게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결국 세조에게 돌아선 인물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 둘을 비교하며 성삼문은 충신으로, 신숙주를 변절자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자는 성삼문이 충의를 선택한 것과 마찬가지로 신숙주가 살아남아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나라와 백성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 말하고 있다. 선택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이들의 행보 역시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신숙주가 살아남아서 내정과 외교에 기여한 부분을 본다면 하나의 선택이 반드시 선이나 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의견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멀리 내다보면 선택에 정답이란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우리는 성삼문과 신숙주의 사례를 통하여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둘의 선택이 관점에 따라 각각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선택에 관하여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례에 대하여 저마다 다른 교훈을 도출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좀 더 긴 호흡과 역사적 안목을 갖고 바라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나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며 선택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다. (중략) 자신 나름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공동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선택을 했다.

 - p. 21 中에서 -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기에 대부분의 선택은 개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추가하여 공동체의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의 균형추를 맞추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으로 형성이 되었다. 이들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상황은 우리 역시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니 이들의 선택을 단순히 옳다, 그르다라고 판단하기보다는 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지 개인과 공동체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그들의 선택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충분히 참고가 될 것이다. 

 

 2. 내가 구원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다.

 개인적으로 유독 한국 현대사에 대하여 아직까지는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책에서 다룬 김병로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법원장을 지낸 이 인물을 통하여 진정한 보수는 과연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늘날 정치권에서 진보 또는 보수를 외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대부분 그들이 진정한 보수 또는 진보가 아닌 그저 사적인 이익을 공고히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나로서는 김병로가 걸어온 길은 보수라는 정치적인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변호사로 활동한 엘리트였다. 그 시절 많은 엘리트들이 친일에 가담하여 변절하였던 것과는 달리 그는 변호사 생활을 포기하고 창씨개명조차 거부하면서 시골로 들어가면서 그 절개를 지켰다. 그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옹호한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 와중에 인권 변호사로서 사람을 우선 생각하는 입장이었기에 공산주의자에 대한 변호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가 해방 이후에 대법원장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이승만은 내심 불편했다고 한다. 실제로 김병로는 사사건건 이승만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둘다 반공에 보수를 외쳤지만, 김병로는 친일파 단죄에 앞서며 반민특위법에 지지하였지만, 이승만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병로의 행적을 보며서 오늘날 정치인들을 보며 과연 저것이 보수인가 또는 진보인가라는 의문에 대하여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보수의 의미를 개인의 확고한 가치관과 정치적인 신념으로 삼으면서 실제 그에 맞게 행동한 김병로의 행보를 보면 오늘날 정치인들이 자신을 보수니 진보니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정치적인 신념을 표방하기에 앞서 그에 맞게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입으로만 정치적인 신념을 운운하는 현재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실망하며 불신하는 것은 아닐까? 정작 본인은 바뀌지 않은 채로 무조건 바꾸는 것이 진보도 아니요, 친일파 단죄를 외면한 채 기득권 유지에만 신경쓰는 것 역시 보수가 아니다.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으며 진정한 보수주의와 민족주의자였던 김병로의 삶을 바라본다면 오늘날 가짜 보수와 진보가 활개를 치는 우리의 상황을 보다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3. 소란한 시대에 [관계]에 대한 고찰

 사회에 속한 인간은 가깝게는 가족과 친족은 물론 타인과 무수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관계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사람과 그 상황에 맞는 관계를 설정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변화무쌍한 관계를 하나의 관점이나 특정한 감정에 기대어 대하게 된다면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백제의 중흥을 이끌었던 성왕의 행보는 이러한 '관계'와 관련하여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신라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한강 하류 지역을 확보하였지만, 진흥왕의 배신으로 결국 한강 유역을 신라에게 빼앗기게 된다. 명분과 실리라는 측면에서 분명 성왕은 신라에 대한 응징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는 신라를 공격하지만 도리어 관산성 부근에서 신라군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잃게 되며 그 이후로 백제는 점점 쇠약해져 간다. 

 

 성왕의 사례가 오늘을 사는 일반인과 너무 거리가 멀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가의 운명을 쥐고 행한 일들이 과연 소시민의 관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고 배신당했다는 기분에 분노에 사로잡힌 성왕의 상태는 우리 역시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들이다. 친구 사이에서 혹은 직장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렇기 때문에 성왕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며 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통하여 그러한 상황에서도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라면 기꺼이 이용당해 주자. 다만 그것이 상대방의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나의 호의임을 분명히 알려주자. 상대의 행위가 선을 넘는다면 단호히 거절하면 될 일이다. (중략) 그저 나는 나대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것이 최고의 복수이자, 진정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다.

 - p. 175 中에서 -


 다소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교훈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을 부품처럼 또 이리저리 이용하던 직장 상사에 대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여 그보다 먼저 진급하여 윗사람이 되어 복수를 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저자의 말처럼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감내할 범위 내에서는 순응하면서 그 와중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교훈이 될 것이다.

 

 4. 불안한 시대에 [나]를 지키는 법

 박연이라는 인물은 조선 세종 시기에 국악을 정비한 인물로 역사에 짧게 언급되는 것이 전부였다. 나조차도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이러한 박연에 대한 이 책의 이야기는 현재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고민과 와닿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우선 박연은 양반 출신으로서 음악의 천재였다. 하지만 비록 공자가 예(禮)와 악(樂)을 강조하였지만, 양반인 박연이 음악을 평생 업으로는 삼을 수 없었다. 보통 다른 위인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공한 사례가 많았지만, 박연은 일단 과거 준비를 하고 또 급제를 하는 당시 양반들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박연은 다행히 세종의 후원을 통하여 음악을 관장하는 일을 맡게 되었으니 그는 자신이 원하던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자는 박연의 사례를 통하여 '사이드 프로젝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꿈을 꾸지만 현실은 자신의 관심사와는 별개의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나의 관심사와는 너무나 다른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요즈음 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회사 밖에서 내가 과연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그걸로 먹고 살 수 있을지라는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연의 사례는 자신의 관심사와 현실을 모두 충족시킨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그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지만, 우선 잠시 그것을 내려두고 과거를 통하여 벼슬에 나아갔다가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과거라는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갔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 낸 점을 생각해보면 현재 회사에 다니면서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을 회사 안에서 찾아보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 역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역사에 대한 글쓰기를 꾸준히 했던 것처럼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이외에 본인의 관심사와 연관된 일을 찾아서 병행하게 된다면 나중에라도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꿈을 좇아 당장 떠나라는 비현실적인 충고보다 이 얼마나 현실적인 조언인가?

 

 5. 무례한 시대에 [품위]를 유지하는 법

 과연 '품위'란 무엇일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으레 그것을 성공과 연결지어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돈을 많이 벌어야 품위를 유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유자광은 서얼 출신으로서 공신의 칭호를 받을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이룬다. 경직된 신분 체계의 조선 사회에서 서울인 그가 이시애의 난을 비롯하여 기회가 왔을 때마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 능력을 보였으니 이 부분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 성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타인에 대한 비방과 모략을 일삼다가 결국 유배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춘원 이광수는 그 시대에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의 작품 [무정]은 지금도 교과서에 언급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변절로 돌아섰다. 조선의 자주독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철저한 친일파가 된 것이다. 해방 이후 그는 결국 6.25 전쟁 기간에 납북되어 폐렴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들의 삶은 대부분 성공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성공은 당시 기준에서 성공이었다. 심지어 그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으며, 그들의 끝은 성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성공 또는 실패는 결과가 아닌 한 인간의 삶에서 무수히 나타나는 진행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성공과 실패 역시 기준과 관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그리 슬퍼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만의 기준을 설정하여 그에 이르기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요 그것이 '품위'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삶에서 결과가 어디있겠는가? 굳이 결과를 찾는다면 그것은 삶의 끝인 죽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끝없는 진행의 과정으로 인생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스스로 자신에 맞는 '품위'의 의미를 찾고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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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 - 윤혜진 | 에세이 2021-04-0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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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

윤혜진 저
인간사랑 |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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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이제는 정해진 길을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것과 같은 생각도 든다. 100세 시대에 아직 한창이라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요즈음 내가 직면한 현실이 그러하다. 얼마든지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통하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는 하지만, 막상 그것을 현실로 옮겨보려고 하면 무언가 큰 벽을 마주하거나 또는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래서, 정말 이 길이 내가 원했던 길인가라는 의문이 하루종일 엄습하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딱히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는 이러한 나에게 잠시나마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또 현재 나의 상황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게 해 준 책이라 할 수 있다. 20대 초반부터 채 10년이 되지 않은 저자의 과감한 도전 과정은 사실 내가 그 시기에 걸어온 길과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의 상황이 아마 그 시기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 책의 내용은 한 청춘의 성공담보다는 나를 비추는 거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무스펙, 전문대 졸업, 2차 병원에서 아랍에미리트 최고 병원에 가기까지"

 책의 뒷면에 인쇄된 이 문구가 참 인상적이다. 저 문구에 압축된 저자의 현재의 삶 또는 걸어온 과정이 나하고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스펙을 쌓기 위하여 나름 괜찮은 학교와 직장에 가려고 노력하였음에도 현재 나의 상황은 저자의 "아랍에미리트 최고 병원"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외형적으로야 비슷할 수도 있지만, 저자가 스스로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가 간호사라는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조건은 그리 만족스러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음을 언급하고 있으니 말이다.이 시점부터 나는 저자와는 너무나 다른, 그래서 현재 내가 처한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을 찾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저 무난한 길을 지향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간호사의 현실과 체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분명 저자의 "무스펙, 전문대 졸업"은 좋은 조건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간호사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기 위하여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더 많이 배우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치열한 자기계발을 통해 CCRN(중환자전문간호사), NCLEX(미국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였고, 또한 해외에서 근무를 위하여 영어에 매진하였다. 이에 반하여 나는 무난함을 지향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느 정도 괜찮은 조건을 만들고 또 그 조건을 바탕으로 무난한 회사에 취업을 했으니까. 이러한 성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장인에게 자기계발을 강조하지만, 나는 그저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정 조건, 예를 들어 토익 등급과 자격증 획득과 같은 기준을 충족할 정도로만 자기계발을 하였고 그 조건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업무 역시 신입 시절을 제외한다면 그저 맡은 일에만 충실히 할 뿐 딱히 욕심을 갖고 더하지 않았으니 그저 완만한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셈이다. 변화에 대처하고 도전하려는 것이 부족하다보니 최근 내가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다보니 더 바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던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실행력'이다. 새롭게 맡은 일을 하거나 변화에 앞서 나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일단 꼼꼼하게 준비를 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 일 또는 변화에 대하여 나름 많은 자료와 조사를 통하여 분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나 또한 저자와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실행력'의 차이에 있었다.


 '망설일 게 뭐 있나, 일단 해보는 거지.'라고 매일 다짐했다. '일단 나와보면 뭐라도 일어나겠지. 일단 공부해보면 뭐라도 얻겠지. 일단 시도해보면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작'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 p. 20 中에서 -


 저자는 꼼꼼하게 생각하고 계획한 바를 '일단'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나는 '일단'이 아닌 '하게 되면' 실행에 옮겼으니 이 차이가 아마도 저자와 내가 처한 상황에 큰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일이 주어지면 무조건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야근과 주말 특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분명 일정 부분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주어지면' 한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 회사인데, 굳이 나서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머릿속에서는 그 일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수많은 생각이 활발히 일어날 뿐이다. 이로 인하여 저자의 말처럼 그저 생각만하고 시작을 하지 않으니 시작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또한 머릿속의 생각과 준비를 실제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문제들을 분명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저자와 달리 난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면서 그저 무난함과 편안함으로 그것들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제는 이러한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아예 변화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생각조차 멈춘 상태가 되었으니 저자의 도전은 나의 사회생활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근 내가 맡은 업무는 이러한 상황에 안주하면 스스로 도태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그 쉽지 않은 도전과 여정이 현실로 느껴지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누군가의 성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전형적인 내용처럼 보여질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저자가 도전 과정에서 겪은 일들은 어느새 내가 이제서라도 다시 가야할 방향에 대한 과정으로서 공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저자가 현재 근무하는 4번째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그녀의 도전이 순탄치 않았으며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점은 더욱 현실처럼 느껴지게 된다. 대부분 '하면 된다'라는 모토와 함께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했다라는 공식과는 달리 저자는 한국 병원에서 생각했던 간호사에 대한 괴리감과 부조리한 현실을, 아랍에메리트에서 처음 근무하게 된 한국계 병원에서 느껴야 했던 실망을 뒤로 하고 그 와중에 동료로부터 배우고 또 자기계발을 통하여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었으며, 이 책을 쓴 시점 역시 성공의 정점이 아닌 여전히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저자의 눈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병원과 간호사의 현실을 들 수 있다. 언론 보도를 통하여 '태움 간호사'로 대변되는 의료계의 경직된 위계 질서를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군대를 연상케 하는 사소한 행동에 대한 꼬투리와 직급에 따른 상상조차 하기 힘든 그 위계질서는 24시간 환자들을 챙기고 살펴보느라 힘든 간호사들에게 더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단 이런 현실이 꼭 간호사와 의료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나름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와서 변화가 강조되는 회사에 근무하는 나로서도 이런 분위기는 항상 느꼈으며, 나 역시 회사 생활이 오래되면서 그 위계 질서에 살짝 묻어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평적인 관계 형성을 위하여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 이러한 분위기가 여전히 만연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같은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가 현재 저자가 근무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병원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의 병원 생활을 통하여 저자가 느낀 부분 역시 오로지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으로만 보기에는 어렵다는 점도 눈에 띈다. 즉, 다르다는 것에 대한 공감 부족'죄송합니다'를 달고 사는 저자의 모습은 한국인의 공통된 정서이자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을 틀린 것으로 또는 뒤처지는 것으로 생각하여 오로지 남들과 다르지 않기 위하여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한국인에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표어가 등장한 이유도 어쩌면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에 취하여 그 변화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또한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것이 과거에는 겸손함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인식되었지만, 그것이 이제는 아예 생활양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분명 문제라 할 수 있다. 나 역시 분명 업무에 관한 협조를 구하는 메일이나 전화를 걸 때면, 일단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지만'이라는 상용구를 떨쳐낼 수 없으니 저자가 외국에서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외국인을 보았을 때의 자괴감은 더욱 컸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부분을 놓고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체험 수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한국인 특유의 완벽함에 대한 추구 내지는 그것을 제일로 생각하는 것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의 지적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대목은 이 책이 한 개인이 아닌 한국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부분들은 저자가 간호사로서 성공하기 위하여 외국에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에서 자신의 기존 관념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저자의 시도 자체가 여전히 경직된 한국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저자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시점은 흔히 말하는 스펙 부족에 따른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가 이후 보여준 자기계발의 행보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노력과 성과가 한국에서는 거의 통하지 않았기에 외국 진출을 모색하였다는 점은 저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하는 한국 특유의 경직성이 아닐까?

 

 비록 걸어온 길은 너무나 달랐지만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때문에 [아랍에미리트로 떠난 간호사]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의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함께 과감한 실행력은 스스로 자원하여 새로운 업무를 뒤늦게 맡은 나에게고 분명 귀감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저자는 2020년에 현재 다니고 있는 병원에 입사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의 성공담보다는 치열했던 도전의 과정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곧 30대에 접어들 저자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 그녀의 상황이 그 도전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이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후 그녀의 행보에 대하여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이 책도 스스로 출판사를 찾고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하여 쓴 것이라고 하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녀의 다음 행보 역시 다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의 노력과 과감한 실행력이 끝까지 빛을 발하기를 응원하며 다시 한 번 책으로 만나보기를 기대해본다. 

 


 이 리뷰는 출판사 인간사랑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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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 1, 2 - 오세영 | 한국소설 2021-04-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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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자산어보 1,2 세트

오세영 저
문예춘추사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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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약전(1758년(영조 34) ~ 1816년(순조 16))

 :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다산 정약용의 형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있다가 벼슬에 오른 정약용의 권유로 벼슬길에 나서게 된다. 훗날 이승훈, 이벽과 같은 남인 인사들과 친밀하게 지내다가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을 접하고 천주교에 관심을 가졌지만, 훗날 동생인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를 멀리 하였다. 그러나, 신유박해(1801)로 인하여 신지도에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인하여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며 유배 생활 16년에 유배지에서 사망하게 된다. 

 

 자산어보(玆山魚譜)

 :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쓴 책으로서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흑산도 연해의 어족을 다룬 어보(다만, 그림이 아닌 글 위주로 되어 있다.)로서 어류와 갑각류, 조개류에 대한 정보가 상세히 적혀져 있다. 예전 문헌을 참고한 내용도 있지만, 현지인들의 증언과 직접 관찰한 것을 토대로 쓰여졌다. 원래 '흑산어보'라 이름을 지으려고 하였지만, 정약전이 '흑산'에 나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되어 '자산어보(玆山魚譜)'라 명명하였다.


 오랜만에 흥미로운 역사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 바로 오세영 작가의 [자산어보(玆山魚譜)]이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쓴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인 다산 정약용에 비한다면 정약전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은 말로만 듣던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저술 과정과 더불어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의 삶을 역사적인 사실과 저자의 상상을 통한 재구성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기대된다. 특히 역사소설의 큰 흐름과 결말은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뻔한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약전과 그의 저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역사에 짧막하게 기록된 것이 전부이기에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정약전의 유배지에서의 삶과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작가의 창작과 상상력이 발휘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정약전은 정약용의 형으로서 그 역시 동생만큼이나 실학에 무척 관심이 많았으며 천주교를 믿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정에서 점점 천주교에 대한 탄압의 움직임이 생겨날 무렵에 약전과 약용은 천주교를 멀리 하였다. 하지만 정조의 죽음과 함께 정순왕후가 수렴첨정을 하면서 벽파가 정권을 잡았고, 이들은 '신유박해(1801)'를 일으켜서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동시에 정조에게 신임을 받던 사람들까지 거대한 피바람의 회오리에 끌어들였다. 정약전의 동생이자 정약용의 형이었던 정약종은 끝까지 천주교를 고수하였다가 순교하게 되었으며, 정약전의 조카 사위(큰 형의 사위)였던 황사영은 그 유명한 '백서 사건'으로 인하여 결국 정약전과 정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이렇게 정약전이 홀로 흑산도에 도착하여 유배 생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정약전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짧막하게 '창대'라는 섬사람의 도움으로 저술할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창대라는 실존 인물에 숨결을 불어 넣어서 정약전의 흑산도 생활을 재구성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상세한 제작 과정과 함께 거기에 기록된 흑산도 주변의 다양한 물고기에 관한 내용을 떠올리겠지만, 생각보다 '자산어보(玆山魚譜)' 자체에 관한 내용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저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사실 '자산어보(玆山魚譜)'와는 큰 연관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책은 단순히 '자산어보(玆山魚譜)'로만 알려진 정약전의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것이 전부일까? 분명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이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상관이 없지만, 역사소설은 그 창작의 영역이 역사와 연관성이 있게끔 느껴져야 의미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도대체 왜 저자는 그러한 에피소드들을 등장시켰는지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저자가 이 에피소드들을 통하여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의 삶이 아닌 그의 이상과 당시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먼저 첫번째 에피소드로 등장하는 '냉수괴(冷水槐)'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자.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면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상어에게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고 평소 물질에 익숙했던 해녀들이 아무런 외상이 없음에도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을 조선의 탐정으로 설정하여 미지의 사건을 풀어내는 이야기 또는 영화처럼 이 대목은 흑산도에서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정약전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변고를 용왕의 노여움이라고 생각하며 무당을 통하여 굿을 해야 하는 주민들과 달리 정약전이 보여 준 행동은 단순히 추리소설과 같은 스릴과 재미를 주기 위한 에피소드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문헌들을 살펴본 바, 틀림없을 것이네, 세상에 이유 없는 변괴란 없는 법. 쓸데없는 미신으로 해서 생사람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일세."

 - 1권 p. 111 中에서 -


 

 차분하게 해녀들이 바다에서 죽은 기이한 사건을 정약전은 미신이 아닌 문헌과 더불어 각종 단서를 토대로 그 원인을 밝히고자 하였다. 언뜻 탐정과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하지만, 이는 조선 중후반에 등장한 실학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분석을 통하여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여 실제 생활에 유용함을 주기 위한 실학의 의미를 흑산도에서 발생한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약전의 주장을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이고 심지어 용왕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려는 일부 주민들의 모습은 주자학이 아닌 실학이 더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따라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분명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본다면 단순한 이야기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흑산도의 조기를 독점하려는 상인의 계략과 그것을 막으려는 정약전의 노력 역시 조선 중기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 상인을 '사상도고'라 칭하는데 이는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상인 중 대규모의 자본력과 조직망을 갖춘 상인을 뜻한다. 이 대목은 정조의 '금난전권 철폐'와 연관이 있다. '금난전권'은 조정과 왕실에 물품을 대던 시전 상인들의 특권으로서 그들 이외에 다른 상인이 활동하는 것을 금하는 권리였다. 이로 인하여 시전 상인들은 시장을 독점해왔는데,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사상도고'들이 등장하였으며, 이 작품에서 흑산도의 조기를 독점하고 궁극적으로 조선의 쌀을 독점하려는 인물 역시 바로 '사상도고' 중 하나였다. 따라서 정약전과 사상도고의 기싸움은 당시 조선의 상업에 대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상도고'가 정약전에게 말한 내용은 오히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더욱 수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손가락 빨로 살면서 안분지족이 무슨 의미가 있고 저 먹고살기 바쁜데 누가 누굴 배려한단 말입니까. (중략) 잘 먹고 잘 살려면 장인들이 열심히 물산을 생산하고 사상들이 부지런히 재화를 유통시켜야 합니다. 양이의 예에서 보았듯이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장사를 장려해야 합니다. 장사꾼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1권 p. 196 中에서 -


 정약전과 상인의 대화는 오늘날 성장과 분배에 관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상인이 주장하는 내용은 여전히 성장을 강조하는 관료 또는 재계의 목소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실학에 관심이 많았던 정약전도 이러한 상인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하면서도 배려와 안분지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이 에피소드 역시 단순히 재미와 흥미에만 그치지 않는다. 또한 '사상도고'의 등장과 그들이 말하는 바는 이 시기에 조선의 자본과 상업이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쯤되면 그동안 '정약전 = 자산어보(玆山魚譜) = 흑산도'로만 알고 있던 우리에게 이 책은 정약전이 그의 동생 정약용과 마찬가지로 실학자로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따로 정약전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거 실학과 관련하여 어떤 부분에 기여를 하고 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여전히 알기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을 흑산도에서 정약전이 서당을 열고 거기에서 제자도 받아들인 최종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최종문은 흑산도의 유력한 집안의 서자 출신이었는데, 영특한 인물로서 주자학이 아닌 실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서자라는 출신 때문에 과거를 치루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주자학은 그와는 전혀 관련없는 학문이었다. 이러한 최종문이 정약전으로부터 실학과 서학을 배우면서 역관이 되어 조선의 상황에 맞는 역법을 만드려는 꿈을 갖게 된다. 정약전이 서양의 역수학(曆數學)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것을 정약전이 최종문에게 가르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무너진 성을 보수하기 위하여 꼭 필요했던 거중기의 각 부품의 도면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학적인 계산이 필요했는데, 최종문은 정약전의 격려와 함께 홀로 그것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이 대목은 저자가 최종문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하여 실제 정약전의 활약을 투영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대의 도움을 얻어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쓴 것은 기록으로도 남아있는 역사적인 사실인데, [자산어보(玆山魚譜)]는 또 하나의 논픽션으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의 기록물의 저술 과정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데,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에 관한 것이다. 문순득은 실존 인물로서 홍어를 잡으로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유구(현재 일본의 오키나와)와 여송(필리핀), 청을 거쳐서 조선으로 다시 돌아온 인물이었다. 문순득은 흑산도로 돌아와서 정약전을 만나서 그가 겪은 내용들을 들려주었고, 정약전은 그 내용들을 글로 옮겼으니 그것이 바로 [표해시말(漂海始末)]이다. 조선의 폐쇄적인 대외활동을 감안한다면 문순득의 경험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그의 표류기는 조선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유구와 여송, 마카오의 언어와 풍속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정약전이 흑산도에 없었더라면 문순득의 표류기인 [표해시말(漂海始末)]은 세상에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자산은 곧 흑산이다. 그런데 나는 흑산에 유배된 처지라 흑산이란 이름이 무서웠다. 집안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흑산을 번번이 자산이라 썼다. 자(玆)는 흑(黑)이다.'

 섬에서 후회 없는 삶을 보냈으면서도 뭍을 동경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약전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 2권 p. 276 中에서 -


 '자산어보(玆山魚譜)'의 탈고 과정은 정약전의 유배지 생활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정약전은 동생인 정약용이 강진에서의 유배를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것과는 달리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 그가 죽은 곳은 흑산도가 아닌 근처 우이도였다.)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라 쓴 것도 어쩌면 그가 생의 마지막을 흑산도에서 보낼 것이라는 불길한 기운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그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어쩌면 그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은 그동안 우리에게 '자산어보(玆山魚譜)'로 가려져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세영 작가의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제목처럼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약전의 생애 전반은 물론 그가 꿈꾸던 이상을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상도고의 등장, 서학에 대한 편견, 홍경래의 난과 같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도 함께 엿볼 수 있어서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생각해보니 오세영 작가는 1994년 [베니스의 개성 상인]을 썼다. 루벤스가 그린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의 밑그림에 등장하는 한복을 입은 조선인을 보고 그 작품을 썼는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그의 신작 [자산어보(玆山魚譜)]도 왠지 친밀하게 느껴진다. 또한 이 작품을 원작으로 이준익 감독이 영화(주연 : 설경구(정약전 역), 변요한(창대 역))도 개봉되었으니 이 책을 읽고 관람하면 좋을 것 같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와 이야기는 소설과 약간 다르다고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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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지식 - 에른스트 페터 피셔 | 과학 2021-03-3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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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금지된 지식

에른스트 페터 피셔 저/이승희 역
다산초당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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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자주 회자되던 갈릴레오를 그의 과학적 업적과는 별개로 다소 비겁한 인물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의 영향 때문인지 그러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바를 주장하는 것이 진정한 위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논리가 통하지 않는 교회의 주장에 마냥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훗날 그가 주장한 것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위대한 과학의 지식으로 자리매김을 하였지만, 당시의 갈릴레오는 신의 위엄과 교리 앞에 불경죄를 저지른 죄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2

 선악의 열매를 먹는 순간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알게 된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긴 죄로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면서 동시에 유한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렸을 때 접한 이 성경 구절은 나로서는 역시나 이해할 수 없었다. 벌거벗은 채 살아가다가 선과 악을 알게 된 것이 왜 죄악이었을까? 더구나 그 대가로 추방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대로 인간에게 원죄 의식을 심어주었으니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든다. 이로 인하여 인간의 본성과 욕구의 추구는 절제되는 것이 미덕이 되었으며, 실제로 이것이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였다.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였음에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했고, 또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낙원에서 추방당한 위의 두 사례는 "아는 것이 힘이다."로 대변되는 지식의 관점에서는 다소 의외의 경우라 할 수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축적된 지식은 개인의 성공은 물론 나아가서 사회의 발전을 가져왔기에 이러한 사례는 모순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금지된 지식]인류가 그토록 염원하던 지식을 억압하고 심지어 감추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들과 그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지식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금지된 지식'인 이유도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던 지식들이 과거의 수많은 금지와 통제 속에서 탄생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 책의 의도를 이해했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은 그의 학설을 주장한 토마스 헉슬리와 옥스퍼드의 성공회 주교인 윌버포스의 격렬한 논쟁은 비록 갈릴레오와 같이 종교라는 일방적인 권위 앞에서 철저히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보다는 나아졌지만,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금지는 여전하였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책에서 다윈의 '진화론'은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윌버포스와 같이 특정한 위치에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대중이 새로운 지식 또는 학설에 대하여 보인 반응이다.


 "우리가 원숭이에서 기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는 이 말이 틀렸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만약 그게 맞다면,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우리는 기도한다."

 - p. 67 中에서 -


 

 인간의 진화적 본성에 대한 다윈의 폭넓은 생각을 접한 영리하고 우아한 여인의 이와같은 발언은 여전히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던 다윈의 시대에서 인간 진화에 대한 지식은 무조건 의심해야 하고,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심지어 그것이 맞다고 하더라도 최선의 방법은 그것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부정과 억압이 19세기에만 국한된 것일까? 1925년 미국의 생물학 교사인 존 스콥스는 자신의 수업 시간에 다윈의 생각을 설명하고 진화론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은 신창조주의자들을 열렬히 지지하였으며, 이들은 미국 학생들이 생명 진화 학습을 전국적으로 금지하기를 원했다. 이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한 19세기가 아닌 20세기와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침묵의 봄]의 저자이자 환경보호에 앞장 선 레이첼 카슨은 당시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살충제 'DDT'의 위험성을 고발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DDT'가 인간은 물론 생태계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밝히면서 'DDT' 중단을 이끌어냈다. 인류의 건강과 생태계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그녀는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는 '멍청한 암염소' 같은 여자로 폄하되었으며 집단 학살자로 불리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도 환경보호에 기여를 한 레이첼 카슨의 또 다른 면을 지적하며 그녀를 비판한 내용을 접한 적이 있다. 'DDT'의 유해성이 그리 크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사용하지 못함에 따라서 말라리아가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 레이첼 카슨이 그러한 주장을 폈을 때, 산업계는 언론을 통하여 그녀를 맹비난하였다. 아마 그녀 역시 갈릴레오 또는 다윈의 시대에 살았다면 주장을 굽히거나 또는 'DDT' 중단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지원으로 결국 그녀의 주장이 대부분 옳았으며, 결국 그녀를 억누르려고 했던 산업계는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 기독교 사회에서 성은 금기시되었다. 특히 교부 철학으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예 성에 대한 지식을 인간의 원죄론과 결부시킴으로써 중세 유럽에서 성은 금기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흥분에 대한 신체의 자연적인 반응에 불과한 것을 인간의 원죄로 규정하였으니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은 아예 인간의 본능마저도 억누른 셈이었다. 더구나 그는 그의 저서 [고백록]에서 인류 지식사에서 호기심 금지로 귀결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까지 하였다.


 "(중략) 육체를 통해 영혼 안에 들어있고, 육체적으로 즐기려 들지는 않지만 인식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채 육체를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공허한 참견이 있다. 이것이 바로 호기심인데, 이로 인하여 눈이 감각의 주도권을 넘겨받는다. 성스러운 말씀에서는 이를 눈의 욕망이라고 부른다."

 - p. 45 中에서 -


 

 아우구스티누스 본인도 교부 철학을 집대성하면서 중세 철학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을 욕망으로 정의하여 그것에 휘둘리지 말 것을 주장하였으니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그로 인하여 중세 유럽이 '암흑의 시대'를 보내게 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저자 역시 서구 사회에서 이 호기심 금지라는 아이디어를 극복하기까지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언급되어 있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를 우리는 조선의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오직 주자학만을 학문이라 인정하면서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논쟁이 생기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으며, 조선의 중후반에 등장한 실사구시의 실학을 배척한 움직임 역시 지식에 대한 통제와 억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금지된 지식'이 무조건 새로운 지식을 억압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2차세계대전 기간 중에 미국은 J.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필두로 원자폭탄 제조에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물리학자들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뜻 개발에 참여하기를 꺼리거나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그들을 설득한 것은 바로 히틀러가 원자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정보였다. 실제 독일은 이론적으로 원자폭탄 개발에 근접한 상태였다. 아인슈타인이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아인슈타인과 달리 조국인 독일에 충성을 하는 물리학자들에 의하여 히틀러가 먼저 원자폭탄을 손에 넣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 독일은 당시 우라늄 235를 1그램도 생산할 수 없었으며, 연구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즉, 독일이 전쟁 기간 동안 원자폭탄을 만들 위험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보는 뉴멕시코에 있는 미국의 물리학자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 정보가 전해진다면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은 명분을 잃을 수 있기에 중간에 영국의 비밀정보기관이 그것을 가로채서 은폐하였기 때문이다. 이 '금지된 지식'에 의한 파급 효과를 우리는 역사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서 말이다.

 

 이러한 '금지된 지식'의 다양한 사례를 통하여 저자는 진실의 개척자들이 과거나 현재에도 언제나 검열과 탄압, 극렬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식을 금지하고 은폐하려 했던 상황 속에서도 지식이 힘을 얻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태동과 사유, 논쟁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지성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지식의 역사는 곧 억압의 역사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자가 오직 지식을 궁극의 것으로서 무조건 찬양만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지금까지 지식에 대한 부질없는 시도라 비판한 통제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상반된 주장에 우리는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원자폭탄과 같이 인류가 지식에 의하여 퇴행될 수 있는 사례를 감안한다면 그런 주장에도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IT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인하여 과거에는 결코 상상도 못한 신기술을 우리는 일상에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로 아날로그의 모든 것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우리의 실체 그 자체가 모두 위조될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또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SNS는 마음만 먹는다면 '빅 브라더'의 존재가 자유롭게 개인의 모든 것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채널로 활용될 수도 있다. 또한 유전공학은 아예 인간 그 자체를 위조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일정 부분 제한이 필요한 영역이다. 물론 이러한 지식과 기술에 대하여 무작정 통제와 억압을 가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은 더 커질 수 있기에 그 정도를 조절하는 것 역시 중요함도 지적하고 있다. 

 

 [금지된 지식]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지식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가 '호기심' 그 자체를 통제하려고 했던 것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늘날의 수많은 지식이 온갖 통제와 억압에 직면하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흥미로만 접근한다면 제법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은 그동안 지식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호기심과 관심이 끊임없는 분석과 연구를 통하여 생성된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수많은 난관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지식의 생성 과정에 대한 전환에 관한 것임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는 지식이 반대로 부분적으로나마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부하고 있기 때문에 지식을 보다 유연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점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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