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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북파공작원에게 납치되어, 한국에서 66년… 진화위 [가족 상봉 기회 줘라] | 일본어 번역 공부 (뉴스 기사) 2022-08-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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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북파공작원에게 납치되어, 한국에서 66진화위 [가족 상봉 기회 줘라]

 

 

1956년 납치 후, 공군에서 4년간 노역 한국에서 날품팔이 노동을 전전하면서 생활

진실화해위 [중대한 인권 침해]

 

 

[누이들은 어리고 내가 컸기 대문에(군인들은) 나만 데려갔다. 총도 갖고 있었다. 백령도에 와서, (서울 구로구의) 오류동에 갔었어. 오류동에 그렇게(4년 동안) 있었다.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만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은 없다. 지금도(가족을) 떠올리면 밤새 잠을 못 자요]

 

 

한국전쟁 직후인 195610, 북조선에 파견된 3명의 한국공작원을 따라 황해도 연안에서 납치되어, 공군첩보대에서 무보수로 4년 동안 노역을 당하고, 그후도 한국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던 김주삼씨(85)에게, 북한에 있는 가족과 재회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정근식 위원장)의 권고가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10, 김씨가 관련된 [공군첩보대의 북한 민간인 납치사건]의 진실규명을 결정했다고 발표하면서, [공군첩보대가 첩보 명목으로 북한의 민간인을 납치하여, 그후도 한국에 머무르게 한 행위는,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202, 서울중앙지재에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했지만, 이번의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김씨의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중요한 증거자료가 된다고 본다. 진실화해위는, 김씨의 납치에 가담한 첩보원이 국방부특수임무수행자보상지원단에 대한 보상금신청을 휘애, 스스로 공적으로 김씨의 사례를 기재한 기록을 확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납치되었던 것이 밝혀질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이번의 결정과 함께, 정부에 대해서 김씨의 명예회북을 위한 적절한 조치 및 사죄, 북한의 가족과 재회의 기회 제공을 권고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의 사무소에서 기자단의 채재에 응한 김씨는 [지금 생활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서 곤란하다. (한국에도)아이들이 있지만, 북한에도 친누이 동생들 가족이 있다. 북한에 가고싶은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의하면, 군사경계선이북의 지역의 황해도에 살고 있던 김씨는, 북한에 파견된 공작 중이었던 공군제25첩보단 3명의 대원에 의해, 19세가 되는 해에 연행되었다. 이미 부친을 잃었던 김씨는 모친, 4명의 누이와 살고 있었지만, 모친이 밤늦게까지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 첩보대에 보충되었다. 김씨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있던 공군첩보대의 기지에 이송되어, 황해도지역의 인민군부대의 위치나 교량 등의 지형 정보에 대해 신문을 받았다. 그후는 보수도 받지 않고, 4년 남짓 노역에 동원되었다.

 

 

김씨는 1961년에 기지에서 해방되어 한국국민으로 편입되었지만, 어떤 연고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직업도 만들지 못하고 날품팔이 등을 전전하면서 겨우 생계를 세울 수 있었다. 기지를 나온 후도, 김씨는 경찰의 조사와 감시를 계속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김씨는 [(퇴영 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었지만, 어느 형사 등은 술에 취해 흙발로 방에 들어왔다]고 하며 [대한민국에 와서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먹고사는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씨와 같은 부대에 복무하고 있던 임준철씨는 [모두 같은 인간인데(김씨는) 참으로 가엾다. 부대에서도 김씨가 어떻게 해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김씨가) 부대에서도 철조망을 붙잡고 소리내지 않고 우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고향과 형제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울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씨의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강혁 변호사는 [(김씨 사건의) 가해 부대에 소속해 있던 군인 등, 게다가 증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하여 [국군의 북한파견공작부대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북한주민을 남쪽으로 납치해 왔다는 다수 사례보고가 있기 때문에, 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문의 apa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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