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낙이라면 책보다는 일드를 보는 것.
작년에 정주행으로 보았는데 다시 돌려보고 있다. 항상 일드를 보며 드는 생각은 소재가 정말 다양하고 흥미롭다는 것. 주인공은 쿠로사와 코코로(쿠로키 하루). 초등학교때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유도선수로 활동했던 그녀가 다치는 바람에 운동을 못하게 된다. 삶의 반전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 코코로가 힘들었을 때 항상 힘을 얻고 위안을 받았던 건 만화였다. 20군데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도전한 곳이 대형 출판사 흥도관(코도칸)이다.
1화는 면접을 보는 장면부터 나온다. 운동선수답게 얼마나 긍정적인지 에너지가 넘친다. 청소부로 변장한 출판사 대표는 대걸레를 밀고 다니며 면접생들의 태도와 표정을 살핀다. 긴장되는 가운데 고코로는 면접=유도와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익숙해지면 보이기 시작한다. 선발 인원은 열 명인데 열 명 중에 선택되는 것이다, 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앉아있다. 이때 난데없이 청소부로 변장한 사장이 마대를 휘두르며 면접장으로 들어오는데...
갑자기 운동선수로 변신한 것 마냥 코코로는 한 방에 제압하여 쓰러뜨린다. 이에 놀란 면접관들이 ‘사장님’ 하고 부르자 코코로는 놀라고... 집에 돌아온 고코로는 이제 면접시험은 망쳤구나, 발을 동동 구르며 실망하는데...
스포츠 근성으로 똘똘 뭉친 고코로의 씩씩하고 당당한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았는지 당당히 합격한다.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출판계는 승부의 세계다, 라고 선발 이유를 말하는 사장의 총평이다.
그리고 신입사원 연수 한 달 후.
코코로가 소속된 곳은 ‘바이브스 편집부’다. 만화를 만든다. 여기서 만드는 청년 만화 잡지는 50만 부가 팔린다. 정말 만화 천국 일본을 실감케 하듯이 스케일도 크다. 아직 신인이라 담당이 없어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며 일을 배운다. 부편집장인 이오키베(오다기리 죠)를 따라 만화계의 거장인 미쿠라야마 선생댁에 찾아간다. 시리즈가 30년이나 이어지는 중이고 그를 돕는 어시스턴트들. 만화 편집을 하려면 ‘콘티’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콘티’는 음악에 비유하자면 ‘악보’와 같고 본격적인 만화를 그리기 위한 ‘설계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랜 세월 그림을 그린 탓인지 미쿠라야마 선생의 그림이 늘어진다는 등 비난의 댓글이 빗발치자 충격에 빠지고 원고를 회수하는 소동이 일어나는데.. 여기서 코코로는 서점을 돌아다니다가 영감을 얻어 ‘회심의 일격’으로 해결한다.
유도선수가 편집자라니. 운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순간들을 이겨낸 건 만화 덕분이었다. 애정하는 작가의 전작을 갖고 있을 만큼 만화를 좋아했기에 삶의 반전이 왔을 때 출판사에 취직을 하는 강력한 계기가 된 것이다. 신인 만화가를 발굴하는 일, 서점에 찾아가 동향을 살피고 서점 직원과 교류하고 유대감을 끈끈하게 하거나 침체에 빠진 작가에게 어떻게든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드라마니까 극적인 요소도 들어있겠지만.
오다기리 죠가 나오면 재미는 보장!!
캐릭터들의 개성도 다양하고 흥미롭다. 한신의 야구 광팬인 괴짜 편집장 와다, 너무 일중독이 되어 부인에게 이혼당할 위기에 처했던 야스이, 맨날 꼴치 순위에 있는 미부, 사장의 좋은 장점을 따라 선한 일을 실천하고 부편집장 이오키베, 영업부에서 3년이나 되었지만 존재감이 없어 서점직원으로부터 ‘유령’으로 불리는 코이즈미 등. 당연히 주인공인 고코로는 유도선수였던 만큼 뭐든지 긍정적이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그녀의 태도와 자세에 주변 사람들은 감동을 하고 조금씩 바뀌어 간다. 특히 존재감 없던 코이즈미는 코코로와 함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화한다.
영업부 코이즈미와 코코로.
처음에 신인인 고코로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마치 얼마나 잘 버티나 보자, 하는 야스이도 있었다. 예전부터 운동선수라면 공부를 못한다는 선입견이 항상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그런데 고코로는 필기시험도 만점이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선배 편집자들은 놀라고, 한치도 몸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태도를 보며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코코로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활력이 생긴다고 할까. 어디서 무슨 일을 하건 저렇게 적극적이고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일하는 캐릭터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유도 창시자가 말했다는 ‘정력선용, 자타공영’을 책상앞에 붙여놓고 기도하듯이 그러나 즐겁고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긍정의 에너지가 뿜뿜 솟아오른다. 이 단어의 뜻은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올바른 곳에 사용하며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참 좋은 말이다.
‘혼자 잘 팔리는 책은 없다’
영업부 오카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출판사의 노력, 읽어주는 독자, 책을 판매하는 서점 직원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형 출판사여서 그런지 라이벌 출판사와의 긴장감 감도는 순위 다툼 등 출판사와 작가를 행복하게 하는 중쇄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잘 팔리지 않으면 폐간되거나 대청소(남은 책을 분쇄하는 것)를 하는 것도 보여준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까. 그 많은 책을 쓰레기 처분한다니 놀랍다. 흥도관 사장은 그 광경을 매년 바라보며 다시 좋은 책을 만들 각오를 한다.
책이 가득한 출판사 풍경, 서점 풍경, 그곳에서 활기차게 일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특히 주인공 코코로의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운동만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섬세한 감성을 지녔을까 감탄하게 된다.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일드다. 시간을 두고 보고 또 보아도 유쾌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