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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김화영 역
민음사 | 2011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카뮈가 이야기 하는 전염병, 혹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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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에서 먼저 만났던 알베르 카뮈’. 책이 좀 어려워서 카뮈의 책도 어려울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힌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페이지가 한참 넘어가 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시간은 훨씬 더 많이 지나있다. 잘 읽힌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더디게 읽힌 모양이다. 소설임에도 시간이 꽤 걸려서 당황했다. 게다가 오래 걸리기도 해서 한 번에 읽기에는 마음이 무척 힘들다. 중간 중간 휴식 같은 책을 읽으며, 쉬어 가며, 손에 놓지 못한 채 읽었다. 어렵지 않지만 쉽게 읽히지도, 편하게 읽을 수도 없는 책이다.

이런 시국이라 더 그랬을지도. 다른 때라면 흥미롭게 그렇구나 하며 읽고 넘겼을 이야기를, 몹시 공감하며, 이해하며, 함께 불안해하며 읽었기에 마음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처음 대구에 모 종교에 집단 감염이 퍼지자, 나는 흡사 밖에 좀비가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곳에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녔을지 상상만으로도 소름 돋고 역겨웠다. 그런 나의 이미지가 이제 쥐로 바꼈다. 쥐에서 옮아온 치사율이 엄청난 이 흑사병의 그림이 그려진다. 다행히 우리의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게 가장 다르다.

전체적으로 서술자가 그리고 있는 대중들의 심리가 인상적이다.

-       사실 재앙이란 모두가 다 같이 겪는 것이지만 그것이 막상 우리의 머리 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된다. (54)

-       자기에게는 아직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재앙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55)

당연히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이 재앙이며, 자신들의 목숨까지 쉽게 앗아갈 수 있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재앙인지조차 자각하기가 힘들다. 시간이 지나보면 아, 그것이 재앙의 시작이었구나, 아 지금 내가 재앙의 대혼돈의 중심에 놓여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터이다.

-       그때 우리가 끊임없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던 공동, 과거로 돌아가고만 싶은, 혹은 그 반대로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고만 싶은 구체적 감정, 어이없는 요구, 저 불타는 화살과도 같은 기억, 그것이 바로 귀양살이의 감정이었다. (98)

-       이 모든 변화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유별났고, 또 너무나 재빨리 이루어진 까닭에, 그것이 정상적이고 지속성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개인적인 감정들을 제일의 관심사로 여기고 있었다. (110)

그래서 놀라웠던 것은 책에서 주로 그리는 고통은 옆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누군가를 잃는, 혹은 떨어지게 되어 느끼게 된 불안에서 왔다. 내가 잘못 파악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는 상황보다 누군가와 생이별을 해야만 하는 공포를 많이 묘사하고 있다. 이해 못한 부분. 물론 사랑하는 이와 갑작스레 헤어지게 된다면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죽음을 보지 못하고 이별의 고통만 느끼게 될지는 의문이다.

-       사람이란 기다림에 지치면 아예 기다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도시 전체는 미래의 희망 없이 살고 있었다. (336)

-       아직 불행과 고통의 태도가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그것을 예리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중략) 불행은 바로 그 점에 있는 것이며, 또 절망에 습관이 들어 버린다는 것은 절망 그 자체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238)

-       그 사람들은 점점 더 빈번하게 자기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위생 규칙을 소홀히 하고, 자기 자신들 몸에 실시하기로 했던 수많은 소독 규칙을 잊어버렸으며, 때로는 전염에 대한 예방 조치조차도 취하지 않고 폐장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 곁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253)

결국 길어진 재앙 속에서 사람은 무너지게 된다. 어떤 희망도 갖지 못한 채 현재의 괴로움에 파묻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 존재하고 있는지, 혹은 그저 있음을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무뎌지고 만다. 그 상황에 무뎌져 뭐가 중한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는 그 재앙을 더 혼돈으로 몰고 간다.

  이 지점이 지금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조금 길어진 이 숨막히는 상황에서 아둥바둥하며 못 견디고 자꾸 이탈을 감행한다. 애초에 나와 상관없는 일인양 살았던 사람들도 그렇지만 따뜻한 봄기운에 자꾸 방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섣부르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조짐이 보인다. 무섭다. 아직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이 시점에 섣부른 행동으로 반전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제발….

  서술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난 일을 그리는, 그러면서 차분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하는 주인공. 그래서 더 무섭고 걱정되었다. 언제 쓰러져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       단지 페스트를 겪었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우정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가진다는 것, 애정을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는 그것에 대한 추억을 갖게 되리라는 것, 그것만이 오로지 그가 얻은 점이었다. (378)

-       그 잊힌 사람들, 이제 동반자라고는 아주 생생한 고통밖에는 없게 된 사람들, 또 그 순간 사라져 간 사람의 추억밖에는 매달릴 곳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정이 전혀 달라서, 이별의 슬픔은 절정에 달했다. (384)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며, 많은 것을 견뎌내고, 심지어 꽤 깊은 우정과 자신의 사랑도 잃은 그 시간을 견뎌내면서 자신에게 남은 것을 살핀다. 어쩌면 모든 것이 지나간 그 곳에서 온전히 자신만의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크나큰 책임감으로 자신을 지탱하다, 이제야 조금은 숨 쉴 수 있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       리유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285)

  아마 주인공만큼이나 많이 언급될 사람이 아마 타루일 것이다. 타루라는 사람이 가지는 매력, 그만이 지니고 있는 윤리관은 몹시 강직했다. 페스트안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그는, 언제나 페스트 안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가는, 끝나가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일은 끝난 것처럼 자신의 생명도 내려놓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진정 페스트에 휩쓸려갔다. 다시 읽는다면 좀 더 중점적으로 다시 읽어 보고 싶은 인물이다.

  한동안 보지 않았던 코로나 관련 정보를 검색했다. 티비나 라디오 같은 어떠한 매체도 이용하고 있지 않아서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수치는 경이로웠다. 완치자의 수치가 이렇게나 많이 늘었다니. 17개월 아가의 재확진 소식과 한 명 한 명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완치자가 이렇게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게 마음이 놓인다. 누가 뭐라든 우리는 지금 잘 해내고 있다.

-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다만 공포와 그 공포가 지니고 있는 악착 같은 무기에 대항해 수행해 나가야 했던 것, 그리고 성자가 될 수 없고 재앙을 용납할 수도 없기에 그 대신 의사가 되겠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개인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행해 나가야 할 것에 대한 증언일 뿐이다. (401)

책과는 다르게 다행히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았다. 지병이 있었거나 몸이 힘드셨던 분들에겐 큰 재앙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도왔기에 우리 모두 버티고 있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봉쇄하지 않았고(봉쇄 좀 했으면 하는 곳이 전혀 안 해서 오히려 문제였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지금 당장 경멸해야 할 일 보다는 찬양하며 서로를 북돋울 일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주인공 리유와 그의 동지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에서의 주인공인 우리에게 찬양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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