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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와 함께할 책들 | 책과 일상 2021-09-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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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중 백신을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도서관에 들렀다. 한 이틀 푹 쉬면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고 한두권만 빌려오려고 했었다. 그런데 신착도서들을 보면서 책욕심이 생겨서 결국 너무 많은 책을 빌려오게 되었다. 이제 곧 추석연휴도 있으니 연휴를 활용해서 읽으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욕심껏 빌려왔는데 가방안에 가득담긴 책으로 백신맞고 욱신거리는 팔로 낑낑대고 가방을 짊어지고 오면서 정말 못말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권만 빼곤 도서관 출입구쪽에 있는 신착도서 서가에 꽂혀있던 책들이었다.

한권은 읽고싶어 예약한 '수영의 이유'였고 또다른 한권은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산문집이다. 지난번 예스블로거 릴레이 인터뷰에 삶의미소님이 추천책으로 적어놓으신 것을 보고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해서 빌려왔다.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시인이자 시집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서점이야기가 담긴 산문이다. 예스 티비에서 인터뷰편에서 시인 오은과 함께 나와서 이야기한것을 보기도 했었는데 시인답지 않은 말솜씨와 (내가 좀 편견이 있는지 시인은 왠지 말잘하는것과 거리가 있을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데 생각해보니 오은시인도 말을 잘하는데 이것 정말 편견 맞구나 싶다. ㅋㅋ) 재치있는 입담으로 이 책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게다 서점구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시집서점은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호기심이 일게 만들었다. '위트앤시니컬'이라는 시집서점은 1953년 문을 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양서림 2층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도 언젠가 꼭 방문해보고 싶은 서점 위시리스트중 하나가 되었다.

시집위주로 파는 서점이 장사가 될까? 일반 독립서점도 운영이 어렵다고 하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우리나라에서 시집 매출이 꾸준하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했다.

그래도 책좀 산다는 나도 시집에는 굉장히 인색한 편인데 우리나라 평균으로 보면 그렇지는 않은것 같고 그 사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리얼제주'는 예전에 서평단으로 받았던 '리얼국내여행'편과 세트로 알차게 잘 구성된 국내여행편이 인상적이었어서 제주편도 읽어보고 싶어 빌려왔다. 책을 보는동안 비록 여행하지는 않아도 기분전환도 되고 책속 사진을 보는것 만으로도 힐링이 될것 같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또 제주를 가게된다면 그때 참고할만한 정보도 좀 얻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ㅎㅎ

 

'숲은 고요하지 않다'는 예스에서 책 구입할때 타이틀만 봤었는데 자연과 숲을 통해 느낄수 있는 감각과 이야기들이 흥미로울것 같고 마음도 왠지 정화되는 느낌일것 같아 빌려왔다. 

무엇보다 나무의사 우종영선생님과 이정모 관장, 최재천교수님의 추천사도 마음을 끌었다.

'아시모프의 코스모스'는 시간이 많이 지난 이야기로 1960년대 연재되었던 글을 새롭게 엮은 책이지만 아시모프 특유의 재치있는 글솜씨가 기대가 된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도 오래된 아시모프의 코스모스는 21세기인 지금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지고 기대가 된다.

 

 

 

책모임에서 정유정의 '완전한행복'을 함께 읽기로 했는데 도서관 예약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고 있던 찰나에 지인이 빌려주었다. 도서관 예약도서는 5명까지 예약을 받는데 도서관내부에 있는 3권의 책이 예약이 모두 초과한데다가 타도서관의 대출예약도 꽉차서 도저히 빌릴수가 없었다. 정유정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수 있었다.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탄탄한 서사로 유명한 정유정의 소설이기에 기대가된다. 

하지만 난 사이코패스나 고유정사건이 생각나고 인간 심연의 너무 어두운 소설은 사실 좋아하지 않기에 몇번 구입할까 망설이다 몬지모르게 꺼려져서 계속 대출시도만 하던 터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면 오히려 정유정의  '종의기원'이나 '7년의 밤'을 읽고 싶어지는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며칠전 김초엽의 신간소설  '지구끝의 온실'을 소중한 분께 선물받았다. 김초엽작가를 좋아하기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다. 아껴가며 읽어야지. ㅎㅎ

 

책상가득 쌓여있는 책들이 추석 연휴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것 같다. 과~연 이 연휴에 몇권을 읽을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 ^^

예스 이웃분들, 블로거분들 모두 풍성하고 행복한 추석한가위 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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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책방 소리소문(小里小文) | 서점 기행 2021-09-19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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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책방 '소리소문'은 대부분 부정적 의미로 가져다쓰는 말과는 반대로 소문이 무성하고 작은 책방치고는 엄청난 유명세를 치르는 책방이다. 

한자로 소(小)리(里)소(小)문(文)으로 작은 마을의 작은 글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책방이름은 작은 마을에 있는 작지만 큰 힘을 가진 책을 파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소리소문없이 우리의 삶을 바꿔 놓는 좋은 책을 판다는 의미도 있고 소리소문없이 은근히 퍼져나가는 좋은 시골 책방이라는 의미도 담을수 있다고 서점을 만든 이는 이야기한다.

 

책방이름들을 어쩌면 이렇게 잘 짓는지...작은 책방의 이름들과 그 이름이 담고있는 의미들을 헤아려보면서 새삼 감탄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이런 멋진 이름들을 만들어 내는것일까 싶다가도 이런 단어와 말의 센스를 놓치지 않는 이들이기에 서점을 할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저마다의 개성있고 멋진 이름들을 보면서 작명센스에 감탄을 절로 하게 되는데 소리소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 책방에 대한 소문을 듣고 머무는 숙소가 가깝지는 않았지만 제주의 특성상 차로 움직이면 그래도 가볼만한 거리이기에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호기심을 보이니 남편은 바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유명세치르는 서점은 그것도 인스타에서 유명하다는 서점은 그닥 내키지 않는다는거였다.

 

그럼에도 사골우리듯 안하거나 못한거에 대해 내내 얘기할 내 성격을 알기에 남편은 흔쾌히는 아니지만 영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며 차로 어느 비내리는 우중충한 날 아침 북서쪽 끝자락에서 출발해서 책방 소리소문을 찾아 한경읍 내륙 한복판으로 향했다.

책방이 있는 동네는 한적한 동네였고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중산간에 자리잡은 동네였는데 그럼에도 갓길에 차들이 상당히 있었다. 내 첫인상은 '오..놀라운데..!'였다  관광지나 유명 카페도 아닌 자그마한 책방을 보기위해 차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책방을 운영하시는 동종업계 분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무적인 일일거라 생각이 들었다. 

 

책방은 작은 돌담을 끼고 있었는데 이미 돌담 바깥부터 사람들이 북적였다. 차에서 내릴때 때마침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는데 우산까지 들고 있다보니 꽤나 번잡스러워보였다.

자그마한 제주 전통 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책방은 돌담도, 새겨진 문패도 그렇고 소박하면서도 제주스런 분위기를 한껏 뽐내며 운치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점은 작은 공간안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부에 사람들이 더 많게 느껴졌다. 코로나 여파로 밀폐된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곳은 경계 대상이다보니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작은 서점 내부는 몇개의 구역으로 공간을 나눠 놓았는데 좁은 공간임에도 공간을 분류해서 책을 보기좋게 큐레이션 하기 위해 애쓰신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 

작은 공간이지만 게중 넓직한 공간 하나를 아이들을 위한 책들로 꾸며놓으신것도 인상적이었다.

 

그중 나의 시선을 끈것은 <암란의 버스> 라고 소개된 소리소문에서만 만나볼수 있는 특별한 그림책이었다. 난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더불어 우리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 관심을 갖기위한 프로젝트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어느 서점에서나 쉽게 만날수 있는 책이 아닌 이런 책은 책방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다.

제주 한림읍의 작은 미술공방에서 작업하는 청소년들의 제주생활과 크고 작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인 '미성년 도감' 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책이 아니기에 이 책방의 역량과 책을 만들고 선별하기 위한 애씀이 책방에 대한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전임에도 소리소문의 바깥부터 안까지 구경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섞여서 무척 혼잡스러웠는데 후에 이 소리소문이  JTBC '경우의 수'라는 드라마에서 나왔던 서점이라 더 유명세를 탔다는걸 알게되었다. 

(나도 책구경을 하고 나서 책방의 사진을 찍을때 너무 많은 사람들때문에 조심스러워서 일부러 핸드폰 대신 소리가 나지 않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긴했지만 서서 책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기위해 신경을 써야했다)

 

입구 가까이에 한정판 리커버 에디션 책꽂이가 따로 있었고 예쁜 리커버 표지로 감싼 유명한 책들이 새롭게 단장해서 자리잡고 있었는데 에밀아자르의 자기앞의 생이나 그리스인 조르바같은 내가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들이 커버가 참 예뻐서 탐이 났다. 이곳 소리소문에서만 구입할수 있는 리커버 에디션이라고 하니 더 특별하게 느껴질것 같아보였다.

 


 

 

 

제주 느낌과 소리소문 책방의 느낌이 가득 담긴 책 코너를 지나 매대 중앙에는 베스트셀러와 새로나온 신간 책들이 넓직한 책상 가득 놓여있었다.

이런 작은 동네 책방에서는 베스트셀러를 따로 놓지 않는경우가 더 흔한데 이곳에서는 의외로 잘 팔리고 요즘 핫한 책들도 제법 많이 갖춰놓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게 의아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낯선 책들사이에서 익숙한 제목의 익숙한 책을 찾는 이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본 책방소개에서 책방을 찾는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관심사와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애쓴다는 서점지기부부의 말이 생각나는 큐레이션이었다.

그렇게 본인들의 취향을 한결되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책들과 시대의 관심과 세상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큐레이션에서 서점의 겸손함과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방 한켠에는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면서 자연과 환경을 위한 코너로 관련책들을 큐레이션 해놓고 있었다. 요즘의 트렌드이기도 하고 또 책을 읽는 이들이 더 나은 삶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기에 제주의 책방에 잘 어울리는 코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서 책방 주인부부의 세심한 손길을 하나하나 느낄수 있었고 신간코너,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는 나에게도 굉장히 생소하게 다가오는 그렇지만 너무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책들도 보여서 내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어주었다.

 

재미있게도 '어머 이런책도 있어?' 라는 코너도 있었는데 이곳에는 제목만으로도 좀 독특해보이는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깨알재미를 주는 코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곳에 진열된 몇권의 책중 두권이 우리집에 있다는걸 알고 웃음이 나왔다. 내 취향도 굉장히 독특한 편인가보다 라는 생각에.

 

 

몇몇 책방에서 본 적이 있는 블라인드북을 이곳에서도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포장 안에 어떤 책이 들어있는지 알수 없어서 마치 럭키박스를 풀때와 같은 기분일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기념으로, 선물받는 느낌으로 구입하면 재미도 있고 책방을 기억할만한 추억의 선물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또 어쩌면 내가 생각치 못했지만 나에게 딱 적합한 책이 서프라이즈로 들어있을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와 설레임은 덤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도 럭키박스를 좋아하지 않고 모험을 즐기지 못하는 성격인데다 이미 갖고 있는 책이면 어쩔까라는 소심함에 블라인드 책을 구입하지 않았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좀 아쉽고 다음번 다시 방문한다면 한번쯤 나에게 주는 선물로 구매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ㅎㅎ 재미있게도 책방 소리소문의 베스트셀러 1위는 바로 블라인드 북이다. )

 

 

 


딸아이는 고심끝에 제주만의 색깔이 담긴 제주 해녀이야기책을 골랐다. 그 옆에는 만춘서점에서 구입했었던 오름오름 책도 보여서 반가웠다.

제주 책방들을 들를때면 아무래도 제주의 특징과 색채가 느껴지는 책들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책방 소리소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작가의 방'이라는 공간이었다. 알리고 싶은 작가의 작품하나를 선정해서 소개하고 그곳에 필사를 할수 있도록 나무책상에 책과 필사노트를 놓아두어 사람들이 필사를 이어가면서 할수 있도록 해놓은 공간이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책장에 둘러싸인 방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 안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혹적인 공간이었다.

멀찍이서 필사하는 이들을 지켜보다 딸아이도 그공간에 앉아서 잠시 필사를 했고 나는 그 모습을 담아보았다.

 

 


 

 


 

 

소리소문의 창문밖으로는 겨울풍경이 액자처럼 보였다. 돌담과 귤나무가 보이고 바닥에 떨어진 귤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리소문 책방을 통해 나의 편견에 균열이 간것이 있다면 한가지는 책방은 자주 다니는 사람 위주로 꾸며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책방의 주인은 늘 책을 가까이하고 책을 정말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서만 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어쩌다 한번 들러봤는데, 혹은 소문이나 사진을 찍기위해 들러본 사람에게도 책에 대한 호기심과 책에 대한 마음을 열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과 새심한 배려의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면에서 책방 소리소문은 애서가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책을 가까이 해보고 싶은 바램과 작은 호기심으로 혹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책방이란 어떤 곳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이들에게도 따뜻한 책방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작은 책방은 책방주인의 취향이 마음껏 반영된 책들 위주로 구성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내게 소리소문은 꼭 작은 독립서점이 그렇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는걸 깨닫게 해주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활짝 열어놓고 세상의 소리에 좀더 귀기울이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의 노력이 담긴 큐레이션을 보면서 때론 취향이 짙은 책방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다양성을 보여주는 책방도 존재함을 보여줌으써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하고 치우쳐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계산을 하면서 마음을 담아 큐레이션이 참 좋다고 말씀드리니 사장님은 그런말을 많이 들었을게 분명함에도 정말 기쁜표정으로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라고 활짝 웃으면서 답해주셨다. 진심으로 이 공간에서 그렇게 느꼈다.

 

책방이란 이래야 한다는 어떤 편견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담고 있었던것 같다고. 

소리소문 책방 문을 열기전까지 갖고 있던 편견들을 일부 떨칠수 있었다고.

 

언젠가 한가로운 때에 다시 책방 소리소문을 들를수 있게된다면 <작가의 방> 나무책상에 가만히 앉아 마음을 담아 한페이지 필사를 해보고 싶다. 그때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를 전하기 위한 책들이 어떻게 또 달라져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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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레몬그라스 | 2021 독서기록 2021-09-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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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름날의 레몬그라스

마키아토 저/한수희 역
arte(아르테)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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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문장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어떤책은  탁월한 스토리와 서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런가 하면 문장도, 참신한 스토리도 아니지만 흔한 소재 하나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건드리며 우리를 끌어들이는 책도 있다.

바로 '여름날의 레몬그라스'가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흔하디 흔한 소재인 학창시절 첫사랑 이야기.  

그렇기에 그냥 지나쳐버릴 사람과 그렇기 때문에 책을 집어 들 사람 둘로 나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쪽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만화같은 표지 그림만 보고 이 책이 말랑말랑한 첫사랑을 다룬 만화책인줄 알았다. 더운 여름날 이 책의 표지 그림과 어울리는 제목인 상큼한 레몬그라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만화를 읽은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볍고 통통튀는 만화책이 읽고 싶은 마음에 이 책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학창시절 여름방학이면 추리소설과 만화책을 종종 읽었던 기억도 떠올리며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의 표지에 아주 작게 장.편.소.설. 이라고 적힌걸 나중에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게되었다. 대만 작가 마키아토의 장편소설로 대만 온라인 플랫폼 오리지널 네트에 연재를 시작하고 인기판매순위 1위에 오르면서 현재까지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자랑한다고 한다.

구애소설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작가는 그 별칭에 걸맞게 이런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의 니즈에 딱 적합한 스토리와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그런 소설들이 갖춰야할 모든 양념들을 골고루 첨가하여 잠시나마 책을 읽는 소설속에서 독자들이 달달한 간접경험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가볍고도 유쾌하면서 달달한 연애소설은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취향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작가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몇가지들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복선이라고 할수도 없을만큼 앞뒤 상황과 힌트가 너무나 쉽게 드러나서 금새 추측하며 결말을 예측할수 있다보니 그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는데다가 연애소설의 정석같은 여러가지 장치들이 의외의 결말같은 신선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남주는 부모님이 아닌 부자이지만 보수적이고 손자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설정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를 떠올리게 했고, 피아노를 잘치고 콩쿨에도 나가면서 다른 여학생과 졸업식에 연탄곡을 함께 치는 남주 청이의 모습은 자꾸만 영화 '말할수 없는 비밀'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보면 '말할수 없는 비밀'도 대만의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인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대만의 여성 독자들은 피아노를 잘치는 남학생에 대한 로망이 있는건가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여심을 흔드는 주인공 남성이 피아노앞에 앉아 슬픈 곡을 치고 있는 장면들이 종종 떠오르고 교회오빠는 왜 꼭 피아노를 잘 칠까란 생각도 들면서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었다. ㅎㅎ

 

왜 이런 연애소설의 남학생들은 항상 야리야리하면서 하얀 얼굴의 외모뒤로 근육질의 팔을 갖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지 않게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걸까...ㅋㅋㅋㅋㅋ 자꾸만 이런 의문을 떠올리다보면 나는 참 로맨스소설에 집중을 못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혼자 읽다가도 비실비실 웃음이 난다.

 

게다 이 여주는 로맨스 소설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삼각관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어릴때 오줌찔찔 싸던 코흘리게 친구가 어느덧 멋지게 성장해서 늘 옆을 기사처럼 지켜준다거나 남주와 트러블이 있을때마다 그 코흘리게 친구가 실연의 슬픔을 옆에서 묵묵히 받아준다거나, 여주에게만 못나보이던 어린시절 친구가 사실은 엄청 잘생기게 성장해서 알고보니 학교내에 인기남이라는 사실은 연애소설의 정석과도 같은 클리셰다.

연애소설을 연애소설로 읽어야지 자꾸 읽으며 다큐찍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첫사랑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기대했던것일까. 

건축학 개론과 같은 아련한 첫사랑은 첫사랑일뿐 이루어질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나 100만의 독자들이 원하는것은 달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수 없을 동화같은 이야기와 어떤 역경도 다 이겨내는 해피엔딩이였음을 문득 깨닫게 되고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서 연애의 정석같은 주인공과 스토리를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기억은 오래전 터키의 에페소 뮤지엄에 서서 오랜세월의 때가 묻은  수많은 큐피트와 프쉬케의 장식품들 그리고 다양한 사랑의 속성을 표현한 조각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기분을 떠올리게 했다.

그 고대의 예술품을 보며 인간에게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화두로 남는것일까, 한참을 서서 멍하니 조각을 봤던 기억을 연결시켜주었다.

 

어떤이에게는 열병과도 같이 격렬하게 흔적을 남기고  어떤이에게는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게 흘러가는 그러나 우리 모두는 머리보다 가슴 한켠에 그 기억을 간직한 첫사랑이기에 그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문구들을 이곳에 적어본다.

 

청이가 떠났다.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결말을 앞두고 갑자기 중단되어 버린 소설처럼, 내게 수많은 물음표와 끊임없는 말줄임표만 남긴 채......

몇년 후에야 문득 깨달았다. 사랑에선 미완성도 하나의 완성이라는 걸.

사람들은 그걸 '아쉬움'이라고 부른다.

 

청이는 사랑할 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럼 사랑하지 않을땐?

후회하게 될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법은 배웠지만, 사랑하지 않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아주 아주 오래 서 있었던 것 같다. 불꽃 소리가 들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밴드 공연이 끝나고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까만 하늘에 영롱한 불꽃이 펑펑 피어났다. 불꽃이 터지면 주변 경치가 휘황찬란하게 빛났고, 불꽃이 사그라지면 모든 것이 모호하고 흐릿해졌다.

청춘 속에 활짝 피어난 사랑 같았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짧고, 마지막엔 흐릿하게 바래는,

그 사람은 이미 없었다.

 

열일곱 살 그해, 난 한 남자의 사랑을 얻었고, 내가 온 세상에서 제일 큰 행운을 거머쥔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을 소유하려면 행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없었고, 우리가 함께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을 용기가 없었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모든이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책 말미에 작가의 말을 적어놓았는데 왠지 갱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이 소설을 읽는건 반칙이라고 말하는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고 외치고 싶지만...오춘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나에게 그래도 이 책을 읽는동안 잠시나마 20대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사랑에 관해 말한 다양한 영화들과 책들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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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발의 고독 | 2021 독서기록 2021-09-1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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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 발의 고독

토르비에른 에켈룬 저/김병순 역
싱긋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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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트르비에른 에켈룬은 노르웨이 사람으로 숲과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모든 길들을 걸어다니며 그 길 위에서 사색을 즐긴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부터 걷기에 몰두했던것은 아니다.

어느날 일을 하다 쓰러져서 실려간 병원에서 뇌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병명은 더이상 그가 운전을 할수 없음을 의미했고 자동적으로 운전면허증은 취소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스스로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걷는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해서 이동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이상 모든 곳들을 걸어서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인것은 그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사색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걷기는 그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었고, 길이나지 않은 낯선 장소 특별히 숲의 공간을 탐험하기 좋아하는 어릴적 친구도 함께였다. 

책의 1부는 그가 걷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다양한 도보여행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걷는 인간에 대한 그의 생각들, 1년에 평균 2500킬로미터에서 3000킬로미터를 걸으며 하는 사색들이 담겨있다.

2부는 저자가 기억하는 어린시절 가족들과 자주 방문했던 숲속 오두막과 그 뒷편에 있는 숲길에 대한 이야기,  지금 살고 있는 도시 근처의 야생의 숲길을 탐험하는 이야기이다. 평생지기 친구이자 어릴적부터 모험을 함께 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휴가를 함께 보내곤 했던 친구 욘과 함께 지도도 나침반도 GPS도 없이 태양에 의존해 숲에서 목적지인 곳까지 가는 탐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도(正道). 좁은 길. 길은 하나의 완벽한 은유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감정과 바람을 모두 담을 수 있다.

불신과 믿음, 탄생과 죽음, 생각, 희망, 구원에 이르는 길,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 여행의 시작과 끝, 길은 삶 자체를 형성하는데, 그 삶은 서구 기독교 유산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거기서 삶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의 여행이다. 인류의 역사는 창조에서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의 여정인 것이다.

(p.123  야생 속으로 中)

 

3부는 눈이 몹시 내린날 숲으로 들어가 아무도 걷지 않은 눈위로 난 동물들의 흔적들을 찾아 나서서 사람의 흔적이 없는 그곳에서 자연과 동물들과 교감하며 하는 사색들과 어린시절의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던 오두막 근처 할머니댁 이야기를 적고 있다.

어른이 되어 수많은 길들을 탐색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길을 걸었지만 그는 어린시절 걸었던 오두막 뒷편 숲속 길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길이 하나 있다. 어린시절 할머니댁에서 지내던 시절 걸었던 그 동네의 길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내 기억에 깊게 박혀있다. 그 동네의 어느 길 한켠에 가득했던 해바라기나 모퉁이에서 만나는 구멍가게 그리고 담장이 높은 몇개의 집들을 지나 도착하는 할머니댁의 모습.

그것은 길로 이어지고 기억되는 모습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장소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뉴요커들은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뉴욕을 더 그리워한다. 캐나다인들은 캐나다를 그리워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이탈리아를 그리워한다.

칠레인들은 칠레를 그리워한다. 하물며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 남은 생애 동안 떠나온 곳으로 더이상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p. 206  내면의 풍경 中)

 

걷기를 예찬하는 유명한 책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그 책들의 대부분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퇴직한 한국인이 순례자처럼 떠난 영국 도보여행길중 가장 유명한 CTC길을 40일간 걷는 여정을 담은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대단히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아니고 평범하면서도 소박하게 아침에 일어나 하루종일 걸었던 길과 그날 하루 먹은것과 도보여행길중 만난 사람들과 매일매일의 걸으며 만난 풍경들을 담고 있는 책인데 묘하게도 그 책을 읽는동안 저자와 함께 도보여행을 하는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그래서 흥미를 끌만한 스토리가 있는 책이 아니고 오히려 조금은 지루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읽을수밖에 없었다. 책을 중단하는게 마치 걷고 있는 도보여행길을 완주하지 못하고 중단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묘한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영국인들을 포함한 서양인들이 도보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특별한 목적보다 오로지 걷는것 그 자체가 목적인 그런 여행을 많이들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책 역시 걷는 인간에 대한 다양한 사색들이 담겨있는데 가장 내 마음을 끄는 이야기는 저자의 어린시절 가족이 자주 방문했던 오두막과 그 뒷편 숲속에 난 오솔길을 가족들과 함께 걸었던 이야기이다.

책의 마지막 4부에서 저자는 어린시절 자주 방문했던 그 오두막 숲길을 홀로 찾아 나선다. 이제는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기에 오두막이 있는 숲 가장 가까운 역까지 기차를 이용한 후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4시30분에 기상해서 큰 호수를 끼고 숲속 한가운데 있는 그 오두막을 향해 홀로 길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이른 저녁무렵 도착한 그 오두막 안에서 가족들이 오래전 그곳에 머물때 남긴 흔적들을 만난다.

테이블에 놓인 오두막 일기책을 펼쳐보며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추억한다.

일기는 아이들과 함께 오두막을 방문할때마다 짧막하게 그곳에 머문 소감을 어머니가 적어놓았던 기록이고, 세 아이들이 훌쩍 커서 출가한 후 부모님 두분만이 가끔씩 그곳에 머물며 기록을 남겨놓으셨다.

기록의 마지막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한달 후 홀로 그곳을 방문한 아버지의 적적한 마음이 글로 남겨져 있었다.

 

그냥 걷기 위해 걷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목적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길과 산책로가 있다. 문화유적길이나 야생동물 통행로, 역사탐방로가 그렇다. 그렇지만 그런 길 외에도 도보여행 자체가 목적인 길돌이 존재한다.

길을 따라 홀로 걷는 일이 때로는 고독하고 외로움을 수반하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한없는 의식의 자유로움과 사색을 즐기는 일을 통해 저자는 도보 여행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길을 따라 걷는 것만이 아니라, 내면의 여정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은 긴 공간과 시간을 걷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길을 어딘가로, 미래를 향해, 우리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가는 경로로 생각한다. 그러나 길은 뒤쪽, 우리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과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p.262  누구도 같은 길을 두번 걸을 수 없다 中)

 

저자는 마침내 오두막 바깥으로 걸어나와 어린시절 자신의 기억속 한켠에 늘 자리잡고 있던 그 숲속 오솔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길은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숲속 오솔길과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내가 기억하는 길은 거기에 없었다. 벌써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쩌면 그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작은 개울을 건너던 첫번째 다리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두번째 다리도 그 자취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 작은 개울은 낯설어 보이 기까지 했다. 

들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오솔길이 끝났음을 알려주었던 장소, 걸음을 멈추고 싸온 점심과 초콜릿을 먹었던 그곳은 이제 나무가 울창하게 자랐다.

....

나는 몸을 돌려 다시 오두막을 향해 걸었다. 개울을 두번 건너고 마차를 끌던 말이 잠시 쉬곤 했던 산에 다다랐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 산만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빙하가 녹고 육지가 융기한 이래로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서 있는 그 산에게 40년은 전혀 긴 시간이 아니다.

며칠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노르웨이트래킹협회 홈페이지에서 오솔길과 그 오솔길의 끝을 직선으로 연결한 거리를 재보았다.

352미터. 놀랍게도 겨우 352미터였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내가 과거에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마침내 여행의 끝에 도달한 것이었다.

내가 이 여행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 길의 역사는 길 그 자체의 길이보다 더 길다는 사실이었다.

(p.268 여행의 끝에서 발견하다 中)

 

저자의 어린시절의 숲속 오두막과 그곳의 길에 대한 기억을 찾아 떠난 여정속에서 나의 어린시절 기억속 길을 찾아 나선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오래전 기억하고 있던 길들을 찾아 나선다면 나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까.

과거와 연결되고 미래로 연결짓는 나만의 길 속에서 어떤 은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책 두발의 고독을 만나고 난 후 내가 걸어다니는 다양한 길들이 단순히 물리적 길들로만 보여지지 않고 하나의 서사를 품고 있는 이야기이자 은유로 다가온다.

이 길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어떤 이야기들을 떠오르게 하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오늘 하루 내가 내딛는 발걸음과 그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길들이 의미있게 다가온다.

 

<6살의 저자가 두여동생과 함께 오두막 뒷편 숲속길을 걸을때 아버지가 찍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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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 | 책과 일상 2021-09-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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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는 많은것을 바꿔놓았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이 어색하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사람들이 몰려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은 코로나는 직장과 학교에서도 종교활동을 위한 예배에서도 본격 언택트 온라인 시대를 열었다.

어르신들은 젊은 자식들에게 줌 사용법을 배워 평생교육 수업을 듣기도 하시고, 마음껏 여행을 못가는 이 시기에 랜선 여행을 유튜브 생방으로 진행하며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는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

 

원래도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유튜브나 온라인 매체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플랫폼으로 정착했다.

1년 반 가까이 코로나 상황하에 아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고 모든 상황들이 예전으로 돌아가 아이들이 마스크 벗고 마음껏 어울리고 대면으로 학교생활을 신나게 할 수 있기를 다른 모든 부모들처럼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끝도 안보이는 코로나는 점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이제는 기대감도 희미해지고 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이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적응의 동물이라는 사람은 어느덧 위드코로나 일상을 그럭저럭 보내게 되었고 가끔씩 툴툴거리지만 어느새 이런 일상에 또 적응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할수 있는 반경 내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 가까운 야외에 나가 바람도 쐬고 그러면서 작년에 비하면 그래도 이 상황에 조금 더 익숙해진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어른보다 더 빠르고 유연한 적응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이 시기 속에서도 자신들이 할수 있는 방법들로 자신들의 시간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처음 줌 수업을 하면서 우왕좌왕 쌍방향이 아닌 일방의 온라인 수업으로 이런저런 걱정을 샀던 학교 수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체계적이고 관리도 잘되는 쌍방향 줌 수업으로 진화되었고 아이들은 컴퓨터 화면안에 잘게 분할된 친구들의 모습과 선생님의 수업에 완전히 적응하고 익숙해진듯 보인다. 물론 온라인 수업의 한계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작년보다는 많이 안정화된 느낌이다.

그리고 어느덧 오고가는 불편함이 없는 온라인 수업과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를 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원래도 카톡대화와 문자에 익숙한 세대인데 언택트 시대에 그 사용도는 훨씬 더 빈번해지고 활용도도 놀랄만큼 다양해지고 있다.

 

학교 외 활동으로 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수업도 작년에 처음 구글미트로 진행하는 악기수업이 너무나 신기했는데 올해도 역시나 온라인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이 함께 악기 레슨을 받고 있다. 말로하는 수업이 아닌 악기로 함께 소리를 내는 풍경은 아직도 참 생소하면서 신기하다.

 

학기초 학교 동아리 모집을 하면서 동아리 면접을 선배들이 줌으로 열어서 참여해서 면접을 보기도 했다.

 

학교도 격주로 가긴 하지만 그래도 오프라인 수업을 하고 나면 조별 모임으로 하는 수행 과제들이 주어지는데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줌으로 모여서 역할을 나누고 함께 토의 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마 예전같으면 카페나 누구네 집에 함께 모여서 했을 활동이다.

오프라인으로 함께 모여서 조별 과제를 진행하는것이 불가능하기에 누가 지시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줌으로 화면안에 모여서 함께 의논하고 함께 대본을 쓰고 발표를 준비한다.

 

 

중학생이 된 딸아이를 보면서 최근 몇달사이에 진귀한 풍경들을 구경하게 되었다. 책상앞에 줌을 틀어놓고 아이들은 아무 대화도 하지 않고 각자 공부를 한다. 이 황당한 풍경은 모냐 물으니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픈 아이들 몇몇이 모여서 오늘 00시부터 00시까지 모여서 함께 공부할사람~ 하면 몇명이 모여서 그렇게 줌을 틀어놓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우리집 아이는 워낙이 사교적 성격이 아니라 그냥 한번 정도 했을 뿐이지만 반아이들이나 친구들을 보면 종종 그렇게 주중이든 주말에 함께 줌으로 모여 마치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에 같이 앉아 공부를 하듯이 각자 자기집 책상앞에 줌을 틀어놓고 각자의 공부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신기한 풍경이다. 화면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고 분할된 화면속의 아이들은 각자의 공부를 하며 자신이 그곳에 존재함을 화면으로만 보여주고 있었다.

함께 의논하는것도 아니고 함께 이야기하는것도 아닌 침묵속에 각자의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가끔씩 화면속의 다른 친구들의 얼굴을 확인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위로를 받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시대가 낳은 풍경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할수 있는 상황과 범위안에서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하며 성장해가고 있었다.

 

중학생 사춘기 아이들은 한창 자신과 타인의 외모에 신경쓰고 거울앞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어지는 시기이다. 그런 시기에 마스크가 일상이 된 아이들은 코로나 시기가 길어지면서 자신의 얼굴에 가장 적합하고 그나마 핏이 좋아보이는 각자의 마스크들이 이미 생겼다. 딸아이도 편한것도 그렇지만 나름 그게 제일 예뻐보인다 싶었는지 특정브랜드의 마스크만을 고집한다. ㅎㅎ 이건 외모를 신경쓰는 성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년부터 간단한 과제를 패들릿이라는 플랫폼으로 제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학생이 되니 종례를 주로 패들릿을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서로 실시간으로 댓글을 주고 받을수도 있고 있고 좋아요도 누를수 있는 플랫폼이다.

 

재미있는건 이전부터 문자와 카톡대화에 익숙한 아이들이 이 패들릿을 통해 하는 종례내용들이 너무 재미있다는 거다. 익명으로 글을 올릴수도 있기에 딸아이네 반 종례 패들릿에 학교 이름을 닉네임으로 단 어떤 익명의 아이가 계속적으로 글을 올린다. 센스있는 담임쌤은 그 학생의 댓글에도 답을 달아주신다.

이게 너무 웃기다보니 어느덧 옆학교 이름을 단 아이들이 두어명 더 생겨났다. 너무 웃기다며 아이가 보여준 패들릿을 보니 옆 학교인 oo중학교 이름을 딴oo이라는 닉네임의 아이는 종례 내용으로 오늘은 수업시간에 온라인 수업을 빠지고 괜시리 동네 용왕산을 올랐다며 산에 있는 고양이 사진을 같이 올렸는데 거기에 또 담임쌤이 산오르느라 수고했다는 답을 달아주셔서 웃음이 빵 터졌다.

어느날은 이제 전학간다는 말을 달고 정말 그 이후로 그 이름이 계속 안보이니 담임쌤이 그 친구가 보고 싶네~라고 답을 다셨다고 한다. ㅎㅎ

 

어떤 익명의 아이는 종례용으로 올라오는 패들릿에 매일 조금씩 연재소설을 쓰고 있었다. 내용이 계속 이어지는 3줄 정도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서 나도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ㅋㅋㅋ

 

그 패들릿을 보고 있으려니 아이들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하는 학교생활의 소소한 재미를 나름대로 찾아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아갈수 없다는 이야기들을 오히려 이 상황속에서 역설적으로 떠오르며 비대면 상황에서도 이렇게 화면속 모습으로 글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연대하고 온라인으로 함께 성장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이 시기를 지나는 우리의 아이들의 모습속에 많은 생각이 든다.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툴툴대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 할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즐기는 아이들이 더 현명하고 지혜롭다는 생각도 든다.

오늘도 변이에 대한 뉴스와 백신관련 뉴스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 상황속에서 이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고 속상하고 답답하다는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고 나도 오늘 하루의 일상과 내가 할수 있는것들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지혜를 발휘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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