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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 1차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최고의 입문서 | 도서 리뷰 2020-10-2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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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A. J. P. 테일러 저/유영수 역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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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간이 만든 전대미문의 재앙 중 사람들은 1차보다 2차 세계대전에 관심을 갖곤 한다. 거의 지구상의 전 대륙을 아우른 광범위한 전쟁 범위는 둘째치고, 무엇보다 히틀러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뿐만 아니라 유대인을 절멸시키려 했던 홀로코스트’, 핵폭탄 개발 등 경악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과 사건들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보다 깊이 탐구해보고 싶은 전쟁은 ‘1차 세계대전이다.

 

  2차 세계대전과 비교해 볼 때 1차 세계대전은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우선 발발 원인이다. 전쟁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한 히틀러라는 뚜렷한 인물이 있는 2차 세계대전과는 달리 1차 세계대전은 그러한 인물이 없었다.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주요 의사결정자들은 전쟁이 코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몽유병자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몽유병자들>> 참고). 두 번째는 전쟁의 양상이다. 기동전이 아닌 참호를 파고 서로 대치한 참호전이라는 전쟁 형태는 2차 세계대전에서 볼 수 있는 기동전 위주의 전쟁 모습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참고). 세 번째는 전후 처리 과정이다. 전후 처리 과정이 독일에 미친 지대한 영향은 더 20년 뒤 보다 광범위한 전쟁을 불러왔으며, 이 과정에서 미국이 세계 질서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대격변>> 참고).

 

  그런 의미에서 테일러의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의 이러한 특별한 점을 전부 포괄한다. 기존 1차 세계대전 관련 책들이 서부전선, 동부전선 등 전선별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1914년부터 1919년까지 연도별로 한 챕터씩 할애하고 있다. 때문에 발발 원인, 전쟁 과정, 전후 처리 결과를 연도별로 파악하며 일별할 수 있는데, 이에 더해 테일러의 핵심을 찌르는 서술은 백미. (아래 인용은 차례대로 발발 원인, 전쟁과정(솜 전투), 전후처리)

 

□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하겠다고 결정한 일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치가들의 판단 착오였다(15p).

 

□ 이상적인 사고가 솜므에서 사라졌다... 이제 전쟁에는 목적이 없었다. 전쟁 자체를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169p).

 

□ 전쟁이 종결되는 이상한 방식이었다. 여태까지 가장 적은 짐을 지고 가장 조금 싸웠던 미국이 연합국과 적국 모두에 강화의 조건을 부과했다(303p).

 

  구성상의 또 다른 특징은 전투 과정을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박진감 있고 긴장감 있게 서술되어 있다면 전투 과정을 자세히 다루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으나,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특히 1차 세계대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때문에 전체적인 전쟁 양상이라는 큰 그림에서의 전선과 전투를 간략히 다루되, 전투의 의미와 전쟁의 잔혹함을 부각시키는 테일러의 서술 방식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더욱 강조한다. 

 

□ (1914) 2월에 프랑스인 5만 명이 희생되었다... 생 미엘에서는 6만 명을 잃었다. 5월에는 아라스 근처에서 12만명을 잃었다(101p).


□ (솜므 전투) 영국인들은 42만 명의 사상자를 냈고, 프랑스인들은 거의 20만이었다. 독일인들은 45만 명을 잃었을텐데...(168p).


 □ (1917 이프르 전투) 영국의 사상자는 30만이 넘었고, 독일은 20만에 좀 못 미쳤다... 3차 이프르 전투는 이 맹목적인 전쟁에서도 가장 맹목적인 살육이었다(242p).

 

  이뿐만 아니라 탁월한 국제정치 및 외교사가로서의 테일러의 솜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전쟁 발발에서부터 전후 처리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사이에서의 고위 관료들과 장군들의 자리를 보전하고자 하는 생리뿐만 아니라 각 나라들끼리의 외교 관계, 힘겨루기, 뒷이야기 등 1차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내용들을 빠뜨리지 않는다. 테일러는 전쟁 과정에서 장군들과 정치가들이 보인 무책임한 자세와 권력 지향적인 태도와 판단착오, 대중들의 무지를 여러 번 강조하고 있는데, 왜 이 전쟁이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으며 지리멸렬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이 전쟁은 총력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의 양상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장군들가 정치가들은 너무 자주 승리를 약속하다 보니 승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게다가, 숭리를 이야기하면 대중의 박수를 받았다... 모든 나라에서 통치자들은 전쟁을 지속하면 닥칠 결과보다 전쟁을 끝내면 부딪칠 결과를 더 두려워했다(201p).

 

  테일러의 유려한 서술과 핵심을 찌르는 표현 덕분에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내용을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또한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지 않지만, 책 곳곳에서 테일러가 평화에는 책임감 있는 지도와 대중들이 필요함을 내비치고 있다. 전쟁의 모습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220장에 이르는 사진들은 이 책의 대단한 장점인데, 특히 전투 후의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는 병사들의 사진 몇 장은 평화의 중요성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평화는 이 전쟁이 무엇이었냐는 물음과 이 전쟁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확신한다. 일독을 권한다.

 

우리가 이 전쟁을 더 잘 이해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당시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지만,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8p).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일러의 또 다른 명저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1차 세계대전 관련 도서들. 모두 추천할 만한 책들이나, 한 권으로 1차 세계대전 전반을 이해하고 싶다면 테일러의 이 책을 추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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