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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개설

법의 무지
법의 무지 - 인간됨: 수간, 식인, 그리고 법 | 법의 무지 2020-08-18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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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법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기능을 한다.

물론 자연법이나, 초월적인 법칙에서는

동물까지도 포함하겠지만.

그러면서 그 구분이 계속 확장되어

동물 보호론자들은 그 법의 확대를 말한다.

그런 부분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복잡하고

인간이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법을 알고 인지해서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답지 않은 인간은 어떻게 대해야 하지?

대학교 법 관련 교양 시간에 

(아닐 수도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교수님께서 '~준하다'의 뜻을 알려주셨다.

'~준하다'는 '비슷하다, 가깝다'를 포함하여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지 않다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철수를 사람에 준하게 대우했다.'는

무슨 뜻일까?

철수를 사람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되자.

법을 공부해야 겠다.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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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 결여와 파괴 | 법의 무지 2020-08-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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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법을 왜 알아야 할까?

법을 잘 알아야 그 속의 

부족한 부분을 비틀고 파고 들어감으로

자신의 잘못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쁜 입장에서 본 것이다.

요 며칠 집회를 한 어떤 목사의 교회의

입장을 보면 교묘하게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웃기는 말이다.

마치 자신이 탄압을 당하고 있다는 식이다.

웃기는 말이다.

법은 주체에 따라 그리고 사회상에 따라

빈틈이 있다고 앞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

초반에는 잘못된 법에는 저항해야 한다고

그리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경우 그냥 법에 따른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은 그 법의 약점을

교묘히 파고들고 자신의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그래서 법을 알아야 당하지 않는다.

가끔 악법이니, 법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법을 몰라서.

사실 그 빈틈 때문에 

자신을 정당화시킬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빈틈 때문에 

살짝의 죄 혹은 실수가 크게 해

소시민에게는 가혹한 형벌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법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한다.

교회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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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 주체 | 법의 무지 2020-08-17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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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이번 내용의 주제는 '주체'였다.

주체에 대하여 여러 방면으로 접근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다 문득 요새 내가 빠져있는 영어와 비교해서

주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어에서 문장의 주어는 주인공이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영어에서 중요하다.

'누가'

법에서도, 그리고 현실에서도 이 '누가'는 중요하다.

주체의 범위를 어디까지 하느냐가 중요하다.

법도 그럴 것 같다.

그런데 영어에서 수동태라는 것이 있다.

수동태는 주체를 가리는 방법이라 영어 작문을 할 때

자주 사용하면 문장이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철수는 민수에게 뇌물을 받았다.

여기서의 주체는 철수이다.

철수는 자신이 주인공인 것이 부담스럽다.

수동태를 쓸 경우 주어는 by 주어로 쓰지만 생략도 가능하다.

수동태로 바꾸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민수는 뇌물을 주었다 누구에겐가.

by 철수로 쓸 수 있겠지만 생략하거나 혹 가리고 싶다면

그냥 누구에겐가로 바꾸면 된다.

여기서 주체는 민수가 되며 행위는 

민수가 뇌물을 준 행위가 된다.

뇌물 받은 누군가는 숨겨질 수 있고,

뇌물 받은 행위도 가릴 수 있다.

준 것이 부각된다.

그래서 정치인들과 경영자들이 수동태를 많이 쓴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또 문장에서 주어가 없을 경우 뜻이 애매모호해 진다.

흔히 인터넷에서 주어를 생략하고 막 글을 쓰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책임회피를 하기 위해서 많이 쓴다.

굳이 주어를 표현 안하고 그냥 글을 쓰고

나중에 뭐라 그러면 '너 이야기 한 거 아닌데?'라고

회피용으로 쓸 때 사용된다.

법 조문을 쉽게 써야 하는 것과 

주체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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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 현실의 총체성 | 법의 무지 2020-08-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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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이번 장에서는 현실의 총체성에 대해 말한다.

현실은 단순히 현실을 넘어

겅험과 이성 등등 여러 가지의 

총체적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러 번 읽었지만

내공이 약해 어렵게 느껴졌다.

다만 이 장에서 말하는 현실이라는 것을 

나에게 대입해서 생각해 보니 

약간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나를 돌아보아도

단순히 지금 살고 있는 나는

과거의 경험과 생각, 

그리고 여러 가지 가치관들이

모여서 형성된 총체적인 나이다.

그래서 나를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

거기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나를 각각 다르게 평가한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나를 나쁜 사람으로

표현하겠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 '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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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 존재의 결여, 선의 부인 | 법의 무지 2020-08-1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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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무지

슬라보예 지젝,알랭 바디우 등저/강수영 역
인간사랑 | 2020년 07월

 


이번 장에서는 도덕적인 이야기를 한다.

예전과 지금의 도덕관은 많은 부분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 도덕관은 뚜렷한 무언가가 있었다.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예전의 도덕관은 신의 계시, 강력한 도덕률 등으로

표현되어 사람들에게 안되는 것들은 

강력하게 안된다고 하였던 것 같다.

지금의 도덕관은 내 생각에 상대적인 것으로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예전의 도덕관은 절대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지금보다 더 참혹하다.

예를 들면 남성과 여성에 차별에서

극명하게 나오는 것들을 들 수 있다.

예전 삼국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영웅이 아름다운 여인을 강제로 취하는 것이

마치 영웅들의 모습인 양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이런 것들은 완전히 비판받는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의 법이나 규범을 보면

더 진보적으로 선을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살짝 고민해 보면 그 선이 살짝 상대적이다.

예를 들어 야한 농담을 어떤 사람이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야한 농담도 그냥 농담이 되기도

아니면 성추행이 되기도 한다.

인종차별의 문제도 예전에는 우리편 아니면 적의 편

흑인, 백인 이렇게 딱 나누어 

누가 더 우월하고 더 나은지에 대해 그 당시의 기준이 있었다.

(옳지는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차별받는 쪽에서는 가혹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암묵적 차별은 있겠지만 대놓고

'흑인은 열등해.'라고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차별하는 사람이 바보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 농담도 또 상대적이다.

누가 하는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다.

얼마 전 고등학생들의 졸업사진이 뜨거운 이슈였다.

그냥 웃고 넘길 일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아마 그 학생들은 논란을 의도하고 한 것은 아니었을 듯 하다.

그래서 마냥 그 학생들을 뭐라 할 수도 없다.

법조문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점점 상대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많아지는 것 같다.

어쩌면 예외성이 많아진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면 고민이 된다. 

도대체 뭐가 진짜 나쁜 짓이고 뭐가 선한 행동이야?

현대로 나아가면서 어떤 것이 선인지

점점 애매모호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해라 

말하기가 어렵고 미안하다.

특히나 나 같은 옛날 사람에게는 상대적 가치보다

명확한 규범이 더 나으니 점점 어렵다.

이거는 안돼 저거는 돼 이렇게 

딱딱 알려주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개개인이 다양해 지면서 이렇게 하기는 힘들다.

각각의 생각도 다르다.

도덕의 존재를 정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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