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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 시/에세이/만화/예술 2022-03-05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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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첫 문장을 기다렸다

문태준 저
마음의숲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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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삶 자체가 시였다. 온갖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온기 어린 사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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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후략)

-문태준 시인의 시 <맨발>의 일부-

 

 

10년 전 맨발이라는 시로 문태준 시인을 처음 만났다. 개조개의 삐죽이 나온 속살을 보고 맨발로 표현할 수 있었다니, 시인의 탁월한 은유와 관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은 슬피 우는 제자들의 모습, 사랑을 잃고 가슴 아파하는 이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견뎌내는 이들을 하나하나 소환시키며 그들의 가장 아래에는 맨발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맨발이라는 단어로 치환시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때 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따뜻한 위로처럼 다가왔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조금 있으면 지나가리라는 것을.

 

 

수백 권의 시집을 읽고서 시에 대해 조금 눈을 떴다고 했다. 너무 겸손한 시인이지 않은가. 그 시가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어서인지 문태준 시인의 산문집을 만나게 되어 정말 반가웠다. 이 책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성되어있다. 서문 저자의 말에서 시인은 문장을 얻는다는 것은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새로운 마음을 얻는다, 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시인은 제주 애월읍 장전리에 이사와 살면서 새로운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 돌밭과 해안, 오름과 숲에서 해녀와 대양의 어부, 귤밭의 농부와 산인(山人) 이웃들, 여객선, 섬들, 자연에서 문장을 얻었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4계절 이야기는 시인이 시의 첫 문장을 만나기 위해 사유하며 보낸 과정의 여정이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시와 음악, 미술, 영화와 사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시가 만들어지는 그 경과보다 시가 내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더 마음을 쓴다고 했다. 또 문태준 시인이 시를 짓는 이유도 사람과 함께 어울려서 살려는 마음에서고 사람이 전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한다. 이 말을 접하고 보니 시 맨발과 사람에 대한 인정’, ‘애정이 있었기에 탄생한 시라는 걸 알게 된다. 이러한 시인의 시 철학은 문장들 속에 따뜻하고 선명한 색깔로 그려진다.

 

 

봄은 여러 가지 색실을 바늘에 꿰어 봄꽃을 수놓고 그것으로 자연의 옷감을 장식할 것이다. (중략) 농부는 밭에 새로이 곡식의 씨앗을 뿌리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발아를 앞둔 씨앗들은 고운 이가 돋아나는 아가의 잇몸처럼 근질근질할 것이다. 바야흐로 생기의 봄이 오고 있다.’(P58)

 

 

요즘 가을볕은 금모래처럼 곱다. 잠깐씩 햇살 속에 앉아 있기도 한다. 무언가를 노란 보자기에 싸서 놓아둔 것처럼 마루에 내려앉는 가을빛은 따사롭기만 하고, 푸근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 햇살을 저장할 수 있다면 두고두고 아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P184)

 

 

어쩜, 산문이 이렇게도 시 같고 그림 같은지! 글을 읽는 내내 눈앞에 그림이 그려질 정도다. 발아한 씨앗들은 곧 돋아나려는 아가의 잇몸처럼 근질근질할 거라고 한다. 씨앗과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인가. 앞부분에서 문태준 시인은 시인은 세상의 모든 생명 존재가 서로 듣는 존재라고 했다. 서로 잘 듣고 들어주어야 하는데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소통이 잘 안 되어서 상처를 주고받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끊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서로 듣는마음이 아닐까.

 

 

시인의 온갖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나를 옛 추억의 한때로 데려다주어 희미하던 기억을 되살아나게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고향의 그리운 것들을 상기시켜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우리는 햇살 한 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다. 비대면을 요구하는 시간이 오래 계속되다 보니 북적이는 사람들의 인파가 그립다. 마주 앉아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시절이 그립다. 이렇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사소한 일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이면 내 가까이에 널려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과거를 떠올리곤 한다.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 후회스러운 일, 떠나간 사람과의 추억 등. 어떤 이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기 위해서는 과거는 과거일 뿐이니까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태준 시인은 굳이 과거의 시간을 회피하거나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한다. 땅으로부터 뿌리가 뽑힌 꽃나무가 더 자랄 수 없듯이, 우리는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줄기와 잎과 꽃을 얻게 된 꽃나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옛 시간을 옛사람의 시간을 함께 살면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지나갔다고 어제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오늘은 어제이며 내일이기도 한,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 시인은 이렇게도 시를 많이 읽는구나 싶었다. 이야기마다 시가 나왔다. 시가 나오면 소리내어 읽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이 문장을 읽으며 그림을 눈앞에 그려보았다. 왠지 천천히 음미하듯이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시인이 한순간 한순간을 살면서 사유했던 순수함과 맑은 마음이 글에서 전해져 왔다. 계절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끝에서 시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시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한 편의 시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라는 시를 잘 완성하려면 참 나를 만나며 살아가는 태도야말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이 산문집을 읽고 느낀 건 나도 새벽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한동안 쓰다가 말았던 미라클 모닝모닝 페이지가 생각났다. 오늘 할 일 메모도 좋고 뭐라도 좋을 것이다. 시인이 항아리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공부와 수행의 대상으로 여기듯이, 나도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통해서 좀 더 충만한 날들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인은 행복의 꽃들이 생활 곳곳에 피어나길바란다고 했다. 시인이 첫 문장을 만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사유했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소박한 행복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며, 따뜻한 위안의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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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따뜻한 ‘위로’ 이야기 | 시/에세이/만화/예술 2022-02-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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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툴지만, 결국엔 위로

정화영 저
좋은습관연구소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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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함께 들어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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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란 말은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좋은습관연구소에서 나온 이번 신간은 위로를 테마로 한 정화영 작가의 에세이다. 고교시절부터 방송작가가 꿈이었던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기획한 SBS TV 문학상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메인 작가로 데뷔했다 한다. 이후 2018<엄마의 봄날>로 휴스턴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 백금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꿈을 이루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면 누구보다 활력 넘치는 에피소드가 나올 줄 알았는데, 스무 개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남편과의 불화와 외로움으로 불륜을 시작한 친구의 사연부터 배려 없이 내뱉은 상사의 말에 감정의 상처를 받고 위로를 나눈 선후배 이야기, 친구를 위로하려다 서툰 위로에 어긋나버린 우정에 대한 후회 등 일터에서 만난 출연자의 사연들을 담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고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고,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비교와 경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사회에서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우리는 지금 3년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제각각 다양한 이유로 힘들다고 하는데, 코로나라는 악재를 핑계로 인간관계가 더욱 소원해지지 않았을까, 문득 주변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방송 현장에서 일하는 방송작가여서 그런지 에피소드가 다양하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졌고 소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기에 작가가 읽은 책이나 영화, 사람들 이야기 등이 곁들여져 술술 잘 읽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책이고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과 그 해결방법을 모두 책과 영화에서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위로받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과 영화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위로받곤 하지 않은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나중에 읽을 독자를 위해 몇 가지만 소개해 보겠다.

 

 

 어떤 재난이나 곤경에 처한 이야기를 만나면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알게 된다. 여기에도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와 동명의 영화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책으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 속에 버려진 아빠와 소년이 불을 지키기 위해끝없이 걸어야 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고받는 이야기에 시선이 머물렀다.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는 고통 속에 있지만, 지금 우리가 여기 있고,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는 아빠의 말이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에 갇힌 상황에서는 누구나 무력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작은 행복을 놓치기 일쑤다.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무런 위험에 휩싸이지 않고 안전한 집안에서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행복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방송 출연자의 안타까운 사연 이야기로 풀어내는 위로 이야기였다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가족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치매 환자가 된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이야기다. 지난날을 원망한들 기억이 없는 엄마에게 따질 수 있을까. ‘기억은 안 좋은 기억은 더 오래 가슴 속에 남아 있지 않은가. 작가는 기억으로 삶을 해석하는 습관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때가 있다.' 고 했다. 기억도 다르게 생각하면 다르게 쓰인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쁜 기억은 깨끗이 잊고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좋은 인생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방송작가라는 특성상 다양한 상황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하다 보면, 저절로 공감 능력이 생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만의 철학이나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를 것이고 물론 노력이라는 수고가 들 것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작가의 일에 대한 애정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따뜻한 시선 덕분이 아니었을까.

  

 

아픈 과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결국, 새로운 기억을, 그것도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P230)

  

 

 이 밖에도 분노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대면이 일상화되어 있는 요즘에,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쏟아내는 감정표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계를 지키면서도 나를 지키는 방법을 작가의 경험과 에피소드를 사례로 알려준다. “당신이 그렇게 하면 나도 아파요하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기 스무 개의 이야기는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회사 생활 등 인간관계 속에 흔히 부딪힐 수 있는 상황의 이야기다. 어쩌면 이야기 속에서 이건 내 얘기잖아?, 하는 공감을 자아내며 동지의식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를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게 될 줄 몰랐다.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한 걱정과 관계 속에서 힘듦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달라진 일상 때문에 소원해진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위로 이야기는 우리의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는 메시지로도 들렸다. 어떤 특별한 위로는 아니다. 그저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울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는 얘기다. 어쩌면 너무 평범한 얘기 같지만, 지금 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따뜻한 위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이 리뷰는 좋은습관연구소 대표님이 보내주신 책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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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 시/에세이/만화/예술 2022-01-0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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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느 채식의사의 고백

존 맥두걸 저/강신원 역/이의철 감수
사이몬북스 | 201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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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만으로도 건강하게 살수 있다니! 놀랍고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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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이 책이 눈에 띄었고, 책 소개를 들여다보다가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목차를 훑어보다가 놀라게 된다. 녹말 음식을 먹으면 날씬해지고, 단백질에는 독이 있다는 것, 영양제에는 영양이 없다... 등등.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골 감소증이라는 결과를 알았고 식생활에 나름 신경을 쓰고 있던 터였다. 원래 난 약 종류 싫어하고 병원에 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녹말이라면 우리가 탄수화물이라고 부르는 그 영양소가 아닌가. 언제부턴가 탄수화물을 죄인 취급하고 다이어트를 해도 고단백 저탄수화물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최고의 건강법인 것처럼 앞다투어 말하지 않았던가. 유튜브에서도 여지없이 교수, 의학박사들은 단백질을 그것도 육류로 끼니마다 40~60g을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의사가 있다니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골 감소증이라니. 지금까지 믿고 있던 게 전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읽었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도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던 잘못된 사실이 얼마나 가득했던가.

 

 

 저자인 존 맥두걸은 고기와 유제품을 너무 많이 먹어서 18살에 중풍에 걸렸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룩인다고 한다. 그의 부모님은 예수 다음으로 의사들을 경배했는데,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아들에게 먹인 노력의 결과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2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서서히 의사의 꿈을 꾸기 시작했단다. 자신의 병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낫게 해 줄 건지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물었으나 대답해준 의사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병으로 인해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열정을 다해 의사가 되었으니. 그의 인생 여정 또한 흥미롭다. 그는 결혼하여 하와이 빅아일랜드 하마쿠아 사탕수수농장에서 유일한 일반의로 근무하게 된다. 그 농장에서 환자를 돌보던 때 노동자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에서 온 이민자들은 90살까지도 날씬하고 약도 먹지 않았는데, 그들의 2, 3세들은 서양음식으로 완전히 바뀌어 비만 등 온갖 성인병으로 고생하게 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비롯하여 의사인 저자가 40년 넘게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힘써온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한다. 병원에서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세인트 헬레나병원에 16년 동안 있으면서도 그가 제안한 처방은 다른 의사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병원 의사나 그 가족들을 치료할 때는 진심을 다해 협조했으며, 그 치료 방식을 어느 환자에게도 소문내지 않았다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어느 기관에서도 돈을 받지 않았기에 진실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

 

 

그렇다면 왜 녹말 식품이 좋은 걸까?

저자는 역사 속에서 그 증거를 알려준다. 3500년 전 고대 이집트 귀족들이 어떤 것을 먹었을까. 그때는 패스트 푸드나 담배도 없었으니 건강했을 거라고 추측할지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라고 한다. 방부처리한 미라들에게서 비만, 치아질환, 각종 담석의 징후가 발견된다고 한다. 담석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질인데, 담석은 지나치게 과도한 육식을 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은 곡물과 채소, 과일을 먹었다고 한다. 알렉산더대왕과 칭기즈칸 등 유럽과 아시아의 정복자들은 녹말 위주의 식사를 했다. 1800년 전 터키 서부에서 사망한 로마의 검투사 60명의 시신을 분석한 결과 모두 채식을 했던 것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랍다. 용맹하게 전쟁터에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 채식으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니.

 

 

 흔히 우유나 달걀은 완전식품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감자와 고구마가 완전식품이고, , 옥수수 콩을 완벽한 식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감자는 단맛이 없음에도 당지수가 높은 식품이라며 기피하게 만들었는데. 중요한 건 이 책에서 말하는 녹말은 정제탄수화물(, 파스타,라면, 국수, , 케이크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밭에서 캐온 밭 음식(녹말 음식)을 말한다.

 황제 다이어트를 창시한 로버트 앳킨스 박사는 사망 당시 체중이 무려 116kg으로 비만과 고혈압, 심장병에 시달렸던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고 하는 흥미로운 얘기도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세상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뇌에 주입되는 잘못된 사실이 얼마나 많을까.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고기, 생선, 우유, 유제품을 먹지 말고 녹말식품을 먹어야 날씬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럼 아무것도 먹을 게 없네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육식의 3가지 독소는 단백질, 지방, 콜레스테롤이라고 한다. 고기를 먹을수록 골다공증과 담석증이 많이 걸린단다. 우리가 섭취한 동물성 식품을 소화하느라 신장기능의 4분의 1을 잃게 된다고 한다. 과잉의 단백질은 뼈에 손상을 준다. 두 배의 단백질을 섭취할 때마다 몸에서 칼슘 50%가 소변을 통해서 배출되는데, 이는 뼈에 있는 칼슘과 결합하여 소화되는 배출되는 인체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궁금할 것이다. 단백질, 칼슘 등 영양소는 어디서 섭취하느냐고. 식물성 채소 과일, 탄수화물 등 자연에서 나온 식재료에서 단백질, 칼슘 등을 얻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등푸른생선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먹어야 한다, 영양제로 보충해야 한다, 올리브유가 좋다, 는 우리가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것 같은 온갖 정보에 대한 대답을 명쾌하게 해준다. 탄수화물은 지방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현란한 광고를 소비자를 사로잡히게 했던 것의 대부분이 육식업계와 낙농업계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선전을 펼친 결과라는 것에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미국인이 비만 등 성인병으로 고통을 받는 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보면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는 이야기다. 이제는 미국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몸 건강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단백질의 부정적인 면이 이렇게 많았다니.

 

 

 사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거의 밥과 식물성 반찬을 먹고 명절이나 되어야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던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했다. 그래도 아주 단번에 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평소에 습관적으로 먹던 음식의 대부분이 아닌가. 고기, 우유, 달걀, 생선, 유제품을 끊어야 날씬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배달 음식은 더욱 당연히 멀리해야겠지. 이렇게 간단하게 건강해질 수 있다니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그냥 손쉽게 간단하게 먹는 음식보다는 수고가 들더라도 내 손으로 만들어보는 시간, 그리고 자연에서 나온 그대로를 먹어야 몸에도 건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지구에도 훨씬 이익이라는 것을 말이다. 건강과 바른 먹거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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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 '살아보는' 것 | 시/에세이/만화/예술 2021-10-1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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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역가가 되고 싶어

이윤정 저
동글디자인 | 2021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내가 번역가 체질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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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책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왜 아니겠는가. 외국어 공부가 좋아서 오랫동안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나 또한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번역가에 관심이 생겼고, 내 생의 마지막 직업은 번역가로 마무리 하고 싶다(될지는 모르겠지만), 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라 이 책이 눈에 쏙 들어왔다. 파란색 상큼한 표지디자인에서 3년 차 번역가의 풋풋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옮긴 책으로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등 여러 권 있다. 이 중 데뷔작이었던 스타트업 브랜딩의 기술은 독자들의 평가도 좋았고 스스로도 자랑스러운 역서로 꼽고 있다 한다.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저자가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시간 관리, 번역료 수입, 앞으로 번역가의 전망까지 자세하고 리얼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샘플 번역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번역가가 되는가 싶어 신기했다. 번역가에 대한 관심으로 맨 처음 읽은 책은 김고명 번역가의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였고, 그후로 김남희 번역가의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이상원 번역가의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를 차례로 읽었다. 번역으로 10년 이상 30년까지 커리어를 쌓은 번역가들의 책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안정적이라는 봉급생활자에 비해 약간 불안한 수입, 일에 밀려 여행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고충도 있었고, 힘들게 번역하고 번역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이상원 번역가는 번역이란 골 빠지는 일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어서, 혼자 공부하며 낯선 단어와 부딪힐 때마다 위축되었던 나를 웃게 했고 위로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공통점은 번역이라는 일을 정말 사랑한다는 점이었다. 리뷰는 내가 평소에 가장 궁금했던 내용을 언급하며 쓰려고 한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번역공부를 하고 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답답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원문을 어떻게 옮겨야 하느냐 하는 의역과 직역의 문제이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샘플 번역을 하면서 여러 번 탈락했던 사례를 들면서 깨달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일본어의 경우에는 한 문장 안에서도 단어를 열거하거나 도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문장 순서 그대로 번역을 하면 왠지 정돈되지 않은 문장을 읽는 것처럼 숨이 찰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은, 문장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옮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된 글만 읽었을 때도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읽히면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으로 본다는 사실’(P77)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번역된 글이 깔끔하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는가를 따져보라고 했다. 번역자의 눈이 아닌 편집자의 눈, 혹은 독자의 눈이 되어 글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로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거기에 번역가라는 직업은 빠지지 않는 단골이었다. 인터넷상에서도 각종 언어의 번역기를 돌리면 어렵지 않게 위키피디아 정보를 알 수 있을 정도이고, 그밖에도 AI 기술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번역계에서도 20172월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가 인간 대 AI의 번역 대결을 주최했는데, 결과는 24.510으로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고 한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번역 공부를 하면서 해석이 난해한 문장을 번역기를 확인한 적이 있었는데 엉뚱한 내용으로 해석된 것을 보고 AI가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구나, 안도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번역가의 전망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다고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후반부 이야기는 번역가의 일상과 고충과 수입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다. 육아와 병행하면서 번역일을 한다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참 손이 가는 어린 두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 일을 시작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번역가들의 일상이 잘 알려졌듯이 번역일이란 혼자서 외로이 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도 종종 정체감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위안을 받았을까. 번역가들의 책을 사서 읽고 인터뷰를 찾아 읽으며 위로를 받았다 한다. 나 또한 공부를 하면서 이런 방법으로 힘을 얻고 있기에 반가웠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에 가장 먼저 눈과 귀가 쏠리기 마련일 것이다. 외화 번역으로 유명하다는 황석희 번역가의 일화에 빵 터졌다. 지하철에서 이 번 역 은이라고 써있는 전광판만 봐도 움찔한다는. 이것도 직업병(?)의 일종이라고 해야 할까.

 

 

맨 마지막 장의 질문과 답변에서는 번역가에 대해 궁금할 법한 질문과 답변을 싣고 있다.이 글을 읽고 얻은 소득 중 한 가지는 적어도 번역가가 AI에게 밀리지 않고 당당한 직업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었다. 또 한가지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역시 내 체질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끈기와 집념, 늘 새로운 내용을 읽고 이해하려면 일단 공부하는 걸 좋아해야 하는데, 내가 딱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번역가들의 화려한 스펙에 비하면 나는 거의 독학으로 공부한 실력으로 번역가를 꿈꾸어도 되는 것일까. 하지만 작가가 인용한 김남주 번역가와 김희정 번역가의 얘기를 되새기며 계속 꿈꾸기로 했다.

 

 

그럼 번역료, 인세 얘기가 나올 것이고 이 돈을 받고 행복하겠다 싶으면 번역을 하세요. 나를 행복하게 한 번역으로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후략)”(P158)

 

번역에 손을 놓지만 않으면 된다. 번역이 번역가를 놓는 일은 없다’(P180)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 우선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고 번역가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오랜 경력을 쌓은 베테랑 번역가의 이야기도 좋지만, 새내기 번역가의 따끈따끈한 이야기도 유용한 정보가 되리라 생각한다. 번역하고 싶은 책을 찾아 검토/기획서를 쓰는 팁은 물론 다른 책에서 두루뭉술하게 알려주는 돈 얘기도 속시원하게 풀어 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얘기하는 부분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번역은 살아보는 거라고 했던 말도 여운이 남는다. 번역이란 사고방식 자체를 변환하여 저자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온전히 지닌 채로 옮겨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오고, 번역이 끝나면 저자의 세계에서 살다 나온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나도 부지런히 읽으며 원저자의 세계에서 오래 살아보고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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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 시/에세이/만화/예술 2021-09-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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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김두엽 저
북로그컴퍼니 | 2021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따뜻하고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무언가 매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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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잃시찾5권을 읽고 나서 너무나 피로해진(?) 머리를 식힐 겸 힐링을 받고 싶어서, 추석 연휴 전에 준비해 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나왔을 때 대단하신 할머니구나, 마음이 괜히 설렜다. 예전에 읽었던 타샤 튜더 할머니도 생각났고 이웃들의 리뷰로 읽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셨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어는 끝내주게 잘하시겠구나, 싶은 마음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많은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여러 책을 접하고 알았다. 그 예로 대표적인 분은 영원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지식인 강상중 선생이고, 알려지지 않은 비화는 얼마나 많을지. 열여덟 살에 한국으로 가족이 건너오게 되어 한국어를 말할 줄도 쓸 줄도 몰랐다는 김두엽 할머니는 평생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노동에서 해방된 것이 80세가 되어서란다. 그런데 그림들은 어찌 그리 밝은지. 물감을 쭉 짜서 바로 옮겨 놓은 듯 선명한 원색이 캔버스에 수놓아진 그림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림 사이사이 살아온 세월의 궤적들은 따뜻하고 행복한 기분과 함께 먹먹한 감동을 주었다.

 


 

38쪽 사진<백설공주>, <매화>, <푸른 화분>, <춤추는 소녀들>

39쪽 사진<장미동산의 집>, <매화 화분>, <춤추는 사람들>(앙리 마티스의 <> 모작), <화분>

 

 꽃 그림이 참 많았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원근법과 명암을 무시한 독특한 그림이지만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아마도 화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그림에 추억과 희망,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가득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쭉쭉 뻗은 꽃가지며 나뭇가지, 그림의 선이 선명하고 대담해서 힘이 느껴진다.

 


 

52쪽 사진<황금 들녘>,  53쪽 <동네 드라이브>, <바닷가 마을>

 

 정겨운 시골의 가을 풍경이 펼쳐진다. 닭과 강아지가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데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화가인 아들 이현영 화가의 하얀색 차도 자주 나오는데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애틋함이 뭉클하다.

 


 

140<꽃밤 데이트>

 


너무 예뻐서 캡처사진도....

 

 

 늦게 맞이한 며느리는 단번에 이 그림을 보더니, “어머니, 이 그림은 꽃밤 데이트예요라는 말에 그림 제목이 되었단다. 소녀 시절 단추공장에 다닐 때 사장님과 그 아들이 좋아해서 결혼하게 될 줄 알았는데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별하게 되었다. 하양과 핑크빛 꽃만 보고 있어도 첫사랑의 두근두근 설렘이 화사한 꽃 그림 속에 그대로 전해오는 듯하다. 아무리 늦게 작가가 된다 해도 평생의 경험은 두고두고 글 속에 나타난다더니, 역시 화가는 그림으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하는구나. 서로 다정한 아내와 남편으로 살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안타까운 하소연이 있었는데, 이 그림을 보니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그런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살갑게 대해 준 시어머니 덕분이라고 했다.

 


 

162쪽 사진<가족>

 

 열여덟 살에 한국으로 와서 얼굴도 모르는 남편과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았지만, 전혀 다정하지 않았고 아기를 안아주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수탁의 꾸꾸대는 소리에 나가보니 암탉과 병아리에게 먹이를 챙겨주는 걸 보았단다. ‘닭들도 저렇게 다정한데...’ 이런 화가의 마음은 화폭에 닭 <가족>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김두엽 할머니는 가끔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과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고단한 삶이 남긴 아픔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느 정도 아물지 않았을까. 글쓰기도 그림도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74쪽 <장미와 나비>, <나리꽃>, <노란 꽃>, <무궁화>, <장미와 나비>, <도라지꽃>

175쪽 <언니와 나>

 

 

나는 뭘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림도 재미있으니 그렸지 다른 건 하나도 몰라요. 화가가 되겠다거나 그림으로 뭘 해보겠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도 없지요. 그냥 하다 보니까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네요(웃음). (채널예스 기사)

 

 

 어느 날 종이에 사과 그림을 그리고 아들에게 칭찬을 받고 매일 그림을 그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신이 그림을 시작한 83세가 그림을 그리기 딱 좋은 나이라고 했다. 꼭 뭐가 되고 싶다는 목표와 계획도 좋지만 이런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냥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꾸준히 이어가는 힘 말이다. 무엇이 되어야지 하는 다짐은 때때로 스트레스를 부르기도 한다. 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의 루틴을 계속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나이는 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매일 무언가를 하는 힘의 위력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나 지친 일상을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좋겠다. 화사한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동화 속 이야기가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또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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