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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레몬그라스 | 2021 독서기록 2021-09-1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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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름날의 레몬그라스

마키아토 저/한수희 역
arte(아르테) | 2021년 07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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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문장으로 우리를 감동시키고 어떤책은  탁월한 스토리와 서사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런가 하면 문장도, 참신한 스토리도 아니지만 흔한 소재 하나로 우리의 경험과 기억을 건드리며 우리를 끌어들이는 책도 있다.

바로 '여름날의 레몬그라스'가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흔하디 흔한 소재인 학창시절 첫사랑 이야기.  

그렇기에 그냥 지나쳐버릴 사람과 그렇기 때문에 책을 집어 들 사람 둘로 나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떤 쪽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만화같은 표지 그림만 보고 이 책이 말랑말랑한 첫사랑을 다룬 만화책인줄 알았다. 더운 여름날 이 책의 표지 그림과 어울리는 제목인 상큼한 레몬그라스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만화를 읽은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볍고 통통튀는 만화책이 읽고 싶은 마음에 이 책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학창시절 여름방학이면 추리소설과 만화책을 종종 읽었던 기억도 떠올리며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의 표지에 아주 작게 장.편.소.설. 이라고 적힌걸 나중에 책을 받아보고서야 알게되었다. 대만 작가 마키아토의 장편소설로 대만 온라인 플랫폼 오리지널 네트에 연재를 시작하고 인기판매순위 1위에 오르면서 현재까지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자랑한다고 한다.

구애소설의 여왕으로 불린다는 작가는 그 별칭에 걸맞게 이런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의 니즈에 딱 적합한 스토리와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해서 그런 소설들이 갖춰야할 모든 양념들을 골고루 첨가하여 잠시나마 책을 읽는 소설속에서 독자들이 달달한 간접경험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가볍고도 유쾌하면서 달달한 연애소설은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취향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작가가 복선으로 깔아놓은 몇가지들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복선이라고 할수도 없을만큼 앞뒤 상황과 힌트가 너무나 쉽게 드러나서 금새 추측하며 결말을 예측할수 있다보니 그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는데다가 연애소설의 정석같은 여러가지 장치들이 의외의 결말같은 신선한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남주는 부모님이 아닌 부자이지만 보수적이고 손자의 성공에 대한 욕심이 있는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설정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준세이를 떠올리게 했고, 피아노를 잘치고 콩쿨에도 나가면서 다른 여학생과 졸업식에 연탄곡을 함께 치는 남주 청이의 모습은 자꾸만 영화 '말할수 없는 비밀'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보면 '말할수 없는 비밀'도 대만의 고등학생들이 나오는 영화인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대만의 여성 독자들은 피아노를 잘치는 남학생에 대한 로망이 있는건가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여심을 흔드는 주인공 남성이 피아노앞에 앉아 슬픈 곡을 치고 있는 장면들이 종종 떠오르고 교회오빠는 왜 꼭 피아노를 잘 칠까란 생각도 들면서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은가란 생각이 들었다. ㅎㅎ

 

왜 이런 연애소설의 남학생들은 항상 야리야리하면서 하얀 얼굴의 외모뒤로 근육질의 팔을 갖고 있으며 그에 어울리지 않게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걸까...ㅋㅋㅋㅋㅋ 자꾸만 이런 의문을 떠올리다보면 나는 참 로맨스소설에 집중을 못하는구나란 생각이 들어 혼자 읽다가도 비실비실 웃음이 난다.

 

게다 이 여주는 로맨스 소설에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삼각관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어릴때 오줌찔찔 싸던 코흘리게 친구가 어느덧 멋지게 성장해서 늘 옆을 기사처럼 지켜준다거나 남주와 트러블이 있을때마다 그 코흘리게 친구가 실연의 슬픔을 옆에서 묵묵히 받아준다거나, 여주에게만 못나보이던 어린시절 친구가 사실은 엄청 잘생기게 성장해서 알고보니 학교내에 인기남이라는 사실은 연애소설의 정석과도 같은 클리셰다.

연애소설을 연애소설로 읽어야지 자꾸 읽으며 다큐찍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첫사랑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을 기대했던것일까. 

건축학 개론과 같은 아련한 첫사랑은 첫사랑일뿐 이루어질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는 것을 기대했던 것일까. 

 

그러나 100만의 독자들이 원하는것은 달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수 없을 동화같은 이야기와 어떤 역경도 다 이겨내는 해피엔딩이였음을 문득 깨닫게 되고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서 연애의 정석같은 주인공과 스토리를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기억은 오래전 터키의 에페소 뮤지엄에 서서 오랜세월의 때가 묻은  수많은 큐피트와 프쉬케의 장식품들 그리고 다양한 사랑의 속성을 표현한 조각품들을 보면서 느꼈던 묘한 기분을 떠올리게 했다.

그 고대의 예술품을 보며 인간에게 사랑이 대체 무엇이길래 시공간을 초월하여 고대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화두로 남는것일까, 한참을 서서 멍하니 조각을 봤던 기억을 연결시켜주었다.

 

어떤이에게는 열병과도 같이 격렬하게 흔적을 남기고  어떤이에게는 잔잔하면서도 편안하게 흘러가는 그러나 우리 모두는 머리보다 가슴 한켠에 그 기억을 간직한 첫사랑이기에 그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문구들을 이곳에 적어본다.

 

청이가 떠났다.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결말을 앞두고 갑자기 중단되어 버린 소설처럼, 내게 수많은 물음표와 끊임없는 말줄임표만 남긴 채......

몇년 후에야 문득 깨달았다. 사랑에선 미완성도 하나의 완성이라는 걸.

사람들은 그걸 '아쉬움'이라고 부른다.

 

청이는 사랑할 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럼 사랑하지 않을땐?

후회하게 될까?

우리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다. 사랑하는 법은 배웠지만, 사랑하지 않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아주 아주 오래 서 있었던 것 같다. 불꽃 소리가 들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밴드 공연이 끝나고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까만 하늘에 영롱한 불꽃이 펑펑 피어났다. 불꽃이 터지면 주변 경치가 휘황찬란하게 빛났고, 불꽃이 사그라지면 모든 것이 모호하고 흐릿해졌다.

청춘 속에 활짝 피어난 사랑 같았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짧고, 마지막엔 흐릿하게 바래는,

그 사람은 이미 없었다.

 

열일곱 살 그해, 난 한 남자의 사랑을 얻었고, 내가 온 세상에서 제일 큰 행운을 거머쥔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을 소유하려면 행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없었고, 우리가 함께하면 행복할 것이라 믿을 용기가 없었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모든이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책 말미에 작가의 말을 적어놓았는데 왠지 갱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내가 이 소설을 읽는건 반칙이라고 말하는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마음은 아직 청춘이라고 외치고 싶지만...오춘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나에게 그래도 이 책을 읽는동안 잠시나마 20대초반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사랑에 관해 말한 다양한 영화들과 책들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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