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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른입니까
우리는 어른입니까 43. 생각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23-01-23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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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른입니까 43. 생각

― 어떻게 바라볼까

 

 

  모두 생각하기 나름인 줄은 아주 어릴 적부터 느꼈습니다. 또 알았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겠습니다. 저는 김치나 찬국수를 못 먹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하고 밥자리에 둘러앉아서 김치를 먹기란 매우 고달팠습니다. 김치를 못 먹는 작은아들을 쳐다보는 아버지는 언제나 한숨에 짜증에 불같은 성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김치나 찬국수만 못 먹지 않았어요. 달걀도 한 달쯤 안 먹다가 모처럼 먹으면 배앓이를 하면서 바로 게웠고, 요구르트란 마실거리도, 요플레란 먹을거리도 혀에 닿기 무섭에 게웠습니다. 하얗게(크림) 듬뿍 얹은 달달이(케익)도 못 먹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이렇게 몸에 안 받는 먹을거리가 있다면 가만히 눈여겨보면서 비슷한 얼거리를 찾아서 다스릴 수 있을 텐데, 1982∼87년에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나날을 보낸 저로서는 차분한 눈길을 받은 일이 드물었습니다. 그무렵 어른들은 ‘주는 대로 다 먹어야 한다’에다가 ‘아이들은 많이 먹고 무럭무럭 커야 한다’는 생각을 밀어붙였어요. 이때에 뼛속 깊이 느낀 하나는 ‘둘레에서 남들이 아무리 맛있다고 말하는 먹을거리’ 가운데 나한테 맛있을 먹을거리는 없다시피 하다는 대목입니다.

 

  요즈음은 이따금 김치나 달달이를 슬쩍 맛보곤 합니다. 맛보기는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되는 줄 알거든요. 눈앞에 있는 이 먹을거리는 먹을거리라기보다 그저 입을 거쳐 몸을 지나 밖으로 나올 것이라고 여기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삼켜서 내보낼 수 있더군요. 다만, 삼켜서 내보낼 뿐, ‘먹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맛있는 밥을 먹은 일이 없다 보니, 둘레에 맛있는 밥을 차려서 나누는 일도 드뭅니다. 저부터 스스로 밥이 맛있다고 느끼지 않기에, 밥맛을 살려 무언가 차려서 나누기 어려운 길이었다고 할까요.

 

  그저 지켜봅니다. 사람들은 어떤 밥을 맛있다고 여기는가를 지켜보고, 어떤 간이나 냄새이거나 결일 적에 맛나다고 받아들이는가를 지켜봅니다. 제 몸에는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둘레에서 무엇을 어떻게 즐기는가를 살피는 셈입니다.

 

  이다음 생각을 들면, 갓난쟁이일 적부터 도깨비를 보았습니다. 이른바 귀신을 늘 보았습니다. 말로 어머니 아버지를 부를 수 없던 0살이나 1살 적에는 도깨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지만, 도깨비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 보니, 어느새 무시무시하게 죽은 모습인 도깨비가 잔뜩 나타나더군요. 그러나 이런 도깨비를 어떻게 물리치거나 다루어야 할는지, 또 이런 도깨비가 왜 이렇게 밤낮으로 보이면서 졸졸 따라다니는지, 또 무슨 말을 끝없이 걸려고 하는가를 알 길이 없었어요. 물어볼 사람이 없고, 묻는들 제대로 짚거나 풀어낼 사람도 없더군요.

 

  이 도깨비는 서른아홉 살까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 몰랐는데, 참 쉽게 끊어냈어요. 알고 보니 쉽더군요. 도깨비 하소연을 듣고 싶으면 “뭣 때문에 이승에서 맴도는가를 밝히고, 앙금을 털어놓았으면 홀가분히 너희 집으로, 네 길로 가.” 하고 말하면 되어요. 도깨비 하소연을 듣고 싶지 않거나 성가시다면 단출히 “썩 꺼져.”라든지 “저리 가.”처럼 한마디를 굵고 짧으면서 기운차게 읊으면 되고요.

 

  길을 배우고, 길을 알고, 길을 가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이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어요. 아직 모르기에 두렵고, 모른다는 생각에 젖으니 무서우며, 어찌할 바를 알 턱이 없구나 싶어 손에 땀이 납니다. 이러다가 조금씩 알아차리면서 두려운 마음이 걷히고, 하나하나 깨닫는 동안 무섭다고 여긴 마음이 모두 허깨비인 줄 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할 적에는 갇힐 일이 없으나, 스스로 생각을 안 하고서 다른 사람들 생각에 휘둘릴 적에는 스스로 갇히는 굴레이더군요.

 

  그리고 말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말하는 대로 됩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이건 스스로 하는 말이 스스로 마음에 심는 생각이면서, 이 생각은 스스로 이루면서 누리려고 하는 길이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나 “뿌린 대로 거둔다” 같은 오랜 말씀은 아주 쉬우면서 깊은 뜻을 품습니다. 그렇지만 배움터(학교)나 둘레(사회)나 글조각(인문지식)은 이 쉬우면서도 깊은 뜻을 새긴다거나 풀어내어 나누려 하지 않더군요.

 

  배움터마다 ‘우리말’이 아닌 ‘국어 수업’이 있고, 열린배움터(대학교)에 들어가려고 ‘국어 시험’을 치르며, 요즈막에는 글쓰기 이야기(강의)가 넘칩니다만, 정작 말이 무엇이요 말씨가 어떠하며 말결을 우리가 스스로 어떻게 다스려서 스스로 삶을 짓는 길을 노래할 만한가를 다루는 자리하고는 한참 동떨어지곤 한다고 느낍니다.

 

  글꽃(문학) 하나를 놓고서 셈겨룸(시험문제)으로 내거나 풀 수 있을까요? 노래(시) 한 줄을 네갈래(사지선다)나 닷갈래(오지선다) 같은 셈겨룸으로 풀 수 있을까요? 골라쓰기(객관식)나 풀어쓰기(주관식) 어느 쪽으로도 다룰 수 없는 글꽃이요 우리말일 텐데, 이를 셈겨룸으로 다룬다는 대목부터 어딘가 뒤틀리거나 얄궂을 텐데, 이를 눈치채는 분은 아직 적구나 싶습니다.

 

  밥·도깨비·말, 이렇게 세 가지는 어릴 적부터 늘 제 곁을 맴돌면서 무언가 보여주거나 일깨우려 했습니다. 먹지 않아도 될 밥이니,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기운일 뿐인 줄 알아차리라고 이끌었어요. 몸뚱이는 또다른 옷이며, 모든 목숨은 빛덩이라는 넋으로 빛나는 줄 알아내라고 이끌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든 손으로 쓰는 글이든 언제나 삶으로 이루어서 눈앞에서 마주하게 마련이니, 아무 말이나 글을 섣불리 듣거나 쓰거나 읽거나 밝히지 않을 노릇을 배우라고 이끌었어요.

 

  말만 곱게 한다면 허울만 좋은 삶입니다. 말을 곱게 한다면 찬찬히 속으로 가꾸는 삶입니다. 말이 거칠어 보인다면 얼핏 거친 듯한 겉모습을 짓는 삶입니다. 말까지 거칠다면 겉도 속도 온통 거칠다가 메마른 길로 빠지는 삶입니다.

 

  생각할 수 있다면 이 푸른별에서 이쪽 끝하고 저쪽 끝에 있어도 외롭거나 쓸쓸할 일이 없습니다. 늘 마음으로 함께 있거든요. 생각할 수 없다면 두 눈을 마주보는 아주 가까운 자리에 있어도 허전하거나 아득하곤 합니다. 손에 닿을 자리에 있어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있거든요.

 

  “그런 일을 어떻게 해요?” 하고 말한다면, 이 말을 내뱉는 바로 그때부터 그런 일은 우리한테 될 수도 없게 마련입니다. “그 일을 해볼까요?” 하고 말한다면, 이 말을 읊는 바로 그곳부터 그 일을 이루는 첫걸음을 내딛게 마련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은 오로지 하나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할 수 없네” 하고 말하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예요. “해보자”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할래” 하고 말하는 일은 시나브로 해내거나 이룹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잘잘못이란 모두 사라집니다. 잘못한 일도 잘한 일도 모두 사라져요. 그래서 처음부터 할 수 있습니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없기에 누구나 모두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잘못했다고 해서 이 잘못을 무덤돌처럼 세우지 않으면 좋겠어요. 잘했다고 해서 이 잘한 일을 기림돌(동상·우상·훈장)처럼 세우지 않으면 좋겠어요. 잘했어도 모두 잊거나 내려놓고서 새롭게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기에 밤에 고이 잠들고서 아침에 기쁘게 일어납니다. 생각을 할 줄 안다면 노상 우리 꿈을 마음에 품고서, 이 꿈을 스스로 신나게 이루는 길을 하나둘 찾아내어 다부지게 나아갑니다.

 

  아침저녁으로 스스로 묻고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꿈을 그렸니? 오늘 하루는 어떤 사랑을 그리니? 오늘 하루는 어떤 웃음빛을 그릴까?” 오르지 못할 언덕이 없다는 말은 그냥 태어나지 않았으리라 느껴요. 맞거든요. 오르려 하니까 오르고, 오르려 하지 않으니까 못 올라요. 하려고 생각하니 할 길을 찾아냅니다. 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니 어떻게든 안 하거나 안 되는 쪽으로만 나아갑니다.

 

  “저놈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만, 저놈을 믿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놈이든 저분이든 저님이든 저치이든,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할 일이며 놀이를 즐겁게 생각해서 이야기하면 되어요. 우리가 나아갈 길을 훨훨 날아오르듯 아름다이 가꾸는 하루를 생각해서 펴면 되고요. 믿지 않고 묻습니다. 생각하면서 마음에 심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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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쓰는 ˝우리는 어른입니까˝ ..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23-01-23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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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에 처음 쓰다가 멈춘 [당신은 어른입니까]라는

꼭지가 있다.

 

2015년에 이럭저럭 매듭을 지었고

2018-19년에 주루룩 고쳐썼는데

다시 너덧 해가 흐른 올해에

이 꾸러미를 새로 추스르고

보태어 쓰려고 한다.

 

2012년 어느 날,

작은아이가 두 살을 넘어선 무렵

곁님이 나더러

"아이들이 앞으로 스스로 배울 이야기부터 써 봐요." 하고

귀띔을 해서

여러 해에 걸쳐서 쓰고서 손질해 놓았는데,

큰아이가 열여섯 살을 넘긴 이즈음

이 꾸러미를 비로소 새삼스레 가다듬어서

우리 두 아이한테 먼저 읽힐 만하리라 본다.

 

다시 고쳐쓰는 데에 얼마나 걸릴는지

잘 모르겠지만

천천히 나아가 보자.

 

글꼭지 이름은 [우리는 어른입니까]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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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41] 교사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5-04-15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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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41] 교사읽기

― 학교교육과 교사와 학생



  지난날 학교에서 교사는 일삯이 무척 적었습니다. 일삯을 무척 적게 받은 교사는 학교에서 ‘돈 걷는 일’을 으레 했습니다. 툭하면 학생더러 이 돈을 내고 저 돈을 내라 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넣은 어버이는 ‘학교에 바쳐야 하는 돈’ 때문에 늘 시름을 앓아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아이를 많이 낳았으니, 아이 하나마다 드는 돈이 무척 컸어요.


  가만히 보면, 일삯을 적게 받으면서 ‘아이한테서 돈을 걷는 일’을 하던 지난날 교사는 학생을 손쉽게 때렸습니다. 아이들을 때리고 윽박지르고 다그치면서 ‘돈 걷기’를 했습니다. 이러면서 예전에는 돈봉투도 흔히 받았지요. 돈봉투를 바치는 아이는 교사한테서 미움을 덜 받지만, 돈봉투를 바치지 못하는 아이는 으레 미움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는 일삯이 꽤 큽니다. 일삯을 아주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없으나, 퍽 넉넉하게 받고, 연금도 제법 큽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주먹다짐이나 매질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지만,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사도 이제 학교에서 ‘돈 걷기’를 거의 안 합니다. 다만, 입시지옥 시험공부를 ‘보충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시키는 학교라면, ‘돈 걷기’를 아직도 하겠지요.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아이를 가르치려는 일을 맡는 교사입니다. 그러니, 교사는 무엇보다도 ‘제대로 잘 가르칠’ 뿐 아니라 ‘슬기롭고 사랑스레 가르칠’ 줄 아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교사는 돈을 걷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사는 시험공부를 윽박지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사는 행정서류를 꾸미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몫을 맡는 사람이 교사인 만큼, 교사한테는 다른 일거리를 맡길 수 없습니다.


  교사한테 일삯을 왜 넉넉히 줄까요? 교사는 아이를 슬기롭게 가르치면서 사랑스러운 꿈을 아이가 스스로 짓도록 북돋우는 몫을 맡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다른 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으로 일삯을 넉넉하게 줍니다. 돈봉투 따위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삯과 연금을 넉넉하게 줍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을 보면, ‘제도권 학교’에서는 아직 ‘참다운 배움마당’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이한테 삶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교육 얼거리가 바르게 서지 않습니다. 중·고등학교는 아주 ‘대학바라기 입시지옥’입니다. 중학교라는 곳이 따로 있으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서 딱히 제구실을 하지 않습니다. 어정쩡한 자리에 있는 중학교이면서, 어정쩡한 교과서 지식을 들려주는 중학교입니다. 초등학교도 여러모로 어정쩡합니다. 많이 어린 나이인 여덟 살부터 이 아이들이 무엇을 익히고 받아들여서 삶을 기쁨으로 짓도록 돌보는가 하는 대목에는 손길을 못 뻗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넣느니 마느니’를 놓고 말다툼을 벌입니다. 이런 일을 놓고 말다툼을 벌여야 할까요? 정부와 언론과 지식인은 이런 일을 놓고 책상머리 말다툼을 아직도 해야 할까요?


  교과서를 영어로 쓰든 중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로 쓰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제대로 엮고, 알차게 엮으며, 사랑스레 엮으면 됩니다. 아름다운 사랑으로 알차게 엮은 교과서라면 ‘어떤 말’로 된 책이든 우리는 모두 기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오로지 입시지옥이 되기 때문에 교과서를 한글로만 쓰더라도 아름답지 못하고, 이 교과서에 한자를 넣는다 한들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하고 마주하면서 생각해야 할 대목은 오직 하나입니다. 교과서 지식을 아이들이 잘 배워서 시험점수가 잘 받도록 하는 일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는 ‘시험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삶을 배우는 곳입니다. 학교를 사랑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그러니, 교사로 서려는 어른이라면, 아이와 함께 학교에서 기쁘게 지을 삶과 사랑을 생각해서 이를 북돋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맡은 몫은 ‘아이들이 마을에서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삶을 가꾸는 길을 즐겁게 가도록 돕는 일’입니다.


  교사가 교사다우면 학교가 학교다울 수 있습니다. 교사가 교사다우면 어떤 교과서를 쓰든 아이들은 기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교사가 교사다우면 일삯을 얼마큼 받든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4348.4.1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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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40] 직업읽기 (직업선택의 십계)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5-03-0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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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40] 직업읽기 (직업선택의 십계)

―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까



  거창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치는 ‘직업선택의 십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다짐글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찬찬히 읽습니다. 열 가지로 된 다짐글을 하나하나 읽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따르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이를 거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테며, 이를 지키기 어렵다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나는 이 다짐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를 떠올립니다. 이러고 나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들려줄 말을 내가 새롭게 써 보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내 일 찾기’라는 글을 열 줄로 씁니다.



 * 내 일 찾기 (ㅎㄲㅅㄱ) *

 하나, 하면서 기쁜 일을 하자.

 둘, 하면서 신나는 일을 하자.

 셋, 손수 밥·옷·집 짓는 일을 하자.

 넷, 사랑스러운 일을 하자.

 다섯, 아름다운 일을 하자.

 여섯,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일을 하자.

 일곱,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을 하자.

 여덟, 숲을 짓는 일을 하자.

 아홉, 파란하늘을 보며 바람을 마시는 일을 하자.

 열,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는 일을 하자.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직업’을 찾으라고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직업’을 찾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기쁘게 누릴 ‘일놀이’를 찾아서 마음껏 살찌우기를 바랍니다.


  거창고등학교에서 쓰는 ‘직업선택의 십계’를 보면, 첫째로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이 첫 대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찾는데 왜 ‘월급’을 따질까요? 나는 내가 할 기쁜 일을 찾으면 될 뿐입니다. 이 일은 돈이 안 들어올 수 있고, 돈이 많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돈은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기쁘게 할 일을 찾으면 됩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둘째는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둘째 대목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나는 내가 신나게 할 일을 합니다. 내가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일 때에 비로소 나는 ‘내 마을’에서도, 내 고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어느 한쪽에서 슬기롭게 이바지하는 일꾼이 됩니다. 내가 신나게 하지 못하면서 톱니바퀴가 되는 일이라면, 이러한 일은 안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셋째는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라 합니다. 나는 내가 기쁘고 신나게 하면서 삶을 짓는 일을 하니까, ‘승진’하고는 아랑곳할 까닭이 없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아예 없습니다. 아무래도, 거창고등학교에서는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사람을 헤아려서 이러한 ‘십계’를 지었구나 싶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한테 ‘앞으로 나아갈 길(진로)’을 밝히려 한다면, 도시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도 살아갈 길을 보여주어야 할 텐데요. 게다가, 시를 쓰거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한테는 ‘승진’이란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려는 살림꾼한테도 ‘승진’이란 없습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 넷째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라 나옵니다. 나는 내가 기쁘면서 신나게 누릴 일을 할 뿐입니다. 모든 조건은 다 갖추어졌을 수 있고,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조건이 있든 없든 대수롭지 않아요.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짓는 일을 기쁘면서 신나게 해야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의 십계’를 더 보면,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 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다른 여섯 가지도 자꾸만 고개를 갸우뚱할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다짐글은 ‘삶짓기’나 ‘삶찾기’나 ‘삶사랑’하고는 너무 동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갑니다. 내가 가는 길에 다른 사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가는데, 이 길이 아름다우면 다른 사람도 함께 걸을 수 있어요. 게다가, 나는 앞날이 맑고 밝으면서 환한 길을 갑니다. 나는 굳이 어두운 길로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길은 내가 밝힐 길이니까요. 내가 스스로 지어서 키우는 길을 가지, ‘장래성이 있든 없든’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은 삶길이자 사랑길이자 꿈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길을 걷는 사람은 저마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서로 아끼고 좋아할 만합니다. 그러니, 누군가 내 길을 거룩하게 볼 수 있고, 훌륭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나는 내 둘레에서 나를 북돋우든 말든, 내 언저리에서 나를 깎아내리든 말든, 이를 쳐다볼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길을 웃고 노래하면서 갈 뿐입니다.


  나는 언제나 한복판에 섭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별에는 한복판이나 가장자리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곳은 한복판이면서 가장자리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두 다리로 우뚝 서서 홀가분하게 노래하는 곳은 ‘내 삶자리’입니다. 나는 내 삶자리에서 내 ‘삶일’을 찾고 ‘삶놀이’를 누립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내 곁님이나 이웃이나 동무하고 어깨를 겯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나 혼자만 갈 수 없어요. 함께 갑니다. 다만, 함께 가되 억지로 잡아끌면 안 되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노래해야지요. 나만 믿고 따르라 해도 안 되고, 나 혼자만 가겠노라 해도 안 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노래해야지요.


  무엇보다 나는 단두대로 안 갑니다. 나는 왕관으로도 안 갑니다. 내는 ‘죽음길’이나 ‘허울뿐인 명예’ 어느 곳으로도 안 갑니다. 나는 내 삶으로 갑니다. 오늘 나는 모레로 갑니다. 오늘 나는 내 보금자리로 갑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를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버이 된 사람은, 스스로 즐겁고 아이하고 함께 즐거우며 곁님하고도 함께 즐거운 일놀이를 누리면서 삶을 지을 때에 노래가 저절로 샘솟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내 일 찾기’를 해야지요. ‘직업찾기’나 ‘진로선택’이 아닌, ‘내 일 찾기·내 삶 찾기·내 길 찾기’를 하면서 사랑과 꿈을 가꿀 때에 아름답고 사랑스레 기쁜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강현정,전성은 공저
메디치미디어 | 201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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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8] 과학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12-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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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8] 과학읽기

― 삶을 이루는 알갱이



  제대로 살피고 배워야, 이러한 바탕과 넋과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가르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곁님과 나는 여느 어버이입니다만, 시골에서 마을도서관을 꾸리면서, 우리 아이들부터 다닐 수 있는 시골마을 작은학교를 열 생각입니다. 여느 교과서는 쓰지 않고, 제대로 된 지식을 제대로 다루는 책을 즐거운 길동무로 삼아서 아이와 함께 배우는 이야기꾸러미로 삼으려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배울 과학은 교과서에 있는 시험지식이 아닌, 지구와 우주와 사람과 삶을 이루면서 어우르는 알갱이가 무엇인지 헤아리는 길에서 비롯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리나 생물이나 화학을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삶을 가르칩니다. 삶을 과학으로 바라보고 수학으로 바라보며 말(한국말)로 바라봅니다. 삶을 바느질로 바라보고 자전거로 바라보며 책으로 바라봅니다. 삶을 밥짓기로 바라보고 집짓기로 바라보며 옷짓기로 바라봅니다.


  수식이나 기호가 과학이 아닙니다. 연산이나 조합이 과학이 아닙니다. 과학은 삶이 태어나는 바탕을 살핍니다. 과학은 우리가 오늘 이곳에서 살면서 두 발을 디딘 지구별이 온누리에 어떠한 터로 있는지를 살핍니다. 과학은 사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살피고, 과학은 나무와 풀과 꽃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살핍니다.


  풀잎과 풀뿌리가 몸 어느 곳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짚는 과학입니다. 물 한 방울이 몸에 어떻게 스미면서 돌고 돌아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지를 돌아보는 과학입니다. 두 눈으로 무엇을 보고, 두 손으로 무엇을 만지며, 두 발로 어느 곳을 밟으며 돌아다니는가를 헤아리는 과학입니다.


  삶을 이루는 알갱이를 찾을 때에 과학입니다. 삶을 이루는 알갱이가 너와 나 사이에 어떻게 흐르는지를 깨달을 때에 과학입니다. 과학은 지식이 아닌 슬기입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로 밝히는 과학입니다. 책을 덮고 눈을 뜰 때에 볼 수 있는 과학입니다. 비행기나 엔진이나 핵무기나 발전소가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전쟁무기나 잠수함이나 미사일이 과학이 될 수 없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과학입니다. 풀 한 포기 과학입니다. 밥 한 그릇이 과학입니다. 실 한 오라기가 과학입니다.


  과학을 제대로 읽을 때에 삶을 제대로 읽습니다. 과학을 똑바로 바라볼 적에 사랑을 똑바로 바라봅니다. 과학을 옳게 배울 때에 꿈을 옳게 배웁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과학을 곱게 익혀서 기쁘게 북돋울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4347.12.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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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7] 책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12-05 09:42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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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7] 책읽기

― 책을 왜 읽고 읽히는가



  누군가 나한테 묻습니다. ‘융’이란 사람을 얼마나 잘 아느냐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융’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을 스무 해쯤 앞서 읽은 일이 떠오르지만, 막상 이분이 쓴 책에서 어떤 이야기가 흘렀는지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융’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셈입니다. 요즈막에 이분 책을 읽은 사람이야말로 이분을 안다고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즈막에 융을 읽은 사람은 융과 얽혀서 무엇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책에 적은 줄거리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이녁 삶으로 녹여서 펼친 이야기를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걸어간 길을 알까요. 융이라는 사람이 펼친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우리 삶으로 녹여서 삶을 즐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알까요.


  책을 읽는 까닭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새롭게 배워서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씩씩하게 가꿀 기운을 내가 스스로 길어올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다른 사람은 책읽기를 달리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이기 때문입니다. 시골내기는 시골내기요, 도시내기는 도시내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숲과 하늘과 들을 바라보는 사람과 오늘 이곳에서 자가용을 몰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책은 왜 읽어야 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책을 읽으라고 신나게 말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읽을까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지옥에 갇히도록 하는 어른들은 책을 얼마나 아름답게 엮어서 아이들한테 베풀까요.


  아름다운 책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책을 못 알아보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한편, 아름다운 책을 읽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도 예나 이제나 똑같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알아보고 읽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안 알아보고 안 읽기에 안 훌륭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 ‘아름다운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은 그저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은 그저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입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아름다운 책을 찾아서 읽지만, 삶을 일구지 못하거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있는 줄 모르지만, 삶을 아름답게 일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가까이한 적이 없으나,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들은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아름답게 살찌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도 안 거들떠보는 책에 깃든 아름다움을 길어올리면서, 사랑을 아름답게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면, 책을 왜 읽는지 먼저 생각하고 느끼면서 헤아려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는, 밥을 먹을 적이나 길을 나설 적이나 학교를 다닐 적이나 흙을 일굴 적이나 나무를 심을 적에도 모두 같습니다.


  자, 밥을 왜 먹는가요? 길을 왜 나서는가요? 학교를 왜 다니나요? 흙을 왜 일구나요? 나무를 왜 심나요?


  남이 이 까닭을 밝혀서 나한테 알려주는 일은 부질없습니다. 내가 스스로 이 까닭을 알아내야 합니다. 밥을 왜 먹는지 남이 나한테 알려주어야 ‘밥을 왜 먹는지’ 안다면, 이런 사람은 바보입니다. 여행길이든 마실길이든 왜 길을 나서려 하는지 스스로 모르면서 남한테 묻는 사람은 여행도 마실도 다니지 못합니다. 학교를 왜 다니는가 하는 까닭을 스스로 찾지 못하는 사람은 학교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아무것도 못 배웁니다. 흙을 왜 일구는지 모른다거나 나무를 왜 심는지 모른다면, 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하나도 모르는 셈입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까닭은 언제나 스스로 찾아야 환하게 깨닫습니다. 책을 찾아서 읽는 즐거움은 늘 스스로 살펴서 느껴야 제대로 깨닫습니다. 어떤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 기쁘거나 재미있는가 하는 대목은 노상 스스로 짚고 되새길 수 있어야 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곱게 깨닫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로 삼는 책입니다. 어느 책이든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아무 책이나 동무로 삼지 않습니다. 모든 책을 동무로 삼을 수 있지만, 가슴에 담는 책은 한결같이 하나입니다.


  빛이 되고 숨이 되며 노래가 되는 책은 어디에 있을까요. 꿈이 되고 사랑이 되며 삶이 되는 책은 어떻게 알아볼까요. 이야기가 되고 바람이 되며 햇살이 되는 책은 누가 쓸까요. 내 가슴속에서 자라는 씨앗을 들여다봅니다. 내 마음자리에서 크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내 넋으로 살찌우는 숲을 껴안습니다. 스스로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눈을 뜨고, 스스로 사랑스럽게 다시 태어나면서 스스로 사랑스럽게 책 하나에 손길을 따숩게 내밉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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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4] 빛읽기 (윤 일병 죽음을 생각하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08-0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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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4] 빛읽기

― 삶이 빛이 되도록 꿈을 꿉니다



  미국은 틈만 나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어 미사일과 폭탄을 쏟아붓고 사람을 죽입니다. 이런 전쟁놀이를 지켜보면서 ‘폭력은 이제 그만!’ 하고 외치는 사람이 있고, ‘평화를 지키는 군대!’라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을까요?


  사람들이 죽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기도 하지만, 자동차에 치여서 죽기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기도 합니다. 오늘날 지구별에서는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자동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입시지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대단히 많아요. 이와 함께, 한국에서는 군대에서 죽는 젊은이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입시지옥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죽는 아이들 이야기하고 군대에서 웃사람한테 얻어맞아서 죽는 젊은이들 이야기는 도무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바깥에 이 이야기를 퍼뜨려야 알려집니다. 끔찍하게 죽은 아이들이어야 비로소 신문이나 방송에 나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웃사람한테 얼마나 얻어맞으면서 지냈는지 돌아봅니다. 내 ‘웃사람’이라는 이들은 나를 비롯해 ‘아랫사람’을 얼마나 자주 많이 두들겨패거나 괴롭혔는지 돌아봅니다. 훈련소에서도, 훈련소를 마치고 들어가는 자대에서도, 언제나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한 차례씩 맞거나 욕을 듣거나 얼차려를 안 받고 지나가는 일이란 없다고 할 만합니다. 군대에서 가장 자주 들으면서 가장 듣기 싫던 낱말은 ‘집합’입니다. 모이라는 뜻으로 쓰는 이 한자말이 누군가 입에서 살그마니 터져나오면, 맞고 뺑뺑이를 돌면서 허우적거려야 합니다. 처음 군대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군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전역날까지, 누구라도 군대에서는 주먹다짐과 욕지꺼리와 얼차려에 시달립니다.


  어리거나 늙다고 하는 나이란 없다고 느껴요. 나이가 많다고 훌륭하거나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가 적다고 안 훌륭하거나 안 슬기롭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참말 언제 어디에서나 꽃을 봅니다. 꽃밭에 있으면서도 꽃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꽃을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군부대에서도 아름다운 삶과 사랑과 꿈을 건사하는 사람은 주먹질이나 욕지꺼리나 얼차려를 시키지 않습니다. 여느 사회에서도 아름다운 삶이나 사랑이나 꿈을 안 건사하는 사람은 여느 사회에서도 으레 주먹질을 하거나 욕지꺼리를 일삼거나 남을 해코지하는 짓을 일삼습니다.


  나는 군대라는 곳에 늦게도 이르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학교라는 곳이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배움터가 아니로구나 하고 느껴서 일찌감치 ‘군 입대 희망서’를 내기는 했는데, 내가 ‘군 입대 희망서’를 낼 즈음에는 군대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드물었는지, 참말 아주 빨리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대에 들어가 보니 나와 나이가 같으면서 웃자리(고참)에 있는 사람은 딱 하나였습니다. 나로서는 숨을 돌릴 만한 일일 텐데, 나보다 어리면서 웃자리에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아랫자리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1995년 11월에 군대에 들어가서 상병 6호봉이 될 때까지, 나는 늘 맞는 쪽과 욕지꺼리 듣는 쪽과 얼차려를 받는 쪽에 있었습니다. 상병 6호봉이 된 어느 날, 상병 4호봉이면서 나와 나이가 같은 아랫자리 아이가 ‘계급이 좀 높아졌다’면서 그 아이가 맡을 사역과 경계근무를 이등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차립니다. 나는 그길로 소대에서 이럭저럭 높은 자리에 있는 그 아이한테 찾아가 말 한 마디 없이 그 아이를 군홧발로 10분쯤 밟았습니다. 병장 4호봉이던 어느 날, 병장 1호봉이면서 나보다 나이가 한 살 어린 아이가 사역과 경계근무를 일병한테 떠넘긴 일을 알아채고는, 이 아이 후임병과 선임병이 있는 자리에서 얻드려뻗쳐를 시키고 배를 군홧발로 걷어찼습니다. 아파서 쓰러진 아이를 다시 일으켜서 엎드려뻗쳐를 시키고는 끝없이 배를 걷어찼습니다. 얼마 뒤 다른 병장 2호봉 아이를 또 군홧발로 내무반에서 밟았습니다. 이 아이도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딱 세 차례, 군대에서 내 아랫자리 아이를 두들겨팼습니다. 그때 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주먹다짐을 했을까, 왜 다른 군인들과 똑같이 욕지꺼리를 퍼부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보드라운 말씨와 얼차려가 없이는 말귀를 듣지 않는 군대 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는 평화가 깃들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오직 주먹다짐과 신분과 위계질서와 욕지꺼리로 모든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전역을 할 즈음, 나보다 두 살 위이자 여섯 달 아래인 아랫자리 아이가 병장 계급장을 달 무렵까지 군대에서 ‘거친 욕지꺼리’도 ‘누군가를 주먹이나 군홧발로 때린 일’도 없는 줄 알아차립니다. 전역을 며칠 앞두고 그 아이를 불렀습니다. 나한테 거수경례를 하는 아이한테 “아이고, 며칠 뒤면 전역하는 사람한테 무슨 경례를 해. 밖에 나가면 내가 당신한테 형이라고 해야 할 텐데. 밖에 나가서 길에서 마주치면 형이라고 할 테니, 그때에는 나한테 말 놓아요.” 하고 말한 뒤, “그나저나 어떻게 ○ 병장은 욕 한 마디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고 얼차려도 안 시킬 수 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이이는 “내가 싫어서 그렇지요. 다 귀엽고 착한 아이들인데 말로 해야지요. 말로 안 되면 그냥 내가 하면 되고요.” 하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늘 160명이 넘는 중대원이 복닥거리는 강원도 양구 비무장지대 멧골짝 부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겪었는데, 스스로 ‘나다움’을 지키려는 사람을 꼭 하나 만난 셈입니다. 참말 이 사람은 늘 눈에 뜨였습니다. 나이가 많으면서 몸이 꽤 여려, 무엇을 하든 으레 뒤처지거나 어설펐는데, 그래도 말없이 땀만 흘리면서 끝까지 견디곤 했어요. 저보다 못 하는 후임병한테도 퍽 살갑고 부드럽게 타이를 줄 알았습니다. 참 멋지구나 싶어 이녁한테 휴가증을 하나 선물로 주었습니다. 나는 군대에서 내 몫으로 나온 휴가를 보름치 안 써서, 전역할 때까지 보름치 휴가증이 남았고, 이 가운에 이레치를 이녁한테 건넸어요.


  1997년 12월 31일 새벽에 펑펑 쏟아지는 눈밭을 헤치며 멧골짝에서 전역을 하고 군대를 떠나는 길에 내내 이녁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바보처럼 세 차례 주먹다짐을 했고 툭하면 욕지꺼리를 내뱉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내 거친 말 때문에 마음이 다쳤을까 하고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많은 아이들은 주먹다짐과 거친 말을 대물림해요. 받은 만큼 물려주거나 받은 것보다 더 크게 물려줍니다. 모두 그뿐입니다. 쳇바퀴를 돕니다. 이런 바보짓 쳇바퀴를 거스르는 빛이 하나 있었지요. 그때 그 사람은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모릅니다. 이름도 성도 잊었습니다. 그 사람이 보여준 눈빛과 몸빛만 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평화로운 곳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건사하지 않으면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있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리면 평화롭습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도 할 테지만, 내가 스스로 나를 사랑할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아이들을 군대에 안 보내려면, 군대를 이 나라에서 없애면 될 테지요. 전쟁훈련과 살인훈련을 시키는 군대가 이 나라에서 사라져야, 이 땅에 평화가 싹틀 수 있을 테지요. 그런데, 군대를 없애더라도 우리 마음자리에 사랑스러운 평화가 먼저 자라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믿고 아끼면서, 내 이웃과 동무를 함께 믿고 아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꽃에서 흐르는 냄새와 빛을 누릴 때에, 꽃밭이 아닌 눈밭에 있을 때에도 꽃내음과 꽃빛을 떠올리면서 즐겁게 웃습니다.


  오늘날 이 나라 학교는 ‘군대 조직’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아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은 몸이어도 학교에서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힙니다. 군대에서도 폭력이 이루어지지만 학교에서도 똑같습니다. 회사라고 다르지 않아요. 마을에서도 똑같아요. 군대에 있기에 사람이 더 바보처럼 주먹다짐을 하지 않아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도 가슴 아픈 주먹다짐이 벌어집니다.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는 해롱거리면서 싸움을 벌입니다. 서로 밟고 일어서려고, 서로 더 잇속을 챙기려고 괴롭히거나 윽박지릅니다.


  입시경쟁과 시험지옥을 없애지 않고서는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취업경쟁과 경제개발을 없애지 않고서는 사회차별과 온갖 불평등을 뿌리뽑지 못합니다.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너무 얄궂게 서로 닮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와 회사와 군대와 감옥은 사람들 스스로 바보스러운 쳇바퀴에 갇히도록 내몹니다.


  사랑에 눈을 뜨지 않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을 바로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빛을 읽으면서 품고 아끼며 보살필 때에 비로소 모든 실타래를 풀면서 잘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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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2] 어른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04-30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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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2] 어른읽기

―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치는가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나옵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 이웃마을과 논둑길을 천천히 달리다가 면소재지로 옵니다. 면사무소에 살짝 들르는데, 큰아이가 면내 초등학교를 보더니 “놀이터 가자!” 하고 외칩니다. 갈까? 큰아이는 혼자 외치고는 혼자 씩씩하게 초등학교 쪽으로 달립니다. 초등학교 울타리를 따라 놀이터가 있거든요. 큰아이가 앞서 달리고 작은아이가 뒤따릅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를 탑니다. 너희는 참 잘 노는구나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아이들 놀이터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타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여럿 한꺼번에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으니 어른도 올라가서 놀아도 되겠지 싶으나, 그래도 아이들 놀잇감을 어른이 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놀이터와 시골 초등학교를 둘러싼 나무를 살펴봅니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가 있습니다. 정원사가 했을는지 교사가 했을는지 학교지기가 했을는지, 반듯반듯하게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있습니다. 남쪽 바다 가까이 있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가시나무가 이곳에 여럿 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가 가시나무답지 않습니다. 둥그스름하게 가지치기를 했고, 위와 아래에 동그라미를 둘 만든다면서 억지로 가지를 베고 없앤 티가 또렷합니다.


  내 어린 날 다닌 국민학교를 문득 떠올립니다. 그래요, 1980년대에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도 이처럼 ‘동그랗게 깎은 나무’를 늘 보았습니다. 학교나 관청 같은 건물에 으레 이런 ‘동그랗게 깎은 나무’가 있습니다. 늘 이런 나무를 쳐다보면서 학교를 다니다 보니, ‘나무는 이렇게 동그스름하게 생긴’ 줄 알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동그란 나무’가 끔찍하게 가위질을 받은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까이에서 가시나무를 들여다보니, 잎이며 꽃망울이며 가지이며 생채기투성이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적에 ‘동그스름한 모양새가 예뻐 보이도’록 하자니, 이렇게 잎과 꽃망울과 가지 모두 다칠밖에 없습니다. 마치 다 다른 아이들을 똑같은 교실에 집어넣고 똑같은 교과서만 가르치면서 틀에 따라 자르고 늘리고 하는 꼴이랑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늘 평균을 말합니다. 더도 덜도 아닌 평균만큼 하라고 말합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어른들도 잘나지 않고 못나지 않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제 결대로 살아갑니다. 잘 달리는 아이가 있고, 잘 걷는 아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호미질을 잘 할 테고, 누군가는 낫질을 잘 할 테지요. 누군가는 글을 잘 쓸 테고, 누군가는 밥을 잘 지을 테지요. 누군가는 손놀림이 좋고, 누군가는 발놀림이 좋습니다. 누군가는 키가 작고, 누군가는 덩치가 큽니다. 다 다른 아이들은 다 다른 빛을 뽐내면서 활짝 웃습니다. 다 다른 아이를 다 같은 틀에 끼워맞출 수 없습니다.


  학교에 두는 나무를 죄다 똑같은 틀에 따라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습은, 다 다른 아이를 이렇게 깎고 자르고 다듬는 모양새를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몇몇 나무는 가까스로 쭉쭉 뻗으며 자라지만, 웬만한 나무는 우듬지가 없습니다. 머리가 뎅겅 잘립니다. 소나무는 옆으로 눕히고, 이리저리 휘어지게 합니다. 나무가 나무답게 자라지 못하면서 아픕니다. 나무가 나무다움을 잃으면서 앓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학교를 다닐까요. 아이들 마음에 무엇이 깃들까요. 아이들이 아픈 소리는 누가 듣나요. 아이들이 앓는 모습은 누가 알아채나요.


  어른들은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사회를 바보스레 어지럽히면서 아이들을 죽음터로 내몰지 않나 궁금합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 여느 마을 여느 학교 모양새가 바로 어른들 모습이지 싶습니다. 여느 자리 여느 때에 억지스러운 틀을 짜기에, 아이들은 제 빛을 잃으면서 ‘틀에 박힌 붕어빵’과 같은 넋이나 몸짓이 되는구나 싶습니다. 4347.4.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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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3] 꽃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03-0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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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33] 꽃읽기
― 꽃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시골마을까지 수도물을 놓는다면서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공사를 합니다. 공사를 하려면 한꺼번에 뚝딱 할 노릇이지, 지난해에 조금 지지난해에 다시 조금, 올해에 또 조금 합니다. 툭하면 ‘시멘트로 덮은 고샅길’을 파헤쳐서 무언가 묻는다고 시늉을 하더니, ‘파헤친 시멘트길을 다시 시멘트로 덮은 자리’를 또 파헤쳐서 뭔가를 묻는다 싶더니 이 자리를 다시금 파헤칩니다.


  군청에서 하는 공사인지 도청에서 하는 공사인지 중앙정부에서 하는 공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시골마을은 멧골서 흘러내려오는 멧골물을 마십니다. 멧골물을 마시거나 쓸 적에는 아무도 물값을 안 내지만, 수도물을 써야 한다면 모두 물값을 내야 합니다. 시멘트를 까부시고 다시 시멘트를 덮는 돈은 모두 우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세금에서 나옵니다.


  수도물 공사를 한다는 이들이 들이닥치면 조용하던 마을이 시끄럽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러 날 귀가 아픕니다. 게다가 고샅길을 모조리 파헤치니, 바깥으로 나다닐 수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공사를 한창 하거나 마칠 때까지 밭둑과 고샅 가장자리가 다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이런 공사를 하면서 다시 시멘트로 땅을 덮을 적에 논도랑이나 밭둑을 몽땅 시멘트로 덮어 주니 아주 고마워 합니다. 풀을 베거나 태우거나 농약 칠 일이 줄어드니 고맙다고들 말합니다. 미나리꽝이 시멘트더미에 잠겨 사라지든, 흰민들레 피고 지는 풀밭이 묻혀 사라지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공사꾼은 일을 마치고 시멘트로 다시 덮으면서 ‘풀빛이 있는 자리’를 죄 시멘트로 발랐습니다. 우리 집 대문 앞 조그마한 풀밭까지 시멘트로 모조리 덮습니다. 한창 봄꽃이 피어나면서 예쁘던 대문 앞 풀밭이었으나 시멘트로 꽁꽁 덮입니다. 봄꽃과 봄풀은 모두 죽었을까요. 곧 피어날 흰민들레도 죄다 죽었을까요. 모시풀이 자라고 제비꽃이 피던 고샅길 가장자리도 시멘트로 덮여 사라집니다. 가끔 깨꽃이 피기도 하고 괴불주머니가 자라기도 하던 조그마한 틈까지 몽땅 시멘트한테 뒤덮입니다.


  시멘트를 들이붓는 공사꾼은 꽃을 보지 않습니다. 전투기를 타고 폭탄을 떨구는 군인도 꽃을 보지 않습니다. 군장을 짊어지고 총을 손에 쥔 군인도 행군을 하거나 훈련을 할 적에 꽃을 보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모는 수많은 어른도 길가나 들판에서 자라는 꽃을 보지 않습니다. 경제나 정치나 문화나 복지 같은 정책을 내놓는 어른도 시골마을 조그마한 꽃을 보지 않습니다. 시골학교 교사조차 꽃을 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마저 꽃을 보지 않습니다.


  시골꽃이 차츰 사라집니다. 시골내음이 차츰 없어집니다. 시골빛이 차츰 자취를 감춥니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은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시멘트로 덮은 논둑길’을 달릴 적에 “하얀 길로 간다!” 하고 노래합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예부터 ‘하얀 길’이 어떤 길을 가리키는지 알기는 하니? ‘하얀 길’이란 예부터 ‘화장터 가는 길’이었어, ‘죽음길’이 바로 하얀 길이란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니? 시골마을 고샅길을 시멘트로 뒤덮어 하얀 길로 만들었다면, 시골마을을 모조리 죽이려는 짓이 된다는 뜻이야.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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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9] 빨래읽기 | 우리는 어른입니까 2014-03-01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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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른입니까 29] 빨래읽기
― 살림은 어떻게 가꾸는가

 


  회사라는 곳에 다니려는 어른들은 흔히 잊곤 합니다. 회사를 다녀야 이녁 ‘발자취(이력)’가 좋아지거나 나아지지 않습니다. 회사를 다녀야 이녁이 그동안 대학교까지 다니면서 이룬 보람을 살리지 않습니다. 대학교를 다녔고 회사에서 제법 경력을 쌓은 사람이 아이를 낳아 돌봐야 한대서 ‘아까울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회사원이 되려고 대학교까지 다니지 않았어요. 우리 솜씨와 재주는 회사에서만 빛나지 않습니다. 빼어난 솜씨와 훌륭한 재주는 바로 ‘아이한테 물려주려’고 키웠다고 해야 올바릅니다.


  어머니 몸에서 열 달 동안 자라는 아기입니다. 아기가 어머니 몸에서 열 달 동안 자라면서 어머니가 누리는 기쁨과 사랑은 바로 이때에 한껏 누립니다. 아기를 낳고 난 뒤에는 몸에 품은 고운 씨앗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아기가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빛을 마주합니다. 아기가 스스로 뒤집고 서고 걸으며 달릴 수 있는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언제나 새로운 빛을 만납니다. 씩씩하게 달릴 줄 아는 어린이는 무럭무럭 큽니다. 하루하루 새삼스럽습니다. 모든 어버이는 모든 아이들 천천히 자라는 흐름을 지켜보면서 이녁 삶을 되돌아봅니다. 어린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덥석 맡길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가 크는 결과 무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삶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손빨래를 즐깁니다. 빨래기계 없이 스무 해를 살다가 몇 해 앞서 비로소 빨래기계를 들였습니다. 빨래기계를 집안에 들이기는 했으나 이 기계를 쓰는 일은 드뭅니다. 언제나 거의 모든 빨래는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어서 합니다.


  내가 손빨래를 하는 까닭은 손빨래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늘 만지고 마시는 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조물조물 비비고 헹구면서 이 아이들이 자라는 결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이 작은 옷을 입고 저 작은 몸뚱이가 신나게 뛰놀았구나 하고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어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일이란, 회사를 다니며 경력을 쌓거나 돈을 벌어들이는 보람과는 사뭇 견줄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다시 다닐 수 있습니다. 장사는 언제라도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이 나이 이 모습은 바로 이때가 아니면 나중에는 느낄 수도 찾을 수도 없어요.


  아이들 한두 해 자라는 때는 곧 지나가요. 아이가 여섯 살일 적은 바로 오늘입니다. 아이가 여덟 살이고 열 살일 적은 바로 오늘입니다. 큰아이가 열두 살일 적은 꼭 한 해일 뿐이요, 작은아이가 다섯 살일 적도 언제나 한 해일 뿐입니다. 아이들 이 나이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여주는 싱그러운 빛을 얼마나 즐겁게 누리려는 삶인가를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빨래기계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쓰면 됩니다. 자그마한 아이들 옷가지를 조물조물 주므르면서 비비고 헹굴 수 있는 즐거움은 바로 오늘 누릴 수 있습니다. 함께 뒹굴고 함께 노래합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나들이를 합니다. 아이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어 무언가 가르쳐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아이와 함께 집에서 지내면서 ‘유치원 교사’나 ‘어린이집 교사’가 가르칠 것을 ‘어버이가 스스로 아이한테 가르칠’ 적에 훨씬 즐거우며 아름다우리라 느낍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배울 만한 것도 어버이가 스스로 아이한테 가르친다면 훨씬 빛나면서 사랑스러우리라 느낍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언제나 돈으로 사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늘 사랑으로 나눕니다. 살림은 돈으로 가꾸지 않습니다. 돈이 넉넉하기에 살림을 잘 가꾸지 않습니다. 살림은 언제나 사랑으로 가꿉니다. 살림은 늘 꿈으로 가꿉니다.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사랑과 꿈이 있을 때에 날마다 새롭게 웃고 노래하는 삶이 됩니다. 4347.3.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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