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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1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완독하기 2022-03-14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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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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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틴이 떠난 것은 화자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헤어짐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알베르틴이 스스로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결국은 다시 돌아올 거다, 그녀와 결혼을 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와 더 나은 조건을 요구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떠난 건가, 그러다가도 헤어짐을 예고하는 남자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베르틴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오래전부터 도주 계획을 세웠을 거라는 추측을 하는 등 복잡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베르틴을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생루에게 부탁을 해서 봉탕 부인을 만났다가 알베르틴이 알게 되고 화자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낸다. 나를 필요로 했다면, 직접 편지를 썼다면 기쁘게 돌아갔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화자도 편지를 쓰는데 속마음과는 달리 반대로 쓴다. 그러니까 헤어지자 운운했던 말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진심을 표현하지 않는데 알베르틴이 화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알베르틴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질베르트와 교제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무관심을 가장했고, 그 무관심이 드디어는 현실이 되었다.’(P84) 알베르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그것이 자존심 때문이었다니! 요즘 말로 하면 사랑 표현을 못 했던 것이다. 남겨진 화자의 마음에서 참담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다지 알베르틴을 좋아하지 않았던 프랑수아는 속마음이 어떨까.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도련님에게 대놓고 내색할 수도 없었겠지. 화자는 알베르틴이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자꾸 프랑수아에게 주지시킨다. 아주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프랑수아가 믿지 못하도록. 그러던 중 알베르틴이 서랍에 반지를 두고 갔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성공하리라 믿었던 생루에게 부탁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자, 화자는 다시 고통에 빠진다. 오히려 생루가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고 음모를 꾸미지 않았을까 의심까지 하면서. 한번 질투와 의심에 빠진 인간의 마음은 한이 없는 것 같다. 알베르틴을 혼자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일이 단 일 분이라도 미칠 지경이었다는 속마음을 드러낸다. 이 정도면 정말 편집증적인 상태가 아닌가. 이러한 화자의 행동을 아무리 무덤덤해 보이던 알베르틴이라도 모를 리가 있을까. 여성 특유의 예민함은 갖고 있을 텐데. 거기다 헤어지자는 예고와 좀더 머물러 보라는(마치 큰 배려를 하듯이)말을 알베르틴에게 했었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화자의 너무도 서툰 연애에 고소를 금할 수 없었다. 앞에서 스완이 오데트가 사고로 죽기를 바라는 장면을 상기시키는 장면이 나왔다. 마찬가지로 화자도 알베르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은 끊임없는 질투로 영원히 오염되지 않은 채,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평온함은 되찾을 수 있을 거라며. 그러다가도 스완이 살아있다면 그런 소망은 범죄일 뿐이며,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그를 해방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거라며 한탄한다.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려고 하려고 했는데……. 화자는 알베르틴이 산책하던 중 낙마하여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봉탕 부인의 소식을 듣는다.

 

 

돌아오리라는,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가득찬 화자의 희망은 이제 기약할 미래도 없었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 알베르틴을 처음 만나고 조금씩 알아갔던, 그리고 사랑했던 날들을 회상한다. 질투로 인한 힘든 마음,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가장해야 했던 복잡한 마음 등을 풀어 놓는다.

 

 

사랑을 할 때에도, 정신적 대기 상태가 불안정하고 내 믿음의 압력이 변하면 어떤 날에는 내 고유한 사랑의 시계(視界)가 좁아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무한히 넓어지고, 또 어느 날에는 미소를 짓게 할 만큼 아름답다가도 다른 날에는 폭풍우를 일게 할 만큼 일그러지지 않았던가? 우리는 오로지 자신이 소유한 것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실제로 우리 옆에 있는 것만을 소유한다. 얼마나 많은 추억과 기분과 관념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떠나 우리의 시계로부터 멀어지는가! 그때 우리는 그것들을 더 이상 우리 존재를 이루는 전체 속에 포함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는 비밀 통로를 가지고 있다.’(P125)

 

 

알베르틴을 향한 화자의 마음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지 않은가.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것. 더구나 그녀가 죽어 세상에 없다는 것, 그 자체가 화자의 마음을 얼마나 황량하게 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내면의 깊은 바닥에 자리하고 있는 비밀 통로에서 알베르틴과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랑했음에도 왜 알베르틴에게는 그걸 잘 표현하지 않았을까. 질투심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알베르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했을까. 속마음과 전혀 반대된 마을을 함으로써 화자가 말하는 알베르틴의 악행(?)을 막아보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도와 다르게 알베르틴은 떠나버렸다. 자유롭지 못한 그 갇힘에서 벗어나고자 떠났을까. 격렬한 질투로 인해 정열적이고, 무관심하고, 질투하는 남자로 시시각각 변했던 자신의 모습에 처절하게 후회를 쏟아놓는다.

 

 

한 마디로 11권을 요약한다면 화자를 떠나고 죽은 알베르틴에 대한 애도와 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루와 에메의 탐문을 통해서 알베르틴이 한 일을 알게 되고 앙드레의 고백을 듣고 알베르틴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한 채 이기적이었던 자신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발베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하게 된 과정, 질투와 의심으로 점철되었던 관계, 질투에 빠져 알베르틴을 죽게 한 죄책감은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읽는 내내 화자의 사랑에 대해서 의문을 자아내게 했고, 그가 과연 진정한 사랑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씁쓸한 마음이 컸다. 연인을 소유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으며 소유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반발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되었다. 인간이란 살아가는 내내 얼마나 많은 실수투성이로 살아가는가. 연습도 없고 실전인 삶에서 한번 오류가 난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과 삶과 죽음의 문제는 더욱더.

 

 

어머니와 베네치아를 여행하면서 어느 정도 알베르틴의 죽음과 상실로 인한 고통이 옅어졌을 때 질베르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친구였던 생루와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당황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스완이 죽고 오데트는 포르슈빌과 결혼하게 되고 스완의 이름은 사라졌다. 오데트와 질베르트를 게르망트가에 그토록 초대받고 싶었던 스완의 소망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생루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낯설고 슬픔을 느낀다. 더구나 탕송빌에 갔다가 질베르트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어린 시절 사랑했던 질베르트가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했었다는 말을 듣는다. 결국, 화자는 인정한다. ‘어중간한 감정의 대화를 통해 첫 순간처럼 솔직해지는 것이 두려웠, 자신의 서투른 행동이 모든 걸 망쳐버렸다.’.

 

 

아무리 빨라도 후회란 늦다고 했던가. 화자는 질베르트의 고백을 듣고 생각한다.

 

그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황혼 속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어쩌면 나의 모든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그때 그 일에 관해 질문을 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내게 진실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중략) 또 사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여인들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다 해도 그들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죽음이 놓여 있는 게 아닐까?’(P470~471)

 

 

그 먼 시절이 긴 고통에 지나지 않았던 영혼의 상태로부터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마멸되고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폐허로 변하는 것, 아름다움보다 잔해를 덜 남기면서 보다 완전하게 파괴되는 것은 바로 슬픔이기 때문이다.’(P471)

 

 

어쩌면 너무 완벽한 사랑을 꿈꾸었기 때문이 아닐까? 질투와 의심에 파묻혀서 혼자 단정 짓고 궁금한 점이 있어도 묻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소통의 부재와 소통이 불능했기에 질베르트와 알베르틴과의 사랑도 모두 어긋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생루와 결혼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기에 더욱 참담했을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과 죽음과 사투하며 마지막으로 쓴 것이 이 11권의 내용인 [사라진 알베르틴]이라고 한다. 그만큼, 사랑했던 알베르틴을 향한 회상과 애도, 죄책감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물론 끝없는 의구심도 들어있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망각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글쓰기를 통해서 구원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알베르틴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대한 반성과 성찰적인 문장이 많았는데 몇 가지 옮기며 리뷰를 마치려 한다.

 

 

 

우리 감각 세계의 건물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며, 믿음이 없으면 건물은 흔들린다. 우리는 바로 이 믿음이 사람들의 가치와 무용성을 결정하며 또 그들을 만날 때면 느끼는 열광이나 권태의 감정을 결정하는 걸 보아 왔다.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아 끝나리라고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또는 슬픔이 돌연 커져서 한 존재를 우리의 목숨만큼이나, 때로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믿음은 슬픔을 견디게 한다.’(P57)

 

 

한 존재와 우리의 관계는 오로지 우리 사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이 희미해지면 그 관계는 느슨해지고, 우리는 환상에 쉽게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면서도, 또 사랑이나 우정, 예의나 체면, 의무감 때문에 타인을 속이면서도 결국은 홀로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며, 자기 안에서만 타자를 인식하며, 그렇지만 그와 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다.’(P65)

 

 

삶을 알고 싶다는 이 거대한 욕망을 나는 예전에 발베크의 길에서나 파리의 거리에서 느꼈으며, 그 욕망이 알베르틴의 마음속에서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 외의 다른 이들과 그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을 그녀로부터 빼앗고 싶어 했을 정도로 그것은 나를 괴롭혔다.’(P231)

 

 

그런데 인간이란 불행하게도 우리 사유 속에서 쉽게 마멸되는 수집품 진열대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그들에 대해 세우는 다양한 계획에는 사유의 열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유는 피로해지고 추억은 파괴된다.’(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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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0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완독하기 2022-02-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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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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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뒤랭의 집에 가는 길에 브리쇼를 만나게 되고 스완의 죽음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완의 죽음이 충격이었고, 당시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 더 오래도록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는 화자의 말이 들어있다.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질베르트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가책과 고통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스완이 대공과 가졌던 대화의 고백 상대로 화자를 선택했던 이유를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된 것, 부셰의 어떤 장식 융단과 콩브레에 관해서 스완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미루기만 했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그 어떤 사람의 죽음보다 고통을 주었기에 죽음에 관한 이런 생각에 이른 것 같다.

 

 

타자의 죽음은 마치 우리 자신의 여행, 파리에서 100킬로미터 거리의 장소에 이르자마자 두 묶음의 손수건을 잊어버리고 왔으며, 요리사에게 열쇠를 맡기는 것이고,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옛 분수가 있는 도시의 이름을 묻는 것을 잊었음을 기억해 내는 여행과도 같다.’(P14~15)

 

 

브리쇼와 함께 마차에 타고 베르뒤랭의 집으로 가면서, 예전에 엘스티르가 기이한 행동이나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당혹하게 했던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젖는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화자는 스완과 함께 했을 때 제대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일을 자책하고, 그가 훌륭한 달변가였다는 점을 회상한다.

 

 

브리쇼와 화자가 베르뒤랭 부인 댁에 도착하는 순간 거대한 몸을 휘저으며 두 사람 쪽으로 오는 샤를뤼스 씨와 마주친다. 화자가 발베크에 체류했던 첫해에 보았던 근엄하고 남성다움을 가장한 오만한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의 샤를뤼스 씨다.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이어지면서 그가 애정하는 모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용인되지 않은 일은 아슬아슬하기 마련이다. 동성애 이야기 또한 그런 분위기가 짙었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속게 된다. 하인을 시켜 탐정에게 감시하도록 일을 맡기고 연회가 끝난 후 어쩌다가 샤를뤼스 씨가 모렐에게 온 편지를 실수로 보았다가 큰 고통과 놀라움에 빠진다. 유명한 여배우 레아와 모렐이 아는 사이였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샤를뤼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거짓말, 특히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과 가졌던 관계며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동 동기에 대한 완벽한 거짓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것, 또 우리를 사랑하고 또 우리를 하루 종일 포옹하고 있어 우리를 자신과 닮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존재에 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거짓말, 이런 거짓말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향한 전망을 열고, 또 마비된 감각을 일깨워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관조하도록 하는, 이 세상에서 드문 것 중 하나이다.’(P42)

 

 

모렐의 거짓말이 들통나 고통에 빠졌음에도 샤를뤼스 씨는 모렐의 모든 것을 찬미했고, 모렐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연주회나 카드 게임에서 이긴 것처럼 기쁨을 느끼기까지 한다. 어딜 가도 모렐은 창녀나 종업원들이 바라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음악가로서 모렐의 재능과 명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남작의 마음이 느껴져서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샤를뤼스와 달리 모렐의 속마음은 교활함도 느껴졌는데, 그런 그가 얼마나 샤를뤼스 씨의 마음을 헤아릴까 싶었다.

 

 

알베르틴은 베르뒤랭의 집에 오고 싶어했는데, 뱅퇴유의 딸과 그 친구가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화자는 격심한 고통을 느낀다. ‘의 안색이 나빠지자 주변 사람도 그걸 알아차리게 된다. 헤어질 결심을 했으면서도 아직 마음 정리는 안 되는 모양이다. 이제까지 알베르틴의 숱한 거짓말을 들어왔고 그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화자의 마음속은 또다시 새로운 의혹으로 마음속이 혼란스럽다.

 

 

만일 우리가 팔다리 같은 것만 가진 존재라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음이라 불리는 작은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마음은 병에 걸리기 쉽고 또 병에 걸린 동안에는 어떤 사람의 삶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극도로 민감해져서, 만일 거짓말이(중략) 그 사람으로부터 와서 우리의 작은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면, 외과 수술을 통해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P56)

 

 

베르뒤랭의 살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지만 좋은 풍경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인물이 살롱에 편입되고 나면 그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일게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에는 기존 친구들과 관계가 미세한 틈을 만들면서 알싸한 분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신도 하나가 베르뒤랭 씨 부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를 조롱하거나 그 버릇없는 태도에 두 사람이 분노의 시선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접하다 보니 살롱에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초대된 것인지 궁금하다. 생틴의 경우는 샤를뤼스 씨가 여러 유보 조항을 붙여 허가했던 유일한 사람이라 한다. 이렇듯 베르뒤랭 부인은 자기 집에 초대해도 괜찮은 사람들의 이름을 제시했었다. 샤를뤼스 씨는 그다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받는 건 아니었으면서도 살롱에 초대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거나 승낙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베르뒤랭 부인은 여주인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며 싫어했고, 사교적으로도 샤를뤼스 씨에게 마이너스가 되었다. 초대한 사람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 만큼 실추시키는 일도 비례했으니 그 영향은 더욱 컸다.

 

 

살롱에서는 샤를뤼스와 브리쇼의 사교계의 평판이나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길게 이어지다가 샤를뤼스에 큰 곤경에 빠지는 장면에 이루게 된다. 평소부터 샤를뤼스를 못마따하게 여겼던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가 모렐의 험담을 했다는 둥 샤를뤼스가 없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며 이간질을 부추긴다. 급기야는 샤를뤼스가 젊은 음악가를 겁탈하려는 순간 베르뒤랭네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동성애라고는 해도 샤를뤼스가 모렐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모렐을 추앙하고 찬미한 죄밖에 없었는데. 이런 모욕을 받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단순히 앞일을 예측한다는 관점에서도 우리는 오류를 범한다. 우리가 관찰했던 악한 모습은 틀림없이 결정적인 방식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이런 악한 모습보다 더 풍요롭고 다른 많은 모습들을 갖고 있으며, 동일한 인간에게서 그 다른 모습들이 다시 돌아올 테지만, 우리는 그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으로 인해 그 다른 모습이 주는 기쁨을 거부한다.’(P273)

 

 

샤를뤼스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베르뒤랭 부부가 화자에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 부부에게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었을 것이다. 또한 알베르틴과 를 어떻게 하는 건 아닐까 의혹도 있었다. 그런데, 의사인 코타르가 큰 빚을 지고 곤경에 빠졌을 때 선뜻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흔히 우리는 자신이 본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악한 모습보다는 더 풍요롭고 다른 많은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통찰적인 문장에 깊은 공감이 간다. 나이어린 화자가 어떻게 어른들 틈에서 참을성 있게 대화를 듣고 있나 신기했는데, 머릿속에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알베르틴 생각으로 가득하다.

 

 

알베르틴과 헤어질 결심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었는데, 내용의 절반을 훨씬 넘기고서 나온다. 9권에서 알베르틴에 대한 질투와 화자의 심경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면 여기서는 뚜렷한 윤곽을 알려주는 것처럼 선명해진다. 발베크에서 처음 만났던 장면부터 앙드레와 뱅퇴유 양의 친구와 어울리면서 했던 말이 거짓말의 연속이었다는 것, 그로 인해 화자는 많은 고통을 받았다. 베르뒤랭네서 돌아올 때 알베르틴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집에 들어가 갇힌 여자를 만난다는 느낌 대신 갇힌 남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동안 의심을 하고 프랑수아즈의 도움을 받아 감시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어도 직접 물어보고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궁금한 점을 모두 알아내려는 듯 둘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는 점점 알베르틴의 거짓말로 인해 비탄에 빠지고 절규한다.

 

 

어쩌면 우리가 입 밖에 내는, 거짓으로라도 하는 슬픈 말은 그 자체로 슬픔을 담고 있으며, 또 우리 마음 깊숙이 이 슬픔을 주입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략) 모든 거짓말에는 아무리 소량이라도, 우리가 속이는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불확실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런 이별의 연극이, 실제 이별로 이어진다면! 비록 사실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이는 듯하다.’(P282~283)

 

 

화자는 왜 그렇게 알베르틴에게 집착했을까. 헤어질 결심을 하고, 알베르틴에게 그 말을 전하고도, 좀 더 지내보자고 연장을 한다. 좀 우습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도 느껴졌고, 그만큼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여성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르투니 의상에 요트, 마차, 자동차 등 그녀에게 베풀어준 것이 있으니 더 많이 소유했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이 주었으니 그녀가 그에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알베르틴은 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헤어지지 않은 것이 불행이었음을 절감한다.

 

 

알베르틴과의 삶은 내가 질투를 느끼지 않을 때는 권태로웠고, 질투를 느낄 때는 고통스러웠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고 해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P350)

 

 

알베르틴에 대한 의 사랑을 압축한다면 위의 문장을 꼽을 수도 있겠다. ... 안타까운 사랑이지 않은가. 질투와 집착, 애착으로 점철된 사랑이라고 할까. 그녀의 거짓말을 듣고 고통만 당하지 말고,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서 바로잡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저 혼자 아파하고 그녀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했던 화자의 나약함이 안타까웠다.

 

 

다음 날 아침, 극구 말렸음에도 편지를 남겨 놓고 새벽에 알베르틴이 떠났다는 프랑수아즈의 말을 듣게 된다. 태연자약했지만 나는 숨이 막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녀가 에게서 멀어지려는 모습을 감지해야 했던 그 모든 것이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열 권 시리즈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이제 겨우 의식흐름기법에 적응될 만하니 완독을 마쳤다! 다음 권이 나올 예정이라 하는데 이제는 내가 책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화자의 변화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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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9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완독하기 2022-01-3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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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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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에 대한 성찰적인 문장들에서 화자 마르셀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 묻어났다...순수함과 글쓰기에 대한 사명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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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틴이 크루즈 여행을 포기하고 화자와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함께 하는 가운데 사랑의 기쁨도 누리지만 왠지 권태를 느끼고 사랑이 식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틴이 옆에 없을 때 오히려 기쁨을 맛보았다는데... 특히 아침 날씨가 좋을 때는 날씨를 알려 주던 카푸친 수도사를 떠올리며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등 사색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서로 사랑하면서도 둘 사이의 관점이 달랐던 때문일까. 화자는 사랑을 소유한다는 것에 의미를 둔 것 같았다. 하지만 알베르틴은 앙드레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거나 자유분방해서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원래 한쪽에서 붙잡으려고 하면 한쪽에서는 도망치려는 법인가. 9권에서 주된 이야기는 질투에 대한 이야기다. 질투에 대한 성찰적인 문장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다. 전부터 갇힌 여인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이 권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화자의 집에서 살게 된 알베르틴을 갇힌 여인으로 생각한 것이다. 가장 가까이 함께 지내면서도 질투를 느끼는 화자의 마음이라니. 완벽한 소유란 있을 수 없으니까. 가까이 있어도 한 길 사람 속, 마음은 모른다고 하지 않은가.

 

 

질투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고 있어서 인상적인 문장들을 몇 개 음미하는 것으로 이 권을 기억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모두 말해준다면, 우리는 어쩌면 쉽게 사랑에서 치유되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질투에 사로잡힌 남자가 제아무리 질투의 감정을 교묘하게 감추려 해도, 그 사실은 질투를 불러일으킨 여인에 의해 재빨리 발각되기 마련이며, 이번에는 여인이 교묘한 술책을 쓴다. 여인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자 속임수를 쓰고 또 성공한다.(P100)

 

마치 연인들의 심리전을 꿰뚫고 있는 듯한 장면이다. 어떻게든 알베르틴을 완벽하게 소유하려 했던 화자의 고뇌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자주 묘사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과 도시와 길을 우리는 질투 때문에 알고 싶어 하는가! 질투는 앎에 대한 갈증이며, 그런 갈증 덕분에 우리는 일련의 고립된 요소들에 대해서는 온갖 지식을 차례로 취득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언제 의혹이 나타날지도 결코 알지 못한다.(P139)

 

 

앎에 대한 갈증이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얻지 못하는 것이 질투라니. 사랑만큼 에너지 소모가 많은 것도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 재미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질투에 대한 성찰이 엄청나다.

 

 

사랑하는 사람의 실제 삶과 관련해서 우리가 모르는 온갖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런저런 일이나 사람들에 대해 그녀가 했던 말도 모두 망각한다. (중략) 우리의 질투심은 과거를 뒤지면서 어떤 사실을 유추하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언제나 회고적인 질투는 자료 하나 없이 역사책을 쓰는 사학자와도 같다. 언제나 뒤늦게야 나타나는 질투는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지만, 거기에는 주삿바늘로 질투를 자극하고, 잔인한 군중이 화려함과 간계를 찬미하는 그런 거만하고도 찬란한 존재는 더 이상 없다. 불확실한 질투는 허공 속에서 몸부림친다.’(P241)

 

 

질투를 경험한 이들이라면 무척 공감할 만하지 않은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가련한 몸부림.

 

 

드레스를 사주고 요트며 포르투니의 실내복을 사주고 알베르틴의 순종하는 모습에서 어떤 특권을 느끼며 사랑을 소유했다는 자부심도 느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말해 이제 나는 나만의 여자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내가 느닷없이 보낸 첫 번째 쪽지에 자신의 귀가를, 데리러 온 사람의 인도 아래 돌아온다는 말을 공손히 전화로 알렸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주인이었다. 더 주인이라고, 다시 말해 더 노예였다. 이제 내게는 알베르틴을 만나고 싶은 초조한 마음이 사라졌다.’(P258)

 

 

화자 마르셀이 요즘의 사랑법을 좀 알고 있었다면 알베르틴과의 사랑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서로 밀고 당기는 밀당 말이다. 알베르틴에게 별 관심 없는 척 멀리하기도 했더라면 그쪽에서 몸이 달아 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너무 순진하고 순수한 나머지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소유(?)하려고 애쓰다 보니 눈치빠른 알베르틴이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을까. 물론 화자가 헤어질 결심을 했다고는 했지만, 왠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지쳐서 그런 결심을 한 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갈매기 같은 소녀들의 무리에 둘러싸인 채 느린 걸음으로 방파제를 걷던 새가, 일단 내 집에 갇힌 몸이 되자, 알베르틴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가질 수 있는 온갖 기회와 더불어 그녀의 빛깔도 다 잃어버렸다. 그녀는 점차 자신의 아름다움을 잃어 가고 있었다. 비록 질투는 내 상상적인 기쁨의 감소와는 다른 차원에 속했지만, 해변의 찬란한 빛 속에 감싸인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그녀가 나 없이 혼자 외출해서 이러저러한 여인이나 젊은 남자와 동반했으리라 상상되는, 오늘과 같은 산책이 필요했다.’(P285)

 

 

어머니도 프랑수아도 알베르틴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 말고도 화자는 다른 걸 생각했을까. 이를테면, 자신이 보통 사람들처럼 건강한 청년은 아니었다는 점을, 아니면 아주 가까이서 본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관찰로 자신과는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까. 질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알베르틴을 가엾게 여기는 배려심도 느껴졌다. 원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벗어나 잠시 내 소유물이 되면서 별 가치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자신의 탓인 것처럼 생각한다. 알베르틴의 여자친구 앞에서 모욕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도 소중했던 존재가 내게 모욕을 준것이었다. 그런 수치심과 질투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면서 다시 아름다운 알베르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떠올리며 스스로 치유하기도 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명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문학적으로 이루어야 할 꿈을 더욱 크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함께 침대에 누웠던 것이 경이로웠고 그렇게도 좋아하는 볼로뉴 숲의 호숫가에서 태양 아래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 단지 목소리만으로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상상만으로도 충분하게 그녀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사랑했는데 결국 헤어질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참 힘들었겠지. ,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10권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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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8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완독하기 2021-12-2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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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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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제 두 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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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2>

 

 

 <소돔과 고모라2>는 알베르틴과 함께 발베크 역 앞에 서 있는 장면부터 시작된다유명한 학자 브리쇼, 의사인 코타르가 자주 등장한다. 세르바토트 대공 부인은 상류 사회 귀족인데 지적으로 탁월하며 부자이다. 그런데 이 부인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해서 교제의 범위가 넓지 않다. 베르뒤랭 부인과 외독시 대공비하고만 교제를 하고 있다. 특히 베르뒤랭 부인에게는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브리쇼는 학자답게 긴 담론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어원학이나 지명학에 대한 이야기다. 화자 마르셀도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하고 대화에 열중한다.

 

 

 베르뒤랭 씨네 살롱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을 이룬다. 스완네 살롱에서 소개받지 못했던 샤를뤼스를 만나게 되고 캉브르메르 부인도 알게 된다. 샤를뤼스의 동성연애담이 꽤 길게 펼쳐졌다.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와 얘기하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인다. 게르망트 공작을 아느냐고 물으니 자신의 형인데 왜 모르겠느냐고 반문하지만,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왠지 게르망트 공작고 샤를뤼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마도 그의 동성연애적인 모습을 보고 전혀 딴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화자는 불면증과 마취제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고 있다. 베르그손과 나눈 대화에서 비롯된 내용이라고 한다. 잠에 대한 묘사에는 긴 잠, 짧은 잠, 잠자는 동안 우리는 무력한 존재라는 걸 상기시킨다. 잠을 자면서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수없이 벨소리를 듣는다. 또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추억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추억을 회상하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망각이고 다른 사람의 몸으로 산 삶이 아닌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에게 있어 잠은 소리를 만들어 냈다. 병약했던 화자는 잠을 자면서도 많은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짧은 잠과 긴 잠을 자고 난 후 깨어남을 알기 위해서는 깊이 잠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잠에 대한 화자 나름의 성찰도 꽤 이어진다. 보통의 우리는 푹 잠을 자고 나야만 개운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데...

 

 

 살롱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지루한 감이 많았는데 그나마 알베르틴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샤를뤼스의 동성연애담이 너무 진지해서 웃겼다. 샤를뤼스는 모렐과 함께 저녁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는 자꾸만 벗어나려한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속눈썹에 칠해진 가루가 눈물에 녹는 모습을 본 화자가 도움의 손길을 펼친다. 모렐을 오게 하려고 거짓으로 결투를 꾸미기도 했지만 결국 용서를 빌겠다며 돌아온 모렐을 보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이라니.

 

 

 알베르틴과의 관계는 안타깝기도 했다. 서로 사랑하면서도,함께 있는데도 왠지 외로움을 느꼈다. 헤어지려고 결심하고 마음을 굳히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게 칼로 무를 베듯 단호하지는 않았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걱정과 우려를 생각해서 헤어지려고 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모습에서 할머니의 모습이 자주 겹쳤다. 어머니도 할머니를 잃은 상심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서 마음껏 웃고 살지 못했다. 알베르틴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헤어지려고 털어놓았지만 돌아서서는 속이 찢어질 정도로 마음이 아팠고 통곡을 할 정도였다. 너무 귀여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왜 그런 상황이면서도 헤어지려고 결심했을까. 아무리 어머니의 걱정을 덜기 위한 결심이기도 했지만, 한 사람을 독차지하고 싶은 깊은 질투심으로 갈등하던 화자가 보였다. 앙드레와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질투가 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알베르틴과 꼭 결혼해야겠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하고 끝난다. 갑자기 재밌어지고 궁금하기까지 하다.

 

 

 드디어 8권까지 읽었다. 그런데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용은 별로 없다. 자주 언급되는 드레퓌스 사건이랑 살롱에서 나눈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따라 읽다가 자주 방향을 잃어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 문장이 어디서 끝나는 거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순 한글로 된 이야기가 왜 그렇게 읽기가 힘든지. 어쨌든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다음 두 권은 분량이 좀 얇아서 마음도 가뿐하다. 잃시찾 시리즈는 완독하기 위해서 읽는 게 아닐까. 아무튼 뿌듯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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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7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완독하기 2021-11-3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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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7

마르셀 프루스트 저/김희영 역
민음사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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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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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성경의 배경지식이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7권의 제목인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 언급된 성적으로 타락한 두 도시에서 가져온 이름이라고 한다. 도입부부터 화자 마르셀은 동성애에 대한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앞 권 내용에서 보듯이 그토록 열망하던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만찬에 참석해 포부르생제르맹 귀족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보게 된다.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기다리다가 젊은 재봉사 쥐피앵과 샤를뤼스 씨의 기묘한 만남을 목격하게 된다. 그보다 먼저 빌파리지 부인 댁에서 나오는 샤를뤼스 씨의 모습이 여자로 보였던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하고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한 내면이 보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숨겨진 욕망은 순수하지 못해서 영원히 충족되지 못하는 불안함일 것이다. 그 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깨달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도 컸다고 하는데. 이번 권에 그러한 동성애적 요소를 많이 언급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글쓰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한다.

 

 

 전 권에서 죽음의 빛이 완연했던 스완을 게르망트 대공 부인이 베푸는 연회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스완은 질베르트를 보러 오지 않겠느냐고 권하지만, 이제는 그에게 있어 질베르트는 죽은 여인이며 사랑하지도 않았다. 보러가지는 않겠지만 편지 정도는 쓸 수 있다고 말한다. 마르셀의 마음속에 동성애를 향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어서인지 여인들에게 마음을 정착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처음 발베크에서 만난 이후로 알베르틴을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서로 겉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후 퓌스뷔스 부인의 시녀를 통해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떠난 발베크에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이 떠올라 괴로움에 휩싸인다. 사교계에 홀려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프랑수아즈의 얘기를 통해서 당신이 아팠으면서도 괜찮은 척 보이려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생루가 찍어주는 사진을 찍으려고 교태를 부리던 할머니가 기묘하게 생각되었는데, 그것이 모두 언제 떠날지 모르는 세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려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직도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할머니를 느낀다. 그제야 처음으로 할머니의 아픔과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돌아서면 잊어버릴 정도로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지만, 아무튼 이 작품은 완독했다는 자체에 만족을 위한 독서를 우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이만큼 읽으니 좀 자신감이 생긴다. 다음 권은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다. 7권을 완독했으니! 이제 몇 권 안 남았다. , 계속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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