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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고흥군’ 이름 쓴 지 100년이라는데 | 고흥 길타래 2014-11-2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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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이름 쓴 지 100년이라는데



  2014년은 전남 고흥군에서 ‘고흥군’이라는 이름을 쓴 지 100돌이라고 한다. 고흥군청에서는 읍내에 ‘전기로 밝히는 등불’을 곳곳에 잔뜩 매달았다. 나는 고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아니지만, 고흥으로 삶터를 옮겨 살기에, 이게 뭐 하는 일인가 하고 곰곰이 들여다본다. 2014년으로 100돌이라 한다면 1914년부터 이름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1914년은 어떤 해인가? 그무렵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1914년에 앞서까지 이곳은 ‘흥양군’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예부터 ‘전남 고흥’이라는 데는, 고흥이 아니라 ‘전남 흥양’이었다는 소리이다. 이 이름이 일제강점기에 억지스레 ‘전남 고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흥양’이라는 이름은 고흥군 곳곳에 남는다. 그러나, 고흥에 있던 ‘흥양초등학교’는 1998년에 문을 닫았다. 고흥이라는 곳을 오래도록 가장 널리 드러내던 이름을 붙인 학교가 문을 닫은 지 꽤 된다. 그러니까, 고흥군에서는 이곳 발자취로 깊이 남고 널리 퍼졌던 이름을 꽤 예전부터 모른 척하거나 없애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국에 있는 지자체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이름이 억지로 바뀐 일’을 기리면서 큰잔치를 벌이는 곳이 있을까? 게다가 지자체 역사를 고작 100돌 갖고 자랑하거나 내세우려고 하는 움직임이 멋지거나 뜻있거나 남다르다고 할 만할까? ‘우리 고장 제 이름 찾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자가 바꾼 이름 기리기’를 하는 전라남도 조그마한 지자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4347.11.26.나무.ㅎㄲㅅㄱ



'고흥군 이름 100돌'과 얽힌 글을 찾아서 읽고 싶다면...

http://www.g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241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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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4] 유채물결 나들이 | 고흥 길타래 2014-04-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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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물결 나들이

고흥 길타래 14―꽃내음 들길



  날마다 유채물결 나들이를 한다. 대문을 열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도 유채물결 나들이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삼십 분쯤 들길을 걸어도 유채물결 나들이가 되고,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면소재지를 오가는 길에도 유채물결 나들이가 된다.


  동백마을부터 봉서마을 사이 들판이 유채꽃으로 흐드러진다. 동백마을부터 다시 면소재지 동오치마을까지 들판이 유채꽃으로 물결친다. 동호덕마을 둘레에는 마늘을 심거나 논삶이를 하는 데가 있지만, 신기마을과 원산마을은 들판을 모두 유채꽃으로 물들인다. 삼월 끝무렵과 사월 첫무렵만 하더라도 유채물결이 될까 갸웃갸웃했지만, 사월 한복판을 넘어서면서 환하게 고운 유채잔치가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유채꽃 들길을 천천히 걷고 싶어 한다. 이 들길은 자전거로 달리기보다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천천히 걷고 싶다고 말한다. 어른들도 이 들길은 자가용으로 달리기보다 천천히 거닐면 즐거우리라 생각한다.


  꽃내음 물씬 흐르는 들길을 거닐면서 꽃바람을 마신다. 꽃빛을 품으면서 마음을 살찌운다. 이 킬로미터 더하기 이 킬로미터 즈음 되는 짧은 길이지만, 이 길에 서면 꽃을 바라보는 눈길이 얼마나 포근하면서 넉넉해지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삶터를 어떻게 가꿀 때에 아름다울까 하고 느낄 수 있다. 관광단지가 있어야 하는 시골이 아니라, 푸른 들과 숲이 있어야 하는 시골인 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수출·수입을 먹고 살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밥과 물과 바람을 먹으면서 산다. 싱그러운 밥을 먹고, 시원한 물을 마시며, 맑은 바람을 마신다. 아파트나 자가용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목숨이 아니다. 햇볕과 비와 흙이 곱게 어우러진 곳에서 바람과 풀을 먹는 목숨이다.


  시골을 살리는 길은 투자 유치나 시설 유치가 아니다. 시골을 살리는 길은 시골이 시골스럽게 시골빛이 나도록 하는 데에 있다. 4347.4.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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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3] 고흥사람 내쫓는 막개발 | 고흥 길타래 2014-03-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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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사람 내쫓는 막공사·막개발
고흥 길타래 13―광주학생임해수련원

 


  나는 고흥사람입니다. 나는 고흥군수가 아닙니다. 나는 광주사람이 아니고, 서울사람도 아닙니다. 나는 고흥 도화면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고흥이 즐거워 고흥에서 살아갑니다. 고흥군 도화면 시골마을에서 지내며, 곧잘 자전거에 아이 둘을 태워 발포 바닷가로 마실을 갑니다. 때로는 도화면 택시를 불러 네 식구가 나란히 발포 바닷가로 바닷바람을 쐬면서 바닷물을 누리려고 갑니다.


  발포 바닷가를 처음 찾아간 때는 2011년입니다. 이때에 발포 바닷가는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듬해 봄까지도 발포 바닷가에는 ‘국립공원 알림 팻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12년 여름 어느 날 ‘국립공원 알림 팻말’을 누군가 페인트로 지웠습니다. 2013년으로 접어드니 ‘국립공원 알림 팻말’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2014년을 앞둔 2013년 12월 26일에 발포 바닷가 한쪽에서 ‘광주학생임해수련원’ 공사를 벌입니다.


  2014년 3월 15일에 군내버스를 타고 발포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아직 봄바다는 따스하지 않아 아이들이 물놀이까지 하지는 못하고 모래밭놀이만 합니다. 발포리 상촌마을부터 발포 바닷가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이들은 멧자락 한쪽이 시뻘겋게 흙이 드러난 채 파헤쳐진 모습을 보며 말합니다. “뭐야, 누가 여기를 이렇게 망가뜨렸어?”


  우리 집 일곱 살 큰아이는 나무를 모조리 베고 커다란 장비가 멧자락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나는 이 공사 모습을 바라보며 숨이 멎습니다. 발포 바닷가는 오래도록 국립공원이었습니다. 국립공원이 왜 해제되고 누가 해제시켰는지 모르겠으나, 국립공원에서 해제되었다고 해서 발포 바닷가를 아무렇게나 망가뜨리거나 숲을 밀거나 나무를 베어 죽여도 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발포마을 주민들 ‘재산권’도 문제입니다만, 재산권에 앞서, 이곳 멧자락을 ‘부지 매입’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사들여서 ‘수련원 문화시설 착공’이라는 이름을 들이대어도 될 만한지 알쏭달쏭합니다.


  발포 바닷물이 아직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나는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급니다. 그러고는 발포 바닷가가 어떤 모습으로 망가지고 죽는가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고흥군수님한테 묻고 싶으며, 고흥사람한테 묻고 싶습니다. 광주시장님한테 묻고 싶으며, 광주사람한테 묻고 싶습니다. 국립공원을 해제시켜서 이렇게 숲을 망가뜨리면서 짓는 ‘청소년임해수련원’이 ‘광주 전라 청소년과 주민’한테 얼마나 즐겁거나 아름다운 시설이 될 수 있을까요? 광주시에서 220억 원을 들여 어떤 시설 하나 지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만, 이 아름다운 바닷가 숲을 가꾸거나 지키려면 200조 원이 들어도 모자랍니다.


  국립공원 바닷가가 아름다운 까닭은 커다란 시설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국립공원 바닷가는 맑은 바람과 바닷물이 있는 한편, 바닷가를 둘러싼 숲이 나무로 우거지면서 농약과 공장과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중장비가 시끄럽게 굴러다니는 발포 바닷가는 이제 ‘광주 것’이 되겠지요. 이제 이곳은 ‘고흥사람 쉼터’가 될 수 없겠지요. 이런 시설을 짓는 일은 ‘고흥 발전 투자’가 될 수 없으며, 고흥 발전조차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고흥 주민이 고흥을 떠나도록 부추기는 일이 됩니다. 고흥군 인구가 2014년에 7만 밑으로 떨어질까 걱정한다면, 이런 막공사를 이제라도 멈추기를 바랍니다. 이런 막공사가 자꾸 벌어지면, 앞으로 고흥 인구는 7만은커녕 5만도 3만도 1만조차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만 합니다. 깨끗하고 조용한 바닷가를 망가뜨리는데, 어떤 고흥 토박이가 고흥에 앞으로도 살고 싶겠으며, 어떤 도시내기가 고흥이 좋다고 이곳으로 귀촌을 하겠습니까? 막공사가 벌어지면서, 발포 바닷가 후박나무들이 한 그루 두 그루 시들어 죽습니다. 시들어 죽는 아픈 후박나무 줄기를 쓰다듬다가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4347.3.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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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2] 늦가을 고흥 억새길 걷기 | 고흥 길타래 2013-11-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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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고흥 억새길 걷기 (13.10.26.)
고흥 길타래 12―행정마을·수덕마을·두곡마을

 


  걷는 사람이 길을 봅니다. 걷는 사람이 흙을 만지면서 들일을 합니다. 오늘날에는 기계를 타면 밭갈이나 논갈이뿐 아니라 모내기에다가 가을걷이까지 척척 해 주지요. 아주 빨리 말끔하게 해 줍니다. 몇 만 평이나 몇 십만 평에 이르는 땅이라면 손으로 갈아엎어 일구고는 거름을 뿌려서 하나하나 씨앗을 심어 거두기 무척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기계를 부려 너른 땅을 갈고 엎고 심고 거두고 할 때에, 시골에서도 돈을 쏠쏠히 만질 만하다 여기리라 봅니다.


  돈을 벌 만한 농사라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버는 만큼 흙을 만지지 않고 흙내음을 모르며 흙빛을 못 읽습니다. 돈을 버는 길보다는 삶을 누리는 길을 걸어가는 흙일이라면 돈은 조금 만지거나 안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즐거움과 보람과 사랑과 꿈을 흙내음과 흙빛으로 맞아들입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판으로 갑니다. 두 손을 움직여 흙과 풀을 만집니다. 두 다리로 걸어 들일을 하자면 신조차 번거롭습니다. 논밭에서는 아무도 구두나 운동신 안 뀁니다. 논밭에서는 누구나 고무신을 꿰는데, 고무신조차 성가시니 맨발이 됩니다.


  흙은 맨발로 찾아오는 흙지기를 반깁니다. 맨발은 흙을 곧바로 밟으며 느낄 적이 즐겁습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장갑 낀 손으로 떠서 마실 사람은 없어요. 맨손으로 냇물을 느끼고 맨낯으로 냇물을 맞으며 마셔요.


  들바람과 숲바람을 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들내음과 숲내음을 온몸으로 마십니다. 들에서 일하고 들에서 쉬며 들에서 밥을 얻고 들에서 바람과 해와 흙과 풀을 마주하는 사람은 언제나 튼튼합니다. ‘아프다’는 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시골 흙지기 가운데 아픈 사람이 있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돈을 많이 벌거나 더 벌어야 하는 일이 생겨, 그만 너무 힘겹게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삐끗거려 아픕니다. 날마다 즐겁게 먹고 즐거이 나누며 즐거운 웃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삶이라면 아플 일 없이 한 해 내내 아름답습니다.


  우리들 부르는 모든 노래는 들에서 태어났습니다. 들에서 일하며 누구나 노래를 불렀어요. 들에서 거두거나 얻은 곡식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손질하며 노래를 불렀어요. 모시풀에서 실을 얻으려고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고,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으며 노래를 불렀어요. 길쌈을 하고 바느질을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고 재우고 놀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모를 내건 풀을 뽑건 나락을 베건 언제나 노래를 부릅니다.

 

 

 

 

 

 


  기계가 시골에 들어서면서 노래가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경운기와 트랙터와 이앙기와 콤바인이 우렁찬 소리 내며 지나가는데, 사람 목소리는 잠겨서 안 들립니다. 기계가 들판을 누비는 동안 이웃 들에서도 노래를 못 부릅니다. 노래를 부를 만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무르익어 논마다 누런 나락 거의 다 베는 즈음, 고흥 억새길을 걷습니다. 동백마을에서 고흥읍으로 군내버스를 타고 나옵니다. 군내버스를 내린 곳부터 천천히 걷습니다. 서문마을 쪽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조금씩 누렇게 물드는 느티나무 곁에 빨간 우체통 보입니다. 느티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노란 빛 더하겠지요. 들판을 그득 채운 누런 물결은 사라져도 느티나무는 새삼스러운 노란 빛물결 베풀겠지요.


  대문 앞 조그마한 땅뙈기에 정갈하게 일구는 밭자락 만납니다. 어떤 손길로 이렇게 고운 살림 일굴까요. 어느 시골마을 시골집이나 이렇게 정갈한 손길로 예쁘게 밭자락 일구겠지요.


  서문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니 행정마을이 멀리 보입니다. 행정마을 한쪽에는 새로 아파트를 올리려는지 무얼 하려는지 높다랗게 쇠울타리 세웠습니다. 도시는 사람들 너무 몰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를 세운다지만, 시골에 왜 아파트를 세워야 할까 잘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라면 마당이 있고 텃밭이 있으며, 마당 한켠에 나무 심어 알뜰히 누리는 살림일 때에 더없이 아름다울 텐데요.


  봄에 이어 가을에 다시 피는 민들레는 어느새 꽃이 지고 씨앗을 새로 날립니다. 행정마을 어귀는 우람하게 선 느티나무가 모든 길손과 마을사람을 맞이합니다. 참말 마을 어귀는 이렇게 우람한 나무가 있어야 듬직합니다. 우람하게 자란 나무는 여름 내내 시원한 바람으로 흙지기들 땀방울 식힙니다.

 

 

 

 

 


  시골마다 기계가 척척 들어서면서 볃가리 쌓는 일이 자취를 감춥니다. 앞으로 스무 해쯤 지나면 볃가리도 낟가리도 아무도 못 엮거나 못 쌓지 않으랴 싶습니다. 앞으로 마흔 해쯤 지나면 짚신도 새끼도 아무도 못 삼고 못 꼬리라 느낍니다.


  군내버스가 지나갑니다. 천천히 걷는 옆으로 군내버스가 부웅 바람을 날리며 지나갑니다. 저 버스를 타면 1200원으로, 또 1400원으로, 또 1500원이나 1700원으로 얼마든지 이웃마을로 갈 수 있습니다. 저 버스를 타고 8분이면 고흥읍 서문마을에서 두원면 두곡마을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천천히 들길을 걷습니다. 논도랑이나 논둑을 따라 피어나서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시골길을 걷습니다.


  수덕마을 군내버스 타는 곳 앞에 섭니다. 수덕마을 앞 버스터에는 ‘수덕’이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비와 바람과 햇볕에 바래 글씨가 사라졌을까요. 처음부터 따로 글씨를 넣지 않았을까요. 이곳에 따로 글씨가 없더라도 군내버스 일꾼은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다 알아요. 이곳에서 버스를 내리는 마을사람도 이곳이 수덕마을인 줄 모두 압니다.


  길가에 피는 꽃들 바라봅니다. 이 꽃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을에 하얗고 파란 꽃송이를 벌릴까요.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 꽃들을 얼마나 알아보면서 ‘아이 곱구나’ 하고 말 한 마디 건넬까요.

 

 

 

 

 

 


  두원면 소재지로 가는 길하고 풍류 쪽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자리에 섭니다. 이 길에 자동차는 아주 뜸하지만, 이 뜸한 자동차 가운데 웬만한 자동차는 두원면 소재지 쪽으로 달립니다. 풍류 쪽으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 거의 드나들지 않습니다. 아주 조용합니다. 자동차 소리가 사라지니, 깊은 숲속부터 울려퍼지는 풀노래가 곱게 흐릅니다. 늦가을 한낮 햇살 곱게 받으면서 늦가을 풀벌레가 늦가을 풀노래 들려줍니다.


  풀노래는 버스에서도 못 듣습니다. 풀노래는 자가용이나 택시에서도 못 듣습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커서 풀노래를 온통 밀칩니다. 자전거를 달리면? 자전거를 달리더라도 천천히 달려야 풀노래를 들어요. 싱싱 달리는 자전거라면 자동차와 똑같이 풀노래하고 멀어집니다.


  노르스름하게 물든 큼지막한 잎사귀 길에서 구릅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참 들여다봅니다. 잎사귀야, 너는 어쩜 이렇게 고운 물을 듬뿍 들일 수 있었니. 어떤 뛰어난 화가 있어 너를 종이에 그릴 수 있을까. 어떤 빼어난 예술가 있어 너를 예술품으로 그릴 수 있을까. 화가와 예술가 있더라도 겨우 가을잎 한두 가지 그린다지만, 네가 있던 나무는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다 다른 잎빛을 가을마다 곱게 물들여 이렇게 내려놓는구나. 다 다른 잎사귀 가을잎빛을 어떤 화가와 예술가 있어 담아낼 수 있겠니.


  두곡마을과 지남마을로 갈리는 길목입니다. 두 마을 갈림길 한쪽에 조그마한 빗돌 섭니다. 빗돌에 새긴 글씨는 비바람에 많이 바랬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간다면 이 빗돌 못 알아보겠구나 싶습니다. 참말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 아니라면 이 빗돌을 알아보지 않겠지요. 아니, 지남마을에 갈 사람이라면 늘 아는 길이니 이 빗돌이 있건 없건 대수롭지 않겠지요.

 

 

 

 

 

 


  가을제비꽃을 만납니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고들빼기도 한 차례 나고 진 뒤, 새삼스럽게 다시 피는데, 제비꽃도 한 차례 진 지 꽤 되었는데 이렇게 가을맞이 새 꽃송이 틔웁니다.


  한쪽에서는 꽃송이 붉고, 다른 한쪽에서는 씨주머니 터집니다. 가을제비꽃 앞에서 오래도록 쪼그려앉아 꽃 구경을 하노라니, 군내버스 한 대 씽 하고 지나갑니다.


  이윽고 억새가 밭을 이루는 길이 나타납니다. 이 길 참 곱네 하고 느끼면서, 고흥사람은 고흥에서 고흥 들길 거닐면 고흥 억새밭 흐드러지게 누리겠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사람은 비행기나 배를 타고 제주섬으로 억새 구경 가겠지요. 제주섬은 관광객 발길이 끝없습니다. 이와 달리 고흥에는 관광객 발길이 거의 없습니다. 관광객이라 할 도시사람이 이 멋진 억새밭길 구경하지 못한다 싶으니 아쉽다 싶으면서도, 고흥으로 관광객 찾아들지 않아, 아주 한갓지면서 느긋하게 이 길을 거닐 수 있구나 싶습니다. 시골 들판 억새밭길은 온통 시골마을 흙지기가 누리는 가을빛입니다.


  고갯마루 하나 지나니 금빛이라는 말로도 가리키기 어려운 샛노란 들빛이 폭 안깁니다. 거의 모든 논은 나락을 베었지만 늦게 심어 늦게 베는 논은 샛노란 들빛이 눈부십니다. 가을이 깊어 가면서 노란 들빛 또한 깊이 물듭니다. 살며시 떨어지는 저녁햇빛과 얽혀 마음속까지 후련하게 씻어 주는 샛노랑 물결입니다.


  붉나무 곁을 지나 두곡마을 어귀에 닿습니다. 지팡이 짚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할매 뒤를 따라 걷다가 안골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두곡마을도 수돗물 놓는 공사를 한창 벌이는구나 싶습니다. 시멘트벽돌로 쌓은 낡은 담을 바라봅니다. 슬레트로 지붕을 이은 헛간을 바라봅니다. 시멘트담이 없던 때에는 따로 대문도 없었을 테니, 지붕을 받치는 기둥에 이름패가 붙습니다. 담 너머에서 이름패를 들여다봅니다. 더는 안 쓰는 빨래터와 우물자리를 바라봅니다. 어느 집 담벼락에 “뭉치자 일하자 잘 살아 보자”라는 글씨 페인트로 적혔습니다. 새마을운동을 한창 하던 때에 적은 글월이지 싶습니다.

 

 

 


  두곡마을 안골 깊숙한 데에서 지내는 이웃집에 닿습니다. 땀을 식히며 앞 멧자락 바라봅니다. 멧새들 노래하면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저 나무에서 저저기 있는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두곡마을 이웃집 뒤꼍 장독대에 가을풀 살짝 돋았습니다. 풀잎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차츰 해가 기울며 다른 손님 하나둘 찾아옵니다. 모두들 짐차나 자가용을 타고 찾아옵니다. 멀거나 짧은 길 즐거이 마실하셨겠지요. 다른 분들도 다음에는 짐차며 자가용이며 내려놓고는 이 길을 걸어서 찾아오면 아름다운 가을빛 실컷 누리리라 생각합니다. 한 달 서른 날 자가용을 타더라도 하루쯤은 두 다리로 한두 시간 천천히 거닐 수 있기를 빌어요. 그래야 비로소 가을볕 샛노랗고 싱그럽게 드리우는 고흥 시골길 억새밭과 들내음 누릴 테니까요. 4346.11.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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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1] 여름이 저무는 제비춤 | 고흥 길타래 2013-08-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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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저무는 제비춤

고흥 길타래 11―시골마을 고운 벗님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가는 전남 고흥 시골 들판에 제비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닙니다. 전깃줄에 줄줄이 앉아서 하늘바라기를 하다가는, 우루루 날갯짓하면서 들판을 이리저리 휙휙 춤을 추듯 날아다닙니다.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우체국으로 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만납니다. 제비들은 찻길에 무리지어 앉아서 쉬다가, 또는 찻길에서 몸을 덥히는 풀벌레를 잡아먹다가, 자전거가 지나가니 한꺼번에 날아오릅니다. 이쪽에서 한 무리, 이 다음에 또 한 무리, 그 다음에 다시 한 무리,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한 무리 더. 이들 무리는 저마다 한식구일까요. 아니면 서로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는 무리나 동무일까요.


  우체국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비 무리를 다시 만납니다. 논둑에는 고들빼기꽃이 하얗게 피고, 달개비꽃이 파랗게 핍니다. 고들빼기는 하얗게 피운 꽃이 지면 열매를 알뜰히 맺어 씨앗을 퍼뜨리겠지요. 가을논 나락베기를 앞두기까지 고들빼기도 바지런히 씨주머니 터뜨려 온 들판에 새끼들을 내려놓아야 할 테지요.


  유월뿐 아니라 칠월과 팔월 여름날 가문 날씨였으나 나락은 씩씩하게 잘 자랐습니다. 벌써 이삭이 패어 고개를 숙인 나락이 있고, 이제 막 이삭이 패려는 나락이 있습니다. 얼마 앞서까지 푸른 물결 논은 차츰 노르스름한 물이 듭니다. 제비들은 들판이 노랗게 물들 무렵 배를 한껏 채우고 먼 바닷길 가로질러 따뜻한 새터로 떠나리라 봅니다.


  메뚜기도 먹고 방아깨비도 먹습니다. 사마귀도 먹고 거미도 먹습니다. 잠자리도 나비도 먹습니다. 파리와 모기도 함께 먹습니다. 이 너른 들에 제비 무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제비한테 먹이가 될 풀벌레와 날벌레가 크게 줄었을 테니, 제비도 살아가기 만만하지 않았으리라 느낍니다.


  먼 옛날을 돌아봅니다.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듯이, 흥부네 집은 처마 밑 제비집을 알뜰히 아꼈을 뿐 아니라, 다리 부러진 제비를 고치려고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흥부라는 사람으로 빗댄 이야기는, 시골사람이면 누구나, 또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이면 모두, 제비를 살가이 아끼며 사랑했다는 뜻을 보여준다고 느낍니다.


  제비가 있어 새벽을 함께 열어요. 사람도 제비도 일찌감치 일어나서 늦봄과 첫여름 새벽을 엽니다. 한여름에는 한결 일찍 새벽을 열고, 늦여름으로 접어들고 첫가을에 이르면 조금 느즈막히 새벽을 열어요. 들일을 나가면 제비도 들판 누비며 새끼들 먹일 밥을 찾습니다. 들일을 쉴 무렵, 제비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쉬었어요.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무렵, 제비도 하루를 마무리하며 째째 노래하면서 시골집 처마 밑으로 돌아가요.


  시골사람이면 예부터 흙과 풀과 돌과 나무로 집을 짓습니다. 흙집입니다. 시골사람하고 이웃하는 제비는 흙과 지푸라기로 집을 짓습니다. 사람집도 제비집도 예부터 모두 흙집입니다.


  제비가 있어 들판에서 여러 풀벌레와 날벌레를 잡아 주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시골 흙일꾼은 제비를 살뜰히 아끼면서 곁에서 동무로 삼을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비가 이 나라를 떠나 먼 바다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곧 가을 지나 겨울이 닥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가을일 바지런히 마무리짓습니다. 봄을 밝히고 여름을 빛내며 가을을 누리면서 겨울을 맞이하는 네 철을 또렷이 보여주면서 이끄는 시골벗 제비입니다.


  자전거를 세웁니다. 한손으로 자전거를 끌면서 아이들과 들길을 거닐며 제비를 바라봅니다. 제비들이 한껏 들판 날아다닐 적에는 한참 논둑에 서서 물끄러미 제비를 쳐다봅니다. 저 작은 몸으로 먼 바다를 잘 날아왔구나, 저 조그마한 몸으로 다시 먼 바다를 씩씩하게 날아가겠구나, 생각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작고 튼튼한 몸 씩씩하게 크기를 바랍니다.


  제비 무리 노는 들판을 지나면서 다시 자전거를 달립니다. 이웃마을 나팔꽃 흐드러진 논둑을 구경합니다. 바람이 선들선들 시원합니다. 구름이 하얗습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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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물결 | 고흥 길타래 2013-06-25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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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물결

 


등꽃 저물면서
등잎 푸르게 물들 무렵
아까시꽃 찔레꽃
숲마다 들마다
하얗습니다.

 

오월바람 촤라락 불면
푸른나무 선들선들
나부끼면서
흰꽃송이
물결칩니다.

 


4346.5.1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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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골목마실] 013. 마늘밭 품앗이 | 고흥 길타래 2013-05-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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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마늘밭 품앗이

 


  할머니들 옹기종기 모여서 마늘밭 품앗이를 한다. 서로서로 집집이 돌아 마늘뽑기 함께 한다. 오늘은 이 집 마늘 함께 뽑고, 이듬날에는 저 집 마늘 함께 뽑는다. 오랜 나날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이야기 두런두런 나누는 밭자락 알록달록 빛난다. 4346.5.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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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10] 술집 된 김일체육관 | 고흥 길타래 2013-05-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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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된 김일체육관

[고흥 길타래 10] 고흥 찾아온 손님들은 무엇을 볼까

 

 

  따사로운 봄햇살 내리쬐는 오월 십구일 낮,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녹동항을 돌아보고, 소록다리와 거금다리를 건넙니다. 금산면 거금섬으로 들어온 우리들은 면소재지에 커다랗게 선 김일체육관을 들르기로 합니다. 지난날 ‘박치기왕 김일’을 떠올리는 서울 손님들은 레슬링선수 김일 님 기리는 체육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몹시 궁금해 합니다.


  지난해 태풍 때 날아간 지붕은 새로운 빛깔로 곱게 손질했습니다. 돌로 빚은 김일 선수 기념물도 새롭게 꾸몄습니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빨간 관광버스 한 대 있습니다. 서울 손님들과 함께 체육관으로 들어섭니다. 체육관 안쪽 마룻바닥 경기장에 그물 하나 걸리고, 이곳에서 작은 공으로 족구 하는 아저씨들 보입니다. 그런데, 김일체육관에서 족구를 즐기는 아저씨들은 소주병을 들고 놉니다. 관리하는 사람 따로 없어, 체육관에서 아무렇지 않게 소주를 마시면서 족구를 할까요. 관광버스 타고 김일체육관으로 찾아온 분들은 김일 선수를 기리려고 소주 한 잔 올리려 했다가 그만 당신들 술잔치를 체육관에서 하는 셈일까요.

 
  소주 마시며 족구를 하던 아저씨들은 사진기를 들고 체육관으로 들어온 우리들을 보고는 이내 술병을 치우고 족구를 그만두며 자리를 뜹니다. 김일체육관 술잔치를 굳이 사진으로 찍을 생각이 없기에 아저씨들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합니다. 체육관 안쪽에 큼지막하게 붙은 김일 선수 사진을 보고 밖으로 나오려다가, ‘김일 선수 박물관’은 아직 ‘유품 정리가 안 되어 준비한다’는 알림말만 붙습니다.지난해에도 ‘준비중’이라 했는데, 올해에도 ‘준비중’이면 이듬해에는 ‘준비 끝’ 될까요. 아니면, 다음 군수 선거 때에는 ‘준비 끝’ 되려나요.


  김일체육관 나들이를 온 서울 손님들은 다리쉼을 할 자리를 못 찾다가 길게 펼쳐진 어느 돌무더기에 앉습니다. 체육관 앞마당 널찍하게 마련해서 예쁘기는 하지만, 정작 다리쉼을 할 만한 걸상 하나 없습니다. 계단에 앉아도 되고, 길바닥에 앉아도 되겠지요. 풀밭에 앉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걸상이 하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은 어쩐지 쓸쓸합니다.


  그런데, 서울 손님들 앉은 돌 뒤를 문득 보니 ‘기념식수’라는 글월 보입니다. 김일체육관 앞마당에 가느다란 나무 몇 그루 있는데, 이 나무들 심은 분들 이름 적은 듯합니다. 그런데, 왜 거님길 자리에 ‘기념식수 기념비’를 나란히 세웠을까요. 걸어가면서 들여다보고 꾸벅 절하며 인사하라는 뜻일까요.

 
  변변한 걸상도, 나무그늘도 없는 김일체육관 앞마당에는 ‘기념식수 기념돌 무더기’에다가 ‘체육관 짓는 데에 돈 보탠 사람들 이름 새긴 커다란 돌’이 아주 크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박치기왕 김일’을 느낄 만한 어느 것도 없는 김일체육관에서 술잔치 벌이는 관광버스 아저씨들하고 섞이고 싶지 않아, 서울 손님들은 곧바로 자리를 뜨기로 합니다. 5월 19일 한낮, 금산면소재지 둘레에 문을 연 밥집 잘 안 보여, 다시 거금다리 건너고 소록다리 건너 녹동항으로 갑니다. 자동차 몰아 여섯 시간 서울서 달려온 손님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면 좋을는지 참 모르겠다고 느낍니다. 고흥에 어떤 기념관이나 박물관이나 전시장 있는지 참으로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관광이나 문화는 돈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만, 김일체육관 짓는 데에 들인 돈과 품을 헤아린다면, 애써 돈들여 무엇 하나 만든다 할 적에,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아끼며 어떻게 사랑할 때에, 고흥 문화와 삶이 빛날 만한지 궁금합니다. 어떤 ‘새로운 소식’ 있지 않고는, 앞으로 고흥 찾아온 손님들하고 김일체육관에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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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9] 구백 살 될 느티나무 | 고흥 길타래 2013-04-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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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백 살 될 느티나무 (13.4.27.)
고흥 길타래 9―고흥에서 내로라 할 문화재

 


  우리 식구 고흥에 보금자리 마련해 처음 깃든 뒤, 고흥에서 가장 즐겁게 누릴 한 가지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보면, 꼭 하나 다른 어느 것보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 꼽을 수 있습니다. 처음 이 느티나무를 보고는, 또 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아이들과 쉬면서, 참말 이렇게 우람한 느티나무를 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한편, 느티나무 굵다란 줄기를 두 팔 벌려 안을 수 있는 곳이 한국에서 어디에 있느냐 싶더군요.


  누구라도 가만히 생각을 기울이면 잘 알 수 있어요. 천 살 넘은 나무 가운데, 여느 사람이 손으로 줄기나 가지나 잎을 만질 만한 나무는 이 나라에 한 그루도 없어요. 천 살 넘은 나무는 ‘지킴나무(보호수)’로 삼아, 나무 둘레에 울타리를 촘촘히 박고는, 나무 곁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저 멀거니 눈으로 쳐다보거나 사진만 찍으라 하지요. 천 살 가까운 구백 살이나 팔백 살 나무들도 으레 ‘울타리 안쪽에서 외롭게’ 있기 마련이에요.


  고흥군 고흥읍 한쪽에 깃든 느티나무는 곧 구백 살이 될 텐데, 다른 어느 고을에서처럼 높다란 울타리를 둘레에 빙 세우며 못 들어가게 막지 않습니다. 울타리 없는 느티나무인 만큼, 우리 아이들도 나무에 올라타며 놀고, 읍내 아이들도 곧잘 나무타기를 하며 놉니다. 지난해에는 태풍이 찾아들어 아주 굵은 가지 하나 우지끈 부러졌지요. 이때 고흥군에서는 부러진 굵은 가지 오래도록 내팽개쳤다가, 두 달 즈음 지나고서야 누군가 짐차에 실어 땔감으로 쓰려고 가져갑디다(가지 부러져서 팽개쳐진 때부터 어른 두 사람이 끌고 가서 짐차에 실어 가져가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를 타며 놀 수 있다는 대목은 아주 놀랍고 반가우며 기쁩니다. 어른도 나무타기를 하면 더 좋겠지만, 어른은 좀 참으라 하고, 아이들은 나무 숨결 살가이 느끼도록 살짝살짝 나무타기를 하면서, 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지난날 돌이켜보는 좋은 이웃으로 여기면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2013년 오늘날에서 구백 해를 덜면, 1113년 즈음 됩니다. 역사로 치면 고려 무렵이라 하겠지요. 그러니까 고려 무렵 누군가 심었을, 또는 느티나무 씨앗 한 톨 바람에 날려 씩씩하게 뿌리내리고는 어린 느티나무 한 그루 자라서 오늘날까지 고이 이은 셈입니다.


  숱한 전쟁을 치르고도, 온갖 아픔과 생채기를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또 웃음과 기쁨과 노래와 두레와 품앗이를 두루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이렇게 오랜 나날 살아온 나무 한 그루예요.

  가을날 느티나무 곁에 서 보셨나요? 봄날 느티나무 옆에서 하늘바라기 해 보셨나요?


  고흥읍 느티나무는 해마다 사월 십일 언저리에 조그맣고 푸르게 빛나는 느티꽃 피웁니다. 느티나무이니까 느티꽃을 피우지요. 은행나무는 은행꽃 피우고, 단풍나무는 단풍꽃 피워요.


  다만,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느티꽃도 은행꽃도 단풍꽃도 눈여겨보지 못해요. 장미꽃이나 동백꽃은 바라볼 줄 알아도, 깨알만큼 아주 작고 갸날픈 느티꽃 알아보거나 즐기려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느티꽃 피기 앞서 느티잎 푸르고 싱그럽게 돋습니다. 느티잎은 ‘풀빛’이라고만 하기에는 어딘가 아쉬운, 그렇다고 ‘나뭇잎빛’이라고만 뭉뚱그리기에는 더없이 모자란, 이리하여 느티나무 잎사귀이니까 ‘느티잎빛’이라는 ‘새로운 풀빛 이름’ 하나 지어야 어울린다고 하는 생각을 일깨웁니다.


  마늘잎빛과 파잎빛은 다릅니다. 유채잎빛과 배추잎빛은 다릅니다. 민들레잎빛과 소리쟁이잎빛은 다릅니다. 토끼풀잎빛과 괭이밥잎빛은 다르지요. 풀잎 가운데 똑같은 풀빛은 하나도 없어요. 모두 다른 빛깔이요 저마다 다른 무늬입니다. 똑같은 뽕나무 한 그루에서도 잎사귀 모두 잎빛 달라요. 밤나무에서도 감나무에서도, 잎사귀를 찬찬히 들여다볼 때에 ‘같은 빛이나 무늬나 크기’인 잎사귀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느티나무를 올려다봐요. 느티나무 느티잎 가운데 똑같은 잎사귀는 하나라도 있을까요. 구백 살 가까운 고흥읍 느티나무 곁에서 자라는 무척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 함께 살펴보셔요. 세 그루 느티나무 모두 잎빛 다르고, 꽃빛 달라요. 세 그루 느티나무가 나란히 느티꽃 피울 적에 곁에 서 봐요. 바람 쏴아 불면 꽃술 촤르르 나부끼는 소리를 듣고, 느티잎에 서린 푸른 냄새를 맡아요. 마음을 맑게 트고 생각을 환히 열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고흥군에서는 지난해부터 올봄까지 느티나무 둘레 둑방길 가장자리 따라 거님길을 마련했어요. 퍽 오랫동안 거님길 공사를 하더군요. 눈에 잘 뜨이라는 뜻으로 파랗고 붉게 빛깔 입히며 거님길을 지었구나 싶은데, 이 빛깔은 느티나무하고 조금도 안 어울립니다. 애써 거님길 마련한다 한다면, 거님길 따라 사람들이 거닐 때에 바라볼 느티나무와 냇물을 살펴야지요. 차분한 빛깔, 포근한 빛깔, 부드러운 빛깔, 옅은 빛깔, 맑은 빛깔, 밝은 빛깔을 입혀서 거님길을 꾸며야지요.


  나무는 흙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갑니다. 나무는 하늘을 바라며 자랍니다. 곧, 거님길 바닥은 흙빛일 때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둑방길에서 떨어지지 말라며 세우는 울타리라면 나무 줄기 빛깔이라든지 하얀 빛깔로 입혔으면 한결 잘 어울리겠지요.


  사월 이십일 즈음 넘어서면 고흥읍 느티나무 느티꽃 하나둘 떨어지고, 사월 이십오일 즈음 되면 느티꽃은 거의 다 집니다. 느티꽃을 보고 싶다면 한 해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고흥군에서는 느티나무 옆에 있던 평상을 치우고 정자를 돈 들여 지으면서, 아직까지 마무리 손질을 안 해요. 정자짓기 마친 지 벌써 여섯 달 넘었지만, 정자를 드나들 계단이나 발판 하나 마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자 안쪽 나무바닥을 말끔히 치우지도 않아요. 게다가, 평상 있던 자리에 있던 커다란 대리석을 느티나무 옆에 아슬아슬하게 쌓았어요.


  나무는 나무대로 고달픕니다. 사람은 사람대로 느티나무 곁에서 쉴 쪽틈마저 없습니다. 고흥군에서 느티나무 둘레로 제대로 된 쉼터(공원)를 마련하고자 한다면, 느티나무 앞에 선 자동차부터 치워야 합니다. 이곳에는 자동차가 서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느티나무 바로 옆에는 주차장 있으니, 주차장에만 차를 세우도록 하고, 느티나무 곁에는 아이들과 할매 할배 다리쉼 하면서 나무그늘 누리도록, 아늑하고 좋은 나무걸상 마련해서 놓아야 합니다. 예전처럼 평상을 다시 두어도 좋아요. 평상이 있으면 마을사람들 호젓하게 쉬고 어울리는 이야기마당 되고, 고흥으로 나들이(여행) 오는 사람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자리가 됩니다.


  느티나무 둘레는 아예 아무 자동차도 못 들어오게 하면 훨씬 좋아요. 자동차 못 들어오면 이 둑방길에 있는 식당들 영업이 힘들지 않느냐 걱정하실 분 있을까 모르겠는데, 자동차 없이 걸어서 오가는 짤막한 100미터 남짓 한 길이 되면, 오히려 식당 손님 더 늘어나지요. 하염없이 잠자는 자동차한테 가로막혀 제대로 안 보이던 느티나무 우람한 나뭇잎춤 바라보면서 이곳이 참 예쁘고 좋은 줄 느낄 수 있습니다. 느티나무 둘레에서 다리쉼을 하던 사람들이 홀가분하게 느티나무 둑방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밥 한 그릇 즐기겠지요.


  느티나무 둘레에 있는 아스팔트까지 걷어내어 흙길 풀밭길 만든다면 더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고흥군에서 힘써 알리려 하는 ‘고흥 영화잔치’를 느티나무 둑방길에서 열 수 있어요. 굳이 고흥만에다가 멍석 깔고 잔치판 벌여야 하지 않아요. 고흥 읍내에 아주 좋은 마당이 있어요. 구백 살 가까운 느티나무 둘레를 널따란 쉼터(공원)로 삼아서, 이곳에서 ‘느티나무 영화잔치’를 하면 돼요. 냇물 사이 가로지르는 다리 한둘 놓아, 느티나무 보러 이곳으로 걸어오기 좋도록 하고, 느티나무 둘레에서 어떤 공연이나 행사를 할 적에는 주차장까지 넓게 쓰면 더 좋겠지요.


  ‘경관’은 돈을 들여서 꾸미지 못해요. ‘경치’는 돈을 쏟아부어도 만들지 못해요. 오랜 나날 천천히 이루어지는 ‘경관’이고 ‘경치’예요. 느티나무 한 그루 구백 해 가까이 고흥 읍내에서 살아낸 아름다운 푸른 숨결 헤아리기를 빌어요. 고흥은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따위 끌어들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문화재와 자연유산 많아요.


  사랑스러운 손길을 조금만 뻗으면 돼요. 따사로운 마음길로 조금만 애쓰면 돼요. 서울에도 부산에도, 제주에도 울릉에도, 광주에도 순천에도, 해남에도 강진에도, 이처럼 훌륭하고 놀라운 ‘구백 살 느티나무 문화유산’은 없습니다. 사람들 누구나 곁에서 쓰다듬고 어루만지면서 누릴 ‘구백 살 느티나무 자연유산’ 있는 다른 고을은 한 군데라도 있을까요?


  이제껏 못 알아보았으면 이제부터 알아보면 됩니다. 이제까지 돌보지 못했으면 이제부터 살뜰히 보살피면 됩니다. 고흥읍 느티나무 한 그루부터, 고흥군 골골샅샅 깃든 우람하고 아름다운 나무들 곱게 아낄 수 있기를 빕니다. 우람한 나무 곁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어린나무도 곱다시 아끼면서 이 나무들 앞으로 삼백 해나 오백 해 뒤에 우리 뒷사람 고흥에서 좋은 숲 누리도록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땀흘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6.4.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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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길타래 8] 종이버스표 하나 | 고흥 길타래 2013-04-11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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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버스표 하나 (13.4.8.)
고흥 길타래 8―봉래산 편백나무 숲길

 


  2012년 9월 즈음부터 고흥군에서도 교통카드를 쓸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고흥군 골골샅샅에 있던 작은 가게에서는 종이버스표를 더는 안 팝니다. 모든 삶이 참 빠르게 달라지는구나 싶습니다. 종이버스표만 팔던 읍내 가게는 아예 문을 닫고, 종이버스표를 함께 팔면서 물건 몇 가지 함께 파는 조그마한 면소재지 가게나 시골마을 가게에는 사람들 발길이 더 뜸합니다.


  시골에서도 교통카드를 쓰는 일이 좋은 편리요 문화요 복지라 할 수 있을까 살짝 아리송합니다. 얼마나 편리요 문화요 복지일는지 궁금하곤 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날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편의점에 어렵잖이 들른다지만(교통카드 충전은 여러 달 동안 편의점에서만 되었어요. 이제는 읍내 버스역에서도 해 줍니다.),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편의점까지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시골마을에서 지내는 할매와 할배가 교통카드에 돈을 채우려고 따로 편의점까지 가야 하는 일은 무척 번거롭지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나 다른 마을로 나들이를 갈 때 살펴보면,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거의 모두 맞돈을 내요. 교통카드로 찍는 할매나 할배는 거의 없어요. 읍내 버스터에서 시골마을로 돌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으레 종이버스표를 끊지요. 교통카드에 돈을 채워서 찍는 할매와 할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와 달리,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다 교통카드를 찍어요.


  그러면, 교통카드란 무엇일까요. 시골마을에 편리와 문화와 복지를 앞세우며 쓰도록 하는 교통카드란 어떤 편리와 문화와 복지가 될까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는 편리와 문화와 복지일 테지만,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한테는 무엇이 될까요. 시골마을 작은 가게에 들러 종이버스표 끊으면서 이야기 몇 마디 나누고, 가게에서 볼일도 보던 삶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하는 교통카드는 시골마을에 어떤 편리와 문화와 복지로 스며들 만한 일이 될까요.

 

 

 

 

 


  봉래면 바깥나로섬에 깃든 봉래산으로 봄꽃마실을 갑니다. 편백나무 살그마니 우거진 조그마한 숲길을 걷습니다. 편백나무 숲길로 가는 길목을 알리는 푯말은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예내식당 앞 ‘예내’ 버스터에서 내려 맞은편 조그마한 다리 지나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면 편백나무 숲길로 접어들 수 있지만, 막상 편백나무 숲길까지 몇 킬로미터쯤 걸어가야 할는지, 이 길이 어떠한 길이요, 그 둘레에는 어떤 쉼터가 있는지 하나도 알 노릇이 없습니다. 게다가 봉래산 편백나무 숲길이자 삼나무 숲길까지 찾아가는 오르막길 왼편으로는 높다란 철조망이 길게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숲길이요 멧길에 웬 철조망인가 싶지만, 우주센터 때문에 이렇게 쳤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우주센테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려고 무언가 놓아야 한다면, 이런 무시무시하고 볼썽사나운 철조망을 크고 길다랗게 세워야 했을까요. 숲길과 멧골에 걸맞게 울타리를 쌓을 수 없을까요. 대나무를 베어 대나무 울타리만 쌓아도 됩니다. 나무울타리를 쌓아도 되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마련해도 돼요. 찔레나무 울타리를 둘 수도 있고, 두릅나무를 심어 울타리 노릇 하도록 할 수 있어요.


  천천히 숲길로 올라갑니다. 숲길로 접어들 때까지는 나무그늘 없는 멧길입니다. 자동차 다니기 좋도록 길을 내었구나 싶은데, 차라리 아무 자동차도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면서, 그러니까 자동차도 자전거도 드나들지 못하는 길로 하면서, 오직 사람만 걸어서 오르내리는 숲길로 두었으면, 이러면서 우주센터를 빙 두른 철조망은 모두 걷어내고 이곳에 ‘볼썽사납지 않고 숲속하고 제대로 어울리는 나무울타리’를 세운 다음, 나무울타리 앞에는 고흥에서 즐거이 마주하는 봄꽃과 여름꽃과 가을꽃 철따라 피어나도록 들꽃 씨앗 조금 뿌리면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나무울타리 한쪽에 푯말 하나 붙이면 돼요. ‘숲을 사랑하는 고흥사람은 숲을 아껴 주셔요.’, 이렇게만 적어도 되지요. 굳이 ‘우주센터 출입금지’처럼 무서운 말 안 적어도 돼요.


  콩배나무 하얗게 맑은 꽃망울 흐드러진 곳에서 나무그늘 우거진 숲길로 아이들과 함께 들어섭니다. 작은아이는 졸립다 하기에 품에 안고 걷습니다. 큰아이는 씩씩하게 숲길을 걷습니다. 나무그늘 없이 시름재 언저리까지 올라와야 하는 길은 여느 멧자락하고 비슷하지만, 나무그늘이 짙게 드리우는 숲속으로 접어드니, 비로소 ‘숲이로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숲바람은 냄새와 맛과 결이 사뭇 다릅니다. 포근하면서 선들선들 감기는 숲바람이 무척 짙푸릅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품에 안겨 잠듭니다. 숲바람 흐르며 쏴아아 촤르르 노래하는 소리 들으며 고요히 잠듭니다. 나는 작은아이를 왼가슴으로 안고 봉래산 숲길에서 숲꽃이라 할까 멧꽃이라 할 들꽃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좋고, 사진으로 담아도 좋습니다. 아이를 안은 채 쪼그려앉거나 무릎을 꿇거나 코를 들꽃 가까이에 대며 꽃내음 맡아도 좋습니다. 아이를 안지 않은 손으로 꽃송이를 살며시 쓰다듬습니다. 이 깊은 숲속에서 너희들은 어여삐 어울리면서 맑은 빛 뽐내는구나.


  금탑사 디딤돌 사이 빈틈에서 보던 현호색과 봉래산 숲길에서 보는 현호색은 같은 현호색이면서도 꽃빛이 새삼스레 다릅니다. 편백나무 숲길에서는 다른 어느 꽃보다 제비꽃이 참 많이 보입니다. 하얗게 꽃잎 피어나고 단풍잎처럼 또는 쑥잎처럼 잎사귀 퍼지는 이 제비꽃을 일컬어 ‘남산제비꽃’이라 하는데, 어느 모로 보면 ‘단풍제비꽃’일는지 모르겠다 싶기도 합니다. 좀처럼 알기 힘들구나 싶어, 2013년 4월 1일에 새로 나온 《특징으로 나온 한반도 제비꽃》(지성사 펴냄)이라는 책을 살피니, 꽃잎을 보며 남산제비꽃하고 단풍제비꽃을 가른다 합니다. 꽃잎이 줄기 하나 한 곳에서 겹쳐서 퍼지면 남산제비꽃이고, 꽃잎이 줄기 하나에 하나씩 따로 돋으면 단풍제비꽃이라 한답니다. 그러니, 봉래산에서 보는 하얀 꽃망울 제비꽃은 남산제비꽃이라 할 수 있어요. 다만, 고흥은 남산 아닌 고흥이고 봉래산이니 ‘봉래제비꽃’이라는 이름 얻으면 어떨까 싶기도 한데, 서울사람 발길이 봉래산에도 닿아 남산제비꽃이 퍼졌을까요, 아니면 남산제비꽃 씨앗을 누가 이곳에 뿌렸을까요, 아니면 남산에도 한라산에도 마이산에도 봉래산에도 자라는 하얀 꽃망울 제비꽃인데, 학자들이 남산에서 가장 먼저 찾아냈기에 남산제비꽃이 되었을까요.


  큰개별꽃을 보고, 산자고를 봅니다. 천금성을 보고, 족도리풀을 봅니다. 편백나무에서 떨군 씨앗이 자라며 조그마한 ‘아기 편백밭’이 된 곳은 밟지 말아야겠다 여기며 발걸음 살살 옮깁니다. 머잖아 이 어린 싹들이 씩씩하게 커서 우거진 숲을 이루겠지요. 그늘이 짙어 못 자랄 수 있고, 얼기설기 서로 얽힐 수 있겠지요.

 

 

 

 

 


  한 시간 즈음 숲길을 거닐고 바깥으로 나옵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피나물밭이 이루어집니다. 피나물에 꽃이 피어나면 노랑매미꽃이라고도 한답니다. 왜 노랑매미꽃이라고도 할까 궁금하지만,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피나물이니, 무엇보다 줄기와 잎을 똑 끊어서 입에 넣습니다. 살짝 쌉싸름한 맛이 돌며 괜찮습니다. 아무렴, 나물인걸요.


  볕이 더 잘 드는 곳은 양지꽃밭입니다. 볕이 잘 드는 데에서 자라니 양지꽃일까요. 시골에서는 양지꽃이라는 이름 말고도 쇠스랑개비라고도 하고, 가락지나물이라고도 한답니다. 꽃으로만 바라볼 때에는 양지꽃이 될 테고, 즐겁게 뜯어서 먹는 봄나물로 여긴다면 쇠스랑개비나 가락지나물이 될 테지요. 바라보기에 따라 다릅니다. 마주하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봉래산 숲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봉래면 ‘나로 공공 버스터미널’로 갑니다. 포두면 쪽으로 나가는 버스표를 끊습니다. 고흥군 다른 데에서는 종이버스표를 이제 안 파는데, 봉래면에서는 아직 종이버스표를 끊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남깁니다. 봉래면에서 포두면까지는 3100원입니다.

 

 

 

 

 


  군내버스에는 우리 세 식구만 탑니다. 소영마을, 봉남마을, 대영마을, 사동마을 백양마을 죽죽 지나는 동안 아무도 안 탑니다. 우리 식구들 버스마실 호젓하게 즐깁니다. 이 군내버스 모는 일꾼도 여느 때에는 손님 없이 홀로 버스를 몰까요. 홀로 천천히 마을 구비구비 돌 때에는 봄에는 봄내음 맡고 가을에는 가을내음 맡겠지요. 일(버스 몰기)도 하고 마실(고흥 여행)도 즐기고, 시골 군내버스 일꾼은 퍽 괜찮은 일자리 되겠구나 싶습니다. 남들은 돈 들여 고흥으로 여행을 오지만, 고흥 군내버스 일꾼은 돈을 벌면서 천천히 마을마다 샅샅이 돌며 봄내음 한껏 들이켜네요.


  손님이 없는 군내버스는 남성을 거쳐 동래포와 우산과 봉암과 정암을 지납니다. 신촌과 세동을 지나 원세동세거리에 이르러, 우리 식구는 내립니다. 마침, 고흥읍에서 동백마을 지나가는 군내버스 지나갈 때입니다.


  아이들과 풀밭에 서서 조금 놀자니 군내버스 지나갑니다. 손을 들고 휘휘 젓습니다. 버스 일꾼이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멈칫멈칫 그냥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저 앞에서 멈춥니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 손을 잡고 달립니다. 버스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내립니다. 그러더니 우리 쪽으로 마주 달려옵니다. 할머니 두 분은 하하하 웃으면서 달려옵니다. “싸게싸게 오쇼. 가방은 이리 내고. 아니 우찌 애들 데리고 타쇼. 오늘은 자전거 안 타쇼.” 버스 일꾼은 “거그는 안 서는 데인데 손을 흔들면 우짜요. 거그는 위험해서 죽은 사람도 있고, 다음에는 아우야 앞에서 타쇼. 거 애들 때문에 세웠소.”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원세동세거리에는 어엿하게 버스터 이름도 있고, 버스를 타는 곳입니다. 도화면에서 포두면으로 가는 길목에서는 어김없이 버스를 세웁니다. 그리고 원세동세거리 아래쪽 세동마을 사는 분들은 읍내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갈 적에 늘 이곳에서 내립니다.


  세 갈래 길이 위험하다면, 위험하지 않도록 뭔가 시설이나 조치를 해야지요. 위험하지 않게끔, 포두에서 도화로 접어드는 길목에도 ‘버스를 타고 내리며 기다리는 시설’을 마련해야지요. 고갯마루 한쪽에 ‘버스 타고 내리는 자리’를 마련하든 해야지요.

 

 


  군내버스가 왁자합니다. 봉서마을 지나 동백마을 쪽으로 꺾을 무렵, 큰아이가 “내가 (단추) 누르고 싶은데.” 하고 말합니다. “그래, 네가 눌러라.” 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삐익 하고 누릅니다. 옆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는 할머니들이 “아가야, 벌써 누르면 어쩌냐. 저기 우사(소 키우는 우리) 지나서 눌러야지. 우사에서 내리면 우짤려고.” “저희 마을인지 알고 눌렀는가베.” “다 아니까 잘 세워 주것지.”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는 손을 잡고 내립니다. 큰아이는 버스에 대고 “할머니, 안녕!” 하고 손을 흔듭니다. 도화면 이웃마을에서 군내버스 함께 타고 다니는 할매 할배 들하고 우리 식구는 ‘서로 이름은 모르’지만, ‘낯은 서로 익숙한’ 사이입니다. 할매들 오늘 고마웠어요. 4346.4.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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