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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 스티븐 킹 (공보경 옮김, 황금가지) | Book-외국 2021-04-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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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로드워크

리처드 바크만 저/공보경 역
황금가지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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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 도시에 사는 40대 남자 바튼 도스는 불안과 초조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죽은 아들 찰리와의 추억이 담긴 집과 평생 일해 온 세탁공장이 고속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철거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두 집씩 정든 땅을 떠나는 가운데 바튼은 새 집을 알아보는 일도, 자신의 업무인 새 공장부지 계약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연기시킵니다. 딱히 무슨 기대나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버티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철거일은 점점 다가오고 급기야 바튼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집과 공장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로드워크는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Richard Bachman)이란 필명으로 출간한 작품입니다. 한국에는 “100명의 소년이 1명만 남고 죽을 때까지 걸어야만 하는 죽음의 서바이벌을 다룬 롱 워크’(2015, 황금가지) 이후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들은 현대인의 가치관과 심층적인 문제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정밀히 묘사한 심리스릴러라는 평을 들었다는데, 그래서인지 로드워크는 그동안 읽었던 스티븐 킹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과 인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로드워크는 바튼 도스가 집과 공장을 지키기 위해 고속도로 확장 공사에 맞서 싸우는 사건 위주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노와 저항, 공포와 무기력 등 바튼 도스 내면의 심리를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와의 갈등, 직장에서의 충돌, 과격하긴 해도 별 소득 없던 물리적 저항 등 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보다는 철거일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무너져가는 바튼 도스의 자아를 집요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낡은 집과 고만고만한 세탁공장을 지켜내고 싶은 절실함에 사로잡혀 있지만 무자비한 고속도로 확장 공사를 벌이는 거대한 힘 앞에서 평범한 개인에 불과한 바튼 도스가 취할 수 있는 마땅한 대책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걸 잘 알면서도 바튼 도스는 눈앞에 닥친 현실을 외면한 채 그저 뭉기적거릴 뿐입니다. 마치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해결될 수도 있다는 허무한 희망 같은 걸 품었다고 할까요?

 

나는 이유를 모른다. 당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대체로 신조차 이유를 모른다.

정부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그게 전부다.”

- 1967년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일반인 인터뷰에서 인용 (p9, 프롤로그 )

 

물론 바튼 도스는 현실적인 대책도 준비합니다. 생명보험을 털어 생활비를 준비하고, 거액을 들여 위험천만한 총기를 사들이는가 하면, ‘총공격을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결국 그의 대부분의 시간은 술과 TV프로그램과 끊이지 않는 악몽에 잠식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의 내면이 무너져가는 동안 고속도로는 점차 확장되고 현실은 석 달에 걸쳐 그의 모든 것을 천천히 파국으로 몰고가버립니다. 그 석 달이 지난 뒤 그가 선택한 마지막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작품이 리처드 바크만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이름으로 집필됐더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을 것입니다.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충격적인 사건과 함께 스토리는 강한 극성(劇性)과 선명한 전개를 지녔을 것이고, 거기에 스티븐 킹 특유의 공포 코드까지 가미됐을 게 분명한데, 고백하자면, 그런 스타일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탓인지 심리스릴러에 가까운 이 작품의 서사는 장편보다는 중편의 분량에 어울렸을 거라는 아쉬움을 느낀 게 사실입니다.

물론 문장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듯한 스티븐 킹 특유의 매력은 여전했고, 쉬지 않고 단숨에 마지막까지 달리게 만드는 그의 마력 역시 여느 작품들처럼 강렬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인의 가치관과 심층적인 문제를 다룬 심리스릴러의 대가리처드 바크만이 아니라 호러 킹스티븐 킹의 작품이었기를 바라는 것은 아마 저만의 소감은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인 별도 없는 한밤에’(2015, 황금가지)에 수록된 작품 가운데 아내를 살해하고 시궁쥐가 득실거리는 우물 속에 사체를 유기한 남자를 그린 ‘1922’라는 작품이 있는데, ‘로드워크의 홍보카피를 보곤 문득 그 작품과 비슷한 톤이 아닐까 기대했던 게 사실입니다. 혹시 이 작품에서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면 스티븐 킹의 매력이 철철 넘치는 3편의 중편과 1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별도 없는 한밤에를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리처드 바크만의 이름으로 발표된 롱 워크는 번역의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독특한 설정을 다루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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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 토머스 H. 쿡 (장은재 옮김, 고려원북스) ★★★★☆ | Book-외국 2021-04-15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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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저/장은재 역
고려원북스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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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소녀 에이미가 실종된 뒤 용의자로 지목된 건 실종 당일 아르바이트 베이비시터로 에이미를 돌봤던 10대 소년 키이스.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의 의혹과 편견 섞인 시선이 키이스에게 쏟아진다. 키이스의 아버지 에릭 무어는 아들의 무죄를 믿지만 사건 당일 밤 키이스의 불확실한 행적이 마음에 걸린다. 안 그래도 폐쇄적이고 반항적이던 키이스가 사건 이후 노골적인 적의까지 드러내자 에릭은 혼란에 빠진다. 시간이 지나도 에이미는 발견되지 않고, 에릭의 삶 전반에 걸쳐 모든 걸 부식시키는 의심과 거짓의 소용돌이가 몰아닥치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가족사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p13)

이 작품 본편의 첫 문장입니다.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실은 그것은 모두 거짓이거나 혹은 돌이킬 수 없이 쩍 벌어져버린 균열을 감추려는 어설픈 위장이라는 게 작가가 독자에게 건넨 이 작품의 불길하고도 섬뜩한 첫 인상인 셈입니다.

키이스가 소녀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는 가운데 약 2주가 지난 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는 미스터리 구도는 무척 심플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정체는 범인 찾기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아주 지독한 심리스릴러입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무한대로 자라나는 에릭 무어의 의심과 불신, 두려움과 공포가 이야기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에릭에겐 두 개의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과 여동생으로 이뤄진 옛 가족, 아내 메러디스와 아들 키이스가 있는 현재의 가족이 그것입니다. 불행하게 해체됐던 옛 가족의 상처 때문에 에릭은 일본단풍나무가 드리운 숲속의 집에서 자신이 꾸린 현재의 가족을 소중히 가꿔왔지만, 아들 키이스가 에이미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으면서 그 소소한 행복은 산산조각 납니다. 애초 아들 키이스의 불확실한 행적과 거짓말에 국한됐던 그의 의심은 우연과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이미 해체된 옛 가족들은 물론 사랑하는 아내에게까지 확대되고 맙니다.

사업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린 폭군 같던 아버지의 음모,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끔찍한 사고의 진실, 아버지에게 멸시당한 끝에 무능한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한 형의 비밀 등 그동안 은폐됐던 옛 가족의 민낯과 마주한 에릭은 더 이상 아무 것도,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나머지 그 의심의 칼끝을 아내 메러디스에게까지 들이대게 된 것입니다.

 

의심은 산()이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는 표면을 먹어 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산과 마찬가지로) 의심은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고, 오랜 신뢰와 헌신의 수준을 차례차례 부식시키며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간다. 의심은 언제나 바닥을 향한다.” (p114에서 발췌)

 

에릭의 의심은 때론 모르는 게 나았을 추악한 진실과 마주치기도 하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기도 합니다. 이미 해체됐던 옛 가족은 다시 한 번 무참한 해체를 겪게 되고, 현재의 가족 역시 의심이라는 산()에 의해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릭이라는 인물이 어딘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거나 치명적인 의심병 환자로 설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에릭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이자 남편일 뿐입니다. 끝없이 바닥을 향하며 주위의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에릭의 의심이 더 생생하고 섬뜩하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런 에릭의 평범함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의심에 하도 심하게 시달린 탓에 그 나뭇가지 밑에 보이는 것이 피가 고인 웅덩이인지, 아니면 그냥 흩어져 있는 붉은 낙엽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p344)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붉은 낙엽아름답고 또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품입니다. “(자기파괴적인 자세와) 자학적인 경향이 쿡의 작품에서 풍기는 기묘한 아름다움과 매력의 진정한 원천이 아닐까.”라는 평가도 실려 있는데, 사실 꽤나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읽은 작품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옮긴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입니다. 이 이중적인 여운은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인상적인 클라이맥스와 엔딩 덕분이란 생각인데, 그래서인지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대로 이 작품이 토머스 H. 쿡의 대표작이란 평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붉은 낙엽은 물론 앞서 읽은 채텀 스쿨 어페어’, ‘밤의 기억들’, ‘브레이크하트힐모두 개인적인 취향에 잘 맞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토머스 H. 쿡에게 번번이 끌리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우면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라는 마약 같은 매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앤솔로지를 제외하면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 가운데 줄리언 웰즈의 죄심문이 남은 셈인데, 연이어 토머스 H. 쿡을 읽는 것은 꽤나 부담스럽긴 하지만 다음엔 어떤 아름다우면서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사뭇 기대되는 것 역시 사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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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 히가시노 게이고 (양윤옥 옮김, 하빌리스) | Book-일본 2021-04-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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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하빌리스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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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야 보석점 고객 감사파티가 끝난 뒤 컴패니언(행사나 파티에서 내빈 안내 및 접대 담당)인 에리가 호텔방에서 사체로 발견된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지만, 절친이자 동료인 교코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특히 자신의 신데렐라 꿈 속 주인공이자 당일 파티에 참석했던 부동산회사 간부 다카미까지 에리의 죽음에 관심을 갖자 교코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우연히도 담당 형사 시바타와 이웃이 된 교코는 그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려 애쓴다. 시바타와 함께 에리의 고향 나고야를 찾은 교코는 몇 년 전 에리의 연인이던 무명화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무렵 도쿄에서는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그녀는 다 계획이 있다1985방과 후로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4년 만인 1988년에 통산 일곱 번째로 발표한 작품입니다. 말하자면 신인은 아니더라도 아직은 거장 혹은 공장장에 등극하기 전의 초기작이란 얘긴데,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조차 보이지 않는 1980년대라는 배경묘사만 제외한다면 특별히 그의 초기작이란 냄새를 감지하기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행사나 파티에서 내빈 안내 및 접대를 담당하는 컴패니언은 겉으론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무척이나 고달프고 숱한 희롱에 시달려야 하는 직업입니다. 교코는 꽤 유능한 컴패니언이지만 그녀에겐 명확한 계획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왕자님을 사로잡아 “800만 엔짜리 보석쯤은 채소 한두 개 사듯 툭툭 살 수 있는상류층이 되는 것입니다. 대놓고 속물적인 캐릭터이긴 하지만 동시에 교코는 솔직담백하고 정의롭고 호기심 가득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경찰 가운데 에리의 죽음에 대해 유일하게 의문을 품은 형사 시바타는 이 작품에서 이웃의 민간인교코와 파트너가 되어 진상 규명에 나서는 인물인데, 교코가 왕자님 후보로 삼은 부동산회사 간부 다카미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극과 극의 처지라 남다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입니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하지만 동기도 단서도 증거도 없는 여러 용의자들이 등장하고, 처음엔 단순해 보였던 사건 구도 역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거기에다 밀실트릭을 비롯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한 갖가지 트릭이 등장하면서 교코와 시바타의 수사는 수시로 벽에 막히곤 합니다.

이쯤 되면 꽤나 무겁고 묵직한 이야기가 전개될 게 분명해 보이는데, 실제로 여러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 사건의 진상은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이긴 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교코와 시바타라는 두 주인공의 케미를 통해 특유의 가볍고 통통 튀는 서사를 만들어냈고, 덕분에 마지막 장까지 재미에 충실한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도쿄와 나고야를 오가며 현재와 과거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교코와 시바타의 행보는 진지한 콤비 수사물의 매력과 함께 달달한 분위기를 내뿜는 로코의 재미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움을 가볍게 풀어내는 실험이라는 역자 후기의 부제는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한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면서 그가 새내기 시절에 절치부심, 반전에 반전을 공들여 담아 넣은 작품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힘든 시절의 작고 소중한 기쁨이 될지도 모른다.”라는 역자 후기의 마지막 문장에 무척 공감했는데, 개인적으로 딱히 치기 어린 새내기의 느낌을 받진 못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이 주는 남다른 감회를 만끽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소 무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배배 꼬고 여러 트릭들을 배치하긴 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본격적인 공장장이 된 뒤 출간한 다소 허술하고 가벼운 작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더 진정성이 진하게 배어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의 원제는 (마지막 챕터의 소제목인) ‘윙크로 건배’(ウインクで乾杯)입니다. 사실 원제 자체가 좀 모호하고 뜬금없긴 해서 별도의 번역 제목이 필요했다는 건 이해되지만, 내용과 별 관련 없으면서도 시중의 유행어에 기댄 듯한 번역 제목은 더 뜨악한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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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가면무도회 1,2 - 요코미조 세이시 (정명원 옮김, 시공사) | Book-일본 2021-04-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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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면무도회 1

요코미조 세이시 저/정명원 역
시공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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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두말 할 것 없이 주인공의 캐릭터에 있지만, 그에 못잖게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시대의 비극과 개인의 비극을 깊고 묵직하면서도 적당한 통속성 속에 잘 녹여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패전 직후 일본을 휩쓴 절망적인 분위기 속에 파국을 맞이한 가족 혹은 가문의 비극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숙제로 등장합니다. ‘가면무도회역시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나가노 현 가루이자와 별장 지대에서 1959년부터 2년에 걸쳐 벌어진 비극적인 연쇄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톱 여배우 오토리 지요코는 네 번의 결혼과 네 번의 이혼을 겪은 현재 산업계의 거물이자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아스카 다다히로와 열애 중입니다. 첫 남편 후에노코지 야스히사가 변사체로 발견된 지 꼭 1년이 된 날, 가루이자와 별장지대에 또다시 문제의 인물들이 모여듭니다. 지요코의 전 남편들, 그녀의 유일한 딸과 시어머니, 그녀의 새 연인인 다다히로의 가족과 제자 등이 그들인데, 불길한 징조처럼 가루이자와를 덮친 엄청난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아침, 그들 앞에 새로운 시신이 등장하면서 1년 전의 변사 사건이 악몽처럼 되살아납니다.

 

언제나처럼 사건은 기이하고 잔혹하지만 긴다이치 코스케의 소박함은 여전합니다. 어눌하고 덜 떨어져 보이는 외모와 말투로 상대방에게 무시당하곤 하지만, 권력자든 부자든 미인이든 누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타고난 불감증(?)은 가진 거라곤 다혈질과 권위와 고성(高聲)밖에 없는 경찰들과 대비되어 독자들을 빙긋 웃게 만들거나 통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가면무도회에서 코스케는 적잖이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단서들은 지엽적이거나 모호한데다 그나마도 태풍으로 인해 훼손된 상태입니다. , 톱 여배우의 네 명의 전 남편과 새 연인의 관계 역시 이리저리 꼬여있어서 탐문 자체가 조심스러우며, 안개와 축제 소음으로 인해 일부 목격담의 신빙성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사건의 발단은 오랜 세월 층층이 쌓여온 구원(舊怨)이었습니다. 패전 무렵 일본의 참상 속에서 피어난 한 개인의 탐욕은 괴물처럼 자라난 끝에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또 그 주변 인물들의 마음속에 잠재해있던 시한폭탄 같은 의심과 증오는 한순간 봇물 터지듯 쏟아지면서 피의 향연을 일으킵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가면무도회역시 단순히 진실을 찾아낸 통쾌함보다는 범인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과 자괴감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지 등 비극적인 서사의 뒷맛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게 만듭니다.

 

다른 시리즈들과 달리 가면무도회는 상징성이 돋보이는 제목인데, 요코미조 세이시는 에필로그에서 왜 가면무도회인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언급은 정서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는 부연하지 않겠지만, 작품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가면무도회의 화려함과 덧없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라 조금은 장황하더라도 앞의 내용들을 되새기며 꼼꼼하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가면무도회는 긴다이치 코스케만의 뛰어난 추리력보다는 일부 등장인물들의 목격 진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퍼즐만을 남긴 채 수사가 제자리를 맴돌 때쯤 예상치 못한 도움이 큰 힘이 되는데, 그러다보니 긴다이치 코스케의 매력과 반전의 충격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덜 만족스럽게 느껴졌습니다.

, 사건의 볼륨에 비해 다소 과도한 분량도 부담스러웠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 비교적 산만해 보인 점도, 그로 인해 몰입도가 다소 떨어졌던 점도 사실입니다. 1~2권을 합친 710페이지의 분량은 팔묘촌이나 여왕벌정도(500여 페이지)였더라도 충분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한국 출간 기준으로) 전작인 악마의 공놀이 노래1957~59년에 연재된 작품인데 반해 가면무도회1974년 작품입니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이후 20여 편의 시리즈를 더 발표했던 요코미조 세이시는 1964년부터 10년 가까운 절필의 시간을 보냈는데, ‘가면무도회는 말하자면 그의 복귀를 알리는 작품이자 시리즈의 거의 막바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기괴한 설정과 정교한 트릭이 잘 맞물린 초기작들과는 사뭇 달라진, 시리즈 고유의 색깔이 희석된 느낌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의 캐릭터 역시 중년의 나이에 걸맞게 다소 중후해졌는데 개인적으론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실없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여겨져서 가면무도회속 그에게서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사족으로... 2021년 출간 예정인 미로장의 참극은 좀 복잡한 이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1956년에 단편으로 처음 소개됐지만, 1959년에 중편으로, 1975년에는 장편으로 수정됐기 때문입니다. 장편으로의 수정이 후기에 이뤄져서 가면무도회와 비슷한 이질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초기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매력이 좀더 잘 살아있는 작품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아직은 팔팔하고 어수룩한 긴다이치 코스케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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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짓말쟁이 너에게 - 사토 세이난 (김지윤 옮김, 제우미디어) | Book-일본 2021-04-0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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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짓말쟁이 너에게

사토 세이난 저/김지윤 역
제우미디어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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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사를 꿈꾸는 28살 이토 키미히로는 2년 전 연인과의 결별 뒤로 의식적으로 연애와 담을 쌓고 사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술집주인의 갑작스럽고도 우발적인 소개로 7살 연하의 여대생 나나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삭막하던 키미히로의 삶에 아주 조금씩 나나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얼마 후 나나에 대한 감정을 확신한 키미히로는 최근 자신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있는 법무사무소의 동료 미네기시 유코를 정리하려고 하지만, 상황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사토 세이난은 꽤 오래 전 아동학대사건을 다룬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한국 출간 2012)이란 작품으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메모와 서평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서 읽어볼 것이라고 적었지만, 10년 가까이 지나도록 단 한 편도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탓에 그 다짐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그의 작품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너무 반가웠는데, 어딘가 연애소설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지와 그에 걸맞은 제목이 앞서 읽은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의 느낌과 너무 달라서 잠시 당황한 게 사실입니다.

 

미스터리로 분류된 작품이지만 대략 1/3쯤 되는 1장까지는 삼각관계 연애소설의 전형적인 이야기가 전개돼서 도대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사건이 어떤 식으로 터질지 무척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2장의 시작과 동시에 갑작스레 살인사건이 언급되면서 이야기는 급격하게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리고 뒷표지에 실린 카피대로 사랑, , 광기가 복잡하게 얽힌 살인 미스터리가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에는 세 가지 사랑이 등장합니다.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여리고 설렘 가득한 감정이 하나이고, 겉으론 밝고 따뜻해 보이지만 실은 완벽하게 위장된 치명적인 덫으로서의 감정이 또 하나이고, 너무나 간절한 나머지 통제 불가능한 광기에 이르고 만 집념에 가까운 끔찍한 감정이 나머지 하나입니다. 사랑에 빠진 누군가는 오늘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대하며 잠 못 이루지만, 덫을 놓은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광기 어린 사랑을 요구하는 누군가는 그저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한 채 방해가 되는 타인에게 잔인한 상처까지 남겨가며 돌직구처럼 폭주합니다.

 

연애소설의 탈을 쓴 충격적인 심리 미스터리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홍보카피인데, 사랑과 덫과 광기로 얽힌 세 남녀가 연애소설과 심리 미스터리를 거쳐 결국엔 살인극에 얽혀 들어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한 줄로 잘 압축해놓은 문구라는 생각입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짓말쟁이 너에게라는 아주 길고 미묘한 제목 역시 다 읽고 나면 새삼 그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적절한 제목인데,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람들은 누구일지, ‘거짓말쟁이 너는 누구일지, 또 이 제목의 화자가 거짓말쟁이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지를 염두에 두고 찬찬히 페이지를 넘긴다면 이 작품의 매력을 한층 더 진하게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재미있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가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촘촘하게 담긴 건 맞지만, 다소 그 맥락과 동기가 이해되지 않는 억지스런 살인사건은 이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이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덫과 광기가 한데 섞인 탓에 벌어진 필연적인 참극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 때문에 ?”라는 의문과 함께 막판 엔딩에서 잠시 몰입도가 확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이 딱 1장까지만 언급하고 있어서 그 뒤의 자세한 줄거리를 서평에서 다루기 어렵다보니 아주 애매한 인상비평이 되고 말았는데, 그만큼 이 작품은 다른 독자의 서평이나 정보 없이 백지상태에서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과는 전혀 결이 다르긴 하지만 사토 세이난에게 관심이 생긴 독자라면 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도 찾아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아동학대라는 소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꽤 독특하고 개성 있는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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