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독서 기록장
http://blog.yes24.com/guiness1
리스트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게스
독서 기록장
파워 문화 블로그

PowerCultureBlog with YES24 Since 2010

7·9·10·11·12·13·14·15·17기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8월 스타지수 : 별272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함
전체보기
생각 조각
정보 메모
여행
밑줄
스크랩
나의 리뷰
2019.12
2019.11
2019.10
2019.09
2019.08
밑줄
2019.02
2019.01
2018.12
2018.11
2018.10
2018.09
2018.08
2018.07
2018.06
2018.05
2018.04
2018.03
2018.02
2018.01
2017
2016
2015
2014
2013
한줄평
film
퍼옴
2019.03
2019.04
2019.05
짧은 보기
2020.01
태그
초예측 미래예측서 2019최고의책 프루스트효과 폭스파이어 여자혼자시베리아철도여행 시인의밥상 밀수이야기 예문아카이브 소녀룩
2020 / 08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최근 댓글
문득 생각나 와 봤더.. 
저도 90년대 말 공과.. 
제가 이번에 자연과 .. 
내용이 독특하면서도 .. 
눈의 색깔이 그들을 .. 
새로운 글
오늘 22 | 전체 552311
2007-01-19 개설

전체보기
살갖에 새겨 넣는 소망을 심장에 수놓는 이야기 | 2020.01 2020-03-27 15:06
http://blog.yes24.com/document/12266940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 저
arte(아르테) | 2020년 03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아플까봐 귀도 못뚫고 평생을 변변히 귀걸이도 못하고 살아온 나는 타투를 하는 행위는 일종의 경외의  대상이다. 피부에 지울 수 없는 무언가를 새긴다는 건 변치 않을 무언가를 가슴에 새기는 것과 같은 행위일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몸에 타투로 서로의 이름이나 표식을 새겨놓을 땐 , 그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을 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어서일 거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한 때 조폭들이 표식으로 서 뱀이나 호랑이 같은 자기들 표식을 나타내는 문신을 몸에 깊게 패어 새길 때 내가 이 길이 삶의 길이다, 이렇게 폭력과 불의로 생계와 (나름 그쪽에서의 )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게 내가 갈 길이고 다른 삶은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의지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구병모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삶의 비루함과 치열함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심리와 일상을 현미경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게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스토리를 결합한다. 내가 무슨사조 이런 걸 모르지만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책을 받아보고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에 놀랐는데, 이렇게 작은 중편들이 아르테에서 내는 시리즈였다.  작은 사이즈인만큼 중편 정도의 분량인데, 구병모 소설이 대개 사이즈와 상관없이 스토리가  다이나믹하다.  


기이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 장르와 주인공이 회사에서 겪는 소소한 일상이 교차되어 가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주인공의 회사생활은 경력 단절을 겪다가 복귀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과 높은 연령 때문에 회사에서 겪는 잘잘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복귀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실상을 전달하고 있지만, 주인공과는 전혀 관련있을 것 같지 않은 엽기적 살인사건들이 교차로 벌어지면서 독자는 궁금증을 헤어나올 수 없다. 


그런데 하나씩 둘씩 벗겨지는 살인 사건의 비밀 속에서, 피해자는 죽어 마땅할 수도 있는 가해자였음이 드러나고, 실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살인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발견되는 용의자들은 살인의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용의자인 이유도 그동안 죽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왔다거나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을 여러 피해를 당했기 때문인 것인데, 단지 이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그동안 피해를 많이 당했다고 해서, 증거도 없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기소할 수는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죽였단 말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어찌되었건 용의자 밖에는 누구도 접근 불가능한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더더욱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 뒤에 타투를 한, 신입이라기엔 나이가 많으나 경력이라기엔 어디서 차분히 몇년 일하며 쌓은 경력이 없기에 그냥 신입인 화인과 마찬가지로 나이는 들었지만 경력단절로 인해  아무 직책도 갖지 못한 주인공이자 화자인 시미는 상무라는 아주 지극히도 상사의 언어 폭력과 맞닥뜨리는데, 도디체 이 나이대의 이런 직급의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사생활이라던가 하는 남녀 평등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없다. 목에 살짝 살짝 보이는 화인의 타투를 보며, 노골적으로 지적질을 하니 선배로서 시미는 화인을 지켜주고파 한 마디 거들었다가, 그나마 본전도 못찾을만큼 된통 언어 폭력을 당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화인과 가까워진 틈을 타, 타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타투 집에 방문하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하는데.


어느날 화인은 앞에서 벌어졌던 이상한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집에 불이나고 아버지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화인은 심하게 맞은 상처로 발견되었지만 화상은 입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화인은 이제껏 발생한 미스터리 살인 사건들과 타투와의 관계를 서서히 파악해나가기 시작한다. 


옛부터 사람들은 부적을 지니고 있곤 했다. 어떤 그림이나 글씨들을 지니고 있으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타투도 그런 의미로 새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다는 어떤 상징, 그것을 몸에 새김으로써,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일찌감치 이혼을 했던 시미의 삶은 상처와 상실로 가득하다. 이 때 전남편이 두고 온 아들과의 만남을 막아, 어릴 때에도 커서도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고, 어렵게 성사시킨 처음이자 만남 때에는 다시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혹독한 소리를 듣고서야 폭력적 아버지를 두고 어미가 떠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들의 삶에 자기가 끼여들 여지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짧으면서, 술술 잘 읽히면서도 구병모 소설에서 기대하는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4        
[스크랩] [서평단 모집]★아르테 한국소설선★『구병모 신작 소설 :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스크랩 2020-03-16 15:58
http://blog.yes24.com/document/12220059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리뷰어클럽


---

 

서평단 여러분께

1. 수령일로부터 2주 이내 리뷰 작성 부탁 드립니다(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어려우실 경우!)

2.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http://blog.yes24.com/document/4597770)

 3. 해당 서평단 모집 포스트를 본인 블로그로 스크랩 해주세요^^!

 페이스북을 사용하신다면 포스트를 페이스북에 공유하신 뒤 댓글로 알려주세요!

 4. 리뷰에 아래 문구를 꼭 넣어주세요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5. 리뷰를 쓰신 뒤 함께 쓰는 블로그 ‘리뷰 썼어요!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세요.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0        
[르귄-환영의 도시] 파괴된 행성 | 2020.01 2020-02-26 11:15
http://blog.yes24.com/document/12141633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환영의 도시

어슐러 K. 르 귄 저/이수현 역
황금가지 | 2005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땅에 최초의 종족이 있었고…… 두 번째로 정복자들이 왔다. 정복된 이들과 정복한 이들 모두, 수백만의 생명이 지난 시간의 흐릿한 지평선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별들이 모였다가 다시 길을 잃었다. 여전히 세월은 계속 가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인간이 역사를 일구고 유지하던 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고대의 숲은 다시 자랐다. 


르 귄의 헤인 시리즈에는 항상 연맹이 있습니다. 이 연맹은 모든 세계의 연맹으로, 우주 개척 시대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의 모든 헤인 시리즈에서 연맹의 실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연맹에서 파견되었거나, 연맹을 전설로 여기고 있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가느다란 줄을 통해 연맹의 일을 수행하고 있거나 그렇습니다. 환영의 도시에서 연맹은 몰락한 듯 보입니다. 이 책은 앞서 리뷰한 유배행성 다음에 출간되었습니다. 유배행성에서는 연맹에서 잊혀지고 몰락해가는 인간의 후예들이 공전주기가 엄청나게 긴 행성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그곳에서 테라인의 눈동자는 기이합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눈동자가 그곳에서 원래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기이하게 보입니다. 애초 먼 먼 초기에 헤인인들이 씨를 뿌렸다는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원래 조상은 헤인인들로 같습니다. 행성의 환경과 진화 과정에서 눈동자가 변했을 겁니다. 


이 곳의 공간적 배경은 지구입니다. 먼 미래의 지구. 몰락하고 무너져 폐허가 된 지구입니다.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씨족 공동체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혜택도 이상합니다. 썰매라고 불리는 후버크래프트 같이 지상에서 약간 띄어져서 날아다니는 개인 탈것이 있고, 레이저총 같은 살상 무기도 있지만, 생활은 영 원시인같습니다. 그들은 두렵습니다. 싱이라는 존재가 있는데, 싱이 두려운 존재입니다. 은유가 넘실대는 르귄의 책에서 싱이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싱의 정체는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헤인 시리즈를 비롯한 르귄 소설의 특징중 하나가 로드 무비를 연상시킨다는 점입니다. 길을 떠나고 길 위에서 온갖 시련을 겪습니다. 헤인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었던 <로캐넌의 세계>에서 로캐넌은 행성을 구하기 위해 행성 반대편에 있는 적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말이죠.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겼습니다. <빼앗긴 자들>에서는, 주인공 완전히 새로운 무정부주의적인 체계  그들이 스스로 낙원이라 일컷는 오도니즘을 실현시킨 아나레스 행성에서 아나레스에서도 주인공은 고향행성을 떠나 우라스로 가서 말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며 계속해서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어둠의 왼손> 역시 전형적인 로드무비입니다. 어떤 행성을 연맹에 편입시키려고 대사의 역할을 하러 갔는데, 그들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망명자가 되어 반대쪽 나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어둠의 왼손은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혹독한 추위 속을 걷는 중에 마치 남극 탐험기 같은 배경 속에서 일어납니다. <환영의 도시> 도 전형적인 여행담입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 팔크는 어떤 마을에서 발견되어 보살핌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야말로 빈 서판과 같은 아기와 같은 상태에서 과거는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는 생김새가 특이합니다. 눈이 일반인들과 다릅니다.  흰자위가 없이 노란색의 고양이 눈입니다. 가족처럼 보호해주던 마을의 가정에서 눈동자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모든 것을 빠르게 배운 팔크는 어느날 길을 떠나게 됩니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것이죠. 그 집 딸래미랑 사랑에 빠졌던 팔크 스스로 떠난 건 아니고, 떠밀려서 떠나게 됩니다. 


그는 여정에서 자신의 눈이, 그 차이가 다른 사람에게 괴물로 비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싱이라고 오해받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싱일까. 싱이 보낸 자일까 의심합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도시 입니다. 그곳에 싱이 있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그 모든 것을 밝혀줄 것이라 생각한 거죠. 그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까요.


앞의 리뷰 <유배행성>의 내용을 읽으셨다면 고양이 눈을 한 사람들이 흰자위를 가진 사람들을 외인이라 부르며 괴상하게 취급했던 걸 기억하셨을 겁니다. 그곳에서 두 개의 이질적인 세계가 로맨스로 연결되지요. 거듭되는 유산과 불임으로 쇠퇴해가던 테라인의 후예들은 그곳에서 그곳 세계와 화해하고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을 겁니다. 고양이눈을 했던 부족 수준의 원주민들에게도 우주를 날아다니는 과학기술이 생겼다는 거지요. 그 어떤 쓰이지 않는 우여곡절이 롤레리의 후손들을 연맹에 편입시켰던 거죠. 그래서 날아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우주선도 없고, 홀로이고, 발가벗겨지고, 기억이 지워져 있었던 겁니다. 그 모든 것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5)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유배 행성-르 귄] 어쩌면 남은 생에 전부를 보내게 될, 겨울 | 2020.01 2020-02-25 10:13
http://blog.yes24.com/document/12137643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유배 행성

어슐러 K. 르 귄 저/이수현 역
황금가지 | 2005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르 귄의 해인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헤인 시리즈의 각 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시간 갭은 수백년 수천년까지이며 우주의 여러 행성이 배경입니다. 게다가 지구에 사는 인간이 주인공인 것도 아닙니다. 시리즈의 전편인 로캐넌의 세계는 테라인(지구인)인 로캐넌이 연맹의 반란군으로부터 구했다고 해서 후에 로캐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행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연맹의 역할은 우주 곳곳을 누비며 지성 생물체를 발견하면, 그들에게 문명을 심어주고 연맹에 편입시킵니다. 하지만 연맹은 과거 서구 제국주의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정복하거나 지배하지 않습니다. 처음 발견한 지성체들에게 진보된 기술을 무력으로 그들을 무릎 꿇리지 않습니다. 


<로캐넌의 세계> 이전에 단편 <샘레이의 목걸이>에서의 설정과는 다소 다릅니다. 영주의 아내 셈레이는 우주 어딘가에서 전쟁을 한다며 세금을 걷어가는 연맹을 스타로드라고 불렀고, 그들의 지배하에서 궁핍한 모습을 보입니다. 훗날 진흙족을 만나 목걸이를 찾으러 왔던 셈레이를 만났던 박물관장 로캐넌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시한 연맹의 개입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고, 문명 전달은 좀 더 엄격한 룰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로넌이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반란군으로부터 행성을 지켰건만,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유배 행성에서의 배경은 더 나빠진 듯 보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공전 궤도가 극단적으로 깁니다. 계절도 극단적으로 길지요. 한 사람이 삶을 살면서 네 번의 계절을 평균 한 번씩  경험합니다. 두 번의 계절을 나게 되면 장수하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이 세계에는 월기라는 낯선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달과 지구가 서로의 주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약 400일입니다. 이 60번의 월기가 항성과의 공전주기에 해당되며, 이 1년은 거의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기간과 맞먹습니다. 총 2만 4천일입니다. 하루와 시간이라는 개념이 똑같다면 말이지요, 이들의 태양은 감마 드라코니스입니다.


긴 여름, 긴 봄, 긴 가을 모두 살만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길고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Winter is coming'. 겨울을 대비하는 것은 일생의 활동입니다. 르귄은 이렇게 색다른 세계의 문명을 매우 섬세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천막같은 곳에 살며 혈족 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곳 원주민인 월드 혈족의 문화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한 계절 활동을 중심으로 같은 계절에, 봄과 가을에 아이를 낳습니다.  봄에 태어난 아이는 가을이 되면 가임기가 되어 아이들을 잔뜩 낳습니다. 그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겨울을 넘기고 봄에 가임기가 되어 아이들을 낳습니다.  시간 배경은 겨울을 앞둔 시기에서 시작하여 혹독한 겨울동안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배경상 월드 혈족에게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젊은 여성은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롤레리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녀는 잘못된 계절에 태어났습니다. 스무번의 월기를 지난 나이라고 나오는데, 지구나이로 계산하면 400*20/365 = 약 22세 정도이군요. 잘못된 계절에 태어난 남자 아이가 없다 보니, 또래의 남자는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모두 혼인하여 가을에 아이들을 잔뜩 낳았습니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립니다. 봄에 태어난 늙은 남자의 두번째나 세번째 아내가 될 가능성만 남아 있는 여자 아이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군요. 이 소설은 대단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롤레리에게는 어떤 로맨스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 월드 족의 생활 구역 경계 너머 해안 도시 랜딘에는 원주민들이 '외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연맹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연맹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랜딘은 연맹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딛었던 이래 옛중심지이자 첫번째 거류지입니다. 오래 전 10지역년 전, 이 행성에  뿌리를 내린 이후 한 때 랜딘은 강하고 부유한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이들은 한 때 많은 큰 번성을 주렸지만,  어떤 이유로 그들은 점차로 고립되어 갔습니다. 땅을 지배하려던 오래 전의 꿈은 잊혀지고, 힐프들에게 무너지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길고 혹독한 겨울과 적대적인 힐프를 피해 랜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인구는 열 세대에 걸쳐 점점 줄어들었고,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기술과 영혼을 지지해줄 에너지와 영혼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문명은 점차로 퇴보합니다.  아이들에게 알테라들의 옛 지식과 옛 관습 그러니까 문명을 가르쳤지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세대가 거듭되며 더 적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점차 초라해졌고, 간소해졌고, 평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연맹의 책이라 해서 모든 지혜가 다 실려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그 지식도 조금씩 소실되어, 지금 이곳의 일상 생활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들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책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어떤 유산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는가? 오랜 희망과 전설 속에 나온 대로, 별들 사이로 불을 내뿜으며 배가 내려앉아 그 속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면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알아줄까?


배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질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 이 세계에서의 긴 유배와 투쟁도 사기 조각처럼 깨어져 사라질 것이다.


퇴보하고 쇠락해가고 있지만 우주선과 같은 모든 현대적인 과학지식이 있고 텔레파시  능력까지 있는 외인들과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서구 침략 당시 인디안들의 수준에 불과한 저수준의 문명을 가진 월드 혈족 간의 만남은 롤레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또래가 전혀 없어 평생 외톨이인 롤레리는 혼자서 다닙니다. 그녀는 알테라 구역의 해안, 모래톱, 바다, 그리고 '검은 바위'를 보고싶습니다. 롤레리가 말하는 검은 바위는 높은 성, 요새입니다. 하지만 해일처럼 빠른 밀물에 대해 무지한 롤레리는 위험을 알리는 텔레파시를 감지하고, 가까스로 구출됩니다. 롤레리를 구출한 사람은 아가트, 외인들의 대표 알테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맹은 규칙상 그들에게 진보된 기술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외인과 힐프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랜딘인들과 월드 혈족들은 서로에게 무심한듯 적대적이지만, 지역을 맞대고 있으므로 공동의 관심사가 생기게 됩니다. 북쪽에 가알이라는 아주 적대적이고 야만적인 종족이 있는데, 그들이 이제껏 겨울을 준비해온 월드족을 침략하고 약탈할 거라는 소식입니다. 가알이 침략한다면 랜딘도 무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20세대간의 투쟁의 역사가 막을 내릴 위기입니다. 두 이질적인 집단은 서로 협력해서 가알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가트는 무지하고 편협한 월드 종족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월드 혈족의 딸 롤레리는 자크 아가트와 썸을 타고 있거든요. 월드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불쾌해합니다. 


단순하게 본다면 로맨스와 전쟁이 적절하게 배치된 액션 스토리지만, 르 귄 여사는 인류학자인 부모님의 영향과, 박물관 살아있는 전시품이 되었던 마지막 인디안 혈족과의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아주 이질적인 두 문명의 충돌과 융화 과정을 이러한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게다가 선진적 문명의 침투 과정은 서구인들의 제국주의 시절과는 매우 다릅니다. 진보된 기술의 사용이 금기되었기에, 전멸적인 상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파괴력 뿜는 무기 사용 금지 사항을 지킵니다. 그들과는 이미 연락도 안되는 연맹인데도 말이죠. 어디서 어떻게 망했는지도 모르는 연맹인데도 말이지요. 가알을 막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큰 위기에 빠지지만, 롤레리와 자카드와의 사랑은 그 큰 혼란 속에서도 훈훈하게 진행됩니다. 


여기에 두 문명의 충돌, 결합, 그리고 그 결실이라는 카드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진화한 인간이 이 이상한 행성에서 세대가 진행할 수록 서서히 불임과 유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두 외계인은 생김새도 제법 다릅니다. 특히 눈동자는 서로가 서소를 이질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르 등장합니다. 이러한 생김새의 이질성은 후속편 <환영의 도시>에서도 연결됩니다. 


월드는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아가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월드의 눈은 겨울 태양처럼 흐릿한 노란빛을 띠었고, 비스듬한 눈꺼풀 아래에 흰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얼굴에 보이는 아가트의 눈은 홍채나 눈동자나 할 것 없이 검었고 한쪽 구석이 희었다. 지상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이상한 눈이었다.


자크 아가트의 눈동자는 지구의 다른 동물들과도  크게 차이나는 흰자위가 드러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은 흑인입니다. 이 작품이 1960년대 혹은 70년대쯤 쓰여진 것을 생각하면 영화판이나 드라마 시리즈에서 전형적인 화이트 와시 현상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점을 볼 때 르귄 다운 과감한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시리즈로 제작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백인 위주의 영화/드라마 판에서 인종적인 구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서로 협력하게 된 두 인종은 이종 교배 즉 두 인종 사이의 생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재앙일 수도, 구원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분노합니다.


“제대로 아이를 낳는 한 우린 인간이었어요. 유배자이고, 알테라이며, 제대로 된 인간이었단 말입니다. 지식과 인간의 법에 충실한. 이제 우리가 힐프와 더불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일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인간의 피는 잃어버리고 말겠죠. 묽어지고 엷어져서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란 말입니다. 이 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이도, 이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이도 남지 않겠죠. 자콥 아가트의 손자들은 돌을 두 개씩 들고 둘러앉아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함성이나 질러대겠지요……. 망할 놈의 머저리 야만인들 


하지만 외인과 결혼한 롤레리, 두 사람 사이에 생식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던 롤레리는 '죽음으로 가득한 폐허의 도시 아래, 잠든 부상자들 사이에 앉아서 말없이 생명의 기회를 곱씹어' 봅니다. 폐허 속에서의 유일한 희망, 그것은 새 생명입니다. 


장엄한 마지막 구절을 올립니다.


겨울이었다.    

5000번의 밤과 5000번의 낮, 그들의 남은 젊음은 물론이고 어쩌면 남은 생애 전부를 보내게 될 겨울.    


... 비탄도 자부심도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찬 바람을 맞아 흔들리며 불꽃처럼 밝고 짧게 타오르는 기쁨만큼 진실하지는 못했다. 이곳은 그의 요새였고, 그의 도시요, 그의 세계였다. 이들은 그의 동족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더 이상 유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불길이 사그라져 잿더미로 변하자 롤레리에게 말했다.    

“자, 집에 갑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2020.01 2020-02-24 16:20
http://blog.yes24.com/document/12134921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저/이중원 역
쌤앤파커스 | 201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작가 카를로 로벨리는 이탈리아의 물리학자로 한국에서는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라는 책이 번역된 적이 있고, 그 때 책은 감명깊게 읽은 작가여서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시간이라는 주제를 물리학적으로 풀어가는데, 이 양반 글쓰는 솜씨가 물리학을 굉장히 뭐랄까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체로 쓰는 관계로, 과학책을 싫어하는 독자에게도 어필이 된다.


제목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인데  영어 제목은 <The Order Of Time>이다. 제목을 영어처럼 지으면 뭔가 아주 딱딱해지니까 조금 도발적인 제목으로 흐르는 시간을 흐르지 않는다로 바꾼 것 같은데, 본문에서는 실제로 시간을 우리가 시간에 대해 알고 있는 방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목이 유효한 것 같다. 


가만히 멈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이것이 시간이다. 친숙하고 은밀하다. 시간이라는 도둑은 우리를 끌고 간다. 1초, 1분, 1시간, 1년의 쏜살같은 흐름이 우리를 삶 속으로 밀어넣었다가 나중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끌고 간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산다. 우리 존재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시간의 애가哀歌는 우리의 영양분이 되고, 우리에게 세상을 열어주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편, 편안한 요람이 되어주기도 한다. 세상은 시간의 순서에 따라, 시간이 이끌어가는 일들을 펼쳐나간다.


작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을 부정하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어디서나 동일하게 가고 있다는 착각을 깨는 것부터 시작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그렇고 다른 SF 소설에서 우주 공간에서 시간 흐름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간극으로 인해 상실과 아픔을 겪는 스토리를 통해, 빠르게 이동하는 우주선에서의 시간은 지구에서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많이 접해왔다. , 특히 어슐러 르 귄은 이 주제를 그의 헤인 시리즈에  여러가지 변주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해왔다. 

로벨리는 지구상 시간이 어떻게 우리의 개념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시간은 장소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우주선을 타고 멀고 먼 다른 우주로 가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간차는 아주 매우 미세해서 우리가 느낄 수 없다. 느낄 수 없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이런 것들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한달 가까이 (해외 여행 후 에방 차원에서)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보이지 않고 느낄 수 없는 미세한 것의 힘을 강력하게 느끼게 된다.  같은 장소라면 높은 곳의 시간이 낮은 곳의 시간보다 더 빨리 간다. 그러므로 동일한 척도 하에서 산에서는 평지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평지에서는 더 적은 시간이 흐른다. 같이 태어났어도 평지에 산 사람은 더 짧은 시간을 살아 젊고, 산 위의 사람은 더 오랜 시간을 살아 더 늙었다. 그런데 저자는 물체가 떨어지는 것도 이러한 시간 지연 현상이라고 말한다. 사물이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아래쪽일수록 시간이 지구 때문에 느려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정식은 열역학 제2법칙(에너지 보전의 법칙)인데, 이 방정식에서 세상을 찾아낸 과학자가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이다.  그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기본적인 운동 법칙이나 심오한 자연의 문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무질서해져서 특수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점점 사라지는 것에 있다고 보았다. 로벨리는 볼츠만의 이론을 한묶음의 카드로 설명한다. 카드들이 색깔별로 특별하게 정렬해놓았다면, 이는 엔트로피가 낮은 구성이다.  이 카드들은 다시 하트와 스페이드로만 구분되어 있다면 또 다른 구성으로 특별하다. 이렇게 어떤 특성을 기준으로 구성하느냐에 따라 특수성이 생기지만, 모든 카드를 다 구별하면 그 어느것도 특별해지지 않는다.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우리가 세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구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산출하는 양이라는 것을 증명해 냈고, 과거의 미래의 차이는 이 희미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사물의 미시적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미래는 과거나 현재의 상태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원인이 결과보다 앞서지 않고, 미래와 과거는 현재를 중심으로 대칭적이다. 즉 볼츠만의 연구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을 보는 희미한 시선에서 나온다는 것이며, 이것이 시간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약화시킨다.

게으르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
멈춰있는 사람과 빠르게 왔다갔다 한 사람 역시 다른 길이의 시간을 산다. 멈춰있으면 더 많은 시간을 살아 더 늙게 되고, 빠르게 달린 사람은 더 적게 살아 더 젊게 된다. 더 많이 살았다는 것은 더 많이 호흡하고, 세포들이 더 빠르게 교환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다.  비행중의 1970년대에 시간과 지상의 시간을 초정밀도로 재어 비행중인 시계가 덜 갔다는 것을 증명했다. 앞의 높낮이의 경우에서도 그랬지만 우리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초정밀도 시계가 나오기 전 이를 알아냈다. 우주의 시간 구조는 아버지이자 형제이고 동시에 삼촌이 되는 근친 관계의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의 왕가의 가계도처럼 꼬여있다. 우주의 시간 구조 역시 원뿔형으로 이루어져, ‘완전’하지 않고 ‘부분’적인 우주의 사건들 간의 순서를 정의하는 특수상대성이론이 우주의 시간 구조가 친척 관계와 같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A의 미래는 B의 과거이고 A의 과거는 B의 과거가 되는 복잡하고 이상한 관계다. 시공간은 시간 구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시간의 층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광원뿔들이 교차하며 흐트러진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고요 속에서 아무런 신체적 경험이 없지만 우리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생긴다면, 우리는 즉시 어떤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한다. 우리 내면에서 흐른다고 인지한 시간도 우리 내면의 움직임이므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뉴턴은 정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외에 또 다른 시간, 사물이나 사물의 변화와 상관없이 ‘진짜’ 시간이 있다고 보았고,  모든 사물이 멈추고 우리 영혼의 움직임마저 얼어붙어버려도 ‘진짜’ 시간은 냉정하게 그리고 동일하게 계속 흐른다고 보았다. 공간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동일하게 개념을 적용했다. 뉴턴은 두 물체 사이에 ‘빈 공간’도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공간은 사물의 정렬 상태일 뿐이므로 사물이 없고 이 사물들이 확산되어 있지 않으며 접촉하지도 않으면, 공간도 없는 것이다. 뉴턴은 사물은 어느 한 ‘공간’에 위치해 있고, 이 공간은 사물을 치워도 빈 상태로 여전히 계속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과 뉴턴의 시간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이론으로 통합된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5        
애드온 감사드려요 | 생각 조각 2020-02-20 14:39
http://blog.yes24.com/document/12119748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판매 및 적립금 조회 
2020.02.01 ~ 2020.02.29 YES포인트 297원(총1건)
구분적립/
취소일
상품명판매가판매수판매총액YES포인트
리뷰15일픽션들9,90019,900297원


거의 1년만에 받아보는 것 같아요 ^^

감사합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2)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1        
[1947 현재의 탄생]오늘을 만들 어제 | 2020.01 2020-01-29 13:53
http://blog.yes24.com/document/12036484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1947 현재의 탄생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 저/김수민 역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전쟁이 끝난 지 햇수로는 2년이 지난 1947년. 한 해 동안 일어났던 일 현대사의 파편화된 역사를 저자 엘리사베트 오스브링크의 시각으로 꿰어 본 전쟁 이후 1년간의 세계 곳곳의 모습이다. 2차대전 이후 연합국의 승리는 후세에게 휴무 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필립 K 딕은 이 안도감이 나치와 일본의 전제정권의 자만감으로 채워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끔찍하고도 아찔한 상상을 했다.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암울한 세계가 아니었다. 지금도, 어제의 어떤 선택에 따른 인과의 결과로, 수많은 중첩된 세계 속의 디스토피아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 세계, 이 제도, 이 사회가 발전단계의 가장 마지막이고, 이상화된 사회라는 믿음을 강요당할 때 어쩌면 그것이 현실 속 디스토피아 일 지 모른다.

연합군은 이겼다. 유대인 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을 대량 학살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세계를 극소수의 손 안에서 주무르고 싶었던 학살자들의 시대가 끝났다고, 그래서 아마도 이제는 그 정반대의 가치가 삶을 모두의 삶을 구원해 줄 것이라 믿었던 1947년 미국의 존재와 파워, 그리고 미국의 선택이 많은 약소국들의 운명과 방향을 결정지었을 때 세계전쟁을 치르느라 지치고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느라 힘겹고,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어린아들들을 애도하고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느라 아마도 여유가 없었던 서유럽 국가들은 직접적인 대도시 피폭과 같은 대규모 학살과 피해가 없었을 미국의 결정에 편입될 수 밖에 없었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학살이 또다른 학살을 낳고, 테러가 테러를 낳고, 끝없을 것처럼 반복되는 반목과 증오의 정치.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날, 1947년을 전후한 국제 정치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희석되고 섞인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이라 규정한 유전자 배치가 대체 어떻게 2천년이 지난 후에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몰아내고 그 곳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영국은 전쟁을 치르느라 국력도 대영제국의 영향력도 추락했고, 미국은 연합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나치의 인종청소 정책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학살한 독일로 돌아가기를 희망 하지 않았으며, 시오니스트들은 이미 팔레스타인에서 테러를 시작했으며, 갈 곳을 잃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유대인 난민을 실은 배가 팔레스타인 해협에서 영국 군함에 의해 저지당하자 국제적 여론은 영국을 비난했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수용 정책은 분리 독립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급선회한다. 연합국의 그러한 결정의 배후에는 미국 정치인들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나치에 의해 학대받고 핍박받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인종을 향한 증오와 폭력은 나치의 그것을 닮았다. 이 책은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전후 나치에 가담했다는 혐으로 재판도 없이 무차별적인 보복적 처형이 이루어지는 동안 나치를 숭배하는  전범들은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 다시 순수한 혈통을  지키겠다는 혐오의 회생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세계의 국제 정세는 지각 변동을통한 재편에 돌입하지만..

전후 독일 철저한 전범의 처벌은 곧잘 일제 강점기동안 친일파 및 전범의 부당한 재등용의 국내 사례와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치의 비호세력은 전쟁 후에도 세를 불리고 있었고, 그들의 혐오의 정치는 청산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 해동안 일어난 일들은 먼 훗날인 현재를 만든 인과성 안에 있었던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6        
[ 김초엽]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 2020.01 2020-01-29 13:35
http://blog.yes24.com/document/12036431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저
허블 | 2019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과학과 기술의 변하의 속도를 매일 실시간으로 체감하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조금 더 과거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미래의 모습을 전망해 볼수 있다. 오래 전부터 SF 분야의 단골 소재가 되어은 몇몇 분야의 기술은 과거에 상상한 희망과 기대 우려와 걱정을 현실의 무대로 직접 옮겨왔다. 확실히 유전자 공학은 우리의 삶과 앎의 지평을 야금야금 침식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보인다. 적어도 인간 유전자를 함부로 뒤섞지 못하게 강제하고 있는 현재까지는…유전자 가위 기술이 수만년동안 자연 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생명체의 유전자를 이리저리 바꾸어 보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어슐러 K 르 귄의 <아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연상되었다. 얼굴에 얼룩을 남기는 유전병을 지닌 채 태어난 릴리는 새로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아무런 병도 갖지 않고 오직 뛰어난 특성들로만 유전자가 구성될 수 있는 기술을 완성한다. 누구나 쉽게 태어나기 전 유전자 지도를 스크리닝하여 사회가, 부모가, 그리고 시대적 유행이 요구하는 완벽한 인간이 되도록 자르고 붙여넣기가 가능해진 시대, 하지만 우리가 현재에 그토록 우려하고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부의 편중에 의해 소외된 낙오된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은 무엇이 될 것인가.
완벽한 인간을 만들려는 노력이 기형적 사회를 만들었음을 깨달은 릴리는 다른 행성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한다.

올리브가 태어난, 모두의 어머니가 릴리인, 릴리가 세운 이 이상향에서 릴리 이전의 과거, 릴리 이전의 역사는 잊혀졌다. 망각에 뿌리를 두는 이상향은 진정한 이상향일까? 르귄의 또다른 소설, 장편 <빼앗긴 자들>에서 세운 아나키스트들의 이상향 아나레스가 보여준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버리고 떠난 세상 그 역사와 과거를 잊음으로써 행복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들에게 성년식이 의미하는 것은 이 아름답고 행복한 세계 말고, 불행하고 슬픈 시초지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오벨라스에서 마을 공동체가 행복의 댓가로 고통받고 외면당해야 하는 아이의 존재를 필요로 했던 것과는 달리, 이 행성에서 행복의 댓가로 개인의 희생어라는 낡은 윤리적 딜레마를 요구하지 않는다. 지옥에 가서 고통을 확인하고 그러한 시초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초지로 순례를 떠난 사람들은 많은 수가 되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하다. 그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 비탄이 존재하지 않는 행복한 마을로 돌아가지 않기로 한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처럼.

어쩌면 사랑은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일 지도 모른다. 슬픔과 아픔과 비통이 없는 사회가 의미하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독점적이고도 배타적인 그런 강렬한 사랑의 부재일 지도 모른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어슐러 K 르귄] 키르히데에서 성년 되기 (세상의 생일) | 2020.01 2020-01-24 17:49
http://blog.yes24.com/document/12024123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세상의 생일

어슐러 K.르 긘 저/최용준 역
시공사 | 2015년 0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기품있고 해학적인 르 귄의 글은 겸손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세상의 생일> 서문에서, 그의 헤인 우주관에 대해 단편집, 자신히 딱히 그 우주를 창조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나는 그 안에서 우왕좌왕했고, 그 뒤로도 계속해 체계 없이 우왕좌왕했다.'고 밝힙니다. 르 귄의 다른 글에서도, 인물들을 먼저 떠올리고, 그들을 조금씩 구체화시키면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풍성한 은유로 가득찬 그의 글에서 소설이란 그렇게 플롯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많이 느낍니다. 실제로 방대한 헤인 우주 시리즈를 읽다보면 르귄의 세계관이, 그가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들의 일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배, 소외, 문화적 충돌, 험난한 여정, 드러나는 진실 등, 그가 평생을 통해 조금씩 확장해간 우주는 광선검과 첨단 우주 병기들이 활개치는 액션 어드벤쳐적 무협이 목적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가정 하나가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모릅니다. 그리고 SF 책을 찾아 읽는 독자임에도, 아니 어쩌면 과학적 사고를 기반한 SF라는 장르에 심취하기로 작정한 독자이기 때문에, 그러한 세계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회의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이 드넓은 우주에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한다면 이라는 가정은 성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에 어떤 먼 미래, 혹은 어떤 먼 과거 광속의 여행이 가능한 시대를 또다시 가정합니다. 이런 가정이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그리고 어디까지가 과학적 사고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렇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광속 여행, 현실에서는 그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지구 유사 행성 등을 가정하면서도 르 귄은 아인슈타인이 사람은 빛보다 빨리갈 수 없다고 했던 과학적 제약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헤인 우주인들은 광속에 가까운 여행까지만 허용됩니다.

그러자니 우주는 너무 넓습니다.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광속의 우주선 내에서조차 몇 세대를 거쳐야 탐사가 가능합니다. 행성간 여행에서 빛의 속도로 몇십년은 단거리에 불과합니다. 헤인 우주 속에서 웜홀이라는 편리한 반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세계에는 앤서블이라는 동시 통신기기가 존재합니다. 이 기기의 탄생에 관해서는 [빼앗긴 자들, the dispossed] 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쌍동이 행성 아나레스와 우레스, 아나키스트/아키스트, 황폐함/윤택함, 빈곤/풍요, 상호결속과 신뢰/착취와 지배 로 대비되는 두 사회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한 위대한 과학자가 '일반 시간 이론'이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두 행성 양쪽 모두에게서 유폐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바로 앞에 소개한 소설입니다. 같은 반칙이지만, 말하자면 성간 여행을 비행기 여행처럼 묘사하는 편리함보다는 훨씬 덜 편리한, 섬세한 설정이 필요한 장치지요. 자기 작품을 끝없이 비판해온 르귄은 이 앤서블에 대해서도 정보가 즉각적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다소 시니컬한데요, 특히 이러한 최첨단의 앤서블이 인터넷보다도 오래되었고 훨씬 빠르다는 아이러니를 스스로 지적합니다. (참조 세상의 생일 서문).

"나의 우주에서는, 여기에서 지금은 거기에서 옛날이고, 그 반대도 성립하며, 이는 역사를 혼란스럽고 쓸모없게 만드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So in my universe, as in this one, now here is then there, and vice versa, which is a good way to keep history from being either clear or useful.)

아무튼 르귄의 재치있는 유머관은 그의 여러 에세이 저작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르귄의 에세이들이 간간히 번역 출간되고 있으니까요. 특히 과거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실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에세이 집 [밤의 언어]에서도 이러한 르 귄 작품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견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인슈타인의 세계관을 지킨 덕분에 헤인 우주에서는 슬프고도 아련하면서도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을 다룬 서사가 가능해집니다. 우주인은 '우주를 가로지를 때마다 아인슈타인의 시간 지연 효과 덕분에 나이를 거의 먹지 않(출처: 세상의 생일 서문)'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몇 년을 여행하는 사이 그들이 떠난 행성은 몇십 년, 혹은 몇백 년이 흐르는 결과가 되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없게 됩니다. 무리해서라도 앤서블을 등장시키지 않고는 논리적이고 정교한 서사를 쓰기 어려웠을 겁니다.

세상의 생일은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르귄의 단편집입니다. 이 책의 모든 소설들은 우리 사회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체제 하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낯선 세계를 보다 편견없이 관찰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 먼 우주 속의 어떤 행성을 그립니다.

"이 책의 일곱 단편들은 하나의 패턴을 공유한다. 이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내면에서 혹은 관찰자를 통해(이들은 토착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와는 다른 사회의 사람들을 드러낸다. 이들은 우리와 생리적으로 다를 수 있지만, 느끼는 방식은 우리와 같다. 먼저 차이를 만들어내고?낯설게 만들기 위해서?그다음 인간의 감정이 격렬한 호를 그리며 뛰어올라 그 차이를 메우게 놓아둔다. 나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상상의 이런 곡예에 매혹되고 만족감을 느낀다."

첫번째 이야기인 <카르히데에서 성년되기>는 단편집 [바람의 열두방향]에 수록된 단편 [겨울의 왕]과 장편 [어둠의 왼손]을 잇는 작품입니다. 이 행성 게센인들에게는 생리적인 성이 없습니다.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대신 케메르 라고 불리우는 발정 기간이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없이 살다가 이 기간이 되면 남성 혹은 여성으로 변신합니다. [겨울의 왕]에서 애매하게 시작한 이렇게 낯선 인간들의 세상은 [어둠의 왼손]에서 구체화됩니다. 연맹(에큐멘)에서 게센과 친교를 맺기 위해 주인공 겐리 아이를 파견합니다. 이 때 처음 도착하여 외교 활동을 벌이는 무대가 [카르히데]입니다. 여기서 [어둠의 왼손]에서 그 지긋지긋한 폭설과 맹추위를 뚫고 남극 탐험과 같은 혹독한 여행을 하게 되는 에스트라벤을 만납니다. [어둠의 왼손]은 많은 주제가 있지만 그 중 하나로, 서로가 서로에게 외계인인 두 행성인 사이의 우정과 성장을 그린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겐리는 전에 게센에 간 적이 없었지만, 나는 <겨울의 왕>이란 단편소설에서 게센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첫 번째 방문에서 어찌나 서둘렀던지 나는 게센의 성별에 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었다. 꼭 관광객처럼 말이다. 양성 소유자? 거기에 양성 소유자들이 있었나?"

게센인의 생물학적 성적 특성은 낯선 환경에 홀로 맞서게 된 테라(지구)인 겐리 아이의 시각에서 보다 구체화됩니다. 장편 [어둠의 왼손]에서, 게센인의 눈에 비친 외계인 겐리 아이는 기이한 인간인 거죠. 주기적으로 오는 케메르 상태에서만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고, 케메르 상태에서만 성적 생식의 욕구를 느끼는 그들에게는 , 항상 남성인 상태에 있다는 것이 항상 케메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상하고, 기이하고, 변태적인 인물이라는 거죠. 반면 남성 인간인 겐리 아이에게는 양성인 게센인들도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혹독한 겨울 행성의 국경 탈출을 현지인 에스트라벤과 함께하면서 여행 도중 케메르 상태를 목격합니다. 오해와 혼란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공공의 이상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곳곳에서 뭉클합니다.

작가는 [어둠의 왼손 ] 서사에 집중하느라 이 특이한 양성인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케메르 상태에 만족할만한 묘사가 부족 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양성인 사회의 케메르에 대해 확대경을 대어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세상의 생일]에 첫 번째 순서로 실려 있습니다. 1990 년대 작품입니다. 20 년간 게센인들이 속삭이던 비밀을 털어놓은 셈이죠.

화로 라는 공동체 사회에서 성장하는 아이가 처음으로 케메르를 맞이하여 당황하고 이를 통과하는 성장 소설입니다. 지구에서라면 난교 파티를 연상시키는 케메르 집단이 서로를 욕망하고, 윤리관에 맞닥뜨리고, 사랑합니다. 누구나 한 번을 통과해야 하는 성인 의식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라고 하는 풋풋하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어슐러 k 르귄] 빼앗긴 자들,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아닌 | 2020.01 2020-01-23 21:13
http://blog.yes24.com/document/12022257 복사 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빼앗긴 자들

어슐러 K. 르 귄 저/이수현 역
황금가지 | 2002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이 소설은 상당히 사회 정치적인 소설입니다. 훌륭한 SF 들이 그렇듯이 르귄의 소설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가정하고 사고 실험을 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유토피아도 디스토피아도 없습니다. 완전히 대립되는 사회 시스템을 가진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있습 니다. 그들은 서로의 달을 지켜보며, 그 달의 세계는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제됩니다. 생각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두 행성은 200년전부터 착취적 무역을 제외하고는 서로의 왕래가 완전히 끊겼습니다. 냉전중이었던 70년대 미국과 소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스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상대편의 시스템이 형편없다고, 여기가 낙원이라고 학습되었습니다. 한 체제가 변했던 건 지구라는 단위의 피할 수 없는 연결, 영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에서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낭만주의자들이 있을까요. 일부는 아직도 그들의 배고픈 세계가 낙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을 우상화하고 관료체제를 이상화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미 혁명은 실패한 것이지요. 착취자는 자본가에서 관료로 이동했을 뿐 더 큰 권력이 민중의 삶을 흔들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자본과 소유가 주는 윤택함까지 빼앗기고 그 윤택함에 오염될까 폐쇄된 사회에 유폐된 그들의 사회가 우리 눈엔 디스토피아로 보입니다. 이렇게 스탈린식의 무력 통치 체제는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가 가장 대표적이죠. 마가렛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거기에 이슬람적 극단적 여성 차별주의가 결합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슐러 K 르 귄은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선/악 과 같은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합니다. 두 개의 쌍둥이 행성이 추구하는 사회는 극단적 아나키즘과 극단적 자본주의를 닮아 있지만, 그 두 개의 사회가 지향하고, 살아가는 방식은 앞에서 본 디스토피아들과는 다릅니다. 각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단지 좋다 나보다로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층위의 속성들이 존재합니다. 오도니즘이라 불리는 아나키즘은 아나레스의 황폐하고 삭막한 행성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오도니즘은 말하자면, 공산주의 체계의 통찰을 제시한 마르크스의 이념을 맑시즘이라 일컫는 것처럼, 아나키즘의 탄탄한 이론적 토대를 쌓고 실천적 삶을 살아간 여성 혁명가 오노의 이름을 딴 사상입니다. 실제 아나레스라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된 사회를 보지 못했지만 후대의 세대들은 그의 사상을 쌍둥이 행성에 집단 이주하여 그들만의 '낙원'을 건설함으로써 오도의 사상을 실천한 '유토피아'를 실현합니다.

이론적으로 오도니즘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공산주의도 아름다운 사회이듯이요. 공산주의에 부패한 관료와 학살을 취미로 삼는 전제 정권이 마치 필요충분처럼 따라다니지만, 오도니즘에는 소유도 권력도 정권도 법률도 그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오도니즘의 이상에 부합하도록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소유격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사람의 이름이 주민번호처럼 유일합니다. 이름은 중앙컴퓨터에 의해 주어지고, 그 이름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남녀 구분 없는 이름을 받고, 똑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제도라는 것이 없으니 결혼도 없습니다. 섹스는 남녀 남남 여여 등 자유로우며, 두 사람이 서로 함께 살기로 하면 반려가 됩니다. 반려 관계는 단지 둘 사이의 관계로 아무 제약없이 언제든 깨질 수 있습니다. 일은 PDC라고 불리우는 중앙통제 센터의 컴퓨터에 의해 할당받습니다. 자기가 원하면 승낙하고 원하지 않으면 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까요? 죄를 규정하고 심판하는 법률과 제도가 없다면, 어떻게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러한 사회가 가능이나 할까요? 이렇게 많은 질문에 대해 르귄은 매우 상세하게 이러한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설계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회가, 조직이 혹은 그룹이 그들 범죄자들을 자연적으로 축출해낼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강간을 저지른다면 그는 마을 사람들 중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 혹은 집단에게 맞습니다. 그래서 범죄자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소'라는 곳에 유치시킵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이 소유를 기반하지 않기 때문에 도둑질이나 사기 같은 것은 범죄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옷창고에 가면 옷이 있고, 식사는 공동체에서 제공합니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명 생활을 하기 위한 모든 노동활동은 디브랩이라는 중앙할당 기관의 컴퓨터가 할당하고 힘든 일은 자원하거나, 1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순번제로 배당됩니다. 그마저도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함께 살지 못하게 되지만 말이죠.

물리학자인 쉐벡은 오도니즘의 사상에 조금의 의심도 없는 시스템에 충성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외롭습니다. 그의 이론을 이해하는 유일한 노학자는 노쇠했고, 그가 몸담은 중앙연구센터에서는 그의 동시성 이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를 발탁해서 중앙연구소에 데려온 사불은 정부도, 권력구조도 없는 이 아나키스트 사회 시스템에서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뻔뻔하게 우라스에서 몇십년전 출간된 논문을 표절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나레스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고, 쉐벡을 자신의 소유처럼 만들어 그의 아이디어와 이론을 훔칩니다. 쉐벡이 저항하자 그를 내칩니다. 권력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이곳 중앙연구소에서 사불은 무소불휘의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권력 구조가 없는 사회에서 그는 어떻게 그 권력을 획득했을까요. 그의 권력은 공공의 견해라는 인간 정신의 비겁함에서 힘을 얻는 것이라고 쉐벡의 친구는 데세르는 단언합니다. 그 공공의 견해는 개인의 정신을 억압함으로써 오도니안 사회를 지배하는, 공인된 적도, 용인될 수도 없는 정부입니다.

상호의존과 자발성에 기반한 사회는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아나레스 행성에서 물질적 결핍보다 더 큰 결핍은 그 사회 전체에 만연된 폐쇄적이고도 일관적인 배타성입니다. 친구의 영향과 중앙연구소의 관료주의를 겪으며 그는 서서히 깨달아 갑니다. 오도와 그의 이념을 따른 초기 이민자들이 세운 생각의 벽에 아나레스 전체가 매몰되어 있다고요.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원했던 오도의 저작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여 읽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애초 오도가 이상화했던 사상과 완전히 대치된다는 것을요.

사불에게 밉보인 쉐벡의 동시성 이론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불 역시 그의 새로운 이론이 비실용적이라고 출판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쉐벡의 반려는 그를 사불과 공동저자로 하도록 설득합니다. 설전끝에 논문은 사불의 칼날로 누더기가 된 채로, 사불의 이름과 함께 출간됩니다. 이 누더기 논문은 우라스 행성의 학계에 보내는데, 쉐벡은 손상되지 않은 원본을 필사하여 자신과 편지로 의견을 교환했던 우라스의 과학자 아**에게 보냅니다.

대기근 동안 사랑하는 반려와 갓 태어난 딸과 헤어지는 시련은 결속에 의해 지탱되는 이 사회에 대한 그의 시각에 영향을 줍니다. 그들의 자유,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원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 거부할 자유, 이 모든 자유들이 실상은 인간 결속과 상호 협력에 기반한 오도니즘 사상이 뿌리박힌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자발성의 원천이 자발적 거부로 인한 피해, 혹은 불이익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자발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대기근으로 인한 약 두 달간의 자원 요청에 응할 때만 해도, 그는 굳건히 믿고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딸과 반려 타크베르와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 하고, 멀리 떠나야 하는 일은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라고요. 거부할 수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요.

"생존하기 위해, 삶이 계속되게 하기 위해 아나레스 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 어디에라도 달려가 필요한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습니다. 대기근으로 인한 인원감축에서 사불의 영향력은 쉐벡을 밀어냈고, 반려는 또다른 자원을 위해 행성의 반대편으로 떠났습니다. 남겨진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라고요. 쉐벡은 절망합니다. 반려가 있는 곳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습니다.

눈물나게 절절한 이별과 아픈 재회의 장면은 아름다울 만큼 가슴아픈 닥터지바고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잠시동안 아주 잠시동안만 헤어져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잠시의 일을 끝내고 왔을땐 반려가 떠난 후였습니다. 왜! 어째서 광속의 우주 여행이 가능한 시대에 아무리 낯선 행성의 털북숭이 인간이라고 하나,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커녕 유선 전화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그 누구도 강제하지 않은 이별은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게 행동하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 그러한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사회규범과 만나 강제되고 있었다는 걸 참담한 이별의 끝에서 깨닫게 됩니다.

"탓할 사람은 없었다. 그 점이 최악이었다. 타크베르가 필요했던 것이다. 굶주림을 막는 일에…… 그녀의, 그의, 사딕의 굶주림을 막는 일에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는 그들의 적이 아니었다. 그들을 위한 것,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사회가 곧 그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책을 포기했고 사랑과 아이까지 포기했다. 한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포기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쉐벡은 서서히 아나레스 행성이 스스로를 가둔 벽을 깨달아갑니다. 그리고 그 벽을 부수기로 작정합니다.
"억압해 눌러서 아이디어를 으깰 수는 없어. 무시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지.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변화하기를 거부함으로써.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짓이 바로 그거란 말이야!"

그들은 개인의 행동을 비판할 때 '소유주의자'라는 말을 일종의 욕처럼 씁니다. 인공 언어인 그들의 언어에는 욕이 없습니다. 소유주의자, 착취자, 그들의 언어가 부정적일 때는 늘 우라스 사회의 특성들을 향해 있습니다. 혁명이란, 진정한 오도니즘은 타성을 깨고 현재 상태를 전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쉐벡은 그렇게 믿습니다. 그와 그의 반려 그리고 몇 안되는 자발적 '조직'은 소외되고 무시됩니다. 같은 종족이지만 대이주 이후 8(확인)백년간 한 번도 상호 접촉이 없었던 두 행성의 주민이 처음으로 벽을 깨고 만나는 과정은 순탄치는 않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도착합니다. 아나레스의 달, 200여년 전 갈라져나온 아나레스의 착취자들이 여전히 소유를 위해 인간을 착취하는 야만적인 곳,

우주선 승선부터 쉐백은 넘쳐나는 물질, 포근하고 부드러운 잠자리와 의류, 매끌매끌하고 반짝거리는 벽을 비롯한 그 모든 풍요로움에 큰 충격을 받습 니다. 이 소설은 아나레스와 우레스를 교차하며 쉐벡의 삶과 의식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우라스와 아나레스 사이를 왕복하는 화물 우주선에 승선하여 우라스로 향하는 장면이 처음 장면입니다. 이질적인 환경과 문화에 처음으로 접한 후 불안하고 충격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상을 내리고, 연구직을 주고 하인이 딸린 호화로운 방을 내주고 환대하는 과학자들과 지내면서, 점차 자신이 이곳의 모순, 책에서만 보았던 호화로운 물질 세계의 허망함과 착취자들의 모습 속에 자신이 갇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동시성 이론과 연속성 이론을 합쳐 새로운 일반 시간 이론을 완성하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착취자들의 나라에 호락호락 그 이론을 풀어놓지는 않습니다. 그의 일반 시간 이론은 앞으로 헤인 시리즈의 주요 기기인 앤서블을 완성할 혁신적인 이론입니다. 이것을 손에 쥐는 자가 우주를 재패할 것입니다. 그를 초청한 나라는 누가 봐도 북미를 모델로한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게다가 그 나라는 오도니즘의 사상을 잇는 탄압받는 민중의 평화적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쿠테타 정권이 지배하는 벤빌리를 지원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쉐벡은 분노합니다.

“당신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당신네 보잘 것 없는 ‘법률’과 총이나 폭탄의 ‘힘’을 엔트로피의 법칙이나 중력의 힘과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까? 그보다는 좀 나을 줄 알았는데요.”

“전체를 볼 수 있으면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는 거야. 행성, 삶……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돌멩이가 보이겠지. 그리고 매일 매일 삶은 힘겨운 일이고, 당신은 지치고 패턴을 잃어버리지. 거리가, 간격이 필요한 거야.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달로 보면 돼.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려면 죽음이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보는 거야.”

“시간의 흐름이 인간 의식의 산물이라면, 과거와 미래는 마음의 기능이다. 선(先) 연속성론자, 케렘초 가라사대.”

"오도가 쓰기를 ‘소유의 죄의식과 경제적 경쟁의 짐에서 벗어난 아이는, 필요한 일을 하려는 의지와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능력을 지니고 자라날 것이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0)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3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