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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다는 것은 도전이다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문학/에세이 2011-06-26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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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011 제2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

김애란 저
문학동네 | 2011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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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만남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새로운 젊은 작가들을 만났다. ‘젊은작가상’이란 타이틀을 걸고 내민 것이 2년째이니 깊은 역사를 가진 대회라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대회를 통해 얼굴을 내민 작품들이 서툴러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이런 작가들이 꼭꼭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탄탄한 필력으로 당당하고 주저 없는 작품들이다. ‘단편’이라서 서사가 약할테니 재미도 없을 것이라 짐작하며 단편을 멀리했던 내가 이 작품집을 만나면서 단편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강력한 서사구조를 가질 수 없는 짧은 글이기에 대신 그에 걸맞게 장편보다 훨씬 밀도 있는 구성과 끈적끈적한 문장들, 하나의 주제에 집요함을 보이는 집중력, 그리고 읽고 난 후의 긴 여운이 한층 돋보이는 매력을 이제는 알기에 올해도 이 수상집을 보자 망설이지 않고 읽어나갔다.

 

올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들은 대체로 어둡고 묵직한 기운이 강하다. 발랄하고 통통 튀는 상쾌함을 전하는 작품이 내겐 없었다. 한 작품씩 읽어낼 때마다 무거운 마음과 함께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일곱 작품 모두를 다 읽고 나면 씨익:), 미소가 지어진다. 이야기들의 무게보다 이런 작품들을 써낸 우리 문학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작가들이 있다는 확인이 시큰한 감동과 싱긋한 미소를 지어내게 만든 것이다.

 

 

여름의 두 얼굴

 

일곱 작품 중 단연 나의 주목을 끈 작품은 (대상작이란 수식어를 몰랐다하더라도) [물속 골리앗]과 [여름]이다. 특히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절로 손가락을 치켜 올린 작품이었다. 소년의 독백처럼 뱉어내는 서술들이 높은 습도만큼 끈적대고 질척대는데다 어쩔 땐 물속에 잠겨버린 듯 숨이 막혀 심장이 쿵쾅거리며 압력을 높이기도 한다. 단단한 축을 기준으로 조금씩 위아래로 올랐다 잠기는 듯한 글의 흐름이 잔잔한 긴장감과 불안을 깔아놓고 ‘어떻게든 구원될 것이다’라는 희망을 초조하게 기다리게 만드는 작가의 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 정도로 탄탄하다. 이처럼 [물속 골리앗]이 습도 높은 작품인 이유는 장마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집중 호우나 태풍이 아닌 지루하게 내리는 긴 비로 세상이 물에 잠긴다. 쓰러져가는 재개발 아파트에서 쫓겨나기 직전 상태에서 운신 중인 모자가 구조를 기다리며 물바다가 된 창밖만 내다본다. 그리고 넘쳐나는 물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 고립되었다는 두려움이 집안에도 눅눅하게 잠식한다. 반면 김유진의 [여름]은 마른 공기와 함께 설명문 같은 딱딱한 작가의 문체가 눈의 띈다. 가뭄 속 지루한 여름의 절정을 쉬지 않고 바싹 말려서 묘사한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물속 골리앗]과 [여름]은 모두 계절 중 여름을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떠올리는 여름의 이미지를 상반되게 풀어낸 작품들이다. 한 참을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직사광선 태양 빛에 갑자기 내 놓인 기분. 두 작품의 묘한 배치다.

 

더구나 김애란의 장마 풍경 묘사 방식과 김유진의 뜨거운 여름을 묘사해내는 방식을 비교해본다면 또 다른 책읽기의 재미가 부록처럼 달려온다. 눅눅한 장마와 더불어 불안과 초조, 두려움, 겨우 단 한 빛줄기의 희망 조금 버무린 소년의 심리묘사가 탁월했던 [물속 골리앗]에 비해 [여름]은 상당히 이성적이고 딱딱하며 정제된 표현들이 ‘나열’되고 등장인물의 행동 역시 메마른 시선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서술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선명한 수채화 한 작품 보는 것 같은 착각도 인다. 선명한 두 색의 대비, 즉 여름 볕 아래 더욱 선명해진 붉은 체리와 짙은 녹음의 보색 대비 때문이리라. 서술 방식은 대조적이나 생생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묘사력으로 탱탱하게 당긴 고무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은 두 작품 모두 대단하다.

 

[물속 골리앗]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비와 아버지가 지그재그로 또는 혼재되어 등장한다. 비는 물의 기운으로, 아버지는 불의 기운으로 아버지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비가 홍수로 아버지(묘지)를 삼킨다. 소년의 아버지는 불과 연관된다.

“어둠 한 가운데서 알전구를 씹어 먹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의 보호안경 위로 비쳤을 용접 불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평생 마주한 불빛, 불빛. 그리고 내게 다른 빛을 보여주려 한 아버지의 마음도."(45p)

아버지에 대한 기억 속에는 항상 빛이 함께 한다. 수영을 배우던 날도 유성우가 쏟아지던 새벽이었고, 잠수에 성공해서 수면 위로 내민 머리 위에 쏟아지던 별똥별은 생애 최고의 선물로 간직한다. 결국 아버지는 거대한 홍수 속에 혼자 남은 소년에겐 추위와 외로움과 배고픔을 이겨낼 정신적인 구세주다. 그리고 아버지가 투쟁했던 골리앗 위에 놓여 생명선에 안착한 소년의 안도감은 물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철체구조물이지만 소년에겐 물리적인 구세주이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물세상에서 만난 단 하나의 빛이자 희망이다.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인 [여름]은 무미건조한 일상들을 진열해놓았다. 연인으로 등장하는 Y와 B의 관계마저도 빠짝 말라 비틀어져가는 목재같이 위태하다. 마치 Y가 B에게 마지막 선심을 쓰는 듯한 인상이 진하게 배여 있다. 붉은 체리들처럼 선명하다. 그러나 “체리는 어디까지나 B의 추억이기 때문에”(76p) Y에겐 익숙할 수 없다. 이미 Y는 B에게 분명한 선을 그어놓은 상태임이 분명하다. B의 희망찬 전원생활에 대한 기대와 달리 Y는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오히려 Y에겐 두려운 것 천지인 시골생활. 벌레도, 먼지도, 심지어 그의 기침소리에도 진저리가 쳐질 정도다. 붉은 피를 토하며 제 발로 병원을 간 연인을 걱정하기는커녕 아랑곳없이 하던 일 마저하는 Y의 권태에서, 그리고 다짐하듯 붉은 체리들에 힘겨워하는 체리나무 가지를 툭, 끊으며 이 여름과 사랑도 끝이 났다.

 

 

불안의 두 얼굴

 

나에게 가장 난해했던 작품은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이었다. 이장욱은 작년에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던 작가다. 그러나 작년에 선보인 [변희봉]과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그때의 유머와 웃음기는 사라졌다. 철저히 작가 자신을 어둡고 낡은 목조 방에 가둬버렸다. 작가의 상상은 이 좁고 삐걱대는 방에서 전개된다. 현실과 이상의 구분도 모호해지고 낮과 밤의 경계도 사라지는 그 방에서, 환청과 환영이 어슬렁거리는 환각의 방에서 작가는 헤맨다. 러시아라는 이국적 배경과 백야의 시간적 설정이 소설의 흔들림과 뿌연 안개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불안감을 더해준다. 독한 알코올로 소독시켜 보려하지만 그의 불안 증세는 날로 심해진다. 그리고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은 싼 집세뿐이던 이반 멘슈코프의 방의 무거운 문을 나선다. 어깨 위로 내려앉은 의심과 뭉기적거리던 불안 증세를 백야 속에 던져버리고. 그것은 과연 꿈이었을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되는 또 다른 작품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였다. 역시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처럼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됨으로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사실적이고 진지하다. 아마도 '나'는 정신분열 환자인 듯 하다. ‘나’는 일상과 그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상들에 구역질을 느끼며 피곤에 찌든 일상의 탈출을 시도한다. 이제까지의 삶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면 오늘부터 아버지가 나에게 갖다 댄 셀로판지를 찢어버리고 나 그 자체로 살아가려한다.

 

“……모든 것이 내 탓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난 내 의지로 뭘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타인의 의지에 따라 해왔다. 가끔은 나 자신이 모든 빛을 투과시키는 얇은 셀로판지로 생각된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한다. 그것에 최적화된 내 자아는 점점 더 얇고 투명해져만 간다. 모든 것은 저쪽에서 날아와 나를 통과하여 다시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그러는 동안 아무것도 왜곡되지 않는다.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난 투명한 인간이다.”(143p)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살아온 듯하다. 구체적인 설명은 없는 것을 보니 그다지 친절한 작가는 아니다. 단지 ‘나’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변 동료들을 끊임없이 죽이는 상상을 잔인하게 묘사해준다. 그걸 차곡차곡 눌러 담더니 결국은.

김사과는 비이성적인 분노표출을 적나라하게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실제 본 사람마냥 써댔다. ‘나’의 불안한 리듬이 클라이막스에 달할 때 그것이 스스로의 의지로 만들어낸 음표임을 자각한다.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오늘은 이상한 일만 일어난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서툰 걸까. 그의 움직임 뒤에는 피비린내가 낭자하다. 아버지의 명령 없이, 수면제의 도움 없이, 어머니의 한숨 없이 살아본 딱 하루인 오늘, 왜 ‘나’에겐 아버지가 말했던 그 달콤한 성취감 어디에도 없는걸까.

이 작품이 수작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현대 사회에서 하나씩은 갖고 있을 정신병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극적으로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 좋아서 즐겁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어 행복을 느끼는 현대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향해 전진하고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사회 속을 살아가는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가장 원시적으로 표현해준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결함의 두 얼굴

 

비교적 쉽고 재미있게 읽혔던 두 작품이 김이환의 [너의 변신]과 정용준의 [떠떠떠, 떠]였다. [너의 변신]은 직설적인 제목처럼 직설적인 내용으로 일곱 단편 중 이야기 자체가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이야기의 착안 자체가 기발하고 참신하다. 인물의 설정 또한 쉬이 가지 않고 동성연인으로 출발한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붕 떠 있는 기분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심각한데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들은 기가 막혀서, 또는 이해할 수 없어서, 또는 기발해서 웃고 만다. 인간의 변신 욕구는 끝이 없다.  얼굴 성형정도는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여길 정도로 일반화된 우리나라다. 이 작품에선 그것보다 몇 보 전진해서 팔 다리도 개수도 늘였다 줄였다, 이중 성전환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생각만 존재하고 몸은 버려 버린 액상으로 남겨진 너의 변신. 너는 과연 만족했을까. 또 어떤 결함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인간의 욕망의 끝이 얼마나 처절한지 심각하지 않게 보여준 작품이다.

 

정용준의 [떠떠떠, 떠] 역시 결함을 가진 두 남녀의 사랑을 주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는 그 결함을 ‘장애’라고 부른다. 말더듬이 남자와 간질병을 가진 여자, 우연한 동창끼리의 만남은 각자 자신의 장애를 감추기 위해 선택한 일터에서였다. 누구의 장애가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각자 서로의 결핍을 보완해준다는 믿음이 사랑으로 승화된다. 그럴싸한 로맨스 소설로 굴러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정용준의 한 컷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 정성 가득한 문장과 독자가 공감할 수 있게 깊이 사유한 듯한 유려한 문장들이 감탄을 불러내게 해준다. 서사의 재미만 더 붙인다면 정말 멋진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소멸의 두 얼굴

 

이제 남은 작품은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이다. 김성중 역시 작년에 이미 만났던 작가다.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하게 만들어 준 작품 [허공의 아이들]은 소멸하는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 물리적인 고통을 동반한 소실이라기 보다 형이상학적인 소멸이다. 즉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조금씩 사라지는 형태. 땅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건 몇 달 견딜 수 있는 식량, 소년과 소녀이다. 소녀는 논리적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한다. 이 세상이 과도기이며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하는 소녀. 소녀의 비현실적인 접근방식이 못마땅한 소년은 소녀의 말을 단칼에 자른다. “확실한 건 하나야, 죽으면 끝이라는 거.”(204p) 그러나 소녀의 상상은 꿈으로까지 연결된다. 악몽의 주인공 ‘시드’는 이름을 가지는 순간 시드라는 이름답게 왕성한 생명력으로 더욱 꼼꼼하게 세상을 부수었다. 점점 솟아오르는 땅과 꺼지는 땅의 가늠이 불가능해질수록 허공 속에 내몰린 아이들은 상상력으로 그 허공을 채워간다. 이건 무슨 재난 영화도 아니다. 소년 소녀가 이 세상에 살아남아 인류를 구원하는 슈퍼히어로를 기리는 영화도 아니다. 재난은 있되 희망은 없고 숨은 붙어있는데 살아남았다고 할 수 없는 암울 그 자체다. 땅이 솟아오르는 만큼 소년의 키도 자라지만, 두 아이의 성장이 결코 희망은 되지 못한다.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이것은 소년의 성장통이 가져다 준 악몽은 아닐까. 소멸된 소녀처럼, 소년도 새로운 세상의 개벽을 보지 못하고 소멸되진 않을까. 넘쳐나는 이 불안을 어디서부터 진정시켜야할지 모르겠다.


 

 헤어지며
 다채로운 나물을 얹어 비빔밥 한 그릇 싹 비운 느낌이다. 제각각의 채소의 맛과 질감이 살아있으면서 고소함과 맵싹함으로 오미五味를 깨어나게 해준다. 간단히 음식 한 그릇 뚝딱 한 것 같으나 포만감은 한 상 그럴싸하게 먹은 기분이다.
 
‘젊은작가상’이라는 이름에 맞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고 격려하고 싶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문이 많아질수록 양지로 끌려나온(?) 숨은 작가들이 대중 앞에 드러난 이상 수상 대가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에 목말라하는 독자들에게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채근의 역할을 할 것이라 믿기에. 비록 수상자들에겐 이름값 해야 한다는 강박이 될지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비빔밥이 소화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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