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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 없는 책
[삶책] 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 | 예스24에 없는 책 2014-07-09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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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이 책이 예스24에 없지?

어처구니가 없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참 쓸쓸하다.

이 책을 다루지 못하면서

다른 책들만 잔뜩 있다면...

왜 예스24는 '아나스타시아'를 한 권도

목록에 갖추지 못하는가?


..


환경책 읽기 59



생각, 삶, 사랑

― 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

 블라지미르 메그레 글

 한병석 옮김

 한글샘 펴냄, 2012.8.15.



  개구리가 노래하는 사이사이 휘파람새 소리가 섞입니다. 유월에서 칠월로 접어들었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는 봄부터 듣고 가을에 끊어집니다. 가을부터는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소리에 섞이는 멧새 노랫소리를 들어요. 그리고 마지막까지 풀숲에서 목숨을 잇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개구리 노랫소리를 한참 듣다가도 비닐봉지를 부시럭거리면 개구리 노랫소리는 까맣게 사라집니다. 물을 한 잔 마신다든지, 개수대에서 물꼭지를 튼다든지, 문을 여닫는다든지 할 적에도 개구리 노랫소리는 내 귀에서 사라집니다. 이 소리는 어디로 갈까요.


  새근새근 잠든 아이들 사이에 누워 잠을 부르면, 개구리 노랫소리는 차츰 흐려집니다. 어느새 잊혀지면서 새로운 곳에서 빛도 소리도 없는 꿈을 그립니다. 내 넋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안 듣지만, 내 몸은 밤새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을까요.


  생각을 기울이면 소리를 듣습니다.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안 듣습니다. 생각을 할 적에 소리가 스며들고, 생각을 안 할 적에 소리를 못 느낍니다.



..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생은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나요 … 그런데 까쨔는 소망했어요. 고집이 있거든요 … 생각한테는 예상치 못할 상황이란 없다. 그런데 온갖 사고, 혼란이 일어난다. 왜일까? 생각이 설계를 마칠 시간을 안 준 채, 물화에 서둘렀기 때문이다 … 자신의 삶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상황이 절대적으로 우선은 생각에서 지어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살아 있는 자연, 사람도 태초에 하느님의 생각이 지은 것이다. 사람도 하느님처럼 스스로의 생각으로 새로운 물건, 자신의 삶을 지을 수 있다 … 장인은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단식을 하여 몸에서 필요없는 것을 청소하였고, 그로써 생각의 힘을 돋웠던 것이지 … 사람들은 항상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들만을 본다는 거야 ..  (10, 16, 22, 28쪽)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으니, 코앞에 누가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코앞에 하느님이 있어도 못 알아보아요. 왜냐하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바삐 어디론가 가야 할 뿐입니다. 코앞에 하느님이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을 보기보다는 바쁜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합니다.


  우화가 아닌 우화라고 할 텐데, 참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이 땅에 내려와서 우리를 붙잡고 이야기를 걸려고 하지만, 우리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고는 예배당에 가야 한다고, 절에 가야 한다고, 예배당과 절에서 비손을 올려야 한다고, 너무 바쁘다고, 이녁(하느님이나 부처님)한테 붙들려서 이야기를 들을 겨를이 없다고, 이렇게 손사래를 칩니다.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불러도 나는 바쁜 일을 하러 가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불러도 나는 바쁜 일 때문에 가야 한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곁님이 불러도, 곁님이 저기를 보라면서 불러도, 곁님이 저기에 나비가 예쁘게 날갯짓을 하니까 함께 보자고 불러도, 나는 더없이 바쁜 어떤 일이 있다면서 모두 손사래를 칠 수 있습니다.


  우리한테는 어떤 일이 바쁠까요. 우리는 어떤 일부터 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일로 삶을 지을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어떤 즐거움부터 찾아나서야 할까요.



.. 네가 기억할 것이 있다. 네가 여신과 살고 싶다면 너의 삶도 여신의 격에 맞아야 하느니라 … 새 세상을 짓거나 이미 지어진 세상을 더 좋게 하려면 사람의 생각의 속도가 하느님의 그것에 버금가야 한다 … 태초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생각의 속도와 대등했다. 그렇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느님은 다른 어떤 부모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식을 자기보다 못한 사람으로 짓는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 사람의 생각 에너지를 방향을 바꾸거나 노예화할 수 있는 건 사람의 생각뿐이다 … 규명은 절대 이성이 아닌 느낌의 차원에서 스스로 자유로이 태어나야 해 … 당신은 아무것도 고칠 게 없어요. 모두는 애초부터 당신에 의해 완벽하게 지어졌어요 ..  (30, 36, 46, 51쪽)



  돈을 벌어야 밥을 먹지 않습니다. 밥을 먹으려고 해야 밥을 먹습니다. 밥은 돈으로 사들여서 먹지 않습니다. 때로는 돈을 써서 어떤 밥집에서 사다가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밥집에서는 쌀이든 푸성귀이든 열매이든 어디에서 가져올까요? 돈을 주고 사오겠지요. 그러면 어디에서 사올까요? 시골에서 사올 테지요.


  우리가 시골에서 살며 스스로 흙을 일구면, 굳이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도시에서 살더라도 스스로 흙을 일구면, 애써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때에 아주 많은 사람들은 말합니다. 집이 있어야 해요, 하고. 그래, 그러면 어떤 집이 있어야 할까요? 백억 원짜리 집이 있어야 할까요? 십억 원짜리 집이 있어야 할까요? 오억 원쯤은 되는 집이 있어야 할까요?


  어떤 집에 있을 때에 이 집을 ‘보금자리’로 여기겠습니까. 어떤 집에서 먹고 자며 잠들 적에 즐겁게 노래하겠습니까. 어떤 집에서 아이들과 꿈을 키우겠습니까.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삶을 가꾸고, 어떻게 일과 놀이를 누리며, 어떻게 사랑과 꿈을 지피려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길을 찾을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열고 생각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름난 강사한테서 실마리를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을 쏟아서 생각을 바쳐야 합니다.



.. 하느님은 자신의 작품인 사람이 자기와 닮길 바랐어 … 그를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거든 … 하느님의 작품을 부수고 자기 아버지가 지으신 세상에서 멀리 수도원의 돌담 뒤로 숨거든. 수천의 성스러운 경전을 생각해 내고 써냈지. 어디나 다 똑같아. 성경은 말하지. 하느님을 숭배해야 한다고. 절을 하긴 하는데 누구한테 하는 건지는 몰라 … 자기 자식들의 무기력한 탄식보다 부모에게 더 큰 고통이 무엇일까 … 사람의 생각의 속도가 하느님의 것에 이른다면, 사람은 다른 별에서도 생명으로 넘치는 조화로운 세상을 지을 수도 있을 거야 ..  (55, 56, 57, 61쪽)



  생각을 짓는 사람이 삶을 짓습니다. 생각을 짓지 않는 사람은 삶을 짓지 않습니다. 생각을 지을 수 있기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생각을 지으며 즐겁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생각은 늘 삶으로 이어집니다. 생각으로 삶을 보살핍니다. 생각이 있으니 삶이 언제나 따사로우면서 넉넉합니다.


  생각이 없기에 전쟁무기를 만들어 군대를 내세워 평화를 무너뜨립니다. 전쟁무기로는 평화를 이루지 않아요. 전쟁무기로는 전쟁을 하지요. 전쟁무기가 무엇인가요? 전쟁을 하려고 만든 무기입니다. 군대는 어떤 곳인가요? 전쟁을 하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그러니, 전쟁무기와 군대가 있으면 평화하고는 동떨어집니다.


  평화를 바라면 평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평화를 바라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땅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와 기계를 대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내 땅에서 얻을 수 있어야 평화입니다. 내가 먹을 밥을 내 손으로 가꾸는 내 땅에서 얻으면서 이웃하고 오순도순 밥잔치를 마련할 때에 평화입니다. 내 밥을 너하고 나누고, 네 밥을 내가 나눌 적에 평화예요.


  밥을 나눌 적에 평화입니다만, 어떤 밥을 나누려 하는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가꾸고 사랑하는 흙에서 얻는 밥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나와 너는 서로서로 제 삶자리에서 제 흙을 가꾸고 사랑하면서 삶을 지어야 평화를 이룹니다.



.. 당신 손녀의 생각은 우리보다 빠르오. 그 애는 일 년에 천 년을 지으오 … 어린아이한테 질문을 주면 그 애의 생각은 답을 찾기 시작하고 그것으로 점점 더 빨라지지 … 어린아이를 위해 딸랑이나 인형을 만든 사람의 생각의 속도와 다람쥐를 지은 그의 속도에 어떤 정도의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 … 사람들은 아이한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 되는지 지적을 하지. 이때 아이들은 사실상 세뇌를 당하는 거야. 자기 스스로는 생각하면 안 되고 자기를 대신해서 이미 모든 게 결정되어 있다고 … “그래, 어미 늑대보다 영리해. 하지만 사람은 항상 더 현명해야 해. 나는 어린 아이를 괴롭히지 않아. 난 그 애한테 제안을 한 거야. 생각을 좀 해 보고 늑대의 생각을 고려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라고 ..  (60, 64, 65, 70쪽)



  블라지미르 메그레 님이 글로 갈무리한 《삶의 에너지, 아나스타시아 7》(한글샘,2012)을 읽습니다. 여러 차례 읽습니다. 곰곰이 되새기면서 읽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리거나 나누는 기운은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가만히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2012년 8월에 나온 책을 곧 다 읽었으나 이태 가까이 책상맡에 둡니다. 《아나스타시아》 첫째 권부터 일곱째 권까지 책상맡에 나란히 꽂아 두고 날마다 쳐다봅니다.


  책이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일곱째 권을 “삶의 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옮겼으니, 삶의 에너지란, 삶을 가꾸면서 얻거나 누리거나 빚는 기운입니다. ‘삶기운’이라고 할까요, ‘삶힘’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삶빛’이라고 할까요.


  기운이나 힘은 빛에서 나오니 ‘삶빛’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아나스타시아 이야기” 일곱째 권에서는 삶빛을 노래한다고 하겠습니다. 삶을 밝히는 빛이 어디에서 나오고, 삶을 밝히는 빛은 누가 어떻게 가꿀 수 있는가를 들려준다고 하겠어요.



.. 시스템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지금 사는 어른들한테도 온갖 정보를 쏟아부으며 중요한 것처럼 전하지만, 정작, 모든 소식을 전하는 보도의 목적은 사람들이 정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야 … 주목해 봐, 온 세계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정보는 인류의 발전 방향에 대한 주제인 것이야 … 가장 완벽한 인공의 컴퓨터라 할지라도 매일 매시간 온갖 정보로 채운다면 컴퓨터는 결국 더 느리게 작동할 거야 …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우리가 고안해낸 조각상 주위에 모여 감사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면 허비할수록 하느님이 지으신 조물과 어울릴 시간은 줄어들 거야. 하느님한테서 직접 나오는 정보로부터 사람들은 점점 더 멀어질 거야 … 의학이란 학문이 완벽하게 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결과가 스스로 답하지. 의학이 완벽하게 하는 건 병이야. 나의 이런 결론이 이상한 것 같지? 스스로 생각해 봐. 수많은 동물이 자연의 상태에서 병이 들지 않는데, 자신을 고등한 존재라 여기는 사람이 왜 자신의 질병 하나 해결하지 못하지? … 현대 삶의 여건에서는 의사들한테 환자가 필요하지 ..  (72, 73, 75, 84, 87쪽)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생각합니다. 덜컹거리는 전철 소리를 듣는 사람은 전철 소리를 생각합니다. 컴퓨터 웅웅거리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컴퓨터 웅웅거리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눕고 서는 소리를 듣는 사람은 볏포기가 바람을 맞으며 눕고 서는 소리를 생각합니다.


  다만,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소리일 뿐입니다. 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는 결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잘 알아야 해요. 멸나물을 먹는대서 아픈 데를 고치지 않습니다. 어려운 한자말로 다시 말하자면, 어성초를 먹기에 질병을 고치지 않습니다. 영지버섯을 먹어야 아픈 데가 사라질까요. 산삼을 먹어야 몸이 튼튼할까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빛을 먹어야 몸이 튼튼합니다. 빛을 먹어야 아픈 데가 없습니다.


  빛이란 그냥 빛이 아닙니다. 형광등 불빛이 아닙니다. 전기로 밝히는 불빛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밝히는 빛을 먹을 때에 몸이 튼튼합니다. 사랑으로 다스린 빛을 맞아들일 때에 아픈 데가 없습니다.


  곧, 삶은 사랑으로 가꾸는 빛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삶은 사랑으로 일구는 빛이 있어서 즐겁습니다.



.. 상상해 봐, 블라지미르. 아침이야. 해가 퍼지기 시작할 무렵 잠에서 깨어 가원의 동산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어. 그곳엔 삼백 가지 이상의 그에게 필요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 … 신선한 음식을 먹어야 유익하다고 자네 세상에선 말하지. 그렇담 신선한 음식이란 게 뭐지? … 자연에는 육신의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식물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왜 우리 곁에 없나? … 가원이란 오아시스를 짓는 데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가원에 에워싸여 있어야 한다. 내 가원의 살아 있는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이웃에 날린 것이고 그곳으로부터 살아 있는 공기가 또 다른 바람을 타고 내 가원으로 날릴 것이다 …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깨어나시오, 생각해 보오 … “아버지, 이거 보세요.” 에직이 말했다. “우리는 헥타르 절반에 궁전이며 온갖 건축물을 지었어요. 그런데 쏘냐의 가원에 있는 그런 아름다움이, 공기가 우리한텐 없어요. 절반을 헐어버려야 해요.” ..  (92, 95, 98, 105, 170, 257쪽)



  개똥을 약으로 쓰는 까닭을 알아야 합니다. 개똥이라 하더라도 아픈 사람한테 ‘자, 여기에 가장 놀라운 약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면, 아픈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생각해요. 참말 내 아픈 몸을 낫게 해 주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생각으로 믿음을 만들지요. 생각으로 만든 믿음을 몸에 심지요. 그러면 몸이 낫습니다.


  어떤 것을 쓰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어떤 풀을 골라서 먹어야 몸이 튼튼해지거나 좋아지지 않습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날마다 새롭게 지어서 스스로 빛을 씨앗으로 심을 때에 몸이 튼튼해지거나 좋아집니다.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짓지 않으면 무슨 씨앗을 심겠어요. 아무 씨앗도 못 심어요. 마음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생각을 지어야 삶이 늘 새롭지요.


  새롭게 맞이하는 하루가 고스란히 새로우면서 즐거워요. 새로우면서 즐거운 하루일 때에 언제나 웃으면서 노래해요. 언제나 웃으면서 노래하는 사람은 웃음과 노래로 삶을 가득 채워요. ‘아픔’이나 ‘슬픔’이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웃고 노래하는 사람은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웃지 않고 노래하지 않기에, 겉치레로 웃거나 겉발림으로 노래하기에 자꾸 아프거나 슬픕니다.



.. 서두르면 해가 돼. 우선은 반드시 생각으로 자신의 공간을 지어야 해 … 종교란 특정 유형의 사람을 형성하고 사람이 특정 행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 끊임없이 싸우는 건 다른 민족들이 아니고, 다른 이데올로기가 민족들을 이용하여 싸우는 것이다 … 기독교가 도래하면서 융성한 국가가 지구상에 하나라도 있었는지 그 이름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반대로, 로마 제국의 슬픈 운명을 맞은 국가는 여럿 댈 수 있을 것이다 … 온갖 별 볼일 없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도록 권한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기자 혹은 작가 중 누군가가 중요한 테마를 건드리기만 했다가는, 잠시 반짝였다가는 이내 묻혀버린다 … 진실로 신성한 삶이란 지상이 아닌, 어딘가 다른 차원에 있다는 이 교리는 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지난 수천 년간 우리의 관심을 온갖 여러 가지 사건에 집중시켰다.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 어디에 멋진 건축물이 지어졌는지, 공후나 황제 중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 누가 어떤 권력을 쟁취했는지 얘기해 준다. 하지만 부모와의 관계, 부모들의 문화에 비하면 이것들은 그리 중요할 게 없다 … 나의 멀고도 먼 할머니의 할머니는 토속신앙인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이해했다. 우주를 알았고 떠오르는 햇빛의 의미를 알았다 ..  (124, 132, 133, 142, 151, 157, 168쪽)



  개구리가 노래하는 시골자락을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개구리가 노래하는 시골자락’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살아갑니다. 전쟁무기로 이루는 평화를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전쟁무기가 가득한 나라에서 거짓스러운 평화 껍데기가 있는 굴레’에 갇힌 채 살아갑니다.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을 마음에 담기에, 참말 스스로 ‘어디에서나 이웃과 살가이 만나서 오순도순 나누는 사랑’을 누립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마주해야 합니다. 꾸밈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수수하게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모기한테 자꾸 물린다고 생각하기에 자꾸 모기에 물릴 뿐 아니라, 모기한테 물린 자리가 가려워요. 가려우니 긁어요. 긁으니 덧나요. 덧나니 붓고, 붓기가 빠지지 않으니 약을 발라야겠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생각을 낳습니다.


  모기가 있건 말건 모기를 쳐다보지 않으면 모기한테 물리지 않아요. 더러 모기가 문다 하더라도 살짝 붓다가 어느새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모기한테 수없이 물렸다지만 이런 모습을 쳐다보지 않아서 모두 감쪽같이 사라졌다면 ‘모기한테 물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랑받는 즐거움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기쁨을 생각할 적에, 삶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꿈을 생각하고, 사랑을 속삭이는 하루를 생각할 적에, 삶이 환하게 빛납니다.



.. 할 수 있다! 누군가의 사주가 아니라 우리의 지혜와 가슴의 명에 따르는 우리는 할 수 있다 … 노예제나 멍청한 통치자가 없으니까 국가가 없고 비문명적이란 말인가? … 그 당시 루시에는 베다의 삶의 양식, 문화가 여전히 대세였어. 그때까지 베드루시 사람들한테선 도시가 생겨나지 않았어. 좋은 음식과 기쁨 그리고 가원에 사는 밝은 사람들로 가득한 수많은 마을이 루시를 이루었어 … 알아야 해, 블라지미르, 사랑으로 키운 열매는 자신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준 사람 그리고 키운 사람이 스스로 원해서 준 사람에게만 복을 줄 수 있어 … 죽음의 공포 아래선 죽음을 부르는 것만이 자랄 수 있다네. 그 모양이 좋아 보인다 해도 말이야 … “그거 타고 나면 그곳 땅에선 오랫동안 아무것도 못 자라.” “왜 안 자라는데?” “온갖 이로운 지렁이며 벌레들이 다 타 죽으니까. 이거 봐, 내가 천막 옆에 모닥불을 피웠는데 이곳에선 아무것도 안 자랐잖아.” ..  (185, 187, 189, 191, 193, 248쪽)



  누구한테나 스스로 가야 할 길은 오직 하나라고 느낍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마을에서 살아가는데, 다 다른 삶이지만 모두 한 곳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느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삶을 지으면, 삶에 빛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이 짓는 삶은, 스스로 웃음과 노래와 춤하고 동떨어집니다. 사랑을 담아 삶을 지으면, 삶에 빛이 있어요. 사랑을 가득 담아 짓는 삶은, 스스로 웃음과 노래와 춤을 누릴 뿐 아니라, 이웃한테 손을 내밀어 함께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나날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학교는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요. 책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어른과 아이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신문과 방송이란 무엇이고, 우리들은 신문과 방송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서울 한복판에 주저앉은 채 권력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신문과 방송을 멍하니 쳐다보아야 할까요. 우리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내 삶에서 듣거나 생각할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 풀고 맺어야 할까요.


  비가 올 때에는 비를 느낍니다. 눈이 올 때에는 눈을 느낍니다. 바람이 불 때에는 바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스스로 움직여 비와 눈과 바람이 나한테 찾아오도록 삶을 짓습니다. 사랑이 나한테 오기만을 바라지 말고, 사랑을 스스로 지어서, 이 사랑으로 내 삶을 스스로 가꿉니다.



.. 베디즘 시대, 그에 이은 토속신앙 시대에는 망자에 대한 슬픔, 비탄의 축제란 없었다. 축제는 모두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충전해 주고 젊은 세대에게 선조의 지식을 전했다 … 할아버지는 손자를 사과나무에 데려가서 손수 사과나무를 만져도 보고 손자도 사과나무를 쓰다듬었다 … 이 문명에서는 하느님을 믿을 필요가 없었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하느님을 알았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하느님과 소통하고 창조주의 생각을 이해했다. 이 문명의 사람들은 풀, 벌레, 별들의 소명을 알았다 … 일본인들 다수가 시를 쓰고 자연을 소중히 대한다. 일본의 꽃꽂이에 온 세계가 심취한다. 그런데 이 우아한 예술은 일본의 전문 꽃꽂이 예술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일본 가정 어디에서나 꽃꽂이를 볼 수 있다. 아이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독특하다. 어린이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기 위해 어른들은 최선을 다한다 ..  (208, 209, 210, 210쪽)



  《아나스타시아》는 이야기책입니다.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꾸민 이야기라는 뜻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는 뜻입니다. 삶은 늘 이야기입니다. 삶이기에 언제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삶을 담지 못하면 이야기가 아니고, 삶을 담지 못한 책은 이야기책이 아닙니다. 삶을 담지 않고 지식만 담아도 책은 되어요. 이런 책이 이른바 ‘인문책’입니다. ‘역사책’과 ‘문학책’과 ‘종교책’과 ‘학술책’과 ‘과학책’은 이야기를 담지 않고 지식과 정보만 담아서 나오기 일쑤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은 지식과 정보를 살피려고 인문책을 손에 쥐어요.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은 이녁 스스로 바라거나 뜻한 대로 인문책에서 지식과 정보를 얻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지식과 정보를 다루는 책에서 ‘이야기를 얻지’는 않습니다. ‘이야기를 생각하지’도 않고 ‘이야기를 찾지’도 않아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에는 어떠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초·중·고등학교 모두 이야기가 없이 입시지옥만 있습니다. 교과서만 있고 졸업장만 있는 학교입니다. 이야기가 없는 학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야기가 없기에 삶이 없고 사랑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으니 노래나 춤이 없습니다.


  예부터 어느 겨레나 이야기로 살았습니다. 논밭에서 일하며 늘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든 숲에서 나무를 하든 노상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꽃을 피웠어요. 그런데, 문명 사회로 바뀌면서 이야기를 스스로 버립니다. 정치권력이 문명 사회를 앞세우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보금자리를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어 이야기를 스스로 걷어찹니다.



.. 그러니까 당신이 자기 나라 대중의 과거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당신은 더 아름답게 꾸며진 사람의 주거를 볼 수 있지 … 집을 온통 그리고 울타리까지 나무에 레이스 모양의 조각을 사랑으로 장식했어. 집안의 모든 생활용품에 그림을 그려 넣었고 옷을 뜨개질했지 … 온 백성이 창작활동을 했어. 이것이 또한 말해 주는 것은, 온 백성이 풍요 속에 살았다는 거야 … 똑같은 내용의 수많은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자신의 분석 능력을 잃고 마는 것이야 …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삶을 세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그 문제를 풀면 자네가 직접 책을 써 보게 ..  (212∼213, 218. 222쪽)



  도시에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도시에는 문화와 예술이 있을는지 모르나,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노래를 짓고, 스스로 춤을 춥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웃습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코미디 방송이나 영화를 보아야 웃지 않아요. 이야기가 있으니 스스로 웃어요. 그리고, 스스로 웁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 이웃과 나누었고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어요.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었으니, 이야기도 저절로 지었으며, 사랑을 언제나 스스로 지었지요.


  오늘날 사람들을 헤아려 보셔요.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사랑을 짓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짓는 사람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하는가요? 우리들은 돈만 벌지 않나요? 우리들은 졸업장이랑 자격증만 거머쥐지 않나요? 우리들은 자가용 손잡이만 붙잡지 않나요? 우리들은 텔레비전과 스마트폰만 바라보지 않나요? 우리들은 시멘트로 지은 아파트에 머물기만 하지 않나요?


  아무것도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해와 바람과 비와 흙과 숲을 우리가 스스로 지어야 합니다. 해가 저절로 뜨기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아침이 되면 해가 기쁘게 떠오르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바람이 저절로 불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바람이 알맞게 불면서 지구별을 포근하게 감싸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비가 아무렇게나 오도록 내팽개치면 안 됩니다. 철마다 비가 알맞게 내려 온 들과 숲과 골짝을 적셔서 내와 가람이 맑게 흐르도록 삶을 지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푸성귀를 얻지 않아요. 씨앗을 스스로 심어야지요. 그리고 숲을 우리 스스로 가꾸고 흙을 우리 스스로 살찌워야지요. 돈만 벌어서 사다가 먹는 푸성귀나 곡식이나 열매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삶을 지어서 즐기는 밥이 되어야 합니다.



..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어느 한 수형인이 9년을 살다 자유의 몸이 된다 칩시다. 친구가 없습니다. 그의 친구들이란 다 교도소 감방에 있습니다. 그는 가족에 필요치 않습니다. 사회에도 필요없는 존재입니다. 누가 좋은 일에 전과자를 고용하겠습니까? 여러 전문 직종의 실업자들이 넘쳐납니다.” … 교도소장은 자신의 피보호인들이 열광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사람의 마음과 흙의 마음 사이에는 분명 무언가 우주적 관계가 존재해. 이 관계가 있으면 사람은 지구별과 조화 속에 있게 되고, 이 관계가 없으면 조화가 없는 거야. 변태가 시작되고 범죄가 증가해.” … “중위, 범죄자들이 이 교도소에서 탈옥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장한 군인들이 들어 있는 저 감시탑들은 무엇하러 있는 것이오?” “교도소를 외부세계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 위원회 위원들이 놀란 건 녹색의 여러 가지 꽃담장뿐도 아니었다. 여름 풀과 꽃들의 섬세한 향기가 도시의 도로와 사무실 냄새에 찌든 사람들을 행복으로 감쌌던 것이다 ..  (265, 284, 289, 290쪽)



  삶이 있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이름을 드날리건 안 드날리건 삶이 있는 사람일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이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이 있어야 사랑스럽지요. 사랑이 없으면 사랑스러울 수 없어요. 생각이 있는 사람이 착합니다. 생각을 스스로 세워서 하루를 새롭게 지을 때에 착한 빛이 흐릅니다. 착한 빛은 나부터 살리면서 이웃 모두를 살립니다. 내가 나부터 착한 빛이 되어 서로를 살리듯, 모든 사람이 저마다 이녁부터 착한 빛이 되어 다 같이 살릴 때에, 비로소 지구별이 환하게 빛납니다. 지구별은 환하게 빛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요. 울퉁불퉁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지구별인데, 이렇게 아파 하는 지구별은 지구사람 모두 슬기로운 빛으로 거듭나서 아름다운 삶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휘둘리는 노예 얼거리가 아닌, 남이 가는 대로 넋 없이 따라가는 쳇바퀴 틀거리가 아닌, 나 스스로 삶을 짓는 몸짓일 때에 즐겁습니다. 스스로 삶을 짓는 하루일 때에 노래합니다.



.. 지금 의원들은 백성들로부터 유리된 채, 자기의 집무실 그리고 회의에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어. 지금은 좋은 법을 만든다고 고마움을, 나쁜 법을 만든다고 욕을 먹지 않아 … 위대한 철학자의 머리에서 위대한 사상이 태동한 건, 홀로 떨어진 상황에서지 공개석상의 발표 순간이 아니야 ..  (308, 309쪽)



  생각과 삶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생각과 삶과 사랑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책과 빛과 숲은 하나입니다. 책과 빛과 숲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과 바람과 넋은 하나입니다. 사람과 바람과 넋은 서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서울 한복판 시끌벅적한 곳에서도 시를 쓰는 사람이 있고 노랫가락을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 ‘바라볼’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짓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서울 한복판 자동차가 넘치는 그곳에서 무엇을 짓습니까. 무엇을 짓는 사람들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인문학은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동화와 동시와 어른문학은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문화와 예술과 교육과 정치는 무엇입니까.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는 언론과 경제와 과학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보기만 든다면, 다산 정약용 같은 사람은 서울 한복판에서 ‘빛을 바라본 뒤 빛을 삶으로 담아 빛을 이야기로 엮지’ 않았습니다.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졌다고 할 만한 시골자락에 깃든 뒤에 비로소 ‘빛을 바라보고 빛을 삶으로 담으며 빛을 이야기로 엮는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산 정약용 같은 ‘슬기사람’이 나타나지 못하는 까닭을 사람들이 스스로 바라보아 느끼고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서울에서도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스스로 하루 내내 온마음을 쏟아 가장 아름다운 숨결로 가장 사랑스러운 삶을 짓는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어요. 생각할 때에 삶이 되고, 삶을 지을 때에 사랑이 되며, 사랑을 나눌 때에 생각이 자랍니다. 4347.7.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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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닌 시골서 살아가는 독일사람 (나는 영동사람이다) | 예스24에 없는 책 2013-07-0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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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은 예스24에는 없네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2

 


서울 아닌 시골서 살아가는 독일사람
― 나는 영동사람이다
 유디트 크빈테른 씀
 생각하는고양이 펴냄,2012.9.1./12500원

 


  인천에서 태어나 살아가던 나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느라 서울에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서곤 했습니다.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 첫무렵, 온식구 함께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데, 길이 참 멀고도 멀었습니다. 요즈음은 인천과 서울 사이에 엄청나게 개발을 많이 해서 아파트가 어마어마하게 섰지만, 예전에는 논도 밭도 퍽 넓게 있었어요. 예전 전철역 둘레는 휑뎅그렁하기도 했고, 높은 건물은 거의 안 보였습니다. 전철을 타고 창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면 꽤 멀리까지 탁 트여 시원했습니다.


  전철이 오류동을 지나고부터 차츰 높은 건물이 늘어납니다. 이제는 창문으로 바깥을 구경하는 재미가 없습니다. 온갖 건물이 눈길을 가로막습니다. 어쩌다 바깥을 조금 멀리 바라볼 수 있어도 끝없이 이어지는 시멘트 건물은 하나도 볼 만하지 않습니다.


  지하철로 갈아탄다며 신도림역에서 내리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을까 봐 손을 꽉 붙잡습니다. 아니, 어머니 손에 꽉 붙잡힙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잃지 않으려고 내 손 단단히 움켜쥐고는 사람물결을 헤칩니다.


  지하철로 한참 달려 어느 역에선가 내려 택시를 탑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는데 택시는 얼마 못 가 서고 또 섭니다. 택시미터기를 바라봅니다. ‘서울택시는 인천택시보다 훨씬 비싸네.’ 하고 느낍니다. 게다가 길에 자동차 너무 많고, 신호등도 자꾸 나옵니다. 걸어가느니만 못하다고 느낍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택시에서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우리 걸어가요. 답답해요.” 하는 말을 자꾸자꾸 합니다.


  되게 비싼 찻삯을 치러 택시에서 내리니, 목아지 아프도록 올려다보아야 하는 높다란 아파트마을입니다.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동 숫자를 읽기도 힘듭니다.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저희 집을 찾아내어 돌아다닐까 궁금합니다. 커다란 아파트마을 커다란 주차장에는 자동차가 빼곡합니다. 찻길에도 자동차가 넘치는데 주차장에도 자동차가 또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옛날에 내게 한국은 그저 ‘서울’뿐이었다. 그리고 ‘서울’은 내가 매일 빠져서 헤엄쳐야 하는 바다였다. 사람, 차, 건물의 물결. 서울에서는 모든 것이 계속 그리고 너무 빨리 바뀌었다. 발전 속도는 참 무서웠다. 건물들이 끊임없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졌다. 동네의 모습은 매년 달라졌다 … 서울사람들은 현대의 유목민같이 계속 또 다른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 한독 부부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난 관심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한국을 이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독일인 아저씨에게 한국에서도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한국에서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서울에서는 못 산다고 대답했다 … 서울에서 처음으로 혼자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갔을 때 나는 순간 겁을 먹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내가 중요하지 않고 불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졌다 ..  (14∼15, 62, 67쪽)


  2000년대로 접어든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며 출판사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어느 분 댁을 출판사 사장님과 찾아가는 길입니다. 서울 지하철로 여의도에서 내려 아파트마을 찾아갑니다. 낮인데 주차장은 가득합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이야기합니다. 여기에 있는 자동차는 ‘사모님(아줌마)’ 것이라며, ‘사장님(아저씨)’ 것은 아침에 다 나간다고 합니다. 한 집에 으레 자가용이 두 대나 석 대가 있는데, 웬만한 집들은 아저씨와 아줌마 것 두 대 있고, 대학생 아이가 있으면 석 대가 된다고 덧붙입니다.


  출판사 사장님 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돈이 많이 있다면 자가용을 두 대나 석 대나 넉 대를 굴릴 수 있겠지요. 그런데 아파트마을 주차장에 ‘한 집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어도 다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어떤 일을 하기에 사람 머릿수대로 자가용을 굴려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서 살며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동안 만나는 분들 가운데에도 ‘자가용 두 대’ 굴리는 분이 퍽 많습니다. 아저씨가 당신 자가용을 굴려서 시내로 나와 술을 마시면, 밤에 아줌마가 이녁 자가용을 굴려서 아저씨를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을 봅니다. 어느 날 몹시 궁금해서 술자리에서 넌지시 여쭙니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실 때에 아줌마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는데, 거꾸로 아줌마들이 술을 마시면 아저씨들이 자가용 몰고 나와서 집으로 데려가기도 하느냐고. 이 물음에 뽀죡하다 싶은 대답은 한 번도 못 들었습니다.


  또 어느 날에는 아줌마한테 슬쩍 여쭙니다. 한 집에 자가용 두 대나 석 대 있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할 텐데, 나가는 돈이 많겠다고. 아줌마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간 아이들 집으로 데려오려면 ‘아줌마 자가용’이 따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즘 사회가 워낙 뒤숭숭해서 유치원이나 학교로 자가용을 몰고 가서 아이들 태워야 마음을 놓는다고 말씀합니다. 아이들 생각하면 세금은 아무것 아니라고들 합니다.


.. 어머니는 “그래, 안 가면 후회할 수 있으니까 가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야. 만약에 한국 생활이 싫어지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잖아.”라고 말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하신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 나는 아주 신기한 서울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카메라로 열심히 기록하고, 이런 사소함을 독일에 있는 가족에게 보냈다 … 큰 도시에 살면 TV를 통해서만 자연을 본다. 나는 자연 없이 사는 것도 큰 스트레스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을 떠나면 내 마음과 몸이 평정을 잃는 것 같다. 영동지역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갑자기 계절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계절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여름에는 항상 에어컨을 켜 놓고 살고,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된 집에 하루 종일 머문다. 서울에서 나는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에 갔을 때만 날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 날씨를 온몸으로 느낀다. 서울에서는 계절 차이가 온도 차이일 뿐이지만, 시골에서는 공기, 식물, 냄새, 소리, 기분, 모든 것이 다 계절에 따라 바뀐다 … 날씨가 따뜻해지면 하루 종일 바깥에서 보낸다 … 장마철이 되면 우리는 구름 속에 산다 ..  (35, 65, 143, 157, 158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출판사에서 일한 뒤, 하루 일을 마치면 으레 책방마실을 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동네마다 많아, 하루 일 마칠 즈음이면 어느 동네 어느 책방으로 마실을 갈까 하고 어림합니다. 서울에서 혼자 살아갈 적에는 날마다 두어 군데 책방을 다녔습니다. 책방 한 곳 들를 적마다 책을 열 권쯤 고르고, 책방 세 곳쯤 들르면 가방에 담고 손에 든 책이 쉰 권쯤 됩니다. 예순 권이나 일흔 권쯤 장만한 날에도 그저 책을 끈으로 묶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집까지 나릅니다. 책방에서 집까지 걸어서 한 시간 즈음 된다면 버스도 지하철도 안 타고 걷습니다. 그냥 책 들고 걸어가는 일이 좋았습니다.


  큰길은 시끄러우니 골목길로 걷습니다. 서울에서는 골목길이라 하더라도 자동차가 워낙 많아서 시끄럽지만, 큰길을 생각하면 아주 호젓하다 할 만합니다. 큰길에서 벗어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동네마다 오래된 가게를 만날 수 있고, 오랫동안 뿌리내려 살아온 사람들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책방마실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만나는 일도 기쁘고, 집까지 책꾸러미 낑낑대며 나르는 동안 만나는 조그마한 집들 조그마한 동네 조그마한 사람들 모습을 마주하는 일도 기뻤습니다.


  내 저녁마실(책방마실)을 아는 출판사 사장님이 묻습니다. 얘야, 너 작은 자가용 한 대 있어야 하지 않겠니. 아니요, 저는 운전면허증도 없어요. 운전면허증 요새 한 주만 다니면 쉽게 따는데. 자가용 몰면 책을 못 읽어요. 서울은 가뜩이나 자동차 많고 길 많이 막히는데, 그런 데 자가용 몰고 다니면서 골이 아프기는 싫어요.


  책방 일꾼들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큰 가방과 책꾸러미 들고 집까지 걸어가면 힘들지 않아요, 하고 묻습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읽을 내 고마운 책들이니, 집까지 즐겁게 날라야지요. 스스로 짊어지고 집까지 나를 수 없다면, 이 책들을 내가 읽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고, 또 가다가 쉬면서 책을 읽으면 돼요.


..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지나서 우리는 ‘다시’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이번에는 ‘그냥’ 결혼식이 아니고 ‘훨씬 더’의 결혼식이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했던 결혼식에서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크고 많았다. 모든 것이 훨씬 더 형식적이고, 훨씬 더 비쌌다 … 이 한국 결혼식은 우리 둘에게 중요하다기보다는 왠지 다른 사람들에게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아 보였다 … 나는 혼자 생각했다. ‘손님들이 그냥 돈을 주고 밥을 먹고 가 버리네! 손님과 함께 얘기도 별로 나누지 못했잖아 … 독일에 있었을 때, 난 여러 해 동안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면 동물을 먹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햇빛도 못 보고 죽음만 기다리는 돼지나 소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독일에는 요즘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생겨서 고기를 먹지 않아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생선도 안 먹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한국음식에 야채가 많지만 고기가 조금씩이라도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  (44, 48, 95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로 와서 산 지 아홉해 째 되던 날, 서울 아닌 시골에서 할 일이 생깁니다. 내 일터는 이제 서울 아닌 멧골자락이 됩니다. 충청북도 충주 무너미마을 멧골집에서 돌아가신 어느 분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기로 하면서, 서울을 떠납니다. 서울에는 좋은 책방이 많아 날마다 두세 곳씩 나들이하는 기쁨을 누렸기에 여러모로 서운했지만, 엄청난 글과 책을 남기신 분 뒷자리를 갈무리하는 일도 ‘새로운 책’ 만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책방마실에서는 느끼거나 배우지 못하는 남다른 사랑을 배울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두 해쯤 멧골과 서울 오가면서 지냅니다. 멧골에서는 멧골자락 품에 안겨 책을 만지고, 서울에서는 바지런히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만납니다. 서울로 가면 내가 할 일은 책방마실뿐이라고 느낍니다. 서울에서 갈 만한 데가 없고, 서울에서 쉴 만한 데가 없다고 느낍니다. 숲도 들도 냇물도 없는 서울에서 어디를 가야 쉴 만하겠습니까. 온통 아스팔트에 시멘트뿐인데다가, 끔찍하도록 넘치는 자동차물결인데요.


  책방마실을 하면 큰길하고 벗어납니다. 동네마다 조용히 웅크린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하면 골목 안쪽으로 접어듭니다. 조용한 데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호젓한 곳에 헌책방이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와 어수선한 불빛하고 동떨어진 조그마한 헌책방 책시렁에서 마음을 밝히는 빛줄기를 책에서 만납니다.


  도시내기로 살아가는 동안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으로 살면서 나 스스로 사람됨을 헤아리자면 책방에 있어야 한다고. 책방에 있지 않고서는 나 스스로 내가 사람인지 느낄 자리가 없다고.


  밀리고 밟히며 치이는 전철이나 버스에서 나다움을 찾지 못합니다. 골목에서조차 자동차 빵빵거리는 소리에 귀가 멍한 서울에서는 나다움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술집과 옷집 끝없이 펼쳐진 큰도시에서 나다움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하늘 귀퉁이나마 올려다볼 구석이 없고, 별빛이나 달빛을 누릴 말미가 없는 데에서 나다움을 지킬 힘이 없습니다. 멧골자락에서 이태를 일하고 세 해째 되던 날, 모든 서울살림 탁탁 털고 멧골마을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 한국은 ‘반짝반짝하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서울’만이 아니었다. 한국은 ‘서울보다 훨씬 더 큰 나라’였다.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모두가 한국에 서울보다 더 좋은 곳이 없는 것처럼 말했다. ‘다른 한국’이 존재한다는 진실은 내가 완전히 혼자 알아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느 예쁜 가을날에, 나는 시아버님, 시어머님, 남편과 함께 시아버님의 고향에 갔었다. 시아버님의 고향은 강릉 바로 옆의 어느 작은 마을이었다 … 새의 지저귐, 귀뚜라미의 소리, 소나무의 향은 나에게 오랜만에 따뜻하게 포용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은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때 나는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산의 품에 안겨 살고 싶었다 … 시끄러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유난히 더 조용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침착하고, 더 건강하고, 더 평화로운 방향으로 ..  (102∼103, 109쪽)

 

 


  시골에서 살아가며 자전거를 새삼스레 바라봅니다. 시골은 도시와 달리 비탈이 퍽 가파릅니다. 시골에도 자동차는 꽤 많지만, 시골길은 도시길처럼 반듯하거나 판판하게 펴지 않습니다. 그냥 길을 내고 그저 아스팔트를 뿌립니다. 자동차라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는 길이나, 자전거로는 허벅지가 터질 듯한 오르막이 되기 일쑤입니다. 거꾸로, 자전거 멈추개가 안 잡힐 만큼 쌩 소리 내며 달리는 내리막이 되지요.


  시골에서 지내며 시골버스를 타면, 젊은이를 못 만납니다. 시골마을에서 읍내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더러 볼 뿐입니다. 아기나 아이를 데리고 시골버스 타는 사람은 더더구나 못 만납니다. 아직 시골에서 살아가며 아기를 낳는 젊은이 있다면 어김없이 자가용을 몰아요. 아기를 낳았대서 더 큰 자가용으로 바꾸어요.

  나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을 장만할 마음도 없으니, 멧골마을에서 군내버스 타는 데까지 한참 걷습니다. 저자마실이라도 하는 날이면 군내버스에서 내려 멧골집까지 돌아오기까지 땀 솔찬히 쏟으며 걷습니다. 등에 큰 가방 메고 어깨에 천바구니 낀 채 아기를 품에 안습니다. 엉금엉금 기듯 천천히 걷습니다. 아기가 깨랴 천천히 걸으면서 숲바람을 마십니다. 흙바람을 들이켜고 하늘바람을 먹습니다. 내가 흘리는 땀은 흙땅에 떨어져 스며듭니다.


.. 나는 밭에서 예초기로 풀을 자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는 우연히 풀밭에서 꿩을 발견했다. 풀잎 사이로 웅크리고 있던 꿩은 흙더미처럼 보였다. 나는 예초기로 꿩을 거의 죽일 뻔했다 … 나는 꿩이 왜 도망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자세히 살펴본 후, 나는 꿩이 알 위에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꿩은 알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 바로 그 순간, 우리 집이 내 눈에 들어왔다. 꿩집처럼 우리 집도 겸손하게 산속에 숨어 있었다. 우리 집도 꿩집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집이 더럽고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부수고 빨리 새 집을 지으려고만 하는 나에게 집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냐. 나를 보지 말고 빨리 가.” …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나는 옛날 사람들이 이런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옛날에 이렇게 어둡고 좁은 방에서 살면 사람들이 어떤 걱정을 했고, 또 어떤 기쁨을 가졌을까 ..  (123∼125, 126쪽)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멧골마을에서 떠나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훨씬 멀리 떨어진 두멧시골로 삶터를 옮깁니다. 첫째 아이와 살던 멧골마을은 이럭저럭 서울이나 큰도시하고 가까웠어요. 이러다 보니 둘레에 공장도 많고 자동차도 많았으며, 나날이 매캐한 바람 되어 하늘이 뿌옇게 바뀌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나도 옆지기도 자동차나 오토바이 소리 아닌 또랑물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기계소리 아닌 빗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개구리와 풀벌레가 어우러지는 숲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바람 따라 나부끼는 나뭇잎과 풀잎이 자아내는 푸른내음 가득한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두 아이와 살아가며, 봄에는 봄을 느껴 좋습니다. 여름에는 여름을 누려 좋습니다. 가을에는 가을을 노래하며 좋습니다. 겨울에는 겨울이 오들오들 추워 좋습니다.


  시골에서 지내니 봄이 그야말로 봄입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니 여름이 참말 여름입니다. 시골에서 아이들과 복닥이는 하루하루란, 고스란히 가을이고 겨울입니다.


  날마다 다른 삶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새로운 빛입니다. 구름이 흘러 그늘을 만들어 베풀 적에는 구름그늘 이토록 시원하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뭇잎 우거져 나무그늘 드리울 때에는 나무그늘 이토록 푸르구나 하고 깨우칩니다.


  풀포기 뜯어서 맛을 봅니다. 풀포기 종아리를 스치며 내 몸을 간질입니다. 딱정벌레가 머리통에 내려앉습니다. 나비 애벌레가 팔뚝에 내려앉습니다. 파리와 모기가 달라붙기도 하지만, 나비와 잠자리가 살그마니 어깨에 내려앉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보는 꽃은 모두 들꽃이지만, 시골사람 어느 누구도 들꽃을 ‘들꽃’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사람은 들꽃을 그대로 ‘꽃’이라 말합니다. 시골사람은 들풀을 ‘들풀’이라 말하지 않아요. 그대로 ‘풀’이라 말합니다.


  그렇지요. 모두 그대로 ‘나무’요 ‘꽃’이며 ‘풀’입니다. 나무이자 꽃이고 풀일 뿐입니다. 수목원이 아니고 산림자원 아닙니다. 화초도 화분도 야생화도 아닙니다. 야생초도 잡초도 산야초도 아닙니다. 모두 나무이고 꽃이며 풀이에요.


  사람은 그대로 사람이지요. 아이는 그대로 아이예요.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이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일 뿐입니다. 예부터 시골사람은 절름발이를 절름발이라고 했습니다. 놀리거나 비아냥거리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려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하지 않습니다. 다리를 저니까, ‘저는 모습’ 그대로 ‘다리 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절름발이라 했을 뿐입니다. 앉은뱅이라는 이름도, 장님이라는 이름도, 벙어리라는 이름도, 모두 ‘차별·편견·소외’로 붙인 이름 아닙니다. 수수하게 바라보며 투박하게 붙인 이름입니다. 서로서로 살가운 이웃으로서 부른 이름입니다. 누군가 절름발이이듯, 나무는 나무입니다. 누군가 앉은뱅이이듯, 꽃은 꽃입니다. 누군가 장님이듯, 풀은 풀입니다. 시골에서는 절름발이와 나무가 똑같습니다. 아이와 어른이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입니다. 벌레와 사람이 서로 아름다운 숨결입니다. 볏포기도 풀포기도 모두 고마운 이웃입니다.


.. 독일에서는 오래된 집일수록 인기가 많다. 독일사람들은 보통 오래된 집들이 현대적인 콘크리트 집보다 훨씬 더 예쁘고 좋다고 생각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된 집들을 함부로 부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우리 집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먼지와 거미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나무 기둥과 마루가 눈에 띄었다. 집짓기에 사용된 목재는 다 100년 전 어느 겸손한 목수가 손으로 직접 다듬은 것이다. 나무 기둥과 문들이 다 자연스럽게 휘어져 있다. 기둥을 만지면 이 집을 만든 사람의 꼼꼼한 손동작을 내가 다시 느낄 수 있다 … 집을 수리하면서 수많은 보물을 발견했다 … 이 집이 이렇게 예쁘게 변한 것은 이 집 자체가 원래 예뻤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 우리가 한 일은 이미 존재하는 보물을 발굴해 낸 것뿐이었다 … 나는 요즘도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사람들은 왜 옛날 집들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닦지 않은 보물도 보물 아닌가? 옛날 집들을 조금만 돌봐 주면 귀중한 보석들이 막 쏟아져 나올 것이 확실하다 ..  (131, 133, 137쪽)

 


  유디트 크빈테른 님이 쓴 글을 모은 《나는 영동사람이다》(생각하는고양이,2012)를 읽습니다.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분인데, 강원도 삼척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갑니다. 이 책 《나는 영동사람이다》는 강원도 삼척에 있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조그마한 손길로 엮어서 태어납니다.


  독일에서 나고 자라며 학교를 다니다가 ‘독일로 배움길 떠난 한국사람’을 만나 그만 사랑에 빠져 둘이 함께 살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여겨 한국으로 왔다고 하는 유디트 크빈테른 님입니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살았다고 해요. 서울에서 일곱 해 살았다고 합니다. 이동안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몹시 슬펐고, 매우 힘들었으며, 아주 고단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지, ‘서울’이라고 하는 너무 크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고달프며 너무 어수선한데다가 너무 어지러운 곳에서 ‘시달리거나 들볶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해요.


  더할 나위 없이 괴로운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처음으로 ‘서울 아닌 한국’을 보았다고 해요. 당신이 이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아가자면 ‘서울 아닌 한국’에서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착한 살림 꾸려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독일사람 유디트 크빈테른 님은 ‘서울사람’ 아닌 ‘한국사람’이 됩니다. 아니 ‘한국사람’이라기보다 ‘삼척사람(嶺東)’이 되어요.


.. 한국어는 정말 고문 도구다! 설상가상으로 한자도 있다. 이것도 참 미스터리다. 세계에서 제일 효과적인 자모를 만든 국민이 세계에서 제일 복잡한 문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단 말인가 … 12년 동안 학생이 나를 비판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들이 나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다른 교수들도 비판받은 경험이 거의 없을 것 같다 … 만약에 한국 학생이 교수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면, 교수는 그 학생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대신에 그냥 그 학생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화를 낼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 사실을 안다. 그러니 교수와 토론하는 것을 아예 시도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 한국 대학교에서 교수의 말을 다 외우고 반대 한 번도 하지 않고 교수에게 선물도 주는 학생이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제일 많은 것 같다 … 만약 내가 선생님으로서 틀린 것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학생과 나의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솔직하게 토론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  (212, 235∼236쪽)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들은 가끔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마실을 다녀옵니다. 따로 닷새저자에 맞추지는 않습니다. 닷새저자에는 온 마을 할매 할배 저자마실 다니시느라 군내버스에 자리가 없어요. 앉을 자리는커녕 아이들 데리고 설 자리마저 없습니다. 닷새저자 아닌 날에 맞추어 읍내로 다닙니다.


  시골 군내버스를 타는 분은 하나같이 할매와 할배입니다. 그리고, 한국 시골로 시집을 온 동남아시아 아가씨입니다. 처음 고흥에 깃들어 만난 예쁘장하고 어린 동남아시아 아가씨가 한동안 안 보이더니, 어느 날 등에 아기를 업고 군내버스를 탑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으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은 거의 시골로 와서 살아갑니다. 도시에서도 곧잘 살아갈 테지만, 시골로 시집을 오는 동남아시아 아가씨들 아주 많아요. 이들한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서울’이 아닌 ‘시골’일 테고, 한국을 떠올리거나 살필 적에도 ‘서울 나라’ 아닌 ‘시골 나라’가 되겠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느낄까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야 하는 수많은 아이들은 저마다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랄까 궁금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서로 어떤 사람이 되어 사랑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학교에서는, 집에서는, 마을에서는, 일터에서는, 어떤 사람다움을 보여주고 어떤 사람다움을 가르치는가요.


  어느 모습을 놓고 ‘한국’이라 할 만할까요. 서울이 한국일까요. 부산이 한국일까요. 서울과 함께 시골을 아울러야 한국일까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데는 어디인가요. 스스로 사람다운 착한 넋 돌보면서 참다운 삶길로 걸어갈 만한 데는 어디인가요. 4346.7.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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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빚어 쓰는 시 (방미영, 잎들도 이별을 한다) | 예스24에 없는 책 2012-12-18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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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빚어 쓰는 시
[시를 노래하는 시 36] 방미영, 《잎들도 이별을 한다》

 


- 책이름 : 잎들도 이별을 한다
- 글 : 방미영
- 펴낸곳 : 을파소 (2000.9.1.)
- 책값 : 5000원

 


  사진기가 처음 태어난 뒤, 적잖은 일본사람은 한국으로 찾아와서 사진을 찍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지 나라를 괴롭히려는 뜻도 있었으나, 그저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웃나라’ 삶자락을 ‘이웃’으로 받아들여 사진으로 담곤 했습니다. 이 흐름은 일본제국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고이 이어집니다. 바보스러운 짓을 하는 일본사람은 어김없이 있지만, 착하며 예쁜 동무로 지내면서 ‘착하며 예쁜 이웃나라’인 한국을 생각하는 일본사람 또한 어김없이 있어요.


  이웃을 착하며 예쁜 벗님으로 여기는 이들은 글을 쓸 적에는 ‘착하며 예쁜 벗님 이야기’를 쓰고, 사진을 찍을 적에는 ‘착하며 예쁜 벗님 이야기’를 담습니다. 삶결 그대로 쓰는 글이고 삶자락 그대로 찍는 사진이니까요.


  글쓰기는 ‘나하고 동떨어진 남’을 구경하면서는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사진찍기 또한 ‘나하고 등진 남’을 구경하면서 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글쓰기도 사진찍기도 ‘나하고 어깨동무하는 이웃’을 생각합니다. 나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벗님을 생각하며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느껴요.


  이웃을 느끼고 동무를 알 때에는, 나 스스로를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동무를 아끼는 마음은 나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에서 자라납니다. 스스로 내 삶을 일구는 임자가 될 때에는 ‘내 모습’을 글로 기쁘게 나타내고 사진으로 예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사진기 없는 사람이 매우 드물다 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슬기롭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생각이 없이 사진기부터 장만하고, 생각을 다스리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생각이 아름답지 못하기에, 겉보기로는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은 만들지만, 정작 속살이 아름다운 사진을 빚지는 못해요. 겉이 그럴듯하대서 삶이 아름답지 않거든요. 속살이 아름다운 삶일 때에 비로소 누가 보아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진을 이루거든요.


.. 밤사이 낙엽들이 / 뒷마당으로 몰려와 / 서로의 체온을 부비며 / 추위를 견디었나 봅니다 / 맨 먼저 발 밑에 와 닿는 / 잎 하나 / 바스스 부서지더니 / 바람에 실려 떠났습니다 ..  (잎들도 이별을 한다)


  글은 쓰기도 하고 짓기도 합니다. 글을 쓰면 ‘글쓰기’이고, 글을 지으면 ‘글짓기’입니다. 꾸밈없이 내 삶을 돌아보면서 찬찬히 적바림할 수 있을 때에는 글쓰기라 할 만합니다. 내가 이루고픈 꿈이나 사랑을 가만히 되새기면서 이야기를 빚을 때에는 글짓기라 할 만합니다.


  곧, 삶을 살필 수 있을 때에 글을 살필 수 있습니다. 삶을 어떻게 누리느냐 하고 돌아볼 수 있을 때에 글을 어떻게 누리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가 되든 글짓기가 되든, ‘삶쓰기’요 ‘삶짓기’입니다. 삶을 수수하게 누리는 나날일 때에는 ‘삶쓰기’를 하는 ‘글쓰기’입니다. 삶을 내 깜냥껏 새롭게 일구는 ‘삶짓기’로 나아가면서 ‘글짓기’를 이룹니다. 쓰기를 하든 짓기를 하든, 스스로 삶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서, 내 마음이 드러나는 글이 달라져요.


  그런데, 오늘날 이곳저곳에서 한다는 ‘글쓰기 교육’은 거의 모두 대학입시만 바라보는 논술과외에 치우칩니다. 삶을 말하지 못하고, 삶을 다루지 못하며, 삶을 즐기지 못해요. 슬픈 모습이요, 메말라 비틀어지기까지 하는 모습이라고 느껴요. 더구나, 어른들 읽으라고 나오는 글쓰기 길잡이책을 보면, ‘글 쓰는 즐거움’을 하나도 안 다뤄요. 글재주랑 글솜씨 이야기만 가득해요. 껍데기를 북돋우라 하는 ‘글쓰기 길잡이책’만 넘쳐요.


.. 이별의 아쉬움 때문만은 아닌 듯 / 한동안 멍하니 있던 내게 / 미루나무 심어놨다고 / 꼭 부러와야 한다고 배시시 웃는 그녀 / 못이기는 척 단숨에 달려와 / 나는 지금 그 미루나무 아래에 서 있다 / 바람아 / 오늘은 날 찾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  (숲속의 하얀 집)


  옷깃을 스치는 사람입니다. 옷소매를 스치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옷자락을 스치기도 하는 사람이에요. 머리카락 나풀거리며 옷깃이 스칩니다. 저잣거리 북적거리는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옷깃이며 옷소매며 옷자락을 스칩니다. 그저 지나치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남도 나도 없는 한몸이거나 이웃입니다.


  참말 서로 어떤 이음고리가 있어 옷깃을 스칠까요. 참말 서로 어떤 매듭이 있어 옷소매를 스칠까요. 참말 서로 어떤 실타래가 있어 옷자락을 스칠까요.


  손으로 책을 만지작거릴 적하고, 손전화 같은 기계로 글자락 들여다볼 적은 사뭇 다릅니다. 책방마실을 하며 책을 고를 때랑, 인터넷을 뒤져 책을 살필 때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도, 두 눈 마주보는 자리랑 셈틀 화면 들여다보는 자리는 사뭇 달라요. 셈틀 화면으로 오래도록 수다를 떤다 하더라도, 저잣거리 북새통에서 옷깃을 스치는 사람보다도 ‘멀리 떨어진’ 셈일 수 있어요.


.. 서울 하늘 밑에서의 그리움은 / 궁상맞다 / 빌딩과 빌딩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가 / 콘크리트 바닥에 처박히고 / 바람이 부는 날에는 / 사람들 발에 짓밟혀 / 지하철 환기통의 담배꽁초처럼 / 미니스커트 속만 바라보며 / 후끈거린다 ..  (그리움 1)


  내 마음을 돌아봅니다. 내 마음은 얼마나 따스하거나 시원한가 돌아봅니다.


  늦도록 뛰놀고픈 두 아이하고 복닥이다가, 두 아이를 한팔씩 안아서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두 아이한테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말이 늦는 두살배기 사내아이도 이제는 ‘하늘’이라는 낱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별’이라고 하면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며 늦은 밤이나 깊은 밤에 뭇별잔치 누리는 일이 더없이 기쁩니다. 그냥 마당에 내려서기만 해도 별잔치예요. 수많은 별들이 펼치는 새별잔치이기도 하고, 미리내잔치이기도 합니다.


  겨울바람은 차갑다 할 만하지만, 방에서 땀 나도록 뛰놀던 아이들로서는 시원하다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아이들과 한참 뛰놀고 나서 마당으로 내려서니 제법 시원합니다.


  그래, 이 겨울에 찬바람을 시원하게 느끼면서, 나부터 내 마음자락 시원스레 보듬을 수 있으면, 내 삶 한 자락은 참 시원스럽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따스한 마음 되도록 다스리고, 어느 모로 보면 시원한 마음 되도록 다독인달까요.


.. 여름이 되면 / 나는 / 미루나무 끝에 걸쳐 있는 / 하늘이고 싶다 ..  (여름 미루나무)


  한겨레 살아가는 이 나라 들판을 둘러보면, 들짐승이 거의 몽땅 사라집니다. 너무 마땅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이 나라 사람들은 고속도로에 고속철도에 공장에 골프장에 발전소에 송전탑에 관광단지에 짐승우리에 …… 온갖 시설을 시골자락이랑 숲자락에 때려지어요. 시골과 숲을 ‘때려부순’ 다음, 갖가지 도시 문명을 ‘때려짓습’니다.


  도시사람은 시골이랑 숲이 죽는 줄 못 느끼거나 모릅니다. 도시는 워낙 시골이랑 숲을 밀어 없앤 다음 지었거든요. 시골이랑 숲은 일찌감치 죽었어요. 어른들은 지난날 모습을 잊고, 아이들은 지난날 모습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즈음 시골사람도 시골이랑 숲이 죽는 줄 못 느끼거나 몰라요. 아직 시골에 남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조차 하루빨리 시골 떠나 도시로 가고프다 여기거든요.


  그런데, 우리 식구는 도시에서 시골로 찾아들었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우리 식구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로 찾아든다지만, 아직도 시골 떠나 도시로 가는 사람보다 훨씬 적어요. 시골 아이들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몽땅 시골 떠날 생각만 그득해요. 왜 그런고 하면, 시골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은 모두 ‘도시 얼거리’에 맞추어 짤 뿐더러, ‘도시에서 돈을 벌며 할 일’만 가르쳐요. 시골에서 즐겁게 뿌리내리며 흙을 만지거나 바닷물 보듬는 일을 보여주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요.


.. 당신을 보며 알았습니다 / 내가 당신을 바라보지 않더라도 / 당신은 언제나 한자리에서 / 사랑합니다 ..  (나무 사랑)


  생각과 생각을 그러모아 봅니다. 이제 한국땅에 들짐승이라 할 들짐승이 거의 사라진 판인데, 다른 한편에서 생각한다면, 이 한국땅에는 들짐승과 함께 ‘착한 사람’도 사라집니다. 멧짐승과 함께 ‘맑은 사람’도 사라집니다. 물짐승과 함께 ‘참된 사람’이 사라져요. 그리고, 시골짐승과 나란히 ‘고운 사람’마저 사라져요.


  제도권 울타리가 무시무시하게 높습니다. 졸업장과 자격증이 신분증 구실을 합니다. 은행계좌가 계급 노릇을 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고야 맙니다. 사람한테서 사람을 못 느끼고야 맙니다. 사람빛을 살피거나 사람내음을 맡거나 사람결을 어루만질 만한 사람이 차츰 사라집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지 못하기에, 사람과 사람이 어깨동무하며 나누던 이야기가 살아남지 못합니다. 이야기는 사라지고, 지식과 정보가 흘러넘칩니다. 이야기는 죽고, 지식과 정보가 춤춥니다. 이야기는 힘을 잃으면서, 지식과 정보가 우뚝 섭니다. 책 이야기 말하는 사람이 시나브로 줄면서, 책 지식과 책 정보 말하는 사람만 곳곳에 부쩍 늘어납니다.


.. 전라도 순천 땅을 / 야무지게 박차고 시작한 / 고단한 타향살이에도 /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 ―남에게 줄 때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 ―더 좋고 반듯한 것을 줘야 한다 / 희망을 꿈처럼 먹여주신 / 어머니 // 서른 아홉 어머니가 / 내 거울 앞에 앉아 / ―괜찮다 잘 살아왔다 / ―부족함은 더 메우면 된다 / 얼굴을 부비신다 // 사랑이 목마를 때 / 울고 싶을 때 / 웃고 싶을 때 ..  (서른 아홉 여인의 비가―아, 어머니)


  방미영 님 시집 《잎들도 이별을 한다》(을파소,2000)를 읽습니다. 싯말을 하나하나 아로새기고 보니, 싯말이란 생각을 빚어서 읊는구나 싶습니다. 노래말도 이와 같겠지요. 그림말도 사진말도 만화말도 모두 이와 같겠지요.


  사랑말도 믿음말도 꿈말도 모두 생각을 빚어서 읊으리라 느낍니다. 가르치는 말도 배우는 말도 한결같이 생각을 빚어서 나누겠구나 싶어요.


  생각을 빚지 않고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 생각을 빚을 때에 비로소 내 말문이 열리고 마음문이 열리며 삶문 또한 열리겠다고 봅니다.


.. 한국프레스센터 19층 / ‘한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로 / 심포지엄이 열리고 / 환난의 책임자와 난국의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데 / 왜 내 시선은 자꾸만 / 인왕산에 머무는 것일까 ..  (인왕산)


  언제부터였나 ‘10대 일간지’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아마 이제는 이런 말을 안 쓰지 싶은데, ‘10대’가 되든 ‘20대’가 되든, ‘서울에서 나오는’ 신문만 들먹이지, 시골에서 나오는 신문은 들먹이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본다는 신문만 다루지, 더 적은 사람이 보는 신문은 다루지 않아요.


  대통령을 뽑건 국회의원을 뽑건 누구를 뽑건, 이 나라에는 ‘민주주의’가 싹조차 아직 안 텄다 할 만하기 때문에, 모든 후보를 골고루 살피면서 가장 알맞다 싶은 사람한테 한 표를 주기 어렵습니다. ‘군소 후보’란 있을 수 없어요. 모두 똑같은 대통령 후보요 국회의원 후보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지 ‘더 뛰어난 사람’과 ‘안 뛰어난 사람’이 따로 없어요.


  운동경기 하나를 치른다 할 적에, 손님이 더 많이 모이는 곳이 더 ‘좋은’ 데라 할 수 없습니다. 구경꾼 몇 없는 채 운동경기를 치른대서 ‘재미없지’ 않습니다. 프로스포츠이건 아마스포츠이건, 땀을 흘리며 살을 맞대는 삶을 누리자는 운동경기이지,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운동경기는 없어요.


  그러니까, 시나 소설이나 수필을 써서 어느 대회에서 1등상 2등상 따위로 금을 그어 상패와 상금을 내려주는 일은 덧없습니다. 문학에는 등수도 순위도 계급도 차례도 신분도 없습니다. 문학뿐 아니라 경제와 정치와 문화와 복지와 우리 사회 모든 곳에는 ‘숫자’가 없어요.


  ‘몇 학년 몇 반 몇 번 아무개’가 아닙니다. 그저 ‘아무개’입니다. 사람인 아무개입니다. 시는 시요, 시집은 시집입니다. 이름난 작가 시집과 이름 안 난 작가 시집이 따로 없습니다. 마음으로 읽는 시일 뿐입니다. 마음을 담아서 쓰고, 마음을 펼쳐서 읽는 시일 뿐입니다.


.. 섬은 바다 한가운데 떠있으면 / 섬이 되고 / 바다는 / 섬과 섬 사이를 흐르면 / 그만인데 ..  (우리가 바다로 떠나지 못하는 이유)


  새근새근 숨소리 내며 잠자는 식구들 곁에서 글 한 줄 씁니다. 왁자지껄 떠드는 식구들 곁에서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며 비질을 합니다. 겨울바람 고요히 잠든 시골 밤나절 고즈넉히 즐깁니다. 석 달 지나 새봄 찾아들면 이 깊은 밤에 밝은 노래 부르는 멧새 노랫소리를 듣겠지요. 넉 달 지나 개구리 깨어날 즈음부터는 이 깊은 밤에 맑은 개구리 노랫소리를 들을 테고, 다섯 달 지나 제비가 집 고쳐 새끼를 깔 적에는 제비 노랫소리를 들을 테며, 여섯 달 지나 풀벌레 흐드러지게 알을 까서 새 벌레 태어날 때에는 풀벌레 노랫소기를 듣겠지요.


  고운 길을 헤아리면서 고운 삶을 짓습니다. 고운 꿈을 추스르면서 고운 말을 짓습니다. 내 넋을 곱게 보살피면서 내 손길에 고운 사랑 묻어나도록 북돋웁니다. 4345.1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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